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1337~1453 - 중세의 역사를 바꾼 영국-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이야기
데즈먼드 수어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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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국민학교 시절에 한번쯤은 불렀을 노래다. 언젠가 TV 광고를 보다가 "에이 오바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교과서에 대한 공익 광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당신을 모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유관순 사진이 나왔던 적이 있다. 아무리 국정 교과서를 밀어 붙이려고 해도 저건 오바라고 생각했다. 유관순을 모를 리가 있나? 맞다. 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유관순 누나를 모를리는 없다. 위의 노래와 함께 우리의 머리 속에 각인된 유관순 누나를 모를 수는 없다. 당연하다. 어린 시절 내 머릿 속에 독립 운동하면 김구보다 유관순이 먼저 떠올랐고, 반공하면 이승복이 떠올랐다. 병천 아우내 장터와 서대문 형무소는 우리에게 유관순을 잊을 수 없는 존재로 각인시켜 놓았다. 


그런데 요즘들어 유관순이 논란이 되었다. 유관순의 훈장 서훈의 등급을 높였다는 것인데, 그 논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무리 유관순이 대단하다고 해도 신흥 무관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사재를 턴 이회영이나, 김구, 약산 김원봉과 같은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거기에다가 당시 독립운동을 한 여인이 과연 유관순만 있었겠는가? 그런데 유관순이 이렇게 유명해 진 이유에는 김활란과 모윤숙이 있다. 자신들의 친일을 가리기 위하여 이화 출신의 유관순을 발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관순과 비슷하게 애국의 아이콘으로 발굴된 사람이 있다. 잔 다르크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 전쟁 시 프랑스에게 애국과 승리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사람이 잔 다르크이다. 그녀가 아무리 전략을 짜봐야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그저 기울어 가는 프랑스를 일으키는데 소비되고 버려진 아이콘일 뿐이다. 잔 다르크의 비참한 말로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들의 실책과 부족함을 커버하기 위하여 발굴되었고, 그리고 쓸모가 없어지자 용도 폐기 된 것이 잔 다르크가 아니겠는가?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기를 잡아가는 시기와 잔 다르크의 출현, 그리고 그가 받은 신탁은 그녀로 하여금 프랑스 국민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물론 마스코트로 그녀가 발굴된 것을 가지고 그녀가 가지는 의미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녀가 모든 것을 뒤짚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유관순의 위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태생부터 친일이었던 정권, 그리고 자신의 친일 행각을 가리기 위한 사회회 지도층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유관순은 독립 운동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국정 교과서를 밀어 붙이기 위해 다시 소환 당한 것이며, 이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정권을 깎아 내리기 위하여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녀의 서훈을 높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녀의 서훈을 높이는 것은 그녀보다 더 치열한 독립 운동을 했던 이들의 서훈을 높이는 것과 그들의 공적을 재평가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어린 소녀였다는 이유로 그녀만 원 포인트로 찍어서 서훈을 높이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백년 전쟁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영국과 프랑스가 왜 그렇게 앙숙이었는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이에 대한 내용이야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알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적지 않는다. 물론 읽은지 오래 되어서 그것을 다시 떠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닷도 있다. 리뷰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게으른 탓에 지나왔던 것도 한 몫할 것이다. 그러다가 유관순 논란을 보고 비슷한 잔 다르크를 떠올리게 되었다. 


유관순이 잔 다르크처럼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두서 없이 끄적여 본다. 3.1운동 100년을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친일 청산이 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모 의원을 나베라고 부르는 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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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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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것을 이룬 사람이라고 해도 반드시 종말은 찾아온다. 죽음은 모든 것들을 삼키는 가장 강력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마저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 있으니 후계자를 세워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왕으로 칭송받는 알렉산드로스!


  물론 악렉산드로스보다 더 대단한 정복자들이 있다. 칭기스칸이 정복한 영토는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곳보다 더 넓은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를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그가 서양 문화의 태동지인 그리스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케도니아를 그리스라고 보는 것도 우습지만 여튼 그가 속한 곳이 서양인 것은 분명하니 그가 서양 학자들에 의해서 위대한 정복자라고 인정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정복자로 인정을 받는 것은 그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그 일을 이루었고,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작스럽게 퇴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즉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혼자서 대단한 일을 이루고 퇴장했으니 더 위대해 보이는 일종의 착시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착시 효과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나라는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갈갈이 쪼개지고 갈라져서 쇠퇴하다가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맞게 된다. 그의 삶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위대한 사람이다, 동서양의 문명을 융화시키려던 선각자였다 말을 한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선각자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한 일이 대단하기를 하지만 그는 마지막 방점을 제대로 찍지 못한 안타까운 사람으로 말하고 싶다. 마지막 방점이 무엇인가? 후계자 선정이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루어갈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은 역사상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가 아직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젊은이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변명은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계자를 세우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그의 생각과 야망이 사라져 버렸음은 부인할 수 없다.


