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하다
이정훈 지음 / 사람과사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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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한다』, 사람과사상, 2018 독후감

(이 글은 양심수후원회에서 진행했던 독후감 대회에 제출한 독후감입니다. https://yangsimsu.or.kr/notice/?idx=173120896&bmode=view )

‘주체사상!’ 절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이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 단어를 본다면, 단어 하나만으로도 북한, 김일성, 독재, 우상화, 세뇌, 정치범 수용소, 사이비 종교, 김씨 왕조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주체사상은 말 그대로 절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단어로 인식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고 있는 단어다. 즉, 북한에 대해 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쇠사슬과 같은 단어인 셈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는 앞서 말한 바와같이 부정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장 유튜브에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주체사상이 가진 철학적 함의나 이른바 북한(북조선)에서 주장하고 있는 철학적 맥락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본 결과, 북한을 매우 부정적으로 다루는 채널A의 방송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가 제작한 주체사상 관련 영상들이 주로 검색된다. 그중 한 영상의 제목은 「내 말이 곧 율법, 김일성의 신격화를 위한 이론, 주체사상 | 이제 만나러 갑니다 570회」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주체사상의 실제 내용과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인식과 북한의 독재를 비판한다는 맥락 속에서만 접근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영상이 설사 한국 사회에서 얘기하는 부분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접근이 과연 객관적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다. 거기다 한국에는 국가보안법이 있기에 일반 시민 누구라도 주체사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이지 않게 얘기를 한다면, 자의적인 법 해석에 따라 처벌받기 십상이다. 사실 필자는 대학원에서 북한의 역사를 공부했다. 북한의 역사를 공부하며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가르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북한 외교사와 관련한 학위논문을 작성했다. 특히 1960~1970년대 북한 외교사를 다룬 필자로서는 북한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필자는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서 다수의 북한 자료를 열람하고 복사했으며 해당 자료들을 1차 사료로 논문에 적잖게 인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공식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북한 측 자료의 내용이 흥미로웠기에, 필자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 확보한 자료 일부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필자는 서울경찰청으로부터 국가보안법 문제로 사찰을 받았다는 통보를 2025년 11월에 받았다. 필자의 경우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게시한 것으로 인정되어 압수수색이나 구속, 기소와 재판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경찰청이 전화를 건 이유는 표면적으로 수사 종료를 통보하면서도, “너 이런 것 올리면 정말 처벌받을 수 있다!”라는 경고와 위협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려는 데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심지어 연구자들도 북한에 관해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사회가 바로 AI가 발달하고 K-pop이 유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는 여전히 북한에 대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북한을 알아야 하며, 다른 관점에서 북한을 이해하고 접근하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는 민주화를 이룩하고 경제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이와 같은 구시대적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
AI 시대라 불리는 2020년대에 이러한 검열과 감시, 위협을 경험한 필자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6월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회장 김혜순, 이하 양심수후원회)가 국가보안법에 맞서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형 독서운동을 추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자는 논문 최종 정리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이 독서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하여 필자는 지난 2021년 기소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정훈 씨의 책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한다』를 읽게 됐다.

