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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ille Nacht! Heilige Nacht! Alles schlä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eilige Paar. Holder Knab im lockigten Haar,
  Schlafe in himmlischer Ruh! Schlafe in himmlischer Ruh!  

  1914년 12월 독일군의 진격이 멈춘 마른 전투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찾아 왔다. 그러나 양측은 아군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채 적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갑자기 독일군 진영에서 "슈틸레 나흐트(고요한 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몇곡의 캐롤이 불려진 후에 양측의 장교들이 나와서 크리스마스에는 휴전을 하기로 했다. 서로 총을 겨누던 그들이 함게 어울려 가족들의 사진을 돌려보기도 하고 함께 축구도 했다. 지식 채널 e로도 널리 알려진 크리스마스의 휴전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슈틸레 나흐트를 부르는 독일군 병사의 테너 목소리는 정말로 환상이다. 그런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에 평화가 깃들것만 같다.

  고지전의 마지막 씬은 비슷하게 시작한다. 12시간 후 휴전 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려는 양측의 지도자들은 휴전에 들떠 있던 이들을 전선으로 몰아 넣는다. 안개가 걷히고 미군의 폭격이 끝난 후에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하려는 국군과 이를 저지하여 애록 고지 점령을 기정 사실화하며 전쟁을 마치고 싶은 인민군 사이에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며 그 누구도 안개가 걷히지 않기를,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정말로 안개와 같이 스러져버릴 희망이다. 그 자욱한 안개를 뚫고 조용한 노래가 흘러 나온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종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을 달려간 내 고행 내 집에는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 쓸어 안고 싶었소 

  인민군에서 먼저 시작된 이 노래는 누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국군의 입에서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너무 애절하여 원곡을 찾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지전에서 불린 노래가 곡의 느낌을 훨씬 잘 살린 것 같다. 아마도 방송에서 불리는 것과 전쟁터에서 불리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인민군과 국군의 입에서 모두 이 노래가 흘러 나오는 순간 곧이라도 이 사람들이 뛰어나가 부둥켜 안고 휴전이 되었는데 이 무슨 또라이 짓이냐며 상황에 저항할 것 같았지만 마른 전투에서 있었던 휴전은 없었다. 노래의 끝과 동시에 뛰어나가기는 하지만, 서로가 부둥켜 안지만 그것은 휴전을 위한 뛰어나감도, 평화의 부둥켜 안음도 아니다. 고지를 점령하고 사수하기 위한 돌격과 저지의 고지전이 시작됨을 알리는 뛰어나감이요, 총알이 떨어겨 빈총으로, 헬멧으로, 돌맹이와 칼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부둥켜 안음이다. 정종과 맥주를, 그리고 담배와 성냥을 교환하고 편지를 부탁하던 이들은 서로의 몸에 총알과 칼을 찔러 넣기 위하여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냉철했던 2초 차태경이 강은표 중위를 보고 놀라 허둥대며 총알을 교환하지 못하고 칼을 뽑아 든 것이나, 차태경의 몸에 칼을 찔러 넣으면서 차마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강은표나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전쟁이 종료되고 그들만의 작은 평화의 장소에 마주 앉은 강은표와 현정윤! 화랑 담배를 빼어든 현정윤에게 강은표는 북한제 성냥으로 불을 붙여준다. 이젠 성냥과 화랑 담배 외에는 그들의 교류와 그간의 정을 보여 주는 증표는 없다. 그렇게 끈끈할 것 같았던 정이지만 한 모금의 담배 연기 속에 사라져 버릴 화랑 담배처럼, 불꽅이 사그라지면 사라져버릴 성냥처럼 그들의 관계는 윗선의 명령과 폭격, 그리고 이유를 모를 전쟁 속에 한 순간에 사그라져 버린다. 강은표가 현정윤에게 묻는다. "일주일 만에 전쟁이 끝난다며. 왜 싸우는지 안다며?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야?" 현정윤이 답한다. "내래 확실히 알고 있었는디, 오래 돼서 까먹었어."  

