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0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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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새는 '.'의 날개로 난다등의 저서를 남겼던 저항적 언론인이자 민주화운동가인 리영희 선생은 워싱턴포스트에서 근무하던 1960년 일본 도쿄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구입했었다. 구입했던 몇 권의 책들 중 저항적 언론인 리영희의 눈길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이 바로 아리랑(Song of Ariran)이었다. 저항적 언론인 리영희가 그 책에 끌렸던 이유는 바로 아리랑(Ariran)’이라는 반가운 낱말이 눈에 띄어서였지, 책의 내용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당시 조봉암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3.15 부정선거를 저지를 정도로 부정부패하고 타락했던 이승만 정권은 소위 반공(Anti-Communism)’이라는 가치에 맞지 않는 것들을 일체 부정했었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이거나 혁명에 대한 긍정적 색체가 보이면 그것은 빨갱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만큼 반공이라는 가치가 강요되고 우선시 되는(혹은 그 모든 악행들이 합리화 되는) 사회였기에 한국전쟁에 미군 통역장교로 참전했던 리영희가 그 책의 존재를 알기에는 시대사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리영희 선생이 그 책의 존재를 알게 됐던 것이 일본의 수도 도쿄였던 것은 시대사적인 흐름에서 너무나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일본 도쿄에서 아리랑을 구매하게 된 리영희 선생은 그 책을 읽고 감명 받았다. 그 책 안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과 중국혁명에 참가했던 한 혁명가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마오쩌둥에 대한 제1차 사료로 인정받고 있고, 세계를 뒤흔든 열흘카탈로니아 찬가와 더불어 3대 르포문학 작품인 중국의 붉은 별(The Red Star Over China)를 집필한 에드가 스노(Edgar Snow)에게는 옌안지구에서 마오쩌둥을 인터뷰 하던 당시 미국인 아내 한명이 있었다. 스노의 아내는 님 웨일즈(Nym Wales)라는 가명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바로 헬렌 포스터 스노(Helen Foster Snow)였다. 스노의 아내 헬렌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며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로 한 혁명가를 만나 인터뷰 했다. 그녀가 인터뷰한 혁명가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청년이었고, 중국공산당 안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진 인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혁명가였다. 그가 바로 우리에게 김산(Kim San)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장지락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화운동가 리영희 선생은 1960년대 김산이라는 인물에 매료됐었다. 그것이 바로 리영희 선생이 당시로써는 반공주의에 어긋나는 중국 근현대사와 중국 혁명사 연구에 매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2005년에 출간된 아리랑 개정판에는 1991년에 쓴 리영희 선생의 추천 글이 같이 실려 있다. 추천 글에 따르면 그는 중국 혁명을 공부하면서 김산을 떠올렸고, 본인이 직접 총을 쏘고, 굶고, 쫓기고, 고문당하고, 그리고 한 여성과의 뜨거운 사랑도 하는 착각 속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만큼 김산을 포함한 중국 혁명에 참가했던 혁명가들의 생애가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다.

 

내가 김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4년 전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였다. 당시 아버지는 휴학생이었던 나에게 역사를 공부하는 역사학도라면 중국의 붉은 별 저자 에드가 스노의 아내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을 필독서로 읽어야 한다.”고 충고 및 조언을 해줬고, 그렇게 해서 나 또한 김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박근혜 퇴진 집회가 한참이던 2016년 말 나는 사회복무요원(공익)으로 소방서에서 복무하게 됐다. 당시 퇴진 집회가 한참이라 매주 토요일 마다 열심히 나가 집회에 참가했었다. 이와 동시에 나는 소방서에서 복무하면서 체게바라 평전,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공산당 선언 등 닥치는 대로 사회과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24개월 동안 복무하면서 내가 읽게 된 책은 점차 쌓여갔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리영희 선생이 젊은 시절에 읽었던 님 웨일즈의 아리랑도 있었다.

 

내가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을 읽은 것은 2017년이었다. 당시 나는 3교대로 근무하며 1주 주간 그리고 2주는 야간근무를 하며 구급출동에 나갔었는데, 새벽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걸리는 구급출동과 그 과정에서 보게 되는 가난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의 아픔 및 고통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생애가 감동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던 것 같다. 따라서 난 그때 당시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한 인간으로써 추구했던 사상과 혁명을 위해 실천했던 그들의 행동과 역사에 감동받았었다. 당연히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 또한 그런 감동을 나에게 주었고, 그의 남편 스노가 집필한 중국의 붉은 별 또한 그러했다.

