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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린 제주4.3평화공원.

오늘 저는 제작년 초에 가족과 들렸던 4.3 평화공원을 들렸습니다. 처음 들렸을 때도 매우 슬펐지만, 이번에 다시 들리니 억울하게 학살당한 피해자분들을 생각하게 되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72년전에 좌익소탕이라는 명분아래 저질러진 국가 폭력은 제주도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많은 이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곳을 두번째 들리게 된 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은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자연스럽게 독립이 되었죠. 독립된 한국에선 독립운동가 여운형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창설됩니다. 여운형이 창설한 이 조직들은 해방 이후 치안과 행정을 담당해나가며 새조국건설을 위해 전진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반도에 미군이 상륙했고, 제주도에도 미군이 상륙했습니다. 제주에 상륙한 미군은 군정을 실시했고, 과거 일제에 협력했던 친일 경찰들과 관리들을 재등용합니다. 여기서 부터 제주도민들은 점령군의 모습을 보인 미군과 그의 앞잡이 친일세력들을 싫어하게 됩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3.1절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이 탄 말에 인명피해가 생겼고, 이에 항의한 시민들이 경찰에게 저항하다가 경찰에 발포한 총에 몇명이 맞아 죽는 일이 생기죠. 거기다 그 시기에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선언하면서 미소냉전이 격화되던 시기였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에 박차를 가하죠.

이런 일이 있자 1948년 제주도에선 남로당 김달삼을 중심으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친일파 청산을 내걸며 봉기를 일으킵니다. 그 날이 바로 1948년 4월 3일이었습니다. 이 봉기에는 당연히 남로당 뿐만 아니라, 친일파와 미군정에 분노한 일반민중들도 참가합니다. 이런 상황이 있자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이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과 우익청년단들을 대거 투입하죠.

이렇게 해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당시 미군정 최고사령관 하지가 임명한 브라운 대령은 좌익을 뿌리뽑는다는 명분으로 제주도 지역에 레드라인을 설정해놓고, 그 범위에 있는 생명체는 싹다 죽이도록 허용합니다. 이에따라 이승만이 파견한 서북청년단과 경찰은 광란의 학살극을 벌였고, 특히 1948년과 1949년 사이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제주도 4.3사건 당시 일어난 학살은 추악하고도 잔혹했습니다. 서북청년단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이들은 최소 3만 명을 넘겼고,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노인 어린이 그리고 유아도 포함되었습니다. 임산부 배안에 있던 애와 1,2살 짜리 아이들도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죠. 이런 광란의 학살극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경찰총장 조병옥 그리고 미군정의 브라운 대령의 책임이 막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학살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과거 좌익 경력이 있던 인물들을 예비검거하며 학살했던 것입니다. 결국 제주도에서의 학살은 1954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종료가 됩니다.

제주도 학살은 엄청난 고통을 남겼습니다. 우선 이 학살로 제주도 인구 10%가 죽었습니다. 코리안 킬링필드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이 반공주의 국가가 되며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런 침묵이 깨진건 87년 민주화가 되면서 부터였고,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와서야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게 됐죠. 이처럼 이승만으로부터 비롯된 반공주의는 산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얘기하자면 제주4.3사건에서의 학살은 과거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벌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와 베트남이 그랬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내전이 일어납니다. 이 내전에서 영국이 빠지자 미국이 개입했죠. 개입한 미군은 소수의 고문단과 최신식 무기 지원을 통해 좌익진영의 그리스 게릴라들을 학살했습니다. 미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지원하에 활동하는 우파와 미군고문단은 소위 자신들이 적대지역으로 설정한 곳에 네이팜폭탄을 투하하고, 이들의 씨를 말렸으며 그 지역마을들을 불태웠죠. 미국의 이런 전략은 그리스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제주4.3은 그리스 내전의 연장선상일수도 있을 겁니다.

그로부터 몇년 뒤 베트남 문제 개입한 미군은 똑같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들은 소위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을 적대지역으로 선포해놓고, 온갖 최신식 무기와 장비를 동원해서 그 지역을 폭격 및 수색과 섬멸 작전으로 초토화시켜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베트남에서 성공적이지 못했죠.

