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폴란드사
김용덕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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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폴란드사 서평: 간략하게 읽어보는 폴란드 역사

폴란드(Poland). 아마 한국인들 중에 폴란드라는 나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필자가 폴란드라는 나라를 알게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보다 세계사 만화책과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였다. 아마 중1때였을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폴란드라는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10대 시절 내가 기억하는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게 가장 먼저 침공당해 먹혔던 나라였다. 아마 그 시절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수용소의 상징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Auschwitz-Birkenau)가 폴란드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 같다.

폴란드에 대해 사실상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1940년 카틴 대학살에 대해 대학생 때 알게 됐고, 전역 이후 복학한 다음 폴란드 자유노조에 대해 알게됐다.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홍콩 시위를 강력히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홍콩 시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는 페친들도 볼 수 있었다. 해당 입장을 보니 폴란드 자유노조의 반혁명과 무엇이 다르냐는 글을 보게 됐다. 그때 처음 자유노조를 알게됐다.

이후 코로나 초기 미국의 영화 감독인 올리버 스톤과 역사학자 피터 커즈닉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독했고, 그 책에서 폴란드 자유노조가 CIA에게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비슷한 시기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사를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왜곡한다는 것도 알게 됐으며, 거기에 대한 반론 글을 운동권 단체에 기고한 적도 있었다.

필자가 폴란드를 직접가본 것은 2024년이었다. 바르샤바와 크라쿠프에 3일간 있었고, 거기서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과 인민 생활 박물관, 아우슈비츠 수용소, 자유노조 박물관을 들렸다. 또한, 폴란드인들이 그리도 존경하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동상과 관련 전광판과 팜플렛도 볼 수 있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이후에도 사실 폴란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됐다.

필자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과 같이 폴란드사 책이다. 저자는 외대 폴란드어과 명예교수고 폴란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석박사를 거기서 취득했다. 일단 전공자가 자기 전공분야를 쓴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 눈높이에 맞춰 폴란드사 책을 집필했다. 설명체여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솔직히 중학생 정도만 되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폴란드 고대 역사부터 2016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폴란드 지도자인 안제이 두다가 마지막에 언급되며, 세계최초로 쌍둥이 형제가 같이 대통령과 총리를 했던 카친스키 이야기도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부터가 폴란드의 역사학적 접근법에 익숙한 사람이고, 또 책에서 밝혔듯이 철저히 폴란드 역사 교과서적 시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스탈린주의자라 비난받는 볼레스와프 비에루트에 대해 스탈린의 하수인으로 표현 하는 것과 바르샤바의 상징인 문화과학궁전을 소련 지배의 상징이라 비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1944년 바르샤바 봉기를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봉기군을 나치에게 학살당하도록 의도했다는 서술이나, 폴란드 자유노조를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적극지지한 것과 얘들을 돕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한 것을 칭찬하는 서술은 필자의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폴란드의 반소련ㆍ반공적 종족주의는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치는 수준이라 할만하다. 파시즘에 긍정적이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도 이 책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미화가 된다. 솔직히 필자는 폴란드인의 역사 인식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1919~1921년에 벌어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소비에트적 서술로 이어져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인민민주주의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경제성장과 성과는 얘기가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브로니스와프 고무우카 집권기는 경제성장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딱 한줄만 언급된다.

사회주의 시절의 폴란드는 분명 경제성장을 했다. 이는 바르샤바에 있는 인민 생활 박물관에 가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2년 전 직접 가보았기에 해당 박물관에서 제시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사실 고무우카도 반스탈린 길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 못지않게 수정주의적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었지만, 이 책에서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한 가지 이 책에서 보충하면 좋았을 점은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학살 이야기다. 책에서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폴란드인을 학살했다고 짧게 언급되긴 하지만, 이 부분은 볼린 대학살의 사례와 학살의 규모 그리고 학살의 설계자인 스테판 반데라ㆍ미콜라 레베드ㆍ로만 슈케비치 등을 언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폴란드인들이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있어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게 바로 이 부분의 역사다. 만약 개정판이 또 나온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다소 비판적인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중학교 2~3학년도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쓴 역사책이며, 폴란드 역사를 입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히 폴란드의 시각인 것을 감안해야 된다.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된 사실들도 제법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외로 폴란드계 인물들이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인정받은 인물들이 있었다는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폴란드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오히려 프랑스 보다 더 좋아하는지도 알게 됐다. 흥미롭게도 폴란드의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철저히 프랑스편을 들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도 동참했으며, 나폴레옹이 참패한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도 폴란드군이 반불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러시아를 매우 싫어했고,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독립을 보장해준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 폴란드가 프랑스 보다 나폴레옹을 미화한다는 것을 2년 전에 알았지만, 그 사례를 보다 살펴보니 흥미롭다.

폴란드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까지의 내용은 말 그대로 축약된 통사니 그럭저럭 읽혔다. 제2차 세계대전 내용은 솔직히 반공주의적 서술이지만, 폴란드 망명정부의 군대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재밌었다. 특히 망명정부 군대, 그러니까 소련의 통수를 치고 서방진영으로 넘어온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는 병력 12만 명을 데리고 소련을 넘어 이란과 이라크 등 중동지역을 거쳐 북아프리카 전선에 서방 연합군으로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이란을 들려 자유 폴란드군 부대에 곰 한 마리를 기르게 됐는데, 이 곰의 이름이 바로 보이텍이다.

