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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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무 세대! 돈이 없고, 집이 없고,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태백! 이십대의 태반은 백수라는 말이다. 취업 5종 세트라는 말도 있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필수 자격들이란다. 과거에는 토익, 학점, 학벌 3종 세트였는데 요즘은 더 치열해져서 인턴,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자격증 5종 세트로 늘었다고 한다. 여기에다가 얼마전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라는 명칭까지 더하여지면 20대의 생활이라는 것은 온통 암울하기만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  

  "힘들지? 대학가면 괜찮아. 놀고 싶지? 대학가서 놀아! 열심히 해서 SKY가면 과외해서 학비도 벌고 너희 용돈도 벌 수 있어!" 

  난 20대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말들과는 병아리 눈꼽만큼이지만 거리가 있다. 그러나 IMF가 막 터지고 어렵던 시기에 대학을 입학한 97학번이다. 20대의 청춘이 암울한 암춘(暗春)으로, 온통 새까만 흑춘(黑春)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 것이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 즈음부터 일 것이다. 눈부시게 푸를 것만 같고, 자유로울 것만 같았던 대학시절, 난 참 많은 방황을 했었다. 학비, 군입대, 아르바이트 경제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3남매인 우리는 모두 2년 터울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해에 막내가 대학에 입학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무식했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머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할 무렵인지라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삐딱했다. 비록 한 학기이지만 한총련, 학생운동에 열심을 내기도 했었고, 밤을 하얗게 세울 정도로 가슴 시린 사랑도 해보고, 수박 겉핥기나마 막스를 공부하기도 하고. 그 혼란스럽고 힘들던 시절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세 가지였다. 친구, 신앙, 고궁! 가족에게 못할 고민들도 친구들에게 털어 놓았고(그 친구들이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이다.) 어릴 적부터 믿었던 기독교의 신앙, 그리고 경복궁, 덕수궁 같은 고궁들이 내 피난처요, 휴식처였다. 물론 그덕에 학점은 4.0만점에 3점대를 간신히 방어했지만 지금와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이, 그 고민이, 그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에 내가 있는 것이고, 내 20대가 단순히 암춘, 흑춘이 아니라 청춘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교회에서 20대를 볼 때마다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교회에 나오는 20대들은 비교적 마음에 여유가 있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참 재미없게 산다. 학원, 학점, 편입, 스펙, 취업 등등등... 언젠가 누가 기도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는데 20대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마음이 짠햇었다. "돈은 필요한데 쓸 돈은 없고, 학교는 가야하는데 학점이 안나오고, 취업은 해야 하는데 직장은 없고, 결혼은 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푸르디 푸른 청춘이 이렇게 암울하게 되어 버린 것일까? 어쩌다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위안을 얻는 것일까? 

  IMF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가장 커다란 것은 부도, 경제적인 자신감도, 일자리도 아니다. 물론 우리가 잃어버린 그런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가장 가슴아픈 것은 신뢰와 연대가 깨어졌다는 것이다. IMF 이후 10년, 신자유주의 10년은 우리에게 승자독식과 무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우석훈은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육화라는 아주 멋들어지고, 새련된 말로 표현을 했다.  

  연대를 외치는 노조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옆 집에서 누가 죽어도 무관심하며, 지하철에서 누가 맞아도 말리는 이 하나 없는 것이 관계가 깨어진 후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비극이 아닌가?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은 관계의 복원, 연대에서부터 나온다는 의미다.(혹 이 연대를 SKY의 연대라고 읽을까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석훈의 진단은 옳다고 할 수 있다. 

  지금 20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리더와 진, 권력이나 교섭력이 아니라 방살이에 갇힌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고, 그러한 사회적 관계의 복원이다. "혼자라야 마음 편하다."는 친구들을 불러낼 수 있는 우정과 그 친구들을 환대할 수 있는 밥상 공동체가 아닐까 싶다. 그런 다음에야 3무 세대란 말을 없앨 수 있고, '88만원 세대'를 한때의 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p171) 

