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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지음 / 어깨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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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4일 오전 1122분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의견에 따라 내란수괴 윤석열이 파면됐다. 2024123일 느닷없이 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의 행동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202544일까지 반윤투쟁에 열심히 참가했다. 44일 그날 오전 나는 임금노동자로서 야근을 했음에도 퇴근하자마자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헌재 앞에 있는 바리케이트까지 가서 나는 대중들과 함께 윤석열 파면!’을 외첬다. 그리고 헌법재판관 문형준이 판결문을 읽어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가 윤석열에게 파면을 선고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뻐 날뛰었다.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으며, 감동의 눈물까지 나왔다. 그 현장에서 느낀 감동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은 대선을 치를 것이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현실정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윤석열의 반대세력인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대선을 통해 집권할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재 이것이 한국 민중이 바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다시 한 번의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정국 때, 정권 교체 이후 어떻게 사회가 흘러갔는지 명백히 기억하고 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시기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소방서에서 공익으로 군복무를 했다. 그리고 전역 하기 전 문재인 정부를 경험했다. 문재인 정권 5년을 기억하고 있다. 5년 동안 나는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 사실 그래서 2022년 대선 때, 윤석열을 찍지도 않았지만 이재명을 찍지도 않았다.

 

문재인 정권 시기 나는 민주당이 어떠한 실망을 남겼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전혀 철폐하지 않았고, 말로는 남북평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하고 미국제 무기를 사들였다. 그리고 2021LG 청소노동자 투쟁 때 비록 청소노동자들의 복직을 이루어주었지만, 집권 내내 노동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노동존중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재벌과 자본가 편을 들었다. 박근혜 정권 시기 문재인과 민주당은 사드를 빼겠다고 소성리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전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집권 시기 나는 소성리에 가서 사드를 막는 투쟁을 한 적이 있고 경찰과 충돌했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보여준 위선적 모습을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사실 이런 모순은 노무현도 보였던 문제다. 사실 맑스-레닌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더불어민주당은 말 그대로 부르주아 정당일 뿐이다. 한국의 극우들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종북좌파 취급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만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재명 후보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역사 문제에 있어서 해방 후 미군이 소련군과 달리 점령군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라는 사실은 인정하는 모습을 2020년대 초에 보인 적이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정국에서 이재명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유명인사들이 보인 모습은 분명히 2016년과 2017년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의 잘못된 점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그래서 나는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해 큰 기대같은 것은 없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어느정도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 하에서 그 나름의 대중 복지를 일부분 챙겨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윤석열 보다야 훨씬 나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진보적인 정권을 실현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여전히 진보들에게는 성취해 나가야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렇게 정치와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을 때, 나는 편의점에서 알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소책자 한권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국노동자정치협회에서 펴낸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이다.

 

이 책은 COVID-19가 한참이던 2020년에 나왔다. 공식 출간 등록일은 2020518일이다. ,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에 노정협에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한국사회의 성격과 임무에 대해 분석했다. 사실 이 책을 몇 년 전 훌터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하나 꼼꼼이 읽으며 완독을 하니, 짧은 소책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부가 많이 됐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가진 물질주의에 대한 맹신을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하고 분석한 것이 가장 와닿았다. 보통 1991년 소련의 해체에 따른 사회주의의 붕괴를 사람들이 자주 입에 담고는 한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국과 경제적으로 실패한 북한을 자주 언급 및 운운한다. 예를 들어, 소위 브루스 커밍스의 대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반박했다는 연세대의 정치학자 박명림의 저서를 사례로 보자. 박명림은 1990년대 한국전쟁을 다룬 저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냉전의 해체와 북한의 빈곤의 증명하듯이라는 다소 반공주의적인 표현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마저도 이와 같은 시각을 적잖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관점의 기저에는 자본주의 국가는 그래도 부를 창출했지만, 사회주의는 가난을 초래했다.”는 신념화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한국의 고도의 발전이 어떠한 모순을 가지고 있고, 현재 한국 사회가 경제 및 정치적으로 얼마나 타국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전혀 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난번 나는 독일 좌파 출신의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저서 <풍요의 조건>을 읽었다. 비록 해당 저작이 다소 개량 좌파적인 측면이 있긴 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측면의 비판은 상당히 와닿았다. 예를 들어 바겐크네히트는 현재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절대다수의 빈곤과 해결되지 않는 빈민들의 생계 문제를 자본주의 국가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을 변증법적으로 대입해서 한국의 자본주의자들과 자본주의 옹호론적 학자들을 논하자면, 실제로 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겐크네히트의 표현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소책자가 이런 모순들을 잘 폭로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한국의 발전상에 젖어들어 자본주의의 모순을 망각하고 극우로 변절한 이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한 점이 가장 공감이 됐다. 그리고 오히려 한국 사회가 저발전이 아닌 고도의 발전으로 모순이 극대화된 점을 폭로한 것도 많이 공감이 됐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사실상 미국에 의해 지배받는 신식민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분석한 점이다. 이 부분은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지점이다. 노무현 시절 진보진영에게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던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 주요 기업과 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해당 저작에 나오는 내용을 보도록 하자.

