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숨이 막히는 것은 우리 식구의 끈끈한 결속력이었다. 나는 몰래몰래 모반을 꿈꾸었지만 돌파구는 없었다. - P42
올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더군다나 알 수 없었다.매사에 가장 의젓하게 구는 게 올케였지만 나는 가끔 올케가 울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곤 했다. - P44
그날 올케하고 나 사이엔 육친애나 우정보다 훨씬 더속 깊은 운명적인 연민 같은 게 심금에 와 닿았기 때문에 그 밖의 것은 그닥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 P47
우선 이질감을 안 느끼게 하는 게 수였다. 이질감이란 얼마든지 적대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것은 얼마나 치사한 일인가. - P116
그리고 결국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오류다. 아마도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더 많은 오류를 저질렀을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류는 생겨났고, 이 같은 오류가 누적되어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 P70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 P75
생명에는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인간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심오한 질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미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 P45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는 실제로는 이기주의가 둔갑한 경우가 많다. - P50
그러나 집단의 절멸은 개체 간에 치고받는 경쟁에 비해 느린 과정이다.집단이 느리게 그리고 확실히 쇠퇴해 가는 중에도 이기적인 개체는 이타주의자의 희생을 발판 삼아 짧은 시간 안에 그 수가 불어난다.세상 사람들이 선견지명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진화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 P56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무섭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간다. 나도 요샌 거기 정말 그런 동산이 있었을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 산이 사라진 지 불과 반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 P7
나는 오빠에대한 헤어날 길 없는 육친애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나 느낄것 같은 차디찬 혐오감이 겹쳐 오한이 있을 때처럼 불안하고 불쾌했다. - P16
앞날을 걱정하는 건 태평성대에나 할 짓이다. 전시에는 그날안 죽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걸 모르면 그걸 아는 자의 짐이 되기 십상이다. - P23
우리는 서로 이끌리면서도 경계하고 있었다. - P29
"다들 어른이 됐어."그런 날이 있다.어릴 적을 채웠던 싱그러운 풋풋함은 조금 옅어졌지만, 그 지난한 시간 동안 함께 해온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알게 되는 날. 어른이 되어 가는 나의 나날에 그들이 섞여있는 걸 느끼는 날. - P102
"한자리에 오래 반짝인다는 건,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성장하는 이는 그게 성장인지 모른다. 그저 그러는 중이라고 믿을밖에. 들을 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컥함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주길 바란다. 먹먹하고 막힌 것 같을 때 올려다볼 수 있는 위로를 걸어둔 채로. -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