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리뷰해주세요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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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가운데 당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그를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아갔고, 이에 합세하여 유력 일간지들은 그를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표적 수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정치적인 타살설을 제기하였고, 소위 진보적이라는 신문들은 여기에 합세하여 현 정권을 성토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혼란 가운데 처음으로 맞이한 전 대통령의 자살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얼이 빠져버렸다. 경상도에서는 잘 죽었다, 남자 같지도 않은 놈이라는 말이 강하게 돌았다는 댓글도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잠실에서도 물론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창피하게도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는 자살은 죄이니 노무현이는 지옥으로 갔을 거라는 막말을 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의 마지막을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본다.  

  우리는 노무현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역사상 정말 별종같은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닐까? 고졸출신에(그것도 상고), 노사모라는 팬클럽을 통하여(이를 컨닝해 박사모라는 단체가지 생길 정도니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대통령이 된 사람, 바보, 말 실수가 많은 대통령, 준비 안된 대통령 등 그에 대한 평가는 좌에서부터 우까지 대단하다. 진보진영은 진보진영대로 배신자로. 보수진영은 보수진영대로 빨갱이로 몰아가면서 그를 압박했다. 많이도 외로웠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표지에 있는 그의 얼굴이 자신에 차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측은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 노무현이란? 글세다. 진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좌파라고는 할 수 없다. 국방에 많은 것을 투자한 것과 이라크 파병,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그의 정책을 보면서 때론 유럽의 좌파같다는 생각마저 한다. 나에게 노무현은 좌냐 우냐가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은 권위주의 해체자일뿐이다. 어떤 사람과도 계급장 떼고 싸우는 투쟁심, 가진 권력과 줄을 내려놓고 오직 개인의 실력으로만 승부하려는 고집스러움이 바로 노무현의 특징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그리도 노무현이 비난을 받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한국 사람들을 보면 때론 신기할 때가 있다. 정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맞나 의심이 든다. 너무나 쉽게 권위에 복종하고 줄과 빽을 찾는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대표되는 3연은 바로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예가 아니겠는가? 도대체 왕정이 무너진지 언젠데 아직가지도 대통령을 나랏님으로, 영부인을 국모로 이해한다. 국모가 고졸출신이라는 것이 쪽팔리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신문 기사를 통해 보고 그냥 웃어버렸다.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수학여행 보낸 말이기 때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개나 소나 대통령을 보고 명박이 명박이 한다고 화를 내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노무현을 생각한다. 그의 가장 큰 작품이 이것이 아닐까?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 생각한다. 감히 대통령을 욕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그저 복종만 외치면 서슬푸른 군사독재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대통령이라면 하나님과 동기동창생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았는가? 이런 우리의 잘못된 사고의 틀을 그는 과감히 자신을 던져서 깬 것이다. 권위주의를 깬 짱돌이 바로 노무현이다. 

  언론, 시장, 국가, 공무원 등등 우리 주변에는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권위주의가 너무나 많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권위와 다르다. 깨야 한다. 노무현은 그것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이다. 감히 대통령이 자살한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결국 그도 인간이요, 고뇌를 가진 한 시민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니겠는가?  

  노무현을 추억하는 모든 이들이여, 쓸데없는 권위에 복종하지 말라.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라. 지배당하지 마라.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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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를 리뷰해주세요
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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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책을 집어 들면서 어이없는 실수에 혼자서 피식 웃어본다. 바로 옆에 있는 표지 때문이다. "거꾸로 희망이다."라는 제목을 알고 있고 표지 디자인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책을 거꾸로 집어들게 된다. 뒤집힌 것에 대한 강박적인 거부감 때문이가, 아니면 뒤집어짐에서부터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인가? 곤두박질치는 모습보다야 거꾸로라도 들어서 하늘을 향해 펄쩍 뛰어 오르는 모습이 더 활기차 보이고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표지를 보면서 참 기가막힌 디자인이라고 속으로 찬탄해본다.

  이 책은 시사IN에서 6강에 걸쳐서 행했던 세미나를 착실하게 정리해서 내놓은 책이다. 얼마나 착실하게 정리했던지, 책의 중간 중간에 "청중 웃음, 청중 박수, 청중 잠시 후 박수" 이런 식으로 강연장의 분위기 마저 전달해주려 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이런 노력 때문에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거겠지 생각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품어 본다. 