『주체사상 에세이』는 이정훈 씨가 2000년대 중후반 수감 생활 중 정리한 주체사상 관련 글을 책으로 엮은 저작이다. 책은 문재인 정부 시기 남북 관계가 한참 좋아지던 2018년 8월에 출간됐다. 따라서 해당 저작은 저자가 감옥에 있던 시절 정리한 글을 다시 한번 정리한 것이기에, 개정증보판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북한에서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관해 저자가 나름의 관점에서 요약·정리하고 분석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북한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고 보는 것은 심각한 비약이자 맥락 무시다. 물론 해당 저작은 주체사상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이런 시각이 한국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저자도, 필자도,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인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은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필자의 주체사상 이해가 반공주의적 통념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이 국가·정치·사회 전반을 설명하려는 나름의 철학 체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측면은 자세히 몰랐다. 그래서 저자 이정훈 씨가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분석한 인생, 철학, 의식세계, 정치, 경제정책, 자본주의, 민족문제, 타국의 혁명, 문화, 사업 방법론 등은 매우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제1장 2절에 있는 「중용이라는 착각」이라는 대목이 대표적이었다. 이정훈 씨는 “사람들은 흔히 중립, 중도를 좋아하며 자기 사상은 중용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대체로 중도, 중용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역시 착각이다.”(책 25쪽)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근로대중인 만큼 원래 중립에 서면 근로대중의 입장에 가까워야 마땅하지만, 이상하게도 현실에서는 중간지대는 근로대중의 편이 아닌 소수 지배층, 주류사상 편에 치우쳐 있다. 심지어 근로대중조차 수구보수 기득권층과 자본가의 지배논리에 쉽게 동조한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다소 이론적인 표현으로 ‘생활과 견해의 불일치’ 또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고 설명한다.(책 27쪽)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중용이 언제나 올바른 길이라는 믿음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필자는 이러한 철학적 접근이 매우 흥미로웠다. 물론 해당 분석은 주체철학의 사유 방식을 일정 부분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생각해 볼 지점을 만들고 있다고 보며,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국제 정세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202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격화됐다. 이 시기 한국 언론에는 팔레스타인의 중심 세력인 하마스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적잖게 올라왔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의 테러와 학살을 둘러싼 검증되지 않은 주장과 가짜뉴스까지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하는 제국주의 침략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해방 이후 미군정의 점령과 억압을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필자 주변에도 중립을 자처하며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을 상대적으로 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논리대로라면, 이러한 사례 또한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는 점에서 잘못된 중용의 사례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정훈 씨의 책은 이와 같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필자에게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의 관계에 관한 저자의 분석도 일반적인 텍스트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주체사상에 입각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분석에 대해 필자의 입장을 짧게 얘기하자면, 설득력이 있는 부분과 설득력이 다소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주체사상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진영 안에서도 수많은 논쟁을 부른 사상 중 하나였다. 즉, 사회주의는 한국의 일반적인 반공 진영이 인식하는 것처럼 단일하고 획일적인 사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당 저작의 분석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폭넓게 토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이정훈 씨의 저작에서 특히 공감하며 읽은 대목이 있다. 바로 한국 경제 구조의 모순을 지적한 부분이다. 많은 사람은 한국경제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박정희 시대 한국의 경제가 성장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 한국경제가 세계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주장 또한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매우 힘들다. 박정희의 공로가 크다는 주장은 진보 진영에서 반박을 많이 하기도 하기에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주장이지만, 한국경제의 규모 자체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과실을 누가 누렸는지를 따져 보면 또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우선 이정훈 씨의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겠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속적 자본주의 경제의 특징은 경제가 발전하고 GDP 규모가 커져도 국민경제의 자립성은 외려 더 떨어지고 근로대중의 복지는 개선되지 않는데 있습니다. 반면 외래자본과 재벌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해방 직후와 비교하면 한국경제는 2018년 현재 1인당 GDP가 417배나 증가했다는데, 당시에 비해 자신이 400배 이상 부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2015년 통계를 보면 한국 자산의 상위 10%가 전체 부의 66%를 소유하고 나머지 하위 50%가 전체 부의 겨우 2%를 소유하고 있어요. 상위 1% 부자는 평균 주택 7채를 소유하고 전국 땅의 50% 이상을 차지했구요. 2017년 현재 노동자의 절반이 월 200만 원도 받지 못하고 하위 30%는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 원도 못 받고 있습니다. 서민들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정도가 아닐까요? 경제성장의 성과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한국 경제전략은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경제 시기를 제외하면 크게 국가주도 경제개발 시기와 신자유주의 개방경제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제전략의 변화도 한국의 내적 필요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과 아시아 경제전략의 변동에 따라 추진됩니다.”(책 204~205쪽)

이 인용문은 한국 경제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혜택을 과연 누가 누렸는지를 묻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분명 모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분배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형평성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상위 1%의 부자는 평균적으로 주택 7채를 가지고 있고, 전국에 있는 땅 5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한국 사회의 계층 격차는 매우 크다. 책이 인용한 2017년 통계에 따르면, 하위 30%는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 원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도 함께 지적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단지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다룬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종북주의자의 책’으로 낙인찍고 있다.

그 외에도 재밌게 읽은 부분은 많지만, 지면 관계상 해당 서평에서는 생략하겠다. 주체사상 자체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해당 사상은 북한의 초대 지도자 김일성을 중심으로 발전한 북한의 공식 지도이념이다. 북한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발휘하는 존재다. 북한은 이러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철학과 정치사상을 체계화했다. 물론 주체사상 자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도 적잖은 논쟁을 불러왔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맥락과는 별개로 우리는 주체사상 그 자체에 대해 단순히 독재나 세뇌 그리고 종교화라는 부정적인 맥락으로만 본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주체사상 서적을 읽는다고 해서 다 북한을 찬양하게 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책 7쪽) 필자 또한 같은 생각이다.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고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읽을 수 있다.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202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북한을 알 권리와 북한 관련 자료에 접근할 방법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의 사상 통제 논리를 계승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여순사건 직후 제정된 이래 여전히 사람들의 사상적 토론과 사고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이다. 필자는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많은 부분에서 생각해 볼 지점들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분석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사회에서, 이정훈 씨가 쓴 책 역시 출간되고 읽힐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이 분야에서 공안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완독했지만, 주체사상주의자가 되지는 않았다. 필자 또한 북한에 대한 원자료를 SNS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감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가진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정훈 씨는 올해 4월 14일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법적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사상의 자유를 옥죄며 해석과 적용을 국정원과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 현재 이정훈 씨의 저작 『주체사상 에세이』는 그러한 현실을 벗어던지는 데 있어 큰 의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직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책이 여전히 탄압받는 현실의 부당함이다. 필자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국가보안법의 부당함과 폐해를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해당 저작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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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지음 / 어깨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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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의견에 따라 내란수괴 윤석열이 파면됐다. 2024년 12월 3일 느닷없이 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의 행동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반윤투쟁에 열심히 참가했다. 4월 4일 그날 오전 나는 임금노동자로서 야근을 했음에도 퇴근하자마자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헌재 앞에 있는 바리케이트까지 가서 나는 대중들과 함께 ‘윤석열 파면!’을 외첬다. 그리고 헌법재판관 문형준이 판결문을 읽어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가 ‘윤석열에게 파면을 선고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뻐 날뛰었다.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으며, 감동의 눈물까지 나왔다. 그 현장에서 느낀 감동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은 대선을 치를 것이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현실정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윤석열의 반대세력인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대선을 통해 집권할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재 이것이 한국 민중이 바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다시 한 번의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정국 때, 정권 교체 이후 어떻게 사회가 흘러갔는지 명백히 기억하고 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시기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소방서에서 공익으로 군복무를 했다. 그리고 전역 하기 전 문재인 정부를 경험했다. 문재인 정권 5년을 기억하고 있다. 이 5년 동안 나는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 사실 그래서 2022년 대선 때, 윤석열을 찍지도 않았지만 이재명을 찍지도 않았다.