 

COVID-19로 인해 발목이 잡힌 요즘 나는 김산이 일대기를 다룬 책을 다시 펼쳤다. 바로 이원규 작가가 2006년에 집필한 김산 평전이다. 이번에 읽게 된 이원규 작가의 김산 평전은 나에게 과거 리영희 선생이 아리랑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나 또한 경험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책에서 나온 혁명가 김산을 읽으며 직접 혁명현장에서 총을 쏘는 느낌이었고, 국민당군에게 추적당하며 굶고 쫓기기는 느낌을 받았으며, 일제 형사들에게 고문당하는 기분도 들었고, 그리고 한 여성과의 뜨거운 사랑도 하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흥미진진했고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다.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김산은 투쟁적인 삶을 살았다. 러일전쟁이 한참이던 1905년에 태어난 김산은 15살의 나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여했으며, 그 대가로 4일간 구금되고 학교에서 제적당했었다. 이후 작은형의 도움을 받아 일본 도쿄에서 살던 김산은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의 민족해방에 대한 노력에 감명받아 모스크바로 유학가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주에 있는 이회영 소유인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이 만든 의열단에도 가입했고, 1923년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했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북경에서 의대를 다니며 의학을 전공하기도 했었다.

 

1926년 국민당의 지도자 장제스가 4.12 쿠데타를 일으켜 제1차 국공합작을 깨고 공산당원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하자, 1927년과 1928년 그 또한 광주코뮌과 하이루펑 소비에트에서 국민당군에 맞서 힘든 전투를 치렀다. 1929년 초에 다시 베이징으로 가서 공산당 지하투쟁에 참가했으며, 국민당측에게 체포되어 일본측에게 넘겨진 뒤 혹독한 고문을 받았었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도 그는 베이징에서 학생과 노동자 시위를 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경찰에게 체포됐다가 석방되고 난 이후 다른 공산당 동지들로부터 밀정으로 의심받기도 했었고, 1931년엔 공산당에서 제명당했다.

 

1932년 김산은 사노 마나부의 포이어 바흐, 마르크스·레닌의 일생을 번역하였고, 그해 8월 중국 공산당 하북성위원회가 주도했던 무장봉기에 참여하였다. 봉기가 실패로 끝난 뒤 맹목적 봉기를 비판하는 의견서를 냈다가 트로츠키파로 몰리기도 했었다. 이후 그는 장제스가 만든 반공조직 남의사에 의해 체포되어 일본측에게 넘겨졌고, 19337월에 고국으로 압송되기도 했지만, 8월에 석방됐다. 193512월 그는 북경 남쪽 도시 석가장에서 청년학생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대장정 이후 중국공산당이 발표한 8.1선언을 지지하는 시위를 이끌기도 했으며, 1936년 서안사변 이후 홍군이 거점지로 주둔하고 있는 연안으로 갔다. 그 다음해인 1937년 에드가 스노의 아내 헬렌 포스터 스노 즉 님 웨일즈를 만났고, 그와의 기나긴 인터뷰를 함으로써 헬렌이 자신의 전기 아리랑을 집필하게 만들었다. 중일전쟁이 개시 된 이후 홍군에서 소위 일제첩자 밑 반혁명파 그리고 트로츠키파 숙청이 일어나면서 그 또한 캉성(Kang Sheng)에 의해 트로츠키파 내지는 일본첩자로 몰려 처형된다. 19381019일 그는 중국 당국에 의해 총살당했고,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스노의 아내였던 헬렌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1년에 김산 전기인 아리랑을 출간하여 생전에 김산과 약속했던 일을 지켰다. 하지만 이 책도 헬렌의 남편 스노가 그랬듯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면서 이 책도 탄압을 받았다. 1934년 그와 결혼했던 조아평은 그의 아들을 낳았다. 그의 아들 고영광은 1978년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에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심의를 공식 요청했고, 이 요청은 1981년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에 의해 심사에 들어갔으며, 19831월 중국공산당은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김산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었. 당시 중국공산당이 내린 결론은 결정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결정문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결정문은 맨 밑에 있다.)

