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것은 지난 1세기하고도 반세기 동안 언론인과 같다고 알려진 전문적인 직업여행자들이 촘촘히 쌓아올린 본질적으로 현대적인 경험이다.(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39p)” 


밤의 여행자들을 읽다가 생각의 흐름은 수전 손택을 향하게 되었다. 재난을 당한 지역의 이미지를 이용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 재난을 여행상품으로 만드는 스토리 때문이었다. 오래 전 읽었던 전쟁과 같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고통의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연민이 아닌 수치심을 느껴야한다는 수전 손택의 말이 기억났고, 다시 타인의 고통을 펼쳐 들었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화 시켜 상업적 목적이나 이념이나 권력화 시키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할 뿐 아니라,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사유에 대해 쓰고 있다. 주로 전쟁과 관련된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다른 재난에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다.


상업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보는 현대의 이미지는 신경을 거슬리고 소란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다양한 운명과 필연성이 모든 인간의 영혼을 어느 정도로까지나 종속시키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우연이 만들어 낸 심연에 의해 자신과 분리된 사람들을 이웃으로 여기거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시몬느 베이유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60p)” 


수전 손택에게서 소개 받은 책,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마주친 부분이다. 일리아스를 폭력과 힘이라는 방향에서 풀어낸 책이다.  어떤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몇 줄 읽어보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어느새 시몬느 베이유의 다른 작품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옮겨 담는다.

 

수전 손택은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타인의 고통을 시작하지만, 조금은 비판적이다. 익명의 희생자들의 사진은 그 사진을 보고 있는 우리와 그들 사이에 심연만 깊게 할 뿐이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은 그 심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건들은 그 깊이와 거리를 없애고 재난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밤의 여행자들』의 주인공 요나는 여행사 정글의 직원이다. 벚꽃이 한창이었던 진해를 휩쓴 쓰나미와 봉사활동을 결합한 상품을 계획하는 그에게 재난은 상업적 이미지와 아이템이다. 다른 직원이 진행하고 있는 퇴출위기의 여행상품을 조사하고 보고하기 재난여행에 직접 참여한다. 그곳은 베트남의 한 섬, 무이에 있는 사막의 씽크홀 현장이다. 그곳이 운다족과 카누족은 사막에서 잔인한 전쟁 중이었고 그 참극은 곧 모래 구덩이 속으로 사라졌었다. 무이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위해 그곳의 주민들은 이 사건을 재현한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렌즈에 담았다. 사고로 이곳에 낙오된 요나는 이곳에서 이라는 기업의 음모를 알게 된다. 이 섬의 여행지로서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재난을 조작한다. 이 조작에 가담하는 요나는 실재로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폭로하는 것을 망설인다.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에 의해 그는 재난의 희생자여행 아이템이 된다쓰나미는 그와 저들 사이의 '심연'을 쓸어간다


무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살육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경고하기를 거부한 성경의 '요나'를 소환한다. 트럭에 치인 사람을 무심히 치워버리는 장면을 그저 이상히 여기는 정도로 눈감아버리는 요나는 심장이 이미 식어버린 것일까?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재앙의 이미지를 상업적 목적의 광고로 활용했던 그 시간 동안 서서히 식어버렸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시기에 비해, 지금 그 뉴스를 보고 듣는 나의 마음 상태를 생각해보게 된다. 탈출하던 사람들과 기차역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의 영상들에 마음이 아팠고, 폭탄이 떨어지는 캄캄한 도시의 공포에 전율했었다. 지금은 뉴스에서도 그런 영상이나 이미지보다는 유럽과 미국,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내용들을 주제로 한 기사들이 더 많이 보인다. 전쟁의 소식에 지쳐갈 때 쯤 뉴스의 화면들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영상으로 교체되었다. 우리는 영상들의 홍수 속에 살면서, 우리는 새로운 자극으로 이전의 비극을 잊는 것을 반복하면서, 마음이 굳어가는 것을 눈치채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태원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당시 자신이 무심했던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슴이 저릿했다. 울컥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편 우리 사이에 있는 그 심연을 생각하며 마음은 끝없이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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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09 0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난 지역이 여행지가 되는 건 참... 그런 일이 소설속에서만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현실에서도 일어나겠군요 사람은 잘 잊어버리기도 하네요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이 죽고... 자주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주 잊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3-09 13:23   좋아요 1 | URL
매번 반복되는 뉴스때문에 잊지는 못하지만 마음엔 굳은살이 박히는 듯요