보이텍 관련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보이텍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군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고, 전선에 투입되어 물자를 나르기도 했다. 병사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았고, 병사들을 잘 따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보이텍은 군대가 해체되면서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살게됐고, 1963년에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얘기하겠다. 폴란드 망명정부는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이후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 조직이다. 아마 한국인들에게는 수능 국어 문제로 나오던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 구절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이들은 소련이 독소불가침 조약에 따라 폴란드 동부를 접수한 것과 기존의 반공성향 때문에 소련을 매우 미워했다. 기본 속성부터가 반공ㆍ친서방이었다. 1939년 패배한 이후 런던으로 망명한 이들은 영국 내에서 군대를 양성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영국에 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자, 소련은 이들과도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소련 내에서 폴란드인들이 군대를 만들게 했고,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가 이 군대를 이끌게 됐다. 안데르스는 그 군대를 가지고 소련을 탈출하여 서방에 합류했고, 그 군대 중 한 부대가 앞서 얘기한 새끼 곰 보이텍을 이란에서 만나게 되어 키우게 된 것이다. 보이텍은 보급중대에서 활약했고, 1943년 이탈리아 전선, 특히 몬테카시노 전투에 참전했다. 아무튼 보이텍은 전쟁 이흔 동물원에 있으면서도 영국에 남은 폴란드 망명정부 참전용사들과 자주 만났으며, 참전용사들이 오히려 울타리를 넘어가 보이텍과 함께 있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폴란드 역사에 대해 훑어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이 폴란드인의 시각에서 쓰인 거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재밌게는 읽었다. 재작년에 출판된 동독관련 역사책 <장벽너머>처럼, 폴란드 사회주의 시절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애초에 김용덕 명예교수의 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에 궁금증이 있다. 사실 카트야 호이어가 서방적 시각이 있음에도 동독 사회주의 시절을 비교적 잘 다뤘다. 따라서 폴란드 사회주의 시기의 역사도 충분히 서방의 역사학자가 그런 식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기대를 걸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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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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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미국의 신화를 낱낱이 파헤친 역사 연구

“유럽 진공에 참여하는 연합군 전우 어러분! 여러분들은 수 개월 간 준비해 왔던 위대한 십자군 원정의 목전에 와 있습니다. 전세계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시민들이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여러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연합군 전우들은 독일의 전쟁 기계가 부서지는 걸 볼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해 왔던 나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 세계를 수호할 것입니다. (중략....) 대세는 바뀌었습니다! 전세계의 자유시민들이 우리와 함께 승리를 위해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저는 어러분들의 용기, 의무에 대한 헌신, 전투 기술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만을 남겨 놓고 있을 뿐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들이 걸어야 할 위대하고 영광스런 고난 앞에 하느님의 무궁한 영광이 깃들기를 염원합니다.”

해당 연설은 1944년 6월 6일 영미 연합군이 이른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 연합군 총 사령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가 한 연설이다. 해당 연설은 2001년 HBO에서 만든 드라마이자, 미군 제101 공수사단 이지중대(Easy Company)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1화 마지막 장면에서 인용되는 연설이다. 또한, 2005년 인피니트 워드(Infinity Ward) 회사에서 만든 FPS 게임 콜오브듀티 2(Call of Duty 2) 미군 캠페인에서도 영상을 통해 인용된다. 해당 드라마와 게임은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서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관련 연설이 인용된다는 것은 현재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플레이 하다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매체에서 주장하는 미국의 관점에 쉽게 빠져들기까지 한다. 10대 시절 나 또한 두 작품 외에 미국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게임을 통해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관을 쉽게 흡수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존의 통념과 정반대되는 학술적 역사 연구가 있다. 즉, 미국의 주류 및 사회적 시각과는 전혀 반대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분석을 한 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 책이 바로 캐나다의 역사학자 자크 파월(Jacques R. Pauwels)의 저작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The Myth of the Good War - America in the Second World War)』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은 주로 영미 연합군 그중에서 미군이 저 간악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에 맞서 어떻게 세계를 파시즘으로부터 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은 파시즘 체제인 독일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인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과 1939년에 시작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전쟁의 시작점은 1937년 중일전쟁이나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것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고 난 다음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국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파월의 책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부터 그리고 참전한 이후와 전쟁 승리 이후 미국이 한 행위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한다. 책을 읽다보면, 과연 현재까지도 미국과 서방 세계가 내세우고 있는 소위 “나치 독일의 억압에 맞서 미국이 세계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했다.”는 주장이 너무나도 허구적으로 느껴진다. 해당 저서에서 파월이 주장하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영화 감독 올리버 스톤(Oliver Stone)과 역사학자 피터 커즈닉(Peter Kuznick)이 공동으로 쓴 저서이자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독했다. 1,0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나 되는 두 권의 책이라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미국의 이면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던 책이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절반 정도 시청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권에서 나는 나치 독일이 미국의 기업들과 어떻게 거래했는지를 알게 됐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역사학자 자크 파월의 저서는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1940년 덴마크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점령하는 데 동원된 전쟁기계들이 사실상 미국 기업들이 준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나아가 1941년 6월 22일 히틀러의 소련 침공에도 미국 기업들이 준 도움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파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은 1930년대에 군대를 실어 나를 트럭과 함께 탱크와 항공기를 엄청나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고무를 수입하여 비축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석유의 상당량을 미국 회사들로부터 구입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친절하게도 석탄으로 합성연료를 만드는 비법을 전해주기도 했다. 독일 육군과 공군은 1939년과 1940년 이 설비 덕분에 수천 대의 항공기와 탱크를 동원하여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의 방어수단을 단 몇 주 만에 제압할 수 있었다. 번개처럼 빠른 전쟁(blitzkriege)에는 번개처럼 빠른 승리(blitzsiege)가 뒤따랐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86쪽.)

사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다. 즉, 석유가 있어야 탱크와 항공기 그리고 트럭을 이용할 수 있다. 군인을 동원하는 데 있어 식량이 매우 중요하듯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차량과 탱크 그리고 항공기는 석유가 필요하다. 즉, 그런 석유들을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미국 회사들이 나치 독일에게 제공했고, 그런 제공은 당연히 나치 독일의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다. 솔직히 이런 얘기는 매체에서 민주주의 수호자로 알려진 미국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역사다. 파월은 이와 같은 미국의 기업들이 사실 나치와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반대했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책에서 밝힌다. 미국의 기업이 나치를 적대하지를 싫어한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결국 자본(Capital)이었다.

