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다시 들린 제주4.3평화공원.

오늘 저는 제작년 초에 가족과 들렸던 4.3 평화공원을 들렸습니다. 처음 들렸을 때도 매우 슬펐지만, 이번에 다시 들리니 억울하게 학살당한 피해자분들을 생각하게 되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72년전에 좌익소탕이라는 명분아래 저질러진 국가 폭력은 제주도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많은 이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곳을 두번째 들리게 된 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자연스럽게 독립이 되었죠. 독립된 한국에선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창설됩니다. 여운형이 창설한 이 조직들은 해방 이후 치안과 행정을 담당해나가며 새조국건설을 위해 전진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 미군이 상륙했고, 제주도에도 미군이 상륙했습니다. 제주에 상륙한 미군은 군정을 실시했고, 과거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 경찰들과 관리들을 재등용합니다. 여기서 부터 제주도민들은 점령군의 모습을 보인 미군과 그의 앞잡이 친일세력들을 싫어하게 됩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3.1절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이 탄 말에 인명피해가 생겼고, 이에 항의한 시민들이 경찰에게 저항하다가 경찰에 발포한 총에 몇명이 맞아 죽는 일이 생기죠. 거기다 그 시기에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언하면서 미소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였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에 박차를 가하죠.

이런 일이 있자 1948년 제주도에선 남로당 김달삼을 중심으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친일파 청산을 내걸며 봉기를 일으킵니다. 그 날이 바로 1948년 4월 3일이었습니다. 이 봉기에는 당연히 남로당 뿐만 아니라, 친일파와 미군정에 분노한 일반민중들도 참가합니다. 이런 상황이 있자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이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과 우익청년단들을 대거 투입하죠.

이렇게 해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당시 미군정 최고사령관 하지가 임명한 브라운 대령은 좌익을 뿌리뽑는다는 명분으로 제주도 지역에 레드라인을 설정해놓고, 그 범위에 있는 생명체는 싹다 죽이도록 허용합니다. 이에따라 이승만이 파견한 서북청년단과 경찰은 광란의 학살극을 벌였고, 특히 1948년과 1949년 사이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일어난 학살은 추악하고도 잔혹했습니다. 서북청년단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이들은 최소 3만 명을 넘겼고,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노인 어린이 그리고 유아도 포함되었습니다. 임산부 배안에 있던 애와 1,2살 짜리 아이들도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죠. 이런 광란의 학살극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경찰총장 조병옥 그리고 미군정의 브라운 대령의 책임이 막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학살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과거 좌익 경력이 있던 인물들을 예비검거하며 학살했던 것입니다. 결국 제주도에서의 학살은 1954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종료가 됩니다.

제주도 학살은 엄청난 고통을 남겼습니다. 우선 이 학살로 제주도 인구 10%가 죽었습니다. 코리안 킬링필드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이 반공주의 국가가 되며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런 침묵이 깨진건 87년 민주화가 되면서 부터였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와서야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됐죠. 이처럼 이승만으로부터 비롯된 반공주의는 산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얘기하자면 제주4.3사건에서의 학살은 과거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벌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와 베트남이 그랬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내전이 일어납니다. 이 내전에서 영국이 빠지자 미국이 개입했죠. 개입한 미군은 소수의 고문단과 최신식 무기 지원을 통해 좌익진영의 그리스 게릴라들을 학살했습니다. 미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지원하에 활동하는 우파와 미군고문단은 소위 자신들이 적대지역으로 설정한 곳에 네이팜폭탄을 투하하고, 이들의 씨를 말렸으며 그 지역마을들을 불태웠죠. 미국의 이런 전략은 그리스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제주4.3은 그리스 내전의 연장선상일수도 있을 겁니다.

그로부터 몇년 뒤 베트남 문제 개입한 미군은 똑같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들은 소위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을 적대지역으로 선포해놓고, 온갖 최신식 무기와 장비를 동원해서 그 지역을 폭격 및 수색과 섬멸 작전으로 초토화시켜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베트남에서 성공적이지 못했죠.