  6.25 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어떤 이유로 발발했는지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나는 이승만 정부가 북침하였다는 말을 절대로 믿지 않으며, 북한의 남침에 의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믿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냥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6.25 전쟁이 아니라 고지전이다. 휴전을 왜 굳이 12시간 후에 발휘하게 하였는지, 그리고 그 12시간을 전쟁의 상처를 보듬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 하기 위하여 새로운 전투를 벌였는지 묻고 싶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을 전투의 한 복판으로 몰아넣었는지, 전쟁이 너무 오래되어서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에게 왜 또 다른 싸움의 짐을 짊어 주었는지 묻고 싶다.  

  휴전마저도 전쟁으로 몰아 넣은 6.25! 휴전이 되었다고 좋아하던 남과 북의 모든 사람들을 전투로 밀어 넣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모든 이들을 다 죽이고 나서야 휴전 협정이 효력을 발효하였다는 말은 넌센스요,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가 없다.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던 이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총을 겨누도록 강요받았던 전쟁의 결과가 어떤지 뻔하지 않은가? 문서상 휴전 협정은 맺어졌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전쟁터를 헤매고 있다. 전쟁 후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권력을 차지 하기 위해 전쟁터로 밀어 넣고, 긴장감을 조성하던 것이 역대 우리 정부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 결과 휴전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보수와 진보로, 우파와 좌파로, 반공과 친북으로 나뉘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전은 없다. 고지전을 앞둔 우리 사회 속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전선야곡처럼 공허하게 메아리쳐 울리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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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9-2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승룡의 연기는 정말 또 다른 매력이다. 거룩한 계보의 정순탄에서 평양성의 남건을 거쳐 고지전의 현정윤까지 그의 거친 연기는 최민식과는 다른 카리스마이다. 다음에 나온 그의 말쑥한 사진은 그답지 않아서 낯설다.

2011-09-29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09-29 11:15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드립니다. 예비군 훈련이 밀려진 관계로 아직 보내주신 영화 책은 못 읽었습니다. 조만간 예비군 훈련 들어가니 꼭 읽겠노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10월 중에는 아렌트를 시작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도서 대방출 기대하겠습니다.
 

  그와 처음 만났던 2000년이 생각이 난다.

 

  당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시중에 나오는 영화라면 왠만한 것은 다 섭렵했었다. 그래서일가 마블에 대해서 무지했던 나이지만 엑스맨은 기꺼이 보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시리즈 물이라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던 시대였던지라(시리즈 물이라는 것들이 대개 007처럼 한편으로 시나리오가 끝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나리오가 이어지는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엑스맨을 보고 난 다음 외쳤던 감상평은 "이게 뭐야?"였다. 물론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실망을 했고, 두번다시 이런 영화를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 엑스맨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보게 되었고, 엑스맨 3을 끝으로 등장하게 되는 엑스맨 영화들을 보면서 "이건 또 뭐야?"라는 실망을 표현했다. 그러에도 내가 끝까지 모든 엑스맨 시리즈를 섭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휴잭맨 때문이다.

 