 

미국이 주도하는 IMF1989년 워싱턴에서 남미국가들에게 강요했던 10가지 신자유주의 정책,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한국에 그대로 강요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정부가 자기 영향 아래 있는 IMF,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을 동원하여 만든 개방 강요 정책으로 그 주요 내용은 정부 공공 예산 삭감, 공공 산업 민영화, 주식과 외환 등 자본시장 완전 개방, 관세 인하로 무역 개방, 비정규직 확대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다. 이는 미국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이른바 각종 자유화라는 명목으로 외국자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제3세계 국가들에게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 IMF와 구조조정 정책을 받아들인 80년대 남미, 90년대 아시아의 많은국가들은 경제주권을 미국 월가 자본에게 빼앗긴 채 수탈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한국 경제도 IMF의 구조조정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자본시장까지 완전 개방되면서 순식간에 외국자본에 잠식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1,9113,000만 달러였던 국내 외국자본은 20129,4515,000만 달러로 5배 가량 무섭게 확대되었다. 그중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은 25, 직접투자는 5.72, 채권은 4.9배나 늘었다. 구조조정 결과 많은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동시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갔고, 기아, 대우, 한보 등 굴지의 재벌이 사라졌다. 국내 은행들의 상당수가 외국계 은행으로 탈바꿈한 것도 이때다. 한국경제의 과실을 수탈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관철된 순간이었다.(중략....) 외국인 직접투자의 분포도 위와 같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제조업중 반도체 등 전기전자에 33.56%, 석유화학에 17.21%, 자동차, 차량부품 등 운송용 기계에 14.87%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18~19.)

 

내가 경제 부분에 대해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분명한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자본시장을 제국주의적으로 잠식하는 방법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도 한미 FTA로 상당히 잠식당했다는 사실 정도는 해당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 한국의 물질적 발전과 경제성장이라는 부분에 경도된 자본주의자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이런 모순들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옹호한다. 항상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진 북한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 그런 사고방식이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청산주의에 빠지고 운동을 포기한 이들이 가졌던 사고방식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산업화라며 옹호하고 있는 이영훈도 과거 민중경제적 시각을 가진 진보학자 박현채를 비난하면서 진보적 사고를 포기하고 우경투항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 또한 해당 소책자가 잘 다루고 있다. 비슷하게 전향한 운동권 민경우가 2020년 조선일보에 실은 내용도 비판한다. 여기서는 소책자에 나오는 또 다른 내용도 인용하겠다.

 

민경우는 한국 재벌을 매판자본으로 봤던 비과학적 현실인식이 한국 재벌의 성장과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구체적 현실 앞에 무너져 내리면서 진보적 이념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경우다. 그런데 매판자본으로 봤던 삼성전자가 소니 등을 다 합친 일본 전자업체 보다 매출액이 더 크고, 세상에는 스마트폰과 드론, 인공지능이 개발되어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제목에서 나와 있는것처럼, 민경우는 간첩혐의로 두 차례 수감되기까지 했다.한국 자본이 국제적인 거대 자본으로 성장하고, 최첨단의 생산력이 발전하는 이면에는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활동가를 두 차례나 간첩 조작으로 구속시키는 시대착오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파쇼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탄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시절 프락치 정치공작으로 구속됐던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여전히 촛불혁명 정부라 자처하는 권력 하에서도 석방되지 못한 채 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아직도 간첩조작을 일삼고 있으며 심지어 천인공노할 프락치 공작까지 자행하고 있다. 분단 현실 하에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북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 편견과 무지, 왜곡이 만연해 있다. 맹목적인 반북반공주의는 바로 지배계급이 조장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재편작업은 이러한 분단질서와 파쇼적 억압기구와 악법,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민경우는 재벌의 발전상만 일면적으로 보았지, 그 발전 이면에서 자행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극한적인 착취와 억압,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현실은 눈감아 버렸다. 극우 파쇼 언론 조선일보 지면은 이러한 탁락한 변절자들을 위한 마지막 고백의 장이 되버렸다. 동유럽 사회주의와 쏘련 사회주의 해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은 이러한 경로를 밟지 않고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를 자처하면서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변혁의 전망을 포기했다. 이처럼 한 쪽에서는 한국에서 독점자본의 발전을 인정하되 정상적인 독점 강화와 발전 보다는 낮은 생산력의 기형성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의 뒤틀려진 현실을 발견하여 모순을 찾으려 했다면, 다른 쪽에서는 지속적 발전 가능성 속에서 자본주의 변혁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에 투항했다. 그런데 둘 다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에서 모순의 심화를 보지 않으려 한다.”(같은 책, 45~46.)

 

그 외에도 현재 노정협이 가진 정치·경제·사회적 분석의 틀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적 성격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좌파 내에서도 논쟁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당 소책자에 나온 내용과 입장이 같다. 또한,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자면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 그러니까 소련의 경험을 비하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함을 역설한다. , 이런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해당 소책자는 소련의 붕괴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서 생긴 결과가 아닌 1956년 흐루쇼프가 소련을 수정주의화 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나오는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의 문제를 초래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사실 한국의 우파들과 리버럴 뿐만 아니라 좌파들 또한 소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부터 시작한 수정주의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모른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올바르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 문제에 대한 분석도 이 책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다. 비록 소책자다 보니 축약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한국 역사가 노동자와 대중을 학살한 역사고, 이후 반공주의라는 극단적 이데올로기 하에서 성장하며 노동계급을 탄압한 반동적 권력이었음을 폭로한다. , 한국의 리버럴과 우파 그리고 적잖은 좌파들은 이와 같은 의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다소 자화자찬적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에 어찌보면 2015년 사회운동을 시작한 이래 이후 좌파화와 의식화를 거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좌파를 자처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해당 서적은 말 그대로 현재 존재하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가 가진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책자다. 사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다. 나와 노정협의 인연에 대해 얘기하겠다. 내가 실질적으로 전국노동자정치협회와 접촉하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그 당시 시작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 학습을 시작으로 해당 조직에 가입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물론 함께하는 조직 내에서의 갈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노정협에 가입한 지 한 5년 정도 되었으니, 내 인생의 1/6을 함께 한 조직이라 해도 얘기할 수 있겠다. 이곳에 몸을 담은지도 벌써 6년이 됐다. 해당 조직과 함께 하며, 현 정세를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이와 더불어 맑스나 레닌 등의 원전 학습도 상당히 오래했다. 지금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정말 고마운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얘기를 다시 현 시국으로 돌리겠다. 윤석열이 파면됨에 따라 더불어 민주당이 집권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권은 분명 진보적이지 않은 정권일게 분명하다. 물론 윤석열 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진정한 모순과 문제점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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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는 서양사 5 : 현대편 - 제국주의에서 세계화까지 사료로 읽는 서양사 5
노경덕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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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는 서양사 5 현대편 서평: 기존의 서양사 책과는 비교적 다른 접근을 한 흥미진진한 서양사 책

