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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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까지 나에게 보험이란 기껏해야 자동차 운전과 관련된 보험뿐이었다. 어쩌다가 어머니께서 내 이름으로 드신 보험이 전부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책상에 보험 약관이 쌓이기 시작했다. 해지할 것은 해지하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지만 아직도 몇 개의 보험은 유지하고 있으며,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 생활비 중 무시하지 못할 부분을 차지한다. 매번 버리는 돈 같으면서도 막상 보험을 해지하지 못하는 것은 "만의 하나"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하는 것이 자기 앞으로 상해보험 혹은 생명 보험을 드는 것이며 그것도 부족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서 태아 보험을 들고, 상해보험을 든다. 텔레비전 곳곳에서는 라** 무배당보험, A으헤헷 보험 등등 많은 보험사에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면서 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져서 보험에 들지 않고는 안될 것같은 초조함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왜 이런 광고가 넘쳐나고, 보험 한두개쯤은 필수인 사회가 되었을까? 이 책은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분석을 하고 처방을 내리려고 시도한 책이다.  

  한국 사회는 불안함을 해소시켜주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사회다. 과거 독재 정권은 6.25라는 민족의 트라우마를 건드려 불안함을 조장함으로 자기들의 권력을 정당화했고, 공고히 했다. 불안함을 조장하여 사람들의 손해를 감수시키며, 권력에의 충성을 끌어내는 상당히 교묘하고 효과적인 매커니즘을 자주 남발하여서 일까? 사람들은 이제 왠만한 불안함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안함에 면역이 된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함을 불러 넣어주려면 도대체 얼마만큼 더 큰 불안감을 조장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권의 전매특허였던 이 방법을 시장들은 철저하게 배워 자기들의 마케팅에 이용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성공한 기업들은 거의 공짜로 막대한 금액을 모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사업에 투자하고, 로비하고, 비자금을 만들고 하면서 그들은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중상모략으로 들리겠지만) 대기업들은 예외없이 보험사를 끼고 금융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금산분리업이 그 앞길을 막아왔지만 조만간 무너질 것 같다. 자신들의 이익을 채워줄 소비자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기업들도 불안감을 조장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무엇으로 개인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가? 공동체를 파괴한다. 승자독식주의를 사회가 따라야할 복음으로 제시한다. 삶의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에 모든 기준을 맞춘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큰 태풍을 만들어 내듯이 이렇게 손본 별것 아닌 것들이 우리의 불안감을 한없이 증폭시킨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더하여진 사회 속에서의 네트워크의 부재는 불안의 무한 증폭을 야기시킨다. 불안감이 불안감을 부르고, 그 불안감이 또 다른 불안감을 부르고. 한없이 증폭되는 불안감은 도무지 감소하지 않는다. 그러니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은 보험사로 달려가 보험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정치적인 이해와는 다른 보수주의 정당을 찍어 놓고 거기에 기대어 뭔가 얻을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도 아니라면 사이비 종교, 혹은 광신이라는 현실 도피의 극단적인 수단을 찾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현상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협동 조합도 좋고, 동창회도 좋고, 마을 잔치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지 보험이 아닌 인간관계로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않는다면 영원히 우리는 불안감 때문에 소비하고, 불안감 때문에 충성하는 불쌍한 존재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그런 사회에는 희망이 있을 리 없다. 우리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있는가? 공동체를 재건할 현실적인 방법은 있는가? 너무 어려운 숙제를 만난 것 같아 마음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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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1-01-07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네요. 감사합니다.

세인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aint236 2011-01-07 10:32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보세요. 재미있습니다.

cyrus 2011-01-13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읽고 있는데, 재미있더라구요, 진화심리학을 반박하는 저자의 관점도 흥미로웠구요. 읽으면서 많이 공감되기도 했습니다.

saint236 2011-01-13 22: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이렇게 가르치면 참 재미있을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2011-02-01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02-01 10:26   좋아요 0 | URL
일단은 집안일, 다음은 인사드리러, 그 담은 책을 좀....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못 읽었는데 이젠 읽어야죠.

마녀고양이 2011-02-0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점과 해결책에 공감을 느낍니다.
승자 독식 주의... 정말 큰일이예요, 날이 갈수록 점점.
어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뉴스를 보니 슬펐습니다.