페크pek0501 2023-03-10 14: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는 느낌이 들던 기억이 나네요.
어느 책에선가 사진에 관하여, 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는데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그레이스 2023-03-10 14:37   좋아요 2 | URL

저도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 좋아합니다.
렌즈를 통해 사유하는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은 그 사진에 관하여를 바탕으로 더 발전시킨 책인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3-03-10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밤의 여행자들,
저도 넘 좋게 읽었어요
수잔 손택도 더 많이 읽고 싶은데~~
매번 이런 말만 하고 다녀요 ㅎㅎ

그레이스 2023-03-10 16:31   좋아요 2 | URL
^^
저두요~;;
시간있을때 미리미리 하라는 말 아이들한테 하지 말아야 할듯요.
ㅋㅋ

서니데이 2023-03-11 1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밤의 여행자들, 출간되고 몇 년 된 것 같긴 했는데, 찾아보니까 2013년 작이니, 올해가 거의 10년이 되는 책이네요.
그 때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읽으면 또 다른 점이 있을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잘 보이는 것도 있으니까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주말입니다. 좋은 오후 시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3-11 17:05   좋아요 3 | URL
예~
감사합니다 .
이제야 빛을 보는건가요, 아님 제가 이제야 읽는걸까요?^^
서니데이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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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뜨거운데 웃음이 나온다. 울컥울컥 하다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정지아! 당신은 누구인지...! <빨치산의 딸>이 내일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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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2-21 2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그랬어요
눈물 흘리는거 안하려고 했는데 어쩔수없이 나더군요
저도 정지아의 ‘아름다운 날들‘ 들였습니다~~

그레이스 2023-02-21 20:45   좋아요 2 | URL
전 <자본주의의 적 > 단편도 몇개 읽다가...! 정말 작가가 궁금해졌습니다.

서니데이 2023-02-2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인지, 이전에 출간되었던 정지아 작가 책이 최근 다시 출간되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알림이 와서 알았는데, 다른 내용의 책이지만, 그 책도 이 책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레이스님, 어제부터 날씨가 조금 차가워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21 20:46   좋아요 2 | URL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어요
빨치산... 여기저기서 많이 읽은 내용이지만 이런 식으로 글쓰는 작가라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망고 2023-02-21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울다가 웃다가😂

그레이스 2023-02-21 20:51   좋아요 3 | URL
이 책 읽으시는 분들은 모두 그러실듯요..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런 책이군요?^^;;

그레이스 2023-02-21 23:18   좋아요 1 | URL
예~!
가슴이 먹먹했다가 벅차오르다가 그런 책입니다.^^

레삭매냐 2023-02-23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념 갈등 때문에 두 쪽으로
갈라진 사람들에 대한 서사...

작가 특유의 남도 사투리를
엮고 유머를 가미한 이바구
에 감동 먹었습니다.