  다른 엑스맨에 비하여 폼 안나는 무기! 생각해보라. 자비에르의 염동력, 자비에르를 뛰어넘는 진의힘, 금속을 다루는 매그니토, 변신의 귀재 미스틱, 눈에서 광선이 나가는 사이클롭스, 기후를 조종하는 스톰, 빠르게 움직이는 퀵실버 등등 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주인공 격인 울버린의 능력이라는 것이 고작 발톱을 세우는 정도라니! 다른 캐릭터들은 폼나게 싸울 때 울버린은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녀야 한다. 그나마 그가 가진 능력 중에 가장 탐나는 것은 치유력 정도? 그가 주인공 역할을 할 때 왜 쟤가 주인공이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늙지 않는 울버린을 보면서 이래서 주인공이구나 생각했는데, 로건에서는 그런 울버린도 폭싹 늙었다.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다른 캐릭터를 보면서 휴잭맨이 맞는지 눈을 몇번씩 씻고서 찬찬히 뜯어 보길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영화와는 달리 휴잭맨은 울버린이 아닌 로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도 엑스맨, 혹은 울버린이 아닌 로건이다. 도대체 왜? 영화를 보면서 로건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탄탄하던 그의 육체도, 영원히 빠지지 않을 것 같던 그의 발톱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어쩔 수 없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절룩거리는 그의 다리는 그가 지금가지 살아온 세월의 질곡을 보여주는 것 같고, 치매에 걸린 자비에르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영원히 약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슈퍼 히어로들도 일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돼! 이건 꿈이야."를 외치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울버린이라는 암호명이 아닌 로건이라는 개인의 이름으로 휴잭맨을 지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다. 히어로물, 혹은 통쾌한 액션을 꿈꾸다가,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면서 차세대 엑스맨을 특히 X-23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보면서 마블 영화가 이렇게 눈물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성대로 사는 거야. 이젠 이 계곡에서 더 이상 총성은 울리지 않을거야."라는 영화의 대사를 읊조리는 X-23을 보면서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것까지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대선 특이점이 50대의 이반이라고 했다. 민주화를 겪었던 세대들이 박근혜에게 표를 몰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뭔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월 앞에서 진보도 보수로 변한다는 현실을 보면서 청년들이 많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박근혜 탄핵을 앞두고 어르신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실전을 방불케하는 시위를 하셨다. 왜 그럴까? 아픔가지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발톱이 빠지고, 치유력을 잃어버린 절룩거리는 울버린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우리의 생각 때문이 아닐까? 최대한 초라하지 않게 보이려는 그 현실 도피가 그러한 비극과 답답함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아다만티움 총알을 한개 구해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짐승이 아님을 떠올렸던 울버린, 아니 로건의 지혜가 필요한 것은 2039년 멕시코 국경이 아닌 2017년 대한민국이 아닐까?

 

  어쨌든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가는 휴잭맨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더 아쉽고, 눈물나는 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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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을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을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과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을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지난 여름 써니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아!!! 정말 촌스럽다. 아무리 복고풍을 표방했다지만 거의 태권V 포스터와 맞먹는 포스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이 무슨 “어린이 새농민”스러운 포스란 말인가?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녀석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순간 혹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결국 패스하고 말았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패스를 당한 것이 맞으리라. 이 영화를 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지 못했으니 패스를 당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난 영화를 참 좋아한다. 과거 신용카드 할인 초창기 시절에 하루에 3~4편씩 줄기차게 보면서 시중에 나왔던 영화를 다 섭렵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도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결혼하고도 한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나와 매주 한편씩 영화를 보고 가기도 했다. 군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그것도 코엑스까지 걸어서도 불과 30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둘째가 태어났다. 요 몇 년간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생활 패턴을 맞추었다. 그래도 나는 공적인 일 때문에 영화를 몇 편 보는 일도 있었지만 아내는 지난번 아이들을 데리고 모험하듯이 봤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근 4년 사이에 처음이었다. 솔직하게 DVD를 빌려다 보는 것도 거의 없었고, 빌려도 아이들 것이 우선이었다. 요즘도 둘째 녀석은 토마스와 친구들을 큰 녀석은 태권V를 줄기차게 틀어댄다. 간혹 어둠의 경로로 접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한 번에 앉아서 끝까지 보는 것은 어렵고 짬짬이 조금씩 끊어서 본다. 아내에 비하면 이것도 감지덕지해야할 일이다. 