세인트님, 그래두여, 즐거운 새해되세요.

saint236 2011-02-09 11:10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그 기사를 접하고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더라고요.
 
나쁜 아빠 - 신화와 장벽
로스 D.파크 & 아민 A. 브롯 지음, 박형신.이진희 옮김 / 이학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만큼 이 책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록커를 꿈꾸던 젊은 날의 열정은 사라져버리고 그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삶의 최전선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의 마지막이 행복이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명퇴 후 경제력을 잃어버리고 눈치밥을 먹는 백수 기영, 안정된 직장에서 잘리고 부담스럽게 공부잘하는 아들 만난 덕에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등골빠지는 성욱, 타국 땅에 마누라와 자식들을 유학 보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기러기 아빠 혁수.  

  그들의 삶은 꿈이나 열정이 아닌 가족을 위한 경제적인 부양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경제적인 부양이 불가능해지자 눈치밥을 먹는 기영은 활화산의 리드보컬의 장례식을 계기로 기타를 메고 여기저기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맨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식들에게 올인하는 부인, 그 부인의 치맛바람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랑이 찢어지는 줄 모르고 달리는 성욱의 삶 또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혁수 또한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자식에게 영어 몇마디 더 가르쳐 보겠다고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 자식들을 유학보내 놨더니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처럼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그들의 인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주변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눈을 감고 10을 세는 것만큼 쉽다. 평생 직장에서 일하고 받은 퇴직금으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려던 아버지에게 어느날 자식이 어학 연수를 보내달란다. 돈이 없다는 아빠에게 퇴직금이 있지 않냐고 대꾸한다. 어이없어 아내에게 이 말을 하자 당신은 왜 자기 자신 밖에 생각하지 않냐고 꾸지람을 듣는다. 어떤 이는 택시 운전하고 하루 세끼를 빵과 우유로 때우면서 나머지 전부를 자식들을 위해 해외로 송금한다. 이게 이 시대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들의 현주소이다. 자식에 치이고, 아내에 치이고, 생활고에 치이고...아빠들이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다. 가족을 위해 직장을 빠진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아빠들의 관심을 그저 불편한 개입 정도로만 생각하는 자녀들, 가족들의 생계 부양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남자들에게 자상한 아빠로서 노력하기 보다는 정신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게 만든다. 가족을 위해 가족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나쁜 아빠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을 현실적인 통계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내 삶을 돌아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내에게 미안하다. 바쁘게, 정신없이,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아내에게 감사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숨막힐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 직장을 맴도는 내 삶이 정말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기도 하고, 어딘가에 가서 하염없이 앉아서 책이라도 읽다 오던지 무엇인가 끄적대다 오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 때문에 바로 집으로 직행한다. 일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일 때문일줄 알면서도 불평하는 아내의 입장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야속할 때도 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 보고 있으면, 정말 보고만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언제라도 아이들이 필요하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서 대기 중인데 그것이 아내에게는 노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올해 목표가 좋은 아빠가 되기인데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참 힘들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라 아내가 보기에 놓은 아빠, 사회가 보기에 좋은 아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일까? 

  세상에는 참 나쁜 남자가 되게 하는 것도 많지만 나쁜 아빠가 되게 만드는 것들도 많다. 이래서 딸 딸을 낳으면 금메달, 딸 아들을 낳으면 은메달, 아들 딸을 낳으면 동메달, 아들 아들을 낳으면 목메달이라고 하나보다. 여자분들이 서운함을 느끼겠지만 남자들이 느끼는 서운함과 상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주변에 있는 젋은 아빠들(물론 나를 포함하여) 삶이 참 고달프다.  

  마지막으로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이 시대 아빠들의 보편적인 모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개같이,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돈을 벌어 가족을 행복하게 하지만 정작 그 안에는 아빠가 설자리는 없다. 쓰린 속에도 라면을 먹으며 가족들이 보낸 비디오 테잎을 보면 즐거워 한다. 그 안에 담긴 가족의 삶은 더 없이 행복하기만 하다. 그게 화가 났는지 강인구는 먹던 라면을 집어 던진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집어 던졌던 라면 그릇을 치우는 그 뒷모습이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그 장면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저렇게 살 것이면 결혼을 안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한번 묻는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이 시대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아버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현재 아빠의 자리를 경제적인 부양자로 한정짓는 세태와 잘못된 교육열을 비꼬는 신조어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여기에도 끼지 못하는 나는 무엇일까? 사는 곳이 잠실이나 경제력은 그에 걸맞지 않으니 참새나 갈매기 사이쯤 되려나? 