2022년 중반이었던 것 같다. 소련사 전공자이자 내 페친이기도 한 노경덕 선생이 서양사 책을 집필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아마 작년 6~7월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아는 사람을 통해 받게 된 노경덕 선생의 강연 글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 그 진실과 왜곡‘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글을 읽으며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소련에 대한 편견을 많이 깰 수 있었다.

작년에 신간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진진한 구성과 내용이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작년 생일 때 지인이 생일선물로 받았지만, 읽게 된 것은 10개월이 지나서였다. 무튼 책을 읽게 됐고,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책의 내용은 과거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부터 냉전의 종식까지를 다루고 있다. 각 시대 및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관련 사료들을 ‘자료‘ 형식으로 모아놓았으며, 참고문헌을 각 주제마다 표기해놨다. 그래서 관련 파트가 어떠한 참고문헌을 인용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냉전을 다룬 파트에서 반식민주의 운동에 관한 내용은 시중에 나와있는 서양사 통사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히 다루고 있으며, 당시 탈식민주의 운동에서 소위 제3세계로 불리는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도 제법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나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독립운동가 루뭄바와 친미 독재자 모부투에 대한 얘기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상세하게 알게 됐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되니 상당히 슬펐다.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미국이 탈식민주의에 반하는 행위로서 언급 및 다뤄진 것도 솔직히 많이 공감했다.

소련관련 부분이야 저자의 본 전공이니 당연히 읽어볼만한 내용들이 많다. 이 책 또한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이 파시즘의 위협속에서 단행한 대숙청이 분명한 한계 및 과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냉전기 서방세계가 선전하던 대규모의 묻지마 집단 살인은 아니었음을 역설한다. 소련 시대 산업화나 이후 나타난 한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에서 소련이 공세가 아닌 방어적 입장인 사실도 분명히 언급한다. 매우 흥미롭게도 흐루쇼프 시대에 대해서도 소위 관료주의가 더 대두한 배경을 언급했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의 서양사 책들에서 찾기 힘들기에 정말 좋았다.

그리고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부분에서도 승리의 주역은 영미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었던 것도 강조한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사회에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세운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반러감정이 강한 폴란드나 발트3국 그리고 서유럽 국가들이 그런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군 사단이 200~300개가 넘는 반면, 북아프리카에 영국군에 맞서 투입된 독일군 사단이 4~5개 정도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스탈린이 강력히 요구했던 이른바 제2전선도 1944년 6월 5일이 되서야 열렸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소련은 규모면에서 3년 동안 사실상 혼자서 독일군을 상대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체는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해보자면, 영국과 미국이 아닌 소련과 스탈린 그리고 소련 민중과 소련군이다.

책 마지막 파트인 냉전 종식도 상당히 읽어볼만 했다. 소위 소련의 군사적 침공 사례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은 소련 지도부가 가급적으로 피하려 했고, 명분이 아프가니스탄 좌파정권을 지원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냉전 말기 동유럽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대해서도 단순히 서구가 선전하는 자유를 위한 시위로만 해석하지 않은 점과 이후 나타난 한계 때문에 공산당이 다시 지지받게 된 것을 언급한 것도 다른 책들에선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많은 공부가 된 책이다. 책에 인용된 자료들 또한 빠짐없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읽지 않았던 자료들을 통해 또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냉전 파트에서 매카시즘 관련 자료나 반공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발언등을 읽으면서, 한국의 극우 태극기들과 비슷한 맥락과 주장이 담겨 있는 사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즉, 한국 극우들이 주장하는 맥락을 책에 자료를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책이 제공해줬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제국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파트에서 서구의 아프리카 침탈을 다룬 내용과 지도를 보면서 진지하게 느낀 것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절대 지지및 지원하지 않는 이유 말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정부는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에게 ˝대포 주세요! 미사일 주세요! 전투기 주세요! 장갑차 주세요! 탱크 주세요!˝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며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을 아프리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황당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 서방은 자신들을 잔혹하게 지배한 압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도 않은 것이며 아무런 효과없는 대러제재에도 동참하지 않은 것이다. 젤렌스키가 말하는 자유세계 같은 용어가 아프리카에겐 위선 그 자체일 수 있다. 즉 이런 맥락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서양사 책을 읽었다. 자료로 인용된 내용들도 대체로 좋았고, 나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이들의 생각 또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극체제와 다극체제의 대립,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팔레스타인 분쟁 속에서 서양사를 생각해볼 기회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책이 나름 제공해줬다. 그것 또한 좋았다. 국내에 나온 서양사 책들 중에 제법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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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4-03-25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편입니다. 왜냐하면,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서방(특히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은 자신들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지배한 압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전자의 두 국가는 과거 영토 지배 및 원주민 대량학살, 후자의 한 국가는 반민주적 독재정권 후원)
 