  이런 삶을 살다보니까 어느새 나와 아내는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아이들이다. 밥을 먹으러 가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주로 외식이 아웃백과 신선설렁탕, 바지락 칼국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을 봐도 아이들 것으로, 외출을 해도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으로! 아이 가진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솔직하게 가끔은 허탈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아마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아내는 더하겠지? 윤동주의 시처럼 무엇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허탈함! 두 아이의 부모로 살면서 아내와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마 세월이 흘러 써니의 주인공들처럼 중년의 나이가 된다면 이러한 허탈함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보다는 서글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해 봤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 마지막으로 향하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먹먹함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았지 나는 없었던 거야” 

  한 사람이 아내로, 엄마로 그저 주어진 역할로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답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정주부들이 써니를 많이 보러 왔다는 말을 듣고 왜 그런가 했더니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아내로, 아이로 올인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자기의 인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뭐하고 싶니?”
“이 나이에 무얼..그냥 사는거지!” 

  꿈 많고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냥 산단다. 여자뿐이랴. 남자도 마찬가지다.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남편의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그러니 돈이라도 못 벌면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겠다 싶어서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이 평균적인 대한민국 기혼 남성들의 삶이 아닌가? 꿈 많던 학창 시절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배 불뚝하게 나온 아저씨로 그냥 산다. 

  이제 멈추어서 한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무얼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이들이지만 장례식장에서 함께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학창시절의 그들 못지 않게 빛났다. 그냥 살던 것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찾는 삶으로 돌아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윤동주 시인의 글귀 한 구절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남는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ps. 마지막 엔딩은 대놓고 작위적이다. 해피엔딩을 끼워넣은 것은 좋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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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마지막이 작위적이어서, 맘이 편했습니다.
요즘 같아선 하두 여유가 없어서 엔딩이 슬프면 더욱 맘이 편하지 않아서
전 감사하던데요.. 그렇게 뻔히 보이는 해피 엔딩이라는 것이.

아이를 키우면 정말 자신만의 시간을 내기 어려워요, 맞아요, 그렇더라구요.
하지만 분명 얻으신 것도 있으실걸요... 남들이 부러워하는걸루 말이죠. ^^

saint236 2011-10-11 15:4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분명 얻은 것이 많지요. 그렇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일텐데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죠. 해피 엔딩이라 옥죄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죠.
 

 

  예전에 다운받아 놓고 이제서야 다 보게 된 영화. 

  영화의 장르를 무엇이라고 해야할까? 가족 영화일까? 아니면 코미디라고할까? 그것도 아니면 정치영화라고 할까? 영화의 장르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한번은 봤으면 좋을 영화이다.  앞으로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테니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봐도 되지만 내용을 알고 봐도 그렇게 손해날 것은 없는 영화이다. 일단 스릴러나 반전을 노리는 영화는 아니니까 말이다.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스윙보트는 선거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윙 보트란 선거의 판세를 확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투표를 의미한다. 이 영화는 조금은 황당한 설정으로 영화를 끌어간다. 미국에서 선거가 벌어진다. 버드(캐빈 코스트너)는 정치와 투표, 국민의 의무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탁 까놓고 이야기해서 사회적으로 볼 대 실패자요  낙오자인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충실하게 일하지 못하고 그 결과 해고를 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버지와는 딸리 딸이 똘똘하다. 장래 희망이 국회 의장일 정도로 똘똘하고 사회적인 이슈에도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있다. 학급 글짓기에서 굴종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민의 의무와 자각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정도로 정치적인 식견을 가진 아이다.  

  어느날 학급에서 부모님에게 투표를 하도록 하고 그 내용과 느낌에 대해서 감상문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게 되고 술취해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 대신 투포를 진행한다.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정전으로 투표가 오류 처리되게 되고 투표가 끝이 난다. 그런데 양쪽의 득표가 백중세인 가운데 뉴멕시코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가름할 수 있는 한표가 버드의 한표임이 밝혀지면서 그의 인생은 많이 바뀐다. 그를 포섭하기 위해 두 대선후보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웃기게도 정당의 당략마저 포기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버드는 자신의 투표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자각하게 되고 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난 대선 때, 총선 때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적은 미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국민의 의무를 쉽게 망각해 버린 우리 자신이 아닐까?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키보드 워리어들이 넘쳐난다. 상식 이하의 비난이 난무한다. 비판이 아닌 비난이 난무하지만 쉽게 이 상황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젊은이들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다. 지자체 선거에 대한 관심은 없다. 국민의 관심보다는 중앙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지자체를 차지할 것인지 음모만 난무한다. 이대로 가면 분명히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4대강 사업은 진행될 것이고, 빈곤층의 아이들은 물로 배를 채울 것이고, 대북 정책은 강경 일변도가 될 것이다.  