 

문재인 정권 시기 나는 민주당이 어떠한 실망을 남겼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전혀 철폐하지 않았고, 말로는 남북평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하고 미국제 무기를 사들였다. 그리고 2021년 LG 청소노동자 투쟁 때 비록 청소노동자들의 복직을 이루어주었지만, 집권 내내 노동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노동존중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재벌과 자본가 편을 들었다. 박근혜 정권 시기 문재인과 민주당은 사드를 빼겠다고 소성리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전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집권 시기 나는 소성리에 가서 사드를 막는 투쟁을 한 적이 있고 경찰과 충돌했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보여준 위선적 모습을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사실 이런 모순은 노무현도 보였던 문제다. 사실 맑스-레닌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더불어민주당은 말 그대로 부르주아 정당일 뿐이다. 한국의 극우들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종북좌파 취급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만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재명 후보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역사 문제에 있어서 “해방 후 미군이 소련군과 달리 점령군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라는 사실은 인정하는 모습을 2020년대 초에 보인 적이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정국에서 이재명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유명인사들이 보인 모습은 분명히 2016년과 2017년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의 잘못된 점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그래서 나는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해 큰 기대같은 것은 없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어느정도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 하에서 그 나름의 대중 복지를 일부분 챙겨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윤석열 보다야 훨씬 나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진보적인 정권을 실현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여전히 진보들에게는 성취해 나가야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렇게 정치와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을 때, 나는 편의점에서 알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소책자 한권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국노동자정치협회에서 펴낸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이다.

 

이 책은 COVID-19가 한참이던 2020년에 나왔다. 공식 출간 등록일은 2020년 5월 18일이다. 즉,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에 노정협에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한국사회의 성격과 임무”에 대해 분석했다. 사실 이 책을 몇 년 전 훌터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하나 꼼꼼이 읽으며 완독을 하니, 짧은 소책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부가 많이 됐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가진 물질주의에 대한 맹신을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하고 분석한 것이 가장 와닿았다. 보통 1991년 소련의 해체에 따른 사회주의의 붕괴를 사람들이 자주 입에 담고는 한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국과 경제적으로 실패한 북한”을 자주 언급 및 운운한다. 예를 들어, 소위 브루스 커밍스의 대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반박했다는 연세대의 정치학자 박명림의 저서를 사례로 보자. 박명림은 1990년대 한국전쟁을 다룬 저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냉전의 해체와 북한의 빈곤의 증명하듯이”라는 다소 반공주의적인 표현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즉,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마저도 이와 같은 시각을 적잖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관점의 기저에는 “자본주의 국가는 그래도 부를 창출했지만, 사회주의는 가난을 초래했다.”는 신념화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한국의 고도의 발전이 어떠한 모순을 가지고 있고, 현재 한국 사회가 경제 및 정치적으로 얼마나 타국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전혀 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난번 나는 독일 좌파 출신의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저서 <풍요의 조건>을 읽었다. 비록 해당 저작이 다소 개량 좌파적인 측면이 있긴 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측면의 비판은 상당히 와닿았다. 예를 들어 바겐크네히트는 현재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절대다수의 빈곤과 해결되지 않는 빈민들의 생계 문제를 자본주의 국가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을 변증법적으로 대입해서 한국의 자본주의자들과 자본주의 옹호론적 학자들을 논하자면, 실제로 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겐크네히트의 표현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소책자가 이런 모순들을 잘 폭로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한국의 발전상에 젖어들어 자본주의의 모순을 망각하고 극우로 변절한 이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한 점이 가장 공감이 됐다. 그리고 오히려 한국 사회가 저발전이 아닌 고도의 발전으로 모순이 극대화된 점을 폭로한 것도 많이 공감이 됐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사실상 미국에 의해 지배받는 ‘신식민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분석한 점이다. 이 부분은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지점이다. 노무현 시절 진보진영에게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던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 주요 기업과 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해당 저작에 나오는 내용을 보도록 하자.