  또한 20대 운동이 당사자 운동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실에 대한 바른 진단과 20대 운동의 바른 방향 제시에도 불구하고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자, 모여라. 20대 삶이 어떠냐? 팍팍하지 않으냐?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 너희들 움직여야 한다. 옆에 있는 친구들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바라봐야 할 구체적인 깃발이 없다. 20대에게 깃발을 제시하는 것이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들은 당사자들이 찾아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40대가 20대를 위해서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가, 어떻게 정책적으로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88만원 세대를 통하여 문제 제기가 되었고, 이 책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한 "새판짜기"라는 타이틀까지 걸었는데 여전히 정확한 문제제기와 미적지근한 새판짜기에 멈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88만원 세대를 통하여 만났던 우석훈의 번뜩이는 재치를 이 책에서도 기대했기에 더 실망하고 아쉬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선전 혹은 잘 싸웠다는 칭찬보다는 간신히 막아냈다는 말이 다 잘 어울리는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저자는 수성보다는 공성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편집 상 아쉬운 것은 중간 중간 사용되는 어려운 용어를 각주가 아니라 본문에 파란색 배경의 칸에 설명한 것이다. 글을 한참 읽고 있는데 흐름이 끊기는 것이 책의 내용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간혹 모르는 단어라고 할지라도 책의 문맥을 통하여 대략적인 개념 이해가 가능하고, 미진한 구석이 있다면 한 단락이 끝나고 난 후에 확인해 보아도 될 텐데 중간 중간에 파란색으로 끼어든 불청객들이 내 눈을 잡아 끄는 통에 전체적인 맥락 이해에 어려움을 주었다. 가능하다면 다음 판을 낼 때 이 부분을 편집하여 각주로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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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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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문제는 빠다." 

  상당히 불편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내 생각이 솔직하게 담기도록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봤다. 아마 이 제목 때문에 불편한 댓글들이 몇개 달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펼치기 전에 책 표지를 한번 훑어보라. 오세훈,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 유시민, 노무현, 조국 이렇게 7명의 사진이 책 전면에 포진해 있다. 오세훈과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스타 플레이어요, 손학규는 민주당의, 문재인과 유시민은 친노 세력의, 조국은 진보진영의 떠오르는 스타 플레이어다. 물론 이 사람들보다 단연 돋보이는 군계일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아직까지도 5공 청문회 시 명패를 투척한 그의 서슬퍼럼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무현을 뺀 나머지 6명은 다음 대선 후보로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노무현을 더하여 7명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는가? "엘리트"이다. 괜히 엘리트 그러니까 모호한 느낌이 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팬층을 거느린 정치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라는 말이다.  

  오세훈은 그의 무책임한 도박에도 불구하고 믿고 찍어주는 25%의 절대 지지층이 있다. 박근혜에겐 박사모가 있으며 정체도 모호한 친박연대가 있다. 손학규 욕도 많이 먹지만 요즘 그의 주가는 상승세이다. 조만간 손사모가 결성될지 누가 아는가? 문재인, 유시민은 독자적인 팬층은 없지만 노무현의 유산 노사모가 여전히 건재하다.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약한 것이 조국인데 강준만의 말대로 오연호가 나서서 조국 띄우기에 열심이다.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오마이뉴스와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요, 많은 팬층을 양산해 내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마치 빌 클린턴이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그의 출중한 외모와 색소폰 연주로 얻은 것과 같이 말이다. 

  왜 책의 내용은 말하지 않고 책 표지만 가지고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느냐? 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전부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좌파라는 책의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은 강남 좌파냐 강남 우파냐, 강북 좌파냐 강북 우파냐, 분당 좌파냐 분당 우파냐의 좌우 이념 대결을 다룬 책이라 오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가 아니다. 강준만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강북이냐 강남이냐 좌냐 우냐로 구분하고 있는 "파"이다. 나는 이 것을 "파"라고 쓰고 "빠"라고 읽기 때문에 앞으로 리뷰를 작성하면서 "빠"라 쓰려고 한다. 그것이 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노사모들의 활약이었다. 당시 돼지 저금통을 보냈던 사람들도 내 주위엔 많았었고, 정몽준의 반칙 기사가 알려지지 못하도록 자발적으로 신문을 치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노사모라는 단단한 조직은 그 이전에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정치 조직이었다. 전두환에게 사람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정치조직이라기 보다는 군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관계일 뿐이다. 정치판에 새로 나타난 노사모와 비슷한 조직을 찾자면 당시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던 팬클럽 정도일 것이다. 노사모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생소한 조직이었지만 그 생소한 조직이 가지는 힘은 막강했던 것이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심지어는 비판까지도 나서서 막아냈던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요, 마지막까지도 노무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리고 서거 2주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이들도 모두 노사모들이다.(오해하지 마시라.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전부 노사모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렇게 노무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노무현을 대통령의 자리로 올리고 방패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을 반대편 진영에서는 비웃음을 잔뜩 담아서 노빠라고 불렀다. 이후 빠순이 빠돌이라는 말은 정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박근혜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박사모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나라당에서 털려나갔던 영남 출신의 정치인들끼리 모여서 친박연대라는 괴상한 정당을 만들었다. 그들이 외쳤던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정책도, 공략도 없다. 그냥 "난 박근혜를 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 우리는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가슴에 금뱃지를 달았다. 지금은 미래 희망 연대라는 이름으로 당명을 바꾸었으나 내겐 여전히 친박연대일 뿐이다. 

