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을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을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과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을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지난 여름 써니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아!!! 정말 촌스럽다. 아무리 복고풍을 표방했다지만 거의 태권V 포스터와 맞먹는 포스는 솔직히 부담스럽다. 이 무슨 “어린이 새농민”스러운 포스란 말인가?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온 녀석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것이다. 순간 혹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결국 패스하고 말았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패스를 당한 것이 맞으리라. 이 영화를 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지 못했으니 패스를 당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난 영화를 참 좋아한다. 과거 신용카드 할인 초창기 시절에 하루에 3~4편씩 줄기차게 보면서 시중에 나왔던 영화를 다 섭렵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도 영화를 좋아하는지라 결혼하고도 한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나와 매주 한편씩 영화를 보고 가기도 했다. 군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그것도 코엑스까지 걸어서도 불과 30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둘째가 태어났다. 요 몇 년간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생활 패턴을 맞추었다. 그래도 나는 공적인 일 때문에 영화를 몇 편 보는 일도 있었지만 아내는 지난번 아이들을 데리고 모험하듯이 봤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근 4년 사이에 처음이었다. 솔직하게 DVD를 빌려다 보는 것도 거의 없었고, 빌려도 아이들 것이 우선이었다. 요즘도 둘째 녀석은 토마스와 친구들을 큰 녀석은 태권V를 줄기차게 틀어댄다. 간혹 어둠의 경로로 접한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한 번에 앉아서 끝까지 보는 것은 어렵고 짬짬이 조금씩 끊어서 본다. 아내에 비하면 이것도 감지덕지해야할 일이다.
이런 삶을 살다보니까 어느새 나와 아내는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아이들이다. 밥을 먹으러 가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이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주로 외식이 아웃백과 신선설렁탕, 바지락 칼국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을 봐도 아이들 것으로, 외출을 해도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으로! 아이 가진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솔직하게 가끔은 허탈하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아마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아내는 더하겠지? 윤동주의 시처럼 무엇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허탈함! 두 아이의 부모로 살면서 아내와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마 세월이 흘러 써니의 주인공들처럼 중년의 나이가 된다면 이러한 허탈함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보다는 서글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참을 생각해 봤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 마지막으로 향하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그렇지만 잃어버린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먹먹함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았지 나는 없었던 거야”
한 사람이 아내로, 엄마로 그저 주어진 역할로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답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정주부들이 써니를 많이 보러 왔다는 말을 듣고 왜 그런가 했더니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아내로, 아이로 올인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 속에서 자기의 인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뭐하고 싶니?”
“이 나이에 무얼..그냥 사는거지!”
꿈 많고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냥 산단다. 여자뿐이랴. 남자도 마찬가지다.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남편의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는 없다. 그러니 돈이라도 못 벌면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겠다 싶어서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이 평균적인 대한민국 기혼 남성들의 삶이 아닌가? 꿈 많던 학창 시절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배 불뚝하게 나온 아저씨로 그냥 산다.
이제 멈추어서 한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무얼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무엇인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이들이지만 장례식장에서 함께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학창시절의 그들 못지 않게 빛났다. 그냥 살던 것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찾는 삶으로 돌아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윤동주 시인의 글귀 한 구절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남는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ps. 마지막 엔딩은 대놓고 작위적이다. 해피엔딩을 끼워넣은 것은 좋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