  이 책에 나오는 12명의 사람들은 이 시대의 삐따기이다. 뛰어난 지성과 학식과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명예와 권력과 부마저 무시한 채 사회를 향하여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다.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심하면 색깔이 뭐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빨갱이다, 좌파다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남들이 모두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든든한 일이다. 물론 왕따를 당하겠지만 말이다. 

  동생이 희망 공작소 위촉 연구원이었다가 지금은 정식 연구원이 되었다. 맞나? 어찌 되었든 그 덕에 박원순 변호사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듣는데, 얼마 전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이 국정원의 개입으로 무위로 돌아갔던 사건이 있었다. 경향신문 일면에 났었다고 했는데 나는 동생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요즘 뉴스를 끊어서 그런가보다. 내 기억에 그 당시가 한참 이명박 대통령께서 서민들을 살리기 위하여 마이크로 크레딧같은 시스템을 구상해보라는 명을 내리셨던 때로 기억된다.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특별 위원회까지 구성해서 개떡 나눠주던 때가 맞을 것이다. 대통령이 외대 골목길에서 떡볶이 사먹으면서 아이를 안아주던 때가 맞을 것이다. 이런 때에 희망 공작소에서 시작하려던 마이크로 크레딧 프로그램을 국정원의 개입으로 무위로 돌려버린 것은 참 개떡같은 짓이다. 아마도 그런 것은 민간 단체인 희망공작소보다는 권력을 쥐고 있는 한나라당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컨닝을 하고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던 것인가?  

  동생이 나에게 그런 말 안하는데 언젠가는 희망 공작소 회원이 되어 달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거기 대표가 유명한 사람인데 회원이 그렇게 없냐?"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동생이 "미운털 박혔잖아."라고 씁쓸한 한 마디를 했는데 참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매일 뉴스를 들으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뉴스를 끊어야지. 그래야 오래 살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와 그 후폭풍, 그리고 샌드위치 경제라는 위기 의식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방향키를 맡겨 주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황당무계한 말이 이 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가장 큰 동인이 되었다는 것은 참 쪽팔린 일이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잃어버린 10년을 돌려드립니다라는 구호 아래 청와대에 입성한 분들은 80년대말 90년대 초로 돌아가려는 듯이 질주를 시작하셨다.  

  국민과의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명박산성을 광화문에 쌓으셨다. 이순신장군도 꽤 오랜 세월을 광화문에 서계시면서 이런 일들은 처음 보셨을 것이다. 약주 한잔 하시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브리핑을 하시는 똥관이 형님, 미국 유력 일간지의 첫 머리를 장식하셨던 리먼브라더스에 필적하는 한국의 리만브라더스(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의 황당무계하고 무모한 금융정채과 외환정책을 비꼬는 말. 이건 미국 유력 일간지에 기재되어 있던 기사의 내용이다.), 매일매일 선전했다는 놀림을 일본 네티즌들에게 당하면서도 고한율 정책을 유지하는 우리 만수형님. 결국 심한 태클에 우리 만수 형님은 뚜껑이 열리셨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된지 2년이 지났건만 그동안 탱자탱자 노시다가 이젠 실업대란이라는 말로 1년 6개월을 연장하자고 한다. 경제 5단체는 선심쓰듯이 일단 그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하신다. 건물하나 올리기 위하여 비행기 활주로를 바꿔버리시고, 강을 살리기 위하여 먼저 죽이는 일에 들어갔다. 잔디가 누렇게 떠서 죽으니까 초록색 페인트로 잔디를 칠하는 몽준이 형님의 기발한 발상에 힌트를 얻어 콘크리트로 강을 덮고 초록색 페인트로 칠하는 녹색뉴딜을 이야기하신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지원 없이 열심히 공사해서 이 땅을 푸르고 푸르게 만들겠다는 상식을 파괴하는 착상을 하신 분은 천재이거나 바보이거나 둘 주의 하나겠지? 1년이 지났지만 747공약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747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듯이 경제를 바닥에 안전하게 끌어 내리겠다는 것이 747 공약의 핵심인가? 아니면 보잉 747기를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7%의 성장을 보장하는 것이 747정책인가? 어찌 되었던 대통령과 동명이면서도 딴지를 거는 명박씨를 옭아 매기 위하여 오늘도 한나라당은 김비서를 내세우고 옆동네 N씨의 지원을 받아 PD수첩은 포르노 디스크 수첩이라고 자의적인 해석을 내린다. 그리고 이런 일이 두번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안을 상정해서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겠다고 조중동씨를 통해 선전한다. 작은 mb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 가만히 눈치를 보면서 팝콘을 튀기고 계신다.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야당의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면,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이 모여서 3당 합의라는 것을 내렸다고 하는데 왜 내 눈에는 그놈이 그놈으로 보이는가? 차라리 합쳐서 "우리 한나라당"을 만드는 것은 어떨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검열하시고, 악성댓글로 몰아 처벌한다. 그러면서도 알바생들을 풀어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색깔 시비를 건다. 멀쩡한 강을 죽이기 위해 삽질을 시작했으며, 낙동강에서 뻘을 퍼올리는 뻘짓도 서슴지 않으신다.이걸 보고 있으면 역시 삽질에는 프로요 뻘짓에는 따라갈 사람이 없는 독보적인 삽질정부요 뻘짓정부라고 감탄하게 된다.

