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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아한 위선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
이문영 지음 / 일조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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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서평: 러시아 전공자가 말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나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2022년 2월 24일 이른바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을 개시했다고 주장한 시점부터 2026년 8월 20일 현재까지 이 전쟁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시점(정확히는 대학원에 합격한 시점)이 2022년 6월이었고, 8일 후에 졸업식을 하니, 내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하는 기간보다 더 길게 진행된 것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렇게 보자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내 인생을 결정한 시간 보다도 훨씬 길게 진행됐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된 기간은 결코 짧지가 않다. 20세기의 비극적 서사를 알린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에 시작되어 1918년 11월에 종결됐다. 총 4년 4개월간 진행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에 시작되어 1945년 9월에 끝났지만, 이 기간에 벌어진 독소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분리해서 보자면 놀라운 사실을 찾을 수 있다. 히틀러의 침략으로 시작된 독소전쟁은 1941년 6월에 시작되어 1945년 5월에 종결됐다. 대략 4년 정도 치른 것이다. 태평양 전쟁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하여 1945년 9월에 종결됐다. 총 3년 8개월간 진행된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6.25 전쟁 즉 한국전쟁은 1950년 6월에 시작하여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으로 끝을 맺었다. 이 기간은 3년 1개월 정도 된다.

20세기 역사에서 열전이었던 전쟁을 보면 최소 3년 이상 보통 4년 가까이 전개됐다. 그러나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서 말한 전쟁들보다도 기간이 길다. 전쟁 시작부터 현재까지 총 4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그 나라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영원히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히 반전주의자들의 시각은 아니다. 이문영 교수에 따르면, 2025년 11월 러시아 내에서의 전쟁 지지율은 74%다. 물론 이것을 전쟁 종식 관련 조사를 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데, 2025년 9월 조사 결과 계속 싸우자고 하는 비율이 29%인 반면, 이제 그만 끝내자고 하는 비율은 62%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진 58% 이상이 우크라이나에 땅을 돌려주고 끝내자는 데에는 반대의사를 표명했다.(책 270~271쪽)

이러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보다 “전쟁을 끝내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과 전쟁을 끝내더라도 “현재 러시아가 접수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즉, 현재 러시아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 그 자체에는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 전쟁을 끝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현재 러시아가 20세기의 열전들보다도 더 길게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적잖은 러시아군인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에서 푸틴이 수행하는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는 이토록 전쟁을 길게하는 것이고, 왜 아직까지도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일까? 이번에 내가 읽은 이문영 교수의 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우아한 위선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는 우리가 제대로 잘 알지 못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한 맥락과 사건들에 대해 비교적 적잖은 얘기들을 알려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적인 침공을 하면서 내세웠던 명분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 및 팽창 저지”였다. 저자 이문영은 이 부분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잘못됐지만, 러시아가 정말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위협을 느꼈고 안보 차원에서 불안을 느낄만 했다고 언급한다. 군사적 차원에서만 따져봐도 명백히 그러하다는 것이 이문영 교수의 분석이다. NATO의 동진이 시작된 이래로 루마니아, 폴란드 등 신규 회원국이 미국의 유럽 MD 시스템과 연동된 군사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배치되어 러시아 국경 가까이 이르렀고,푸틴 입장에서 보자면 우크라이나 또한 이미 NATO의 군사기지나 다름없었다.

단적으로 우크라이나가 NATO에 정식 가입해 현재 개발된 군사 인프라가 NATO 기지화되고, 여기에 미국이 개발한 지상 기반 다종타격시스템이 배치될 경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모스크바까지 35분, 탄도미사일은 7~8분, 극초음속 무기는 4~5분이면 충분히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무기의 타격권은 넓게 잡으면 우랄산맥까지 미친다고 한다. 이렇게 보자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큰 위협을 느낄만했다. 실제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러시아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결론 내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 대한 북대서양 동맹의 이미 시작된 군사적 통합, 더 이상의 군사 인프라 확대를 우리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 문제는 우리와 인접한 영토에… 우리에게 적대적인 ‘반(反)러시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 그곳에 완전한 외부 통제 아래 나토 국가들의 군대가 집약적으로 주둔하고, 첨단 무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궁극적으로 이것은 우리의 생사가 걸린 문제, 우리 국민의 역사적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 우리 국가의 존재 자체와 주권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란 말입니다. 수 차례 말했던 바로 그 레드라인이기도 하지요. 그들이 그 선을 넘었습니다.”(책 98쪽)

따라서 정말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와 NATO의 동진 및 팽창은 러시아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즘 문제는 과연 서구의 말대로 과장이고 선전이며 거짓일까? 이 또한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체를 네오나치라고 말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의 네오나치즘 문제는 역사적인 연결 고리가 있고, 우크라이나 내에서 가진 영향력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우선 2022년 전쟁을 개시하며 했던 푸틴의 연설을 한번 들어보자.

“나는 이 점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NATO 회원국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자와 네오나치들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은 크림과 세바스토폴 주민이 러시아와의 통일을 자유로이 선택한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돈바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크림으로 가서 전쟁을 벌인 겁니다. 마치 대조국 전쟁 당시 히틀러의 공범이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패거리들이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을 처벌해 죽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나는 특수군사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책 186쪽)

이와 같은 푸틴의 연설에는 분명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1920년대 결성된 우크라이나 최초의 극우 파시즘 조직인 우크라이나 무장단을 필두로, 이를 계승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기구(OUN)과 그 무장조직 우크라이나 봉기군(UPA)가 대표적이다. OUN의 최고 지도자는 스테판 반데라로 우크라이나 나치즘의 아이콘이며, 1929년 OUN이 채택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의 십계명”은 “대의가 요구한다면 아무리 큰 범죄라도 주저 없이 저질러라”는 7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1941년 9월 29일과 9월 30일 이틀간 키이우(키예프) 인근 바비야르 계곡에서 벌어진 바비야르 학살(Babi Yar Massacre)은 이틀 동안 33,771명의 유대인을 총살한 사건이다. 이 대학살극은 앞서 언급한 반데라 조직 OUN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문영에 따르면, 나치에 협력한 우크라이나 극우의 자발성과 잔혹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예를 들어 민간인 8~15만 명을 학살한 볼린 대학살(Volyn Massacre)은 나치와 무관하게 우크라이나 봉기군(UPA)가 단독으로 저지른 인종청소 만행이었고, 폭력의 수위와 잔혹함은 입에 담기조차 힘든 학살만행이었다.(책 187~189쪽)

즉, 그랬던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가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시점 전후로 우크라이나에 등장했고, 21세기에 현대적 부활 과정을 겪었다. 정확히는 2004년 오렌지 혁명과 2014년 유로마이단에서 그렇게 됐다.(책 189쪽) 특히 2014년 2월 유로마이단 시위는 격해졌는데, 시위를 극한의 폭력으로 격화시킨 주범은 프라비 색토르(우익 색터)와 마이단 자위대였다. 이문영에 따르면, 그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적극 대응한 정도를 넘어서, 무력 충돌을 도발해 갈등을 증폭시켰다. 심지어 위협으로 타협을 무력화했다. 2014년 2월 20일 시위대와 경찰 모두에게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교전은 주변 건물에 은신한 스나이퍼의 총격으로 촉발됐다.(책 198쪽)

충격적이게도, 초기에 발표된 정부 측 진압 경찰과 러시아 특수부대의 소행이 아니었다. 이후 조사 결과 교전을 불러온 최초의 저격은 극우 성향의 마이단 자위대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저격수들은 경찰만이 아니라 자기편인 시위대에게도 총격을 가했으며, 이들의 총격은 경찰이 철수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인 이반 카차노우스키는 이 저격 사건의 진범은 우크라이나 극우라고 결론내렸다. 참고로 그는 볼린 출신 우크라이나인이다.(책 199쪽.) 이문영 교수는 마이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물론 유로마이단 전체를 쿠데타로 볼 수 없고, 당시 시위에 참여한 대다수 시민의 자발성과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1 그 실상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불타는 겨울: 자유를 위한 우크라이나의 싸움 Winter on Fire: Ukraine’s Fight for Freedom>” 속 장면들처럼 마냥 정의롭고 민주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2 사태의 향방을 결정한 것은 다수의 시민이 아니라 위 다큐가 누락한 소수, 즉 극우세력이었다는 점, 3 나아가 마이단에 군집한 이 다수 시민조차 우크라이나 전체로는 국민 절반만을 대표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2014년 3월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로마이단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찬반 비율은 57:38로, 전국적으로지지 여론이 20% 더 높았다. 하지만 동남부의 경우 반대가 65.5%였고, 이 중 49%는 결사반대였다.”(책 200~201쪽)