  대통령이 되면 으레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급조된 정당들이 꽤 여럿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분야에서는 정말 탁월한 사람이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깨고 노무현을 위한, 노무현에 의한 정당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열린우리당도 오래가지 못했다. 새천년민주당도 그렇고민정당,  민자당, 신학국당도 이런 맥락에서 창당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우듯이 정당은 같은 정치적인 건해를 가지고 뭉치는 당이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뭉치는 퍈클럽과도 같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화되지 약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런 팬들을 중심으로 논공행상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대인관계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금기다"라는 말을 했는데 맞는 말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아니 친하면 더욱 더 정치 이야기는 하면 안된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인물을 지지하면 곧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진보와 보수가 있다. 물론 수구 꼴통과 무개념 진보도 있다. 그렇지만 정당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는 정당이 비교적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감당하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정당이란 최장집 교수가 말한 "머신Maschine" 정도의 위상일 뿐이다.(이것을 지적한 최장집 교수가 손학규를 지지하면서 스스로 머신이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명사의, 명사에 의한, 명사를 위한 정당이 한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자기가 따르는 스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분명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다.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 한다.(분명 비난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의 리뷰를 읽다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분은 이 책이 쓰레기라고 한다. 그 이유는 노무현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노무현보다 더 잘못한 다른 이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노무현만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판은 애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는 강준만이 노무현에 대해, 진보 진영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비판한 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애정의 강준만식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애정표현조차 인정하지 않는 독선이 과연 민주주의이기는 한가? 이것은 좌나 우나 마찬가지다. 빠가 넘쳐나는 한국 정치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점점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그리고 갈등과 분열이, 골이 깊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유이다. 

  둘째, 정치적인 감각을 무너뜨린다. 정치는 현실 감각이고, 삶의 방식이다. 서로 다른 점들을 인정하고, 토론하고, 이 과정에서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어디 그런가? 일단 단상을 점거하고 본다. 강달프의 공중 부양 신공, 도끼로 문 부수기, 소화기 무단 살포. 국회가 국회가 아니요,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K-1이다.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정치라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또한 모든 부분에서 마음이 일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찬성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반대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가령 무상 급식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식으로 말이다. 난 홍준표를 싫어하지만 가끔 그가 던지는 말에서 소위 은혜를 받을 때가 있다. 빠들이 넘치는 대한 민국에서 정책별로, 사안별로 토론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세련된 정치작업이 가능하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한다. 감히 주군에게 어떻게 불경하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사고가 팽배한 곳이 대한민국 정치판이 아니던가?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를 구분해 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념의 전장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에 조금은 더 유연한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강준만이 하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이것이다.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빠"가 문제다. 빠가 넘쳐나는 현실은 학연과 지연과 혈연 중심의 패거리 문화를 더 강화할 뿐이다. 이젠 정치를 조금은 "쿨"하게 냉정하게 보자. 

  ps. 문득 예전에 친구와 함께 주고 받았던 농담이 떠올랐다. "그런즉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는 세상 끝까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학연이라." 성경의 한 부분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너무 정확한 말에 그저 씁쓸할 뿐이다. 또한 마태우스님 말대로 역시 강준만은 밥값은 하는 양반이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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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0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는 이 책 꽤 잼나고 그렇구나 하는 부분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세인트 님의 리뷰를 보니, 더욱 일목요연해지는군요. 제목에서
차라리 강남좌파라는 요즘 이슈화되는 표현을 쓰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걸 싶었습니다.
거기에 얽매여, 진짜 말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자꾸 놓치게 되더라구요.