자본주의가 탐욕과 무절제한 생산 그리고 생산수단을 일방적으로 소유한 개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본가들의 탐욕 현상은 소위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미국의 자본가들에게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기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학교나 사회에서 이런 사실을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언급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절대다수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독일과 미국의 인종 계층 관념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1930년대에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나치의 인종주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히틀러으 반유대주의와 그의 파시스트 동지들도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1920~1930년대에는 반유대주의가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상당히 유행했다. 그들 자신도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나치의 반유대주의 조치들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에 관대했다. 기업가와 은행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권력층도 이런 일반적인 규칙의 예외는 되지 못한다. 일례로 유대인은 대개 상류계급이 애용하는 회원제 클럽과 고급 호텔에 출입이 금지되었다. 기업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히틀러를 경애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1920년대 초 <국제 유대인(The International Jew)>이라는 반유대주의 책을 출판해 히틀러에게 영감을 준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였다. 둘은 서로를 존경했다. 총통은 집무실에 포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그를 반유대주의라는 영감의 근원으로 인정했으며, 1938년에는 나치 독일이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포드 또한 괴링의 친구이자 유명한 비행사인 찰스 린든버그가 미국 전역에서 활발하게 진행하던 친나치 선전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48~49쪽.)

계속해서 파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사업가와 은행가들이 대체로 나치즘이나 파시즘이나 반유대주의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대로 그들은 바로 그 반유대주의 때문에 파시스트, 특히 히틀러에게 공감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런 사람들이 이끌던 미국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유럽 십자군 계획에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50쪽.)

따라서 미국의 자본가들과 엘리트들은 나치즘의 폭력성에 대해 전혀 비판적인 의식이 없었고, 그들과의 거래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봤으며, 전쟁에 참전하기 전까지도 이들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미국의 이 지배층들은 히틀러가 반공주의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크게 해가 될 소련 볼셰비즘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했고, 히틀러의 반공주의적인 면모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역사에 익숙치 않은 몇몇 사람들은 현재 내가 쓴 서평이 매우 낮설게 느껴지겠으나, 지금 언급한 내용들은 전부다 파월의 책에 나온 내용들이다.

책에 나온 이런 이야기들은 현재 소위 미국 지배층들이 강요하는 역사만 아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역사다. 나 또한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전혀 모르던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알게 되니 신선한 충격을 적잖게 받았다. 저자 파월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면 그 어떤 이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그 어떠한 인권유린도 용인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20세기 역사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피노체트(칠레)나 비델라(아르헨티나) 그리고 소모사(니카라과)와 같은 유사 파시스트 독재자들을 지원했다고 강조한다. 즉, 미국이 이런 악랄한 독재자들을 지원한 것은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이윤관계에 전혀 해가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저자는 강력히 얘기하고 있으며, 그 자본주의가 전쟁과 폭력 그리고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저작에서 내가 정말 놀란 부분은 저자가 소위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서구의 시각에 상당히 도전하는 지점이다. 해당 저작은 1939년에 체결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즉 독소 불가침 조약이 나치 독일과 소련의 군사동맹이 전혀 아님을 역설한다. 그리고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서방이 소련에게 보인 적대적인 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파월이 서방이 주장하는 스탈린 독재자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파월은 소련의 스탈린이 무자비한 측면이 없던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소위 독재자 프레임이 서구에 의해 악용되고 이용되었으며 실제로는 억울하게 프레임화된 측면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 당시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이득을 취했기에, 미국과 서방의 자본가들이 소련에게 적대적으로 대하였다는게 파월의 입장이다. 캐나다 역사학자가 이 정도로까지 스탈린과 소련에 대해 분석한 것이 놀라웠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며, 파시즘을 무찌르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주체는 바로 소련과 스탈린임을 분명히 언급한다. 파월의 입장 중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서구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언급함에 있어 폴란드에 대해 무조건 동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하면서 유럽의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대륙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치 독일도 아직 정복되지 않은 채였다. 그러는 동안 소비에트가 폴란드 전체를 해방시킬 것이 분명했고, 그런 전망은 많은 폴란드인들, 특히 보수적이고 강력하며 반소비에트적인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를 걱정에 빠지게 했다. 게다가 이 정부 구성원들은 충실한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전쟁 전 히틀러와 공모하여 뭔헨조약 때 체코슬로바키아 일부를 가져간 선례를 따랐던 독재적인 폴란드 정권을 대표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182쪽.)

이런 지점들은 사실 서방 역사학자들이 쓴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서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그 외에도 파월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2년 전에 감행된 영국·캐나다 연합군의 디에프 상륙작전에 대해 기존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게 분석한 것도 흥미로웠다. 파월에 따르면, 디에프를 상륙한 것이 노르망디 예행연습이 아닌 제2전선을 열어달라는 스탈린의 강력한 요청과 이에 따른 영국 대중들의 강력한 지지의사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대패였지만 말이다. 또한, 1943년 무솔리니 축출 이후 이탈리아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이탈리아 빨치산과 파리 해방에 기여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등이 좌파적인 성향 때문에 서방 연합군에게 어떻게 배척받았는지를 책은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1941년부터 나치에 맞서던 ELAS라 불리던 그리스 빨치산이 서방에게 어떻게 배척받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즉, 미국과 영국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그리고 그리스에서 소위 나치에 격렬히 저항하던 좌파 게릴라보다는 지배층들을 선호했다는 얘기다. 그게 자신들의 패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미 연합군은 과거 무솔리니 정권에 있다가 무솔리니 축출 이후 집권한 피에트로 바돌리오 정권을 승인했고, 그리스에서는 나치에 협력했던 왕당파 세력을 지지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좌파운동을 하던 국내 레지스탕스가 아닌 반공주의 성향이 강하며 친서방적인 샤를 드골의 집권을 승인했다. 이탈리아의 바돌리오는 과거 무솔리니 정권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항공기 동원을 통한 무차별 폭격과 독가스 살포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인물이었고, 그리스 왕당파 세력은 앞서 언급했듯이 나치 협력자들이며, 프랑스의 드골 정권은 사실 프랑스 국내에서의 투쟁에 힘을 쓴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던 공산당들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리스에서는 소위 내전에 개입하여 친나치 우익 세력을 도와 10~15만 명의 그리스인을 죽였다.