1935년 8월 2일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이른바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표명한 테제가 채택됐다. 당시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뜻하는 테제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디미트로프 테제(Dimitrov Thesis)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Georgi Dimitrov)는 누구일까? 오늘은 디미트로프의 생애를 통해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의 사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1882년 6월 18일 불가리아의 서부에 위치한 코바체프시(Kovachevtsi)에서 태어났다. 디미트로프는 8남매 중 첫째였으며, 그의 부모는 오스만 제국의 마케도니아 출신의 이주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의 장인이었으며, 공장 노동자 출신이기도 했다. 디미트로프가 첫 정치활동에 참여한 것은 19세가 되던 1902년이었다. 불가리아의 수도이던 소피아에서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으며, 당시 디미트로프는 인쇄식자공이었다. 그리고 그는 불가리아 사회민주당에 참여했으며, 1904년부터 1923년까지 불가리아 노동조합연맹의 서기장을 지냈다.


전반적인 유럽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불가리아의 사회주의 운동도 불가리아 당국의 탄압을 받았는데, 디미트로프 또한 1911년에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시기 유럽의 전황은 모로코 위기와 발칸 위기를 통해 점차 고조되고 있었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흥미롭게도 디미트로프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에 불가리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8년 체포될 때까지 불가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및 새로운 전쟁 공채 발행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이후 디미트로프는 1919년에 석방되었으며, 1917년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를 방문하고자 했다. 그가 처음으로 소비에트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1921년이 되어서였다. 1922년 12월 디미트로프는 공산주의자 국제무역연맹인 프로핀테른의 관리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1917년 볼셰비키가 주도한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1919년에 코민테른이 창설되었으며, 불가리아 사회노동당 또한 코민테른에 가입했다.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불가리아 공산당으로 당명이 교체되었으며, 이들은 불가리아 군부에 맞선 투쟁을 지속했다. 1923년 6월 불가리아의 알렉산드르 스탐볼리스키 총리가 쿠데타로 암살당하자 불가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은 쿠데타의 주역 알렉산드르 찬코프 총리에 반대하는 봉기를 조직했다. 디미트로프 또한 혁명 활동가로서 탄압에 맞선 저항을 지도했으며, 저항이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나자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했다. 디미트로프를 포함한 불가리아 공산당 지도부는 군부 당국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궁극적으로 소련으로 망명했다.


이후 디미트로프는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하며, 1929년까지 소련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소련에서 망명생활을 한 디미트로프는 활동 지역을 독일로 옮겼으며, 거기서 히틀러의 나치당에 맞서 독일 공산당을 이끄는 반파시즘 활동을 했다. 그러나 독일은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이는 역으로 히틀러와 같은 나치 극우들이 정권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33년 1월 독일의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으며, 나치는 보다 노골적으로 테러와 폭력을 반대파들에게 사용하게 됐다.


1933년 2월 27일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국회의사당(Reichstag)이 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 마리뉘스 판데르뤼버(Marinus van der Lubbe)에 의해 불에 탄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의사당이 불타자 나치는 광분했고, 방화범인 판데르뤼버가 단독범행을 재판에서 주장했음에도 이를 빌미로 독일 공산당을 포함한 나치 반대파를 탄압하는 명분으로 사건을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디미트로프 또한 체포되었으며, 라이프치히 재판에서 디미트로프는 당시 법원과 검찰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관련 재판은 3개월 가까이 지속되었으며, 1933년 12월 13일 변론단계에 들어가 검사총장의 논고, 변호인의 변론에 뒤이어 12월 16일에 디미트로프가 최종 진술했다. 당시 나치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독일 사법부는 주범 마리뉘스 판데르뤼버를 제외한 모든 ‘공범’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 따라 석방되었다.


이후 디미트로프는 1934년 2월 27일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로 갔으며, 이오시프 스탈린 또한 그를 격려 및 환영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를 통해, 디미트로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는데, 여기서 디미트로프는 “파시즘의 공세와, 파시즘에 반대하여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지향하는 투쟁에 있어 코민테른의 임무”라는 이름으로 사건에 대한 보고를 했다. 또한 디미트로프는 파시즘에 맞서, 부르주아 및 애국적인 민족주의자들과도 연합할 수 있는 인민전선을 조직해야 함을 역설했다. 궁극적으로 디미트로프의 주장이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되었으며, 이후 인민전선 혹은 통일전선은 디미트로프 테제로 불리게 됐다. 당시 디미트로프는 파시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파시즘, 그것은 근로대중에 대한 자본의 잔인무도한 공세다.

파시즘, 그것은 방자한 배외주의와 침략전쟁이다.

파시즘, 그것은 광란하는 반동과 반혁명이다!

파시즘,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전 근로자의 가장 흉악한 적이다!”


상당히 뛰어난 분석이다. 파시즘에 대한 디미트로프의 분석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그리고 군국주의 일본의 사례를 보자면, 그가 내린 정의에 부합하기까지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을 구성하는 세 나라는 자본에 충실했고, 침략전쟁을 추구했으며, 반혁명적이었고,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따라서 탁월한 분석이라 할 수 있겠다. 디미트로프의 노선이 공식적으로 활용된 첫 무대는 바로 1936년에 발생한 스페인 내전이었으며, 당시 스페인에선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맞서 미국, 영국, 소련 등이 민주 진영을 지원했다. 비록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의 승리로 끝났기에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중일전쟁 당시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국공합작에 따른 반일항쟁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영국·소련의 연합은 디미트로프 테제가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서 유효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했다.