정치파(빠)만 문제겠습니까. 저희 공부하면서 대학원 가는 이유는,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아하하, 서글픈 현실인거죠.

saint236 2011-09-03 15: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인간이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는데 관계 지향이 아니라 관계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죠. 정치판은 더하고요. 강준만 선생은 이런 사람들을 기회주의적 좌파라고 하시더군요.

루쉰P 2011-10-1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에 글이 올라와 있으셔서 이렇게 찾아와서 읽어보고 갑니다. ^^ 강준만 교수의 사상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인지라 세인트님의 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무조건적인 칭송만이 있고,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것도 꽤나 머리 아픈 일이죠. 앞으로 자주 와서 좋은 글 보겠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너무 웃겼어요. ㅋㅋㅋ 그 중의 제일은 학연이니라..

saint236 2011-10-18 15:4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진우 기자는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소망(교회)이라고 하더군요.^^
 
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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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개콘 코너 중에 나에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서울 메이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경상도 출신의 세 친구들이 서울말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이다. 허경환은 완벽한 서울 말을 구사하는 캐릭터로, 류정남은 엄청난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로, 양상국은 능력은 안되면서 류정남의 사투리를 촌스럽다 비웃으면서 허경환의 서울말 구사 능력을 한없이 부러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다는 허경환의 어투도 그렇게 서울스럽지 않다는데 있다. 억지로 끝말을 올리면서 서울 말이라고 하지 않나, 사투리를 설명하거나 급하면 아주 찐~한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구사된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을 읽으면서 왜 갑자기 서울메이트가 떠올랐던 것일까? 기획자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서울 메이트가 가지고 있는 절대 기준과 그것에 의한 편가르기, 그리고 길들이기라는 통제 시스템이 그 안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성장한 세 남자가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을 억지로 제거하면서 서울말이라는 절대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어 간다. 완벽하게 적응해서 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고 말하는 허경환은 1등 국민, 사투리를 버릴 수 없어서 촌 사람 취급을 받고 놀림 받는 류정남은 3등 국민, 허경환(1등 국민)을 부러워 하지만 서울말 구사 능력은 류정남(3등 국민)보다 약간 나은 정도인 2등국민 양상국! 서울말은 세 사람을 편가르고 줄세우고, 몸값을 책정하는 절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세 사람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매커니즘(길들이기)이 된다. 그렇지만 1등 국민인 허경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투리를 자제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통제 매커니즘에 충실해도 통치자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세 사람은 이 통제 매커니즘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인정받고, 철저하게 적응하려 한다. 그 모습이 지켜보는 이로하며금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생각해 볼 것은 서울말을 그 어느 것으로 바꾸어도 이 통제 매커니즘은 유효하다는 것이며, 우리 삶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말을 영어로 바꾸어보면 어떤가? 스능성적으로, 혹은 부모의 재산 규모로, 혹은 출신지역, 혹은 미국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어떤가?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단어만 바꾸었을 뿐인데 웃기는 개그가 소름끼치는 현실로 둔갑해 버리지 않는가? 김형곤씨가 일찍 작고하지 않았다면 무릎을 칠만한 시사 개그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 1권과 2권을 통하여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 자체가 순혈 주의, 지역 주의, 학벌 주의와 같은 기준을 세워 놓고 나와 남을, 안과 밖을 가르고 있으며, 나와 같은 곳에 소속되지 않은 타인에 대한 공격심과 분노, 적대감을 심어 줌으로 인하여 내부를 결속하고 나아가 밖은 물론 안의 구성원들마저 착취하는 통제 매커니즘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몇 년후에 출간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서(박노자/푸른역사)"와 같이 읽어본다면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하여 까발리는 통제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대로 박노자는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피인지라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혹은 알아챘다고 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을 골라내어 그것들이 왜 문제이며, 우리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적절하고 날카롭게 설명한다. 박노자 스스로가 외국인의 인권과 그들의 귀화와 이주에 대하여 열려 있을 때 한국은 새로운 피를 수혈받아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대한 증거가 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이 아쉬움 때문에 서평의 제목 마지막에 ?를 붙인 것이다.) 그의 말이 이성적으로는 옳지만 감정적으로는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족벌의 문제, 군벌의 문제, 군대나 교육의 문제, 정치의 문제는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다만 너무나 논리적이고, 너무나 원칙적이어서 왠지 감정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기묘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가령 군대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말들은 과연 러시아에서도 군대에 대한 경험이 없는 박노자가 한국 군대에 대하여 그렇게 자신있게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가 지적하는 것들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은 것인지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관행들(공관병을 가정교사로 이용한다는지)을 가지고 혹은 부정적인 면들만 가지고 침소봉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발감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경험이 없기에 논리적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몸을 담아 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감정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예를 들면 자녀의 병역 면제를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박노자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지 않은가?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반이성적이 되어 감정적으로 행동함을 기억한다면 그의 주장이 사람들의 감정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함이 왜 그렇게도 치명적인 단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글을 읽다가 문득 드는 의문 한가지는 군 개병제와 모병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먼저 124p의 글을 인용해 보면 이렇다. 