즉, 이와 같은 미국의 행보가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파월의 주장이며, 소위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여 여러 나라들에 그 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 허구적이라는 것이 파월이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국은 소련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취했다. 실제로 미국 지도부에 있던 이들은 소련에 맞설 생각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했었다. 사실 이들의 경우 원래부터 소련을 싫어했던 이들이었고,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기 이전에 소련을 비난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제로 이들이 나치 독일이 항복하든 항복하지 않든 간에 소련에 맞서 이들과 협력할 생각을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미군 명장으로 알려진 조지 패튼(George Patton)의 경우 나치 독일에 있든 잔당들과 협력하여 소련에 맞서 싸워야 한다 주장했다. 그게 1945년의 일이다. 심지어 패튼은 아예 우리 미군이 독일과 협력하여 모스크바까지 진격하자는 말도 안되는 주장도 했었다. 실제로 미국 CIA의 전신인 OSS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해 두었다. 독일의 역사학자 위르겐 브룬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회적으로 말해서, 미국 산업계의 최고 경영자들, 월스트리트 증권 중개인과 변호사, 과학자, 군 고위층, 정치가, 그리고 소위 방위 전문가들의 혼합체였다. OSS는 명백히 미국 지배계급을 대표했다. OSS 요원들은 여전히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물리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소련을 하나의 국가로서 제거해버리거나, 적어도 종전 후 유럽에서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238쪽.)

여기서 위르겐 브룬이 주장한 계획에는 나치와의 협력도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맞서 이 나치주의자들을 이용했다. 소위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이라 불리는 나치 과학자들 미국 이주 계획은 성공적으로 실행되어, 나치 과학자들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미국은 1969년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 나치 무장 친위대 장교 출신으로 전쟁 시기 수천 명을 노예노동으로 사망하게 한 장본인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자크 파월의 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던 OUN의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와 UPA의 미콜라 레베드(Mikolka Lebed)와 같은 나치 학살자들을 소련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정치 공작에 이용했다. 특히나 스테판 반데라나 미콜라 레베드는 나치 홀로코스트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전쟁범죄자들이었음에도 미국은 이들을 지원했다. 특히나 1943년 볼린 대학살의 경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잔혹한 학살이었고(해당 학살은 여성과 노인 그리고 갓난아기를 의도적으로 타겟으로 삼아 학살하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말 그대로 악마와 사탄도 충격받을 전쟁범죄였다.), 최소 10만 명의 폴란드인을 학살당했지만, 학살을 자행한 레베드는 미국의 보호아래 잘 살다가 죽었다. 심지어 레베드의 경우 미국에서 매년 현재 돈으로 9,000만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았으며, 1990년대 편히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바로 냉전이었고, 냉전에서 소련을 악마화하고 적대적 정책을 취함으로써 자본가들이 많은 이득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냉전에 대해 소련의 책임을 묻지만, 많은 역사 연구가 보여주듯이 그 책임은 미국에게 있었다. 파월의 말대로 스탈린은 전후에도 미국이나 영국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으려 했다. 소위 소련이 동유럽에서 자신들의 전리품을 막 챙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권을 세우려 한 것도 사실은 미국이 자극해서 일어난 일이었고, 미국은 이것을 마치 소련과 스탈린이 전 세계 공산화를 통해 자신들을 위협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선전으로 잘 이용해먹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전쟁을 만들어 냈고, 전쟁의 동력은 결국 미국 스스로가 키워낸 자본주의였다. 그 자본주의가 파시즘적 인사들에 대해 호의를 보였고, 도덕적인 측면도 어기게 만들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은 여전히 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북한, 베네수엘라 등등. 미국은 해당 나라들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이들을 적대한다.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 등장한 러시아 연방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적대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결국 현재 세계는 다시 한번 신냉전에 들어가게 됐다. 이것은 결국 저자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미국의 유산일 수도 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장식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최근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 같은 나라들에세 불타올랐고, 이제 그것은 러시아와의 새로운 냉전으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의 파워엘리트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이란, 북한 그리고 심지어 중국까지도 언젠가는 새로운 좋은 전쟁의 상대가 될 것이다. 그런 전쟁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히 가능하다. 부시와 블레어는 우리 미디어 대다수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고도 이라크와의 전쟁을 팔아먹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에게 전쟁을 그만두도록 계속해서 강요한다면 진실의 순간이 미국 경제에 도래할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평화가 발발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끝없이 포위당했던 나라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는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포위되지 않고도, 적이 없이도, 위협받지 않아도, 그것이 좋은 전쟁이건 아니건 간에 전쟁을 하지 못해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378~379쪽.)

현재 세계는 미국이 유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항상 제2차 세계대전처럼 좋은 전쟁으로 포장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의 이면을 보면 미국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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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bsb2063 2025-12-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목록들 보고 경악하고 갑니다. 그렇게 미국이랑 자본주의가 싫으면 제발 직접 북한 가서 사세요. 미제 자본주의와 기술의 혜택은 잔뜩 누리며 살고 계시면서 왜..
 
