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글쓴이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전황과 여러 사건들을 지켜봐왔다. 전쟁 초기,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전면적인 침공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또한, 침공을 하더라도 친러 계열 주민들이 많은 돈바스 쪽으로만 갈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전쟁은 시작됐고 러시아군은 동부뿐만 아니라 벨라루스와 서부에서도 군사작전을 게시했다.
전쟁 초기, 러시아가 수도 키예프를 향해 진격을 하자, 글쓴이는 전쟁이 단기적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예상은 완벽히 빚나갔다. 그 시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보도들은 지극히 우크라이나와 서구 중심적이었기에, 글쓴이 또한 서구의 내러티브에 아주 약간은 흔들렸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초기 보도된 민간인 피해에 대한 편향된 보도들은 사람을 충분히 그렇게 세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흔들림이 완벽히 바뀌게 된 것은 2022년 5월 초에 들은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이 강연을 들으며, 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잘못 생각했는지를 아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전쟁 전부터 스테판 반데라나 OUN 등의 우크라이나 나치즘의 역사를 알고 있었고, 2013년에 발생한 유로마이단 시위가 CIA에 의해 사주 받은 폭동인 것도 알고 있었다. 전쟁 전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인 Ukraine On Fire를 리뷰한 것이 바로 글쓴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언론들이 편파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주류 언론과 다른 주장을 하다가 블로그와 일부 커뮤니티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 어떤 이는 “미국이 이라크 폭격할 때는 그렇게 자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은 이들이 정작 러우전에선 난리를 친다.”고 얘기한 내 글에 대해, “이 정도면 병이다.”라고까지 했었다. 그 외에도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나치들이 홀로코스트와 인종청소를 벌인 역사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가, “너는 푸틴에게 얼마를 받았냐?”는 조리돌림도 당했다. 물론 이런 욕을 무수히 많이 인터넷상에서 들었다.
이야기를 다시 이해영 교수의 강연으로 돌리자면, 이 강연을 통해 글쓴이는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무엇을 목표로한 것이고, 또 어떻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시켰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번 특수군사작전에서 러시아는 키예프를 그렇게 맹폭격한 적이 없다. 미국의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했던 짓을 생각하면 그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무튼, 그 이후부터 이해영 교수의 페이스북 글들을 유심히 보게 됐고, 더 나아가 한설 장군의 글들 그리고 유튜브에서 러우전에 대해 서구의 왜곡을 까는 영상들을 보다 더 많이 시청하게 됐다. MBC 전 보도국장 박상후의 ‘문명개화’나 벨라루스 교민인 최기영 교수가 운영하는 ‘러시아 학당’,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교민인 안정현 씨의 ‘모스누나’ 그리고 재미교포인 스캇 리의 ‘Scott 인간과 자유’ 등도 같이 보게 됐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2022년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게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선 그 이유 중 하나인 2022년 초 돈바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우선 유로마이단부터 얘기하겠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의 사주로 일어난 유로마이단 폭동은 친러 계열 대통령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축출하고, 포로셴코를 집권하게 만들었다. 포로셴코 정부는 마이단 폭동에서 자라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을 키웠고, 이들을 군사화 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무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마이단 폭동으로 집권한 포로셴코 정부는 2014년부터 국가의 예산 지출 방향을 복지로부터 군사력 강화로 바꿨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17억 달러에서 89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2019년에는 GDP의 6%를 차지하는 수준에 달했다. GDP 비율로 비교해보자면 우크라이나는 서방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더 많은 금액을 군대에 투자한 셈이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을 강화했고, 이들을 실전에 투입했다. 2014년부터 친러계열 주민들이 돈바스 지역에서 저항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시작된 것이 돈바스 내전이다.
돈바스 내전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아조프 연대와 같은 네오나치 성향의 민병대들이 존재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정규군이 됐다. 돈바스 내전은 8년간 지속됐고, 이 과정에서 최소 15,000명의 친러 계열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에 의해 학살당했다. 일각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 코미디언 출신인 블라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젤렌스키는 유대계 출신에 할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한 사람이기도 했다. 거기다 돈바스 내전의 종식을 약속하기도 해서, 동부계열 주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젤렌스키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포로셴코보다 더 악랄한 전쟁광이었다.