  그러나 유승준을 왕따시켜봐야 국민 개병제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 - 군 안에서의 인권 유린, 장기 복무로 인한 고학력자의 수학 능력 저하, 지배층의 고질적 병역 기피 문화 등 - 이 해결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유승중에게 분노를 퍼붓는 것보다는, 군축과 모병제로 점차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해결법일 것이다. 모병제로 가야 약자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회 전반의 군사 문화가 드디어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124p)

  박노자는 모병제만이 군대 문화의 폐해를 줄이고 더 나아가서는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239p의 글을 살펴 보면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은 않다. 

  국민 개병제의 쇠퇴와 모병제의 유행을 들고 국민/민주국가의 후퇴를 논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나는 그걸 오히려 핵심부 국가의 대외 군사 압력이 강화되는 조짐으로 생각한다. 영국 군대가 지금 미군과 함께 아프간, 이라크 침략의 주역을 담당한다는 상황은 영국 군대가 징병제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3세계에서의 더러운 전쟁들을 위해서 징병제 군대가 아닌 전문적 모병제 군대를 사용할 때, 본국의 여론이 보통 비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부 자본의 잉여 가치 수취의 규모와 방식이 각각 지구화, 국제화되는 만큼, 대내외적 착취의 강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부 민족국가의 물리력의 역할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징병제의 폐지는 남성에 대한 군사적인 훈육의 중지를 의미하는 차원에서 긍정적 의미도 내포한다. 그런데 이미 세계를 금융,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들의 손에서는 모병제 군대란 위험한 살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239p)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군대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모병제를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그 모병제라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자본의 손에, 통제자들의 손에 의해 위험한 살인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 아니다. 상시 존재하다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박노자가 모병제를 개병제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라면 이에 대한 대비책 또한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너무나 무책임하게 모병제로 가자는 발언으로 여겨져 조중동 찌라시에 의하여 적절하게 편집되어 빨갱이 박노자도 모병제를 지지한다, 혹은 박노자도 국익을 생각한다 정도로 사용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는 미국의 모병제를 책의 곳곳에서 심하게 비판한다. 사회의 최하층에게 중산층으로의 계급 상승을 약속하면서 그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정부를, 그리고 정부의 약속을 믿고 타자를 침략하여 공격하는 미군의 비인간적이고 무식함을 비판한다. 이것은 미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병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일 것인데 만약 모병제 실시를 찬성한다면 나의 깨끗함을 위하여 누군가가 더러운 일을 감당하도록 강요하는 자기 기만이 되지 않을까?  

  박노자의 주장에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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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박노자!!! 