  공정택씨는 여전히 상고중이며, 대학은 5년은 필수요 6년은 선택이 되었다. 기업은 내수 시장을 포기한 것인지 비정규직과 인턴을 양산하고 있다. 도대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 정규직과 인턴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일이 다른가? 아니면 사람이 다른가? 단지 월급 명세서만 다를 뿐이 아니던가? 이러면서도 국산품 애용을 외치면서 S와 H는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당당하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니들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지 아니면 우리나라 국민이 니들을 먹여살리는지?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자국산 자동차를 덮어 놓고 사주는 나라가 어디있으며 외국보다 비싼 값에 더 저질의 휴대폰을 충성을 다해 사주는 나라가 어디있는가? 정말 덮어놓고 사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자국 소비자들은 봉이 맞는갑다.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의 도발에 미쿡에게 이른다면 쪼르르 달려가는 소심함. 

  도대체 이런 거지 발싸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더 이상 바닥이 없을 정도로 내려갔는데 어디서 우리는 희망을 볼 것인가? MB노믹스 이후, 근혜이즘과 재오 노믹스까지 봐야만 하는 것인가? 불안하다. 도무지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도 혹시 검열 당하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보는가? 다들 위기라고 하는데 왜 이들은 거꾸로 희망을 말하는가?  

  예전에 한 청년이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제 신앙심이 바닥이예요." 처음에는 이 말이 무척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그 말이 희망으로 들리더라. 바닥이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오면 되기 때문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이만큼 내려왔는데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불안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지금 이 나라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딱 그렇다. 바닥인가? 아니면 아직 바닥이 아닌가? 난 바닥이길 소망한다. 그래야 희망을 볼 수 있고, 치고 올라갈 것이 아닌가? 이 책의 강연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것이 아닌가? 