  제발 이번 선거에는 키보드 워리어가 아니라 실제로 투표하는 사람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우리 선배들이 피와 생명을 바쳐서 얻어낸 종이 한장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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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규 2012-06-14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윙보트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고,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아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다가 선생님의 글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윙보트라는 영화를 결국은 정치적으로 해석하신 내용과 선생님의 서고에 놓여진 책들(나꼼수,문재인, 공지영--)을 보면서 약간의 정치적인 얘기를 좀 더해보고 싶어서 짧게 글을 씁니다. 저는 이른바 우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좌파에 속해 있는 성향의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이 나라가 올곧은 도덕과 이념이 존중받고,세계 속에서 결코 무시받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파가 볼 때는 좌파에 가까운, 어느 정도는 진보적인 그런 성향
의 사람이라고 굳이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에서 촛불도 들었고,진보 성향의 사람들에게 한 표도 기꺼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행동에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꼼수의 끊임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헐뜯기 방송과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언행에도 서글픈 마음이 들고 있구요. 노무현 정부가 들어 섰을 때 그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참모들이 제일 먼저 한 얘기는 "우리는 다르다!"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6개월도 안 되어 줄줄이 뇌물 수수 등으로 형사처벌 되는 모습을 봐야만 했습니다. 자기의 낡은 이념을 이제는 버릴 수도 없는 몸의 딱지처럼 붙이고 앉아 세속의 욕심 앞에 더럽혀져 가는 진보 좌파 인사들의 모습에 우울해져 가고 있습니다. 기존 새누리당의 이른바 기득권층의 부정 부패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물이 흐릅니다. 반미를 외치는 박지원,한명숙,박영선,정동영 등도 뒤로는 자식들을 미국에 보내어 미국 시민 내지는 미국에 거점을 둔 양다리걸치기시민으로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놀라게 됩니다. 철저한 반미에 철저한 좌익을 자처했던 전 KBS사장 정연주씨는 네 명의 자식이 다 미국 시민이더군요. 그럴 것 같으면 반미를 외치지 말았어여 합니다. 반미까지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 내지는 입신을 위한 세속적 도구로 사용을 하고 있는 이런 인사들의 모습에 참담해집니다.
제가 이런 얘기들을 길게 한 건 다름이 아닙니다. 표리가 부동한 행태는 진보나 우익이나 다 마찬가지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른바 강남 좌파라는 사람들(저도 어쩌면 그 중에 한 명이었을 지 모릅니다), 이들의 무조건적인 반정부 성향과 무조건적인 나꼼수식의 선동 정치 성향이 이제는 너무나 우려스럽습니다. 이게 정말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같은 지식인 층에서 이제는 명확한 판단의 잣대를 꺼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앞뒤없이 그냥 써갈긴 글, 죄송합니다. 최근 나꼼수의 천박함과 진보인사들의 표리 부동함, 그리고 공지영 같은 작가의 노골적인 반감드러내기 행태 등에 너무나 상처를 많이 받은 후였는데, 마침 선생님의 서고에서 그 책들을 발견을 했기에 짧게 써보았습니다. 최소한 이 나라가 이렇게 천박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갑작스런 댓글에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saint236 2012-06-14 19:21   좋아요 0 | URL
일단 저는 무슨 판단의 잣대를 제공할 수 있는 지식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밟혀둡니다. 저도 찬규님과 같은 그냥 일반 국민입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날 아직 돌도 안된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아빠가 미안해"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 저를 아내는 어이없어하면서 쳐다보더군요. 아마 그때부터일 것입니다. 채 5년이 되지 않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해 보고 싶어서 이런 책 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수 인사들의 꼴통짓에 속도 상하고, 진보라는 사람들의 삽질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아직 한국에서 정치적인 선택이라는 것은 최선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택하는 것이구나입니다. 물론 지금도 차악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분명히 그런 모습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인가부터 나라가 편가르기에 열중합니다. 정책을 이야기하고 정치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내편 니편을 가릅니다. 그리고 상대방편은 타협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멸족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통과 대화도 같은 진영 안에서나 가능한 MB산성식의 사이비 소통이 전부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더욱 선동정치와 흑색 정치가 판을 치는 것이겠죠?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나꼼수, 공지영, 기타 진보적인 인사들의 천박한 발언은 그냥 저잣거리의 해학이라고 이해하시면 안될까요? 그런 세상도 있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런 해학이나 비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여유없고 속좁은 권력자들을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사람을 그렇게 자꾸 천박하게 느끼도록 몰아가는 권력자들의 모습에 서글픔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강남 좌파, 리버럴 좌파, 샴페인 좌파, 캐딜락 좌파! 이런 것에 너무 실망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결국은 정치인입니다. 정권 획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 정치인이라는 말이죠. 통진당의 당권파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최선을 택할 수 있는 지혜를, 그것이 어렵다면 차악을 선택하는 영악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실망하고, 짜증난다고 포기하는 것이 가장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요? 님의 고민이 남의 고민이 아니라 저의 고민이고 이 땅을 사는 일반인들의 고민입니다.

