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생의 마지막 단계이자 자연스러운 섭리입니다. 죽음을 배움으로써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주변을 돌이켜볼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P12

그렇지만 인생은 죽음이라는 끝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의미를 가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목적을 향해 힘겹더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할 수 없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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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소원
SPRING‘s WISH
양버터/루미칠리 (지은이), 이음서가, 2025-04-01, 140쪽

🦋 누가 봄이 따뜻하다고 했는가. 봄은 겨울보다 쌀쌀하지 않아도 겨울보다 시리다.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이 ‘봄‘으로 묶였다. 다섯 편은 장르가 미묘하게 다르면서도 닮았다. 그리고 모두 봄과는 저끝에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봄의 다른 모습을 보게한다. 봄이라고 하면 떠오로는 것. 희망, 포근함, 따듯함, 새싹... 그런데 책의 이름은 <봄의 소원>인데 표지가 심연을 바라보 듯 깊은 검정이다. 글을 읽기 전에 다섯 개의 단편 소설의 끝마다 간지처럼 있는 그림을 먼저 보았다. 색감이 가득한 그림이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다. 이 얇은 책에서 상반되는 마음을 계속해서 느끼며 읽어나갔다. 꼭 우리의 삶이 양가적인 것처럼.

🦋 첫 번째 단편 <흔한 살인>은 신혼부부의 알콩달콩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장르가 디스토피아로 바뀐다. 갑작스런 재난으로 사람들은 집 안에 머무른다. 미루가 상처가 생기면서 밖으로 나갈 때 들려오는 호준이의 목소리. 사실 이 때 인터스텔라 마냥, 나는 너를 보는 데 너는 나를 못 보는 그런 상황인가 했는데... 음... 한 편의 단편이 끝나면서 잊고 있었던 ‘쾅‘이 생각났다. 그리고 얼음비 같이 하늘에서 쏟아지던 것들의 정체도. 왜 제목이 <흔한 살인>이었을까? 코로나 이후 많이 바뀌었지만, 이전 시절 술을 잘 마시는 건 능력이고 못 마시는 건 사회성이 부족한 걸로 이해되던 시절이 있었다. 술에 그런 개념과 제목을 중첩되었다. 한 챕터가 끝나고 murder위에 취소선을 긋고 love가 있는 표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보았다.

🦋 이어지는 나머지 네 편의 짧은 소설도 그렇다. 봄은 다시 희망하는 계절. 이 봄 누군가는 어처구니 없는 독백을 내뱉으며 ‘끝‘을 꿈 꾼다. 봄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표지 gray spring이 이해가 되는 <봄의 소원>. 따뜻한 봄 날 사라진 소년들이 차라리 어딘가에서 용사가 되었다고 믿고 싶은 <다섯 용사>, 그리움 가득한 과거의 연인과 엇갈린 인연 <그리움x2>. 그리고 개인적으로 기획이 참신했던 <내셔널 스탠다드 메리지>. 5월의 신부라는 말처럼 봄과 결혼은 ‘시작‘을 뜻하면서 하나로 묶이는데, <내셔널 스탠다드 메리지>는 그 모든게 아니라고 한다. 작가는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재미‘를 강조했다. 다섯 편의 소설을 나는 가볍게 읽었다. 그러나 절망, 그리움, 안타까움이 뒤섞인 이 신숭생숭은 가볍지만 가볍지가 않았다.