이후에 등장한 오데사 방화 사건과 마이단과 야누코비치 퇴진에 반대하여 시작된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포로셴코 정부가 격화시킨 돈바스 내전에서 등장한 극우 성향의 아조프 민병대가 이후 우크라이나 군대의 주력 부대가 된 것과 이들이 NATO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급성장한 사실은 우크라이나가 나치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이문영 교수의 말대로 이 아조프 연대는 자신들 상징부터가 나치 친위대 문양이다. 과거 나치 무장 친위대 기갑사단 중 하나인 다스 라이히의 로고를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우크라이나 내의 네오나치 문제는 단순히 러시아의 선전으로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러시아가 이 전쟁을 전개하는 데에는 우크라이나 나치문제만 있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문제가 러시아의 역사와 민족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돈바스 지역 또한 이 맥락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과 전쟁 이후 한러 관계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은 2025년 4월 러시아와 북한이 스스로 인정하면서 사실관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초기 대한민국의 언론 보도는 너무나도 많은 가짜뉴스를 검증없이 보도했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군 파병이 한국에게 병력을 지원받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조작극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빛나간 예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측 왜곡보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으며, 한국 언론들 또한 문제가 많았다. 이문영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북한군 이슈가 가진 폭발성, 남북관계나 동북아 정세, 국익에 미칠 심각한 파장을 고려해야할 한국으로서는 젤렌스키의 주장이나 우크라이나발 정보, 이와 관련한 외신 보도에 최대한 경계와 신중한 확인, 전략적 대응이 필수적이었다. 특히 엄격한 정보 검증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며, 전쟁 정보는 특히 그렇다. 한국 언론은 그렇지 않았다.(중략....) 한국의 주요 언론 모두 예외 없이, 한눈에도 조악하고 선정적인 우크라이나발 정보를 아무 검증없이 앞다퉈 확대 재생산했다. 북한군이 전투에 투입되기 전인 10~11월에도 한국 언론에는 사실상 참전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가 범람했다. 그 결과 아직 전투에 투입도 안 됐는데 북한군 40명, 500명이 전멸했고, 교전한 적도 없는데 우크라이나군이 빼앗은 인공기가 쿠르스크 벌판에 펄럭였으며, 여기에 ‘북한군 인터넷 음란물 중독설’, ‘개고기 통조림’ 같은 가십성 기사들까지 가세했다. 기사 대부분 ‘외신에 따르면’으로 시작해 ‘진위 여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로 마무리됐는데, 이런 관례적인 문구가 검증 책임을 면하게 해줄수 없을뿐더러,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내용이 불러일으킨 이상, 이미 각인된 이미지를 상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책 236쪽)

더 나아가 이문영 교수는 <한겨레>의 자칭 진보 비판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비판적인 분석 대상 기사는 <한겨레 21>의 이재훈 편집장이 쓴 것과 오슬로 대학교의 박노자 교수가 쓴 기사 그리고 한겨레의 길윤형 논설위원이 쓴 기사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괜찮은 분석을 하고 있으니, 궁금하다면 이 서평을 읽는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가장 본질적인 앞 부분만을 인용하겠다.

“사실 북한군 보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전쟁 발발 후 우리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다’, ‘푸틴 정권은 붕괴 직전이다’ 등 북한군 보도와 그리 다를 바 없는 ‘묻지마’ 기사를 쏟아냈다. 이 점에선 보수와 진보 언론 사이 별 차이도 없었고, ‘사실관계를 따져 묻는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한 것은 오히려 진보 쪽이었다.”(책 239쪽)

책의 마지막 부분인 ‘전쟁 이후 한국은?’ 파트는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게 되면서 벌어진 불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한국의 국익이라는 점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많은 부분을 제시해준다. 사실 한국에게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다. 러시아도 한국도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이 부분을 읽는다면 분명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본다. 이문영 교수에 따르면,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30년 넘게 한국 기업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전쟁 전 러시아 자동차 시장 1위, 핸드폰 시장 1위, TV 시장 9년 연속 1위가 모두 한국 기업이었다.”(책 331쪽)

2022년 문재인 정부 말기 한국이 대러제재에 참가하면서 한국은 결과적으로 러시아라는 윈윈할 수 있는 시장을 잃었다. 러시아와의 대결이 한국의 국익 차원에서도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이 시장의 공백을 중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국민의힘과 같은 반중 성향의 정당이 왜 이걸 안 보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중국의 시장 진출을 싫어하는 분들이 말이다. 여전히 러시아는 한국의 삼성 휴대폰을 원한다고 한다. 핸드폰 시장도 삼성이 떠나자 중국 샤오미가 차지하는 중이다. 한국의 보수우익이라는 사람들이 반중을 하며 국익을 생각한다고 떠들지만, 정작 이 부분을 안본다는 점에서 심히 큰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든다. 애초에 정말 국익을 생각한다면, 작년 대선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책임진다는 말이 현재 대통령인 이재명에게서만 나와야 했던 것이 아니라, 국민의 힘인 우익 진영과 다른 진보진영인 민주노동당에서도 나와야 했다.

이 책은 러시아 전문가가 쓴 책이기에 정말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보기에 아쉬운 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문제를 언급하며, 러시아의 용병조직인 바그너 그룹을 언급했는데, 사실 바그너 그룹 네오나치론은 비교하기에는 균형이 맞지가 않다. 바그너 그룹에 네오나치 성향의 인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흑인 대원들도 확인되고 동양인도 확인됐다. 즉, 조직 자체가 네오나치즘을 조직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정말로 러시아 네오나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다면 루사치 그룹을 언급하는 것이 이것 보다는 더 적절했을 것이다. 루사치 그룹은 네오나치 성향을 분명히 가진 조직이다. 물론 이 조직을 가지고 러시아 군대를 네오나치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이 될 수가 없다. 이 조직도 어디까지나 소규모 그룹의 용병이고, 러시아 군대와 사회 전체에 가진 영향력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가 가지는 영향력에 비하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맥락은 국가가 네오나치와 같은 광인 집단을 얼만큼 통제할 역량이 되는가이다. 이 부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네오나치 그룹 탄압을 2000년대 이후 열심히 했던 사실은 많은 자료를 통해 입증이 된다.

그 외에도 토론할 거리는 많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제만 더 언급하겠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주장은 분명 성립하는 명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2024년 8월 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로 진입한 것 또한 관점에 따라서 침공으로 볼 수 있다. 애초에 쿠르스크 공격은 우크라이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거기다 쿠르스크는 1943년 인류 역사상 지상 최대의 탱크전이 나치 독일군과 소련의 붉은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던 역사적인 장소다. 즉, 러시아에게 있어 이 지역은 대조국 전쟁 승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며, 말 그대로 우크라이나의 해당 침공은 러시아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쉽게도 이런 맥락들을 이 책은 다루지 않았다. 적어도 러시아가 어떤 관점인지를 얘기해주는 맥락으로 갔다면, 북한의 참전도 이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전반적으로 전공자가 쓴 책이기에 책의 공신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러우전쟁에 대해 나름 객관적으로 보려는 학자들 중에는 이문영 교수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교수님의 입장과 같지는 않지만, 이분이 하는 얘기에 상당부분 공감한다. 관련 전공자 중에선 이만한 인물도 한국서 찾기 힘들다. 이 책은 러우전쟁의 핵심적인 이슈를 정리한 책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하여 오랜만에 읽어볼 책을 읽게됐다. 물론 나는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님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서적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 그래도 전문가가 이만큼 쓴 것에 대해 이문영 교수의 책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머릿속이 “우크라이나는 피해자야”를 마음 속 깊숙이 깔고 있으며 러시아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머리 꽃밭인 어떤 자들에게는 이 책 마져도 친푸틴·친러로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문영 교수의 주장을 언급하며 서평을 마치겠다.

