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만화작가 이원복이 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당시 이원복이 쓴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드 편을 재밌게 읽었었는데, 당시 책에 등장한 동독의 이미지는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동독은 항상 서독에 비해 무언가 부족한 나라였다. 베를린 장벽을 넘어 자유를 찾아 나서는 동독인들의 모습과 소비재 부족으로 인해 서독 관광객으로부터 생필품을 갈취하는 동독 경찰의 모습이 만화에서 묘사됐다. 그리고 동독이라는 나라는 자유가 억압당하며, 공산당 독재자들이 통치하는 뭐 그런 나라로만 보였다. 이것이 단순히 이원복이 쓴 만화책의 문제만은 아니다. 2018년 독일에서 개봉한 영화 ‘벌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동독 체제에 불만을 가진 가족이 서독으로 도망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통일하면 독일식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동독에 대해 이런 식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동독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시각이다. 동독이 세운 업적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탈나치화(De-Nazification) 문제를 보면 그렇다. 동독사 연구자인 카트야 호이어에 따르면, 서독은 나치 출신을 공직계·교육계·문화계, 심지어 경찰 조직에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독일민주공화국은 반파시즘을 기본 신조로 유지했다. 소련 군정 하에서의 동부 독일과 동독 정부는 미군정 하에서의 서부 독일과 서독 정부에 비해 훨씬 광범위한 탈나치화 과정을 거쳤다. 심지어 경제에 타격이 있어도 그 과정을 거쳤는데, 공학자와 경찰이 사라진 자리는 미숙하더라도 이념적으로 문제가 덜한 사람들로 채웠다.


독일의 경제 또한 그렇다. 물론 동독이 서독 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 해서 못사는 나라는 절대 아니었다. 1990년 기준 당시 서독과 동독의 1인당 GDP를 비교해보면 그렇다. 당시 서독의 1인당 GDP는 15,300 달러였고, 동독은 9,679 달러였다. 당시 소련이 대략 9,100~9,200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동독의 경제력은 결코 낙후되지 않았었다. 물론 이원복 또한 동독이 전후재건에 성공하여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 비교적 잘 살았다는 점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문제는 ‘사회주의=가난’이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데에 있다. 사회주의 국가하면 무조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동독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굶주렸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동독의 지도자에 대해서도 ‘독재자’ 혹은 ‘권력가’라는 단어로만 해석한다. 소위 한국에서 민주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 또한, 현실 사회주의권 지도자나 제3세계 지도자를 보면 항상 그 수식어로만 보는 경향이 크며,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처럼 독재한 사람일 뿐이다.”는 매우 지엽적인 편견에 빠져있다. 구사회주의권 지도자들이 이른바 ‘서기장’이나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했다는 점을 들어 그저 장기집권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독재자라고 단순무식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이나 한국처럼 4년이나 5년에 한번 씩 대통령을 선출해야만 민주주의라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빠져있기도 하다.


물론 1당 독재도 엄밀히 말해서 독재는 맞다. 그러나 그 독재의 성격이 어떠한지는 전혀 보지 않는 것이다. 정말 이 체제가 무슨 우리가 생각하는 인민을 대량 학살한 체제인지 박정희 정권처럼 치마 길이까지 검열하는 체제였는지, 경찰의 공권력이 삼청교육대를 운영하던 시절 대한민국 만큼이었는지를 진지하게 분석조차 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리비아를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해 독재자 혹은 망나니라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카다피의 정치통치 방식인 자마히리야의 적용을 보면, 소위 서구가 주장하는 민주화(라고 쓰고 색깔혁명 혹은 폭동이라 읽는다.) 이후보다 선거제도와 지방자치제도가 자리 잡혔었다. 자미히리야(인민의회) 의원 중에서도 상당수가 여성과 소수민족이었던 만큼 지역간 갈등 완화나 소수자 인권 보호에도 꽤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한국의 이승만 독재나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 이렇게 존재한다. 이런 리비아가 “과연 박정희나 전두환 보다 비민주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폭압적인 독재통치라고 말 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선 거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도 이러한 접근이 과거에 존재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도 필요하다. 즉, 단순히 지도자가 1당독재를 했다고 해서 1인체제를 유지했다고 해서, 소위 미국이라는 세력의 우산 아래 있던 친미 성향의 자본주의적 독재자와 같은 선상에서만 놓고 보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동독의 경우도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하면, 억압·자유의 부재·검열·통제·생필품 결핍 등 절대 긍정적일 수 없는 요소들만 생각하지만, 동독의 사회를 들어다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서 리비아의 사례와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의 그것과 단순히 비교해서 “독재 통치일 뿐이다.”는 식의 관점도 어찌 보면 단순도식화다.


