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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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4+1 협의체가 취약층의 마스크 지원 예산 114억 원을 삭감하면서 한국당에 설명도 없이 날치기 통과 시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에 묻어 가면서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전형적인 행태이다. 그런데 이 글은 부메랑이 되어 자한당에게 돌아갔다. 자한당에서는 전액 삭감을 주장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뿐이 아니다. 사태를 제대로 콘트롤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몇년 동안 꾸준히 방역 예산을 삭감하고, 방역 인력 충원에 딴지를 걸어서 충분한 인력이 충원되지 못하게 했던 과거의 행태들이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자한당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많은 국민들이 자한당에 대해 미련을 버린지 오래다. 물론 비교적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여전히 자한당을 지지하고, 보수 성향인 사람들도 자한당을 지지하지만 그것은 자한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명박이 싫었던 사람들이 정동영을 중심으로 뭉쳤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한당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습게 생각한다. 한때는 여당이었고, 많은 국민들이 지지했던 정당이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을까? 나는 여기에 대한 답을 '사쿠라 진다'라는 책에서 발견했다. 반성이 없기 때문이다.

 

  패전 후 일본의 현대사는 묘한 모습을 갖게 된다. 주변 국가들은 사과하라고 말하고,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왜 사과하라고 하느냐면서 떼쓰지 말라고 말한다. 일본 국민들이 양심이 무뎌서 그런가? 아니다. 못 배워서 그렇다. 못 배웠다는 말이 무식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배우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패전 후 일본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한 가지 꼼수를 쓴다. 그것은 패전이라는 사실을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다. 있었던 사건이 어찌 없어지겠는가? 그것도 수 천년, 수 백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불과 몇 십년 전의 사건인데 가능하겠는가? 일본 지배층들도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없앨 수 없으니, 일본 국민의 머릿 속에서만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패전이라는 말 대신 종전이라는 말을 쓴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은 연합군에게 패했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세 나라는 분명한 패전국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로 종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전쟁에서 패했다는 말로 패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쟁은 있으나 그 전쟁에 왜 일어났은지, 그 전쟁에서 누가 패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사실이 사라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서 일본은 맥아더와 합의를 하는데 천황제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실제적인 정치는 내각에서 하더라고 일본의 상징적인 의미로 천황제는 유지하자는 그럴듯한 논리로 맥아더를 설득했다. 물론 미군이 순진해서 여기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 소련의 세력 팽창을 막기 위한 교두보로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일본이 필요했기 때문에 용인한 것이다. 그런데 천황제 유지가 일본 지배층의 뻔뻔함에 면죄부를 주었다. 독일의 전쟁 주범은 누구인가? 히틀러이다.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그러면 일본은? 일본의 전쟁 주범은 모호하다. 일본의 A급 전범들이 처벌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상징적인 주범이 없다. 그 주범이 누구이겠는가? 천황이다.(천황이라고 쓰니 기분이 나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본의 황제에 대한 정식 명칭이라) 그런 천황을 계속 옹립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전쟁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전쟁에 대한 반성이 없으니 이후의 행동도 거침이 없다. 양심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되려 큰 소리 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러면서 주변 국가들을 떼쓴다고 몰아 부친다. 미국의 옥수수는 기꺼이 사주면서 한국에는 물건을 안 팔겠다고, 너희같은 것들에게는 팔 수 없다고 큰 소리 친다. 일본이 속해있는 동아시아에서는 고립되어 가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오직 미국에 가 있다. 그리고 이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 오직 미국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고,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말은 무시한다.

 

  반성이 없는 역사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반성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그것을 반추하면서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보다 나은 미래로 향하기 위해서 반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만 그런가? 한국도 그렇다. 험난한 한국의 현대사는 적폐청산의 시간마저 주지 않았다. 친일은, 친미로, 다시 친러로, 그리고 다시 친미로 돌아섰다. 그 사람들은 변검의 명장처럼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있으며, 적폐청산이라는 말 앞에서 빨갱이라면서, 분열을 조장한다면서, 당시 전 국민이 친일이 아니냐면서 반성을 거부한다. 그 전략이 주효한 것 같다. 어느새 그들의 과거를 알던 이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패전을 모르는 일본 국민처럼 그들의 과거 행적을 모르고 오늘날 그들의 모습만 지켜본 이들에게 반성은 무엇이며, 적폐청산은 무엇이냐는 말이 심심지 않게 나온다. 그런데 말이다. 그러면 무엇을 하냔 말이다. 집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는가? 반성을 모르는 그들의 행적은 요즘에도 반복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행적은 잊힐 수 있어도 최근의 행적은 잊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신문물이 그들의 과거 행적을 모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쿠라 진다라는 책은 일본의 현대사의 기묘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기묘함에 대해서도 말한다. 저자의 의도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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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20-02-1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죽어도 그쪽 지지하겠다는 소리가 여전히 들리더라구요.... 아...