독서 모임 때문에 두 번 읽었
는데 여전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3-02-23 09:13   좋아요 2 | URL
저도 독서 토론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빨치산의 딸, 자본주의의 적, 아름다운 날들,,, 다 사버렸네요^^;;

얄라알라 2023-02-25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망고님, 은하수님, 레삭매냐님의 독후 반응이 한결같이 뜨겁네요.
읽기 전이라 책 표지 초록색과 제목이 더 인상 뚜렷했는데 그레이스님 말씀 듣고, 정지아라는 이름을 새겨보고 갑니다. 올 상반기 안에는 꼭 읽어야겠네요!^^

그레이스 2023-02-25 23:40   좋아요 1 | URL
예~
강추입니다 ^^
전 작가와의 만남도 신청했습니다.~♡

얄라알라 2023-02-25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주춤하며 젤 좋은 것 중 하나가 작가와의 만남이나 대면 이벤트인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잘 다녀오시고 후기 혹시라도 남겨주시면 꿀 받아 먹는 기분 될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02-25 23:44   좋아요 0 | URL
예~
리뷰와 함께 작가와의 만남 후기도 올리겠습니다.
잘 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임승수 2023-06-01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534357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430088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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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이 있고, 밝혀지는 진실이 있다. 그렇게 힘들일 필요 없이 서로의 마음이 전해져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와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작가에게 딴지를 걸고 싶다. 가끔은 힘들여 붙잡아야 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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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2-07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 읽지 않고 100자평 봤을 땐,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그레이스님은 아래 지층까지 내려가서 보고 오셨군요^^ 저도 숟가락 얹는 기분으로 그레이스님 말씀에 고개 끄덕끄덕 해보고 지나갑니다^^

[밝은밤]에 이어, 전 작가님 두 번째 책으로 읽었어요

그레이스 2023-02-07 15:32   좋아요 1 | URL
쇼코의 미소 이후로 나오는 작품 다 읽어봤는데, 관계에 대한 태도 이젠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해하는 사람만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그런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보기 좋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는
땅의 토질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가 못생겼다 욕하기 마련이다.

해협을 떠다니는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왜 나는 나이 마흔의 소작인 처가
벌써 허리가 굽은 채 걷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내가 시에 운을 맞춘다면
내게 그것은 오만이나 다름없다.

꽃 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그림쟁이의 연설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두 번째 것만이
나를 책상으로 몬다. - P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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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25 2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이군요. 이책은 아니지만, 민음사의 이 시리즈를 산 적이 있는데,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이번 주말이 11월 마지막 주말이라고 해요.
낮에는 햇볕 따뜻하고 좋았는데, 다음주부터는 추워질 거라고 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그레이스 2022-11-26 14:11   좋아요 3 | URL
예~
이 시집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네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scott 2022-11-28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열독 하시는 그레이스님

책상 앞, 독서대를 펼쳐 놓고 계실 것 같습니다 ^^

그레이스 2022-11-28 16:22   좋아요 2 | URL
ㅎㅎ
바쁘긴 하네요^^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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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동경한다. 불행한 아이들의 동경은 가슴 아프다. 바라봐 주는 부모, 평온한 저녁, 따뜻한 식탁 등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누리는 것들을 꿈꾸고 있어서 비극적이다. 정원, 그것은 가족에게 얻을 수 없었던 행복, 고요함의 공간이고, 소년의 동경이다. 변하지 않는 어른들과 세상에서 유년의 정원은 문을 닫고 한줄기 빛의 기억으로만 남는다.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 소외당하는 여성의 삶과, 어른들이 자신의 상처에 몰두하느라,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상처는, 독재 아래 묵인하며 견디는 민중들의 신음과 겹쳐진다. 한 가족의 상황도 그 역사를 닮았다.

 

상처가 많은 할머니, 그의 외아들인 아버지, 그 사이에서 매일 상처받는 어머니, 자신들의 상처에만 골몰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동구는 자신의 말을 마음속에 감춘 채 어른들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어간다.

