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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너머 -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
카트야 호이어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4년 2월
평점 :
1. 들어가며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90년은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과 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마침내 통일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부터 1년 뒤 미국과 더불어 냉전의 한 축을 차지했던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다. 동일 통일과 소련 해체를 전후로 수많은 동구권 국가의 체제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됐다. 1980년대 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한국의 학생들은 이와 같은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1990년 독일의 통일은 한국 사람들에게 따라야만 할 통일의 기준이 되었고, 그러한 인식은 2024년 현재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다.
1990년의 독일통일은 서독의 흡수통일이었다. 즉, 자본주의 국가인 서독이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을 완벽히 흡수한 통일이라는 얘기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독일통일을 보며 한국이 북한을 그렇게 흡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독일 통일 이후 동독에서 생긴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들을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일 이후의 문제점이라고 해봐야 “한국이 북한 사람들 먹여 살려야 한다”라는 식의 지극히 재벌·자본가의 인식이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일 것이다. 즉, 한국 사람들 인식에는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되고 난 이후에 이들이 겪어야 했던 실업·극대화된 빈부격차·임금격차·남녀차별·토지권 박탈 등의 문제가 있었는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동독에 대한 인식도 그러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 이원복 교수의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즐겨 읽었었다. 특히나 필자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묘사한 동독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원복 교수가 만화에서 묘사한 동독은 자유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고, 생필품은 항상 부족하며, 인민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항상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었다. 만화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독의 입장만을 생각하게 됐고, “역시 공산주의는 이래서 안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글쓴이가 동독에 대해 다시 재평가하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 독일 통일 이후 역으로 여성인권이 하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였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5~6년 전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비교적 흥미를 가지고 있던 필자는 이후 대학원 수업에서 자유주제로 동독 시절 여성인권에 대해 발제를 한 적이 있다. 발제문을 준비하면서 느꼈지만, 동독의 여성인권은 세계 최고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때마침 올해 2월 매우 흥미진진한 책이 번역됐다. 그 책이 바로 카트야 호이어가 집필한 『장벽 너머 –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이다.
2. 사라진 나라 동독은 어떤 나라였는가?
사라진 나라 동독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국가다.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결국 전쟁에서 패망했다. 전쟁에서 패망하자 독일은 동과 서로 분단됐다. 독일의 서부지역은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했고, 동부지역은 소련이 점령했다. 흥미롭게도 수도 베를린의 경우 소련이 접수했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소련은 서구 진영에게 베를린도 분할 접수하도록 양보했다. 그렇게 해서 독일은 베를린도 소련 지역과 미국 지역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소위 우리가 아는 서독과 동독은 1949년에 탄생했다. 서독이 먼저 탄생했고,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 동독이 탄생했다. 서독의 공식 명칭은 독일연방공화국이었고, 동독의 공식 명칭은 독일민주공화국이었다.
동독의 경우 국가가 탄생하기 전 소련군정 하에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진보적인 개혁 및 사회변혁을 거친 다음 탄생했다. 저자에 따르면, 1950년대 동독은 신생 공화국으로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기틀을 잡는 데 거의 전적으로 매달렸고, 1960년대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다음 야심찬 건설 사업과 더불어 우주경쟁, 그 밖의 과학적 성과를 달성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들어 동독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 중 생활수준이 가장 윤택한 국가가 되었고, 유엔 회원국이 되어 세계의 여러 국가들에게 인정 받았다. 1980년대에는 여전히 생활수준이 발전하고 많이 윤택했지만, 동독 사람들은 서독을 부러워했고 결국 스스로 변화를 꾀했으며 이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동독은 결국 서독에 의해 흡수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책에서 얘기하는 것과 같이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 매우 잘사는 국가였다. 1990년 기준 소련의 1인당 GDP가 9,200달러였는데, 동독은 이것보다 400달러 높은 9,679달러였다. 참고로 그 당시 미국이 21,082달러고, 서독이 15,300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독의 생활수준은 결코 못살지 않았다. 그 당시 경제성장으로 비교적 중진국 정도로 잘살게 된 한국의 1인당 GDP가 5,000달러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다 1970년대 동독의 호네커 정부는 주택·복지·오락에 막대히 투자했고,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었으며 1980년대 동독인들의 평균 월급은 1,021마르크였다. 즉, 평균 월급도 꾸준히 상승했고, 1987년 기준 절반 이상의 동독 가구가 자가용을 소유했으며, 모든 가구가 세탁기·냉장고·텔레비전을 적어도 한 대는 보유했다. 또한, 1970년대 초중반 기준 서독의 4인 가구가 순수입에서 최소 21%를 집세로 지출했지만, 동독의 4인 가구의 집세 지출은 4.4%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파트를 포함한 집들의 수준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질적으로 향상됐다.
