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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사람의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로마판 용비어천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래 리뷰를 쓰신 분이 "오비디우스식 용비어천가"라고 제목을 달아 놓으셨다. 용비어천가 이보다 더 이 책의 의도를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성서와 함께 오래 읽히는 책, 세계의 창조에 관한 책 등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지만, 본질은 오비디우스가 자기의 처지를 개선해볼 요량으로 당시의 절대 권력자인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치는 책이다. 1편이 아닌 2편에 들어오면 그러한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그리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외부활동이 많이 위축되고 있다. 그래서 무엇인가 건설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그냥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에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전집을 독파하는 것이다. 독파라는 말에서 알듯이 특별히 선호하는 책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먹어 치우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세계문학전집 1권에서부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변신 이야기이다.
하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제목이고, 내용도 익히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읽어본 적이 없던 책이다. 그런 의메에서 보자면 분명히 고전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실제로는 읽어본 사람이 드문 것이 고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1편을 펴서 읽어가면서 약간의 문화 충격을 느꼈다. 신들의 이름이 로마식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약간의 버퍼링이 나기 때문이다. 주신들의 이름이야 잘 알고 있지만, 주신 이외의 신들에 대해서는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물론 전혀 다른 이름은 아니고, 그 의미를 보면 충분히 어떤 신을 의미하는지 알지만 그리스 신화를 읽을 때처럼 탁 튀어나오지 않는 것이 약간은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1편은 신들의 전성시대에서, 인간들의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인간들의 영웅에 관한 서사시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신화를 본다고 이해하면 된다. 오비디우스의 의도가 티나게 묻어 있는 것은 2권에서부터이다. 2권은 헬라클레스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주된 내용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아이네이라고 끝난다. 오비디우스는 오디세이아보다는 일리아드를 더 핵심적인 소재로 사용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오비디우스의 사심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로마의 기원을 트로이의 멸망에서부터 찾고 있는 로마 사람들에게 오디세이아는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디세이아가 재미있는 소설이라면, 일리아드는 단순히 소설로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에게 웅녀 이야기는 재미있는 신화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신화로 치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변신 이야기 2의 1/3이 지난 시점부터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에는 익숙하지만 로마의 신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의 사심을 슬쩍 드러냈다면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부터는 아예 드러내놓고 표현한다. 이처럼 뻔뻔함에서 쌍벽을 이루는 사람은 군주론을 쓴 마키아밸리 정도가 아닐까? 대놓고 나 이런 사람입니다, 난 당신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그 뻔뻔함과 아부하는 모습은 굴욕적이다 못해 당당하기까지 하다. 로마의 역대 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까지만 해도 괜찮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승천을 다루는 대목에 가서는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든다. 이건 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도 "용비어천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있어보이게 만들려고 뜬금없이 피타고라스를 집어 넣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편은 통째로 들어내도 문맥을 크게 해치지 않는데, 굳이 이 부분을 넣은 것을 보면서 요즘이나 당시나 배운 척, 있는 척하는 포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복잡한 사생활, 이로 인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역린이 두 율리아와 엮이게 되고, 이를 통하여 삶이 고달파진 어느 지식인이자 문학인의 비굴함과 유세가 이 책의 본질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 책이 오랫 동안 살아남은 것은 재미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로마 신화와는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세계문학 전집이 나온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책의 형태나 글자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불편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책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출판사가 그런 손해를 감수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을 알지만, 추후에 만약 인쇄를 한다면 이러한 점을 고려해 주는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