다시한번 제주4.3평화공원을 들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들릴때 항상 노는것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가 노는 곳에서 과거에 어떠한 국가폭력이 있었는지는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안전조치 미이행, 주한미군장갑차에 의한 사망사고

경찰은 미군직접조사로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

지난 8월 30일 밤 경기도 포천에서 SUV가 미군 장갑차 후미에 추돌하여 SUV탑승자 4명 전원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사진만 봐도 처참하다. SUV차량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고, 미군 장갑차 역시 무한궤도 일부가 부서질 정도로 큰 사고였다.

미군 장갑차는 도로 위로 나올 때부터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밝은 낮에도 장갑차에는 동행하며 불빛 등으로 이동 사실을 표시하는 콘보이(호위) 차량들이 함께 하는 것이 원칙이다. 더군다나 작전 수행용 장갑차는 차체 색을 어둡게 한다. 그런 상태로 야간에 후미등도 제대로 달지 않고 단독주행을 했다.

사고지점인 영로대교는 평소에도 군용 차량 이외에는 통행량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직선도로이기 때문에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추돌한 SUV의 입장에서는 저속주행중인 장갑차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손 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주한미군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목숨을 잃는 참변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켜 호위차량들이 있었다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해도 직선도로에서 미군 장갑차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참담한 심경이지만 현재는 사고의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보도된 기사를 보면 블랙박스가 사고지점인 영로대교 진입 전 상황까지는 녹화가 되어 있고 진입 후부터 충돌까지의 상황은 기록되지 않는 등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이 안전수칙을 어기고 위험한 야간주행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 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고를 눈여겨보고 있다. 우리의 높아진 자주의식은 이제 사소한 일 하나도 그냥 두고보지 않는다. 하물며 대한민국 국민 네명이 사망한 대형사고임에도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 여러 의혹들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넘어가려 하거나 사고의 원흉인 주한미군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불평등한 한미동맹 아래 쌓여온 민중들의 분노와 원통하게 목숨을 잃었던 이들의 몫까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20년 9월 1일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현장과 광장 2020.5
현장과 광장 편집부 지음 / 현장과광장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올해 7월에 노동전선 단체 전선지에 실린 필자의 서평입니다.)