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폭력의 시대 서평: 폭력의 시대 21세기를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이름을 2020년에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역사학자는 하워드 진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를 존경하지만 홉스봄이라는 인물은 영국 공산당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역사학의 길을 갔다는 점이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홉스봄의 책을 딱 두권의 책을 읽었다. 한권은 그의 대표 저작인 <극단의 시대>고 다른 한권은 <혁명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의 또 다른 저서 <폭력의 시대>는 1990년대부터 2004년까지 그가 한 강연 내용과 소논문 그리고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해당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나오던 2000년대 초중반은 소위 미국의 세기로서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9.11 테러로 3,000명의 미국인이 그날 뉴욕에서 사망하자, 미국은 크나큰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소위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미국식 자유주의 이념이 타국에 전파되야 한다 믿었고 그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홉스봄의 말대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장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는지를 보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인한 농촌 인력 감소가 그러하다. 이는 한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얘기다. 한국은 과거 농업인구가 많았으나,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구 비율 매우 극소수다. 이는 과거 농업 국가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농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이런 현상은 분명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질병에 대한 얘기나 컴퓨터 기술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우선 질병 문제부터 얘기하겠다. 홉스봄이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소위 사스(SARS)가 유행하던 시기다. 나 또한 초등학생 시절 해당 질병이 뉴스에서 나와 자주 언급되고 국가적으로 대비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사스라는 질병이 의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질병이 퍼지는 속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COVID-19만 보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연관이 있기에 매우 와닿는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 수억 명이 감염됐고, 700만이 사망했다. 이 중 120만 명은 미국인이다. 아마도 미국은 자신들 역사 250년 동안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 수치보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전파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고, 지속된 기간도 그러했다. 격리ㆍ확진ㆍ치료ㆍ마스크ㆍ백신 등 전 세계인 모두가 대략 3년간 지쳤던 걸 생각해보니, 홉스봄의 강연은 은근 소름까지 돋는다.

컴퓨터 기술도 그러하다. 과거에는 인간의 영역이었던 것이 점차 컴퓨터의 영역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은 요즘 컴퓨터가 다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하던 계산이었다. 거기다 챗 GPT의 등장과 AI 기술의 발전은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해당 기술도 사람이 만들기에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 오류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글을 쓰는 이들에게 훨씬 편리하게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 기술의 혜택과 수혜를 인류가 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홉스봄이 코로나나 AI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해당 저서는 다소 한계가 있을지는 몰라도, 홉스봄이 기술의 발전 및 여러분야의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홉스봄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는 가장 끔찍한 전쟁과 파괴가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 및 물질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이 있던 시대였다. 말 그대로 극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뺏어간 제1차 세계대전과 7,0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이 한 나라에서만 벌어졌는데 수백만 명이 사망하게 되는 수많은 전쟁들. 어찌보면 20세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21세기는 이런 극단적인 전쟁이 줄어들었으나, 전쟁 자체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폭력과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드론 투입을 보게 됐다. 물론 여전히 탱크와 장갑차 같은 재래식 지상전력이 투입되고 또 전투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전투 양상의 극단적인 불균형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신식 무장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벌이는 중이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의 저항조직 하마스를 소탕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21세기에도 폭력적인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소위 평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해당 저작에서 홉스봄이 흥미롭게 언급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침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걸까? 물론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침공한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홉스봄은 폴포트의 킬링필드를 종결시킨 베트남의 캄푸치아 침공과 우간다 이디 아민 정권을 무너뜨린 탄자니아의 우간다 침공을 예로 든다. 홉스봄은 캄푸치아와 우간다의 경우 내정 불간섭 원칙을 크게 손상하지 않고 단기적인 개입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얻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개선 효과도 얻었으며 제국주의의 암시도 없었고 더 넓은 세계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을 때, 전쟁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글쓴이는 비폭력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해당 가치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의의는 잘 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비폭력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자칫하면 제3세계 약소민족의 해방투쟁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비난하며 서구 제국주의식 논리에 쉽게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 비폭력주의자들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표면적인 양비론을 보이다가도, 사실상 러시아만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심각한 신나치즘 문제에 흐린 눈을 하는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안다.

따라서 글쓴이는 홉스봄이 주장한 전쟁과 개입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극단적인 비폭력주의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 문제도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분명 대량인명살상무기다. 물론 끊임없는 군사경쟁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도 분명 사실적인 부분이 있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대적하는 북한이 핵무장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역으로 한반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췄다고 본다. 핵 없는 나라를 미국이 어떻게 했는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홉스봄의 분석 중 가장 흥미로운 분석은 바로 게릴라전과 반게릴라전 그리고 테러에 대한 분석이다. 홉스봄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쪽이 학살과 테러를 벌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페루의 마오주의 단체인 ‘빛나는 길‘의 경우 소위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성노동자와 일반 시민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적잖게 학살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단체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의 경우 해당 건으로 페루에서 재판받고 감옥살이를 하던 중 몇년 전 옥사했다. 그러나 홉스봄에 따르면. 이들의 학살과 테러가 소위 해당 게릴라를 토벌하던 페루의 정부군 토벌대 보다 심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홉스봄의 문제의식은 사실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도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테러를 벌였지만, UN 조사에 따르면 내전 기간 학살의 최소 85%는 정부군이 저질렀고, 5%는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저질렀다. 하다못해 1948년 여순학살만 보더라도 학살의 95%는 이승만과 미국이 보낸 우익 토벌대가 했고, 5%만 봉기한 병력이 했다.

홉스봄은 테러를 분석하며, 테러의 위험률을 일부러 과장하는 서구 언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그 당시 진행되던 9.11 및 중동전쟁과 연관이 있다. 사실 테러로 희생되는 사람 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당장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만 보더라도 침공 3개월도 안되 아프간인 사망자가 9.11 테러 총 사망자 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 즉, 테러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전쟁 행위를 합리화하는 미국의 문제를 홉스봄은 해당 저서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21세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모든게 다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국제정세와 현 상황을 파악하는 냉철한 의식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물론 좀 동의안되는 내용도 있었으나, 홉스봄의 분석은 여러모로 와닿았다.

