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영화 리뷰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의 이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투쟁이 강화되자, 이스라엘을 포함한 서구와 국내 언론들은 팔레스타인의 잔혹성만 부각시키기 바쁜 상황이다. 하마스의 잔혹성을 얘기하며, “닭장 속에 아이를 가뒀다”는 뉴스나 “영유아를 집단 살해했다.”는 이른바 가짜뉴스들이 끊임없이 생산 및 보도됐다. 물론 이런 뉴스가 가짜임이 밝혀져도 정정보도는 신문에 제대로 실리지 않는다. 즉,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가짜뉴스는 신문지 정면에 실려도, 정정보도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안보는 곳에 개재하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무자비한 학살을 벌이고 있는 명분 중 하나가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를 소탕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논리에 따르면,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은 테러리스트이며,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삼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 있고, 민간인이 사는 지역과 마을·병원·학교 등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다. 심지어 백린탄과 같이 국제법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무기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팔레스타인이 이들에게 저항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자국의 독립과 주권 그리고 영토를 침범하여 식민 지배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인 정착을 빌미로 인종청소를 자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수십 년에 걸친 투쟁이며 자국의 독립과 주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다. 현재는 비교적 잊혔지만, 팔레스타인과 비슷한 사례가 북아프리카에서도 있었다. 바로 알제리다. 알제리는 무려 132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로 1962년에 독립을 쟁취했다. 여기서 알제리의 근현대사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알제리는 1830년 프랑스 군대가 상륙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됐다.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 초기 알제리에서도 무장 독립투쟁이 일어났으며, 프랑스는 이들을 진압하는데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1870년대 들어 프랑스는 알제리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으나, 프랑스의 지배 하에서 알제리인들의 반불봉기는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일부 산악지대와 지방에선 1910년대까지 항쟁이 지속됐다. 알제리는 20세기에 발생한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프랑스에 의해 동원됐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당시에도 수많은 알제리인들이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파시즘에 맞서 싸웠다.
알제리인들이 프랑스군에 들어가 나치에 맞서 싸웠던 이유는 프랑스가 알제리의 독립을 약속했기 때문이었지만, 프랑스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1945년 5월 8일 나치 독일이 항복하던 날 알제리인들은 세티프와 구엘마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프랑스는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으며, 1달간의 진압 기간 동안 최소 6,000명에서 최대 45,000명에 달하는 알제리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게 바로 세티프 구엘마 학살이다. 프랑스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알제리의 독립운동은 잠시 지하로 숨었지만, 1947년부터 알제리의 비밀 군사조직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1946년에서 1954년까지 인도차이나에서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는데, 놀랍게도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독립동맹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나게 됐다.
디엔비엔푸 전투의 영향으로 알제리에선 1954년부터 프랑스에 맞선 독립전쟁이 발발했으며, 이 독립투쟁을 주도한 단체가 바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이었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은 마을 단위의 게릴라전과 도심에서의 지하조직을 통한 프랑스인 거주지 및 경찰소 그리고 군 기지에 대한 테러 전술을 구사했다. 사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이 이러한 전술로 맞선 것은 100년 이상 지속된 프랑스 제국주의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프랑스 제국주의는 알제리에서의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최신식 전투기와 탱크 그리고 장갑차와 헬리콥터를 투입했으며, 최졍예 부대인 공수부대도 투입했다. 1956년 말까지 대략 40만 명 이상의 프랑스군이 알제리에 주둔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알제리 독립 전쟁은 인도차이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패전으로 종결됐다. 전쟁은 1962년 에비앙 협정을 통해 전쟁이 종결되면서 알제리의 승리로 끝났고, 알제리는 132년 만에 독립을 쟁취했다.