“처음 출연 섭외를 받았을 때 복잡했던 심경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2023년 4월 말쯤으로 기억되는데,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당시 한국 대통령의 인터뷰로 발칵 뒤집힌 상황이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 좋은 기회가 닿은 방송 출연이 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겨졌지만, 겁이 났다. 사실을 말했다가 ‘친러‘에 ‘전쟁 옹호자‘, ‘푸틴 앞잡이‘로 험하게 저격당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 데다, 필자 역시 전쟁 초반 쓴 칼럼으로 이미 비슷한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일부러 거짓을 말하지 않은 다음에야, 아무리 ‘아군 아니면 적군‘인 전쟁 이야기라도, 더구나 어쨌든 남의 나라 전쟁에 대해 말하는 일이 그렇게 살 떨리는 실존적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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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 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기 메탕 지음, 김창진.강성희 옮김 / 가을의아침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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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러시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시간 차가 11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나라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필자는 러시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 한번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인 2016년에 했고, 다른 한 번은 202512월 말과 올해 1월 초였다. 2026년 새해를 수도 모스크바에서 맞이했다.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10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도 있지만, 대학시절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이 전쟁은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필자는 한국과 서구 언론이 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악마화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러우전쟁 6개월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하던 미국이 정작 전쟁에서 패배한 지 6개월 만에 러시아에 맞서 제재를 하는 기이하고 황당무계한 상황은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이 20세기에 저지른 수많은 전쟁들 속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명피해를 초래했는지를 필자는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할 권리가 있는지가 의심이 됐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반러 내러티브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10대 시절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반러 내러티브에 큰 문제의식을 못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나중에서야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책 하나를 읽게 됐다. 바로 기 메탕의 저서 루소포비아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우선 필자가 즐기던 게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루소포비아와 FPS 게임 Call of Duty

 

우리 지도자라는 작자들이 우리를 서방에 팔아넘겼다. 우리의 문화...우리의 경제...우리의 명예를 파괴했다. 우리의 피가 우리의 땅에 흘렀다. 내 피가...저들의 손에. 저들은 침략자다. 모든 미군과 영국군은 당장 러시아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 전체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게 잿더미 위에 서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발사 코드를 원한다. 대통령.”

 

위의 대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Call of Duty: Modern Warfare Series)에서 악역이 한 대사다. 첫 번째 대사는 2007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1의 최종 보스인 이므란 자카예프(Imran Zakhaev)가 한 대사고, 두 번째 대사는 모던워페어 3의 최종 보스인 블라디미르 마카로프(Vladimir Makarov)가 한 대사다. 대사를 보면 알겠지만, 최종 보스들의 국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다. 게임 상에서 묘사된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을 싫어하는 존재고, 또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여서라도 정복하려고 시도하는 주체다.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인피니티 워드(Infinity Ward)가 만든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의 누적 판매량을 자랑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게임이지만, 게임 속에는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있다. 게임 상에서 항상 주인공은 영국의 SAS 특수부대이거나 미정규군 아니면 레인저 대대나 델타포스와 같은 미군 특수부대다. 이들이 상대하는 적은 당연히 침략적이고 호전적인 러시아군이며, 러시아군은 자국 내에서도 주민들을 함부로 학살하고 괴롭힌다. 그리고 전쟁광적인 지도자인 이므란 자카예프를 지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2009년 작인 모던워페어 2의 경우, 앞서 언급한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모스크바 공항에서 미국인으로 위장한 뒤 미국제 무기로 민간인 학살 테러를 벌여, 러시아가 미국에게 선전포고하고 미국 동부 지역을 침략하도록 만드는 장본인으로 그려진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있는 레인저 대대의 목표는 러시아가 침공하여 점령한 워싱턴을 해방하는 것이다. 게임상에서 워싱턴을 러시아군으로부터 해방하고 나서 나오는 대사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당 대사를 보자.

 

레인저 병사: 우리는 언제 모스크바로 쳐들어갑니까?

 

던 상병: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도착하면 거길 불태워버릴 거다.”

 

이처럼 게임 상에서 묘사되는 러시아는 서방이 타도해야 할 매우 나쁜 존재다. 여담이지만, 사실 2007년과 2009년 그리고 2011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시리즈는 필자가 10대와 20대 시절 정말 열심히 즐겼던 FPS 게임이었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이 게임의 캠페인 시리즈를 수도 없이 플레이했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멀티플레이도 신물이 나도록 했다. 캠페인 시리즈의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쉬움, 보통, 어려움 그리고 가장 고난이도인 베테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자는 20대 초반에 해당 시리즈들을 전부 베테랑 난이도로 클리어했다. 그 당시 콜오브듀티를 즐기던 필자는 게임을 하며 이런 루소포비아적인 논리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 뿐만 아니라, 2010년 미소냉전을 다룬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블랙옵스(Call of Duty Black Ops) 또한, 여지없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에 대해 지극히 악마화된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게임 상에서 소련 측 최종 보스인 니키타 드라고비치(Nikita Dragovich)에 대해 레즈노프(Reznov)라는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Alex Mason)이 만든 환영 속 존재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드라고비치는 서방 세계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어. 그를 반드시 막아야 해! 메이슨.”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와 블랙옵스는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긴다. 물론 필자 또한 이 게임들을 수도 없이 즐겼다. 그러나 나중에 공부하면서 이와 같은 게임에 들어간 내용들이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협하고 왜곡으로 점철된 내러티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에 대해 루소포비아(Russophobia)적 시각에서 매체를 만들어 내고, 또 편견을 조장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서구 사회다. 서구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에 대해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와 같이 서구의 뿌리 깊은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위선을 분석한 책이 바로 메탕(Guy Mettan)의 저서 루소포비아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게임에 대한 얘기가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의 주제인 루소포비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루소포비아 그리고 한국

 

2022224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정부가 특수군사작전을 개시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물론 전면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보게 되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2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서방 사회는 2013년 푸틴과 친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ych)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유로마이단(Euromaidan) 시위를 조장했고, 결과적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을 전복하고 포로셴코(Poroshenko)가 중심이 된 친서방 정권을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과정에서 대다수 주민이 러시아 정체성을 가진 크림 반도를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했다. 포로셴코 정권은 정체성이 러시아계인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전쟁을 개시했고, 이것이 바로 돈바스 내전(Donbass Civil War)이었다.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극우세력들을 지원했고, 돈바스 내전 시기에도 네오나치 집단을 정규군대로 양성했다. 이게 바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군대인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의 시작이었고, 이들의 전신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방화사건을 일으켜, 민간인 50명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민간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학살은 동부에서 8년간 지속되었고, 무려 1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로셴코 이후 집권한 젤렌스키(Zelensky) 또한, 돈바스에서의 이런 잔혹한 전쟁을 진행했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약속한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며 돈바스에 여러 차례 포격을 날렸다. 이해영 교수가 집필한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에 따르면, “20222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216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이와 같은 통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도발했다는 근거 중 하나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이해영 교수의 저서를 참고하면 좋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서방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날 당일부터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서유럽의 언론에서는 러시아의 폭력성과 공포성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도배되기 시작했다. 시작 2~3일도 안 되어 러시아와 푸틴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들이 열렸다. 한국에서도 열렸다. 한국에서는 정의당·녹색당·노동당과 같은 진보 계열 단체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페미니스트 운동 단체, 전쟁없는 세상과 같은 평화주의 단체, 심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흥사단과 같은 단체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동물권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했다. 러시아는 침략자니까 나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 이 사건이 왜 일어났고, 왜 이런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기 메탕의 저서를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은 매우 공감된다.

