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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어제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루어 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댔다. 이 뉴스를 처음 접하고 들었던 생각은 "설마"였다. 얼마나 첨예한 문제였는데 그렇게 극적으로 타협이 됐다니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었다. 게다가 만장일치라니...

 

  17년만의 노동 개혁이라고 연일 떠들어 대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또 정권 빨아주기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뉴스를 검색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무슨 라임도 아니고. 국방위하면 김광진이 나오듯이 중요한 이슈에는 박근혜가 나온다. 오죽하면 노사정을 치면 박근혜가 연관 검색어로 나오겠는가?

 

  무엇인가 이상하다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노사정 합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이 웃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한국노총 대표, 한국경총 대표, 위원장 등 5인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민노총은 없다. 민노총이 이적단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디에도 민노총은 없다. 또한 야당도 없다. 아무리 야당이 삽질당이라지만 그래도 명생이 제 1야당인데 걍 무시했나 보다. 이렇게 중요한 한쪽 모서리를 배제시키고 해놓은 노사정 합의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쟁점이 되었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법안이 없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를 해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지에 대한 법안은 없다. 그저 현행 법안에서 그런 해고는 법원에서 부당해고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만 말한다. 그렇지만 곳곳에서 부당해고가 넘치는 마당에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임금 피크제 또한 문제다. 그 어디에도 기본 소득을 올리겠다는 말은 없다. 그냥 아버지 월급 깎아서 아들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가정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가정이 제대로 경제 활동을 영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연배가 있으신 분들의 논리는 이것이다. 보리고개를 너희들이 아느냐, 그 어려운 시절도 애국심으로 버텨봤고, 잘 살아보겠다고 버텨왔다, 요즘 것들은 배가 불러서 그런다. 맞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살았다. 그렇지만 그것을 오늘날에도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미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는 생각의 구조와 기준이 다르다. 과거에는 하루 세끼를 먹고 살면 됐지만, 이제는 외식도 해야하고, 자녀들도 교육을 시켜야 한다. 사교육이 문제라고? 그러면 전통처럼 아예 사교육을 막던가? 물론 그 시절에도 돈 많은 사람들은 사교육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버지 월급 깎아서 아들에게 준다? 국민이 원숭이도 아니고, 이 무슨 조삼모사냐?

 

  노사정 위원에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흔한 미생이나, 송곳도 보지 않았나 보다. 노사정 위원회에 참여하신 분들이라면 최소한 이 책 정도는 정독했어야 하지 않을까? 리얼한 노동의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송곳이라는 제목이 의미 심장하다. 낭중지추라고 뛰어난 사람은 주머니 속에 넣어놓아도 삐져 나온단다. 그런데 삐져나오는 것이 뛰어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합리한 상황도 삐져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해도, 조삼모사로 속일지라도 언젠가는 삐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덮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러면서도 정권의 단호한 결의를 찬양하고,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한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기업에 고통 분담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언제가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이 주머니를 삐져 나오면 그것은 주머니를 소유한 사람의 허벅지를 찌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주머니를 더 큰 것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다. 그 순간이 온다면 아마도 송곳을 부러뜨리려고 할 것이다. 주머니로 싸면 싸였던 존재들이 무슨 대단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품고 이번에는 부러 뜨리려고 하겠지? 노동 문제는, 분배 문제는 최소한 사용자의 도덕성에 요구해서는 안된다. 강제성을 띠고 있는 법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민노총에서 반대를 할 것이라면, 가장 먼저 이 책을 노사정 위원회 앞으로 한권씩 보내줬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출판사에서 보내든지. 현실을 알아야 답을 찾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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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9-16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열해서 통치하는 수책이 결실(?)을 맺는 순간입니다. 정말 개같은 시절에,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득세해서 계속 이 모양이군요. 그래서 전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표를 준 사람들 심리가요.

saint236 2015-09-16 10:33   좋아요 0 | URL
그 또한 분열시켜서 통치하는 방법이겠지요. 표를 준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은 통치하는 자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르지요.
 