  나에게 참 힘겹게 다가온 이름이다.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통하여 만난 그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박노자에 대한 배경 지식도 없이 이름만 알고 있던 시절 박노자가 러시아 출신의 귀화인이라는 것 때문에 한번 더 놀랬고, 그의 솔직 담백하지만 깊은 글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마지막으로 그가 지금은 한국에 없고 노르웨이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전히 그는 노르웨이에서 체류하고 있다. 그가 노르웨이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박노자라는 모순적인 이름 앞에서 많은 갈등을 한다. 그의 책을 읽고 싶다. 왜냐고? 그의 글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으면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다. 그런 또 무슨 이유냐고? 그의 글이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덮고 넘어가는 문제들까지 모두 까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솔직함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 책을 사 놓고 펴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이 한권을 읽기 위해서 9일(6월 4일~6월 12일)이나 걸렸다. 보통 이 정도 두께의 책을 보는데 3~4일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지 않고 며칠을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더 이상 리뷰 작성을 미루지 말자는 것이다. 이대로 며칠이 지나고 나면 언제 리뷰를 쓸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리뷰를 작성할 목록에 들어간지 1년이 넘는 책들도 있는데 빨리 작성하지 않으면 이 책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할 것 같아서 부담스럽지만 리뷰를 작성한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는 1부에서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2부에서 4부까지 이르는 동안 한국의 대학문화와 국가주의, 인종주의에 대하여 진단하고 나라로운 논리로 그것들을 비판한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 대학의 서열화와 그 안에서의 서열화, 단일민족 국가를 외치지만 재외동포법에 가려진 그 허구성과 불합리함을, 마지막으로는 신노예로 전락해버린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와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박노자는 한마디로 한국은 박정희식의 사이비 근대주의가 판을 치는 20세기의 중세국가로 결론을 내린다. 

  20세기의 중세국가!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이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30년이 넘게 살아온 내가 모르는 것을 그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방해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간신히 각오를 다지고 책을 다시 넘기기 시작한다.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는 그가 건드리는 문제들이 그동안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2~3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1부에서 지적하는 것들은 나도 모르게 당연시하고 있었다. 특히 군대의 문제와 상하급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체질화 되어 있어서 문제인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박노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만만치않은 문제인 것이다. 아마도 그가 러시아에서 자라 한국에 귀화한 외부출신의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이 책을 내면서 그 문제를 건드린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그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나아지지도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론, 맹종에 길들여진 사회, 종교적 패거리 주의, 대학의 서열화 등등 그가 지적한 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내리 누른다. 한국을 사랑하여 귀화한 박노자가 여전히 노르웨이에 있는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당신들의 대한민국! 책의 제목을 통하여 나와 남을 나누고,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나와는 적이라는 공식으로 사회를 다스리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지배층에게 맹종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박노자는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선언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주어진 서열대로 권리를 누리고 상부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중세의 논리가 20세기 한국에 그대로 펼쳐 지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이런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그의 안목과 까발릴 수 있는 용기와 말빨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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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니는 유시민이 우리에게 새로운 하두를 던져 주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직업 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걸고 진지하게 탐구해야할 고민이다. 특히 직업 정치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직업은 정치인이지만 그의 인식과 마인드는 전혀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질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외면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현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자극적이고 지극히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며 다른 당의 대선 후보들에게 "나는 국가에 대하여 이만큼 공부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떠한가?"라고 묻는다. 또한 투표권자인 국민들에게  "당신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당신의 정치적인 성향은 무엇인가?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당신은 누구를 찍을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합리적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이 마치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경주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당내 경선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을 때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을 분명히 밝히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이런 유시민의 모습이 내게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좋아보인다. 이번 대선은 아마도 경제이야기만 무성했던 지난 대선하고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한다.  

  일단 이 책을 읽어보면 유시민이 많이 똑똑하다는 것을, 그리고 샤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 정도로 쉽게 풀어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공부했고, 얼마나 명철한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던지는 국가에 대한 7가지 질문을 요약하는 것은 웃기는 일일테니 그의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적어보고자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너무 철학적인 질문이기에 파고 들면 머리가 아프니 이해하기 쉽도록 항해를 하는 일에 빗대어 생각을 해보자.  