디미트로프의 조국인 불가리아는 1930년대부터 친파시즘적 경향을 보이다가, 1941년 독소전 발발 이후엔 나치에 협력하는 국가가 되었다. 당시 불가리아는 나치와 함께 반소·반공투쟁을 전개했으며, 함께 군사적인 방어선도 구축했다. 그러나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1943년 쿠르스크 전투를 기점으로 나치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소련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불가리아는 1944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다. 당연히 디미트로프는 전쟁이 끝난 이후 해방된 불가리아로 돌아왔다. 추방당한지 22년 만에 돌아온 것이었다. 1942년 7월 디미트로프는 조국전선 강령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보자.


“보리스 국왕정부의 반인민적인 정책은 절체절명의 민족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불가리아는 사실상 히틀러의 속국이 되고 불가리아 인민은 독일 제국주의자의 노예가 되었다. 히틀러의 광기어린 세계지배 계획이 반드시 실패할 운명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배신적 정책을 수행하는 것은 곧 불가리아 인민을 의식적으로 파멸로 내몰아 민족적 독립을 잃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중략.....) 우리 국민에게 긴요한 위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국전 선의 구국정책을 단호하고 일관되게 실행할 힘을 갖춘 진정한 국민적 정부를 한시바삐 수립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국전선은 현재의 배신적 · 반인민적 친히틀러 정권을 타도하고 불가리아 국민의 진정한 정부를 세우는 일을 당면 투쟁목표로 한다. 또한 이 정부는 전 불가리아 인민의 의지와 지지를 바탕으로 대(大)국민의회의 소집을 위한 조건을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의회가 앞으로의 불가리아의 통치형태를 정하고, 우리 조국의 자유, 독립, 번영에 필요한 헌법상, 물질상의 보장을 확립해 낼 것이다.”


1946년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불가리아 공산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인민민주주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와 동시에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정권과 루마니아의 사회주의 정권과도 협상을 시도했다. 다만 디미트로프와 티토가 협상하기도 했던 남슬라브 연맹 창설은 스탈린이 반대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인근 국가인 엔베르 호자의 알바니아하고도 협상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일설에 따르면 디미트로프는 호자에게 “엔버 호자 동무 이 곳을 보십시오! 당을 깨끗하게 유지하도록 합시다! 혁명적이고 프롤레타리아트 적이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도자가 된 이후부터 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는데, 소련 모스크바에서 병을 치료받던 중인 1949년 7월 2일에 사망했다. 이후 그의 시신은 엠버밍 처리되어 레닌처럼 소피아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박물관에 조성된 영묘에 안장되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디미트로프의 시신은 화장됐고, 영묘 또한 1999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여론조사 결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시민의 2/3이 철거를 반대했다고 한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이른바 인민전선 노선을 만든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민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했고, 대체로 인민전선 노선에 입각한 진보적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는 사회주의 진영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디미트로프가 발표한 반파시즘 인민전선 노선은 분명히 고찰할 가치가 있으며, 현재 윤석열에 맞선 투쟁이 격해지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노선을 추구해야하는지, 그 광명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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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에 반대한다 - 워싱턴이 벌이는 신냉전과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
데보라 베네치알레.존 로스.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비자이 프라샤드 엮음, 심태은.이재오. / 두번째테제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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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월이었다. 나는 국제전략센터에서 개최한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비자이 프라샤드의 북콘서트에 참가했다. 거기서 난생 처음 비자이 프라샤드를 만났고, 감명 깊은 강연을 들은 이후, 의미있는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사실 그 북콘서트는 2022년 초에 번역한 워싱턴 불렛과 그해 말에 번역한 신냉전에 반대한다관련한 북콘서트였다. 아는 페친 동지 덕분에 참가하게 된 이 북콘서트는 표지부터가 끌렸다. 신냉전에 반대한다라는 제목이 너무나도 와 닿았었다. 그 이유는 현실을 살아가는 진보좌파가 고민하고 생각해야할 주제이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됐다. 사실 나 또한 푸틴이 정말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리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물론 나는 이 전쟁에서 가장 나쁜 놈이 전쟁범죄를 운운하는 모습에 참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미국이 어떠한 짓거리를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미국이 자행한 악행은 이루 헤아릴 수 가 없이 많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주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있는 한국에서야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고마운 존재로 여전히 인식되지만, 미국은 자본주의와 자본가를 위해선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 있는 나라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인들 스스로가 쉽게 망각하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만 보더라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보여주는 사료적 근거는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2022년 말 국제전략센터에서 번역한 신냉전에 반대한다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소책자다. 나는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프라샤드의 책은 갈색의 세계사를 빼놓곤 다 읽었다. 3세계의 붉은 별, 워싱턴 불렛, 물러나다는 내 서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책들이다. 마찬가지로 신냉전에 반대한다도 내 서재에 꼭 있어야만 하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은 비자이 프라샤드가 쓰지 않았다. 프라샤드와 비슷한 역사관과 문제의식을 공유한 세 명의 전문가들이 집필했다.