🦋 이 단편소설을 읽게 된 건 작가님들의 전작, 에세이 <낭만을 팝니다>의 낭만, 허세가 어쩌면 많은 사람의 삶에서 놓친 것들이 아닐까 하며 읽었던 설렘때문이었다. 작년 겨울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 누군가는 철 없어 보인다고 할 수도 있는 낭만과 허세가 설레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이번 단편 소설집이 궁금했었다. 아니 그런데!! 익살스러우면서도 따뜻하지만, 전반에 깔린 이 ‘다크‘함은 생각치도 못했다. 물론 짧은 소설은 우연도 있고 탄탄한 논리는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거기서 미루가, 라는 논리를 들이대지 말자. 왜 거기에서, 왜 하필 같은 일. 비일상이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나는 나만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어차피 삶이란 것 자체가 일상에서 많은 비일상을 만들고, 다양한 서사에서 상반되는 것들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마치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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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김춘미 (옮긴이) 민음사 2004-05-15, 191쪽, 일본 소설

🪔 삶에는 만약이라는 게 없다. 없지만, 만약에 요조가 도쿄에 있는 학교를 안갔다면. 자율적인 생활이 아니라 어느 정도 통제적인 생활을 했다면. 고향에서 농사짓는 땀 흘리는 삶을 살았다면. 이런 있을 수 없는 가정을 자꾸 해본다. 그랬다면 이 정도로까진 않았을지도. 아니면 그 호리키 마사오라는 사람을 안 만났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또 만약에 요시코가 겁탈을 당하지 않고 요조와 살았다면 하는 무의미한 가정도. 그것도 아니라면 유조가 그 약사를 만나지 않고 모르핀 중독자도 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불행하지는 않았을지도. 이렇게 몇 번의 ‘만약에’를 가정해본다.

🪔 나는 왜 그런 억지를 부리며 요조를 구하고 싶은 걸까. 요조는 그런 사람이다. 꼰대같은 나는 저리 사니 저렇게 되었다 하면서도 이 못난 사람이 안타깝다. 쓰네코, 시즈코, 스탠드바 마담, 요시코, 약사까지이런 일이 없었으면 나는 괜찮았을 거라고 대부분 쉽게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럴까? 요조에게 그 만약에가 없었다면 요조는 정말 괜찮았을까? 어쩐지 그런 굴곡이 없었어도 요조는 다른 일을 만들고 순응하고 더 안 좋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어두워졌다. 이래서 내가 예전 1독을 하고 난 후 우울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2독한 지금은 그때처럼 우울함보다는 안타까운 마음.

🪔 책 앞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요조가 현재 시점 인물과 비슷하다 느꼈다. 감정 노동자처럼 웃고 싶지 않지만 웃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런데 책 뒤로 갈수록 현대인이 피하고 싶은 사람이란 생각이 더 강해졌다. 내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요조 같다고 하면, 솔직히 부담스럽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지금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던 시대의 일본인이라면 차라리 요조처럼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충 살다가 대충 죽는 삶. 사는 게 너무 무서워서 누가 내 인생을 결정해주길 원하는 삶. 너무 어려운 시대라면 그런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 요조의 삶은 공감이 쉽지 않지만, 책의 등장인물들 중에 요조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여자들은 요조를 순하고 순수하게 바라본다. 요조는 스스로를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았다고 독백한다. 요조의 삶이 마음이 아프다. 짠하고, 안쓰럽고, 보다듬어주고 싶고. 그래서 그 스탠드바 마담이 할머니가 말하는 요조가 이해가 된다. 공감이 안가지만 변명을 해주고 싶다. 인간이란 가치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제외한)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 민음사 출판에 같이 실린 작품 <직소>는 <인간실격>보다 더 어려웠다...추후 2독이 필요하다. 작품해설도 더 어려웠다.


🪔 나누고 싶은 구절들

🌱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13p

🌱 ‘쓸쓸해‘ 저는 여자들의 천 마디 만 마디 신세 한탄보다 이 한 마디 중얼거림에 더 공감이 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 여자들한테서 끝내 한 번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은 괴상하고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60p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129p

🌱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132p

🌱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
가?‘라는 명제와 더불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명제 또한 이 세상에서 생을 부여받은 모든 인간의 물음이 될 수 있을것이다.
161p 작품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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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부터 나의 무지를 말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스페인에 있는 그 유명한 성당에 이름이 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무식함을 고백하자면 가우디 대성당이라고 만 알고 있었을 뿐 정식명칭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인 걸 오늘 책을 읽고 알았다. ‘까사 밀라‘도 존재는 알았지만 명칭을 오늘 알았다. 다행히도 책이 가독성이 있다. 이 기회에 무지한 경계선을 넓혀봐야지. 정확히는 성당도 아니었다.