이는 당시 전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들의 빈민층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생활이다. 거기다 1962년부터 동독 정부는 프리츠 헤케르트호와 같은 유람선을 만들어 동독 시민들에게 서독이 이룬 경제 수준에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생활 수준을 구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참고로 동독의 퓔커프로인샤프트호는 1980년대까지 동독에서 운영하였고, 2021년 7월 미국 여행사가 매각하여 현재까지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배의 성능이 질적으로 나쁘지 않으니, 현재까지도 운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점들을 보자면, 동독은 분명 책의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이 인민들에게 제법 윤택한 생활을 제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단순히 자본주의적 성장이 아닌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토대를 바탕으로 둔 성장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즉, 사회주의 국가들도 자신들 나름 기술과 과학 그리고 일생에서의 생활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동독이라 해서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 또한, 슈타지와 같은 경찰 공권력 강화나 베를린 장벽의 탄생 등을 지적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자동차들의 경우 받기까지 대기시간이 최소 7년은 걸렸다. 물론 트라반트나 몇몇 기종들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바로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최신 자동차들의 경우 여전히 대기시간이 오래걸렸다. 그리고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동독의 질적 발전은 분명 사회주의적 성과임에도 지나치게 물질을 강조한 측면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윤택함을 부러워했고, 이것은 결국 동독 정권의 해체를 불러왔다. 즉, 물질주의 그 이상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사상 및 계급 교양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 같다. 동독의 해체는 다른 의미에서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동독의 한계점도 분명히 명확하다.
또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다. 최소 300만 명 이상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갔다. 이는 동독이 서독보다 높은 출산율을 보였음에도 동독이 저인구 상태를 유지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필자가 생각하는 동독의 한계를 짧게 언급한 것은 필자가 생각하는 동독의 한계점과 책 저자가 생각하는 동독의 한계 및 문제점은 상당히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책을 보며 가졌던 비판점들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자 한다.
3. 책에 대한 명확한 비판 지점 및 문제점들
카트야 호이어의 책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깊게 다루지 않는 동독 사회를 다룬다는 점에서 분명히 높은 점수를 받을만한 책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책의 한계나 비판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저자의 친서구적인 내러티브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저자는 책 초반부에서 소련의 독일 점령을 얘기하며, 붉은 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전시 강간에 대해 지적한다. 물론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서구 학계의 전형적인 클리셰이긴 하다. 그리고 이를 언급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과장된 숫자를 인용하는 것은 지적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소련군의 전시강간 피해자가 200만 명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상당히 과장된 수치다. 다른 여러 자료를 같이 인용해야할 사례인데, 서구 반공주의자들이 하는 자료를 너무 액면 그대로 인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친서구적인 관점은 동독과 서독의 건국 과정 및 1950년대 상황에 대한 얘기에서도 상당히 많이 드러난다. 저자는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중반까지의 동독의 전후재건과 경제성장 및 사회발전에 대해 부정적인 요소들만 강조하고자 했다. 저자는 이와 같은 동독 상황을 비교하며, 서독의 발전이 경제 및 정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서독의 경제성장이 동독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전후재건기 동독의 경제적 한계만 지적하는 것이 과연 페어(공평)한지는 상당히 의구심이 든다.
대표적으로 저자는 동독에서 이루어진 토지개혁에 대해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데, 여기서 내세우는 내러티브는 다음과 같다. “동독의 토지개혁은 돈 있는 사람들 기존에 토지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독일의 대토지 소유층인 융커들이 서독으로 이주하여 이는 경제발전에 타격을 줬다.” 대략 이런 식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동독의 토지개혁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1946년 북한에서 진행된 토지개혁을 생각해보자. 북한의 토지개혁은 5정보 이상의 토지소유자들을 무상몰수하여 무상분배했다. 이는 빈농 계급을 중심으로 토지를 분배하는 데 성공적이었으며, 심지어 25일 만에 종결됐다. 조선시대부터 수백년간 지속된 봉건주의적 불평등이 사라졌고, 심지어 몰수당한 지주들도 토지를 일부 분배받아 경작하게 됐다.
따라서,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의심한 부분이 바로 동독의 토지개혁과 성과에 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동독 토지개혁에 대한 성과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 얻은 동독에 대한 토지개혁 관련 정보는 대지주의 관점으로만 보게 되는 편향성이라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 필자는 이에 관한 부분이 궁금하여 몇몇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찾아보니 동독의 토지개혁이 유혈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학계의 평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한, 소련의 강압적 측면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됐다. 오히려 문제는 1990년 통일 이후 발생했다. 과거 동독으로 도망친 서독의 구 융커 출신들과 그 후손들은 통일 이후 자신들의 땅을 동독인들로부터 빼앗았다. 이에 따라 역으로 독일의 지역갈등이 심화됐다. 따라서 동독에서의 토지개혁에 따른 무토지 계층의 성장과 확장을 안다룬 점은 크나큰 한계다.