  • 기러기 아빠-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한국에 홀로 남아 뒷바라지하는 가장. 명절이나 휴가에 맞춰 1년에 한두 번 가족을 만나러 가는 아빠는 그야말로 기러기 아빠다. 그 모습이 겨울 철새 기러기를 닮았기 때문이다. 
  • 독수리 아빠- 재력이 든든해 가족이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바로 날아갈 수 있는 아빠 
  • 펭귄 아빠-등이 휘도록 일해도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나면 비행기 삯도 남지 않아 인천공항에 홀로 남아 떠나는 가족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펭귄의 처지에 빗댄 것이다. 
  • 참새 아빠- 가족을 외국에 보낼 형편이 안되서 강남에 소형 오피스텔을 얻어 나애와 아이만 강남으로 유학보낸 아빠 
  • 갈매기 아빠- 자녀를 서울에 남겨두고 홀로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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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못 읽었고,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은 영화로도 연극으로도 보고 좋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 어떤 TV프로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남편이 맨날 퇴근 후 어떤 모텔로 출근을 해서 몇 시간씩 있다가 퇴근을 하는 거예요.
아내는 바람이 났는 줄 알고 뒤를 밟았는데 보니까,
남편은 책 읽고 DVD도 보고 라면 같은 것도 먹고 혼자 숨통 트일 곳이 필요했던 거예요.
극단적인 예이겠지만,그걸보고부터 전 달아날 쥐구멍의 여지는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요~

saint236 2010-11-04 12: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내들에게도 남편들에게도 쥐구멍은 필요하죠. 제 아내도 누굴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미안한지 몇 시간 뒤에 전화화서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cyrus 2010-11-05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러기 아빠라는 단어만 있는것이 아니라 독수리, 참새, 펭귄도 있고,,,
갈매기와는 또 다른 뜻이 있었군요. 저도 결혼하면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해봅니다. 왠지 나쁜
아빠가 될 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aint236 2010-11-06 18:58   좋아요 0 | URL
나쁜아빠라는 책은 아빠가 될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 책입니다.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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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불량 인권 국가이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인권이 무시되는 것은 북한같은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인권 침해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선진국이자 그렇게도 닮고자 애쓰는 동격의 아름다운 나라(美國)에서도 인권 침해는 일어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인권 침해에 대하여,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종교소수자(양심적 병역거부자),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 민족차별(제노싸이드)이라는 9가지 주제를 가지고 인권 침해에 대하여 설명한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도 전문적이지도 않고, 영화나 드라마, 책을 기반으로 실생활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가지고 인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굳이 어렵다고 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법률적인 설명 정도가 어렵다고나 할까? 

  人權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는 인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인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인권이 뭐냐는 질문에 대하여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이라는 사전적인 의미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을 인간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어떤 것들이 인권 침해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막연히 전쟁이나, 강간이나, 강도와 같은 중범죄들이 인권 침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 침해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나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도 인권에 대해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다만 인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순전히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제도적, 법률적 차별의 장벽은 앞으로 점점 무너져갈 것이 분명합니다. 차별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의 장벽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는 어린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아직 사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아기들이 '내가 싫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 아이를 비난하지 못합니다. 남과 관계를 맺는 데 서투른 아기들이 자기중심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유아적인 주장으로 남을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은 우리 사화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는 전적으로 프라이버시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관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내가 우연히 이성애자로 태어낫다는 이유만으로 약간 높은 위치에 올라서 '너희들을 받아주겠다'고 선언할 수 없습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고 사는 권리들을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P.87 ~ 88) 

