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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연구에서 최신 연구가 중요한 이유?

공룡관련 연구들을 보면, 정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고생물학은 기본적으로 발굴한 화석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이기 때문에, 학계의 입장이 주기적으로 자주 바뀌는 편이다. 물론 이점이야 어느 학계든 간에 공통적인 분모일 수는 있지만, 고생물학 연구에서 특히 공룡 연구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2001년작 쥬라기 공원3에서 전편에 등장했던 티라노사우루스 만큼의 위엄을 보여주었던, 스피노사우루스만 하더라도 2족보행이다 혹은 4족보행이다를 놓고, 학자들 간의 논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8년에는 스피노사우루스가 기본적으로 수중생활에 적합한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심지어 현생 악어가 가지고 있는 비슷한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학자들 간의 논쟁도 치열하다. 앞에서 말한 스피노사우루스의 2족보행설과 4족보행설 그리고 반수생 생활까지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스피노사우루스의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공룡들도 주기적으로 학설이 바꼈으며, 또 변형되고 있는 중이다.

백악기 시절 서식했던 대표적인 초식 공룡인 이구아노돈을 보자. 이구아노돈은 현재 우리들에게 친숙한 공룡의 존재를 알린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구아노돈은 영국의 치과의사인 멘텔 박사에 의해 발견된 이래 영국의 오언 박사나 프랑스의 조르주 퀴비에 박사 등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기도 했다.

1820년대 이구아노돈 복원도를 보면, 코뿔소의 뿔을 가지고, 4족 보행을 하며, 도마뱀 처럼 긴 꼬리를 가진 파충류처럼 묘사됐다. 당시 공룡들은 파충류의 종류로서 간주되었으며, 현재도 그러한 경향을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발견 초창기 이구아노돈은 코뿔소의 뿔을 가진 도마뱅처렁 묘사됐다.

그러나 나중에 학자들은 이것이 이구아노돈의 본 모습이 아닌 것을 밝혀냈다. 사실 이구아노돈의 뿔로 묘사됐던 펴는 이구아노돈의 엄지 발가락이었다. 그 이후 연구와 검증을 거치며, 이구아노돈은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더 긴 것을 보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공룡으로 밝혀졌다.

이구아노돈 외에도 대다수의 공룡들은 연구와 검증을 통해 이러한 과정들을 거친다. 목이 긴 공룡으로 알려진 브라키오사우루스는 과거에는 물에서 사는 공룡으로 묘사됐다. 이는 1940년 디즈니에서 제작한 만화 판타지아(Fantasia)에서도 잘 묘사된다. 그러나 고생물 학자들은 브라키오사우루스의 골격이 수중생활과는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근들어 브라키오사우루스에 대해선 흥미로운 학설이 나왔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의 거대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브라키오사우루스에게는 현재 코끼리와 비슷한 모양의 코를 가지고 있었다는 학설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논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외에도 공룡으로 판단했다 포유류임이 밝혀진 종도 있다. 대표적으로 바실로사우루스가 그러하다. 19세기 당시 바실로사우루스를 발견한 학자는 군주 도마뱀이라는 이름을 붙혀 자신이 발견한 화석을 바실로사우루스라 이름 붙혔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결과, 바실로사우루스는 중생대 해양 파충류가 아닌 신생대 에오세 당시에 서식했던 고래과 포유류였다. 현생 고래들의 먼 조상님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룡 학계의 학설은 최신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1999년에 제작된 BBC의 공룡 대탐험 시리즈 중 하나인 공룡 대탐험에선 남극 공룡을 다루며, 백악기 남극 지역에 알로사우루스가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 육식 공룡은 현재 알로사우루스가 아닌 아우스트랄로베나토르로 불린다.

여러 예시가 보여주듯이, 공룡 학계의 최신 연구들은 공룡의 명칭과 습성 그리고 묘사도까지 손쉽게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한 연구를 통해 검증을 거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공룡 학계의 최신 연구는 다른 학문들에 비해 최신 연구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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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초등학생과 중학교 1학년 당시 즐겨보던 다큐멘터리 하나가 있었다. 그 다큐멘터리의 이름은 바다 괴물들(Sea Monsters)였는데, 동물학자(이자 고생물 학자)인 나이젤 마빈이 고생대와 중생대 그리고 신생대를 돌아다니며 위험한 바다 동물들을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 나이젤 마빈이 마지막으로 간 곳은 지금으로부터 약 7500만년 전인 백악기 후기였다.