  국가는 배이다. 탑승한 자들을 바다로부터 보호하고 생존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배의 역할이다. 이 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내리거나 다른 배로 갈아탈 수도 없다. 배에 탑승한 순간부터 드 배에 타고 있는 전원은 생사와 고락을 같이 하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이것이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이다. 배에 탑승한 사람들과 운행 요원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며,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대하여 여러가지 시각이 존재하는데 이 차이에 따라 국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이해와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정부는 무엇인가? 선장과 항해사라고 하겠다. 정부는 국가라는 배가 어디로 갈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실제적인 운행요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 수하에 전문적인 기능인들을 두고 각 부분의 일을 맡아서 전체적으로 배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고 실행한다. 배가 운행할 방법을 결정하는 방법에 따라서 국가관이 결정된다. 선출 방법이 어찌되었든 선장은 배를 책임지고 운명을 같이 하니 무작정 믿고 따라오라며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은 전체주의적 국가관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 선장이 결정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소한의 조작만 하는 부류라면 자유주의적 국가관을 가졌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적 국가관은 무엇인가? 선장이 존재하지 않고 운행요원과 탑승자를 전부 포함하여 임시적인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그곳에 운행을 맡기는 것이다. 장래에는 배가 필요없는 시간이 도래할 것이니 배가 해체되고 모든 사람들은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게 될 것이다. 물론 아나키스트적인 국가관은 지금 당당 배를 해체하고 바다로 뛰어들자는 것이다. 

   진보냐 보수냐는 무엇이냐? 배가 진행하는 진로에 대한 시각차이라고 하겠다. 지금 진행하는 방향이 옳기에 이 방향을 계속 유지하며 배에 탑승한 사람들의 대우가 적절하니 이대로를 유지하자면 그것이 보수요, 진행방향이 처음 목적지와는 다르지 그에 맞추어 변경하자는 것이, 그리고 오랜 항해에 지친 탑승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라고 할 수 있다. 배에 실린 제한적인 물과 식량이 세금이라고 가정할 때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하는 문제는 성장이냐 분배냐의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도 대화를 단절한다면 선상반란 득 혁명이 일어날 것이요, 그렇다고 너무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배가 산으로 가고 선장의 체면이 서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선장의 지식과 경험과 권위에 대해 탑승자들이 존경심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요, 선장은 충분한 설득을 통하여 탑승자들의 불안을 덜어주어 목적지를 향해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탑승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익과 처지에 따라 몇 그룹이 형성될 것인데 이것이 정당이며,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장은 어쩔 수 없이 탑승자들 중에 형성된 몇몇 무리들과 타협을 할수밖에 없게 되는게 이것이 연합정치이다.  

  이렇게 국가를 항해에 빗대어 이해하게 된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탑승자들이 한 마음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배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순수한 공산주의적 국가관을 내가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한 공산주의적 국가관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국가 해체가 목표이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수밖에 없다. 실제로 순수한 공산주의가 역사상 존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가 선상반란일 수도 없다. 전진정 공학 혹은 개량이 우리 앞에 남겨진 가장 최선의 선택지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개량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유권자들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9장에서 유시민은 지난 한국의 정치판도와 노무현 정권 시절의 정책과 정치적인 타협과 선택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의 정치에 대한 견해를 끌어 들인다. 정치는 소명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은 때론 정치적인 소신을 뒤로 하고 정치적인 소신이 다른 사람들과도 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장하며 반한나라당을 목적으로 한 진보연합을 주장한다. 비록 그의 연합에 대한 생각이 깊이 고려해봐야할 구석이 있지만 그의 생각이 그저 허무맹랑한 것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반한나라당 연합의 핵심이 민주당의 손학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오세훈과 박근혜와 김문수와 손학규의 차이를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이라는 것은 안티를 위한 안티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수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유시민의 도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하는 한에서 누구에게 선장이라는 중요한 직위를 맡길 것이냐? 나는 그것이 나라고 생각한다." 왠지 유시민의 이러한 도발이 그저 밉지만은 않다. 오히려 반갑다. 이러한 도발이 다른 대선 후보들에게도 전염되었으면 좋겠다. 대선후보들이 자서전을 써내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정책 자료집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더 좋지 않을까? 동네 동장 선거도 아니고 찌라시 몇 장 뿌리고 잘 살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공수표 날리는 것보다는 말이다. 

  이래 저래 유시민의 도발이 유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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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5-30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초반부 내용을 읽고 있는 중인데,, 철학적 내용들이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더군요. 이 책을 읽고나니깐 책에 언급된 원전들도
읽고 싶은 마음도 들구요. 차기 대선후보 중에 거론되는 사람들 중에서
스마트해보여서 이 사람의 정치적 행보가 기대되네요 ^^

saint236 2011-05-30 22:52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고 나서 유시민에 대한 시각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그의 행보가 기다려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