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찰란 피크닉
오수완 (지은이) 민음사 2024-08-23, 372쪽, 한국소설
🎄 표지가 그냥 트리인 줄만 알았다. 책을 절반 가까이 읽을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다가 문득 ‘아찰‘임을 깨달았다. 아찰이 책 속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짠했다. 내 가족이 아찰이 된다고 하면, 등장인물들은 좀 무정하게 나온다. SF인가, 뭐지?, 라며 내게 질문 하다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님도 알아버렸다.
🎄 현실에 있는 것들이 그대로 책 속에 보이니까 SF 같지 않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그냥 지금을 말하는 이야기였다. 재미있다고 말하기에는 내용의 깊이에 조금 미안하지만, 그랬다. 나의 재밌었다는 건,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으면서도 새롭게 이야기를 말하고,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2D 만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 아찰이 되는 것을 비롯한 책 속 상황들. 기본적으로 우리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 속 부모들은 상당히 무능하거나, 자녀에게 공감을 하지 못하거나, 자녀에게 희생을 한다고 착각을 하면서 아이를 학대를 한다. (당연히 전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자기만족이나 착각, 잘못된 방향의 희생도 혹은 또 다른 학대일지도. 나는 못했으니까, 내가 괴물이 될 테니까 너는 괴물에선 안 된다는 방식, 과연 이게 사랑일까?
🎄현실의 부모들도 비슷하지 않나. 내가 희생해서 너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행복해, 이런 방식이 행복일까. 교육에서 시작해 온전한 삶도 들여다보는 이야기였다. 사실 교육이란 건 삶을 배우고 익히는 거니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작가가 질문을 던지는 느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면 헤임 자체도 결국 아찰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구역이다. 누군가의 희생, 댓가 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과연 SF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뻔한 질문이면서도 선뜻 대답은 어렵다. 작가는 고단수다. 우리 시스템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살고 싶니, 어떻게 하는 게 맞니라고 돌려 묻는다. 그것도 쉬워 보이는, 청소년 소설 같기도 만화 같기도 한 이야기로. 교육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시대에 던지되,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미있다고 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꽤 잔인하다. 아이들은 왜 우리는 아찰이 되는지 계속 고민한다. 그리고 아찰들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이 사회 시스템 자체가 아찰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사회고, 상위층 어른들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결국 아찰란 피크닉에서 정상까지 완주한다는 건, 아찰란의 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일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하게 되는 일종의 성인식이다. 받아들이면? 이 더러운 세상, 아찰들이 어디 갔냐면 바로 이렇게 있었어, 하면서 공범되는 거지. 그래서 이 소설은 잔인하다. 그래도 작가는 뭔가 희망을 얘기한다. 서로가 구원할 수 있다고. (그건 믿어요.)
🎄 여담. 피크닉이 그 피크닉인지 몰랐다. 진짜 피크닉이 같이, 아님 운동회에서 오래 달리기나 계주 달리기 하는 건 줄 알았지. 그건 유격 아닌가. 그리고 아찰은 처음엔 누구도 못 피하는 죽음이라 생각했다. 읽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지만, 전반부는 죽음으로 받아들여도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하나 더. SF 영화, 특히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가 나오는 영화들은 꼭 나의 현실이 될 것 같은 여지를 준다. 음, 또 하나. 파보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우느라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아란과 파보의 장면에서 울었다. 아란보다 먼저. 파보가 우리 아빠처럼 느껴졌다.
🎄참 쉬운데 많이 어려운 질문들을 하는 책.
🎄 나누고 싶은 구절들
🌱내가 나쁜 딸이어서 미안해. 한 번도 다정하게 대하지 않아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해서 미안해. 냉정하게 굴어서, 그모든 것들 때문에 미안해. 아란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말들보다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54p
🌱한참을 고민하다 제목 쓰는 칸을 펜으로 검게 칠해 버린 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썼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90p
🌱나중에 보니까 허공은 엄마와 나 사이에도, 출발선과 결승선 사이에도 있더라.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도.
그게 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말 몇 마디 한다고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200p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면 바보가 되고, 알면서도 분노하지 않으면 악인이 되지. 분노해서 뭔가 행동하려 하면 추방당하고, 분노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끝내 아찰이 되는 거야.
226p
🌱사람으로 살려는 동안에는 우리는 사람이야.
31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