 

“미국이 주도하는 IMF는 1989년 워싱턴에서 남미국가들에게 강요했던 10가지 신자유주의 정책,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한국에 그대로 강요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정부가 자기 영향 아래 있는 IMF,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을 동원하여 만든 개방 강요 정책으로 그 주요 내용은 정부 공공 예산 삭감, 공공 산업 민영화, 주식과 외환 등 자본시장 완전 개방, 관세 인하로 무역 개방, 비정규직 확대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다. 이는 미국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이른바 각종 자유화라는 명목으로 외국자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제3세계 국가들에게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 IMF와 구조조정 정책을 받아들인 80년대 남미, 90년대 아시아의 많은국가들은 경제주권을 미국 월가 자본에게 빼앗긴 채 수탈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한국 경제도 IMF의 구조조정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자본시장까지 완전 개방되면서 순식간에 외국자본에 잠식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1,911억 3,000만 달러였던 국내 외국자본은 2012년 9,451억 5,000만 달러로 5배 가량 무섭게 확대되었다. 그중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은 25배, 직접투자는 5.72배, 채권은 4.9배나 늘었다. 구조조정 결과 많은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동시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갔고, 기아, 대우, 한보 등 굴지의 재벌이 사라졌다. 국내 은행들의 상당수가 외국계 은행으로 탈바꿈한 것도 이때다. 한국경제의 과실을 수탈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관철된 순간이었다.(중략....) 외국인 직접투자의 분포도 위와 같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제조업중 반도체 등 전기전자에 33.56%, 석유화학에 17.21%, 자동차, 차량부품 등 운송용 기계에 14.87%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18~19쪽.)

 

내가 경제 부분에 대해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분명한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자본시장을 제국주의적으로 잠식하는 방법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도 한미 FTA로 상당히 잠식당했다는 사실 정도는 해당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한국의 물질적 발전과 경제성장이라는 부분에 경도된 자본주의자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이런 모순들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옹호한다. 항상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진 북한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즉, 그런 사고방식이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청산주의에 빠지고 운동을 포기한 이들이 가졌던 사고방식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산업화라며 옹호하고 있는 이영훈도 과거 민중경제적 시각을 가진 진보학자 박현채를 비난하면서 진보적 사고를 포기하고 우경투항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 또한 해당 소책자가 잘 다루고 있다. 비슷하게 전향한 운동권 민경우가 2020년 조선일보에 실은 내용도 비판한다. 여기서는 소책자에 나오는 또 다른 내용도 인용하겠다.

 

“민경우는 한국 재벌을 매판자본으로 봤던 비과학적 현실인식이 한국 재벌의 성장과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구체적 현실 앞에 무너져 내리면서 진보적 이념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경우다. 그런데 매판자본으로 봤던 삼성전자가 소니 등을 다 합친 일본 전자업체 보다 매출액이 더 크고, 세상에는 스마트폰과 드론, 인공지능이 개발되어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제목에서 나와 있는것처럼, 민경우는 간첩혐의로 두 차례 수감되기까지 했다.한국 자본이 국제적인 거대 자본으로 성장하고, 최첨단의 생산력이 발전하는 이면에는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활동가를 두 차례나 간첩 조작으로 구속시키는 시대착오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파쇼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탄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시절 프락치 정치공작으로 구속됐던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여전히 촛불혁명 정부라 자처하는 권력 하에서도 석방되지 못한 채 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아직도 간첩조작을 일삼고 있으며 심지어 천인공노할 프락치 공작까지 자행하고 있다. 분단 현실 하에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북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 편견과 무지, 왜곡이 만연해 있다. 맹목적인 반북반공주의는 바로 지배계급이 조장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재편작업은 이러한 분단질서와 파쇼적 억압기구와 악법,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민경우는 재벌의 발전상만 일면적으로 보았지, 그 발전 이면에서 자행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극한적인 착취와 억압,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현실은 눈감아 버렸다. 극우 파쇼 언론 조선일보 지면은 이러한 탁락한 변절자들을 위한 마지막 고백의 장이 되버렸다. 동유럽 사회주의와 쏘련 사회주의 해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은 이러한 경로를 밟지 않고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를 자처하면서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변혁의 전망을 포기했다. 이처럼 한 쪽에서는 한국에서 독점자본의 발전을 인정하되 정상적인 독점 강화와 발전 보다는 낮은 생산력의 기형성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의 뒤틀려진 현실을 발견하여 모순을 찾으려 했다면, 다른 쪽에서는 지속적 발전 가능성 속에서 자본주의 변혁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에 투항했다. 그런데 둘 다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에서 모순의 심화를 보지 않으려 한다.”(같은 책, 45~46쪽.)

 

그 외에도 현재 노정협이 가진 정치·경제·사회적 분석의 틀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적 성격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좌파 내에서도 논쟁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당 소책자에 나온 내용과 입장이 같다. 또한,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자면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 그러니까 소련의 경험을 비하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함을 역설한다. 즉, 이런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해당 소책자는 소련의 붕괴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서 생긴 결과가 아닌 1956년 흐루쇼프가 소련을 수정주의화 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나오는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의 문제를 초래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사실 한국의 우파들과 리버럴 뿐만 아니라 좌파들 또한 소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부터 시작한 수정주의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모른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올바르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 문제에 대한 분석도 이 책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다. 비록 소책자다 보니 축약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한국 역사가 노동자와 대중을 학살한 역사고, 이후 반공주의라는 극단적 이데올로기 하에서 성장하며 노동계급을 탄압한 반동적 권력이었음을 폭로한다. 즉, 한국의 리버럴과 우파 그리고 적잖은 좌파들은 이와 같은 의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다소 자화자찬적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에 어찌보면 2015년 사회운동을 시작한 이래 이후 좌파화와 의식화를 거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좌파를 자처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해당 서적은 말 그대로 현재 존재하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가 가진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책자다. 사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다. 나와 노정협의 인연에 대해 얘기하겠다. 내가 실질적으로 전국노동자정치협회와 접촉하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그 당시 시작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 학습을 시작으로 해당 조직에 가입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물론 함께하는 조직 내에서의 갈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노정협에 가입한 지 한 5년 정도 되었으니, 내 인생의 1/6을 함께 한 조직이라 해도 얘기할 수 있겠다. 이곳에 몸을 담은지도 벌써 6년이 됐다. 해당 조직과 함께 하며, 현 정세를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이와 더불어 맑스나 레닌 등의 원전 학습도 상당히 오래했다. 지금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정말 고마운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얘기를 다시 현 시국으로 돌리겠다. 윤석열이 파면됨에 따라 더불어 민주당이 집권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권은 분명 진보적이지 않은 정권일게 분명하다. 물론 윤석열 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진정한 모순과 문제점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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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2025-04-28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자본은 미국 자본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걸요... 하여튼 잘읽었습니다.