 

한국에서 러시아는 과장 과소평가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가진 나라의 하나다. 러시아를 여전히 '소련'과 동일시하는 기성세대가 다수이다.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전쟁의 경험과 남북분단체제의 지속, 그리고 지속적인 반공 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압도적으로 서구 담론의 영향을 받는 언론인과 지식인, 정치인, 외교관의 대다수는 러시아가 주요한 국제정치 행위자가 아니거나 국제정세의 안정을 해치는 나라로 여긴다. 예컨대, 영미권과 서유럽에서 나오는 프로파간다성 정보가 의심 없이 진실로 여겨지고 러시아에서 나오는 사실 발표가 오히려 프로파간다로 치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자주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여전히 유아적인 세계 인식, 국가이익 개념에 대한 무지라고 할 정도로 편견의 장벽에 갇힌 나라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모스크바에 대한 서울의 태도이다. 서구가 조장한 러시아 혐오증에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중독된 상태로 지내온 탓일 것이다. 이런 중독증은 이른바 보수우익 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경우에도 심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 정책을 선호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소극성을 보이는 러시아 당국의 태도 또한 한몫하고 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2~13.

 

옮긴이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러시아에 대해 이런 편견에 빠져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러시아에 대해, 그리고 서구가 퍼뜨린 러시아에 대한 왜곡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사회적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의 반러시아 프로파간다가 손쉽게 먹히는 풍토가 더욱 강화됐다. 박근혜 탄핵 정국을 통해 등장한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집권 말기, 서방을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고, 이후 탄생한 윤석열 정권은 아예 대놓고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K-9 자주포와 같은 무기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군을 죽이는 데 이용되었다. 만약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탄핵되지 않았다면,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빌미로 한국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었다면, 남북한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 대리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월드리딩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박상후의 말처럼, “2024년 윤석열 탄핵안 가결로 인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의 진보들 또한,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지난 2025년 진보단체 전쟁없는 세상에서 번역한 스웨덴 비폭력 평화운동가 마이켄 율 쇠렌센의 저서 전쟁 없는 세상 - 비폭력의 의미를 묻는 당신에게의 초반부를 보면, 한국의 진보들에게도 반러시아적 내러티브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쇠렌센은 비폭력 저항을 위한 준비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이 있기 전인 2014년 러시아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은 소위 진보라 불리는 일부 인사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얼마나 본질적인 부분을 못 보는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 메탕의 저작을 인용하겠다.

 

우선 러시아가 돈바스를 그 당시 점령했는가를 보자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도대체 어째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주민들이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마이단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서 그들의 언어와 그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44.

 

, 그 당시 돈바스는 돈바스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마이단에 맞서 저항한 것이었다. 이어서 기 메탕은 서구 사회가 크림 반도 합병에 대해 어떻게 왜곡하는지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서구는 마이단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나치 우익분자들의 저격, 221일 합의 위반, 222일 쿠데타, 52일 오데사에서 발생한 유혈 폭력,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의 모국어 및 문화에 대한 권리 침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토에 제공하겠다는 약속,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러시아 가스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스를 절도한 사건,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격추 주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황,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고 돈바스 민간인 지역을 폭격한 사건, 친미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지원과 같은 일들이 모두 실제 일어나지 않은 허구이며, 러시아의 선동인 것처럼 군다. 이러한 조작 기술을 쓰는 목적은 바로 러시아가 이 모든 행위를 시작했다고 세계가 믿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사실 그들이 원하지도 않고, 예견할 수도 없었던 사건에 대해 반응했을 뿐인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구 평론가들과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에서 러시아의 공식 사용을 금지한 키예프 임시 정부의 명령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림과 돈바스가 결국 이 명령 때문에 돌아선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러시아 혐오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우크라이나 위기가 시작된 진짜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게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 분리가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여론조작의 기술자들이 정성들여 잘 만들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론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이렇게 사실 왜곡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러시아 팽창주의와 소비에트 제국을 복원하려는 푸틴의 꿈이 문제의 근원이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정책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어떻게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서구 언론은 끊임없이 역사를 다시 썼고, 서방 정부를 가득 채우고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게 조언을 해주는 홍보 전문가들 덕분에 20143월 이전, 즉 크림 반도 주민들의 자치에 관한 총주민 투표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서구 언론이 20142월 이전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러시아 잘못이고, 크림에서 실시된 주민투표가 불법적이었다고 서구의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야누코비치가 주도한 쿠데타가 위헌이고, 프랑스ㆍ독일ㆍ폴란드 외교장관이 공동서명한 221일 자 합의는 그저 넝마조각이었을 뿐이며, 우크라이나 선거 자체는 군사쿠데타로 세워진 불법적 정부에 의한 국제법 위반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대령이 거리 시위대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는다면, 그는 신속하게 병영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56~58.

 

거기다 실제로 크림반도 주민들은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했다. 2014316일에 러시아에 의해 실시된 크림반도의 주민투표에 대해 기 메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고상한 언론은 "크림의 자치에 대한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되고", 따라서 불법이라고 선언한 백악관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크림 주민 95%가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 것을 찬성했다는 사실에는 서구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면 이 주민투표가 1991112일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조직한 이전의 투표 결과를 확인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언급했어야 했다. 그때 크림 주민 81.37%가 주민투표에 참여했고, 투표 참여자의 94.3%가 독립적인 크림공화국의 복구 및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새로운 연방조약에 대한 서명을 지지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10.

 

필자는 이와 같은 기 메탕의 분석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따라서 앞서 얘기한 쇠렌센의 분석은 이런 사실관계를 알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언론들과 한국의 반러시아적 감정을 가진 이들은 이런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자는 20248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 쿠르스크를 침공했음에도 여기에 대해 지적하는 이른바 신좌파 계열 진보운동이 한국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상당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프랑스-영국-독일-미국의 루소포비아와 역사

 

기 메탕의 책은 본서가 2016년에 나왔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2016년 이전까지의 내용만 다루고 있다. 그 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장점은 우크라이나 사태 분석과 더불어 다른 곳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책에서 다루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측면이다.

 

저자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분석했다. 우선 프랑스의 루소포비아부터 이야기해보자. 18세기 당시 러시아를 편견 없이 본 일본 선장 다이코쿠야 코다유의 이야기는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분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 메탕에 따르면, 코다유는 배가 좌초되어 승객들과 함께 알류산 열도의 섬 한 곳에 상륙했고, 거기서 러시아 사람을 만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여행을 하게 됐다. 예카테리나 2세도 만났다고 한다. 코다유는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받기 전까지 페테르부르크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았으며, 러시아어까지 배웠다고 한다. 코다유는 기록을 남겼는데, 기 메탕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거기에는 프랑스인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관습과 행정 제도, 자연, 왕궁, 인민, 정치 생활, 매음굴, 음식, 술 등에 대해 그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분명하게, 절대적으로 진실하게, 조금의 편견도 없이 구체적으로 묘사가 들어가 있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인이 계속해서 상기시켰던 참을 수 없는 전제주의와 끔찍한 농노제, 중세의 고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부분을 보더라도 결국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루소포비아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초반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영국과 러시아는 19세기 초 반불동맹 국가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한 사실은 세계사를 조금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여기에 맞서 러시아는 영국과의 무역을 지속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 비록 러시아는 모스크바까지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지만, 이후 동장군을 이용해 반불 연합군과 함께 진격하여 수도 파리까지 진격하여 나폴레옹을 축출했다. 그 당시 분명히 영국과 러시아는 동맹이었다. , 영국과 러시아는 함께 나폴레옹을 몰락시켰다.

 

그러나 영국은 빈체제 설립 25년이 안되어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로 대응했다. 특히 1840년대 오스만 제국 문제와 이후 크림전쟁 등에서 러시아에 대한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극에 달했다. 생각해보면, 1904년 러일전쟁에서도 영국은 10년 뒤 동맹이 될 러시아를 적대했다. 그 당시 영국은 일본을 지원하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주력함대인 발틱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게 막았다. 결국 그렇게 해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일본 해역에 간 발틱 함대는 대마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군함들에게 참패하게 됐다. 아무튼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20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봐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가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장 놀라운 것은 1815년이나 1945년 모두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 전리품과 영향권의 할당 문제가 1815년에는 비엔나 회의에서, 1943-45년에는 테헤란, 얄타, 포츠담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다. 두 경우 다 러시아는 협상에 참여한 모든 당사국들이 서명한 협약의 조건을 세밀하게 준수했다. 2세기 전과 반세기 전에 발생했던 반러시아 정서의 강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가설 가운데 공산주의자의 파괴적 활동과 러시아의 고유한 성질인 팽창주의를 통제할 필요성, 러시아 전제주의와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필요성, 그리고 기타 다른 이유들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그러므로 글리슨의 견해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의 루소포비아는 주로 이들 두 나라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세계 지배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기인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나라들은 새로운 영토를 갈구하는 과거의 해양 강국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두 나라는 그들의 의지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려 해왔고, 지금까지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B-52 폭격기 또는 무인 항공기의 총포라는 외교를 이용한 군사 작전, 자유 무역을 도입하는 경제적 조치, ‘소프트파워자원을 동원하는 문화적 행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280~281.