    

처형된 지 45년 만에 복권된 독립운동가 김산은 2005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혁명가적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비록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김산은 한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혁명에 몸바친 혁명가였다. 그 또한 일제시절 다른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여러 투쟁 활동들을 전개했다. 그랬던 김산이었기에 1937년 그를 만났던 헬렌도 그에게 매료되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에 읽은 김산 평전은 또 다른 점에서 김산을 알 수 있었다. 헬렌이 아리랑을 집필하면서 국민당의 감시와 검열을 피해 의도적으로 틀리게한 서술들과 인터뷰 과정에서 놓쳤던 일부 얘기들이다. 이원규 작가의 김산 평전은 이런 세세한 부분들을 바로잡아줘서 혹시나 잘못알고 있게 될 얘기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헬렌이 집필한 아리랑 그 자체의 의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김산 평전에서 읽은 혁명가 김산의 생애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3년 전 아리랑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이번에 더 많이 와 닿았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가 책을 읽으며 과거 리영희 선생이 느꼈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반공주의적 편견과 오만감에 빠져있는 이들은 김산을 그저 빨갱이로 판단하는 저열한 인식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들이 심장이 뜨겁지 않은 냉혈한이라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일제 시절 조선의 독립과 중국 혁명을 위해 싸웠던 그의 뜨겁고 열정적인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고, 혁명가 김산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왜 불의에 투쟁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더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장명 동지는 김산, 유청화, 이철암, 한국유, 유한평 외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조선인으로 1905년생이다. 20년대에 중국에 와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27년 광주폭동에 참가하였다. 1930년대 장은 우리 지하당의 북경시위 조직부장 재임시 체포되어 조선으로 보내졌다. 몇 달 뒤 장은 다시 북경에 왔으나 1933년 5월 1일 체포되어 다시 조선으로 보내졌다. 1934년 장은 도 북경에 왔다. 이 기간에 우리 지하당은 그를 트로츠키파나 일번의 특무로 의심하고 그를 조직과의 관계에서 회복시키지 않았다. 1936년 우리 북방국은 그를 연안으로 가도록 소개하였다. 1938년 우리 섬감녕변구 보안처는 그에 대하여 조사를 실시하고 일본 특무에 준하여 처리하였다.

1. 체포에 관한 문제

여러 차례의 조사에 의하면 장명은 1930년 12월 9일 체포되어 심문 중 시위원회 조직부장임을 강력히 부인하고 자기는 조선독립당 사람으로 공산당은 동정하나 중국국적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뒤에 증거 부족으로 조선으로 인도되었으며 3년간 중국 입국을 금하는 처분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장명은 비밀리에 중국에 욌으나 1933년 5월 1일 다시 체포되었다. 장은 이번 체포뒤 태도를 바꾸고 ‘나의 고백’이라는 것을 써서 광서인으로 1935년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현재의 공산당 정책결정이 절대로 중국의 정치와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어떤 정당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표현하고 공산당의 맹목적 정책과 국민당의 대일본 무저항주의 및 대내의 군벌 혼전 국면을 반대하였다.


2. 트로츠키파 가입에 관한 문제

장명의 트로츠키파 참여 여부의 문제는 우리 섬감녕변구 보안처 조사 시에 인정하지 않았다. 1933년 5월 1일 재차 체포 뒤 역적 장문운이 적에게 장명이 트로츠키파라고 진술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 뒤 장명은 트로츠키파 마계강, 양수이 등과 왕래한 적이 있음이 밝혀졌다. 양수이는 장은 단지 그들에게 일본 글을 가르쳤을 뿐, 정치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였다. 현재 조사된 트로츠키파 인원과 관련 자료에 모두 장명의 트로츠키파 참가를 증명하는 자료는 없다. 이와 같은 근거로 보건대 장명의 트로츠키파 참여는 부정할 수밖에 없다.