 

책의 구성은 비자이 프라샤드가 쓴 서문으로 시작하여 중국 인민대학교 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영국인 출신인 존 로스의 미국이 세계에서 더 많은 군사 침략 행위를 벌이는 이유라는 글로 주 내용의 첫 번째 장을 시작한다. 이탈리아 언론인이자 트리컨티넨탈 연구소 연구원인 데보라 베네치알레의 미국을 전쟁으로 이끄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미국 오리건대학교의 사회학과 명예교수이자 먼슬리 리뷰 편집장인 존 벨라미 포스터의 “21세기 생태와 평화 운동을 위한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 책이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주는 것들이라는 국제전략센터의 감수글이 실려 있다.

 

책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2013년 유로마이단 당시 미국의 개입과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즘의 성장을 적나라하게 비판했고, 냉전 이후 21세기에 급부상한 미국의 경쟁국 중국에 대한 미국의 냉전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 냉전 시기 미국의 적대국이던 소련은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에 현재의 중국은 미국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조만간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초월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나올 정도다.

 

현재 한국에 만연한 혐중정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서유럽은 혐중정서에 빠져 있다. 미국은 항상 자유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중국에 대해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학자들에 대해선 상당히 견제를 하고 있고, 소위 진보운동 단체들 또한 중국의 티베트나 위구르 문제를 통해 인권 문제를 운운하고 있는 실정이며, 중국에 대해 비호하는 발언을 한 학자나 정치인은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당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업을 동원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에 신냉전에 반대한다를 읽으면서, 서구가 가진 자본력과 인터넷 장악력에 대해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서구는 자신들의 경쟁상대인 중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인터넷 파급력과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듯이, 신냉전의 시대에서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단결을 강화시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유지함으로써, 세계적 경제 문제나 위기에 대한 큰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소련과 동유럽을 자본주의화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냉전에서 승리했다.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소위 만만치 않은 도전자가 없던 시기를 대략 10~15년간 보냈다. 그러던 도중 다시 러시아와 중국의 견제를 받게 됐고, 201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화됐다. 거기다 2000년대 미국의 침략으로 시작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미국의 사실상 패전이나 완전한 패전으로 종결됐다.

 

책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미국은 100여 개국을 상대로 침략하거나 군사작전을 벌였지만, 외국 정부의 침략을 받거나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적이 없다는 점에서 전쟁 도발에 더욱 대담해졌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엄밀히 따져 보자면, 미국의 대담한 전쟁 도발로 인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냉전이 끝나거나 끝나갈 무렵에 태어난 세대들은 경쟁자가 없는 초강대국 미국의 모습을 봤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정치와 엘리트 계층은 몰역사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으며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책은 강조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현재 미국식 애국주의에 빠진 극성 네오콘들과 민주당 매파들이 딱 그러한 관점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와 학살을 망각한 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아주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있어 이러한 행위는 미국의 전쟁범죄 옹호 및 합리화라는 아주 편리하고 간단한 방어도 된다. 네오콘들은 러시아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무기들을 사용한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미국은 유로마이단 이후 돈바스 내전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군대를 키우면서, 집속탄과 같은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따라서 미국이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규탄한다는 말 자체가 속된 말로 내로남불인 셈이다.

 

또한 신냉전을 반대한다는 미국의 핵무장과 기후변화의 문제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후문제 및 핵문제에 대한 지적은 아마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일 것이다. 미국이 보유한 핵폭탄의 숫자와 미국 자본이 유도하는 환경 파괴 및 기후 변화 그리고 전쟁 도발을 통한 지속적인 자연에 대한 훼손 등을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진보주의자라면, 존 벨라미 포스터의 글 “21세기 생태와 평화 운동을 위한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를 꼭 읽어야 할 것이다.

 

지난 학기 대학원 생활 도중에도 촘스키와 프라샤드의 대화를 다룬 물러나다를 읽었지만, 이번에도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미국과 제국주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 중국의 경제 및 경쟁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으며, 주제에 비해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거기다 소책자여서 읽는데 크게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는 책이다. 그에 반해, 책에서 얻어가는 지식은 많고 값지다. 따라서 현재 통일과 평화 그리고 반전을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라면 이 책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 생각한다.

 

많은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적극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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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8-02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미국에 진정한 진보정당/진보언론이 없고 우익-친기업-군사력강화주의자들이 미국 정계와 언론을 지배하기 때문에 미국의 중동 침략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극소수라죠(!)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에게 총에 맞고 사망한 해는 1979년이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박정희가 총맞아 죽어버리기 몇 달 전 지구 반대편에서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사실상 받았던 나라 니카라과에서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니라카과 혁명은 과거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체게바라(Che Guevara)가 쿠바에서 성공시킨 민족해방 혁명이자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의 투쟁이었다. 이 산디니스타 혁명을 성공시킨 지도자의 이름은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였고, 오르테가는 현재까지도 적잖은 니카라과인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니카라과의 혁명사를 알기 위해선 혁명이 성공하기 이전의 니카라과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2년 전 미국은 니카라과를 식민지배했었다. 당시 미국은 미 해병대 병력을 주둔시켰고, 미국의 식민지 지배는 니카라과인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했다. 미국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우구스토 산디노(Augusto Sandino)였다. 그가 반미 구국 항전의 첫 깃발을 든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친미주의 군부 정권을 후원하고 있었고, 산디노는 농업 노동자, 빈농, 광산 노동자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조직하여 무장투쟁을 벌였다.