 

백악기 후기 바닷가에 도착한 주인공은 주인공보다 조금 더 큰 새들의 무리 속에 있었다. 그 새의 이름이 바로 헤스페로르니스(Hesperornis)였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들은 날지못하는 새였는데, 이 대목에서 필자는 현존하는 생물인 펭귄을 떠올렸다. 물론 외형상 펭귄하고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지만, 날지 못하는 것과 바다에서 주로 생활하는 모습은 펭귄을 떠올릴만한 대목이었다. 생각해보니 필자 또한 지난 미국 여행에서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헤스페로르니스를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흥미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헤스페르로니스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일대에 서식한 원시 조류로써 미국 중서부의 켄자스 주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1871년 미국 켄자스 주 서부 일대에서 백악기 당시 서식하던 익룡인 프테라노돈을 발굴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고, 발견한 학자들은 이 동물이 펭귄과 같이 날지 못하며 수중 생활에 익숙한 새일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녀석에겐 이빨이 달려있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조류가 파충류와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물학적 증거라는 학계의 평가도 있었다. 현재 이 녀석은 백악기 후기에 살았던 일군의 반수생 조류들을 아우르는 분류군인 헤스페로르니스류의 대표격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당초 레스토르니스(Lestornis)라는 별도의 속명을 부여받고 모식종과 함께 학계에 소개된 크라시페스종(H. crassipes)을 비롯해 산하에 거느린 종의 수가 대략 10여 종에 이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화석 자료를 토대로 이들의 서식 범위는 북아메리카 일대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러시아 볼고그라드 주(한때는 차리첸 혹은 스탈린그라드라 불렸던 곳)와 스웨덴 스코네 주에서 같은 종의 화석이 발굴된 덕분에 지금은 서식 범위가 유라시아 일대라고 고생물 학자들은 결론내리고 있다.

 

헤스페로르니스는 주로 해안가에 살면서 물고기나 오징어 등의 해양 생물들을 잡아먹으며 살았을 것이고, 상어나 모사사우루스 그리고 크시팍티누스(몸길이가 대략 5m 되는 물고기다)와 같은 것들이 아마 헤스페로르니스의 천적이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바다생태계에 적용해보자면 아마도 범고래나 북금곰 혹은 상어의 먹잇감인 펭귄하고 비슷하다. 이들은 백악기 후기까지 서식하다 6500만 년 전 대멸종 시기에 멸종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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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포클랜드 제도는 세계 일주한 마젤란에 의해 발견된 남미의 섬이다. 또한 1980년대 포클랜드 전쟁이라 하여 영국군이 아르헨티나에게 패배를 안겨준 지역이기도 하다. 남미에 있는 이 섬은 쥐와 박쥐가 살지 않고, 아이슬란드 처럼 항상 좋은 날씨가 유지되었는데, 그곳에서 바다표범과 더불어 유일하게 생존했던 포유동물이 있었다. 그 동물이 바로 포클랜드 늑대다.

포클랜드 늑대는 주로 섬에 사는 바다표범과 펭귄을 잡아먹었고, 새의 알을 먹었다고 한다. 이름은 ‘늑대‘라고는 붙었지만 분류학적으로 완전히 별개의 속에 속하고 습성은 여우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처음 과학자들은 포클랜드늑대가 원주민이 들여온 개과 동물로 여겨왔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이전인 70,000년 전에 육로를 통해 들여온 것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위에서 상술했듯이 다른 지역에 존재해야 하는 쥐 등 소형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보아서 여러 의문이 존재한다.

포클랜드 늑대는 17세기에 처음으로 발견됐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은 이 동물을 보고, ˝조만간 멸종될 것˝이라고 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 그의 예상대로 포클랜드 늑대는 1876년에 완전히 멸종했다. 성격이 매우 순하고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모피용으로 대량 살육당했다. 이후 포클랜드 섬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에 의해 포클랜드에서 목양업이 시작되면서 양을 습격한다는 이유로 목동들에게 또 남획당했다. 즉 그렇게 멸종된 것이다. 포클랜드 늑대의 멸종은 도도새나 스텔라 바다소 그리고 태즈매니아 늑대처럼 인간의 욕심이 동물을 멸종으로 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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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 공룡은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룡이 어떻게 해서 멸종했는지는 지금까지도 고생물 학계의 여러 주장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건 공룡은 백악기 말기에 멸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프리카 콩고에는 아직도 공룡이 서식한다는 얘기가 있다. 바로 모켈레 므벰베가 그것이다. 필자가 모켈레 므벰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중국인이 쓴 ‘세계 역사 속의 49가지 미스터리’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그 책에서는 콩고에서 공룡이 목격되었다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모켈레 므벰베였다.