영화 ‘알제리 전투(La Bataille d'Alger)’는 1954년에서 1962년 사이 8년간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맞선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무장 독립투쟁과 프랑스군의 정치적 폭력 행위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는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 ‘알리’를 포함하여, 이들의 입장에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했으며, 이들이 어떠한 감정 및 생각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프랑스의 공수부대가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어느 거주지에서 소탕작전을 벌이는 것에서 시작되며, 포위당한 은신처에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 ‘알리’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상념에 잠긴 채 치열했던 지난 3년간의 투쟁을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독립전쟁의 서막을 다룬다.
영화를 보다보면,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프랑스 지배에 맞서 테러를 제법 많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은 민간인들 사이에서 프랑스 경찰들을 살해하고, 이들로부터 무기를 노획하기도 하며, 불심검문에 협조하는 척 하며 프랑스 경찰관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프랑스인에 의해 알제리 민가가 폭탄 테러를 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인 지역에 가서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것도 여러모로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이다.
물론 폭탄 테러로 인해 민간인들의 희생당하는 장면 또한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만,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왜 그러한 전술을 사용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제법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프랑스 측이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알제리민족해방전선 대원들과 지도부들을 체포 및 소탕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공수부대원들은 알제리민족해방전선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습격하여 민간인들을 강제로 소개시키며, 의심되는 이들에게 물고문·전기고문과 같은 잔혹한 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마치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행위가 연상되기까지 한다.
심지어 이러한 잔혹행위를 합리화하는 프랑스 공수부대 대령의 논리는 현재 이스라엘의 논리와 전혀 차이가 없다.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프랑스 공수부대 대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참전하여, 이탈리아와 프랑스 서부전선에서 싸운 군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마다가스카르와 인도차이나에서도 복무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의 고문행위를 다음과 같이 합리화한다.
“우린 미치광이도 가학을 즐기는 자도 아닙니다. 우리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자들은 레지스탕스 운동 당시 우리의 활약을 잊었습니다. 우리를 나치라고 부르는 자들은 우리 중에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우리는 군인이고 군인의 임무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기자 여러분들에게 한번 묻겠어요. 프랑스가 알제리에 남아야 하나요? 그래도 남아야 한다고 대답한다면, 그로 인한 결과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프랑스 공수부대 대령의 태도는 현재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건국을 운운하며, 자신들의 학살과 광범위한 테러리즘을 합리화하는 논리와 완벽히 일치한다. 그 점에서 상당히 소름끼치는 영화 대사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영화 ‘알제리 전투’는 1966년 이탈리아에서 개봉한 영화로 이탈리아의 좌파 영화인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당시 베트남을 침략하던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1960년에 발생한 알제리에서의 대규모 반정부 민중시위를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데, 나로 하여금 정말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더더욱 화가 났던 점은 프랑스에 맞서 정당한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인들에게 프랑스 당국은 경찰과 군대 심지어 탱크까지 투입하여 이를 진압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영화상에서도 프랑스 공수부대가 시위대를 이탈하여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오는 알제리인들에게 기관단총을 발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가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독립 염원이 강해지고 있는 적절한 시점에 훌륭한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무려 제작된 지 57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명작이다. 영화를 보면서 현재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이 상당히 많이 오버랩 됐다. 이들이 간혹 테러라는 전술을 이용하는 것 또한 당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심정과 일치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스라엘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하는 짓은 과거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했던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 영화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나오는데, 이 대사야말로 과거의 알제리 독립 전쟁 그리고 현재의 팔레스타인 독립 전쟁의 본질을 보여주는 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나온 그 명대사를 인용하면서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마치도록 하겠다.
“기자: 벤 미디 씨. 여자에게 바구니에 폭탄을 실어 운반해서 무고한 생명을 수없이 죽인 것은 너무 비겁한 행위가 아닌가요?
벤 미디: 네이팜탄으로 민간인이 거주하는 마을을 공격해서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것이야 말로 훨씬 더 비겁한 짓이 아닌가요? 만약 우리에게 비행기가 있었다면 우리도 수월할 겁니다. 당신들이 폭격기를 주면 우리는 그 폭탄 바구니를 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