 

이 지점에서 필자는 도입부에서 언급한 콜 오브 듀티가 다시 떠올랐다. 게임 속 러시아는 현대 서구 대중문화가 소비하는 전형적인 악역 이미지다. 그런데 기 메탕의 분석을 읽고 나면, 이런 이미지가 단순한 창작적 설정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역사적 인식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 제국주의로 분석하는 것 또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비판적 분석의 핵심골자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1815~1900년까지 자신들의 소설과 논문에서 러시아 팽창주의와 싸우고 있는 동안 대영제국의 영토는 영국 자체의 20배를 초과한 반면, 그렇게 비난을 받았던 러시아는 베사라비아, 캅카스, 튀르게스탄, 만주를 이용해 국경을 둥글게 만들어 자신의 영토를 겨우 25% 늘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 러시아와 서방의 영토 확장 속도의 격차는 1100이었다. 영국이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를 놓고만 보자면,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영국은 벵골만 대기근 300만 명을 포함하여, 1930~40년대 인도인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인 역사도 있다.

 

독일의 루소포비아 또한, 여러 역사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독일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말에 나타났다. 특히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루소포비아가 보다 강화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보다 형성된 루소포비아는 역설적이게도 독일이 패망한 이후 사라지지 않았다. 192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 운동 즉 파시즘은 이를 강화했다. 나치당의 히틀러는 1924년에 출판된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이른바 레벤스라움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독일 민족이 러시아를 정복하여 게르만족의 생활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논리의 근간에는 영토확장과 더불어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반볼셰비즘이 탑재되어 있었다.

 

루소포비아의 인종적 측면이 극단화된 것이 바로 독일이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그런 극단성이 실제 역사에서 나타났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대다수가 소련계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여기서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1945년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군대는 소련의 붉은 군대였다. 그러나 2015년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에서 정말 말이 안 되는 역사 왜곡과 모욕이 폴란드에서 벌어졌다.

 

폴란드는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해서 20151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기념 행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폴란드 외무장관 그제고즈 쉐티나는 파렴치하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우크라이나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유럽 국가 지도자 중 누구도 폴란드 지도부의 이러한 수정주의적 습격에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321.

 

미국 또한 루소포비아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루소포비아 역사는 1945년에서야 시작됐다. 그것은 냉전 기간 내내 자라나서 1950년대의 거친 매카시즘, 그리고 1980년대에 아주 잘 고안된 전체주의와의 투쟁이라는 테제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21세기에는 반푸틴 논쟁에 맞춰 부활하게 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동맹이었던 관계가 냉전 시기 급격히 적대 관계로 전환된 과정은 영국 사례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본다. , 과거에는 협력했던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다시 위협으로 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책의 저자가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잘 분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책에서 한 가지 놓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917년 레닌이 일으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 내에서는 이른바 적색공포가 확산됐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확산된 적색공포는 1918년 미국이 러시아를 침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18~1921년까지 미국은 러시아 영토에서 백군을 지원하며, 볼셰비키의 군대와 전쟁을 치렀다. 이 부분에 대해 소련은 충분히 침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잖은 미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기억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110년 전 러시아를 침공한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면, 만약 러시아가 미국의 영토를 침범한 사례가 있었다면, 과연 미국인들이 그리 무관심했을까? 필자는 1962년 소련이 쿠바 인근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과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것, 그리고 20019.11테러가 일어난 것을 일반 미국인들이 역사에서 기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러시아 영토에서 침략전쟁 그것도 부당한 황제 복권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잘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 점에서도 미국식 중심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해본다. 책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다. 사실 미국은 자신들이 당한 20019.11 테러를 기억하지만, 정작 1973년 칠레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9.11 테러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5. 결론: 이 책은 러시아와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지금까지 게임 콜오브듀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서구 사회의 루소포비아 역사를 통해, 루소포비아와 책에 대해 설명했다. 콜오브듀티 자체는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이지만, 루소포비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좋은 소재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콜오브듀티를 수도 없이 플레이하며 보게 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반러시아 내러티브씬이 지속적으로 생각이 났다. 적잖은 서구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를 인식하고 소비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 게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그리고 그런 루소포비아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비 매체를 넘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축적되었다.

 

특히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런 이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얘기하지만, 정작 서구 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을 자극하고자 벌인 행위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미국과 서구 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다. 저자 기 메탕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며, 유로마이단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서구의 지원을 받은 것과 마이단 시위에서 학살을 일으킨 사실 등은 이 책에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의 이런 지원은 냉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역사학자 구자정의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간략히 말해, 미국은 냉전 초기 소련을 전복하고 사보타주하기 위해, 스테판 반데라와 같은 우크라이나 나치들을 이용하여 대소공작을 벌였다. 대소공작을 1950년대까지 벌이다 중단했다. 중단한 이유 중 하나가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하려는 조짐을 전혀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냉전에서 소련과 러시아를 얼마나 미국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서구 사회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콜오브듀티와 같은 프레임으로 러시아를 재해석해 왔다. , 역사왜곡을 저지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4년째로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독소전쟁보다도 더 길게 진행된 전쟁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서유럽과 미국은 전쟁을 중단하려 하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화당의 트럼프보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이 전쟁을 계속 이끌어 나가려 한다. 미국과 서유럽이 왜 패배한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에 있어서 확실하게 큰 요소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루소포비아적 정서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플래툰‘JFK’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은 작년 초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다음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것이다.”라는 말을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했다고 비판했다. 스톤에 따르면 이것은 가장 멍청하기 짝이 없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전히 루소포비아는 서구 사회 전체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런 루소포비아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위선과 문제점을 알고 싶다면, 필자는 기 메탕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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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6-07-10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혐오증의 기원은 따지고 보면 ‘반공주의‘와 미국 특유의 ‘자국 이기주의‘, ‘자본주의 우월주의‘가 결합된 매우 ‘끔찍한 혼종‘이라 할 수 있죠.

북한-중국-러시아를 향한 강경발언을 밤낮으로 쏟아부으면서 (반공주의 외세의 몸통인) 일본과 미국에게는 상냥하게 굽신거리는 국내 극우꼴통들(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한동훈, 이준석, 나경원, 장동혁과 국짐당, 뉴라이트, 일베, 조선일보/동아일보/TV조선/채널A 등)에게 ‘북한에 대한 색깔론, 중국인 혐오, 소수자와 난민/이주민에 대한 차별 발언, 무슬림 포비아‘가 있다면, (이들 국내 극우꼴통들의 상전국인) 미국에게는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오리엔탈리즘‘이 있죠. 둘 다 케케묵은 색깔론과 제노포비아 + 반공주의를 추종한다는 점에서 그 둘의 사고회로는 거의 흡사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이제 3년이 다 되어간다. 사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2013년 서구가 유로마이단 폭동을 획책한 이후 시작된 돈바스 내전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사실 나는 2022년 푸틴이 이른바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하기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민족 영웅 내지는 국부로 평가하는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가 사실은 나치 협력자고, 나치와 함께 홀로코스트에 가담하여 수많은 유대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폴란드인을 인종청소한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1943년에 스테판 반데라 지지자 세력인 우크라이나민족주의자기구(OUN)와 우크라이나 봉기군(UPA)가 볼린에서 10만 명 이상의 폴란드인을 어떻게 인종청소(Ethinic Cleansing)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부차 시내)