  3권을 읽으면서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자 문득 그가 생각났다. 제 2인자를 세우지 않았던 아버지와 딸 말이다.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 견제하다가 결국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러한 그들의 대처가 우리에게는 다행이지만 말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도, 하다 못해 작은 조직을 이끌어 가는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은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이룬 창업자들이라도 후계자 문제로 인하여 가지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멀리 중국에는 유표와 원소가 있었고, 가까이 한국에는 정주영이 있지 않은가? 그 대단하던 현대가 후계자 문제로 소위 말하는 왕자의 난을 겪고 그렇게 쇠퇴하여 아직도 뻘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진보정치 20년을 말한다.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진보 진영에서 20년을 집권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 진영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면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과거에 주장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뭐하나? 후계자 하나 제대로 못세워서 자유한국당은 황교안이 1위로 당대표가 되지 않았던가? 입당한지 4달도 안되어서 당대표가 되는 우스운 정당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다. 지금 진보 진영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반사 이익을 얻는 것이지 준비를 시키고, 혹은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최고의 전략은 후계자를 세우는 것일텐데 북한만도 못한 현실을 보면서 씁쓸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소한 김정은은 김정일의 노선을 제대로 파악하고 수정할 것과 계승할 것을 분명히하면서 트럼프와 밀당을 하고 있는데 그들을 깔보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글로벌 호구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마지막 책을 알렉산드로스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를 후계자로 세웠다는 판단 때문일까, 아니면 로마인 이야기와 같이 황제라는 걸출한 인물을 선망하는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여튼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그동안 수고가 많았음은 우리가 인정하고 감사해야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수 사후의 이야기가 너무 간략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다. 읽은지 오래 되어서 분명하게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혹은 웃으면서, 혹은 과거에 읽었던 책과 비교하면서 읽었던 부분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이라는 책과 비교해서 읽으면 더 자세하게 이 시대를 알 수 있을 것이다.(http://blog.aladin.co.kr/759552125/8233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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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 -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그리스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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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점은 잘못하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황금기를 구가했던 아테네가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이에 대한 실례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대중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위정자들의 행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게을리하게 되었을때, 대중적인 인기를 너무 의식하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옂여준다고 하겠다.


  페리클레스 사후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대중의 인기에 영햡하기 위하여 지도자에게 딴지를 걸던 클레온, 능력은 있으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대중을 선동했던 알키비아데스 모두 결은 다르지만 포퓰리즘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내용이야 다른 사람들이 잘 요약을 했을테니 제쳐 두고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라가 온통 혼란스럽다. 곳곳에서 못살겠다는 말을 한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아마도 인류가 이 땅에 생기고 교환을 한 이후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이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더 시끄러운 이유가 무엇인가? 뚜렷한 목표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국가의 정책에 대한 청사진도 불분명하고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얼마전 있었던 5.18에 대한 망언이라든지, 남자 3호 김준교의 발언이라든지를 보면서 이에 대한 내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그들은 뚜렷한 정책 없이 그저 떠들어 댈 뿐이다. 청년이 살기 어렵다. 누가 모르는가? 그렇지만 그에 대한 답이 없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고 하는데 정책은 실종도되었다. 그저 문재인 대통통령 안티들을 모아놓은 당에서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한다.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라고 하면서 통일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생각이 있는가 싶다.