3. 일본 특무 참가에 관한 문제

1938년 우리 섬감녕변구 보안처는 장명의 일본 특무참가 문제를 조사하였다. 당시 보안처 보고에 의하면 ‘이 범인은 일본의 특무로 마땅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되어 있고, 강생은 ‘위원회 결정에 따라 비밀리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장명의 일본 특무 참가 여부 문제는 장이 두 차례의 체포에서 볼 때 당 조직의 문제를 누설하지 않았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장은 중국에 돌아온 뒤 1931년부터 1936년꺼자 6년간 적극적으로 당과 관계를 가지려 했다. 그는 북경 지하당의 조직부장으로서 많은 기층 조직 상황을 이해했으며, 우리의 많은 지하당 책임자와 당원을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당원과 발전된 관계를 유지하여 그가 연안에 가기 전까지 당의 조직에 손해를 입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 기간 국민당 북경시 공안국과 일본의 주 북경경찰서에 수사 체포된 적이 있다. 이런 설명은 장명이 일본의 특무라는 것에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상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장명 동지는 체포된 뒤 당에 불리한 말을 하였다. 그러나 당의 조직과 기밀은 누설하지 않았다. 트로츠키파 참여와 일본 특무 문제는 증거가 없으므로 마땅히 부정되어야 한다. 장명 동지의 피살은 특정한 역사 조건에서 발생한 억울한 사건으로 마땅히 정정되어야 한다. 장명 동지의 당에 대한 충성은 우리나라 인민의 혁명사업에 공헌이 있으므로 그가 장기간 받았던 억울한 누명을 마땅히 깨끗이 씻어주고 명예를 회복해주며 그의 당적을 회복시키는 바이다.

1983년 1월 27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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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실행했다고 알려진 세균전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부대와 지방 항공 감시소들의 보고에 의하면 북한 169개 지역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곤충들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15개 지역에 대한 전문가의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그곳들에서 발견된 곤충이 1952128일과 312일 사이에 확증되었다. 많은 경우에서 특별한 종류의 파리, 벼룩, 거미 딱정벌레, 빈대, 귀뚜라미, 모기와 기타 곤충들이 발견되었으며, 그 대부분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이었다. 곤충들은 많은 경우,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예컨대 눈 위와 강의 얼음 위, 그리고 풀과 돌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일반적으로 곤충이 나올 수 없는 대단히 낮은 기온을 고려할 때, 또한 그 곤충들이 왕왕 한 장소에서 같이 발견할 수 없는 파리, 거미와 같은 각양각색의 곤충들로 구성된 집단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곤충들이 나타난 것은 의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전문조사 결과 곤충들이 병균에 감염되어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곤충들은 인공적으로 배양된 것으로 생각된다.

 

1952223일 평안남도 평원군에서는 산 위에 파리와 생선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생선들은 거의 썩어 있었으며 콜레라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 생선들은 산 위에 잘못 투하된 것으로 생각된다. 발견된 세균 종류는 급성 콜레라, 파스토르, 페스트, 에비텔라, 리브스, 바칠루스, 파라브스등이었다.

 

파리는 토종의 한국 파리와는 다른 이상한 것들이었다. 발견된 파리는 날개가 길었으며 조금 벌어져 있었다. 몸집은 큰 편이었으며, 머리는 토종 파리의 그것보다 비교적 큰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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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9-02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피해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한국 전쟁 당시의 생화학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여러 의미에서 ‘잊혀진 전쟁‘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NamGiKim 2020-09-02 14:33   좋아요 1 | URL
괜히 브루스 커밍스가 Forgotten War 라고 한 것은 아니겠죠.

독서가 한량 심씨 2020-09-02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치산소설 보면 재귀열이란 병이 돌아 전력을 많이 잃어버리는데...바로 세균전이군요.

NamGiKim 2020-09-02 14:34   좋아요 0 | URL
영화 남부군(빨치산 출신 이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을 보면 재귀열로 고생했다는게 나오죠.
 
현장과 광장 2020.5
현장과 광장 편집부 지음 / 현장과광장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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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올해 7월에 노동전선 단체 전선지에 실린 필자의 서평입니다.)