  우리는 희망을 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 우리라는 말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으니 나로 좁혀보자. 절망의 시기에 희망을 말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모든 선거는 필히 참석한다. 솔직하게 난 교육감 선거는 안했다. 아직 아이들이 1살 2살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는데 후회한다. 둘째 뉴스를 끊지 말자. 듣기 힘들고 암울해도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자. 셋째, 책을 읽자. 올해 50권 목표로 읽고 있는데 지금 32권을 읽었다. 마지막까지 책을 읽고 사고를 키우자. 그리고 산성 너머에 숨어 듣든 안듣든 쓴소리를 하자. 넷째 희망 공작소 후원자가 되어야 겠다. 내가 내는 회비가 이 사회에 진정한 서드 섹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좀더 희망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내 아이들에게 근혜이즘과 재오노믹스를 유산으로 물려 줄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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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리뷰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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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한다. 원래 커피를 즐겨마시기도 했지만 전역 후에 바쁘기도 하거니와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차를 마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커피를 더 즐겨 마시게 되었다. 여러가지 브랜드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스타벅스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던 청년 가운데 한 명이 농담처럼 나에게 "된장남"이라고 말은 했지만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하기 때문이다. 몇군데의 커피를 마셔봤지만 피곤한 내 몸에 카페인을 충전하여 잠시나마 피곤함을 잊게 해줄만큼의 진하기는 스타벅스 외에는 없다. 게다가 자사 제품이라면 언제 가져가도,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갈아주는 친절함 때문이다. 적당히 시끄러운 것도 내가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전역 후 꾸준히 1년을 스타벅스를 이용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 물론 일회용 컵들을 모아서 한경 부담금을 받아 오긴 했지만 환경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돈이 아가워서였다. 그러던 작년 10월쯤일 것이다. 일회용 컵을 머그잔으로 바꾼 것이다. 환경 부담금이 사라졌기 때문에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이 될 이유가 없었음에도 머그잔으로 바꾼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기독교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할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을 선택한 것이다. 테이크 아웃이라면 모르지만 마시고 가는 경우라면 머그잔에 담아 마시자는 것이다. 물론 나는 테이크 아웃보다는 마시고 가는 비율이 거의 2배 이상 높기 때문에 꽤 성가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문을 할 때 머그잔에 담아달라고 했다. 꾸준히 6개월 이상을 했더니 이젠 아르바이트생들이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머그잔이 아니냐고?" 내가 깜빡한 날에는 이들 때문에 머그잔을 사용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의 서평을 쓰면서 왠 뜬으없는 스타벅스 이야기냐고? 책을 보는 내내 스타벅스에서 내가 하는 일과 노예제 폐지라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 혹은 비싼 돈을 주고 커피 마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은 사치요, 이해하기 힘든 일이며, 물질만능주의의 전형으로 보이는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아직은 포기할 맘이 없다. 다만 빈도수를 줄이려고 할 뿐이지. 노예제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노예제라는 것도 사실 아무리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나에게 그다지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처지에 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 책을 보면서 깊은 고민을 하는가?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순간 내게 있는 특권을 조금이나마 포기해서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속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유무이다.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습관적으로 일회용 컵을 사용하듯이, 인간이 갖는 존엄과 가치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일회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너가 아니라 그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그것"으로 사유되는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말함이 아니던가? 인간이 일회용으로 취급받는 이유는 그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아닌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사실, 즉 그들은 물건이 아니요, 우리와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절대적인 존엄을 가지는 인간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라 말한다. 이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책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과연 노예제로부터 벗어나 있는가? 이 책에서 노예를 구분하는 세 가지 기준, "강요나 사기를 통해, 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강제 노동에 종사하고"라는 기준을 가지고 우리 나라를 본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느 등급을 받을까? 1등급은 절대 아닐 것이고, 아마 미국관의 관계 때문에 2등급을받지 않을까? 사실 3등급에 가깝지만 말이다. 자본과 물질에 의해서 생명이 위협받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지 않은가? 국가로부터 차별받고, 허울 좋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죽도록 일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그냥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벼에 얼마나 많던가? 오늘은 내가 아니지만 내일은 그 사람이 나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이드로부터 눈을 돌리는 일은 정말 쉽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사람이 된다. 또는 노예제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의식하라. 바꾸라. 어둠의 소리, 절대 약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간은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이 아니다. 쉽게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의식하고 끊임없이 바꾸도록 노력하라. 일회용 컵을 머그잔으로 바꿀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ps. 번역이 깔끔하지 못하다. 직역한 것처럼 내용이 딱딱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들이 너무 많다. 또한 미국 저널리스트가 써서 그런지 미국적인 사고가 가득하다. 이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별점 하나를 덜 주는 것은 순전히 번역상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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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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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한나라당 당사에서 국토 해양부 장관이 4대강 정비사업을 보고하고 있다.
 