홉스봄이 해당 저서에서 이른바 미국의 색깔혁명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독서였다.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분석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숙제를 남기고 더 많은 생각지점을 남길 것이라 글쓴이는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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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40 2025-11-18 0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필에 20대 청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혹시 이제 30대 되신 거 맞으시면 정정 부탁드려도 될까요? ^^

NamGiKim 2025-11-18 08:11   좋아요 0 | URL
생일 지나고 바꿀 예정입니다.^-^

NamGiKim 2026-01-24 19:19   좋아요 0 | URL
변경했습니다.
 

19435월 북아프리카 전역이 미국·영국·자유 프랑스·호주·뉴질랜드군의 승리로 끝났다. 북아프리카 전역은 이탈리아의 졸전에서 비롯된 전쟁이었다. 전쟁을 통틀어 무려 35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군이 연합군의 포로로 붙잡혔다. 히틀러는 동맹국인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에르빈 롬멜(Erwin Rommel) 장군을 보냈지만, 1942년 엘 알라메인 전투(Battle of El Alamein)에서 패전하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한때 롬멜의 독일 국방군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까지 진격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의 영국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후퇴를 반복하게 됐다. 결국 북아프리카 전역은 513일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허스키 작전 지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승리한 영국과 미국은 이탈리아에 상륙하기로 결정하고 작전을 구상했다. 작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의 의견차이는 있었지만, 그해 여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Sicily)에 상륙하기로 결정한다. 그 당시 독일군은 아프리카 뿐만아니라 동부전선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19432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소련군에게 대패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소련군은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 19437월 독일군은 최신식 전차인 티거를 앞세워 반격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쿠르스크 전투는 소련의 승리로 끝났다.

(허스키 작전에 투입된 미군 제82 공수부대 대원들)


(시칠리아 해안에 상륙하고 있는 연합군)

 

194379일 영미 연합군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영미 연합군은 총 10개 사단을 작전에 투입했다. 이 중 8개는 바다에서 그리고 나머지 2개는 하늘에서 데리고 왔다. 여기서 언급한 2개 사단은 미 제82공수사단과 영 제1공수사단이다. , 공수부대를 작전에 투입시킨 것이다. 이는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가 예측한 연합군의 상륙 능력치를 넘어섰을 뿐만아니라, 시칠리아 섬에 배치된 추축국의 병력을 규모로 능가했다. 물론, 이탈리아군은 12개 사단이 있었지만, 이 중 절반인 6개 사단은 기동성이 없는 군대였고, 나머지 4개 사단도 연합군의 병력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인 병력이었다. 사실 이탈리아군은 제2차 세계대전 내내 졸전을 거듭한 군대였고, 그나마 유능한 군대도 이미 독일을 돕겠다며 동부전선에 투입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 군대가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에게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다.

(1943년 7월 21일 시칠리아 전선 상황)

 

물론 연합군이라 해서 작전이 처음부터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미군 제82공수사단과 영국군 제1공수사단의 공수부대들은 경험이 없는 항공기 조종사가 부대원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신경이 곤두선 대공포 사수가 자기편 항공기를 쏘아 떨어뜨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군 공수부대는 독일군 공수부대의 역공에 부딪혀 큰 희생을 치렀다. 비록 공수부대는 작전 중 이런 어이없는 일을 겪었지만, 해안에 상륙한 부대들은 한결같이 상륙하는 데 다 성공했다. 영미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흥미롭게도 히틀러는 만슈타인 장군에게 시칠리아에 상륙한 영미 연합군에 맞서기 위해 기갑 군단 일부를 이탈시켜 보낼 것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쿠르스크 전선에 있던 독일군 기갑부대 일부가 이탈리아 쪽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조지 패튼)


(버나드 몽고메리)

 

시칠리아에 상륙한 이후 미군과 영국군은 진격을 지속했다. 조지 패튼(George S. Patton) 장군은 시칠리아의 서쪽 절반을 점령하는 데 기여했다. 반면 몽고메리의 군대는 에트나 산 동쪽을 지나 짧은 경로로 메시나를 가고자 했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몽고메리 예하사단은 재전개하여 서쪽을 지나가야 했다. 720일 영국군의 해롤드 알렉산더(Harold Alexander)는 패튼에게 팔레르모와 트리파니에 가할 공격을 늦추고 대신에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안도로를 따라 내달려 메시나로 가라고 명령했다. 히틀러는 공수부대와 앞서 언급한 기갑사단을 보내 시칠리아의 방어를 강화했다. 이 때문에 연합군의 전진이 느려졌다. 결국 패튼과 몽고메리는 82일이 되어사야 이어지는 진지선을 형성했다. 816일 이후에야 추축군을 강력한 방어진지에서 몰아냈고, 그제서야 겨우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817일 연합군이 메시나에 입성하자 독일군은 빠져나가고 없었다.

(팔레르모에 입성한 미군 기갑병력들)


(작전에 참여한 영국군 병사들)

 

허스키 작전은 1943817일 영미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외에 자유 프랑스와 캐나다 그리고 호주의 군대가 이 작전에 참여했다. 허스키 작전 기간 동안 영국군은 총 2,938명이 전사하고 9,212명이 부상당했으며, 2,782명이 실종됐다. 미군은 2,811명이 전사하고 686명이 실종됐으며, 6,471명이 부상당했다. 반면에 이탈리아군은 4,678명이 전사, 32,500명이 부상당했고, 11만 명 이상이 포로로 붙잡혔다. 독일의 경우 4,325명이 전사하고, 13,500명이 부상당했으며, 1만 명이 포로로 붙잡힌 것으로 나온다. 흥미롭게도, 독일군은 811일부터 단계적으로 이탈리아 본토로 철수했다.