 

모켈레 므벰베는 아프리카 밀림에 서식한다는 소문이 있는 용각류(목이 긴 공룡)를 닮은 크립티드로 현지어인 링길라어로는 ‘강의 흐름을 멈추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동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여러 개가 있고, 한 부족만이 아닌 여러 부족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이며,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모두 같은 동물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모켈레 므벰베의 길이는 대략 5~9m 정도로 추정되며 아프리카 코끼리나 하마만큼 거대하고, 용과 하마를 섞은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악어처럼 긴 꼬리와 뱀과 비슷할 정도로 가늘고 유연한 긴 목과 작은 머리 그리고 둥글고 두꺼운 몸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켈레 므벰베는 쥬라기 시절 서식하던 공룡인 디플로도쿠스나 아파토사우루스를 연상시키는 형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지역 원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필자 또한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 다큐에서 용각류의 사진을 보여주자 현지 원주민들이 모켈레 므벰베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무튼 지역 원주민들의 얘기에 따르면 성질이 사나와 카누를 뒤집어 버리고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경우가 있지만, 초식동물이기에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하고 주행성 동물이라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모켈레 므벰베가 있는 곳에는 하마가 거의 살지 않는데, 모켈레 므벰베가 그저 하마를 매우 싫어해서 보이는 대로 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0년대 미국인 선교사가 지역 원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콩고의 텔레 호 근처에 사는 윈주민들이 호수에서 흘러나온 강의 상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주변에 서식하던 모켈레 므벰베가 공격하자 그들끼리 힘을 모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모켈레 므벰베를 죽이는 데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그 고기를 먹었는데, 그 시체에서 고기를 자른 부위가 다시 살아나 여러 번 잘게 써는 일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고기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하룻밤 내에 모두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밀림에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모켈레 므벰베를 단순한 동물을 넘어 일종의 정령으로 여기며 두려워서 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그 얘기를 들은 선교사 또한 강의 상류에 원주민들이 모켈레 므벰베를 죽이기 위해 만든 바리케이드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모켈레 므벰베에 대한 문헌상 첫 기록은 1776년 프랑스 선교사 프로이트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저서에는 “그건 거대한 괴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발자국이 땅에 나 있었는데, 둘레가 90cm나 되는 흔적을 만들었다. 발자국의 형태를 관찰한 후, 보폭을 측정해보니 그 동물의 보폭은 2.1 ~2.4m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 굉장히 큰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모켈레 므벰베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1970년대 미국 텍사스에 사는 파충류 학자인 제임스 파월이 근처를 여행하면서 모켈레 므벰베에 대한 전설을 듣고 신비동물학회 회장인 로이 매컬 교수에게 이야기하면서부터였다. 이 얘기를 들은 매컬 교수는 1979년에 모켈레 므벰베를 탐사하기 위한 탐사대를 결성하여 발자국을 발견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증거물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후 1981년에 2차 조사대가 조직되어 떠나게 되었는데, 멕컬 일행은 간접적 접촉을 하게 되는데, 매컬 일행이 카누를 타고 에페나 마을 근처의 강을 돌고 있을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둑에서 커다란 동물이 갑자기 잠수하면서 파도를 일으켜 매컬의 카누를 치었는데 그걸 본 원주민이 "모켈레- 음베음베!" 라고 소리치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따라 매컬 교수는 하마가 없고 악어도 그런 파도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모켈레 므벰베라고 확신 하였지만, 매컬 교수가 직접 목격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증명할 어떠한 사진 증거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2차 조사대도 실패로 끝났다. 그러던 1992년 일본의 다큐멘터리 팀이 모켈레 므벰베로 보이는 생명체를 찍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에 모켈레 므벰베의 실존에 관한 확실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모켈레 므벰베를 확실하게 입증할 증거가 있지는 않지만, 모켈레 므벰베의 울음을 녹음하기도 했고, 공중에서 사진으로 포착하기도 했으며, 추정되는 발자국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켈레 므벰베가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그 동물이 발견된 콩고와 같은 아프리카 밀림은 중생대 이후 지금까지 환경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과 그런 동물들이 살기 좋은 고온다습한 지역이라는 점일 것이다.