 

아주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들은 손바닥 위에 얹힌 눈송이처럼 어느 결에 스르르 잊히기 마련이지만, 어느 하루, 뒤꼍에서 맞이한 어느 봄날은 꿈결에 보았던 한 장면처럼, 현실감이 퇴색되어 오래된 수채화처럼 어렴풋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입으로는 앙앙 울고 귀로는 엄마가 내 엉덩이를 치는 철썩철썩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는 미풍에 실려 긴 대각선으로 내 눈앞을 지나가던 벚꽃 잎 하나를 가만히 쫓고 있었다. 꽃잎은 매끄럽지 않은 사선을 그리며 한들한들 바닥까지 내려와 마당 모퉁이를 두르고 있던 버드나무의 흰 솜털과 노란 송홧가루의 품속으로 파고 들더니 오랜 동무라도 만난 듯 함께 구르고, 튀어 오르고, 아장거리다가 마침내 내 시야를 벗어났다. 모처럼 유람을 떠나는 아씨마님들처럼 유유하고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엉덩이에 감겨드는 맵짠 매질의 아픔은 기억나지 않는데 투명한 햇살, 눈앞의 허물어질 듯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추락하던 그 꽃잎의 기억만은 어찌 그리 선명한 것일까.(22p)”

 

9살이 떠올리는 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엉덩이를 맞던 아픔보다는 어른들의 화와 설움이 뒤섞인 분풀이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과,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동구의 마음이 처연(悽然)하기까지 하다.

 

동구는 터울이 많이 나는 동생 영주를 좋아하고 잘 돌본다. 9살 남자아이가 여동생을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동구는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 3학년이 되어도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동구가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아버지는 그 문제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할머니는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오히려 식구들의 관심은 어린 영주가 한글을 읽는 사실에 기뻐하며 관심을 둔다. 3학년이 된 동구의 담임 박영은 선생님은 이런 동구의 외로움과 상처를 알아보고, 방과 후에 한글 공부를 한다. 그러나 한동안 그들의 수업은 한글을 읽고 쓰는 공부가 아닌 말하기 공부다. 가족들에게 받은 서운함과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속상함과 영주를 향한 질투, 엄마에 대한 연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말하도록 도와준다. 선생님의 질문을 처음 받을 때는 예리한 것으로 가슴 속의 가장 여린 살점을 찔리는 것 같았지만 대답을 하면서 동구는 후련한 감정을 느낀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어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조바심이 나고 숨이 가빠지면서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해 버렸다.(112p)”

 

할머니, 아빠, 엄마는 원망을 하고, 화를 누르고, 폭발시키고, 외면하다가 대화하는 법을 잃어 버렸다. 동구가 자신의 감정을 선생님에게 했던 이야기는 가족들이 들어줬어야 하는 것이었다. 동구가 선생님과의 방과 후 수업을 통해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자존감을 회복할 때, 그들은 여전히 대화할 줄 모르고 깊이 멍들어 갔다. 영주의 죽음은 이 가족이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그 사고마저 며느리의 탓으로 돌리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함께 살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할머니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던 동구의 결심은 어른인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박영은 선생님과 선생님의 대학 선배와 고시공부를 하는 주리 삼촌의 대화에서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청년들의 가슴앓이를 보게 된다. 유신시대의 막을 내렸던 10.26 사태 이후 서울의 봄을 기대했던 청년들은 12.12 군사 반란으로 더 짙은 어둠가운데 갇혔음을 알려준다. 선생님은 광주에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동구의 유년기는 유신시대가 끝나고 80년대 새로운 군부독재가 시작되는 시점에 막을 내린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어른들도 변하지 않는다.

할머니처럼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341p)”라고 생각하는 동구의 마음은 군부독재라는 너덜너덜한 헌 신발을 신는 민중의 체념을 닮았다.

 

산동네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3층집, 아주 가끔 문이 열려 있을 때마다 들여다보던 잘 가꾸어진 정원, 나무와 꽃과 연못을 찾아 날아들던 곤줄박이를 바라보는 것은 동구에게 즐거움이었다. 그 아름다운 정원은 비록 남의 소유이긴 하지만 동구의 유년기와 9살 소년의 꿈을 상징한다(아홉 살 인생의 뒷산을 떠올리게 한다). 동구가 그 정원과 작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유년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대문이 닫히면서, 아름다운 정원의 정경이 차츰 좁아지더니 마침내 가느다란 광채의 선이 되었다가, 갑자기 시야에는 녹슨 철문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350p)”

 

그렇게 다짐하고 반복하지 말자고 외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세상, 이전의 경험으로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을 회피하는 영리함만 배운 것 같은 사람들, 그 가운데서 체념하고 희생하는 누군가가 생겨난다.

