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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송광성 지음 / 나무이야기 / 2024년 11월
평점 :
1945년 해방 이후 남북 분단 정부가 수립되고 그 분단 정부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사실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분단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그 분단의 책임에 누가 가장 결정적으로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설사 알더라도 반공주의의 여파로 이를 쉬쉬하는 측면이 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 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 광주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신군부와 이를 지원한 미국에 대해 알게 된 수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80년대 내내 대학가에서 반미시위를 전개했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 과정에서 반미 성향의 학생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Origin of the Korean War)>이다. 사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의 극우들의 믿음과는 달리 친북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저 미국 대외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분석한 학자였을 뿐이다. 글쓴이가 커밍스의 책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군복무 말기인 2018년이었다. 그 당시 글쓴이는 대체복무로 소방서에서 근무했고, 2017년에 번역된 커밍스의 저작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그전에도 여러 한국 근현대사 서적들을 군복무 내내 탐독했지만, 커밍스의 저작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커밍스가 분석한 남한과 북한 지도부의 성격과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은 7년 전 글쓴이에게 소위 한국전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보통 한국전쟁을 생각하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소련의 스탈린의 지령과 허가를 받고 기습 남침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커밍스는 이와 같은 내러티브에 전면적으로 도전했고, 그런 서사가 왜 무의미한지를 너무나도 설득력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했다. 글쓴이는 바로 이런 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군복무 전후로 글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제국주의적 개입을 다룬 서적들을 여러 권 읽었다.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얼마나 많은 나라들에 개입하여 학살과 인권을 유린했는지를 알게 됐다. 여러 진보성향의 학자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서, 글쓴이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 대해서도 제국주의적인 지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라며 냉전 시기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이와 같은 은크루마의 논리로 보자면, 미국의 한반도 강점은 분명히 이런 측면이 강력히 남아 있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 이남에 세워진 미군정은 시작부터 점령군임을 표방했고, 과거 일제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등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결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연결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미군정의 문제점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던 친일 경찰들을 그대로 등용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미군정은 일제 식민 경찰에 근무했던 조선인을 대부분 재임명했다. 미군정 정보 전문가 존 콜드웰은 “미국은 일본 경찰 제도가 유지되도록 내버려두었다. 경찰 고위 간부는 대부분 일본이 훈련한 사람들이라서, 그들은 식민지 인민을 위한 정의와 인간적 대우에 대해 오직 일본식 방식과 일본식 생각만 알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자료를 확인해보면, 최소 80~85%의 미군정 치하 경찰들이 친일 경찰들이었다. 그 당시 대중들이 가장 증오하던 친일파가 바로 친일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자면, 미군정은 매우 반민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군정의 한반도 이남 정책은 냉전 시기 미국이 친미 반공독재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해방 이후 미군 점령기간 동안 무수히 일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역사적 진실들을 항상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미군정의 정책들을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법이었다며 미화하는 세력들이 너무나도 막강하게 살아있다. 이와 같은 극우 반공 사상을 가진 이들이 죽지않고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지난 2024년 12.3 계엄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됐다. 지난 2024년 윤석열 정권이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을 당시, 너무나도 좋은 책 한권이 출판됐다. 바로 송광성 선생의 저서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다. 글쓴이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 커밍스의 책을 읽으며 느낀 지적 자극을 다시한번 느꼈고, 너무나도 감명깊게 읽었다.
글쓴이는 이 책의 존재를 올해 초에 알게 됐다. 부끄럽게도 이 책이 이미 1990년대 초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을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다. 무엇보다 이 책이 1980년대 후반 해당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거기다 미국 UCLA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글쓴이가 눈여겨 본 것은 해당 저작의 연구 방법론이다. 해당 연구는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벌어지는 민족모순과 더불어 계급모순도 함께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본 저작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도 함께 연결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과 같이 본 셈이며, 그 당시 기존의 연구와는 차별성을 보인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접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미군정은 단순히 민족적 모순만 부각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군정이 친일 및 반동적인 우익 인사들에게 생산 및 공장 경영을 맡겨 도시 노동자들과 어떻게 갈등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했고, 오히려 자주적인 노동자들이 미국이 내세운 인사들 보다 더 잘 공장 생산을 잘하고 관리했음을 입증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해당 저작의 내용을 보자.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의 몇 가지 예는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인이 소유한 서울 영등포에 있던 조선피혁 공장에서는 해방 전에 1,3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군수품을 생산했다. 1945년 8월에 일본이 항복한 후, 그 공장 사무직 노동자 10명과 육체노동자 25명이 자주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인에게서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자주관리위우너회는 10월 8일에 공장을 다시 움직여 물품 생산을 재개했다. 하루 8시간 노동과 주말 휴일, 건강보험, 소비조합 등 개선된 노동환경 아래에서 노동자는 낡은 기계를 수리해 신발 생산을 100%, 가죽 생산을 200% 증가시켰다. 그러나 1946년 4월 10일 미군정은 노동자들이 선출한 위원회 위원장 박인덕을 해고하고 체포했다. 그리고 조균훈을 새로운 경영자로 임명했다. 조균훈은 노동자위원회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 경영으로 노동생산성을 67%나 하락시켰다. 노동자는 새로운 경영자에 맞서 파업을 일으켰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16쪽.
이와 같은 계급적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왜나하면,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현대사를 보는 데 있어서 쉽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여러 부분에서 한반도 이남을 매우 가혹하고 잔혹하게 통치했다. 앞서 언급한 계급모순의 사례는 아래의 예시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이 가능하다.
