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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국민청원의 대상이 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름이 원래 영초였는데 영로로 바뀌게 된 이야기까지. 집에 꽂혀있던 『영초언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몰입되었으나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부채의식 같은 감정이 삐죽삐죽 살아나서 불편하고 괴롭기 때문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76학번 서명숙은 제주도 출신이다. 4·3을 겪은 변방의 섬에서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이듬해에 서울의 대학에 합격했다. 학교 신문사에 입사한 당시 휴교령이 내려지고 학교 안에는 그들을 감시하는 사복경찰들이 상주하는 상황이었다. 기사는 검열을 거쳐 수정되고, 대체를 반복하며 스스로 자기검열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보관 건물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던 낯익은 중년 남자의 정체를. 그 남자는 중앙정보부에서 업무 협조차 신문사로 파견 나온 요원이었다. 그 말고도 자주 눈에 띄었던 또다른 중년 남자는 우리 대학 관할인 성북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다. 일개 대학신문사 주변이 이럴진대 방송사나 신문사의 검열은 오죽할까 싶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뉴스들은 과연 얼마나 진실된 것일까?”
(44p)
첫 여성편집국장을 꿈꾸던 그녀는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경험하면서 “대학 내의 기득권이자 귀족 집단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안주하는 건 아닌지 자문하며” 야학과 편집국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던 시점에 천영초라는 선배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본 회퍼의 『옥중서신』과 시몬 베유의 평전 『불꽃의 여자』와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받는다. 서명숙은 야학에 투신한다. 영초선배와 함께 살면서 그녀의 따뜻함과 역사의식과 정의감에 젖어갔다. 여자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되짚기도 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으면서 한국의 여성이 맞닥뜨린 현실을 통탄하기도 하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으면서 유신체제를 깨뜨리지 못하는 자신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58p)
그들 모두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경찰간부의 딸, 의사의 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딸, 고단한 삶을 사는 반공주의자 어머니의 딸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모른척 외면하고 살고 싶은 캠퍼스의 사랑을 꿈꾸던 학생들이었다. 그때를 돌이키며 저자는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이 딸에게 말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래, 바보 같았던 거지……”
(73p)
그 시절의 그들이 그랬다. 아니,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유인물을 팔이 아프도록 인쇄해서 교정에서 뿌리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들은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나고 다시 잡혀가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풀려나와 들려주는 고문이야기는 너무 두렵기만 하다. 영초가 체포되고, 교생실습을 위해 제주에 내려와 있던 서명숙은 서울의 안가로 끌려가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1년의 수감생활을 한다. 유신이 막을 내리고 잠깐의 ‘서울의 봄’은 끝이 나고, 광주에서의 비극적인 뉴스를 접하는 영초는 다시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찍어내고 도피와 체포, 수감 생활을 거듭한다.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불행한 삶을 살던 영초는 기자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서명숙과는 달리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캐나다 이민을 가지만, 행복은 잠깐이고 육체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운동권 출신 소수 인사들의 뒤에 가려진 천영초, 그녀의 남편 정문화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불행한 역사를 끌어안고 함께 불행한 삶을 살았다. 모진 고문을 받고 출소 후에 서명숙이 회복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겪은 아픔 역시 그들의 가족들의 겪었을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감옥 간 것보다 돌아온 뒤가 더 힘들었저. 감옥은 겅해도 언젠간 나오겠지 하는 희망이라도 있어신디, 정작 돌아와보난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부난. 창도 어멍한티 큰소리는 쳤지만 네가 장차 사람 구실 제대로 헐 건가 걱정했주.” (228p)
풀각시 같던 영초언니에게 하는 헌사로 글을 마무리 하며 고대에 글 잘 쓰는 4대 문장가 중의 하나라고 자화자찬하며 웃던 얼굴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선택했고 갔던 그 길에 대한 긍지마저 앗아가지 않기를. 그저 잠시라도 행복했던 시간들만 남기를.
드라마와 관련된 논쟁들을 읽으며, 강경하게 방영중단을 외치는 쪽도, 그들을 비난하는 쪽도 아픈 역사를 품은 우리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논쟁이 있는 것 자체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지닌 역사의식, 세계관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그저 소설일 뿐이야, 영화일 뿐이야, 드라마일 뿐이야 라고 한다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읽을 것이고, 볼 것이기 때문에 의식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작가가 책임질 일이다.
제주에 가면 서명숙이 만들었다는 올레 길을 걷고 싶다. 그녀가 고향에 내려가 치유를 경험한 자연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그 시절 내게 가장 큰 위안을 가져다준 건 고생했다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말없는 자연이었다. 지금은 올레 7코스로 유명한 외돌개 주변의 솔숲은 가장 사랑했던 공간, 오래 머물던 곳이었다.”
(22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