🗼제목을 다시 본다. 인간적인 건축이란 무엇일까. 뭘 모르는 나는 한 번 마음대로 생각한다. 시간을 거슬러 우리 문화가 계속 다음 세대로 건네지는 것에 주목해 본다. 건축도 문화의 부분으로 마찬가지. 내가 다 완공하지 못한 건축물을 다음 세대 혹은 다른 주체가 이어 받는 것. 유감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다. 우리로 치면 시공사 바뀌면 완전 꽝. 그렇다면 이런 명성의 건축물은 진짜 무언가가 있구나.

🗼질서와 복잡성. 작가 토마스 아저씨의 말처럼 이 두가지, 상승과 하강은 건축 뿐만이 아닌 모든 것을 흥미롭게 하는 듯하다. 이 책은 유명한 건축물에 대한 대중의 상식을 늘리는 책이 아니다. 토마스 아저씨는 독자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나는 그 대답으로, 내가 만들어갈 세계의 가능성은 무엇일지 고민을 하고 있다.

🗼유명 도시의 비인간적인 설계의 건물 사진을 차례차례 보다가, 작가의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본 건물이 당신에게는 어떤 느낌을 주는가?˝ 작가가 우리나라 건물을 봤다면 뭐라 말했을까.
그래도 홍콩 건물 보다 낫지 하다가도 꽉찬, 그리고 복잡한 느낌도 홍콩의 정체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책 속 홍콩 사례로 나온 건물은 너무했다. 문제는 우리 나라 아파트에도 요즘 이런 식이 있다는 ㅠㅠ

🗼 그저 단순히 녹지나 오래된 옛 건축이 아닌 따분한 건물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저자의 견해를 뒷받침 하기위해 예시로 영국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건물 10선을 한참 바라봤다. 내가 주목한건 저자의 의견이 맞다는 확인이 아닌 나의 무지 혹은 무관심이었다. 그리고 철거되는 건물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전체 폐기물에서 차지하는 비율. 건물을 오래 써야하는 이유. 그렇지만 단지 디자인때문에 건물을 폐기하는 건 아닐텐데.

🗼 작가인 토마스 아저씨는 비인간적인 모더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토마스 아저씨가 왜 그러는지 책을 읽다 보니 알 것도 같다. 왜 모더니즘이 자격이 있는 건축가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작가의 서술이 꽤나 논리적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건물은 비용때문에 같은 직선과 비슷한 건물을 만들었을것 같은 경제적 이유가 더 컸을 것 같은데.

🗼 왜 모더니즘의 건축이 지금까지 대세인지 관련하여 효율성의 집착은 한국 사람으로서 동의도 되지만 변명도 하고 싶은 부분이다. 저자의 말이 다 맞다. 맞는데 우린 땅이 좁은데. 우린 집 살때 큰 돈 들일수 가 없단 말이지. 방도 보통 작아서 침대나 책상은 사각이고 벽이 붙이는 게 당연한 대한민국인데 ㅠㅠ 내가 새로 건물을 짓는다면, 혹은 기존 건물을 재사용 한다면 어떻게 문가와 겉모습을 만들고 싶을까. 어떤 용도의 건물에서 어떤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을까. 지금 집을 다시 샤샥한다면 어떤 모습을.

🗼토마스 아저씨는 강경하다. 불편하다가도 가치관을 바꾸고 싶어진다. 꼭 건축뿐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해서. 작가의 제안처럼 의견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더 나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생각, 격분, 호기심, 감탄을 가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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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대하는 태도이며 문과인 나도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그분들께 배웠다.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젊은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의 건투를 빌며.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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