아무래도 저자가 영국왕립역사학회 정회원이다 보니, 서독 아데나워 체제에 대한 칭송이나 토지개혁에서의 맥락 무시 등의 문제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독의 발터 울브리히트 체제에 대해 내리는 평가도 너무 친서구적 내러티브를 따른 것 같았다. 저자는 울브리히트가 스탈린 체제의 소련에서 살아남으면서, 스탈린식 숙청과 권력독점욕을 배웠다고 얘기한다. 스탈린의 편집증 또한 마찬가지다. 스탈린 대숙청에 대한 저자의 주관은 대숙청 전통주의에 상당히 가깝다. 이와 같은 내러티브는 소련사를 연구하는 수정주의 학자들이 상당부분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거기다 발터 울브리히트를 스탈린 체제의 전적인 수호자로만 보려는 저자의 시각에도 상당히 의문이 든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울브리히트는 친스탈린 노선을 수정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1970년 이후에 후계자 에리히 호네커에게 직책을 넘겨줬다. 또한, 그가 1950년대 이후 저자가 생각하는 그런 권력 독점욕을 불렀다는 증거가 없다. 저자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오히려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들이 책에서 제법 부각됐다. 따라서 발터 울브리히트를 서구가 생각하는 스탈린 내러티브에 맞춰 보는 것이 앞뒤가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부분은 북베트남 관련 서술이다. 저자가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거슬리는 내용들이 있었다. 저자는 북베트남 체제가 전시 동원을 위해 고혈을 짰다거나 착취했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미국이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남부베트남에 친미정권을 세웠다고 묘사한다. 너무나 친서구적인 관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반박하자면, 첫째, 북베트남 정부 또한 집산화와 국유화를 끝냈기에, 생산물을 부당하게 취하는 계층이 없었다. 둘째, 북베트남 정부는 대중동원은 강압이 아닌, 자생성과 민족성에 기인했다. 따라서 강제로 시킨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셋째, 미국이 남부베트남에 만든 정권은 프랑스에 부역하던 식민지 협력자들이 집권한 정권이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맥락을 생략한 성의 없는 설명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책의 비판 지점들을 비교적 길게 썼다. 비판 지점을 길게 쓴 이유는 필자가 이 책을 폄하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러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은 개인적인 생각도 있지만, 앞으로 국내에 번역될 동독 및 동유럽 현대사 관련 책들이 이런 친서구적인 내러티브에서 좀 벗어난 시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할까?
4.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2장에서 설명한 부분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즉, 저자가 설명하는 동독의 사회발전 부분은 상당히 읽어볼 만하다. 즉, 동독 정부가 인민 생활 발전을 위해 노력한 부분들은 한국 사회가 상당히 모르는 부분이다. 실제로 울브리히트는 생활수준을 향상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냈다. 1960년에는 6%의 가구만이 세탁기를 소유했으나, 1970년에는 절반 이상이 손으로 빨래할 일이 없었다. 덕분에 여성들이 집안일을 돌보면서도 전업으로 일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1970년에 이르러서 56.4%의 동독 가구가 냉장고를 소유해 28%인 서독을 웃돌았다. 즉, 책에 나오는 이러한 설명들은 상당히 읽어볼만한 자료다.
그 외에도 2장에서 언급한 자동차 보유 및 공급의 증가, 여성인권의 성장, 주거생활의 확장 등은 당연히 읽을만한 지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참고할 부분은 상당하다. 또한, 동독 군대 장교의 인적 구성에 대한 얘기나, 동독의 양심적 병역 거부의 허용 등의 내용도 참고할 만하다. 그리고 동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독의 일반적인 노동자들과 같은 임금을 받고, 제도적 차별을 받지 않았다는 저자의 지적과 주장도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다. 즉, 사회주의의 단결이 인종차별을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최소화했는지(물론 동독이 인종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인종문제에서 차별을 최소화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3장 비판지점에서 저자는 소련군의 전시강간을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소련군의 전시강간 문제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전시강간이 심했고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저자가 강조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전쟁 시기 여성과 아이들에게 잘 대해주던 소련군에 대한 언급도 분명히 한다. 독일의 한 유부녀가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소련군을 달래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러한 부분은 비교적 참고할 부분이라 생각이 들며, 앞으로 더 사례별로 연구가 되어야 할 부분이라 본다.