다시한번 제주4.3평화공원을 들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들릴때 항상 노는것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가 노는 곳에서 과거에 어떠한 국가폭력이 있었는지는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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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조치 미이행, 주한미군장갑차에 의한 사망사고

경찰은 미군직접조사로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

지난 8월 30일 밤 경기도 포천에서 SUV가 미군 장갑차 후미에 추돌하여 SUV탑승자 4명 전원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사진만 봐도 처참하다. SUV차량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고, 미군 장갑차 역시 무한궤도 일부가 부서질 정도로 큰 사고였다.

미군 장갑차는 도로 위로 나올 때부터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밝은 낮에도 장갑차에는 동행하며 불빛 등으로 이동 사실을 표시하는 콘보이(호위) 차량들이 함께 하는 것이 원칙이다. 더군다나 작전 수행용 장갑차는 차체 색을 어둡게 한다. 그런 상태로 야간에 후미등도 제대로 달지 않고 단독주행을 했다.

사고지점인 영로대교는 평소에도 군용 차량 이외에는 통행량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직선도로이기 때문에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추돌한 SUV의 입장에서는 저속주행중인 장갑차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손 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주한미군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목숨을 잃는 참변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켜 호위차량들이 있었다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해도 직선도로에서 미군 장갑차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참담한 심경이지만 현재는 사고의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보도된 기사를 보면 블랙박스가 사고지점인 영로대교 진입 전 상황까지는 녹화가 되어 있고 진입 후부터 충돌까지의 상황은 기록되지 않는 등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이 안전수칙을 어기고 위험한 야간주행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 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고를 눈여겨보고 있다. 우리의 높아진 자주의식은 이제 사소한 일 하나도 그냥 두고보지 않는다. 하물며 대한민국 국민 네명이 사망한 대형사고임에도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 여러 의혹들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넘어가려 하거나 사고의 원흉인 주한미군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불평등한 한미동맹 아래 쌓여온 민중들의 분노와 원통하게 목숨을 잃었던 이들의 몫까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20년 9월 1일

한국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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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광장 2020.5
현장과 광장 편집부 지음 / 현장과광장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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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올해 7월에 노동전선 단체 전선지에 실린 필자의 서평입니다.)

2020년인 올해는 미국과 이란간의 긴장관계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COVID-19라 불리는 질병이 창궐하는 속에서 우리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많은 문제와 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경제공황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고, 우리사회의 마비시키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생물학 질병은 백신이 나오지 않았기에, 어느 한 구역에서 전파되면 그 구역을 전면 봉쇄하고 사람들까지 격리시키는 조치에 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공포와 마비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요즘 노동전선에서 발행한 아주 좋은 책을 읽게 됐다. 바로 ‘현장과 광장 2호’다. ‘현장과 광장’을 읽으며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여러 사람들의 글을 다양한 주제로 묶은 이 책을 통해 과학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었다.