2020년인 올해는 미국과 이란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COVID-19라 불리는 질병이 창궐하는 속에서 우리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많은 문제와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경제공황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고, 우리사회의 마비시키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생물학 질병은 백신이 나오지 않았기에, 어느 한 구역에서 전파되면 그 구역을 전면 봉쇄하고 사람들까지 격리시키는 조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와 마비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 노동전선에서 발행한 아주 좋은 책을 읽게 됐다. 바로 ‘현장과 광장 2호’다. ‘현장과 광장’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여러 사람들의 글을 다양한 주제로 묶은 이 책을 통해 과학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것이었다. 박하순 선생의 ‘코로나 공황’과 노동자운동의 대응과 손미아 선생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대유행을 통해 본 자본주의 모순과 대안이라는 두 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자본주의의 문제는 참으로 잘 분석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타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서 항공기는 계류장에 멈춰서 있고, 관광객들을 받던 호텔은 사람들이 오지 않으며, 올해 국내에서 계획된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량의 실업자 발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움직이는 행위를 평소보다 줄이게 되니 아마존(amazon)과 같은 인터넷 운송 및 배달 사이트들은 추가적으로 채용하는 일이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 3~4월 기준으로 최소 4주 동안 2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민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즉 자본주의는 질병뿐만 아니라 인민대중의 직장을 보호하기 보단 기업의 이윤을 보다 더 우선시하는 체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나온 고희림 시인의 ‘돈으로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시는 참으로 가슴이 아픈 시였다. 노동이라는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와서 저임금 고착취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비유되는 네팔에서 온 테즈 바하두르 구릉씨나 처빌 랄 차우다리씨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현장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갈취’ 따위의 저급한 시각이 대다수를 차지할 뿐이다. 역지사지라 했다. 우리는 여기서 과거 해외로 가서 저임금 고착취를 당하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나가던 한국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노동은 누군가는 회피하는 행위이지만,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소위 히틀러의 나치즘이 강요하던 시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저개발 국가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고착취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착취함으로써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19세기 고도의 자본주의를 발달시켜 식민지에다 값싼 원료를 팔아 경제를 부흥시킨 제국주의 국가를 연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즉 자본주의 사회 또한 그런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주제 중 하나는 ‘페미니즘(Feminism)’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경우 현재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이슈가 되면서 쉽게 판단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이것이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이나, 성폭행, 미투운동 등이 얘기가 나오면서 쉽게 얘기하기가 힘든 주제였던 것 같다. 노동전선의 천연옥 선생이 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은 여성해방과 현재의 페미니즘이 어떠한 차이가 있고, 과거 여성 해방운동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그리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까지 그들의 주장과 생애를 통해, 현재 남성의 생물학적인 영역으로만 주로 비판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노동계급과 남성노동계급의 연대와 자본주의 철폐투쟁을 외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여성해방론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2019년 11월 기준으로 ‘남녀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보면 남자 노동자 임금이 100이면, 여자 노동자 임금이 70.7%,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100이면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62.9%, 남자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남자 비정규직 임금이 62.1%, 여자 정규직 임금이 74.1%면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52.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단결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해방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의 기원이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 남성의 지배가 아닌, 사적소유의 발생·발전에 따른 사회의 경제적 관계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철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아무튼 이 글을 통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을 얘기하자면, 송필경 선생의 ‘쿠바와 체 게바라’다. 2년 전 글쓴이가 쿠바 여행을 통해 본 쿠바 사회는 비록 가난하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사회다. 수백 년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배와 수십년간의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 지배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복지를 달성한 쿠바사회는 소위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유럽이 해내지 못한 것들을 비록 미약하지만 달성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국제주의라는 사상으로 무장한 쿠바의 의사들은 단순히 자본에 혹한 의사가 아닌 인류애적 혹은 의사적 사명을 가지고 인민의 아픔을 치료하는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쿠바가 미제국의 극심한 경제 고립을 겪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키고 실행해온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는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점에서 시사해주는 부분이 많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백철현 선생의 ‘무정부주의의 정치적 본질과 이 본질로부터 나오는 반혁명적 특성들’이나 김성구 선생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부분에서도 책을 통해 학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얻어야할 결론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한 사회를 이룩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맹아나 다름없는 미국은 현재 열악한 대중의료로 인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확진자가 올해 3~4월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 200만 명을 돌파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망자도 급증하여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미국인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거기다 이런 전 세계적 위기속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라는 문제도 겹처 수많은 유색인종들과 양심 있는 미국인들의 반발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회의 문제들을 야기하고 확산 그리고 재생산할 뿐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철폐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고질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은 곳곳에서 반공의 가면을 쓰고 다른 나라름 침략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곳곳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뿐 아니라 유럽·오세아니아에까지 손을 벌리는 통에,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미국을 달가워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인민들도 미국을 싫어합니다. 일본도 미국을 싫어합니다. 미국이 자국을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에는 미국의 참략을 받지 않은 나라가 한 곳도 없습니다. 미국은 중국 영토인 타이완을 침략했습니다. 개중에는 미국의 동맹국도 있습니다. 인민들이 불만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조차 미국을 싫어합니다.

 

피압박 민족은 모두 독립을 갈망합니다.

 

만물은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큰 세력이 부패하면 새로운 작은 세력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작은 세력이 커지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변화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미제국주의의 큰 세력도 작아질 것입니다. 미국 인민들이 자국 정부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평생이 이런 변화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중에는 청조시대에 태어난 이도 있고, 1912년 중화민국 건국 이후 태어난 이도 있습니다.