   어제 뉴스를 보다가 깜작 놀랐다. 요즘 워낙 시절이 하 수상하고 강아지들이 판치는지라 뉴스를 며칠 끊었다. 그러다가 둘째 녀석 잠을 자지 않는 관계로 뉴스를 보게 되었다. YTN 뉴스를 시청하다가 돌발 영상이 나오길래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이미 한번 없어졌다가 다시 부활한 코너인지라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한나라당의 쇄신안을 논의하는 자리였기에 "얘네가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려나?" 관심을 갖고 보던중 왠 이상한 아저시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 생각하면서 관심을 갖지 않아서 어제 뉴스를 보고 이 양반이 국토 해양부 장관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왠지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것이 "이 형님도 한건 지대로 해 드시겠군."생각하며 썩소를 날리던 중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3조원이 더 추가로 편성된 4대강 정비 사업을 한다고 한나라 당에 보고를 하러 온 것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가 만만치 않은 사안인지라 피가 터지게 머리를 싸매고 토론을 벌여도 시원찮을 판에 정말 간략하게 보고를 하더라. 오죽하면 보고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맙다고 장관이 감사했을까? 당쇄신안을 논의하는 그 자리에서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고 논의하자고 이야기하는 그 중요한 사안을 그렇게 날림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쇄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가야하냐?"를 물어 보면서 보고하는 그 시간에도 딴짓하는 한나라당 의원을 보면서 화가 났다. 도대체 저 양반들이 이런 마음으로 무엇을 쇄신하겠단 말인가? 그리고 왜 대화하겠다고,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안하겠다고 말하던 정부에서 4대강 정비 사업을 3조나 더 추가 편성해서 밀어 붙이고 있는가? 도무지 녹색 뉴딜이란 무엇이며, 그 정책의 골자가 되는 4대강 정비 사업이란 무엇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있던 것도 듣어 내는 판에,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몇 년전에 덮었던 청계천도 뜯어내시던 판에 4대강 정비라는 말은 무슨 넌센스란 말인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4대강 정비사업의 뉴스는 내 마음을 꽉 막아 버렸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토목 건설로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아직도 하는 분들이 청와대와 여의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당장 예산이 없어서 빈곤층 정부 보조그미 줄어드는 마당에, 복지 정책을 실행할 자금마저 줄이고 있는 마당에 저게 무슨 뻘짓이라는 말인가? 역시 건설사 CEO를 역임하셨던 분이라 이리도 삽질에 도통하신 분이었던가?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작년 쇠고기 파동 이후로 얼마나 딸에게 미안했던지. 이제 막 태어난 그 녀석이 무한 경쟁의 시대로 들어가게 만든 것이 마치 나인양 미안했는데. 그래서 침대에서 뒤집기를 하던 어린 녀석의 손을 붙잡고 "아바가 미안해."를 얼마나 외쳤던가? 이번엔 뒤집기도 못하는 둘째에게 딱 1년만에 "아빠가 미안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권을 아마추어 정부라 이야기하던 현 정권의 실세들이 이처럼 아마츄어리즘의 선두주자가 될 줄은 몰랐다. 소통이 없고, 국민은 그저 때리면 맞나보다 생각하고 있는가? 맘에 안들면 빨갱이라 말하면서, 시장 지상주의를 외치지만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는 이분들의 모순과 무책임은 누가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내 자식들은 도대체 무슨 죄로 앞으로 그렇게 큰 재앙을 당해야 한는가? 그저 이 땅에 태어났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간 시기에 태어난 죄밖에 없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얼마나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을 것인가? 

  어릴적 사회를 배우면서 배웠던 시장에 관한 정의가 생각이 난다. "시장은 시장의 원리에 의하여 움직인다. 정부는 야경 국가에 머무르는 것이 최상이다." 작은 정부론이다. 그땐 그것이 최선인줄 알았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학설을 달달 외우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지면서 작은 정부는 사실 무한 경쟁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선진국들은 반대의 방법을 사용하여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또한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철지난 신자유주의를 들고 나와 이것이 정답이라 외치는 정부를 보면서 "돌아이 아니가?" 생각하는 마당에 이건 뭐. 병진도 아니고... 

  시장은, 경제는 오른쪽이 아니라 옳은 쪽으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100% 동의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보수적인 저자로부터 듣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내가 보기에 분명 보수적인 저자가 빨갱이요, 좌파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사회가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도 그래서 하고. 

  정부는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경제는 오른쪽이 아니라 옳은 쪽으로 향해야 하며, 이념이 아니라 합리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안혹 무시된다면 아마 나도 한국을 떠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답답한 마음에 여기에 끄적끄적댄다. 

  "쿠오바디스 도미네"를 외쳤던 베드로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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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를 리뷰해주세요.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억의 백골단(어느 님의 블로그에서 무단으로 퍼옴)
 
  난 97학번이다. 막 신입생이 되었던 나를 선배들이 불러서 소위 말하는 의식화 작업을 했다. 96년도 연세대 한총련 사태를 보면서 "쟤네 왜 저러냐?" 생각하던 나에게 선배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위험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내 마음이 온통 끌렸던 것은 진실이 가지는 힘 때문이었다. 그 두렵고 살떨리는 한양대 앞에서의 한총련 출범식에도 참석했고, 장충동 공원에서의 메이데이 참가 또한 왠만한 결심으론 어려웠던 일이었다. 항상 우리가 가는 곳에는 전경이 있었고 백골단이 있었다. 지금이야 추억의 사진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경보다 더 무서운 백골단들이 있었다. 골목에 숨어 있다가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날렵하게 대열을 치고 들어와 시위하던 이들을 잡아가던 백골단들(지금 체포 전담반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하튼 그들을 만나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어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가투에 참가했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마음에 힘을 주었던 노래가 바로 노찾사의 이 산하에서였다.  