saint236 2020-02-12 11:17   좋아요 0 | URL
습관 같습니다. 그쪽 지지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몸에 들어온 습관이요

2020-02-12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20-02-15 20:47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나라가 망해도..참 서글픈 말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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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인가부터 신문을 보면서 기사를 보고 신문사를 추측해 보거나, 신문사를 보고 기사의 내용을 추측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완전히 드러맞지는 않지만 70%의 비율로 맞추기 시작했다. 특별히 조중동은 거의 90%까지 맞추기 시작했다.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신문의 곳곳에 나오는 특정 단어들과 논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다룬다고 해보자. 대체로 조중동에서는 남북관계=안보불안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다. 반면에 한경오는 남북관계=평화시대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다. 같은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그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어느 쪽의 기사를 택하든지 계속 그쪽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내 생각이 그들의 사고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조중동을 선호하시는 나이드신 어른들은 남북관계를 말하면서 안보불안, 남침의 위협, 핵전쟁을 이야기하신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이 분들이 남북통일을 하시자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나도 어느새 한경오의 프레임에 갇혀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토론회를 본적이 있다. 정동영 당시 후보를 보면서 도대체 저 양반은 왜 저러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인물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냐 아니면 선거 참모들이 무능한 것이냐 안타까워 했었다. 자꾸 이명박 후보의 경제 논리를 따라간다. 그럴수록 돋보이는 것은 이명박 후보의 경제 논리 뿐이다. 할 이야기가 그것만은 아닐텐데 그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한다. 경국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만약 당시 선거 참모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나아졌을까? 아니다. 그 사람들도 경제 논리를 우선시 했으니 나아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꽤 선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수든 진보든 모두 남북통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온갖 프레임이 난무하고 있다. 누가 먼저 논쟁의 주제를 선점하느냐에 따라서 우위가 결정된다. 그렇게 본다면 정치력이란 끊임없이 논쟁을 생산하고 자기에게 맞는 프레임을 가져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약간 불안한 구석이 있다. 보수에서 경제 이야기를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진보에서 슬슬 따라간다. 최저임금=경제위기라는 프레임을 떠들어 대는데 진보에서 국민들에게 어필할만한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딴지걸기를 하고 있다고 반박하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최저임금은 위험하다는 경고밖에 주지 못한다.

 

  진보 정치를 꿈꾼다면 보다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프레임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에 이러한 태도를 기대할 수 없어서 정의당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 기대는 헛된 기대가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마음이 더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책을 읽은 만족감(4년 동안 책을 읽었으니....)과 더불어 암울한 정치 무능에 답답한 마음을 괜시리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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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새로운 사회 편 - 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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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던 내가 어느날 갑자기 알라딘에 "명견만리"라는 책 제목이 뜨는 것을 보는 순간, 개에 관한 책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명견만리"를 내용은 모르고 명견이 만리를 간다고 해석을 했던 것이다. 책을 보면서 도대체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가 싶어서 혼자 이불킥을 수도 없이 날렸던 기억이 있다.


  살다보면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한다. 내 기억에 남는 굵직한 사건은 알파고였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세돌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알파고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를 두고 이젠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다,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다, 사회가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라는 말들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왔다.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나도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데 방과후 수업으로 코딩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살짝 빠졌었다.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이 가르친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가르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무척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쫓아가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시각은 어쩌면 과거에 더 이상은 필요없는 시각이 될 수도 있다. 정치도, 직업도 남북관계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간다. 그런데 그런 속에 살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과거에, 지금까지의 모습에 얽어 맨다면 우리의 인새잉 어떻게 바뀔지는 말 안해도 분명하다.


  요즘 청와대 앞을 지나가면서 답답할 때가 많다. 태극기 부대를 봐도 답답하다. 시대적인 상황이 이렇게 바뀌는데 그분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때려잡자 빨갱이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말하고, 비핵화를 만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과연 통일을 원하기는 하는가 의문이 든다. 반대쪽에서 집회를 하는 노조의 집회를 봐도 답이 안나온다. 그들이 그렇게 외치는데 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가? 그들의 행동방식 또한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외치면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이 책은 우리에게 유연한 사고를 가지라고 말하다. 조금더 멀리보고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갈라파고스 군도가 아니다. 


  사족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가지는 생각은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들이 이상하리만치 호흡이 짧다는 점이다. 시선을 멀리 가지라고 말하지만 책의 구성 자체는 시선을 멀리 가질 수가 없다. 짧은 분량 안에 많은 것들을 구겨 넣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은 지식 e 시리즈를 참고한 것 같지만 지식 e 시리즈가 보여주는 여운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많이 팔린다는 것은 책을 읽는 트렌드가 바뀌어 간다는 것인데, 이렇게 투덜대는 나도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서 꼰대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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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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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시창!

 

  제목부터가 마음이 짠하다. 한창 꿈이 많을 청년의 때에 그들이 처한 현실이 시궁창이라니.