2020년인 올해는 미국과 이란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COVID-19라 불리는 질병이 창궐하는 속에서 우리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많은 문제와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경제공황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고, 우리사회의 마비시키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생물학 질병은 백신이 나오지 않았기에, 어느 한 구역에서 전파되면 그 구역을 전면 봉쇄하고 사람들까지 격리시키는 조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와 마비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 노동전선에서 발행한 아주 좋은 책을 읽게 됐다. 바로 ‘현장과 광장 2호’다. ‘현장과 광장’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여러 사람들의 글을 다양한 주제로 묶은 이 책을 통해 과학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것이었다. 박하순 선생의 ‘코로나 공황’과 노동자운동의 대응과 손미아 선생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대유행을 통해 본 자본주의 모순과 대안이라는 두 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자본주의의 문제는 참으로 잘 분석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타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서 항공기는 계류장에 멈춰서 있고, 관광객들을 받던 호텔은 사람들이 오지 않으며, 올해 국내에서 계획된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량의 실업자 발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움직이는 행위를 평소보다 줄이게 되니 아마존(amazon)과 같은 인터넷 운송 및 배달 사이트들은 추가적으로 채용하는 일이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 3~4월 기준으로 최소 4주 동안 2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민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즉 자본주의는 질병뿐만 아니라 인민대중의 직장을 보호하기 보단 기업의 이윤을 보다 더 우선시하는 체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나온 고희림 시인의 ‘돈으로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시는 참으로 가슴이 아픈 시였다. 노동이라는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와서 저임금 고착취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비유되는 네팔에서 온 테즈 바하두르 구릉씨나 처빌 랄 차우다리씨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현장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갈취’ 따위의 저급한 시각이 대다수를 차지할 뿐이다. 역지사지라 했다. 우리는 여기서 과거 해외로 가서 저임금 고착취를 당하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나가던 한국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노동은 누군가는 회피하는 행위이지만,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소위 히틀러의 나치즘이 강요하던 시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저개발 국가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고착취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착취함으로써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19세기 고도의 자본주의를 발달시켜 식민지에다 값싼 원료를 팔아 경제를 부흥시킨 제국주의 국가를 연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즉 자본주의 사회 또한 그런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주제 중 하나는 ‘페미니즘(Feminism)’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경우 현재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이슈가 되면서 쉽게 판단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이것이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이나, 성폭행, 미투운동 등이 얘기가 나오면서 쉽게 얘기하기가 힘든 주제였던 것 같다. 노동전선의 천연옥 선생이 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은 여성해방과 현재의 페미니즘이 어떠한 차이가 있고, 과거 여성 해방운동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그리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까지 그들의 주장과 생애를 통해, 현재 남성의 생물학적인 영역으로만 주로 비판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노동계급과 남성노동계급의 연대와 자본주의 철폐투쟁을 외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여성해방론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2019년 11월 기준으로 ‘남녀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보면 남자 노동자 임금이 100이면, 여자 노동자 임금이 70.7%,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100이면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62.9%, 남자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남자 비정규직 임금이 62.1%, 여자 정규직 임금이 74.1%면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52.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단결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해방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의 기원이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 남성의 지배가 아닌, 사적소유의 발생·발전에 따른 사회의 경제적 관계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철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아무튼 이 글을 통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을 얘기하자면, 송필경 선생의 ‘쿠바와 체 게바라’다. 2년 전 글쓴이가 쿠바 여행을 통해 본 쿠바 사회는 비록 가난하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사회다. 수백 년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배와 수십년간의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 지배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복지를 달성한 쿠바사회는 소위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유럽이 해내지 못한 것들을 비록 미약하지만 달성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국제주의라는 사상으로 무장한 쿠바의 의사들은 단순히 자본에 혹한 의사가 아닌 인류애적 혹은 의사적 사명을 가지고 인민의 아픔을 치료하는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쿠바가 미제국의 극심한 경제 고립을 겪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키고 실행해온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는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점에서 시사해주는 부분이 많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백철현 선생의 ‘무정부주의의 정치적 본질과 이 본질로부터 나오는 반혁명적 특성들’이나 김성구 선생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부분에서도 책을 통해 학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얻어야할 결론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한 사회를 이룩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맹아나 다름없는 미국은 현재 열악한 대중의료로 인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확진자가 올해 3~4월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 200만 명을 돌파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망자도 급증하여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미국인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거기다 이런 전 세계적 위기속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라는 문제도 겹처 수많은 유색인종들과 양심 있는 미국인들의 반발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회의 문제들을 야기하고 확산 그리고 재생산할 뿐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철폐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고질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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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 친일파와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아버지일 뿐이다

 

이승만그는 총 90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던 1875년 조선 후기에 태어나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을 감행하던 1965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사망했다이승만은 독립운동 시절부터 1960년 대통령 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무수히 많은 과오를 저질렀다.

(이승만 동상, 2010년대에 이승만을 맹신하는 광신도 집단이 기어이 동상을 만들어 놓았다.)