(허스키 작전 관련한 영문 서적)

 

허스키 작전으로 시칠리아를 점령한 연합군은 사실상 지중해를 거쳐 중동으로 들어가는 연합군의 병참선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영국의 군사사학자 존 키건(John Keegan)이 때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이것이 실속없는 성취였다.”라고 평가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군 사단 병력 일부가 동부전선에서 이탈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히틀러가 빼낸 사단은 주로 서부전선에서 온 사단들이었고, 앞서 언급한 쿠르스크 및 동부전선에서 온 기갑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동부전선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연합군은 한 가지 성취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축출한 것이다. 허스키 작전이 진행될 당시,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이마누엘레왕은 파시스트인 디노 그란디와 함께 무솔리니 탄핵 결의안을 통과시켜 무솔리니를 해임했다. 그런 다음 후임 총리로 피에트로 바돌리오 원수를 임명했다. 결국 무솔리니는 사임한 후 전범 혐의로 체포되어 애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아펜니노 산맥 골짜기의 그란 삿소에 있는 산장에 연금됐다. 이것은 결국 히틀러가 무장 친위대 출신의 오토 슈코르체니가 이끄는 대원들을 보내 구출하게 만들었고, 이탈리아 일부가 추축국에서 연합국 쪽으로 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로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소위 빨치산 운동이 일어나 독일군과 독일의 꼭두각시인 이탈리아 사하 공화국의 파시스트 군대들에 맞서 투쟁하게 됐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탈리아 내의 진영을 나누어 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허스키 작전으로 시작된 이탈리아 전역은 이후 2년을 더 끌었다. 그동안 서방 연합군은 1944년 노르망디에 상륙했고, 1945년 독일 본토로 진입했으며 결국 동부전선에 있던 소련군과도 만났다. 히틀러가 사망하기 이틀 전 무솔리니 또한 애인과 함께 처형당했고, 이탈리아 전역도 55일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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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조건 -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법
자라 바겐크네히트 지음, 장수한 옮김 / 제르미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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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에 알게 된 한 독일 정치인이 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자라 바겐크네히트(Sahra Wagenknecht). 바겐크네히트는 1969년 과거 동독 지역인 예나에서 이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 군사훈련에 적응 못하여 동독 정부로부터 크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부 불이익을 받았던 자라는 1989년 봄 막 다른 길목에 내몰린 사회주의를 재구성하고 기회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동독 공산당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녀가 공산당에 가입했을 시기 동독의 호네커 정권은 무너졌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했다. 그 당시 바겐크네히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외 독일 통일을 반동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통일 이후 그녀는 예나 대학과 홈볼트 대학에서 철학과 독일 근대문학을 공부했으며, 19969월 네덜란드의 흐로닝언 대학 철학과에 등록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5년부터 국민경제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시작하여 20128월 그녀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독일의 로자룩셈부르크 재단의 연구 교수이자 켐니츠 대학의 미시경제학 교수인 프리츠 헬메닥에게 제출해 좋은 평가와 함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이와 더불어 독일 통일 이후에도 좌파로서 정치활동을 이어갔고, 2015년 이후부터는 좌파당의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좌파당 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가지고 갈등하다 2024년 바겐크네히트 동맹을 만들어 현재까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에 구 동독 지역에서 적잖은 지지율(10~15%)을 얻는 것처럼 보였으나, 2025년 안타깝게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총선결과 4.97%를 득표하고 0.03% 차이로 봉쇄조항에 미달하여 모든 의석을 잃고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2016년에 쓴 책이 있다. 책의 제목은 ‘Reichtum ohne Gier: Wie wir uns vor dem Kapitalismus retten’이다. 바로 풍요의 조건이다. 이 책은 2018년 제르미날 출판사에서 번역했고,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작년에야 알게 됐다. 사실 이 책은 21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비판서다. 현재 우리가 생활과 일상에서 숨쉬듯이 체감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분석했다. 해당 비판이 흥미로운 것은 현재 21세기 자본주의 경제를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경제 봉건주의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분석에서 바겐크네히트는 일정 부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통해 현재의 시장체제가 소수의 독점 자본가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성과나 책임 그리고 경쟁에 토대를 둔다고 하지만, 21세기 상황은 그것이 실행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바겐크네히트는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면서 이런 얘기도 한다. “소수가 멋진 요트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반면, 다수는 겨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증대하는 압박을 견디면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제로 정성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보편 선거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해야 상위 10%, 때로는 겨우 최상위 부자 1%만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정치가 거듭해서 다시 실현되는 것을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25.) 그녀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했다. , 현재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이 극소수의 자본가들을 위해 체제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이러한 부분에 전혀 문제의식을 못느끼거나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걸 바겐크네히트는 경제학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낸다. 계속해서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21세기가 시작된 지금도 최고 부자 1%가 중요한 경제적 자원을 그들의 손아귀에 장악하고 마음대로 사용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토지와 부동산 외에 산업시설, 기술 노하우, 디지털 혹은 다른 연결망, 서버, 소프트웨어, 특허 그리고 여타 다른 많은 것들 또한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자원들에 대한 소유권은 변함없이 세습 및 혈연원칙에 따라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그 수익은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거의 세금도 물지 않은 채 소유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것이 노동소득으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생활양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인구의 99% 중 압도적 다수는 이들 새로운 금융 귀족들을 위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29~30.)

