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건물은 매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데 반해 새 건물은 신기할 정도로 무료하고 단조로웠다. 건물은 그저 보이는 그대로,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까사밀라는 부동의 현실 가운데 어떤 균열을 열어젖혔고,
그 균열 속에서 나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보았다.
- P27

그리고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가 이다지 훌륭한 것을 구상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한 구상을 힘 합쳐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연함이다.
- P29

왜, 이토록 풍요로운 21세기에 우리는 월든 7이 아닌 피너클 호텔 하버프런트 같은 건물에 둘러싸여 있을까?
월든 7과 같은 건물은 현대에도 터무니없이 많은 비용을 들이지않고 인간적인 건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왜 우리는 계속 이런 건물을 짓는 걸까?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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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쉬운 일이다. 뒤에서 욕하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욕할 거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 P43

친했던 척하지 마. 네 감정을 과장하지 마. 정수연의 죽음을 너희의 일로 만들지 마. 슬픈 사람은 정수연의 가족이랑 친구들이야. 너희는 정수연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었잖아. 
- P48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일이라서, 의미 부여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죽은 다음에야 친한 척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가 위선적으로 느껴져서, 어디에다가도 꺼내 놓지 못했던 기억이었다.
- P49

길고양이는 오래 못 살아. 길어야 이 년에서 삼 년이야. 매일보던 애가 어느 날 사라지는 경우도 되게 흔해. 사체라도 발견할수 있으면 다행이고,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아. 그러니까 얘들한테 이름을 붙이는 거야. 이름을 붙이고 눈에 보이는 동안 자꾸자꾸 불러 보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거든. 우리 엄마한테 배운 거야.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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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다 보면 호정이 나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는 나를 나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런 호정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 P14

"강하면 좋죠."
"왜요?"
"잊고 나아가야 하니까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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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질문은 없었다. 나는 선생님이 더 묻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다. 선생님이 내가 학원을 그만둘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 P8

나를 ‘배려‘하면서 자의식을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짜증이 났다. 배려받을 사람과 배려받지 못할 사람을 구분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 나를 싫어하는 순간, 그들은 생존자를 싫어하는, 고작 그런 사람이 된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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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매점 블라인드 설렘 독서모임 2월의 또다른 책, 카사바칩. 먼저 읽은 2월 설렘 책 <봄이 오면 녹는>을 완독했을때만 해도 여운이 너무 짙어, 카사바칩을 사랑하게 되리라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세상에. 지치지도 않고 자기 세계에 사는 사람들. 눈물날 정도로 답답한 사람들. 이 어처구니없으며 한편으로는 부러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마침 이 책을 읽던 때엔 입원중이었다. 입원중 어두운 책을 읽고 더 힘들었던 몇 번의 쓰린 경험이 있던지라, 이후 입원중에는 쉽고 따뜻한 책을 읽자는 나만의 원칙을 세웠었다. 카사바칩 앞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무거운 건 아닐까 (물론 그 때도 엄마 미선과 주인공의 똘끼는 분명히 드러나 있었지만)했는데, 이 책은 눅눅한 카사바칩이 아닌 바삭한 카사바칩이었다! 최적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책. 그렇다고 마냥 쉽다는 건 아니고 또 따뜻하진 않다. 이 깊음과 경쾌함의 콤보라니.

🍿사실 가족의 연쇄 파산이란 소재가 얼마나 무거운가. 아빠가 답답하고 너무하게도 엄마의 서류상 파산으로 다시 파산했다는 앞 부분에 이해가 되면서도 울컥했다. 그런데 엄마가 피해자라고 할 수 없는 게, 엄마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요, 딸에게 파산을 넘긴다. 물론 이미 대출을 할 수 없던 자신들의 상황이지만, 그쯤 되면 합리적인 길을 모색할만하지 않은가. 아,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딸내미는 철 없이 오늘만 대충 사는 느낌이랄까. 과거 아주 오랜 시간 하루 하루 힘겹게 악착같이 버티면서도 어떻게든 빠져나오고자 간 버리고 살아간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일까. 왜 이리 이 가족들은 미성숙한건가 하며 복장터지며 읽었는데, 결국엔 이 가족 모두를 사랑하게 되다니. 하... 나, 진짜..

🍿 그리고 카사바인형.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위해, 가족을 위해 떠날 때 내가 두고 갈 수 있는 게 있을까? 아니 애초에 왜 떠나는 거야. 떠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건가. 그러면서도 나를 모르는 어딘가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상반된 생각도 같이 든다. 혹시나 그러면 꼭 삶을 리셋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막연한 믿음.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금, 여기‘가 많은 것을 내게 주었겠지. 레무는 태어난 곳이 인생의 많은 걸 결정한다는 사실에 무기력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말을 예전 어떤 강연에서도 들었다. 그러니 내가 잘나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만큼 성취했다는 말은 삼가야한다고. 그렇다, 삶은. 그러니 레무는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왔으며, 그럼에도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려 하는 걸까.

🍿 레무의 고향 같은, 아빠의 인쇄소 골목같은 나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이 세계에서 버티는 당신도, 또 다른 세계로 탈출 혹은 떠나는 또 다른 당신에게도 우리가 스치는 그 시간이 호의와 다정함으로 응원할 수 있기를. 서로가 남긴 좌표를 잘 찾아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아, 카사바칩은 온라인에서 구매 가능한 과자라고한다. 언제 바삭한 맛을 맛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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