 

지난 2012년 미국의 탐험가들이 모켈레 므벰베를 찾기 위해 중앙아프리카의 콩고 밀림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는 거로 봐선 모켈레 므벰베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하다. 과연 아프리카 정글에 공룡이 살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재미있는 상상이다. 이 얘기를 믿고 안 믿고는 읽는 이의 자유겠지만,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쪽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상술했듯이 아프리카의 밀림지대는 공룡이 살던 중생대 시대의 기후와 환경에서 거의 차이가 없고, 그런 동물들이 살기 적합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무튼 발견된다면 한 번쯤은 보고 싶은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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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11-27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항해시대 3이라는 게임에서 중요 발견물중 하나로 나왔었지요.^^

NamGiKim 2020-11-27 19:20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콩고 공룡이 나오다니 흥미롭군요. 정말 고기가 다시 생성되는지 궁금하네요.ㅋㅋㅋㅋㅋ
 

지구상에 현존하는 펭귄은 현재 남아프리카와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남미대륙에 존재한다. 이건 현재 우리가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펭귄에만 국한된다. 지금으로 부터 200년 전에는 북대서양에도 펭귄이 존재했었다. 그 펭귄이 바로 큰바다쇠오리다.

큰바다쇠오리는 몸길이 약 80 cm, 체중 5kg에 이르는 대형 바다새로, 캐나다의 뉴펀들랜드부터, 현재 미국의 매인 주와 그린란드, 아이슬랜드, 스코틀랜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해안까지의 북쪽 대서양 및 북극해에 분포해, 무리 생활을 했었다. 바다 속에 잠수해 멸치, 오징어 등을 먹었다. 바닷속에서는 짧은 날개와 다리를 사용해 고속으로 헤엄칠 수 있었고, 최대 1000m까지 잠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어나 범고래 그리고 북극곰을 제외하면 사실상 천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육상에서는 몸을 세워 마치 펭귄처럼 걸었기에 지상에서의 속도가 느렸고, 번식기는 6월 무렵으로, 크고 작은 섬의 절벽에 상륙해 단 1개의 알을 바위 위에 낳았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은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포위하고 생포했는데, 16세기부터 대대적인 포획과 사냥에 나서게 되었다. 물론 이들은 8세기 부터 인간에 의해 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콜럼버스의 북미대륙 발견 이후 수많은 유럽의 탐험가들이 대서양을 탐험하면서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사냥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호기심 많아 사람을 봐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대했기 때문에,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결국 유럽 정부에선 큰바다쇠오리에 대한 보호 정책을 펼쳤으나 암암리에 불법 포획이 계속 되었다. 큰바다쇠오리의 천국이었던 섬들은 곧 생지옥이 되었는데, 당시 선원들은 큰바다오리를 잡으면 재미를 위해 산 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알을 부수는 등의 일을 자행했으며, 큰바다오리가 서식하던 섬들은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식사를 위해 큰바다오리를 여러마리 잡아 일부는 산 채로 냄비에 넣고, 나머지는 그 냄비에 들어간 큰바다오리를 익히기 위한 땔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결과 1820년 무렵의 번식지는 아이슬란드 앞바다의 가이르풀라스케어 섬에만 남게 되었다. 이후에도 큰바다쇠오리를 박제로 만드려는 시도 때문에, 불법적으로 포획되어 고가에 팔렸다. 결국 1844년 6월 4일 엘데이 섬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살아 있는 큰바다쇠오리가 박제용으로 사살되면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의 목격 증언도 있었지만, 현재는 80개의 박제와 70개 남짓의 알 껍질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큰바다쇠오리는 16세기부터 서양인들에게 펭귄이라 불렸다. 이들이 멸종한 이후 서양의 탐험가들은 남극에서 큰바다쇠오리와 비슷한 종류의 새를 발견했고, 탐험가들은 이 새에게 펭귄이라는 이름을 붙혀주었다. 그 새가 결국 현재 우리가 아는 펭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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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7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5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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