또한, 스테판 반데라나 로만 슈케비치, 미콜라 레베드 등 인종청소를 자행한 우크라이나 나치들을 미국과 캐나다 등 서유럽이 냉전 시기 어떻게 지원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냉전 시기 미국의 CIA는 이들을 침투시켜 소련에서 비정규적인 비밀작전을 수행하도록 했으며, 그 과정에서 3만 5,000명에서 5만 명의 소련인을 죽였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202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결에 맞추어 출간한 저서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에서 나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썼다. 유로마이단이 사실은 민주주의 혁명이 아닌 폭동이었다는 사실도 명백히 알고 있었다. 지난 2011년 서구가 리비아를 전복시켰듯이, 소위 색깔혁명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정권을 레짐 체인지한 사실을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다큐멘터리 ‘Ukraine On Fire’와 ‘Revealing Ukraine’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필자는 2013년 유로마이단이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개입하고 스보보다 같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을 선동하여 레짐체인지를 한 폭동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 당시 필자는 러시아의 대규모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진입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서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했다. 물론 개전초기부터 최소 1년 이상은 필자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우크라이나 파시스트들에 대한 증오감은 날로 깊어졌다. 그리고 ‘자유’를 외치며 이들을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행태에도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들과 같은 이들이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포장된다는 것에 분노를 느낄만했다.


(부차 현장을 방문한 젤렌스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쟁은 특수군사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다. 러시아는 개전 초기에 돈바스의 해방과 비나치화와 그리고 NATO의 동진을 저지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실제로 아조프와 같은 네오나치 세력들을 포로셴코 정권 시기 민병대로 키웠고, 정규군으로 편입시켰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무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마이단 폭동으로 집권한 포로셴코 정부는 2014년부터 국가의 예산 지출 방향을 복지로부터 군사력 강화로 바꿨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17억 달러에서 89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2019년에는 GDP의 6%를 차지하는 수준에 달했다. GDP 비율로 비교해 보자면 우크라이나는 서방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더 많은 금액을 군대에 투자한 셈이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을 강화했고, 이들을 실전에 투입했다. 2014년부터 친러계열 주민들이 돈바스 지역에서 저항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시작된 것이 돈바스 내전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부터 2022년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하기까지 NATO는 러시아와의 약속을 어기며 끊임없이 동진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폴란드·발트삼국(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헝가리·체코·루마니아·불가리아 등 수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동진에 협조하고, 그들 중 적잖은 나라가 NATO에 가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우 다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주민투표로 합병한 이유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이 쿠바에게 보인 반응과 비슷한 맥락이다. 크림반도는 19세기 크림전쟁과 20세기 독소전쟁 당시 세바스토폴 공방전이 벌어진 곳으로 러시아에게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곳이다. 그런 곳에 NATO 제국주의 군대가 주둔하게 된다면, 러시아의 안보가 뚫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만큼은 러시아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계치였다.


미국과 NATO는 마이단 폭동 이후 포로셴코 정권과 젤렌스키 정권을 지원하며 러시아에게 전쟁을 도발해 왔다.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킨다고 떠들며 러시아를 자극했고, 더 나아가 젤렌스키 정부는 2021년 4월 NATO 가입이 안될 시 핵무장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러시아군이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하기 1주일 전부터 우크라이나 정규군은 민스크 협정으로 설치된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우크라이나 ‘특수감독 미션’은 돈바스 내 우크라이나와 분리 공화국 사이의 접촉선을 따라 매일 휴전 위반 사항을 기록했는데, 이기록에 따르면 2022년 2월 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이 기록을 보면, 2월 16일 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월 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일 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일 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일 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일 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특수군사작전을 선포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것이 바로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에 대해 얘기할 때 생략하는 부분이다. 러시아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권 국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해서 영토전쟁을 벌인다는 생각은 서구의 망상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맥락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다. 그렇게 러시아의 침공을 난리 치던 사람들이 2024년 8월 파리 올림픽이 한참일 때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러시아의 쿠르스크를 침공하여 점령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게 바로 집단 서방이 보이고 있는 모순적인 행태다.


러우전쟁이 게시되자, 집단서방은 온갖 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들을 쏟아냈다. 키이우의 유령이라는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가 러시아 전투기 40대를 혼자서 도그파이팅으로 격추해 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런 가짜정보는 비디오 머그를 포함한 한국 언론들이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또한,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민가를 폭격하고 민간인을 학살한다는 새빨간 거짓말도 진실로 보도가 됐다. 심지어 우크라이나의 오폭도 러시아군이 한 것으로 왜곡보도했다. 서구와 우크라이나 당국의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에 의해 한국 내의 진보세력들도 상당히 동요했다. 팩트는 러시아는 과거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침공 당시 벌였던 무차별 폭격을 이 전쟁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바그다드를 야간에 무차별 폭격하고 초토화한 것에 반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그러한 무차별 폭격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키예프에 전력과 인프라가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러시아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방증이다.


(부차 학살 현정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 이 시신은 하얀색 밴드를 차고 있다. 러우전쟁에서 하얀 밴드는 친러인사를 의미한다.)


(부차에서 발견된 시신들)


러우전쟁 초기 서구의 악랄한 거짓말은 2022년 내내 판을 쳤다. 그중 가장 악랄한 사례는 부차 학살(Butcha)이다. 부차 학살은 러시아군이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키예프 인근인 부차를 점령했을 당시 벌어진 학살로 알려졌다. 최소 400~500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크라이나와 집단 서방은 러시아군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도 서구의 주장들을 앵무새처럼 받아 적었다. 한국 주류언론의 특징이다. 일단 서구 언론이 주장하면 묻지도 의심하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그대로 Control+C+V를 한다. 서구 언론이 거짓이어도 아무런 비판 없이 복붙 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언론 검열과 왜곡보도가 생기는 것이다.


(서구의 언론 보도를 그대로 보도하는 한국의 주류언론들)


필자는 초기에는 정말 러시아군이 한 것인지 의심했다가, 나중에 몇몇 글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벌인 조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학살을 조작한 적이 있다.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게 반격을 가하자, 서구 언론들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주장을 토대로 하마스가 영유아 40명을 참수했다는 가짜뉴스를 살포했다. 1990년 미국은 걸프전쟁을 시작하기 전 쿠웨이트 대사의 딸 나이라흐를 데려다가 거짓증언을 시켜 후세인의 군대가 쿠웨이트 병원에서 영유아를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학살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시켰다. 이후 이것을 앰네스티를 비롯한 서구 인권단체가 받아 적어 300명 이상의 아기를 이라크군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전부다 조작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필자는 부차학살도 그렇게 조작된 사례라고 생각하며,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한군 파병에 대해 가짜 자료를 언론에 유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2022년 4월 러시아 언론인 스푸트니크(Sputnik)에 따르면, 미국 상원의원 후보이자 탐사 저널리스트인 마크 댄코프는 “나는 부차에서의 보츠맨의 사람들의 작업이라는 제목의 비디오를 개인적으로 봤다.”라고 말했다. 이 비디오에 나오는 보츠맨이라는 인물의 실제 이름은 세르게이 코로트킨이다. 코로트킨은 벨라루스 탄생으로 급진적 우익 활동가이자 UN에 의해 ​​돈바스 민간인에 대한 잔학 행위로 기소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아조프 부대의 전 사령관이다. 앞서 미국 상원의원 후보가 말한 영상은 우크라이나군이 부차를 수복했을 때, 아조프 부대 간부인 보츠맨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가 삭제한 영상이다. 그 영상에서 보츠맨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네오나치 세르게이 코로트킨이 올린 영상: 이 영상에서 코로트킨은 친러 인사는 총쏴도 된다고 말했다.)


“파란색 띠 안 찬 애들은 다 쏴도 되는 건가?”


“ㅇㅇ 당연하지!”