따라서 에리히 호네커에 대한 분석도 단순히 독재자라는 식의 관점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본다. 호네커 시절 동독 사회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호네커 시절 동독은 나름 청소년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서방의 의류 등을 수입했고, 음악에 대해서도 풀어주며 서독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서독 문화가 크게 금지됐던 것고 아니고, 정부의 일부 정책에 반하는 행동이 전면적으로 금지가 됐던 것은 아니다. 다만 체제 전복을 목적으로 삼는 행위는 금지가 됐는데, 이것은 소위 자본주의 국가들도 같은 선상에서 막는 부분이다. 참고로 에리히 호네커의 전임자인 발터 울브리히트의 경우도 서구의 시각에선 동독의 독재자로 규정받는데, 울브리히트는 1971년 수상직에서 사임했다. 이것이 무슨 이승만처럼 4.19 혁명과 같은 일로 사임한 것인가를 묻는다면 전혀 아니었다. 


호네커 시절의 동독은 여성인권에 있어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이는 동독의 여성 취업자 수치를 보면 명확하다. 동독의 여성 취업자 수는 1989년 기준 130여만 명으로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나 비생산 영역에선 여성 취업률이 1950년대 50% 수준, 1960년대 60% 수준, 그리고 1970년대 이후 70% 수준을 넘어가면서 남녀 동등한 비율의 취업률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고용률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독 사회의 여성 고용률을 살펴보면, 괄목할만한 변화를 알 수 있다. 동독이 탄생했던 1949년 전체 취업인구 731만 3,000명 중 여성이 298만 9,000명으로 40.9%를 차지했으며, 취업인구에서 차지하는 남녀 비율은 60:40이었다. 이러한 비율은 1970년대 말에 들어 여성 비율이 50%를 넘기면서 남녀 간 완전한 고용평등을 달성했다. 비록 1980대를 거치며 하락하여 1989년에는 40% 수준에 머물렀지만, 여성 고용률 50% 달성은 비생산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1949년 비생산 영역 취업활동 인구 90여만 명 중 여성이 54만 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1949년부터 1989년까지 비생산 영역 취업인구는 180여만 명으로 두 배 정도 증가했다. 즉, 이런 나라가 어떻게 해서 박정희 시절 훅은 전두환 시절의 독재정권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될 수 있는지 심히 의심이 든다.


즉, 이와 같은 변화가 에리히 호네커 시절 동독에서 있었다. 노동 시간에서도 선진적이었다. 이해영이 집필한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에 따르면, 동독에서는 근로자의 약 75%는 1주에 43.75시간을 근무했고, 16세 미만의 청소년과 임산부의 경우, 야간작업이 금지되었으며 6세 미만의 자녀를 가진 여성과 돌보아야 할 식구를 거느린 근로자는 야간작업을 거부할 수 있었다.시간 외 근무는 예외적인 경우, 노동자위원회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며, 연간 20~26일의 휴가를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동독의 경우 노동의 권리(Recht auf Arbeit)는 인간 기본권으로써 헌법으로 보장받았다. 그러니까, 근로기준법 조차도 없었고, 노동자를 굴리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으며, 민주화 된 이후에도 주 120시간 노동을 지껄이는 윤석열이 집권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무작정 독재자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은 앞서 언급한 것들을 전혀 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네커는 단순히 군사독재에 복무한 사람이거나, 과거 나치에 협력하며 민족반역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에리히 호네커는 열렬한 사회주의 혁명가였고 투사였다. 1920년대 독일 공산당에서 활동했으며, 1930년대 국제레닌대학교에서 유학하며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을 하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나치 독일 치하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1935년 투옥되어 1945년 소련군에 의해 독일이 해방될 때까지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쉽게 말해,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저항한 열렬한 혁명가였던 것이다. 도데체 어떻게 해서 호네커라는 인물이 이승만이나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과 같은 이들과 동일선상의 독재자 프레임으로 엮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까지 “에리히 호네커를 단순히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이 왜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한국 사람들은 사회주의 지도자에 대해 단순히 자유주의적 관점에 따라 독재자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의 독재를 생각하며 같은 선상에 일단 놓고 보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렇게 했을 시 생기는 오류가 분명히 있다. 따라서 나는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이런 관점이 진지하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 따라 억압의 강도가 강할 수 도 있고, 약할 수도 있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니 자본주의 국가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면, 사회주의 국가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리히 호네커를 단순히 ‘동독의 독재자’ 프레임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가 존재하는 것이다. 에리히 호네커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선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에 다뤄볼 예정이다.


참고문헌


이해영,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푸른숲, 2000.

정재훈·박수지, 『동독 사회보장제도: 역사와 변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카트야 호이어, 송예슬 옮김, 『장벽너머 -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 서해문집, 2024.

Honecker Erich, From My Life, Pergamon Press, 1981.

Murphy Austin, The Triumph of Evil: The Reality of the U.S. Cold War Victory, European Press Academic Publishing,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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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1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리히 호네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따지고 보면 한국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낡아빠진 ‘반공주의‘ 사상이 낳은 산물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우리 머릿속에 ‘사회주의 국가‘하면 ‘가난하다‘, ‘억압적 통치가 이루어진다‘라는 의식이 너무 뿌리깊게 (반공주의에 찌든 나머지) 박혀있지만, 사회주의 국가 중에도 동독과 같이 잘 사는 국가도 존재했고, 자본주의 국가 중에 가난한 나라들(과테말라, 필리핀...)도 꽤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