“경성철도 노조의 행동은 철도 고용인 30%를 해고하고 월급제에서 일급제로 바꾸라는 9월 1일자 군정법령 제55호에 대응한 것이다. 미군정 당국은 노조의 요구 조건을 무시했고, 운수국장 코넬슨은 "인도인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62쪽.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송광성 선생은 미군정을 실시한 미군이 남조선을 점령한 정복자였음을 분명히 한다. 미군정은 일본과 미국 정복자를 다함께 반대한 혁명적 조선 민족주의자를 잔혹하게 탄압했고, 일본인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던 노동자를 몰아내고 친일 분자를 관리자로 삼았으며, 이런 미군정의 행동으로 노동자들의 강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가 대구 10.1 항쟁이었다. 1946년 대구 10.1 항쟁이 일어나자 미군정은 매우 잔혹하게 진압했다. 서구의 많은 이들이 1989년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했다고 규탄하지만, 정작 서구 세력이 더 무자비하게 봉기 진압에 나선 것에 대해선 외면한다. 대구 10.1 항쟁에서 최소 1,000명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군정에게 있었다. 저자 송광성은 미군의 봉기 진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경찰은 미군이 깜짝 놀랄 정도의 잔인한 폭력으로 시위 군중에게 보복했다. 미군정 역사는 "혼란한 틈에 경찰의 극단적인 잔학 행위가 발생했다."고 시인했다. 미군 전술부대의 잔악 행위도 국립경찰의 잔혹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월 31일 전라남도 목포에서는 전술부대가 시위 군중 사이로 트럭을 몰고 지나가 많은 사람이 다쳤다. 미군정은 10월 민중항쟁이 공산주의 선동가 때문에 일어났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81쪽.
이와 같은 미군정의 진압은 1948년 제주 4.3과 여순에서도 나타났다. 4.3이나 여순은 계급모순과 더불어 민족모순이 매우 부각 되었고, 여기서도 미군은 무차별 민간인 학살을 동반한 진압에 나섰다. 1948년 9월부터 1949년 5월까지 2개월 동안, 미군정은 유격대뿐만 아니라 유격대에 동조하는 제주 도민까지 폭력으로 진압했다. 미군정의 진압으로 500~2,000명의 유격대가 죽은 것에 비해,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3만에서 최대 7~8만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정이 유격대와 싸운 것이 아니고 제주 도민을 대량 학살했음”을 의미했다. 여순에서도 그렇게 수천 명(최근 추산치는 1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미군정이 1948년 제주와 여순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학살한 데에는 자신들의 반공보루인 이승만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괴뢰였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하고 있다.
“친미 집단을 양성하면서 조선인 민족주의자를 분쇄하느라고 3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서, 미국 군인들은 조선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도 남조선에 이승만 정권이라는 반공보루를 구축했다.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을 이어받았고 미군정의 정부 기구, 관리, 법률, 심지어 빚까지 떠맡았다. 이승만 정권은 형식상으로만 민주적이고 독립적이었으나, 사실상 독재정권이고 미국에 깊이 종속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군사력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제에 간섭했다. 미군사력은 1948년 여순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나 전라도 지방으로 확산했을 때,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막았다. 미군은 남한 전역에 걸친 광범한 '좌익소탕', 특히 한국 군대에서의 좌익 숙청을 끝마친 후에야 비로소 한국에서 철수했는 데, 그때도 미군사고문단을 잔류시켰다. 이와 같은 역사는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됨으로써 한국이 미국에서 진정으로 독립되었다는 신화를 반박한다. 결국 미점령군과 조선 인민의 관계는 제국주의 국가와 그 식민지 국가 간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미점령군은 인공을 파괴했고, 일제의 식민 통치 구조와 인맥을 지속시켰으며, 다시 대한민국으로 이월시킴으로써 미국에 깊숙이 종속하게 했다. 그리하여 남조선은 일본 속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미국 신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05~206쪽.
또한, 한국의 극우들이 그리도 칭송하는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사실은 반민중적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엔임시위원단은 전국 규모의 선거를 감시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유엔위원단은 남쪽만의 단독 선거 가능성을 토의했다. 조선에서 개진된 의견 중 이승만 진영과 한민당, 미군정 당국만이 남쪽의 단독 분리 선거를 지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김구와 같은 보수주의 지도자를 포함한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남쪽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나섰다. 남쪽 내에서만도 상당수가 단독 분리 선거를 반대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345쪽.
송광성 선생의 책은 미군 점령이 말 그대로 신식민주의적인 지배체제였다고 주장한다. 글쓴이 또한 이런 시각이 틀렸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분명히 미군정 체제는 태생부터 반민중성을 내재하고 있었고, 미군정의 친일 경찰 등용과 대구와 제주 그리고 여순에서의 민중항쟁 진압이 이를 입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나온 논문인데도, 여전히 사회 분석 틀은 유용한 점이 많다. 이와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과 남베트남 그리고 한국과 그리스 등의 여러사례를 비교 분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당 저서는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저자의 학위 논문이기에 이후 한국 사학계와 사회학계가 축적한 연구를 반영하지 못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를 계승 발전한 총괄적인 연구서가 필요하다.
좀 있으면(2025년 6월 3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아마도 6월 3일이 지나면 정권이 교체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란 세력들은 멀쩡히 살아 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설립되고, 이승만 정권이 탄생하면서 우리는 친일 청산에 완벽히 실패했다.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윤석열과 같은 내란 세력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내란 세력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친일 세력이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우리 민중들이 저 윤석열 내란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역사부터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80년 전의 우리 현대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송광성 선생의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글쓴이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