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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음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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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하나

 

  어떤 외국인이 한강에 줄지어 있는 아파트를 보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왜 저렇게 멋없이 짓나요? 혹시 저것들은 전쟁 시에 차폐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짓는 것인가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한강변을 달리면서 이 말을 떠올려 본다. 너무나 비슷하게, 아니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한국의 건축문화가 무엇인가 생각을 해본다.

 

  생각 둘

 

  제대를 하고 잠실에서 5년을 살았다. 도로는 넓게 뚫려 있고,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역시 강남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강북에 있는 고궁들, 한옥들이 그립다. 과거 수업을 째고 많이 돌아다녔던 경복궁도 절실하게 그리워진다.

 

  생각 셋

 

  어느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도대체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왜 관광을 오는지 모르겠다. 일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유럽처럼 전원적이지도 않는데 무엇을 보러 오는지...

 

  한국의 건축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한국에는 건축 문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한국에는 건축 문화가 없는 것일까? 강북에 위치한 고궁을 둘러보면 각 궁마다 풍기는 느낌이 약간씩 다르다. 창경궁과 창덕궁이 조용한 전원의 풍경이라면 경복궁은 한껏 단장한 여인의 모습이랄까?

 

  책을 보고 있던 어느날 8살 난 딸과 7살 난 아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아빠 어느 것이 중국 건축물이고, 어느 것이 한국 건축물이며, 어느 것이 일본 것이예요? 일본 것이야 금방 알아챘지만 중국 것과 한국 것은 약간 헷갈렸다. 같은 동아시아의 건축물들이라도 일본 것은 왜 금방 눈에 띄고, 중국 것과 한국 것은 헷갈리는 것일까? 건물 전체가 아니라 지붕만 보고 답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곳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 책의 저자가 한 말과 일맥 상통하는 것인데, 일본은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섬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고유한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한국과 중국은 일본보다는 교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어떤 사람들은 한국의 건축물은 중국의 건축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를 건축문화가 얼마나 왕성하게 교류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건축도 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주고 받는다. 다만 중화 사상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의 건축 문화는 중국의 건축 문화를 많이 답습하는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한국 건축물의 배치를 보면 중국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평지에 건축하는 중국으로서는 단을 높이는 것은 가급적이면 자제하지만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에서는 일부러 단을 높여서라도 건물의 배치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렸을 적 한옥들이 대체로 높낮이가 달랐던 기억이 난다. 대청 마루가 있던 그곳은 다른 건물에 비해서 약간 높았고, 소를 키우던 외양간은 다른 건물에 비해서 약간 낮았다. 물론 그 옆에 비슷한 높이의 행랑채가 있었고.

 

  중국과 한국, 일본의 건축 문화에 대해서는 이 책을 자세하게 보면 알 것이고,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리고 한국의 건축 문화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던 것은 장인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던 한국의 꽉막힌 유교 정신 때문이 아닐까? 실용적인 학문들을 무시하고 자구와 이론에만 매달려 씨름했던 한심함들이 오늘날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요즘처럼 너무 실용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는 있다. 가장 실용적인 배치는, 건물을 쓰기에 가장 좋은 구조는 사각형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건축물들이 등장하기를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 건축문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들이 사라져가고 투자로 생각하는 요즘 시대에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건출물, 건축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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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씨네샹떼 -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 두 개의 시선, 또 하나의 미래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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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서평단의 어느 분께서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쓰셨다. 난 이 제목을 살짝 비틀어서 영화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고 적어 본다. 내가 그 분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가끔 책을 읽을 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생각을 한다. 다른 서평단 분들은 이 책에 대해서 좋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솔직하게 내게는 별로였다. 일단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책이라든지, 혹은 대담형식의 강의를 책으로 옮겨놓은 것이라든지 하는 형식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난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철학적 책읽기와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에 대해서는 꽤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팟캐스트를 통하여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상당히 불편하게 느꼈었다. 김어준하고 친해서일까? 그의 말투와 화법은 지극히 마초적이며,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이 책이 재미가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고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걸작선 25가지 중 내가 본 것은 채 5편이 되지 않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떠들어댄다고 해도 내가 몰입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다 좋다고 말하는 책에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영화는 확실히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봤다면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토론을 한다면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지도 않은 영화를, 그것도 자기들이 잘 났다고 온갖 현학적인 말들로 기록하고 있는 책을 보고 있으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담컨대 난 이 책을 앞으로 펴보지 않을 것이다. 설령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봤을지라도 말이다.