산디노의 독립군이 무장투쟁을 벌이자, 미국의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은 혁명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니카라과에 미군 병력을 더 파병했다. 당시 미 해병대가 동원한 전투기들은 게릴라의 해방구로 의심되는 마을을 무자비하게 폭격했다. 미군의 이러한 폭격으로 최소 수백 명 이상의 니카라과 민간인이 학살당했는데, 19271127일 미 해병대가 폭격한 한 마을에서는 32명의 여성과 11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도합 43명이 폭격으로 학살당했다. 리우스라는 멕시코 만화 작가가 쓴 만화 산디니스타 니카라구아에 따르면, 최소 300명 이상의 니카라과 민간인이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미군의 이러한 학살은 혁명의 열기를 꺾지 못했고, 초기 2,000명 정도의 게릴라는 1931년에 그 규모가 6,000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산디노의 정의로운 투쟁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미국의 식민 지배에 큰 타격을 주었다.

 

미군은 1933년까지 니카라과에 해병대 병력을 주둔시켰는데, 이들은 새로운 대통령인 사까사(Sacasa)가 대통령이 되자 철군했다. 당시 산디노는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사까사에게 안전보장을 비롯한 몇 가지 조건을 요구했고, 사까사는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이는 속임수였고, 산디노는 참모들과 함께, 1934221일 밤 모두 사살됐다. 1933년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해줄 인물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Anastasio Somoza)를 국가방위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는데, 소모사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산디노와 그 참모들을 살해했다. 더 나아가 독립군 전사였던 사람들을 색출하여 투옥 및 살해했고, 산디노에 협력한 농민들을 체포·탄압했다.

 

이렇게 되면서, 니카라과에는 친미 독재자 일당인 소모사가 3대에 걸친 세습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 물론 형식적으로 소모사는 대통령 직을 차지했다. 그러나 대통령제는 말이 대통령제지 군부권력에 기반한 철권 통치였다. 사람들은 북한에서 3대가 세습한다고 욕을 하지만, 정작 미국이 이러한 세습 독재자를 후원했다는 사실과 부패하기 짝이 없는 왕조 세력(사우디아라비아)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후원한다는 사실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소모사 일가의 재산은 어마어마 했다. 1974년 기준으로 이 일가의 재산은 9억 달러였고, 소모사 일가의 엄청난 부의 축적과 니카라과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엄청난 외국 투자액에도 불구하고, 당시 니카라과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당시 니카라과의 실업률은 36%였고, 문맹율은 74%였으며, 60%가 영양실조였다. 전국민의 50.2%가 문맹이었고, 전국민의 70%가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으며, 4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유아사망률은 최소 20% 이상이었다.

 

따라서 이런 소모사의 독재 세습 정치는 민중의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나 1959년 쿠바 혁명의 승리는 혁명 세력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니카라과 민중들은 이 승리에 고무되어 60여 차례나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무장봉기 조직들은 소모사의 국가방위군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학생운동 출신의 아마도르와 마르티네즈가 주축이 된 청년 애국단은 쿠바 혁명의 포코 이론과 체게바라의 무장투쟁론을 받아들였고, 몇몇 소규모 무장조직을 통합하여 1961년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The National Liberation Front of Sandinista)였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산디니스타는 과거 미국의 식민지배에 맞서 싸웠던 아우구스토 산디노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 산디노주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디니스타는 쿠바와 코스타리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농촌과 해방구 그리고 도시에 비밀리에 조직을 확대해나가면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정치투쟁과 무장투쟁을 동시에 벌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초기 포코 이론을 받아들여 무장투쟁을 벌였던 산디니스타들은 니카라과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적잖은 인명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7년 수도 마나과 중심가에서 소모사의 선거결과 조작에 항위하는 시위대는 니카라과 정부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400명이나 학살당하기도 했다. 당시 니카라과의 정부군은 미 군사고문단에게 훈련을 받았고, 무장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또한 미국은 고문단과 더불어 니카라과 정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맞서 산디니스타 또한 초기 포코 이론에 따른 노선을 수정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들은 군대를 모으는 전략을 도시 조직의 대학생을 끌어들이고, 은행 강도를 통해 돈을 모았으며, 니카라과 북중부 산악지대에 은거하여 농촌 지역을 지원기지로 만들어 대비했다. 이것이 바로 당시 산디니스타가 채택한 10여 년에 걸친 장기인민전쟁 노선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여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는데, 산디니스타가 채택한 장기인민전쟁 노선은 미국의 침략에 맞선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The National Liberation Front in South Vietnam)의 혁명 승리 전진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민 전쟁 전략을 경합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산디니스타에게 있어 이 혁명 승리의 전략 최종 목표는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진 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은 소모사 3대 세습 독재였으며, 최종적으로는 미제국주의와의 투쟁이 과제였다. 물론 1970년대 들어서 산디니스타들은 미군 고문단의 지원을 받는 니카라과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대원을 잃었고, 적잖은 지역에서 조직이 와해되기도 했지만, 민중속으로 들어가 조직활동과 방어적 전투를 계속한 결과 혁명 무장세력은 급격히 그 역략을 성숙시킬 수 있었다. 1970년대 초반의 경우 당시 소모사 일당들은 산디니스타들이 사실상 전멸했다고 믿었다.