최근 내 수집품! 한권씩 모으고 있다
명대사가 너무 많다
˝사람이 언제 죽는지 알아?˝
˝나는 해적왕이 될테야˝
˝사랑해줘서 고마워˝
정말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다
원피스엔 철학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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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3-2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군요. 철학까지 담겨 있다니...
울 고1 아들 전권 다있는데 자신의 애장품 1호 랍니다.

saint236 2015-03-25 10:45   좋아요 0 | URL
제 애장품1호는 원래 슬램덩크였는데 제 모친께서 동네 중딩을 주시면서 다 큰놈이 이런거나 본다고...그게 벌써 15년 전 일입니다. 그 날이후로 만화책을 안모았는데...

무스탕 2015-03-2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은 유통기간이 너무 짧아요. 그래서 나왔을때 바로 구입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빨빠지기 쉽상이죠. 그래서 전 완간되면 한꺼번에 몰아 읽더라도 나올때 바로바로 구입해요.
지금 25권까지 구입만 해 놓고 아직 안 읽은 책이 기록이에요. ㅎㅎㅎ

saint236 2015-03-25 10:46   좋아요 0 | URL
그때 그때 안사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담이 있지요! 더군다나 원피스는 거진 30만원이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다니며 비교적 양호한 걸로 모으고 있으나 66권은 껍데기가 없네요. 67권은 껍데기가 없었는데 있는 책을 발견해서 다시 구매했지만요.

cyrus 2015-03-24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방이 조금 넓었으면 만화책도 사모으고 싶어요. 특히 원피스, 명탐정 코난 같은 것들요. 제가 중고샵에 산 유일한 만화책이 요리왕 비룡입니다.

saint236 2015-03-25 10:48   좋아요 0 | URL
전 모으고 싶은 책이, 원피스, H2, 터치, 슬램덩크요. 한국 만화로는 이현세의 남벌을 모으고 있고요, 예전에 소마신화 전기를 모았는데 모친께서 동네 중딩에게 투척하시는 바람에. 레드 아이즈도 재미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4-16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 좋지요. 저는 이제서야 조금씩 사들이고 있습니다. ㅎ

saint236 2015-04-16 15:42   좋아요 0 | URL
가끔은 어설픈 책보다는 만화책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알라딘 서평단에서 받아서 읽고 있는 롤알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가 있는데 별로네요. 책으로 정리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강의안을 출판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억지로 읽다보니 건성건성입니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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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보물섬에 처음 연재된 아기공룡 둘리!

 

  요리보고 조리봐도 음음 알수 없는 둘리 둘리

  빙하타고 내려와 친구를 만났지만

  일억년 전 옛날이 너무나 그리워

  보고픈 엄마 찾아 모두 함께 나가자 아~~

  귀여운 둘리는 초능력 아기공룡

  호이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친구

 

  어린 시절 나는 둘리와 함게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버릇없게 길동이 아저씨를 길동이로 불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이클 잭슨을 꿈꾸던 마이콜, 떼쟁이 희동이, 착하기만한 철수와 영희, 외계인 도우너, 서커스단을 탈출한 또치, 우리들의 주인공 둘리는 달려라 하니와는 또 다른 꿈과 재미를 주었다. 미국에 미키 마우스 패밀리가 있다면, 프랑스에 아스테릭스와 벨기에의 스머프(미국에서 애니메이션화 했지만 원작은 벨기에다), 일본에 아톰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둘리가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씩은 둘리를 그려본 일이 있으리라. 그 둘리가 올해로 30살이 넘었다. 둘리에게 주민등록증과 호적등본이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캐릭터다. 우리에게 유관순은 항상 누나이듯이 둘리는 아기공룡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아기 공룡 둘리가 나이를 먹어 성인 공룡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최규석의 만화는 이런 발칙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추천사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둘리의 원작자 김수정 선생도 생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둘리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건이다.