NamGiKim 2026-01-24 19:45   좋아요 0 | URL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다 미국 자본은 아니죠.
 
사료로 읽는 서양사 5 : 현대편 - 제국주의에서 세계화까지 ㅣ 사료로 읽는 서양사 5
노경덕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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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는 서양사 5 현대편 서평: 기존의 서양사 책과는 비교적 다른 접근을 한 흥미진진한 서양사 책

2022년 중반이었던 것 같다. 소련사 전공자이자 내 페친이기도 한 노경덕 선생이 서양사 책을 집필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아마 작년 6~7월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아는 사람을 통해 받게 된 노경덕 선생의 강연 글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 그 진실과 왜곡‘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글을 읽으며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련에 대한 편견을 많이 깰 수 있었다.

작년에 신간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진진한 구성과 내용이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작년 생일 때 지인이 생일선물로 받았지만, 읽게 된 것은 10개월이 지나서였다. 무튼 책을 읽게 됐고,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책의 내용은 과거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부터 냉전의 종식까지를 다루고 있다. 각 시대 및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관련 사료들을 ‘자료‘ 형식으로 모아놓았으며, 참고문헌을 각 주제마다 표기해놨다. 그래서 관련 파트가 어떠한 참고문헌을 인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냉전을 다룬 파트에서 반식민주의 운동에 관한 내용은 시중에 나와있는 서양사 통사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히 다루고 있으며, 당시 탈식민주의 운동에서 소위 제3세계로 불리는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도 제법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나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독립운동가 루뭄바와 친미 독재자 모부투에 대한 얘기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상세하게 알게 됐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되니 상당히 슬펐다.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미국이 탈식민주의에 반하는 행위로서 언급 및 다뤄진 것도 솔직히 많이 공감했다.

소련관련 부분이야 저자의 본 전공이니 당연히 읽어볼만한 내용들이 많다. 이 책 또한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이 파시즘의 위협속에서 단행한 대숙청이 분명한 한계 및 과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냉전기 서방세계가 선전하던 대규모의 묻지마 집단 살인은 아니었음을 역설한다. 소련 시대 산업화나 이후 나타난 한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에서 소련이 공세가 아닌 방어적 입장인 사실도 분명히 언급한다. 매우 흥미롭게도 흐루쇼프 시대에 대해서도 소위 관료주의가 더 대두한 배경을 언급했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의 서양사 책들에서 찾기 힘들기에 정말 좋았다.

그리고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부분에서도 승리의 주역은 영미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었던 것도 강조한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사회에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세운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반러감정이 강한 폴란드나 발트3국 그리고 서유럽 국가들이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군 사단이 200~300개가 넘는 반면, 북아프리카에 영국군에 맞서 투입된 독일군 사단이 4~5개 정도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스탈린이 강력히 요구했던 이른바 제2전선도 1944년 6월 5일이 되서야 열렸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소련은 규모면에서 3년 동안 사실상 혼자서 독일군을 상대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체는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해보자면, 영국과 미국이 아닌 소련과 스탈린 그리고 소련 민중과 소련군이다.

책 마지막 파트인 냉전 종식도 상당히 읽어볼만 했다. 소위 소련의 군사적 침공 사례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은 소련 지도부가 가급적으로 피하려 했고, 명분이 아프가니스탄 좌파정권을 지원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냉전 말기 동유럽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대해서도 단순히 서구가 선전하는 자유를 위한 시위로만 해석하지 않은 점과 이후 나타난 한계 때문에 공산당이 다시 지지받게 된 것을 언급한 것도 다른 책들에선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많은 공부가 된 책이다. 책에 인용된 자료들 또한 빠짐없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읽지 않았던 자료들을 통해 또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냉전 파트에서 매카시즘 관련 자료나 반공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발언등을 읽으면서, 한국의 극우 태극기들과 비슷한 맥락과 주장이 담겨 있는 사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즉, 한국 극우들이 주장하는 맥락을 책에 자료를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책이 제공해줬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제국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파트에서 서구의 아프리카 침탈을 다룬 내용과 지도를 보면서 진지하게 느낀 것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절대 지지및 지원하지 않는 이유 말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부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에게 ˝대포 주세요! 미사일 주세요! 전투기 주세요! 장갑차 주세요! 탱크 주세요!˝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며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을 아프리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황당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 서방은 자신들을 잔혹하게 지배한 압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도 않은 것이며 아무런 효과없는 대러제재에도 동참하지 않은 것이다. 젤렌스키가 말하는 자유세계 같은 용어가 아프리카에겐 위선 그 자체일 수 있다. 즉 이런 맥락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서양사 책을 읽었다. 자료로 인용된 내용들도 대체로 좋았고, 나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이들의 생각 또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극체제와 다극체제의 대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팔레스타인 분쟁 속에서 서양사를 생각해볼 기회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책이 나름 제공해줬다. 그것 또한 좋았다. 국내에 나온 서양사 책들 중에 제법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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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25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편입니다. 왜냐하면,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서방(특히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은 자신들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지배한 압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전자의 두 국가는 과거 영토 지배 및 원주민 대량학살, 후자의 한 국가는 반민주적 독재정권 후원)
 