책의 시작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것이었다. 박하순 선생의 ‘코로나 공황’과 노동자운동의 대응과 손미아 선생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대유행을 통해 본 자본주의 모순과 대안이라는 두 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자본주의의 문제는 참으로 잘 분석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다수의 나라들이 타국민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서 항공기는 계류장에 멈춰서 있고, 관광객들을 받던 호텔은 사람들이 오지 않으며, 올해 국내에서 계획된 행사들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량의 실업자 발생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움직이는 행위를 평소보다 줄이게 되니 아마존(amazon)과 같은 인터넷 운송 및 배달 사이트들은 추가적으로 채용하는 일이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 3~4월 기준으로 최소 4주 동안 2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민들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즉 자본주의는 질병뿐만 아니라 인민대중의 직장을 보호하기 보단 기업의 이윤을 보다 더 우선시하는 체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에서 나온 고희림 시인의 ‘돈으로 사람을 때리지 말라’는 시는 참으로 가슴이 아픈 시였다. 노동이라는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와서 저임금 고착취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시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비유되는 네팔에서 온 테즈 바하두르 구릉씨나 처빌 랄 차우다리씨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런 현장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갈취’ 따위의 저급한 시각이 대다수를 차지할 뿐이다. 역지사지라 했다. 우리는 여기서 과거 해외로 가서 저임금 고착취를 당하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나가던 한국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노동은 누군가는 회피하는 행위이지만,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소위 히틀러의 나치즘이 강요하던 시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저개발 국가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고착취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들을 착취함으로써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19세기 고도의 자본주의를 발달시켜 식민지에다 값싼 원료를 팔아 경제를 부흥시킨 제국주의 국가를 연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즉 자본주의 사회 또한 그런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책에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주제 중 하나는 ‘페미니즘(Feminism)’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경우 현재 페미니즘이라는 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이슈가 되면서 쉽게 판단하지 못했던 주제였다. 이것이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이나, 성폭행, 미투운동 등이 얘기가 나오면서 쉽게 얘기하기가 힘든 주제였던 것 같다. 노동전선의 천연옥 선생이 쓴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은 여성해방과 현재의 페미니즘이 어떠한 차이가 있고, 과거 여성 해방운동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그리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까지 그들의 주장과 생애를 통해, 현재 남성의 생물학적인 영역으로만 주로 비판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노동계급과 남성노동계급의 연대와 자본주의 철폐투쟁을 외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여성해방론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2019년 11월 기준으로 ‘남녀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를 보면 남자 노동자 임금이 100이면, 여자 노동자 임금이 70.7%,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100이면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62.9%, 남자 정규직 임금이 100이면 남자 비정규직 임금이 62.1%, 여자 정규직 임금이 74.1%면 여자 비정규직 임금은 52.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단결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해방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현재 사회에서의 여성억압의 기원이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 남성의 지배가 아닌, 사적소유의 발생·발전에 따른 사회의 경제적 관계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철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아무튼 이 글을 통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명 깊게 읽은 글을 얘기하자면, 송필경 선생의 ‘쿠바와 체 게바라’다. 2년 전 글쓴이가 쿠바 여행을 통해 본 쿠바 사회는 비록 가난하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사회다. 수백 년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배와 수십년간의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 지배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복지를 달성한 쿠바사회는 소위 자본주의 국가 미국과 유럽이 해내지 못한 것들을 비록 미약하지만 달성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국제주의라는 사상으로 무장한 쿠바의 의사들은 단순히 자본에 혹한 의사가 아닌 인류애적 혹은 의사적 사명을 가지고 인민의 아픔을 치료하는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쿠바가 미제국의 극심한 경제 고립을 겪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가치를 지키고 실행해온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는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점에서 시사해주는 부분이 많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백철현 선생의 ‘무정부주의의 정치적 본질과 이 본질로부터 나오는 반혁명적 특성들’이나 김성구 선생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부분에서도 책을 통해 학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얻어야할 결론은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한 사회를 이룩해야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보여주고 있듯이, 자본주의의 맹아나 다름없는 미국은 현재 열악한 대중의료로 인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확진자가 올해 3~4월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 200만 명을 돌파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망자도 급증하여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미국인은 10만 명을 넘어섰다. 거기다 이런 전 세계적 위기속에서 미국은 인종주의라는 문제도 겹처 수많은 유색인종들과 양심 있는 미국인들의 반발에 둘러싸여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회의 문제들을 야기하고 확산 그리고 재생산할 뿐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철폐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고질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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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세미나를 하면서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Что делать)’ 읽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다른 사회주의 원전들이 혼자서 공부하기는 좀 어렵듯이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도 쉽지 않은 책이기에, 이번에 노정협에서 하는 세미나에서 같이 공부하게 됐다. 솔직히 공부하면서 어렵긴 했지만, 다를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니 그래도 좀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즉 레닌을 공부할 수 있었던 참으로 뜻 깊은 일이었다.

 