 

  둘리가 성인이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성공한 사업가? 인정받는 마술사? 만화가 최규석은 이런 장밋빛 꿈이 아니라 좀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둘리의 성인 시절을 그린다. 나이가 들어 직장을 잡은 둘리는 부족한 스펙 때문에 결국은 공장을 전전한다. 어떠한 활동가적 기질도 풍기지 않는 정말 평범한 노동자 인생이다. 그렇게 공장에서 일하던 둘리는 프레스기에 손이 잘리고 초능력도 잃어버린다. 이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일용직 신세가 된다. 도우너는 어떠한가? 그는 사기꾼으로 변신하여 자신을 키워준 길동이에게 사기를 친다. 길동이는 도우너에게 속아서 집마저 날려버린다. 또치는 어떠한가? 나이가 들어 화류계를 전전하면서 폐물이 된다. 동물원 갇혀 있으면서도 웃음을 파는 하류인생이 되었다.(우리가 가끔 잊지만 또치는 암컷이다.) 사춘기를 잘못보낸 희동이는 군대를 다녀와서도 사고만 치고 다닌다. 마이콜은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밤무대의 딴따라로 전락한다. 철수는 희동이의 합의금을 위해서 도우너를 외국인 연구자에게 팔아 넘긴다. 만화에 등장하지 않는 영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애들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마트의 캐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더 끔찍한 것은 이 설정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꿈이 있고,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던 그 캐릭터들도 세월과 성장 앞에서는 꿈을 잃고 소시민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런 그들에게 세상은 너무나 팍팍하다.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어떻게하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라는 철수의 외침은 그래서 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아이에서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라니!

 

  만화를 보면서 내 삶을 반추해본다. 어린시절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에 과학자요, 대통령이요, 장군이요라는 대답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내 삶이 싫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내 친구들은 어떨까? 지금 집에서 자라는 내 아이는 어떻게 성장할까?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8살 진이와 7살 현준이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까? 아기 공룡 둘리의 캐릭터들이 겪는 그 아픈 길을 내 아이들이라고 가지 않으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내 아이들의 미래로 가볼 것도 없다. 지금 20대 청년들이 겪게 될 미래는 무엇일까? 성년의 날을 맞이하여 장미꽃 스무송이와 향수를 받으며 장밋빛 미래를 꿈꿀텐데 그들의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미생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만화가 드라마가 되고, 직장 초년생을 미생이라는 말로 부른다. 교회 사무실에 한 자리가 있는데 복사기를 등지고 앉게 되는 자리다. 그들의 일상을 감시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자리를 배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 자리에 앉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변의 젊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미생 자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자리마저 없어서 주말이 되면 교회 주변을 전전하는 이들이 있다. 아직 그들은 학생이라 자리가 없어도 크게 불편함이 없겠지만 그것이 교회 사무실이 아닌, 직장 사무실이라면 어떨까? 미생 자리마저도 없어서 오늘도 백수라는 딱지를 붙이고, 취준생이라는 말로 자기를 위로하는 이들에게는 어떨까? 취업 준비 기간이 너무 오래 되어서 실업율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젊인이들이라면 어떨까?

 

  스무살이 되었다고 성년은 아니다. 세상에 나와서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될 때 그때 비로소 그들은 성인이 된다. 둘리가 길동이 아저씨의 무덤 앞에 누워 잠시만 쉬다갈께요라고 말할 때, 아기 공룡 둘리는 성인 공룡으로 변한다. 그렇게 성인이 된 둘리는 너무나 힘들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아프다고 한다.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슬픈 성인식을 감내하고 있다. 그들에게 뭐하고 위로를 할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원래 청춘은 아픈거라고,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어느 연예인이 모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렇지 않아도 아픈 청춘인데, 그런 청춘들을 더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왜 당당하게 갑질하는 백화점 모녀에게 반항하지 않았냐는 모 교수의 말을 아픈 성인식을 지나고 있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짧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이지만, 그래서 정말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지만 그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무게는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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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0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학부생 시절 때 읽어보고 싶은 만화였는데 만약에 지금 읽으면 무척 암울한 느낌만 받을까봐 약간은 두렵기도 합니다.

saint236 2015-01-10 11:08   좋아요 0 | URL
암울합니다.T.T
 
검 劍
박흥용 지음 / 포이에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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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흥용!