 

  영화에 대해서 플롯을 이야기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남들에게 무엇인가 나의 유식함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재미있게 보고, 돈이 아깝지 않다, 혹은 이 영화는 잘못 택한 것 같아 정말 돈이 아까워 이 정도의 평가만 내린다고 할지라도 영화를 즐기는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

 

  굳이 재미도 없는 고전 영화를 걸작이라고 굳해서 보고 싶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잘났다고 떠드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고, 이 서평을 마무리한 후에 신나는 코미디 영화나 봐야겠다.

 

  영화를 읽으려고 하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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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2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서평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를 읽게’ 됩니다. 한 번 본 장면을 다시 봐야 영화 내용이나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서평을 작성할 때가 제일 어렵습니다.

saint236 2015-06-29 22:38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고 좋아서 감상을 적어야 하는데 감상을 적기 위해 영화를 보니 재미보다는 부담감만 남지요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김진희 감수 / 윌컴퍼니(WILLCOMPANY)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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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관련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번씩 해본다. 과연 이런 방법 말고는 없는 것일까? 커다란 그림 몇장이 나오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형식의 책은 꽤나 좋은 구성이겠지만 나처럼 그림보다는 그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구성이다. 그림 몇장 넘겨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기 때문이다.

 

  미술책의 한계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찌되었던 이 책이 주인을 잘못 찾은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이 책이 보고 싶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이 책은 그렇게 유의미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대가들의 그름을 베끼면서 표현방법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 위대한 화가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고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위대한 작가들의 작푸믈 베껴쓰거나 모방하면서부터 글쓰기 연습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은 그렇게 서로 닮은 그림을 모아 놓았다. 그 사람이 분명 이 그림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음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사기에서 복사해낸 듯이 똑같은 그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그림이다. 자기 그림의 원본이 되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자기 나름대로 비틀어 본다. 그들의 비틈은 꽤나 유쾌하기도 하고,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때론 난해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그림을 베낀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방과 창조의 바람직한 관계가 아닐까? 이 책을 보면서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특허권에 관한 내용들이다. 특히 몇 년전에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과회사와 세별의 싸움 말이다.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이다. 서로 닮아 있고, 아식플은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소프트 웨어야 워낙 차이가 나지만 그들이 다투는 것은 소프트 웨어보다는 하드 웨어니 가운데 버튼이 동그라미냐 네모냐, 그리고 버튼이 하나냐 세개냐 뭐 이런 차이가 있지만 멀리서 보면 같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미친듯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쪼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의 작가들이 한 시대를 살았다면, 이 시대에 다빈치와 뒤샹, 앤디 워홀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서로 특허권을 주장하면서 법정 다툼까지 갔을까? 법정다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특허권보다는 자기 그림을 모독했다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까?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어쩌면 원작자들이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야 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이 책을 표현하자면 "림은 좋지만 텍스트는 부족하다. 그래서 주인을 잘못 찾은 책 같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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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5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의 서평을 읽고나니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보고 싶군요. 저도 그림만 배치하고 부연 설명이 적은 미술책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 미술사학자 고종희와 함께 이상의 도서관 26
고종희 지음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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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왠지 칙칙하고 안개가 자욱한 것 같아서 싫다.

 

  프랑스?

  글쎄? 음식과 와인 빼고 무엇이 있을까? 베르사이유? 에펠탑? 화려하긴 하지만 왠지 실속이 없을 것 같다. 화려하긴 하지만 아기자기한 맛, 세월의 저력을과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없는 한국의 강남같은 분위기랄까?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 드라큘라의 본 고장 루마니아? 부다페스트 헝가리? 이스탄불의 터키?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의 로마?

 

  모두 가보고 싶은 나라들이지만 서민으로 그것도 많이 쳐줘서 서민이지 중산층 이하인 내가 모두 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 동안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여행도 싫으니 딱 한 곳만 선택해서 가라면 어디를 가면 좋을까?

 

  이탈리아!

 

  파스타! 세리아A! 마피아의 조국! 로마 교황청! 아말피,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곤돌라를 타고 산타루치아를 불러보고도 싶지만 내가 이탈리아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곳곳에 남아 있는 미술품들과 건축물, 조형물들이다. 오랜 옛날 로마 제국에 의해서 건설된 도로들, 수도들, 콜로세움, 목욕탕 같은 건축물들을, 지금까지 책으로만 봤던 것들을 실제로 눈으로 살펴보고 만져 보고 싶다. 또한 곳곳에 남아 있는 미술품들을 입시를 위해 인상파니, 무슨 파니 머릿 속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뜯어 보고 싶다. 물론 그때까지 책을 통해서 참을 수밖에 없을테지만 말이다.