 

21세기 들어 자본주의는 높은 생산력과 부를 창출해냈고, 물질의 향상과 기술력의 향상을 불러왔다. 그러나 앞서 바겐크네히트가 지적하듯이, 과거 귀족들이나 부르주아들이 부를 세습하는 사례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그 밑에서 일하는 노동계급은 여전히 그들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희생하며 하루 밥벌어 먹고살고 있다. 물론 이것이 19세기의 물질적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다르지만, 여전히 불평등한 생산관계 속에서 모순이 재생산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그녀의 분석은 책을 읽으며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1인당 GDP에 관한 얘기였다. 세계은행의 계산에 따르면, 아프리카 주민의 1인당 GDP가 식민지 체제의 해체 당시에 견주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아프리카 가나의 건국의 아버지 콰메 은크루마가 레닌의 제국주의론적인 분석에 근거하여 신식민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적잖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전후 냉전기 독립을 했음에도 여전히 저발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가난에 직면한 이유를 자본주의 지배체제에서 은크루마는 찾았다. 그녀에 따르면, 아프리카 뿐만아니라 서부 발칸 국가들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해체 이전인 1989년에 비해 현재(2016년 기준) 산업생산 수준이 10% 아래로 내려갔다고 한다. , 지난 25년간 자본주의는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생활수준의 하락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73.) 물론, 반대 사례로서 중국이나 한국 등은 분명히 번영을 이룬 것도 빠지지 않고 설명하지만, 여기서 바겐크네히트는 이들 나라를 부자로 만든 것이 과연 자본주의인가?라고 의문을 던진다.

 

그 외에도 바겐크네히트는 교육기관의 문제, 식품 생산의 문제, 환경 문제, 최저생계의 문제, 자본의 카르텔, 독점 기업 등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들을 분석했다. 심지어 21세기에 들어온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알고리즘, 유튜브, 구글, 그 외의 sns 등도 분석했다. 사실 우리가 무심코 구글에서 무언가를 검색하면, 그에 맞는 데이터들이 뜨는데, 구글의 검색 엔진을 사용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들이 축적되며 구글은 이 데이터들을 처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 광고 지출의 10%에 이르는 금액이 검색 엔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구글이라는 한 회사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바겐크네히트는 국내총생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한다.

 

국내총생산이 번영의 기준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것까지는 없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연 3만 달러인 나라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1인당 국내총생산이 3,000달러에 머물러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보다 잘산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가난한 나라의 빈곤퇴치가 국내총생산의 성장과 결합되어 있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의 경험으로 보건대, 부자 나라에서 국내총생산과 가난은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 더 많은 물품과 서비스가 생산되고 이어서 팔린다면 우리 경제는 성장한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으려면, 실업이 줄든 인구가 성장하여 하여튼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되거나 같은 수의 사람이 더 오래 일하거나 혹은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생산하면 된다. 바로 이 사실에서 이미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업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정규직 노동자가 더 긴 시간 노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같은 물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반드시 개선하지도 않는다. 물품에 대한 수요는 결국 언젠가는 충족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기업가는 물론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는데, 그것이 '그들의' 성장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풍요는 그것을 통해 반드시 높아지지는 않는다.”(자라 바겐크네히트, 풍요의 조건, 2018, 208~209.)

 

, 국내총생산이 증가해도 이것이 반드시 소위 자본주의적 풍요를 절대다수에서 보장하거나 향상시킨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은 분명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국내총생산과 국민소득도 향상됐다. 그러나 그 성장 이면에는 현재 청계천에서 살던 판자촌 주민들이 있었고, 비교적 성장을 하게 된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들은 개미굴이라 불리는 곳에서 사실상 노숙 생활을 했다. , 빠른 성장이 국민들의 균형적 복지와 물질적 풍요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그 당시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사람들의 보편적인 물질적 수준은 매우 향상됐다. 그리고 성장을 하더라도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말 그대로 굶지는 않더라도 하루 밥벌어 먹고 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에 반해 상위 1%는 그때도 풍족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모순을 생각해보자면,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분석은 많이 공감이 된다.

 

그녀의 책 풍요의 조건 자본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법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대중적인 언어로 담고 있는 책이다. 상당히 읽어볼만하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을 정도다. 또한, 경제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몰입해서 읽었을 정도니 바겐크네히트가 대중적으로 책을 집필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바겐크네히트의 책이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새롭고 흥미진진한 분석을 그녀가 내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해결 방법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의 변혁과는 거리가 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진보당만 하더라도 기간 산업의 국유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녀의 주장에는 이와 같은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진보좌파라면 지금 당장의 자본주의 해체를 주장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기간 산업의 국유화 정도는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얘기가 없다. 이게 좀 많이 아쉬웠다. 자본주의적 봉건체제의 극복이나 대외문제 의식 그리고 경제문제 의식은 좋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주장이 너무 없는 것은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인에게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상당히 친 동독 정부 성향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독일이 친동독적 주장을 상당히 막고 있기에 바겐크네히트 또한 정치인으로서 문제될 것을 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러우전쟁 관련해서도 언급하겠다. 바겐크네히트는 서문에서 러시아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과두 자본주의로 전환한 후 세계 무대에서 잠시 사라졌으나 이제 다시 영향력을 높이려는 투쟁에 나섰다.”고 언급한다. 그녀는 그 당시 진행되고 있던 2013년 유로마이단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그리고 돈바스 내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라 바겐크네히트가 정치인으로서 가장 돋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측면이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항상 반대해왔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전 이후 독일은 그녀의 주장과는 달리 망상과 루소포비아에 빠져 전쟁을 선동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래서 내가 바겐크네히트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있다.

 

아무튼 너무나도 재미있는 책을 완독했다. 현대 21세기 자본주의에 대해 알기 위해 한번 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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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프스키 2025-03-25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라 바겐크네히트 이름은 들어 보았는데 저런 도서의 저자이자 다른 몰랐던 이력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인가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이라고 이 분이 이끌던 정당에서 한때 지지를 획득하다가 선거에서는 1/5555(0.018%)차로 원내진입을 실패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