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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는 「해방 전후사」에 관심을 두고 이 책을 읽었다. 작가의 개인사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더 눈길이 갔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혼란, 전쟁을 경험했던 이들의 삶과 의식에 더 무게를 두며 읽었다. 분단선, 개성, 서울의 현저동, 사직동, 서대문형무소 등 역사가 훑고 지나간 아픔의 공간들을 찾아보며, 그 시대를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더 집중했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장면에 눈이 머물고, 다른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동일한 곳에서 동일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오래 전 이 책을 읽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건들이 나를 훑고 지나가며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들은 마음의 무늬가 되었다. 타인의 마음에 공명하는 무늬!
독서(어슐러 르귄의 표현을 빌자면, 귀 기울이기)와 시간에 의해 짜여진…….

다시 지도를 펴놓고 내가 찾아본 것은 박적골에서 개성역까지 걸었던 길, 서울역에 도착해서 지게꾼에게 짐을 지게하고 현저동까지 걸었던 길, 현저동에서 매동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넘어가야할 산, 숙명고보 가는 길, 그녀가 놀았다던 서대문형무소 앞마당, 피난을 가려면 어디로 해서 한강을 건너야 했을지……. 지도를 찾아봤다기보다 상상을 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더 마음이 갔다.

유년기의 기다림과 서러움, 환희와 비애를 보며 원시적 감정들을 경험했다.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려보며 가슴 저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감정들이 올라왔다. 어느날 유난히 새빨간 노을에 비친 마을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고,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다섯 살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노을의 잔광이 남아 있는 능선을 배경으로 너울대는 수수이삭을 바라보며 그녀는 설명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감정의 체험들이 그녀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지 않을까? 작가로서의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사건들이다.

그녀가 느꼈다는 환희야 말로 나를 전율하게 했다. 그녀가 자란 넓은 들판이 있는 자연이 아니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축복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실개천이 합쳐져서 냇물이 된 동구 밖까지 원정을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만나는 소나기는 실로 장관이었다. 서울 아이들은 소나기가 하늘에서 오는 줄 알겠지만 우리는 저만치 앞벌에서 소나기가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 장막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자꾸나 뛴다.
불안인지 환희인지 모를 것으로 터질 듯한 마음을 부채질하듯이 벌판의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풀들도 축 늘어졌던 잠에서 깨어나 일제히 웅성대며 소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언제나 우리가 마을 추녀 끝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32p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소나기를 기억했다. 군대처럼 쳐들어온다는 표현은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경험한 소나기의 장막을 떠올리게 했다.

서울로 온 그녀는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 서울의 산에서 싱아를 찾으며 박적골 뒷동산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러한 혼동은 아카시아의 비린 맛이 일으킨 헛구역질 때문이 아니라, 몸에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그녀에게 방학 때마다의 귀향은 싱그러운 들판의 생명을 마음껏 호흡하는 시간이다.
그를 제일 반겨주고 아껴주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그녀에게 또 다른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사랑마루에 서까래로부터 늘어져있는 삼 줄을 남몰래 어루만지며 심장의 균열이 가는 아픔은 내게도 전달되었다. 그 줄을 붙들고 떨리는 다리로 댓돌을 디디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

한편 더 배웠다고 자부하고, 양반이라는 것을 내세우던 할아버지가 오빠의 총독부 취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던 것, 큰 아버지를 면서기 시키기 위해 역사책에도 기록될 만한 친일 족적을 남긴 먼 친척에게 청탁을 하는 모습을 기억하며 당시 집안의 근지라는 것이 역사의식을 상실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어머님에게서도 부조리함을 경험한다. 탁월한 감수성과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해방 후 대학 첫해를 좌우로 갈라져 싸우는 혼란 속에서 맞이한다. 6.25가 터지고 좌익 활동을 전력이 있던 오빠는 의용군이 되어 북으로 간다. 서울이 수복되고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찍혀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이 다시 함락될 위기를 맞이하며 피난을 떠나야 하는 그때 오빠가 돌아오고, 부상을 입은 오빠와 함께 가족은 서울에 남게 된다. 모두가 떠나고 텅 빈 골목에서 갑작스런 사고의 전환을 경험한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311p

그래서 그녀의 책은 전쟁과 분단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리라. 막다른 골목에서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의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의 전복, 사고의 전환을 경험한 후,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의 문턱을 넘어 새로운 인식의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일제강점시대 말과 전쟁, 분단의 시대에 대해 공부하고 새롭게 인식 했을 것이고, 그 인식의 창을 통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글로 증언했을 것이다.

박완서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작가가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생각에 몇 권 읽은 후 전작 읽기를 중단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장에 꽂힌 작품들을 뒤적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모임에서 책을 정하고 보니 ‘박완서 타계 10주기’라는 이름으로 개정판이나 특별판 홍보가 인터넷 서점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백기완 선생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그 세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박완서 작가가 이 소설의 말미에서 ‘증언할 책무가 있다’고 깨달은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시대에 고해야만 했던 증언자들이 있다. 그들이 한 사람씩 일을 마치고 있다.
2021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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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16 1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ㅠ 엄중했던 한 시대를 견뎌냈던 증언자들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증언의 촛불을 꺼가니 마음이 무거워지네요!ㅠ 따듯한 저녁시간되십시요!

겨울호랑이 2021-02-16 1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돌이켜보면 지난 2009년에도 시대의 큰 어른들이 많이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요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듯 합니다. 2009년과는 다른 변화이길 바라봅니다 ^^:)

바람돌이 2021-02-17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백기완선생님이 타계하신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제게는 백기완 선생님이 제 청춘의 상징같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때문에 그리고 이 도시에는 분향소가 없어 마음으로만 그분을 추모하면서 젊은 시절 보았던 그분의 여러 모습이 떠오르네요. 박완서 작가님의 책도 좀 더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이 이 페이퍼를 보면서 또 들기도 하네요.