 

청조는 오래 전에 무너졌습니다. 누가 청조를 무너뜨렸을까요? 그것은 손문이 이끄는 당파 인민이었습니다. 순몬의 세력은 매우 작았기 때문에 청조의 관료들은 이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는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켰으나 그때마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청조를 전복시키고 말았습니다. 큰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큰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청나라를 전복시킨 이후 손문은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민의 요구, 예를 들자면 토지와 반제국주의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반혁명을 진압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반혁명 세력이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후에 그는 베이양군벌 사령관 위안스카이에게 패배를 당했습니다. 위안스카이는 손문보다 세력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세력이 작더라도 인민과 연대하면 강하며, 세력이 크더라도 인민과 대립하면 약하다는 법칙 말입니다. 이후로 손문의 유산계급민주혁명파는 우리 공산당과 합작하여 위안스카이의 뒤를 이은 군벌 세력을 패퇴시켰습니다.

 

장제스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중국 통치를 승인받았습니다. 22년간 집권하면서 그의 세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해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세력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반혁명 세력을 진압하는 와중에 5만 당원은 1만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적들은 도처에서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강대한 적이 실패한 것은 인민과 동떨어졌기 때문이요, 약한 우리가 승리한 것은 인민과 연대하여 인민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항일전쟁 시기 일본은 막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국만당 군대는 오지로 밀려났으며,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 세력 또한 적 배후의 농촌에서 유격전을 치를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일본은 베이징·텐진·상하이·난징·우한·광저우 등의 대도시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는 독일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몇 년 못 가서 붕괴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퇴각하는 동안, 수십만 병력은 수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장정 25000리 끝에 남은 병력은 25000명뿐이었습니다.

 

공산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좌우 노선 할 것 없이 많은 오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는 천두슈의 좌경 노선과 왕밍의 우경 노선이었습니다. 그 밖에 장궈타오·가오강 등도 우경 노선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오류를 저질렀다고 해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통해 인민과 당을 교육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미국, 장제스·천두슈·리리산·왕밍·장궈타오·가오강 등 수많은 반면교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면교사에게서 학습하느라 우리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과거에 영국은 우리와 여러 번 전쟁을 벌였습니다. 영국·미국·일본·프랑스·독일·이탈리아·제정러시아·네덜란드 모두 우리의 당덩어리에 군침을 흘렸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반면교사이고, 우리는 저들의 학생입니다.

 

일본에 맞서는 항전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군대는 90만 대군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해방전쟁을 치렀습니다. 우리의 총포는 국민당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국민당 군대는 400만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3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가 소탕한 적국의 수는 총 800만에 이릅니다. 국민당은 미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한 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법입니다.

 

현재 미제국주의가 강하다 하나, 이는 진정으로 강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아주 취약합니다. 대다수의 인민과 동떨어진 탓에,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정부를 싫어합니다. 미국 인민들도 마찬가지로 정부를 싫어합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실제로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겉은 호랑이처럼 보이나 종이로 만들어진 탓에,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합니다. 전체 역사, 즉 인류 계급사회의 수천 년 역사가 입증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강한 것이 약한 것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입니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국주의가 멸망해야만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종이호랑이가 쓰러지는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종이호랑이를 무너뜨리려면 비바람이 몰아쳐야 합니다. 우리가 미제국주의를 종이호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이 있습니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려면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려야 합니다. 예컨대 이빨이 열 개 있다면 우선 한 개를 뽑아버립니다. 그러면 아홉 개가 남습니다. 다시 한 개를 뽑아버립니다. 이제 여덟 개가 남습니다. 이빨을 다 뽑아버렸으면 이번에는 발톱 차례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나아간다면 결국 승리를 거두고야 말 것입니다.

 