저자가 탈나치 청산에 있어서 동독이 서독보다 앞섰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 본다. 동독 정부는 탈나치화를 위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는 것을 감수했다. 서독의 경우 나치 출신을 공직계·교육계·문화계, 심지어 경찰 조직에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독일민주공화국은 반파시즘을 기본 신조로 유지했다. 비록 군대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홀로코스트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던 점 등 굵직한 예외가 있기는 했으나, 동독의 탈나치화는 훨씬 더 전면적이었으며, 학자와 경찰이 사라진 자리는 미숙하더라도 이념적으로 문제가 덜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런 점에서 동독의 탈나치화 과정은 분명 재평가가 필요하다.
1952년 스탈린 각서에 대한 저자의 평가도 중요하다. 저자는 그 당시 스탈린이 독일에 중립국으로서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음을 인정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지적은 과거 냉전 시기 스탈린과 소련이 팽창적이었다는 전통주의적 사관과는 분명 다르다. 또한, 1953년 동독에서 발생한 1953년 동독 봉기에 대해서도, 단순히 동독 사회주의 정부가 억압했다고만 보지 않고, 그 시위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점도 읽어볼만한 지점이다. 1953년 동독 봉기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친서구적인 관점이 없지는 않으나, 적어도 서구의 정치공작과 개입에 대해 인정하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한 지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길게 인용하고자 한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냉전 전문가로 미국의 동독과 서독에 대한 정책을 전공한 크리스티안 오스터만(Christian Ostermann)은 이런 명명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봉기는 과한 노동량과 적은 임금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이지만, 서방이 부추긴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는 독일민주공화국 정권을 전복하는 데 힘을 실어 줄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승인하지는 않았으나, 6월 16일과 17일 내내 서베를린 방송국 리아스를 통해 독일에서 운동을 조직하는 데 도움이 될 병참 정보를 내보냈다. 서독 요원들은 미국 정보부의 지원을 받아 봉기 이후 독일민주공화국의 정치를 와해할 목적으로 추가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서방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독일사회주의통일당 서류에 남은 증거와 최근 공개된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를 연구한 오스터만은 또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봉기에 화들짝 놀랐으나 금세 ‘롤백’정책의 기회를 포착했고 동독의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게 할 목적으로 심리전을 계획했다.” 동맹 미국을 등에 업은 서독은 6월 17일의 사건을 빌미로 동독의 불안을 더욱 자극했다. 봉기 닷새째가 되던 날, 서베를린 상원은 샤를로텐부르거 쇼세의 이름을 ‘6월 17일의 거리’로 변경했다. 3.5km 길이의 이 대로는 서베를린을 가로질러 동독 구역이 시작되는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이어진다. 2주도 지나지 않아 서독 정부는 6월 17일을 국경일로 선포했다. 역사학자들은 지금도 서방의 개입이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있으나, 하나 확실한 것은 울브리히트와 그의 조력자들은 자신들의 공화국이 포위되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팎의 적들에 맞서 독일민주공화국을 보호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안체계를 구축했다.”
카트야 호이어, 송예슬 옮김, 『장벽너머 -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 서해문집, 2024, 209~211쪽.
인용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서구의 개입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지점들은 분명히 읽어볼만하다. 이제 개인적으로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점과 결론을 간략하게 얘기하고자 한다.
5. 책에서 추가적으로 재밌게 읽은 내용과 결론
전반적으로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앞서 언급한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깊게 다루지 않은 동독의 역사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다룬 서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본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몇몇 부분들은 주의해서 읽어야할 것이다. 책에서 흥미진진하게 읽은 또 다른 내용을 얘기하자면, 동독의 락문화와 1973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관한 내용 그리고 동독으로 이주한 미국의 가수인 딘 리드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딘 리드의 경우 말 그대로 이 책을 통해 난생 처음알게 됐다.
미국인 대중 가수 중에 1960년대 단순히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을 넘어 칠레의 아옌데를 지지하고,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신념을 드러는 인물의 사례가 명확히 있음을 확인해서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깊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1950년대 초 동독에서 벌어진 양키 딱정벌레 잡기 운동도 기회가 된다면 보다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싶다. 사실 올해 여름 필자는 이탈리아와 폴란드를 갔다왔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사회주의 시절을 전시한 박물관에 들렸다. 거기서 필자는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가 만든 양키 딱정벌레 퇴치 운동 영상을 봤다. 이 부분에 상당 부분 흥미가 생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카트야 호이어와 같은 책이 동유럽 현대사 관련하여 비슷한 책들이 국내에 번역 및 출간되면 좋겠다. 아마 관련 연구들과 비교하는 것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선 흥미진진할 것이다. 카트야 호이어의 책의 원서는 2023년에 출간되었다. 즉, 몇몇 문제에도 불구하고 동독에 관한 최신 연구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읽을 가치는 분명히 높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면서 긴 서평을 마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