 

나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어른이 아니라 칼날 같은 의식으로 살아있어 계속 성장하길 바란다. 그럴 수 있을까?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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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1 09: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의 무관심과 폭력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죠. 특히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은 이런 어른들이 모여 도돌이표가 되고 마는 사회적 책임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동구에게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씁쓸하네요. 소중한 관심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그레이스 2022-11-11 10:38   좋아요 3 | URL
역기능 가정의 어른아이와 같은 모습이예요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애완의 시대>를 떠올렸습니다

새파랑 2022-11-11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동구의 어린시절은 많이 아쉽네요 ㅜㅜ

표지가 좀 오래된 책처럼 보입니다 ㅋ

그레이스 2022-11-11 10:39   좋아요 3 | URL
작가와 작가의 오빠 사진이래요
참고로 작가의 할머니는 인자하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scott 2022-11-11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혹쉬 드라마로도 제작 되었던 것 같은데,,,

유년 시절 상처와 트라우마가 평생 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동구에게 따스한 선생님이 계셨네요 ^^

그레이스 2022-11-11 15:11   좋아요 3 | URL
그랬나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다행이죠
이런 선생님이 많이 계셨으면 합니다

Falstaff 2022-11-11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고 공감하면서, 심지어 눈물까지 짜면서 읽은 책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소 전형적인 마무리...랄까요? ㅋㅋㅋ 제가 뭘 알고 하는 얘기이겠습니까. 강요된 해피엔드가 아쉬웠습니다. 물론 해피엔드로 끝나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레이스 2022-11-11 19:00   좋아요 3 | URL
해피엔드로 읽으셨나요?
저는 넘 슬픈 마무리라고 생각했는데...ㅠ
동구의 작별과 체념때문에...!
물론 할머니의 누그러지는 듯한 뉘앙스도 있었지만, 또 반복되는 것이란 예상을 했어요.ㅠ
제가 넘 깊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네요 ^^;;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서니데이 2022-11-11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제가 아는 것과 조금 달라서 찾아보니, 개정판이네요. 개정판도 나온지가 거의 10년 가까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표지의 사진 덕분인지 오래된 책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11-11 21:11   좋아요 3 | URL

개정판 나온지가 10년이 되었는데, 저는 이제야 읽었네요
요즘은 어떻게 쓰는지 읽어봐야겠어요
평안한 저녁 되세요

mini74 2022-11-14 17: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의 첫 문장부터 슬픈데요... 동구와 영주 둘 다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일뿐인데 말이지요.

그레이스 2022-11-14 17:25   좋아요 2 | URL

아이들은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죠

서니데이 2022-11-16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지난주보다 이번주는 조금 더 차가워진 것 같은데, 낮 시간의 따뜻한 시간이 짧아졌어요.
그런데 내일 수능시험 보는날이라고 하니까 이제 그럴 시기도 된 것 같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11-16 17:44   좋아요 2 | URL
예~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희선 2022-11-19 0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고 부모가 된다 해도 아이보다 자기 아픔이나 상처를 더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가까이 있는 어른이 아이를 봐주지 않으면 아이는 참 쓸쓸하겠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있어서 다행이다 해야겠지만... 한 가정 모습이지만 그 시대를 나타내는 걸로 볼 수도 있군요


희선

그레이스 2022-11-19 05:10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책을 시대쪽에 더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독서괭 2022-11-29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 - 울컥하네요.. ㅠㅠ 이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2-11-29 12:03   좋아요 1 | URL
ㅠㅠ
이 책 읽으면서 눈물 많이 흘렸습니다

서니데이 2022-12-08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12-08 18: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