실제로 부차에서 죽은 민간인들의 시신을 보면, 죄다 하얀색 띠를 차고 있다. 하얀색 띠는 이 전쟁에서 친러성향의 인사를 의미한다. 또한 학살된 시신들 중에는 러시아군 전투식량을 소지한 민간인 시신도 있다. 이들의 옷이 벗겨진 것을 보면 소지품을 검사받은 후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23년 한신대학교의 이해영 교수가 쓴 저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질서』를 보면, “부차 학살 당시 적어도 하얀색 밴드를 찬 이들은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해 학살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라고 나온다. 개전 초기 서방 언론이 이른바 “러시아의 만행에 대한 증거”로 유포한 부차 거리에 누워있는 시체의 영상과 사진에는 흰색 완장을 차고 있거나 완장이 없는 일부 시체가 나와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하얀색 밴드는 친러인사를 의미하지만, 이걸 지적하는 한국의 주류언론은 없었다. 그저 서구의 입장만 반복해서 전달할 뿐이었다.


(2007년 코로트킨이 러시아에 있을 당시 했던 범죄행위: 2007년 코로트킨은 러시아 네오나치 막심 마르친케비치와 더불어 외국인 두명을 칼로 참수 및 총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세르게이 코로트킨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도 히틀러를 찬양하는 네오나치들이 판을 쳤었다. 적어도 2000년대까지는 그런 자들이 러시아 내에서 각종 테러와 살인을 일으켰었다. 2007년 러시아의 네오나치가 다게스탄인과 타지키스탄인을 납치하여 참수한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한 사람은 목이 칼로 썰렸고, 다른 이는 권총에 맞고 즉사했다. 그 영상은 모스크바 인근에 있는 숲 속에서 촬영되었으며, 영상은 나온 네오나치들은 하켄크로이츠를 배경에 두고 두 외국인을 죽인 다음 나치식 경례를 하며 끝난다. 필자 또한 이 영상은 2010년대 초에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세르게이 코로트킨: 현재 아조프 대대 간부로 러시아 네오나치였다가 우크라이나로 도망쳐 아조프에 합류했다.)


알고 보니 이 영상에도 대단히 소름 끼치는 맥락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러시아에 있던 네오나치들은 실제 러시아 네오나치 조직 소속이었고, 그 단체는 2010년 러시아에서 금지됐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학살 가담자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러시아 네오나치 막심 마르친케비치와 세르게이 코로트킨을 지목했다. 막심의 경우 2020년 러시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고, 세르게이 코로트킨은 2014년에 우크라이나로 넘어가 아조프 대대에 합류했다. 결국 과거의 포로셴코 정권과 현재의 젤렌스키 정권은 그런 인물을 보호해주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 연방 법원은 코로트킨을 2007년 참수자로 2021년에 기소했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보호해주고 있기에 그는 아무런 처벌도 받고 있지 않다.


(스카이뉴스 이탈리아어판 기사 및 영상)


그런 인물이 부차에 가서 앞서 언급한 영상을 찍었다는 점은 부차 학살을 서구가 주장하는 얘기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다 2022년 4월 2일 우크라이나 측의 언론보도를 보면, 우크라이나 경찰이 부차에서 부역자들을 청소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 6월 6일 스카이뉴스 이탈리아어판 기사는 전직 우크라이나군 병사를 인터뷰한 영상을 올렸다. 그 병사는 인터뷰에서 “부차에서 러시아에 정보를 제공한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측 기사는 부차에서 학살된 민간인들이 부역자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2일 부차에서 부역자를 색출했다고 보도한 우크라이나측 언론 보도)


서구 언론이 부차에서 러시아가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는 플레셰트 탄이다. 플레셰트 탄이란, 폭발 시 3cm짜리 철로 된 플레셰트 수천 개를 흩뿌리는 폭탄이다. 이 폭탄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베트콩 및 북베트남군을 소탕하며 잘만 사용하던 무기다. 물론 그 당시 미군은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분이 거의 없었기에, 민가에다가도 이런 무기를 잘만 사용했다. 괜히 미군이 네이팜탄을 민가에 투하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는 한국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미국이 부차 학살 이후 부차에서 플례세트탄이 발견되자 러시아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해 댔다. 그리고 서구 언론들은 민간인 시신들의 사망 시간이 러시아군의 부차 점령 당시라고 추정하며, 러시아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러시아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 포격을 날려서 자폭이라도 했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즉, 앞뒤 맥락이 너무나도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플레셰트 탄을 사용하고 있고, 돈바스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도네츠크 등 민간인 주거 지역에 플레셰트 탄을 잘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이후 서구 언론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민가에 준 피해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논란이 많은 위성사진)


또한, 러시아 국방부는 크라이나의 주장을 단호하게 반박하고 우크라이나 당국이 퍼뜨린 부차 이야기를 폭로하는 사실들을 제시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모든 러시아 부대가 빠르면 3월 30일 부차에서 완전히 철수했다고 지적했으며, 3월 31일 부차 시장이 비디오 메시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당시 그 마을에는 러시아 군인이 없었고, 러시아인이 저지른 “잔혹행위”나 거리에서 민간인이 총에 맞은 사례는 언급되지 않았다. 러시아 국방부는 텔레그램에 “그러므로 부차에서 이른바 ‘범죄의 증거’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우크라이나 보안국과 우크라이나 언론 대표가 마을에 도착한 4일 차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썼다.


(부차 학살을 빌미로 제재를 가하겠다는 미국)


이와 함께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개한 영상에는 사람들의 시신 모두 "최소 4일 이상 경직되지 않았고, 전형적인 사체 시반도 없고, 상처에 피가 말라붙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라고 전했다. 국방부는 부차 주민이 러시아군 통제 하에 있을 때 폭력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인도주의적 통로는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군은 부차를 포함한 키예프 지역의 민간인에게 452톤의 인도적 지원을 전달 및 배포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크라이나군은 대구경 포병, 탱크, 다연장 로켓 시스템으로 부차 남부 외곽에서 중단 없이 포격을 가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밝혔다.


지난 2024년,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군 철수 직전인 2022년 3월 28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휴전협상이 있었는데, 우크라이나가 영국의 지시에 따라 협상을 결렬시키고 사전준비한 러시아제재 패키지를 가동할 목적으로 부차학살 조작극이 준비되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볼커 투르크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포함한 국제기구에 사건의 모든 정황을 규명하고, 부차 거리에 있던 시신들의 신원에 대한 확실한 리스트를 비롯한 기타 정보들을 제공해 달라고 수 차례 요청했으나 2년이 다 되도록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하로바 대변인은 “이 끔찍한 연극을 기획한 자들이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국제기구들이 우크라이나 감싸기를 중단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정확한 이름, 사망 시간과 원인, 시신 이동 흔적 유무를 밝히고, 책임자들을 색출하라”라고 촉구했다.


(부차 학살 관련 올리버 스톤의 트위터)


이와 같은 정황과 발견된 사실에 입각해 볼 때, 부차 학살은 러시아가 저지른 것이 아닌 우크라이나가 저지른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또한 개전 초기 부차 학살이 서구의 조작임을 주장하는 트위터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다. 필자 또한 올리버 스톤이 한 주장에 대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23년 하마스의 영유아 참수가 서구의 가짜뉴스였고, 1990년 나이라흐의 증언이 위증이었듯이, 필자는 부차 학살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의 조작이라 굳게 믿고 있다. 러우전쟁이 끝난 이후 부차학살을 조사하여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감춘 진실을 반드시 폭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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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뽕들에 대한 박상후의 일침.

정말 그러하다.

그러니 러시아 침략 빼애애액 하며 미국 편 드는거다.

박상후의 ‘문명개화‘가 날카로운 팩트폭격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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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특수군사작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글쓴이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전황과 여러 사건들을 지켜봐왔다. 전쟁 초기,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전면적인 침공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또한, 침공을 하더라도 친러 계열 주민들이 많은 돈바스 쪽으로만 갈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전쟁은 시작됐고 러시아군은 동부뿐만 아니라 벨라루스와 서부에서도 군사작전을 게시했다.