참고로 저는 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을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유 시장 주의자이지 진보주의자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쳐줘야 중도 우파정도? 물론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 보면 좌파겠지만 말입니다.
 


  "좀 더 정직하게 출 수 없어?" 

  "그런데 이런다고 누가 봐주기나 하니?" 

  "우리 쓸데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요시카와 미우도 여기서 부터 시작했어."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길 꿈꾸며 춤을 추는 이들에게 팀의 리더인 요시카, 오직 춤뿐인 미우, 전직 호스테스 출신인 토모에, 솔로를 꿈꾸지만 실력이 부족한 아이코라는 멤버의 백댄서즈는 꿈이요, 희망이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백댄서로 시작해서 정직하게 춤을 추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주인공으로 올라선 입지전적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성이 있으니 선택은 알아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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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판 영화 허니와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소재, 비슷한 포맷, 마지막에 백댄서들이 떼거지로 나와 합동 공연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허니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마지막의 해피엔딩은 더더욱 그렇다. 어찌보면 허니의 복사판 같은 모습이지만, 일본 영화만이 가지는 아기자기한 맛을 나름대로 가지고 잇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과연 정직하게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는 날이 올까? 영화에서는 예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정직하게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니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고보니 과거를 정직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던 순수한 모습으로 표백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 비뚤어진 시각일까?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던져 본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영화에서조차 비관적인다. "더 이상 춤이 먹히지 않는 시대, 더 이상 춤으로 성공할 수는 없는 시대." 라고 주인공의 매니저조차 말한다. 아니 주인공들도 말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춤은 딴따라들이 하는 것, 노는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 속에서 순수하게 춤만 고집한다는 것이 얼마나 배고픈 일인지 영화에서조차 말하고 있으니 현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간단하지 않다. 아니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그렇지만 그 메시지가 던져주는 힘은 가볍지가 않다. 돈만 벌면 된다, 안정적인 직장이 좋다, 꿈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다라고 외치는 물질만능주의, 이것을 위해 모든 것을 올인하는 학벌주의, 성공 지상주의의 세상 가운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백댄서즈 같은 바보들이 하나쯤은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기 않겠는가? 그리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바보들 때문에 세상은 발전하고 살만해 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는 주인공이 될 날을 꿈꾸면서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이 시대의 백댄서즈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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