1935년 8월 2일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이른바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표명한 테제가 채택됐다. 당시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뜻하는 테제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디미트로프 테제(Dimitrov Thesis)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Georgi Dimitrov)는 누구일까? 오늘은 디미트로프의 생애를 통해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의 사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1882년 6월 18일 불가리아의 서부에 위치한 코바체프시(Kovachevtsi)에서 태어났다. 디미트로프는 8남매 중 첫째였으며, 그의 부모는 오스만 제국의 마케도니아 출신의 이주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의 장인이었으며, 공장 노동자 출신이기도 했다. 디미트로프가 첫 정치활동에 참여한 것은 19세가 되던 1902년이었다. 불가리아의 수도이던 소피아에서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으며, 당시 디미트로프는 인쇄식자공이었다. 그리고 그는 불가리아 사회민주당에 참여했으며, 1904년부터 1923년까지 불가리아 노동조합연맹의 서기장을 지냈다.


전반적인 유럽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불가리아의 사회주의 운동도 불가리아 당국의 탄압을 받았는데, 디미트로프 또한 1911년에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시기 유럽의 전황은 모로코 위기와 발칸 위기를 통해 점차 고조되고 있었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흥미롭게도 디미트로프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에 불가리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8년 체포될 때까지 불가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및 새로운 전쟁 공채 발행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이후 디미트로프는 1919년에 석방되었으며, 1917년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를 방문하고자 했다. 그가 처음으로 소비에트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1921년이 되어서였다. 1922년 12월 디미트로프는 공산주의자 국제무역연맹인 프로핀테른의 관리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1917년 볼셰비키가 주도한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1919년에 코민테른이 창설되었으며, 불가리아 사회노동당 또한 코민테른에 가입했다.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불가리아 공산당으로 당명이 교체되었으며, 이들은 불가리아 군부에 맞선 투쟁을 지속했다. 1923년 6월 불가리아의 알렉산드르 스탐볼리스키 총리가 쿠데타로 암살당하자 불가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은 쿠데타의 주역 알렉산드르 찬코프 총리에 반대하는 봉기를 조직했다. 디미트로프 또한 혁명 활동가로서 탄압에 맞선 저항을 지도했으며, 저항이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나자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했다. 디미트로프를 포함한 불가리아 공산당 지도부는 군부 당국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궁극적으로 소련으로 망명했다.


이후 디미트로프는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하며, 1929년까지 소련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소련에서 망명생활을 한 디미트로프는 활동 지역을 독일로 옮겼으며, 거기서 히틀러의 나치당에 맞서 독일 공산당을 이끄는 반파시즘 활동을 했다. 그러나 독일은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이는 역으로 히틀러와 같은 나치 극우들이 정권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33년 1월 독일의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으며, 나치는 보다 노골적으로 테러와 폭력을 반대파들에게 사용하게 됐다.


1933년 2월 27일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국회의사당(Reichstag)이 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 마리뉘스 판데르뤼버(Marinus van der Lubbe)에 의해 불에 탄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의사당이 불타자 나치는 광분했고, 방화범인 판데르뤼버가 단독범행을 재판에서 주장했음에도 이를 빌미로 독일 공산당을 포함한 나치 반대파를 탄압하는 명분으로 사건을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디미트로프 또한 체포되었으며, 라이프치히 재판에서 디미트로프는 당시 법원과 검찰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관련 재판은 3개월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1933년 12월 13일 변론단계에 들어가 검사총장의 논고, 변호인의 변론에 뒤이어 12월 16일에 디미트로프가 최종 진술했다. 당시 나치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독일 사법부는 주범 마리뉘스 판데르뤼버를 제외한 모든 ‘공범’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 따라 석방되었다.


이후 디미트로프는 1934년 2월 27일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로 갔으며, 이오시프 스탈린 또한 그를 격려 및 환영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를 통해, 디미트로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는데, 여기서 디미트로프는 “파시즘의 공세와, 파시즘에 반대하여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지향하는 투쟁에 있어 코민테른의 임무”라는 이름으로 사건에 대한 보고를 했다. 또한 디미트로프는 파시즘에 맞서, 부르주아 및 애국적인 민족주의자들과도 연합할 수 있는 인민전선을 조직해야 함을 역설했다. 궁극적으로 디미트로프의 주장이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되었으며, 이후 인민전선 혹은 통일전선은 디미트로프 테제로 불리게 됐다. 당시 디미트로프는 파시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파시즘, 그것은 근로대중에 대한 자본의 잔인무도한 공세다.