 

1974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74년 이후 산디니스타는 두 차례의 게릴라식 기습공격으로 소모사 정권에 큰 타격을 입혔고, 19741227일에는 미국 대사의 부임을 축하하는 연회장을 기습하여 미국 대사와 정부 고위관리들을 인질로 삼아, 정치범 석방과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등을 비롯해 산디니스타의 존재와 강령 그리고 대의를 만 천하에 알렸다. 물론 1975년의 경우 정부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산디니스타의 창설자이자 장기인민전쟁 노선을 수립한 지도자 폰세카 아마도르가 전투에서 전사하는 등 피해도 막심했다. 이에 따라 산디니스타는 1977년에 이르러 파벌이 3개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장기인민전쟁 노선을 따라 농민들과 연대하는 마오주의 파벌, 두 번째는 주로 공장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파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모든 반정부 세력들과 연대하는 제3의길 파벌이었다. 이 제3의 길 파벌이 바로 다니엘 오르테가와 그의 동생 움베르토 오르테가가 이끈 세력이었다.


오르테가 세력의 전략은 1978110월 발생한 라프렌사 편집장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 암살사건을 계기로 결실을 맺었다. 오르테가 세력은 2월 초 도시들을 공격하고 8월에는 마나과의 국회의사당에서 2천명에 달하는 인질을 붙잡아 산디니스타의 존재를 니카라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렸다. 소모사는 몸값 50만 달러를 지불하고 정치범 59명을 석방하며 전국민적 봉기를 선동하는 산디니스타의 선언문을 방송하고, 파나마로 이어지는 안전통로를 보장하는 등 엄청난 굴욕을 당했다. 며칠 뒤인 9월 마테갈파, 마나과, 마사야, 레온, 치난데가, 에스텔리에서 반 소모사 봉기가 발생했으며, 오르테가 세력은 마테갈파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의 헌병군 초소를 공격했고, 경무장한 다수의 민간인들이 봉기에 참여하여 마테갈파와 마나과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의 헌병군 요새를 포위했다. 9월 봉기는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고 처참히 진압되었지만, 혁명운동의 고양 속에서 내부적인 통일을 이룩했다.

 

1978128월 산디니스타는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세 노선이 각 3인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중앙상임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혁명의 승리를 향한 거보를 내디딜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통일전선 구축이라는 과제를 이룩하기 위해 나섰다. 197921일 산디니스타는 진보적인 소부르주아 정당인 독립자유당과 기독교 인민사회당이 연합하여 결성한 민족애국전선을 통해 최종적인 승리를 향해 전진했다.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전투원은 19795월에 5,000명을 넘겼고, 대중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19796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승리를 향한 총 공세를 개시했다. 공세는 단순한 군사 공격 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민중 봉기와 총파업으로 국가 방위군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키고 자본제 사회의 재생산 과정을 일시에 정지시킴으로써 소모사 독재권력의 물질적 토대를 일격에 붕괴시키고자 했다. 총공세 게시 1개월 19일 만인 1979719, 산디니스타는 수도 마나과에 입성하여 임시 혁명정부를 구성했다. 소모사 3대 세습 독재정권은 물러갔고, 인민을 대표하는 새로운 혁명정부가 니카라과에 탄생했다.

 

18년간 지속된 내전은 참혹했다. 유엔의 보고서에 의하면, 내전을 통틀어 최소 4만 명 이상의 사망자, 20만 채의 가옥 파괴, 4만 명 이상의 고아, 75만 명의 기아상태, 100만 명의 난민, 16억 달러의 외채 그리고 국내 전산업의 1/3의 파괴됐다. 그리고 이것은 소모사 3대 세습 정권이 벌인 만행이었다. 놀랍게도 1979년 기준으로 니카라과의 인구는 371만 명이었는데, 미국에게 지원을 받던 소모사 정부는 이렇게 모든 것은 파괴 및 무너뜨려 놓고 자신의 이익만 챙겼던 것이다. 이에 대한 리우스의 평가를 들어보자.

 

이러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은 비로소 행복을 맛보았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을 해방시킨 것이다. 소모사의 40년 독재로부터, 또한 북쪽의 괴물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

 

이렇게 해서 산디니스타 혁명을 최종적인 성공으로 이끈 다니엘 오르테가와 혁명가들은 국가경제의 재건을 위해 소모사 일가와 국가방위대의 고위 지휘관, 정부 고위 관리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은행, 보험회사, 광물, 임업 자원을 국유화했다. 또한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토지개혁을 시행하여 약 7만 명의 농부들과 약 4,000개의 협동농장에 토지를 분배했다. 그리고 1980년에는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서 문맹퇴치 십자군을 조직했고, 많은 의료시설을 설립했다. 이와 함께 산디니스타 혁명정부는 소모사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고문과 무고한 죽음을 확인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혁명정부의 내무상 토마스 보르헤의 나는 산디니스타의 모토를 기억한다. 싸울 때는 가차없이, 그러나 일단 승리하면 관대하라는 내용의 연설을 통해서 국가방위대의 병사들에 대한 어떠한 보복행위도 금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사회 건설은 1980년대 난항을 겪게 되는데, 바로 미국이 니카라과에게 끔찍한 범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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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7-17 0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이 니카라과에게 자행한) 그 범죄는 다름아닌 ‘이란 콘트라 사건‘이죠(!). 1986년에 터진 이란 콘트라 사건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이 (미국 기준으로) ‘적성국‘ 이란에 무기를 판 대금을 니카라과의 극우반군 ‘콘트라‘에게 갖다주고 그들(콘트라)을 지원한 사건입니다.

NamGiKim 2023-07-17 09:43   좋아요 1 | URL
네 유명하죠. 심지어 백무현 작가의 ‘만화 전두환‘에도 묘사됩니다.

2023-07-17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23-07-17 09: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역사죠. 저도 공부하며 많이 놀랐습니다.

2023-10-10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23-10-10 18: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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