 

  아마 이 이름 석자 때문에 이 책을 사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과 내 파란 세이버를 통하여 박흥용의 작품을 만난 사람들이라면 십중 팔구는 그리할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포이에마라는 출판사 때문에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박흥용이라는 이름 석자 때문에 몇번을 망설인 끝에 이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앉아서 단숨에 읽어 내렸다. 다만 책을 읽어 내리는 속도를 생각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에서 조선 최고의 칼잡이와 그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아직은 설익은 주인공 칼잡이의 이야기는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그리는 칼잡이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켠이 아렸다. 또한 시대의 모순에 천착하면서 칼잡이의 인생으로 풀어가는 그의 집요한 서술 방식은 혁명의 정당성과 과격성, 실패한 혁명의 씁쓸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다만 아쉽다면 영화화 되면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그 진지함과 집요함이 영화의 단순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삭제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박흥용의 초창기 작품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체가 확연히 살아있기는 하지만 묘사의 디테일이 많이 생략된 점에서 그가 느꼈을 아쉬움이 손에 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여타 그의 작품에서 유지되고 있는 진지함과 성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상과 삶의 문제! 기독교인 박흥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과 삶의 문제, 머릿말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를 빌리자면 작품과 빵의 문제! 이 책은 끊임없이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안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상과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간극을 발견하다보면 어느샌가 그 둘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만나고 하나가 된다. 삶에 대한 진지함은 이상 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삶을 무시한 이상은 이상이 아니라 허상임을 발견하게 만든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욕을 먹고, 교회가 지탄을 받는가? 빵과 작품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 아닌가?

 

  주인공은 묘하게도 아름다움이나 돈을 추구하는 환도를 만들지 않는다. 그는 오직 직검만을 만든다. 찌른다는 검 특유의 속성을 위해서 날카로운 직검을 만들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런 그를 아무도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미쳤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는 그렇게 직검에 미쳐서 살았다. 아버지의 직검을 보면서 끊임없이 직검에 몰두한다. 그에게 사람도, 부도, 명예도 아무 것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이 없어서 힘들고 어렵지만 그는 오직 직검만을 연구하고, 마음에 새기고 손으로 직검만을 만든다. 그런 그가 절름발이 아이를 만나고 그를 위하여 아버지의 직검으로 난생처음 검이 아닌 다른 도구를 만든다. 그가 평생 추구했던 이상과 꿈이 담긴 아버지의 직검이 사라지는 순간 그는 자기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아버지의 직검을 포기하는 순간 그렇게도 찾았던 직검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미쳤다고, 사기꾼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기 영혼에 새겨진, 그리고 평생을 추구했던 직검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 여정에 그를 사로잡던 수많은 갈등과 고민은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는 예수의 말로 끝이 난다. 어찌보면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만의 말이 아니라 평생 직검을 추구했던 주인공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검이라는 그의 만화는 초창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앙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곱씹어 볼수록 난해한다. 한권의 철학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신앙서적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 해석도 가능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담긴 그의 고민은 말장난이 아니라 그의 삶의 근간을 붙잡고 흔드는 고민과 번민의 결정체라고 하겠다.

 

  직검을 추구했던 주인공은 박흥용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며,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번민하는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박흥용! 그는 인생을 칼로 푸는 사람이다.

빵과 만화와 죽음-

작품이냐, 양식이냐!
만화가 중에는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해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직업`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자기 존재를 느끼고 표현하는 작업`으로서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념의 담장을 더욱 높이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땅으로 성역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덮고 당장 양식을 구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기 싫은 그림을 그리는 고통보다는 배고픔의 고통이 더 비참하다는 것을 잠깐의 창작 경험으로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평을 늘어놓으며 원치 않는 작업을 하다 간혹 병이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것에 익숙해져 창작욕구는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어느덧 무덤덤한 생활인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어떤 동료들은 빵과 만화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기도 했고, 또 K 형처럼 삶을 포기하기까지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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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8 박스세트 - 전8권
허영만 지음 / 월드김영사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노마드가 유행이다.

  학문의 노마드, 사상의 노마드....