 

  이탈리아에 대한 책을 보내달라고 하는 녀석에게 보낼 선물을 고르던 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이탈리아, 고도, 미술품! 나의 흥미를 팍팍 자극하는 세가지 단어가 모두 들어간 책이다. 게다가 한길사에서 펴낸 책이다. 아내에게 선물할 책을 산다는 말을 하면서 슬쩍 끼워서 한권을 더 구입했다. 책이 도착하자 마자 읽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솔직하게 글의 맛은 덜하다. 진짜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책은 읽다가 도저히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답게,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답게 이탈리아의 미술에 대해서, 미술 여행에 대해서 중요한 팁들을 제공해 준다. 어느 미술관은 몇 명까지만 관람을 허용하니 미리 신청하고 가라는 등, 어느 도시에는 어떤 콜렉션이 유명하다는 등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 제공되어 있다. 그것도 글로만 적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까지 곁들여서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다. 혹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오는 도시들 중에 몇 군데를 선택해서 미술 여행을 해보는 것도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다가 나와 내 아내의 눈이 멈춘 것은 피에타 상이다. 미켈란제로가 23살에 조각한 바티칸의 피에타 상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미켈란제로를 왜 조각의 천재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아내와 난 피에타 상을 바라보면서 주름까지 세세하게 조각하고 다듬은 리엄함과 디테일, 그리고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매일 이런 조각과 미술품들을 접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택을 읽다가 또 다른 피에타 상을 발견했다. 미켈란제로가 만든 피에타 상이라고 해서 이건 뭔가 싶어서 살펴보니 미켈란제로는 평생에 피에타 상을 3개 만들었다는 것이고, 내가 본 피에타 상은 론디니움의 피에타로 미완성 조각이라는 것이다. 바티칸의 피에타가 완벽한 균형과 디테일로 충격을 주었다면 론디니움의 피에타는 대략적인 윤곽만 잡혀 있지만 투박함과 여거친 질감 속에서 예수의 고난과 성모 마리아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실제로 가 볼수는 없으니 꿈틀거리는 간절함을 달래기 위해 다시 한번 책을 찬찬히 훑어봐야겠다.

 

 

 

   좌측이 바티칸의 피에타이고 우측이 론디니니의 피에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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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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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혀간다가 요즘 유행이다.

 

  "BBK를 말하는 자 잡혀간다."(정봉주)

  "데모 하는 자 잡혀간다."(유모차 부대)

  "촛불을 드는 자 잡혀간다."(촛불 시위자들)

  "농담하는 자 잡혀간다."(박정근, 시사IN 기사 제목)

  "꿈꾸는 자 잡혀간다."(송경동)

 

  이 외에도 잡혀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바야흐로 자기 검열의 시대이다.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다. 그냥 소설을 써 보는 것이다."라는 꼼수로 자기 검열을 피해가지 않으면 잡혀가는 시대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집권자들이 통 크게 놀지 못한다. 통큰 것은 롯데마트에서 파는 피자 뿐이다. 그나마 통크게 놀던 치킨도 잡혀갔다.

 

  "송경동"

 

  낯선 이름이다. 솔직하게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저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지 않게 시를 쓰고, 글을 쓰는 독특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안다. 그 판에서야 유명한 사람인지 몰라도 나에겐 아주 생소한 사람이다. 그저 이 책을 통해서만 접했을 뿐이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절망이 선뜻 책에 손을 대지 않게 만든다. 그러다가 존경하던 선생님(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특별히 존경하는 교수님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대한 글을 보았다.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하시던 그 분의 글 때문에 책을 펴고 읽었다.

 

  역시 제목 답게 답답하다. 절망스럽다. 사무실에서 보다가 꺽꺽 숨직이며 울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남몰래 눈을 깜박였다. 뻔히 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꿈을 꾸는 저자가 불쌍해서 울었고, 그 정도의 꿈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회가 답답해서 울었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포기 하지 못하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저자가 불쌍해서 다시 울었고,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생각 나서 또 한번 울었다. 이 글을 보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무엇이라 할까 겁이 나서 자기 검열을 떠올리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서 마지막으로 울었다.

 

  그게 가능할 거냐고? 이건 단지 꿈일까? 그렇다라도 좋다. 진정한 문화 예술은 아직 오지 않은 꿈을 꾸는 일이니까. 퇴락한 시대를 핑계로 사람들은 가능치 않을 거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하며,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우며, 자유로운 세계를 향해 오늘도 고단한 영혼의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일이니까. 가난하고 핍박받더라도 영혼을 팔지 않는 일이니까.