필자와 같은 또래인 20대 중에는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심지어 명문대를 나온 이들 중에도 위대한 사상가의 이름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내 또래 중에는 꽤 있다. 이처럼 현실 사회주의 소련의 해체는 80년대 운동권의 몰락과 더불어 대학생들의 사상적 비무장화를 제도적인 틀 아래 자생적으로 창설했다. 이 때문에 20~30년이 지난 현재의 대학생들은 사회주의를 공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아래 살며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 적응하여 돈 많이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천적인 변혁 행동에는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동으로 집필한 독일 이데올로기 초반 부분을 보면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철학이란 한 가지 사물이나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이 아닌, 그 사물과 세계에 존재하는 모순적 구조를 변혁하는 게 더 핵심적이라는 얘기다. 그렇다. 철학을 비롯하여 우리가 다른 여러 가지를 공부하는 이유는 세상을 변혁하고 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바지하기 위함에 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가 마르크스와 레닌 그리고 사회주의를 학습하는 데는 여기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필자가 읽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이 집필한 제국주의론(Imperialism the highest rank of Capitalism)’, ‘국가와 혁명(States and the Revolution)’과 더불어 레닌의 3대 주요 저작 중 하나다. 또한 이 저작은 당시 레닌이 존경했던 러시아의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체르니셰프스키의 동명 소설과 같은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레닌이 집필한 무엇을 할 것인가는 20세기가 시작되던 1901년에 집필됐고, 1902년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3대 저작 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이기도 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가장 주요하게 비판하는 대상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당 안에 있는 소위 에뚜아르트 베른슈타인류의 경제주의자들이다. 이들이 발행하는 신문 중 하나인 노동자의 대의에 대한 레닌주의의 비판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아주 날카롭게 비판된다. 레닌은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증하는 빈곤과 프롤레타리아트화와 자본주의적 모순의 심화 등의 사실을 부정한다는 데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쉽게 말해 자본주의적 모순속에서 나타나는 민중의 프롤레타리아트화를 소위 개량주의적 성향을 가진 경제주의자들이 사회주의의 원칙을 부정하고 있고, 이것이 사회주의 혁명에 해가된다고 판단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그 시기 러시아와 국제 사회민주주의 내에서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되어 있음을 분석하고, 맑스주의를 수정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꾸어 국제적 노동운동을 소위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침투시키는 기회주의적 경향의 본질을 소위 러시아의 경제주의자가 독일의 베른슈타인주의, 프랑스의 말레랑주의, 영국의 노동조합주의등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따라서 레닌은 이런 기회주의적 조류를 극복해야 하고, 이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마르크스주의 혁명당이 승리할 수 없음을 책에서 밝힌다.

 

사실 이러한 레닌의 주장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운동권에도 어떤 면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운동권의 현실은 대체로 경제투쟁에 집중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현대사회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복지가 예전보다 좀 더 갖추어진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기 이전에 마르크스가 가장 싫어했던 개량주의의 일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는 복지가 발달했더라도 기업단위의 이윤추구를 봉쇄함으로서 개개인의 상호경쟁 등을 불필요하게 만든 생산양식 즉 사적소유의 철폐로 이어진 사회는 절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복지가 좋은 북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즉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시위는 경제투쟁에 기반한 부분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투쟁 자체가 의미가 없고 아예 중단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현실도 분명 반영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혁명적 실천력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의 무엇을 할것인가?’를 보면 엥겔스는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커다란 형태로 두 가지(졍치 투쟁과 경제 투쟁)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즉 그 둘과 나란히 이론 투쟁도 인정한다. 여기서 레닌은 엥겔스가 쓴 독일 농민 전쟁이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독일 사회의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레닌은 엥겔스의 말이 예언되었다고 하며 몇 년 뒤 독일의 비스마르크 정권은 소위 사회주의자 특별법을 제정하여 독일 노동자들은 중대한 시련을 겪었었는데, 독일의 노동자들은 이에 준비했고 결국 승리하여 사회주의자 특별법을 폐지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던 점을 강조했다. 솔직히 제1장에 나온 이 장면은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오버랩됐다. 여기서 레닌의 주장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 앞에는 이보다 더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시련이 놓여 있다. 괴물과의 투쟁이 그들 앞에 놓여 있으니, 입헌 국가의 특별법이라는 것은 이 괴물에 비하면 그야말로 난장이에 불과하다. 이제 역사는 우리에게 당면 임무를 제기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임무보다도 혁명적인 것이다. 이 임무를 실행한다면, 즉 유럽의 반동의 가장 강고한 보루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반동(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의 가장 강고한 보루이기도 한 것을 파괴한다면,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70년대 우리의 선각자들과 같은 헌신적인 결의와 열정으로 그보다 천만 배 더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고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선각자들, 70년대의 혁명 운동가들이 이미 얻은 바 있는 그 영예로운 칭호를 우리가 획득하리라 기대해도 될 것이다.”

 

출처 : 무엇을 할 것인가? p.34~35

 

