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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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릴 때부터 디지털에 특화된 센서를 달고 나오는지 기계를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 나는 새로운 휴대폰이 나오면 이것저것 배워야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 만져보더니 능숙하게 다룬다. 물론 고급 기능이야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잘 다루기는 하지만 기초적인 것들은 아이들이 금방 더, 그리고 더 능숙하게 다룬다. 저자가 만하는 포노 사피엔스가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나도 꽤 기계와 친하게 지내온 세대이다. 가리방, 타자기, 팩스, 도트 프린터, 복사기, 베이직, xt 컴퓨터, at컴퓨터. 도스에서 위도우즈로 정말 정신없이 변화되었고, 그 변화변화 사이에 기능을 익히기 위해서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간신히 기능을 익히면 다음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되기가 몇번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뒤쳐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뒤쳐지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아마 내 세대 사람들은 컴퓨터를 끄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실행한 후에 껐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껐다가 컴퓨터 수리를 몇번 다녀온 후에 깨닫게 된 지식이다.) 


  이 책에서는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의 기술과 그 기술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세대, 그리고 그 세대를 우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앞세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두 세대 사이에서 겪는 여러가지 불협화음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저자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포토 사피엔스 세대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더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산업 모델로 나가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여기에 대한 저항이 있음 또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존, 애플과 같은 미국의 기업들, 알리바바와 같은 중국의 기업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업들이 등장해야 함을 말한다. 삼성이라는 굴지의 기업이 있지만 삼성에게는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뼈아픈 지적도 충분히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내용까지 전부 기술에 관한 이야기들, 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마치 책은 기술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우리에게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것도, 스토리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이며, SNS로 인하여 직접적인 만남이 없이도 만남과 물건의 판매와 구매가 가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어디에 있어도 연결이 되는 초열결 시대를 살아가지만, 정작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은 만남이라는 고전적인 관계맺음이 금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데이터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따뜻함,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결국은 사람이라는 점,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데이터가 아니라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가, 그리고 기업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점은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도, 데이터와 기술을 익혀야 하는 이유도 산업과 자본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것도 사람을 알아야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으로 흘러가는 점들이 불편함을 준다. 그래도 한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며, 무엇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점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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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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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후에 이사한다. 그래서 책을 치우고 있다. 예전에 선물로 받았던 책들, 그리고 열심히 사들였던 책들. 그 중에 버리지 못하고 아까워서 간직했던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작은 도서관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주기 위해서 정리를 시작했다. 한권 두권 빼다 보니 140권이 되었다. 이렇게나 많이 사 모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많이 쌓아두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얘들아 책 많지? 이 책들 아빠가 다 읽은 건데 뭔가 느끼는게 없니?"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어"라는 짧은 반응과 함께 다시 게임과 유튜브에 몰입한다. 우리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아이들에게 독서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분야인것이 분명하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정리한 책 중에 이 책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책들은 읽었던 책이지만 이 책은 정리하기 위하여 읽은 책이다.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책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버릴 책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역시나 이런 부류의 책이니만큼 쉽게 읽혀진다. 윤동주 시인이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는데, 책이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2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 줄 간격도 넓고 사진도 많고,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계속 물건을 버리는 이야기, 버릴 때의 기준과 권고 사항 등을 기록해 놓았는데 내용을 굳이 읽지 않고 제목만 읽어도 충분하다. 물론 책의 내용을 다 읽었기 때문에 그러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참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고 있고, 많은 물건을 갖고 싶어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가진 물건 중에 과연 필요해서 산 것이 얼마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떳떳하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열두 발자국에서 정재승씨가 한 말이 우리는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필요를 만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필요 없는데 굳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긴 하겠다. 그래도 말이다. 나는 책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하게 쉽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그러면서 이런 책이라면 단순하게 사는 것이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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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or No 선택 단추 시리즈
스펜서 존슨 지음, 강주헌 / NEWRUN(뉴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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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자계서를 뽕이라고 표현한다. 가끔 삶이 지칠 때, 마음이 힘들어질 때 한번씩 힘을 얻고자 보면 좋지만 그 외에는 백해무익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가운데 자계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참 어렵게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펜서 존슨은 이 분야에서는 참으로 독보적인 존재이다. 청소부 밥, 부모, 멘토, 행복, 성공, 치즈 시리즈 등등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처세술을 강화하려는 사람들에게 한편의 멋들어진 동화를 통하여 가르침을 주는 면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그의 책이기에 정말 오랫만에 꺼내 들었다. 기대했던 대로 책은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느끼는 것은 "정말 아니다."라는 것이다. 예 아니오 시스템을 통하여 보다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의사 결정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명목하에 내놓는 각 장의 주제들은 항상 그렇듯이 명쾌하지만, 그렇게 창조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스킬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원래 자계서는 그러하니까라면서 넘어가겠지만, 그 결정의 밑바탕에 깔린 생각이 자꾸 반감을 불러온다.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런거다.