 

   이 산하에(노래를 찾는 사람들)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마루에 흐르던 소리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위에 아침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기나긴 밤이었거든 죽음의 밤이었거든 저 삼월하늘에 출렁이던 피에 물든 깃발이어든
  목메인 그 함성소리 고요히 어둠깊이 잠들고 바람부는 묘지위에 취한 깃발만 나부껴
  나는 노여워 우노라  

  폭정의 폭정의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 한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의 횃불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기나긴 밤이었거든 투쟁의 밤이었거든 북만주 벌판에 울리던 거역의 밤이었거든
  아아 모진 세월 모진 눈보라가 몰아친다해도 붉은 이 산하에 이 한 목숨 묻힌다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아라  

 

  역사에 스러져간 민중들의 삶이 손에 잡히는 듯해서 좋았고, 내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좋았고, 이 나라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좋았다.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요즘들어 다시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세상이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말이다. 빈번한 공권력의 투입과 자기편이 아니면 빨갱이라 부르는 독선. 소통을 거부하며 실체없는 민족과 민중의 이름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위선. 최루탄과 화염병, 그리고 빠이가 없을 따름이지 그 시절과 도대체 다른 것이 없다. 이것들을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피흘렸던가? 이한열, 박종철이 젊은 나이에 산화하였던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제 돐이 지난 딸 아이에게 왠지 미안했다.  이 모든 일이 내 책임인 것 같았고, 내 죄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었다. 뜨거웠던 6월의 기록들. 영호라는 학생의 집에 있었던 일은 그 당시 어느 집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우리 집에서도 발견될 수 있던 이야기였다. 젊음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고, 피흘려 얻은 것이 무엇인가? 참정권이며, 투표권이 아니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 빼앗긴 젊음과 생명들
우리는 그것의 댓가로
소중한 백지 한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차별받던 이는 고른 대접을...
그렇게 각자의 꿈을 꾸었겠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 장이었습니다.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잠시만 한눈을 팔면 누군가가 낙서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말입니다. (171페이지 인용) 

 

  그렇다 우리가 얻은 것은 백지 한장이다.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여기고 놀러 가느라 쳐다보지 않는 백지 한장은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피땀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백지 한장의 소중함과 무게를 기억할 때이다. 거기에 담긴 생명과 희생을 기억할 때이다. 백지 한장이라고 우습게 여긴다면 그 백지 한장을 얻기 위해 스러져간 생명들을 우습게 여김이요, 그 마저도 빼앗겨 버릴 것이다. 

  요즘 사회가 혼란스럽다. 시민으로부터 분리된 광장, 6.10 민주항쟁 기념을 막아서는 경찰, 권력의 시녀 노릇에 충실한 검찰, 조만간 남산 대공분실이 다시 생길지도 모를일이다. 사회는 우로 돌아가고 있으며, 좌우의 대립이 심하다. 색깔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정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다시 5공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땡박 뉴스가 들려 올 것같다. 도무지 백성을 우습게 여긴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사기와 상벽을 이루는 4대강 정비사업, 녹색 뉴딜 사업을 이야기한다. 교수와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시국선언에 대한 안티 시국선언을 한다. 도대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백지 한장의 소중함과 무게를 무시했던 그 순간부터가 아닐까?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우리의 전부인 백지에 누군가 낙서하는 그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의 백지를 지키지 못한 것일까? 이제 백지 한장의 소중함과 무게를 기억하자. 

  1도를 올리면 끓지만 내버려두면 평생 가도 끓지 않는다. 지금은 99도이다. 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라 단 1도일 뿐이다. 우리의 아주 작은 노력이 있으면 된다. 민주주의를 끓게 만드는 마지막 1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백지 한장의 무게와 소중함을 기억함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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