전략적으로는 완전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중시하는 것입니다. 이들과 전쟁을 벌일 때에는 매 전투마다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의 세력은 강대합니다. 하지만 전체 모습을 폭넓은 시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십시오. 미국과 인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을 싫어합니다. 미국은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이런 이유로 호랑이는 반드시 거꾸러질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얕잡아 보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강을 매년 1억톤씩 생산하여 곳곳에서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미국은 철강을 매년 1억 톤씩 생산하여 곳곳에서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싸울 때에는 있는 힘을 다해서 투쟁해야 합니다. 또한 한 번에 하나씩 물리쳐야 합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상황을 보건대, 라틴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은 끊임없이 미국과 충돌할 것입니다. 이는 비비람이 종이호랑이를 박살낼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남미 국가에서 유럽 출신 백인과 본국의 인디오가 단결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치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피통치 계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받는 백인들은 토착민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벗들, 아시아··아프리카의 벗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하는 일도 같습니다. 우리는 인민을 위해 일하며, 제국주의가 인민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노력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성공을 거둔다면 제국주의의 억압을 근본적으로 몰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동지입니다. 제국주의의 억압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여러분과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지역, 민족, 그리고 언어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국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제국주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납니다. 제국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중국 인민은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인민 또한 제국주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1956714, 마오쩌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글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놀랄지도 모른다.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사회혁명, 즉 자신이 최종 목적으로 설정한 현존하는 질서의 전복을 사회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두 계기 간의 대립은 베른슈타인의 이론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는 1896/97년에 <새로운 시대>에 발표한 논문 <사회주의의 여러 문제 Probleme des Sozialismus>에서, 그리고 특히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gaben der Sozialdemokratie>라는 책에서 이러한 대립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전체 이론은 실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인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반대로 사회 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라는 충고로 귀결될 뿐이다. “최종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는 항상 무이며, 운동이 전부이다라는 베른슈타인의 말은 가장 적절하고 날카롭게 그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즉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부르주아 급진주의와 구별하고, 또 전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질서를 교정하는 한가로운 수선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에 반대하여 이것을 지양하는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따라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하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문제는 사회민주주의로서는 곧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베른슈타인 및 그의 추종자들과 벌이는 논쟁에서 [이에 대해 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만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저러한 투쟁 방식이나 전술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전체 실존에 관한 것이다.

 

[베른슈타인의 이론을 피상적으로 고찰할 경우, 이러한 이야기는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베를슈타인은 가는 곳마다 사회민주주의와 그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분명하게 자신은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단지 다른 형태로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되풀이하지 않는가? 또 현재 사회민주당의 실천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고 있다고 확고하게 강조하지 않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이론과 정책의 발전에서 새로운 노선은 비록 내적인 핵심에 있어서 옛것과 완전히 반대될지라도, 옛것에 의지하여 만들어지고, 우선 기존의 형식에 적응하며, 기존의 언어로 말하는 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새로운 핵심은 과거의 껍데기를 뚫고 나오며, 새로운 노선은 자신의 형식과 언어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 처음부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본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또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명백하고 철저하게 부인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금세기 인간 정신의 가장 거대한 산물인 마르크스 이론에 전쟁을 선포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마르크스 이론에 무의식적으로 경의를 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추종자임을 선언하고, 마르크스 이론 안에서 이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발판을 추구하며, 이러한 투쟁이 마르크스 이론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숨겨진 핵심을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 당의 광범위한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작업이다.

 

이론적 논쟁이 결국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 이미라살(Ferdinand Lassalle)이 말했듯이. 학문과 노동자라는 사회의 대립적 극단이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두 가지는 모든 문화적 장애를 자신의 무쇠 팔로 질식시켜버릴 것이다. 현대 노동운동의 전체 힘은 이론적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노동자에게 [이 경우] 이중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운동에서 노동자와 이들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으로 운반되는 것은 바로 노동자 자신의 가죽이기 때문이다. 베른슈타인이 공식화한 당내의 기회주의 조류는 당에 침입한 소부르주아 요소에게 지배권을 주고 소부르주아 정신으로 당의 정책과 목표를 변형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일 뿐이다. 사회 개혁과 혁명의 문제, 최종 목표와 운동의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이냐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냐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회주의와 벌리은 이론적 논쟁을 가장 생생하고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관심사다. 이론적 인식이 단지 당에 있는 소수 학자들의 특권으로 머물러 있는 한,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항상 길을 잘못 들 위험을 안고 있다. 다수의 노동자 대중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날카롭고 확실한 무기를 손에 넣을 때 비로소 모든 소부르주아 경향과 기회주의적 흐름은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다. 그때 운동은 더 확실하고 굳건한 지반 위에 서게 된다.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1899418일 베를린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