파시즘, 그것은 방자한 배외주의와 침략전쟁이다.

파시즘, 그것은 광란하는 반동과 반혁명이다!

파시즘,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전 근로자의 가장 흉악한 적이다!”


상당히 뛰어난 분석이다. 파시즘에 대한 디미트로프의 분석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의 사례를 보자면, 그가 내린 정의에 부합하기까지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을 구성하는 세 나라는 자본에 충실했고, 침략전쟁을 추구했으며, 반혁명적이었고,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따라서 탁월한 분석이라 할 수 있겠다. 디미트로프의 노선이 공식적으로 활용된 첫 무대는 바로 1936년에 발생한 스페인 내전이었으며, 당시 스페인에선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맞서 미국, 영국, 소련 등이 민주 진영을 지원했다. 비록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의 승리로 끝났기에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중일전쟁 당시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국공합작에 따른 반일항쟁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영국·소련의 연합은 디미트로프 테제가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서 유효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했다.


디미트로프의 조국인 불가리아는 1930년대부터 친파시즘적 경향을 보이다가, 1941년 독소전 발발 이후엔 나치에 협력하는 국가가 되었다. 당시 불가리아는 나치와 함께 반소·반공투쟁을 전개했으며, 함께 군사적인 방어선도 구축했다. 그러나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1943년 쿠르스크 전투를 기점으로 나치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소련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불가리아는 1944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다. 당연히 디미트로프는 전쟁이 끝난 이후 해방된 불가리아로 돌아왔다. 추방당한지 22년 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1942년 7월 디미트로프는 조국전선 강령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보자.


“보리스 국왕정부의 반인민적인 정책은 절체절명의 민족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불가리아는 사실상 히틀러의 속국이 되고 불가리아 인민은 독일 제국주의자의 노예가 되었다. 히틀러의 광기어린 세계지배 계획이 반드시 실패할 운명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배신적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곧 불가리아 인민을 의식적으로 파멸로 내몰아 민족적 독립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중략.....) 우리 국민에게 긴요한 위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국전 선의 구국정책을 단호하고 일관되게 실행할 힘을 갖춘 진정한 국민적 정부를 한시바삐 수립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국전선은 현재의 배신적 · 반인민적 친히틀러 정권을 타도하고 불가리아 국민의 진정한 정부를 세우는 일을 당면 투쟁목표로 한다. 또한 이 정부는 전 불가리아 인민의 의지와 지지를 바탕으로 대(大)국민의회의 소집을 위한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의회가 앞으로의 불가리아의 통치형태를 정하고, 우리 조국의 자유, 독립, 번영에 필요한 헌법상, 물질상의 보장을 확립해 낼 것이다.”


1946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불가리아 공산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인민민주주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와 동시에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정권과 루마니아의 사회주의 정권과도 협상을 시도했다. 다만 디미트로프와 티토가 협상하기도 했던 남슬라브 연맹 창설은 스탈린이 반대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인근 국가인 엔베르 호자의 알바니아하고도 협상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일설에 따르면 디미트로프는 호자에게 “엔버 호자 동무 이 곳을 보십시오! 당을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합시다! 혁명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 적이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도자가 된 이후부터 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는데, 소련 모스크바에서 병을 치료받던 중인 1949년 7월 2일에 사망했다. 이후 그의 시신은 엠버밍 처리되어 레닌처럼 소피아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박물관에 조성된 영묘에 안장되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디미트로프의 시신은 화장됐고, 영묘 또한 1999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여론조사 결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시민의 2/3이 철거를 반대했다고 한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이른바 인민전선 노선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민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했고, 대체로 인민전선 노선에 입각한 진보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는 사회주의 진영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디미트로프가 발표한 반파시즘 인민전선 노선은 분명히 고찰할 가치가 있으며, 현재 윤석열에 맞선 투쟁이 격해지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노선을 추구해야하는지, 그 광명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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얏하로 2025-08-16 0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꺼무에 보니까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로 인한 사망이 스탈린이 독살한거일수도 있다! 라는 황당무계한 드립 치고있던데, 이런 양질의 글을 보니 감사하기 나름입니다.
 
신냉전에 반대한다 - 워싱턴이 벌이는 신냉전과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
데보라 베네치알레.존 로스.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 심태은.이재오. / 두번째테제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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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이었다. 나는 국제전략센터에서 개최한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비자이 프라샤드의 북콘서트에 참가했다. 거기서 난생 처음 비자이 프라샤드를 만났고, 감명 깊은 강연을 들은 이후, 의미있는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사실 그 북콘서트는 2022년 초에 번역한 『워싱턴 불렛』과 그해 말에 번역한 『신냉전에 반대한다』 관련한 북콘서트였다. 아는 페친 동지 덕분에 참가하게 된 이 북콘서트는 표지부터가 끌렸다. 『신냉전에 반대한다』라는 제목이 너무나도 와 닿았었다. 그 이유는 현실을 살아가는 진보좌파가 고민하고 생각해야할 주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사실 나 또한 푸틴이 정말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리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물론 나는 이 전쟁에서 가장 나쁜 놈이 ‘전쟁범죄’를 운운하는 모습에 참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미국이 어떠한 짓거리를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미국이 자행한 악행은 이루 헤아릴 수 가 없이 많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주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있는 한국에서야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고마운 존재”로 여전히 인식되지만, 미국은 자본주의와 자본가를 위해선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 있는 나라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인들 스스로가 쉽게 망각하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만 보더라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보여주는 사료적 근거는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2022년 말 국제전략센터에서 번역한 『신냉전에 반대한다』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소책자다. 나는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프라샤드의 책은 『갈색의 세계사』를 빼놓곤 다 읽었다. 『제3세계의 붉은 별』, 『워싱턴 불렛』, 『물러나다』는 내 서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책들이다. 마찬가지로 『신냉전에 반대한다』도 내 서재에 꼭 있어야만 하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은 비자이 프라샤드가 쓰지 않았다. 프라샤드와 비슷한 역사관과 문제의식을 공유한 세 명의 전문가들이 집필했다.