 

  사노라면 언젠다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겠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날이 새는 판자집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예전에 축가로 많이 불렀던 노래다. 그런데 요즘은 이 노래를 부르기가 쉽지 않다. 청년들에게 괜히 이 노래를 불러줬다가 돌을 맞지나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들도 꿈이 많고, 밝은 미래를 계획할텐데 아무리 노력해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현실은 시궁창과 같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눈물나겠는가? 그들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서 그저 눈물만 글썽인다. 째째하게 군다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산다고, 미래의 성공만 꿈꾼다고, 눈만 높다고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이미 새파랗게 젊은 것이 한 밑천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괜시리 미안해진다. 이 책이 나오지 6년이 넘었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선 것도 아닌데, 이미 신문으로 봤던 기사들인데 문득 낯설게 느끼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그들을 잊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마트에서 일하다 죽은 청년, 용광로에 떨어져 죽은 청년 등등 그들의 삶을 보면서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던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내 삶이 바빠서 그들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 누군들 그들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그들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부제가 눈에 자꾸 걸린다. 마음에 아프게 와서 박힌다. 누구보다도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일텐데, 같이 눈물 흘려줄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 그들이 처한 현실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시궁창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부제를 살짝 비틀어 보았다. 대한민국이 그들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아무런 공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위로 받은 자격이 있다는 말로 바꾸어 보았다. 그들을 향해 위로의 손길을 뻗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해도 함게 울어줄 마음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들을 일으켜 줄 손이라도 뻗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내어 줄 것이 없다고 해도, 그냥 내게 있는 것만이라도, 함께 울 수 있는 가슴만이라도 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글을 쓰고 취재를 하는 동안 비가 왔다는 저자의 말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 용광로의 쇳물은 어떻게 되었을까? 기계로 만들어져서 어딘가에서 깎이고 마모되고 있지 않을까? 이것이 청년들의 삶일 것 같아서, 고통받는 약자들의 몸부림이고 눈물일 것 같아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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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 대학등록금 1000만 원, 청년실업 100만 명, 사회의 오해와 무관심
조성주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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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이다. 이 말을 고려해보면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가? 삼포 세대를 넘어서 오포 세대, 그리고 N포 세대가 되어 버린지 오랜 청년들에게 과연 미래는 있는가? 이 책이 나온지 10년이 되어가지만, 그래서 저자 조성주 씨가 벌써 40이 넘은 시대가 되었지만 바뀐 것이 없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답은 없다. 오히려 그 시절보다 더 팍팍해졌다. 난 97학번이다. 조성주씨가 염두에 두고 책을 썼던 그 세대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IMF를 겪었고, 친구들 중에 많은 녀석들이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그 당시는 보통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는데, 이상하게 내 주위에는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는 녀석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이유가 등록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들은 쉬위하고, 놀고 대학생이라고 했다. 그렇게 놀고 시위를 해도, 놀면서 공부를 하고 학점이 좋지 않아도 취업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알던 대학은 학점에 목숨거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부에 목숨을 걸고, 도서관에 박혀있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그 때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보태고, 책을 샀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임금이 지금보다 높지 않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내 기억에 3천을 받는 아르바이트는 고액 아르바이트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 등록금이 싸서였다. 그것도 많이 로른 것이지만 그래도 지금에 비하면 쌌다. 어느날 한 학기 등록금이 500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하다. 우골탑이 아니라 인골탑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대학생들이 자조섞인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자신들이 "등골 브레이커"라고 한다.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고등학생들이 그렇지만 당시는 대학생들이 그랬다.

 

  매번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청년문제에 대한 말은 나온다. 그렇지만 해결책은 안나온다. 청년 의원을 뽑는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구상한다 말은 많이 하지만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박원순 시장이 서울 시립대 등록금을 반값 등록금으로 만든 것 외에는 없다. 여전히 등록금은 높고, 그것은 마치 대학생들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취업하는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유명하신 가카께서 요즘 청년들의 눈이 높으니 눈 높이를 낮추라는 말을 한지 10년이 되었다. 이젠 더이상 낮출 눈높이도 없다. 더 치열해진 경쟁, 그로 인해 부족해진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 정의를 외치면서 비정규직을 꼼수를 쓰는 사람으로 무시한다. 청년 실업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허덕이면서도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는 조성주 씨가 이 책을 썼을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청년들은 절망의 트라이앵글에 갇혀서 허덕댄다. 그리고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간다. 재기 발랄한 청년의 상징은 사라진지 오래다.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10년 전에 쓴 이 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가장 눈물나는 대목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자. 아프니가 청춘이라고 하지 말고, 짱돌 들라고 하지도 말고, 눈높이 낮추라고도 하지 말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보자. 지금이 아니면 늦을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질 때 태어난 내 아이들이 10살 11살이다. 또 다시 같은 시간이 흐르면 내 아이들이 대학에 간다. 그때에도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하게 읽힌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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