  동성애자의 인권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내가 인권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무의식 중에 얼마나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년전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헌병대 영창에 면회갈 일이 생겼다. 제대를 한달 정도 남겨둔 병장이 후임병을 성추행해서 영창에 갔다. 선후임 사이라는 강압적인 관계와 조금은 군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어했던 후임의 약삭빠름이 겹쳐져서 발생한 사건인데 몇 달에 걸쳐 성추행을 했고, 그것이 발각된 것이다. 군대에서 성추행은 무조건 영창을 간다. 성폭행같이 심한 경우(실제로 목격하기도 했지만)는 가해자가 군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기도 한다. 영창에 있는 녀석을 찾아가 상담을 하면서 솔직하게 그녀석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상황이 이해가 안되고,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디지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그 녀석을 정신병자로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니라는 자신감이 깨졌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기준지은 정상인이라는 시선을 가지고 비정상인인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어떤 말도 그 녀석에게 공감이 되지 않고 훈계, 혹은 훈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인권을 생각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방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는 것이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특이함이 그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면 안된다. 특별하게 떠받들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존중해서도 안된다. 그냥 평범하게 친구대하듯이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잘 이루어 지느냐가 그 사회의 인권에 대한 건강함의 척도라는 저자의 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배려가 아니라 시혜, 혹은 성은이 되기 마련이며 상대방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소설 속에서 애티커스 핀치가 딸에게 주는 가르침의 핵심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과 함께 함께 인권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명제입니다. 소설의 제목도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앵무새 같은 약자'들, 예컨대 톰 로빈슨이나 부 래들리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메씨지를 담고 있지요.(P.292)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 앵무새와 같은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말은 인권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말과, 불편한 상태라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 그리고 불편함에도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직은 사회가 인권에 대해서 민감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 등 여러가지로 이해가 된다.  

  영화와의 만남이라는 이제는 식상한 방법이지만 여러가지 영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그것들을 구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 책을 읽고 브래스드 오프라는 영화를 다시 봤는데 정말 눈물이 다 나더라. 첨바웜바의 "텁썸핑"을 들었을 때의 감격을 다시 한번 느꼈달까? 그냥 책만 읽지 말고 영화를 구해서 같이 읽어본다면 한결 더 재미가 있고, 그 내용이 더 깊이 이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습관일까, 아니면 미국에서 공부해서일까 th를 ㅅ으로 발음해서 한참 헷갈렸다. 대처를 새처로 번역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게다가 메시지를 메씨지로 적는 등 ㅆ의 된 발음을 사용한 곳이 많은데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눈에 거슬리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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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래스드 오프가 광부들 나오는 영화 맞지요?
영화관에서 보면서, 가슴이 얼마나 저릿했던지..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잊어먹고 있었는데, 세인트님의 글 보면서 생각나네요.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대접하라.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제 그릇이 너무 작은가 봅니다.

saint236 2010-10-24 19: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광부들 나오는 영화. 첨바웜바의 텁섬핑의 오프닝 멘트죠. "음악이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0-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바뀐 표기 때문에 골탕 먹는 게 몇 개 있어요.
대처랑 쇼팽이랑 또 뭐가 있더라~^^

saint236 2010-10-27 09:52   좋아요 0 | URL
표기가 바뀐건가요? 여하튼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반대한다 -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
김정욱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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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그림은 한반도 대운하의 조감도이다.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는 국민이 반대하면 실행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홍수 조절과 수질 관리 차원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은 해야한다고 말한다. 홍수와 수질 관리 차원에서 정부가 강을 정비한다는데 왜 사람들이 반대를 하는가? 환경단체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4대강 정비 사업을 반대하는가? 정부의 표현대로 그들이 전문 데모꾼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딴지를 거는 반대파들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4대강 정비 사업이 실상은 한반도 대운하 공사이기 때문이다.  

  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가? 한반도 대운하 공사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공사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강은 구불구불 흐르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인위적으로 반듯하게 만들고 수심도 일정하게 파헤쳐서 콘크리트로 포장하는 것이 한반도 대운하 공사나 4대강 정비 사업 모두가 동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공사를 거친 강은 과연 어떤 곳으로 변할 것인가? 여전히 그곳에도 생물이 사는 곳이 될 것인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던지는 것도 고역인데, 이런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은 더한 고역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말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4대강이 한반도 대운하 공사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운하의 경제성이 어떠하냐는 것도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운하의 비효율성과 비경제성에 대하여 객관적인 결과물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생태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굳이 몇마디 덧붙이고 싶지 않다. 이 또한 생태학자들이 자세하게 연구해 놓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왜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가? 국민의 절반이 반대하면 그 사업은 실행하면 안된다. 절반이 무엇이냐 10명 중 2명만 반대해도 그 사업은 실행하기 어렵다. 1명이 반대해도 무작정 밀어 붙이면 안된다.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요 폭력이 된다는 것을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4대강 사업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포기하지 않는가? 왜 안하겠다 딱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려 하는가?  