 

1907년 장인환 전명운 열사가 단행한 스티븐슨 처단 사건의 변호를 교민들로부터 부탁받았던 이승만는 기독교 정신따위를 내세우며 이를 거부했다. 1910년대 하와이에서 머물 당시 그는 일본에 적대적인 교육을 하지 않았으며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대신 조선의 통치를 해야한다는 위임통치론를 주장했었다. 1919년 이승만은 기호파의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총령자리에 오른 그는 임시정부 분열의 상징이었으며, 1925년 탄핵 당했다그리고 그는 자신의 돈줄을 위해선 살인과 협박 폭력도 일삼았으며독립운동 자금을 횡령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1932년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가 단행한 이봉창 윤봉길 의거에 대해서 이승만은 주제넘게 망발을 했으며미국에게 빌붙어 활동했던 것 외에는 사실상 독립운동사에서 한 것이 없었다이승만은 1920년대부터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혐오했다자신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미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맹신적으로 따른 것이다그의 극단적이고 폭력과 증오가 점철된 반공주의적 성향은 해방 이후 그가 친일세력과 결탁하며 민중을 대상으로 했던 온갖 폭력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이승만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후 한반도 분단이라는 비극의 씨앗을 심어놓았으며대구 10.1 항쟁제주 4.3 항쟁여순민중항쟁 그리고 한국전쟁에서의 국민보도연맹학살에서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다.

(이승만을 찬양하는 유튜브 방송, 뉴라이트를 포함한 이들은 지금도 대대적으로 그를 미화하는 영상을 양산 및 재생산 해내고 있다.)

 

이승만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모자를 것이 없는 광란의 학살자였다한국전쟁 초기 국민보도연맹 학살로만 죽은 민간인이 최소 30만 명을 넘어섰으며전쟁 중 청년단과 군경의 보복으로 일어난 민간인 학살까지 합치면 최대 100만 명까지 추산하기도 한다이런 광란의 학살극은 이승만이 항상 내세웠던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합리화 됐고이승만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죄책감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를 배신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을 더 증오했다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애국자로 생각했고사회주의자들을 민족반역자로 생각했다따라서 그의 사회에선 과거 사회주의자였던 조봉암은 간첩 내지는 민족반역자로서 생을 마감했지만,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악질친일경찰을 지냈던 노덕술은 애국자로 칭송받았던 것이다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자 이승만이 한반도 이남에 만들어낸 아주 모순적인 구조였다. 1960년 마산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고 사망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바다에 빠뜨려 증거인멸을 시도했던 경찰 책임자도 일제시절 악질친일 경찰이었고조봉암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형장의 이슬로 보낸 판사도 친일경력을 가진 판사였다.

 

대한민국 사회가 친일세력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유에는 그들을 애국자로 둔갑시켰던 이승만이 있다결과적으로 친일파 청산 실패와 광란의 민간인 학살극은 이승만이 주도했다이처럼 이승만의 행적에는 무수히 많은 과오들이 존재한다그러나 아직도 일각에서는 친일파의 아버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 따위의 용어로 미화하고 합리화시킨다이승만을 합리화시키는 이들의 수법은 참으로 집요하고 사악하다이들은 이승만이 생전에 저지른 악행들을 자유민주주의’, ‘반일애국투사’, ‘부자나라 한국 가난한 나라 북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우국충정’, ‘좌익소탕’, ‘공산화 방지’ 따위의 용어로 각색을 하며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운다.

(남한과 북한의 지도, 이러한 지도는 소위 극우들이 남한 우월주의를 내세울때 많이 사용된다. 근데 이 사진은 역으로 한국은 24간 내내 불이켜져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도리어 이게 인민들 건강에 무조건 좋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기는 할까?)

 

정리하자면 뉴라이트를 포함한 친일친미 제국주의자들이 이승만을 내세우는 데에 가장 큰 논리의 핵심에는 경제가 있다즉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추구했던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였기에 부유한 나라가 됐고반면 이승만이 싫어하던 공산주의 나라 북한은 사회주의를 선택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됐으며세계최악의 빈곤국이 되었다는 논리 말이다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했을 때과거 1960년대나 70년대와는 달리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을 훨씬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이 남한사회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증거로는 자리매김할 수는 없다그리고 북한이 못산다고 해서 실패한 국가라 보는 것도 지극히 우월주의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19세기 서구열강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듯이 말이다어떻게 보자면 제국주의 논리의 판박이다.

