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아이티에서 지진이 났을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영토에 3~4배는 작은 나라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무려 10만 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TV 속에 비추어진 지진으로 파괴된 아이티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다. 그러한 장면과 더불어 충격적인 장면이 또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굶주린 아이티의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얼마나 먹을 게 없고 굶주렸으면 영양가 하나도 없고 신체에 지극히 해로운 진흙을 먹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충격적이다.


(아이티의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


현재 아이티의 기아지수는 항상 최악이었다. 세계 최악의 기아지수를 매년 자랑하는데, 기아 문제가 최악인 인도나 현재의 북한보다도 항상 낮게 측정이 된다. 참고로 이 기아지수 추정치는 미국에서 낸 것이다. 즉, 아이티는 인도나 북한보다도 훨씬 굶주리는 국가인 것이다. 참고로 북한은 1990년대 대기근을 겪었던 시기에 자국민에게 진흙쿠키를 나눠준 적은 없었다. 반면 아이티는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최악의 빈곤 국가 중 하나였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그리고 기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아이티는 어째서 굶주렸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아이티의 친미독재 정권에게 있었다.


(아이티 국기)


특히나 분단 상황에 있는 한국인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타국의 경제를 잘 도우며 그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착각에 많이 빠진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한국은 이승만 정권 이후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성장 동력을 얻었지만, 한국·일본·대만·싱가폴이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미국의 패권적 영향이 미치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을 보면 얘기가 전적으로 달라진다. 그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가 바로 국가 아이티의 존재다.


(아이티 지도)


아이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지 2년이 되던 1791년에 독립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의 급진좌파라 할 수 있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아이티의 독립이었다. 혁명으로 아이티에 독립국가가 탄생했지만, 1804년 마무리된 혁명 이래로 아이티는 항상 위협적 존재로 취급받았으며, 프랑스 정부는 아이티 독립 초기 220억 달러를 강탈했다. 19세기 내내 프랑스는 아이티에게 배상금 지불이라는 명목으로 이 나라의 국고를 털어갔다.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미국이 아이티 문제에 개입하였는데, 이것도 미국쪽 기업의 이익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1915년 미국은 아이티를 침공했으며 1934년까지 군정 통치를 했다. 사실상 아이티를 식민지 지배한 셈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아이티에서도 콩고의 파트리스 루뭄바와 같은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뒤마르세 에스티메였다. 그 또한 미국에 의해 제거 및 축출됐고, 미국은 1950년대 중후반부터 친미 독재정권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집권하게 된 인물이 바로 그 악명 높은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다.


(2019년 아이티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1957년 정권을 잡았으며, 악명 높은 비밀경찰인 통통 마쿠트(Tonton Macoute)를 만들어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 및 숙청했다. 참고로 이 비밀경찰 조직은 뒤발리에의 준 군사 조직이었고, 이들은 미군에게 군사훈련을 받았다. 당연히 그는 자신을 따르는 집단에겐 경제적 과실을 집중적으로 주었고, 그의 집권기간 내내 아이티는 경제파탄을 겪었다. 심지어 선거도 부정선거를 저질렀는데, 1960년대 아이티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그는 반대표가 하나도 없는 132만 748표를 얻었다. 오죽하면 당시 미국 뉴욕 타임스가 “라틴 아메리카는 그동안 많은 부정선거를 겪었지만, 뒤발리에보다 터무니없는 작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앞서 언급한 그의 폭력통치는 학살도 동반됐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무려 5만 명이 살해당했다.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1971년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아들인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19살의 나이에 아이티 대통령이 됐다. 즉, 아이티는 친미 독재 세습에 성공했다. 아들 또한 마찬가지로 15년 동안 권좌에 있으면서 반대파를 납치, 처형, 고문하면서 민생을 유린했다. 그 결과 1986년 아이티의 민중봉기로 쫓겨나게 됐다. 비자이 프라샤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공포와 거짓으로 사회 내 반공 및 반민중 정서를 심화했다.”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아이티는 계속 가난했고, 경제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즉, 예나 지금이나 사는 것이 크게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미국은 꾸준히 아이티 내의 우파 군부를 지원했으며, 내정을 이간질했다.


(아이티에서 아이들이 먹는 진흙쿠키)


2009년 아이티 정부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0.24달러에서 0.61달러로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최저임금법 도입으로 아이티 노동자는 하루에 5달러를 벌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티 4인 가족의 하루 생활비인 12달러보다는 훨씬 낮은 임금이었다. 그럼에도 아이티 내 미국 섬유 기업들은 주 아이티 미국 대사관을 통해 불만을 제기했고, 대사관은 정부에 로비를 펼쳐 최저임금 인상을 철회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대사관의 요청으로 아이티 정부는 최저임금을 결과적으로 0.07달러만 인상했고, 그 덕분에 프루트오브더룸, 헤인즈, 리바이스 등의 읠 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즉, 아이티는 프랑수아 독재가 물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에 의해 정치와 경제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 바로 아래에 있는 나라에 친미국가를 만들어 경제를 빨아 먹으면서, 인도나 북한보다도 기아지수가 훨씬 높은 나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번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미국이 세계를 부유하게 만들고 있는가? 결국 그 부의축적은 미국과 과거 19세기 서구 열강들을 중심으로만 돌고 돌았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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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19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티의 뒤발리에 부자가 한 짓을 보면 칠레의 피노체트랑 거의 쌍벽을 이룰 정도로 지독한 중남미 ‘숭미 극우 독재정권‘의 민낯을 보여 주죠.

2024-04-04 2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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