  간단하다. 포기하기에는 걸려있는 이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정책의 초기부터, 아니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시 되던 그 순간부터 땅을 샀던 사람들의 이권이 걸려있고, 메이저급 건설사들의 이권이 걸려 있고, 정치인들의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반대해도 거기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소수가 워낙 강자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포기해야하는 당사자들도 그 소수의 강자 안에 들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사업을 통해서 얻게 될 이익들을 환수해 버리고, 혹은 국가에 무상으로 바치게 한다해도(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단호히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것인가?  

  국책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의 편익을 위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절대로 그 안에서 소수가 이익을 나누어 가져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국책사업이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렸던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하여 이익을 받게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이 국민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판단을 한다면 이 사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둘째, 이 사업을 인한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금까지 정책을 경제 논리로 밀어 붙여 왔다.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먹고 살기 위하여 모든 것들을 다 감수했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 세대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강요되어서는 안되고, 될 수도 없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도 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군인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 물으면 우리 아버지 세대는 밥 배불리 먹는 것이라 하였고 우리 세대는 초코파이와 초코바였으며, 이제는 콜라와 피자, 햄버거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경제 논리로 모든 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CEO 출신의 대통령께서는 이 사실을 모르시나 보다. 이젠 경제가 아니라 생명이요, 생태며, 지속 가능성이다. 녹색 산업이라니까 마른 잔디에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 한국 축구 협회(공교롭게도 여기 장을 하시던 분과 대통령께서는 같은 당이다.)처럼 콘크리트로 강변을 둘러싸고 거기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면 되는 줄로 아시나보다. 이게 녹색산업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좋다. 한발 물러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익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것을 진행했다고 치다. 그래서 우리가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것이 옳은 일일까? 그러한 사업의 폐단은 대체로 한두세대가 흐른 다음에 나타난다. 우리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에 우리가 벌인 사업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일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지금 대통령이 지는가?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지는가? 정치인들이 지는가? 우리가 지는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일을 벌이려는 것은 무슨 깡이란 말인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저자의 말을 우리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비대해지기보다는 비옥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강은 강다워야 하고 숲은 숲다워야 하며 바다는 바다다워야 한다. 도시, 산골마을, 농촌 모두가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의 불빛들을 깊은 강가로까지 가져와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고 억지로 즐겁게 만들면서 돈을 더 쓰도록 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많은 돈을 들여 휘황찬란하게 꾸며 놓은 곳을 가면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기지만 금방 지루해지고 불편해진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돈을 들여서 꾸민 것보다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깊고 오래가는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이 복잡하고 속도 빠른 시대에 고요하고 깊은 샘터 같은 곳이 더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P.70)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그것은 경제가 아니라 생명 존중의 가치로 접근할 때, 통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보장할 때, 비대보다는 비옥을 추구할 때 조금이나마 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당히 무책임한 사업을 바라보면서 그저 내 아들과 딸에게 미안하고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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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어요.
그쵸~미래의 그들에게 가장 미안할 뿐이죠.
어디 4대강 사업장엔 군인들이 동원됐다는 얘기도 들리구요~ㅠ.ㅠ

saint236 2010-10-27 09:53   좋아요 0 | URL
님의 서재에서 보고 저도 보게된 책이요. 애꿎은 군인들은 왜 동원했는지 원...