  모두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자. 꿈은 꾸는 순간 절반은 이루어지니까.(p 138)

 

  왜 난 송경동씨처럼 꿈을 꾸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느새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하고 있는 내 모습이 비겁해 보인다. "꿈은 꾸는 순간 절반은 이루어지니까"라는 말이 눈에 아프게 들어와 박힌다.

 

  문득 언젠가 위에 언급한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났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은 글로 볼 것이 아니라 직접 들어야 한다. 시간이 되면 인터넷에서 찾아서 들어봐라." 책을 덮고 연설을 찾아서 들었다. "I have a dream"이라는 유명한 연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주 부드럽고 아련한 목소리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 것이라 상상했지만 실제 연설은 정반대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하는 내내 그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같이 섞여서 나온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옳소"하고 선동하는 것처럼, 감격하는 사람, 동의 하는 사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목소리도 부드럽지도, 그리고 아련하지도 않다. 힘이 있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처럼 열변을 토한다. 아마 조현오 총장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특유의 목소리로 "물대포 쏴"하고 외쳤을 지도 모르겠다. 메이저 언론에서는 "빨갱이 목사, 선동가, 폭력 시위 유발자"라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달면서 사회면 톱으로 다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열정적이다.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격정적이다. 전율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옆에서 헤드셋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데모하는 영상을 듣냐고 물어본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듣고, 생각 난 김에 인터넷에서 송경동씨의 추모시 낭독 영상을 찾아본다. 용산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면서 쓴 시를 낭독하는데 차마 마지막까지 듣지 못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다. 피를 토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나는 네번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는 시인의 절규가 새파랗게 날 선 칼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힌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렇고 송경동 시인도 그렇고 아직 꿈을 포기 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렇게나 열정적인가 보다.

 

  이제 나도 조금 더 꿈을 꿔보기로 한다. 희망 고문? 좋다. 고문을 고문이라고 느끼는 것도, 아픔을 느끼는 것도, 절망감을 느끼는 것도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직 내가 세상과 야합하지 않은 증거가 아니겠는가?

 

  밤새워 노래와 춤과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농담과 해학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환대와 우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힘이 될 거냐고?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사람이고자 하는 마음만큼 강한 것은 없다. 역사 이래 그 어떤 총칼과 억압과 배제도 '사람의 말들', '사람의 절규들', '사람이고자 하는 희망의 몸부림들'을 막지 못했다.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때론 외롭고 힘들더라도 그 길에 '사람'이 있다면 어디서든 빛이 비칠 것이다. --- (중략) ---  이 견딜 수 없는 절망들에 휩싸여 있는 게 너무나 힘들었던가 보다. 그 강인하던 눈에 눈물이 흐르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감고 있었다. 말은 안해도 얼마나 많은 절망과 패배가 쌓였으면 저럴까. 속으로 복받치는 분노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절망을 넘어보자고, 가장 아래에서 고통받으며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희망버스를 만들게 되었다. 거기 수많은 마음들을 얹어주신 분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p 242 - 243)

 

  좌우 우를 나누고,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고, 네 편과 내 편을 갈라 파편화시키고 점령하는 이 시대에 사람이고자 하는 꿈을 꿔보련다. 대동하고, 화합하는 꿈을 꿔본다. 설령 희망 고문이 될지라도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다면 그 또한 고문보다는 희망에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 송경동 시인처럼, 마틴 루터킹 목사처럼 "I have a Dream still"이다.

 

ps. 다행히 이 책을 다 읽었을 때(2월 9일) 송경동 시인이 보석이지만 풀려났다.

      오타- 185p 밑에서 세번째 줄 퍼세트->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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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2-1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의 페이지에 마침 이런 말이 나오네요.
'인생의 비극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달성할 목표가 없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지만, 달성할 목표가 없는 것은 치욕이라는 말인데, 역사 속의 위인이 한 말이 아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영 선수가 한 말이라더라고요. 요는... 꿈이 있다는 게, 멋져요. 남은 인생을 던져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말 같아서.

saint236 2012-02-16 00:03   좋아요 0 | URL
꿈을 찾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시대라는 김예슬씨의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습니다. 무슨 책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책은 널리 알려 사람을 이롭게 하셔야지요...

차트랑 2012-02-15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경동님의 시가 많은 분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나봅니다.
이러다가는 결국 읽고 말게되지요~

saint236 2012-02-15 23:51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 결국 시란 마음에 와닿는 것이 오래 남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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