이걸 또 한국의 현실에 반영하자면, 경제투쟁과 정치 투쟁 뿐만 아니라 이론적 투쟁을 통한 실천도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노동운동과 더불어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투쟁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반대하는 투쟁도 노동계급의 의무로서 실천돼야 하는 사안이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투쟁을 목표로도 삼아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얻어야할 결론이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시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당 안에서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이다. 솔직히 어떤 러시아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의 여러 사회주의 단체들의 논쟁과 대립 그리고 단체와 사상적 경향을 전반적으로 깊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 듯이, 우리 또한 마찬가지라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운동권 경향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기본적으로 레닌이 주장하는 사상적 맥락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변혁적 실천을 이루고자 하는 인물들에게 분명히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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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 볼셰비키가 줄곧 그 필요성을 역설해 왔던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이 완수되었습니다. 이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특히 이 격변의 의의는, 우리가 부르주아의 참여 없이 소비에트 정부를 우리 자신의 권력 기관으로 갖게 되리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피억압 대중이 스스로 그들의 권력을 창출할 것입니다. 옛 국가 기구는 철저히 파괴될 것이며, 새로운 행정 기구가 소비에트 조직의 형태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 연설은 1917년 10월 25일 페트로그라드에 있는 스몰니 대학교에서 레닌이 했던 연설이다.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인류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위대한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혁명 러시아에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업적들을 달성했다. 비록 잠깐이긴 했지만, 10월 혁명 이후 혁명 러시아에선 매우 진보적인 정책들이 행해졌다. 노동자들에게 식량이 우선 공급되었고 8시간 노동제가 확립되었다. 지주 소유의 토지가 사라졌으며, 신분과 호칭이 완전히 폐지되고 모든 러시아 주민이 인민이 되었다. 인종차별과 같은 악법은 폐지되었고 혁명 이후로 인종차별이 웬만큼 사라졌다. 여성은 사회활동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했다. 사형제가 폐지되었고 심지어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었다. 당시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 혁명 러시아에선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를 달성하고자 했던 레닌과 볼셰비키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1918년 백군 반동들을 돕기 위해 제국주의 열강이 침략을 감행하면서 레닌과 볼셰비키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과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은 그 전쟁에서 보인 사민당과 제2 인터내셔널의 배신적 행위에 실망하여 그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했지만, 적백내전의 경우 달랐다. 이것은 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하고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볼셰비키로써는 당연히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적백내전 당시 레닌과 볼셰비키가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창성했던 경찰조직 ‘체카(Cheka)’의 폭력성을 지적하며, 레닌의 무자비함과 잔인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적백내전 시기 볼셰비키가 맞서 싸우던 백군은 분명히 반혁명·반동세력이었다. 이들은 로마노프 왕조 이래로 300년간 민중을 착취해오고 탄압해오던 반동들이었다. 거기다 백군반동들은 러시아 곳곳에서 볼셰비키를 축출하기 위한 백색테러 행위에 착수했다. 당시 지도부에 있던 레닌, 트로츠키, 부하린 등을 포함한 볼셰비키 인사들은 그러한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레닌 또한 총에 맞아 총알이 몸에 박히는 불행을 겪었다.

따라서 체카는 이런 반혁명적 반동세력들에 맞서 싸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볼셰비키의 노력으로 혁명군대 적군은 러시아 전역에서 백군 반동 세력들과 제국주의 세력들을 몰아낼 수 있었고, 1920년에서 1921년에 사실상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전이 불러온 피해는 크론슈타트 수병의 반란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동반했다. 여기서 레닌은 ‘전시 공산주의(War Communism)’를 포기하고 소위 신경제정책(NEP)를 실행했다. 사실 레닌이 집권하던 시기 러시아의 경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특히 적백내전 시기에는 제정 러시아의 경제 상황보다 더 안좋았다. 내전에서 발생한 기근으로 수백만이 아사했다.

비록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이 집권하던 1920년대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궁극적으로 레닌이 민중에게 심어준 진보와 혁명사회를 향한 꿈은 지금도 사회주의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레닌이 주도한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인권유린에 반대하여 일어난 혁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는 자본주의적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주듯이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은 전세계의 경제를 달러를 통해 휘어잡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돈이 없으면 치료나 진료검사를 받지 못하는 사회다.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바로 그러한 사회다. 이런점에 있어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레닌 동지가 혁명 러시아를 탄생시키며 추구했던 민중을 위한 정책들은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진보적인 정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이 블라디미르 레닌 동지의 사상을 공부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로써 블라디미르 레닌 동지가 탄생한 지 150년이 됐다. 우리 역사로 보자면 그는 신미양요가 일어나기 1년 전인 조선 말기에 태어난 인물이다.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일각에서는 그의 사상이 나이브하다고 하며 마치 현재 사회에는 적용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치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를 진리인냥 받들어 모신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위에서 상술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탄생한지 150주년인 오늘은 참으로 의미있는 날이다. 오늘따라 블라디미르 레닌 동지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4년 전 모스크바를 방문하며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던 그가 생각이 난다. 혁명가 레닌을 다시 생각하며, 그가 꿈꾸던 세상을 이루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블라디미르 레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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