명랑만화 2010-12-3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블로그에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http://ya-n-ds.tistory.com/892

2010년 아름답게 매듭짓고 2011년 맞이하세요~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생명윤리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배아복제 문제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날 것이다. 황우석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생명윤리에 대하여 진지하고 깊은 토론을 가졌어야 했다. 그러나 일부 학계와 종교계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를 거쳤는지 몰라도 이 논의가 일반 대중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생명의 가치와 존중으로 깊이 고민하는 생명윤리라는 말보다는 생명공학, 또는 돈 되는 생명기술,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신산업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것이 이쪽 분야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어려운 용어와, 인간의 영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비과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용어와 개념이 우리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그런 말보다는 이 기술이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 장애로,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낙관적인 말들이 우리의 귀를 사로잡아 왔다. 그런 현실에서 “생명윤리를 말한다”는 책이 과연 팔릴까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많이 팔렸다. 아마도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후광 효과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팔렸는지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이 책대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생명윤리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야기하는 드문 책이기에 생명 윤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지금까지 생명윤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영혼, 종교적인 전통 등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에서 논의가 되었다. 그 논의는 대부분 생명을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논의는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의 희망을 깨어버린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비난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생명공학에서 사용되는 기술에 대한 찬반입장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어떻게 책임있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가깝다. 일단 생명기술을 연구하는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찬성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들어간 후에 그 기술들을 어떻게 공동체에 책임있고 평등하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한다.  

  일견 어려운 논의같지만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스포츠계에서는 생명 공학을 사용하여 선수들의 근육을 강화하고 능력을 끌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전공학 기술을 사용하여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샌델이 갖고 있는 생명윤리에 대한 기본 입장이다. 

  과연 유전공학을 사용하여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리가 한번쯤은 꿈꿔봤던 것들이다. 약하나만 먹으면 키가 크고, 혹은 다이어트가 되고, 유전 형질을 개선하여 보다 똑똑하고 우월한 후손을 만드는 것, 혹은 슈퍼맨이 되는 것 등을 한번은 꿈꿔봤을 것이다. 이런 종류는 아니더라도 유전공학이 발달하면 많은 불치의 병들을 고쳐 인류가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꿈은 한번은 꾸었을 것이다. 이러한 꿈에 대하여 윤리적인 잣대로 판단을 내려본 적이 있는가?  

  샌델은 이러한 꿈들이 결국은 우생학이었다고 말한다. 유전공학을 통하여 인간의 능력을 강하하는 것은 결국 열성인은 제거하고 우성인만 대우하는 새로운 게르만주의, 우생학이 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나아가 유전공학이란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을 위하여, 병을 치유하는 등 최소한의 범위에서 사용되어야지, 그것을 성형이나, 우성인자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부한다. 만약 이러한 것을 허용할 시에는 겸손과 책임과 연대하는 공동체 윤리가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더 큰 위험은 유전학적 강화가 일상화 되었을 때, 사회연대에 필요한 도덕 감정을 키우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잘 나가는 사람들은 사회의 최저 수혜자들에게 무엇을 빚졌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주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에 크게 좌우된다. 잘나가는 사람들이 잘나갈 수 있도록 해준 자연적인 재능은 사실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른바 유전적 제비뽑기의 결과다. 우리의 유전적 재능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성취가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라면 달라지는 게 무엇인가? 그렇다면 시장경제에서 거둬들인 모든 것에 우리 각자가 전권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잘못이고 자만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남들만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과 이익을 공유할 책임이 있다.
  여기서 연대와 '주어진 선물'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겼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의 성공이 전적으로 자기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의식은 능력주의 사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능력주의 사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란 우쭐거림과 의기양양함이 밴 기정이다. 즉 성공은 덕에 씌워지는 왕관인데,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가난한 자보다 더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라는 가정이다.(P.137 ~ 138) 

  샌델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비단 유전공학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내가 잘나서 얻었다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재능과 재산에 대한 책임의식이 희박해진다. 그 결과 사회에의 기여라든지, 환원,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라져버리고 불법과 불의를 통해서라도 성공하기만 한다면 장땡이라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닌가? 나에게 주어진 것은 나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을 게으르다 정죄하고, 무식하며 개인적인 부덕으로 가난하다고 가르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것 때문에 국민들이 서로 괴리감을 느끼고 박탈감을 느끼며 원인 모를 분노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샌델의 책은 분명 생명윤리를 주제로 하여 씌여졌지만 공동체의 시각에서 생명윤리를 논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으로도 읽혀질 수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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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열성유전이 우성이죠.
근데 거기서 열성인자를 제거하는 게 우성학이고,
여기서 우리는 돌연변이를 간과할 수 없고...

아직 관심만 갖고 시작도 못했는데,'정의란 무엇인가'부터 찾아 읽어야 겠네요,불끈~^^

saint236 2010-10-13 22:32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 보세요.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