 

추가적으로 얘기하자면 현재 한국사회가 코로나 상황에서도 재난지원금이나 무상에 가까운 코로나 관련 진료를 하는 것은 절대 이승만이 추구했던 사상이 아니다아니 오히려 이것은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사회주의적인 복지원리를 일부분 받아들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즉 이승만의 자유주의적 사상대로 하자면 현재 우리는 코로나 시국에서도 자비로 치료받고돈 없으면 병 걸려 죽어 마땅하다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다이승만식 자유주의 논리라면 재난지원금도 받아선 안 된다그런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거니까하지만 현재 재난지원금을 안 받거나 코로나 걸렸을 때코로나 무상진료 자체를 거부하는 뉴라이트 세력들은 거의 없다이것만 보더라도 이승만식 자유주의 사상이 얼마나 끔찍한 사상인지 알 수 있다.

 

뉴라이트 세력들이 이승만을 치켜세우며 소위 경제의 논리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정통성이라는 문제가 있다왜냐하면 이승만 정권 자체가 북한과는 달리 친일파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정권이었기 때문이다따라서 현재 북한은 근현대사를 얘기할 때 자신들의 항일 정통성을 얘기하는 반면남한의 뉴라이트 세력들은 경제와 자본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것이다이들이 내세우는 경제적 논리는 매우 천박한 논리이다경제력은 그 나라가 얼마나 돈이 더 많은지를 보여주는 증거일 뿐그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그리고 이런 경제적 논리 자체는 제국주의에 긍정적인 뉴라이트들이 가지고 있는 아제국주의적 요소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관련 여론조사, 충격적이게도 찬성이 64%나 나왔다. 참고로 이승만도 해외 파병을 좋아했다. 그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영국과 미제국의 수에즈 운하 폭격때 군대 파병을 얘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신처럼 모셔 받드는 뉴라이트들은 미국하면 껌뻑 죽는다마치 이승만이 미국하면 모셔 받들었듯이 말이다이들에게 있어 미국은 단순히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구해준 구원의 나라다그래서 마치 기독교 신자가 예수를 맹신적으로 떠받들 듯이 그들 또한 미국을 맹신적으로 떠받든다이들에게 있어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사탄에 가까운 빨갱이고 좌익분자일 뿐이다즉 미국은 비판해서는 안 될 신성한 영역에 가까운 것이다그래서 현재 뉴라이트들은 올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때, “이란 파병 적극지지” 따위의 집회를 열었고이란 전쟁 반대 집회를 종북 빨갱이로 몰아갔다이들이 미국을 이렇게 까지 떠받드는 것은 그만큼 이승만의 사상과 정신을 신봉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얼굴의 이승만, 친일인명사전으로 유명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이승만의 진실을 아주 낱낱이 잘 파해친 영상이고, 많은이들에게 시청을 권하는 명작이다.)


(독부 이승만 평전,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선생이 집필한 평전이다. 이 책 또한 이승만의 진실을 아주 낱낱이 파해쳤고,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썼다. 많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이처럼 이승만은 친일파와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아버지일 뿐이다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 친일파의 아버지였으며신제국주의 미국을 신봉하는 친미제국주의자들의 아버지였을 뿐이다해방 이후 미국과 결탁하여 친일세력을 등용하고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던 이승만의 후예가 바로 뉴라이트와 같은 극우세력들이다이번에 이승만 악행사를 연재했던 이유는 이들이 추종하는 이승만의 실체를 낱낱이 알리기 위함이었다이승만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무수히 많은 그의 악행들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2018년 독재자이자 파시스트인 프랑코의 묘가 파였듯이이승만 또한 후세대에게 그런 준엄한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이제 이승만 악행사의 연재를 마치도록 하겠다.

 

그 동안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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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0-08-29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어요!! ^^

NamGiKim 2020-08-29 17:3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조만간 다른 주제를 연재시리즈로 올릴 생각입니다.^-^

미미 2020-08-29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기대되네요! 많이써주세요^^👍

막시무스 2020-08-29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꾸준하게 하나의 주제로 밀고 나가시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음 주제도 기대 잔뜩할께요!ㅎ

NamGiKim 2020-08-29 23: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음주제는 천천히 결정하겠습니다. 사실 연재하는게 쉽진 않아요. ㅎ

행인96 2020-09-02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간 고생많으셨습니다 :)

NamGiKim 2020-09-02 22: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다른 주제를 연재할 겁니다.ㅎ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종북좌파? 와 우방 미국을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이란에 파병하는 종북좌파가 이세상에 어디있냐? 그 세 사람에게 종북좌파라 하는거는 그냥 논리고 뭐시기도 없는 매카시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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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0-08-2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리고 영화 강철비2에서도 스무트한테 아부하는거 봐봐. 이게 한국 대통령의 본 모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