2021년 2월 젤렌스키는 돈바스 분쟁 지역 근처로 병력과 중화기를 보냈다. 이 병력들은 돈바스를 공격했다. 말 그대로 전쟁 도발행위를 한 것이다. 당시 젤렌스키의 이러한 행동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충돌할 뻔했다. 다만, 러시아가 10만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하고 초강경 대응하겠다고 위협을 했기에, 전면적인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 젤렌스키가 이러한 짓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돈바스에 대한 군사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서우크라이나의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고, 러시아 침략의 희생자로 보이도록 그리고 자신의 나라가 러시아의 대유럽 진출을 저지하는 전선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이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 외교의 핵심이다.
거기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1년 4월 나토 가입이 안 될 경우 핵무장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해 봄 NATO군은 30년 만의 최대 규모로 합동 군사훈련인 디펜더 유럽을 실시했다. 말 그대로 러시아를 자극하기 위한 도발이란 도발은 거의 다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2021년 내내 서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했다는 뉴스를 내보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전체 병력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인 12만 5,000명의 병력을 돈바스 분쟁 구역에 집결시킨 사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2014년 9월에 체결된 민스크 협정에서 양측은 도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은 철저히 깨졌다.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의해서 말이다. 민스크 협정으로 설치된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우크라이나 ‘특수감독 미션’은 돈바스 내 우크라이나와 분리 공화국 사이의 접촉선을 따라 매일 휴전 위반 사항을 기록했는데, 이기록에 따르면 2022년 2월 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이 기록을 보면, 2월 16일 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월 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일 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일 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일 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일 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스위스 정보부 대령 츨순인 자크 보는 이 기록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2월 17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미스터리다. 그러나 OSCE 일일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16일 이후 돈바스 주민에 대한 포격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와 미국의 바이든은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에는 당연히 이러한 점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서방 언론과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2022월 2월 19일 젤렌스키는 “부다페스트의정서보다 나토 조약 제5조가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싶다”라고 선언하면서 핵무장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서 실존적 위협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한국의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그저 러시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괴롭힌다는 내러티브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따라서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하자 서방은 자신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리비아에서 어떠한 짓거리를 했는지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전범 푸틴이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내러티브를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그래서 전쟁 초기 왜곡된 가짜뉴스들과 우크라이나 오신트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퍼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정규군화 한 아조프 포함 네오나치 정규병력들이 “침략자 러시아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수호자”로 미화됐다. 물론 언론은 나치가 있다는 사실을 짧게나마 언급하긴 했다. 그러나 자기들 멋대로 우크라이나의 나치즘과 발트 삼국의 나치즘의 문제를 심각하게 왜곡해서 전달했다.
즉, “이들이 나치에 협력한 건 소련 때문이고, 따라서 지금까지도 일부 극단적인 세력들이 소수로 남아 있으며, 러시아가 프로파간다로 사용한다.”는 내러티브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옹호하는 데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치주의자 스테판 반데라도 옹호했다. 그래서 글쓴이는 전쟁 초기부터 약간은 흔들려도 우크라이나 깃발을 든 반전 평화운동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네러티브는 사실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경찰청이 2018년도에 발표한 것에 의하면 반데라주의 성향 단체가 군소조직 포함하여 3,840여 개 정도로 집계된다고 한다. 이쪽 전문가인 정길선 교수에 따르면, 등록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10,000여개로 추정될 정도다. 말이 반데라주의 성향 단체지 이거 다 네오나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만 500여 개가 넘게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소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며, 몰역사적인 시각이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해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소위 ‘우뽕’들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범죄 국가이며, 따라서 이들에 맞서 서구가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헛소리들을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지지한다며, 우크라이나 반전 집회를 주도한 인사들은 침략했다는 내러티브에 빠져, 어떻게든 이를 우크라이나 민중들과 엮으며 반데라가 들었던 우크라이나 깃발을 잘만 내세운다.
그러나 본문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전쟁을 일으킨 주체는 러시아가 아니라, 포로셴코와 젤렌스키 그리고 미국과 서방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들을 키웠으며,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돈바스를 포격하여 전쟁을 도발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비약을 자주 저지른다. 참으로 웃기고 한심한 이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악마화시키며 서구의 무기 지원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간인 학살이다. 2022년 4월에 발생한 부차 학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