전쟁 초기, 러시아가 수도 키예프를 향해 진격을 하자, 글쓴이는 전쟁이 단기적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예상은 완벽히 빚나갔다. 그 시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보도들은 지극히 우크라이나와 서구 중심적이었기에, 글쓴이 또한 서구의 내러티브에 아주 약간은 흔들렸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초기 보도된 민간인 피해에 대한 편향된 보도들은 사람을 충분히 그렇게 세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흔들림이 완벽히 바뀌게 된 것은 2022년 5월 초에 들은 한신대학교 이해영 교수님의 강연이었다. 이 강연을 들으며, 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잘못 생각했는지를 아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전쟁 전부터 스테판 반데라나 OUN 등의 우크라이나 나치즘의 역사를 알고 있었고, 2013년에 발생한 유로마이단 시위가 CIA에 의해 사주 받은 폭동인 것도 알고 있었다. 전쟁 전 올리버 스톤의 다큐멘터리인 Ukraine On Fire를 리뷰한 것이 바로 글쓴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언론들이 편파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주류 언론과 다른 주장을 하다가 블로그와 일부 커뮤니티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 어떤 이는 “미국이 이라크 폭격할 때는 그렇게 자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은 이들이 정작 러우전에선 난리를 친다.”고 얘기한 내 글에 대해, “이 정도면 병이다.”라고까지 했었다. 그 외에도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나치들이 홀로코스트와 인종청소를 벌인 역사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가, “너는 푸틴에게 얼마를 받았냐?”는 조리돌림도 당했다. 물론 이런 욕을 무수히 많이 인터넷상에서 들었다.


이야기를 다시 이해영 교수의 강연으로 돌리자면, 이 강연을 통해 글쓴이는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무엇을 목표로한 것이고, 또 어떻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시켰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번 특수군사작전에서 러시아는 키예프를 그렇게 맹폭격한 적이 없다. 미국의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했던 짓을 생각하면 그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무튼, 그 이후부터 이해영 교수의 페이스북 글들을 유심히 보게 됐고, 더 나아가 한설 장군의 글들 그리고 유튜브에서 러우전에 대해 서구의 왜곡을 까는 영상들을 보다 더 많이 시청하게 됐다. MBC 전 보도국장 박상후의 ‘문명개화’나 벨라루스 교민인 최기영 교수가 운영하는 ‘러시아 학당’,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교민인 안정현 씨의 ‘모스누나’ 그리고 재미교포인 스캇 리의 ‘Scott 인간과 자유’ 등도 같이 보게 됐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2022년 러시아의 특수군사작전이 게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선 그 이유 중 하나인 2022년 초 돈바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우선 유로마이단부터 얘기하겠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의 사주로 일어난 유로마이단 폭동은 친러 계열 대통령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축출하고, 포로셴코를 집권하게 만들었다. 포로셴코 정부는 마이단 폭동에서 자라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을 키웠고, 이들을 군사화 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무력이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마이단 폭동으로 집권한 포로셴코 정부는 2014년부터 국가의 예산 지출 방향을 복지로부터 군사력 강화로 바꿨다. 2015년에서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17억 달러에서 89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2019년에는 GDP의 6%를 차지하는 수준에 달했다. GDP 비율로 비교해보자면 우크라이나는 서방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더 많은 금액을 군대에 투자한 셈이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을 강화했고, 이들을 실전에 투입했다. 2014년부터 친러계열 주민들이 돈바스 지역에서 저항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시작된 것이 돈바스 내전이다.


돈바스 내전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아조프 연대와 같은 네오나치 성향의 민병대들이 존재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정규군이 됐다. 돈바스 내전은 8년간 지속됐고, 이 과정에서 최소 15,000명의 친러 계열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에 의해 학살당했다. 일각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 코미디언 출신인 블라디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젤렌스키는 유대계 출신에 할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한 사람이기도 했다. 거기다 돈바스 내전의 종식을 약속하기도 해서, 동부계열 주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젤렌스키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포로셴코보다 더 악랄한 전쟁광이었다.


2021년 2월 젤렌스키는 돈바스 분쟁 지역 근처로 병력과 중화기를 보냈다. 이 병력들은 돈바스를 공격했다. 말 그대로 전쟁 도발행위를 한 것이다. 당시 젤렌스키의 이러한 행동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충돌할 뻔했다. 다만, 러시아가 10만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하고 초강경 대응하겠다고 위협을 했기에, 전면적인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 젤렌스키가 이러한 짓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돈바스에 대한 군사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서우크라이나의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고, 러시아 침략의 희생자로 보이도록 그리고 자신의 나라가 러시아의 대유럽 진출을 저지하는 전선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이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 외교의 핵심이다.


거기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1년 4월 나토 가입이 안 될 경우 핵무장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해 봄 NATO군은 30년 만의 최대 규모로 합동 군사훈련인 디펜더 유럽을 실시했다. 말 그대로 러시아를 자극하기 위한 도발이란 도발은 거의 다 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2021년 내내 서구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했다는 뉴스를 내보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전체 병력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인 12만 5,000명의 병력을 돈바스 분쟁 구역에 집결시킨 사실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2014년 9월에 체결된 민스크 협정에서 양측은 도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약속은 철저히 깨졌다.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의해서 말이다. 민스크 협정으로 설치된 유럽안보협력기구의 우크라이나 ‘특수감독 미션’은 돈바스 내 우크라이나와 분리 공화국 사이의 접촉선을 따라 매일 휴전 위반 사항을 기록했는데, 이기록에 따르면 2022년 2월 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이 기록을 보면, 2월 16일 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월 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일 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일 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일 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일 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스위스 정보부 대령 츨순인 자크 보는 이 기록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2월 17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며칠 안에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미스터리다. 그러나 OSCE 일일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16일 이후 돈바스 주민에 대한 포격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와 미국의 바이든은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에는 당연히 이러한 점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서방 언론과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2022월 2월 19일 젤렌스키는 “부다페스트의정서보다 나토 조약 제5조가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싶다”라고 선언하면서 핵무장 계획을 밝혔다. 이는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서 실존적 위협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한국의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다. 그저 러시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괴롭힌다는 내러티브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따라서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을 게시하자 서방은 자신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리비아에서 어떠한 짓거리를 했는지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전범 푸틴이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내러티브를 광범위하게 퍼뜨렸다. 그래서 전쟁 초기 왜곡된 가짜뉴스들과 우크라이나 오신트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퍼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가 정규군화 한 아조프 포함 네오나치 정규병력들이 “침략자 러시아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수호자”로 미화됐다. 물론 언론은 나치가 있다는 사실을 짧게나마 언급하긴 했다. 그러나 자기들 멋대로 우크라이나의 나치즘과 발트 삼국의 나치즘의 문제를 심각하게 왜곡해서 전달했다.


즉, “이들이 나치에 협력한 건 소련 때문이고, 따라서 지금까지도 일부 극단적인 세력들이 소수로 남아 있으며, 러시아가 프로파간다로 사용한다.”는 내러티브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옹호하는 데 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치주의자 스테판 반데라도 옹호했다. 그래서 글쓴이는 전쟁 초기부터 약간은 흔들려도 우크라이나 깃발을 든 반전 평화운동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네러티브는 사실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경찰청이 2018년도에 발표한 것에 의하면 반데라주의 성향 단체가 군소조직 포함하여 3,840여 개 정도로 집계된다고 한다. 이쪽 전문가인 정길선 교수에 따르면, 등록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10,000여개로 추정될 정도다. 말이 반데라주의 성향 단체지 이거 다 네오나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만 500여 개가 넘게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소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며, 몰역사적인 시각이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해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소위 ‘우뽕’들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범죄 국가이며, 따라서 이들에 맞서 서구가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헛소리들을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지지한다며, 우크라이나 반전 집회를 주도한 인사들은 침략했다는 내러티브에 빠져, 어떻게든 이를 우크라이나 민중들과 엮으며 반데라가 들었던 우크라이나 깃발을 잘만 내세운다. 


그러나 본문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전쟁을 일으킨 주체는 러시아가 아니라, 포로셴코와 젤렌스키 그리고 미국과 서방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들을 키웠으며,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돈바스를 포격하여 전쟁을 도발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 비약을 자주 저지른다. 참으로 웃기고 한심한 이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악마화시키며 서구의 무기 지원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간인 학살이다. 2022년 4월에 발생한 부차 학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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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1-13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진실이 드러났는데도 국내 기레기들은 우크라이나의 호전적 반공 극우 혐러성향과 나치부역자 숭배행각에 대해서는 절대 보도하지 않는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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