  심지어는 자게서도 노마드를 강조한다. 어찌보면 우리에게 노마드는 로망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정주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노마드는 꿈에나 그리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칭기스칸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 책들은 대부부느 칭기스칸의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칭기스칸이 어떻게 대제국을 건설했는가, 그가 성공한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그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등등... 칭기스칸에 관한 여러가지 책들이 있지만 선뜻 읽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책도 그런 이유로 읽지 않았다. 하나하나 안되니 이젠 만화도 나오나 싶었다. 게다가 난 허영만씨의 만화는 날아라 슈퍼보드와 망치를 최고로 치는 편인지라 그가 다루는 역사 만화는 더 읽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순전히 이 책이 알라딘 중고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권씩 사모은 책이 이젠 한질이 되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새로운 책을 구할 때마다 또 읽어서인지 이 책을 서너번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에 놀란다. 허영만씨가 이 책을 그리기 위해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자료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자료 수집을 위해서 몽골을 여행했다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이 분이 덕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은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무기라든지, 갑옷이라든지 당시의 복식과 문화에 대해서 꽤나 소상하게 다루고 있다. 심지어는 전통 음식까지도 철저하게 자료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 사극으로 치자면 전통 사극이라고 하겠다. 퓨전 사극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면서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바꾸어 버리는 기존의 사극을 보면서 진저리나던 내게 이 책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이런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번째로 놀라는 점은 칭기스탄의 업적이 아닌 칭기스칸 개인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역사책들, 그리고 걸출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리는 만화나 책들은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하고 그 부분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명량을 들어보자. 명량의 여러가지 정치적인 부분이라든지, 역사적인 맥락은 다 거세해 버리고 걸출한 이순신의 원맨쇼에 집중했던 명량을 보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명량은 그냥 이순신 원맨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편의 재미있는 전쟁 영화일 뿐이다. 이것이 영웅을 그리는 사극의 한계이다. 이러한 관점을 벗어나서 이순신의 고뇌와 정치적인 상황 같은 것들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영화는 산으로 간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전쟁보다는 칭기스칸이라는 개인사에 집중한다. 그가 어떤 고난을 겪었고, 그 가운데에서 어떤 마음을 품었으며, 안도에 대해 느끼는 서운한 감정과 신뢰, 어쩔 수 없이 격돌하게 될 때의 그러한 안타까움이 책의 곳곳에 묻어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전쟁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쟁이 주가 되는 느낌은 많이 약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 칭기스칸이 아닌 개인 칭기스칸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라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몽골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죽는 순간까지 말에서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말과 함께 태어나지는 않지만 말과 함께 자라고, 말과 함께 죽는다고 한다. 약간 과장하면 말 위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과 함께 생활하는 몽골인들을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그 결과 덩치를 자랑하던 유럽의 기사들은 비웃던 몽골 군단에 의해서 박살이 난다. 그렇지만 이 아픈 기억은 로마인들이 한니발에게 배워 보병과 기병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전술을 발전시킨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몽골인에 대한 공포와 충격에 사로잡혀서 몽골인들을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유럽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사가 전쟁을 대변하는 존재로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게 된다. 화약을 사용하는 신무기가 등장하기까지 말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새로운 변화와 도전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직시하고 배우기보다는 공포와 충격에 빠져서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우고 해체하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세월호 사건이 우리를 성찰할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해경을 해체하고, 시간 끌기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윤일병 살인 사건이, 병사들의 자살과 구타 폭행 사건이 우리를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하자 똑같은 행동 패턴을 취하지 않는가? 요즘 농담처럼 군에 입대할 친구들에게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군대 안갈지도 모른다. 문제가 되니 해경도 해체하는데 군대라고 그냥 놔두겠는가? 조만간 군대도 해체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듣는 사람도 농담으로 듣는다. 그렇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변화를 거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 지도층의 태도 앞에 몽골기병과 같은 충격이 또 안오리라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말로만 노마드를 외치지 말자. 몽골 기병과 같은 사건들은 로망이 아닌 현실이다. 그 현실이 우리 눈 앞에 다가왔을 때 외면하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직면하자. 거기에서부터 노마드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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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8-27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마드'라는 말이 주는 '자유로움'이나 '구속받지 않는' 듯한 느낌 때문에 더욱 유행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한동안 자계서나 강사들이 추구하는 꿈에서 '노마드'가 빠지지 않던 것이 기억나네요. 말보다 실행은 훨씬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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