  그저 누군가의 지지와 인기만 있으면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생명 연장의 꿈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이를 모를리가 없다. 그래도 정치인이라면, 이 바닥에서 굴렀던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생각이 없을리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얻게 되는 분명한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득이 무엇이겠는가? 지지와 인기가 아니겠는가? 과연 이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어야 하는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아무리 대단한 정치 체제라고 해도 완성도가 높은 정치 체제라고 해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 하는 사이에 정말 그지 같은 사람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서글프고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제2의 클레온 제3의 클레온이 등장할 것이고, 알키비아데스같이 무모한 사람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중우 정치와 민주 주의는 정말 한끗차이다. 어떤 사람에게 권력을 맡길 것이가 조금 더 고민하게 되고, 투표도 조금더 신중하게 된다. 황금기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는 지금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 길에서 어떤 선택을 택할지는 우리의 몫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이를 기억하고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혀현명하나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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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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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인 이야기는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작은 고대의 그리스를 있게 만든 1차 페르시아 전쟁과 2차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에 대해서 민주주의, 델로스 동맹, 펠레폰네소스 동맬 정도만 알고 있다. 그들이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아낸 것에만 집중하지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가운데 초반부에 속해 있는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제를 떠 올리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가 역사 책으로 배워 왔던 고대 그리스의 정치 체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가장 먼저 이루어낸 스파르타가 아니라 비교적 후발주자인 아테네가 그리스의 패권국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창업자의 선견지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창업자란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렇지만 창업이라는 것은 일을 시작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그 일이나 시스템을 시대에 맞게 개조하는 것도 창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개조가 거의 개혁 수준의 변화라면 이 또한 창업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바뀌지 않는 스파르타와 시대에 맞춰서 새로운 창업자들이 나타나서 국가 체제를 거의 개혁에 준하는 수준으로 바꾸는 것의 유무가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차이를 만들었다.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테미스토클레스를 거치는 시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1권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각 사람들이 창업자라고 불려도 무방한 사람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선견지명을 가지고 공동체를 마땅히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이끌어간 아테네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축복받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전임자들의 시스템 개조의 덕이다. 법을 종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창업자의 유훈을 절대적인 가치로 만들어 버린 스파르타가 시대의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정치체제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겠기에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느냐 부재하느냐에 대해서 말하면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주장했던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말이 있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는 강박관념이 우리 사회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했다. 삼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고, 한국 사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말은 변화를 외치지지만 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정착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부재했기에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지만 바뀐 것은 없다. 바뀐 것이라곤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열가지 편법이다. 말은 아테네를 지향하지만 행동은 스파르타를 지향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니 변화가 있을리가 없다.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들만 수도없이 발생했을 뿐이다.


  이 사회가 정말로 변화하고 싶다면,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적용시키고 싶다면 변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격리시키고 추방하는 습성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창업은 변화라는 아이러니한 말이 이 시대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말이다. 얼마나 우리 사회가 변화를 향해 나갈지, 그리고 그 변화를 시스템으로 만들어낼 지 두고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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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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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쐐기를 박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쐐기는 나무 못을 의미한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할 때 못이 아니라 나무를 가지고 못을 만들어 박는다. 그러면 나무가 물에 불어도 나무 못이 같이 불기 때문에 풀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쐐기는 바위를 쪼갤 때도 사용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 때 돌을 깨기 위해서 쐐기를 박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물을 뿌려 주면 나무가 물에 불면서 바위를 쪼갰다고 한다. 특별히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계절의 변화가 있는 곳에서는 이러한 방법이 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서 쐐기가 물에 부는 것은 물론 단단하게 얼면서 팽창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힘도 없고 연약한 나무가 단단한 바위를 깨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고, 이러한 방법을 고안한 고대 인류들의 지혜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문명과 바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쐐기이다. 우리는 대항해 시대라는 것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코에이의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대항해 시대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 시기에 대한 낭만과 동경이 크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시기의 문명의 전파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역사의 변동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대항해 시대가 전 지구적인 문명의 변화에 쐐기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유럽에 의한 아메리카의 지배라는 것도 영토적인 개념보다는 항로의 개척, 혹은 거점을 중심으로 한 지배일 뿐이지 영토의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식민지배는 근대에 발생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고 대항해 시대의 영향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대항해 시대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가? 견고한 문명의 벽에 쐐기를 박아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다라는 문명의 벽을 건너서 다른 문명에 유렵의 문명이라는 쐐기를 박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세계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항해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그리고 인류의 모험심으로 인하여, 또한 무엇보다도 금전적인 동력으로 인하여 시작된 움직임은 당시 강고하던 세계 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다방면에서 다루고 있다. 물론 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들을 책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깊이에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던 내용들에 대해서, 그리고 간과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의외의 소득이고 즐거움이다. 은이 중국으로 빨려 들어간 이유에 대해서 환차익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신선한 접근이었고, 고고려 인삼과 북아메리카의 인삼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를 준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쇄국 정책 때문이라면 그것대로,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라면 그 또한 그것대로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매 한가지다. 


  이 책과 더불어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시리즈이다. 1권을 읽고 아직 2권과 3권을 읽지 않았는데 이 책과 더불어 읽는다면 왜 그렇게 유럽에서 신대륙을 찾기에 목을 매었는지를 더 입체적으로 알게 된다. 여튼 저자는 개인적으로 판단하자면 바다덕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과 한 시대를 살면서 그의 책을 지속적으로 접하는 것은 꽤나 유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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