JK 2021-02-17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친구 신청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책에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는데 쓰신 글을 보니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읽으신 것 같네요. 후속작에 해당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언젠가는 읽겠다 생각만 하고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그레이스님의 글을 계기로 삼아 올해 안에는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2-17 16:34   좋아요 2 | URL
후기 기대할께요
함께 읽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기분 좋은 곳이예요~

고양이라디오 2021-02-22 17: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친구추천하고 갑니다^^ 후속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어서 읽고 싶네요.

그레이스 2021-02-22 17:38   좋아요 2 | URL
글로 후기 나누죠~^^
감사합니다~

scott 2021-03-05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그레이스님의 다음편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 기대합니다. ^.^

그레이스 2021-03-05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시선으로부터, (10만 부 기념 새해 에디션)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시선은 방송토론이나 인터뷰에서 시평과 신념을 펼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급진적인 말들을 했다. 그는 딸들과의 대화에서 그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올 때 할 말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일관성 없을 때가 많았고, 기분에 따라 하게 될 때가 많아서 앞뒤가 안 맞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과연, 그는 그 때 한 말들을 후회하는 것일까? 만일 그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는 다시 하게 될 것이다. 후회하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은 말하고, 상처가 되더라도 생각하는 것은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한 말들이 나에게 족쇄가 되는 것을 느낄 때.
독서토론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가끔 움찔할 때가 있다. ‘과연 나는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하고. 누군가 “당신 그때는 이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살고 있나?”고 묻는 때가 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멈칫하게 한다. 가끔은 그렇게 쏟아놓은 말들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확인할 때도 있다. 그 방식이 나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손해를 보게 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차라리 내뱉지만 않았더라도 조금은 돌아갈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시 그때 그 자리로 돌아간다면 같은 말을 했을 것이고,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10년 20년이 지나도 몸서리치며 후회 할 치기어린 말들이 있을지라도…….


시선은 공중으로 흩어지는 말들보다는 글로 고착시키는 걸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은 노출되는 자리를 신중히 삼갈 줄 아니 누군가는 내 또래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325p

말을 많이 하게 된 이유다. 사람들이 많이 보고 듣는 방송에서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어찌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를 아끼고 싶지 않았을까? 당시 여자들이 당하는 비참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말해야 했기에 기왕에 말을 시작한 자신이 그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의 거칠고 격한 말들은 고요하고 잠잠해지고 침묵사이로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보다는 글이 더 많아지고……. 인생을 마감하는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이제 남은 말들은 정말로 의미 있는 사람들하고만 쓰겠다’고 하며 대중과 작별인사를 한다.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고. 그 역사를 아프게 온 몸으로 겪어냈음에도, 자유롭게 사랑하고, 작가로서 당당하게 할 말을 했던 심시선, 그의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 시선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들은 심시선을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르다. 3대가 산 시간이 다른 것처럼. 네 자녀는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있다.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살지 않고 엄마이지만 엄마로 살지 않았던 그녀의 자유로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거침없이 생각을 말하는 심시선의 삶 속에 강요된 것이라곤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음에도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마음껏 사랑하고 자유롭고 너그럽다.


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너그러울까?
여유가 없고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향해 너그럽지 못했던 시간들을 기억해 본다. 아이들 키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쫓기듯 책을 읽고, 책 한권을 못 읽고 일어나 밥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 가끔은 짜증이 난다. 빨래를 개며, 설거지 하며, 흘러가는 생각을 잡아두지 못해 안타깝다.


소설이지만 아이 넷을 키우며 화가로서 작가로서 심시선처럼 사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다른 곳에서의 희생이 있을 수밖에…. 노출된 삶이 그랬고, 그에게 꽂히는 대중의 시선이 그랬고, 자녀들에게 있었던 빈자리가 그랬을 것이다.

그렇듯 시선에게도 후회는 있다.

‘늘 철쭉이 흔하고 시시한 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봄이 와도 철쭉을 대단히 반기는 이는 없지 않나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산책을 나갔다가 송이 째 떨어져 있는 흰 철쭉을 보았고, 지나가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그 꽃을 비추는 순간 그것이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흰색이란 것처럼 보이는 그런 흰색요. 그것을 칠십대에야 깨달았으니, 늦어도 엄청 늦은 거지요.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은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고, 어떤 날은 묵은 괴로움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그런 고민을 하겠지요. 철쭉은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을 겁니다. 오로지 빛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있지 않을까.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철쭉의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바깥의 빛이 있고 안의 빛이 있을 터입니다.
밤 산책에서 또 근사한 것을 발견하면 꼭 전하겠습니다.

―XXX라디오 짧은 코너 <작가가 보내온 엽서>(2004)에서‘
280~281p


어떤 모양으로 살던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이런 글을 남기게 될까?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는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그러나 조금 여유를 갖고 그 때 알게 될 작은 파편의 반짝임이라도 발견하게 될 수 있길 바래본다. 그 반짝임을 일견하게 하는 바람 한 줄기가 불 때 나는 그곳에서 볼 수 있기를…….

입안에 말이 고이는 것을 보니 봄이 온 듯하다. 나의 작고 방치된 정원에는 수반이 하나 있고 새들이 와서 몸을 씻고 간다. 그 모습이 내 아이들 어릴 적을 닮았다. 찬물에 머리를 대충 감고 히히웃는 것과 어찌나 비슷한지 모른다. 꾀바르고 곰살맞은 막내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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