 

책의 구성은 비자이 프라샤드가 쓴 서문으로 시작하여 중국 인민대학교 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영국인 출신인 존 로스의 “미국이 세계에서 더 많은 군사 침략 행위를 벌이는 이유”라는 글로 주 내용의 첫 번째 장을 시작한다. 이탈리아 언론인이자 트리컨티넨탈 연구소 연구원인 데보라 베네치알레의 “미국을 전쟁으로 이끄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미국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학과 명예교수이자 먼슬리 리뷰 편집장인 존 벨라미 포스터의 “21세기 생태와 평화 운동을 위한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 책이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주는 것들”이라는 국제전략센터의 감수글이 실려 있다.

 

책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2013년 유로마이단 당시 미국의 개입과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즘의 성장을 적나라하게 비판했고, 냉전 이후 21세기에 급부상한 미국의 경쟁국 중국에 대한 미국의 냉전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 냉전 시기 미국의 적대국이던 소련은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에 현재의 중국은 미국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조만간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초월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나올 정도다.

 

현재 한국에 만연한 혐중정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서유럽은 혐중정서에 빠져 있다. 미국은 항상 자유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중국에 대해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학자들에 대해선 상당히 견제를 하고 있고, 소위 진보운동 단체들 또한 중국의 티베트나 위구르 문제를 통해 인권 문제를 운운하고 있는 실정이며, 중국에 대해 비호하는 발언을 한 학자나 정치인은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당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업을 동원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에 『신냉전에 반대한다』를 읽으면서, 서구가 가진 자본력과 인터넷 장악력에 대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서구는 자신들의 경쟁상대인 중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인터넷 파급력과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듯이, 신냉전의 시대에서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단결을 강화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유지함으로써, 세계적 경제 문제나 위기에 대한 큰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소련과 동유럽을 자본주의화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냉전에서 승리했다.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소위 만만치 않은 도전자가 없던 시기를 대략 10~15년간 보냈다. 그러던 도중 다시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를 받게 됐고, 201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화됐다. 거기다 2000년대 미국의 침략으로 시작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미국의 사실상 패전이나 완전한 패전으로 종결됐다.

 

책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미국은 100여 개국을 상대로 침략하거나 군사작전을 벌였지만, 외국 정부의 침략을 받거나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전쟁 도발에 더욱 대담해졌다. 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엄밀히 따져 보자면, 미국의 대담한 전쟁 도발로 인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냉전이 끝나거나 끝나갈 무렵에 태어난 세대들은 경쟁자가 없는 초강대국 미국의 모습을 봤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정치와 엘리트 계층은 “몰역사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책은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현재 미국식 애국주의에 빠진 극성 네오콘들과 민주당 매파들이 딱 그러한 관점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학살을 망각한 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아주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있어 이러한 행위는 미국의 전쟁범죄 옹호 및 합리화라는 아주 편리하고 간단한 방어도 된다. 네오콘들은 러시아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무기들을 사용한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미국은 유로마이단 이후 돈바스 내전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군대를 키우면서, 집속탄과 같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따라서 미국이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규탄한다는 말 자체가 속된 말로 내로남불인 셈이다.

 

또한 『신냉전을 반대한다』는 미국의 핵무장과 기후변화의 문제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후문제 및 핵문제에 대한 지적은 아마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일 것이다. 미국이 보유한 핵폭탄의 숫자와 미국 자본이 유도하는 환경 파괴 및 기후 변화 그리고 전쟁 도발을 통한 지속적인 자연에 대한 훼손 등을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진보주의자라면, 존 벨라미 포스터의 글 “21세기 생태와 평화 운동을 위한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를 꼭 읽어야 할 것이다.

 

지난 학기 대학원 생활 도중에도 촘스키와 프라샤드의 대화를 다룬 『물러나다』를 읽었지만, 이번에도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미국과 제국주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 중국의 경제 및 경쟁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으며, 주제에 비해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거기다 소책자여서 읽는데 크게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는 책이다. 그에 반해, 책에서 얻어가는 지식은 많고 값지다. 따라서 현재 통일과 평화 그리고 반전을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라면 이 책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 생각한다.

 

많은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적극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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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8-02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미국에 진정한 진보정당/진보언론이 없고 우익-친기업-군사력강화주의자들이 미국 정계와 언론을 지배하기 때문에 미국의 중동 침략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극소수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