 

  너는 항상 옳다.

 

  네가 항상 옳기 때문에 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하고, 네 생각에 맞추어서 판단한다면 그것은 항상 옳은 결론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음을 이미 경험으로 보지 않았던가?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산업혁명기를 겪으면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인간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종교는, 특히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다,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서 인간 본연의 특성을 발현하면 이 사회를 좀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것이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아가면 이 땅은 천국이 된다는 것이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신학의 가치관이었다. 우리는 자유주의를 종교 다원주의와 착각하지만 자유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신학적인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말 한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선하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면 그 사회도 선하고 도덕적인 곳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각은 1차 대전과 2차대전을 통하여 철저하게 깨졌고, 아렌트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악의 보편성과 평범성에 대한 역작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을 남겼다. 양차 대전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한 본성에 대해서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가지 교육법들과 학문적인 연구들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항상 역사가 한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듯이,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성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은 과거에 비하여 더욱 강한 포지셔닝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러한 포지셔닝 중에서도 거의 극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난 항상 결정을 하면서 고민을 한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이 옳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최선을 택할 수 없어서 차악을 선택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너는 항상 옳다니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누가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인가? 스펜서 존슨이 책임을 질 것인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한 음식점 앞을 지난다. 그 집 음식이 꽤나 괜찮기 때문에 이사를 와서는 그 집을 자주 찾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부터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음식 맛이 번해서, 주인이 바뀌어서? 아니다. 그 집 앞에 있는 간판이 자꾸 눈에 거슬려서이다. 커다란 입간판에 이렇게 써있다.

 

  "손님은 항상 옳습니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도 눈에 거슬리는데 손님이 항상 옳다니! 그 집을 택한 손님은 항상 옳다는 것인지, 손님이 하는 말은 어떤 불합리한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 한마디가 내 입을 쓰게 만든다. 나도 내가 옳다고 장담을 못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 집에 손님을 찾아가는 내가 옳다고 판단한단 말인가? 여러가지 이유로, 어찌보면 판단 내리기를 유보하는 살짝 비겁함으로, 그리고 껄쩍지근함으로 오늘도 그 집을 피하여 난 김밥 천국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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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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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수 김국환의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가 있다. "타타타" 이후로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당시 가사 업무 분담이라는 혁신적인 내용을 노래로 부른 아주 코믹한 노래였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자 그녀에게 시간을 주자 저야 놀든 쉬든 잠자든 상관말고

  거울 볼 시간 시간을 주자 그녀에게도 시간은 필요하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아하

  그건 바로 내 사랑의 장점 그녀의 일을 나도 하는 건

  필수 담당 아니겠어 그거야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2)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드리자 접시를 깨뜨리자

 

  당시 이 노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네 아줌마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이 노래는 인기를 끌었다. 아줌마들이 모이는 모임치고 "접시를 깨자"라는 노래를 안부른 곳이 없다. 내용을 보면 별거 아니다. 남자들도 부엌에 가서 앞치마 두르고 일을 하자는 것이다. 별거 아닌 이 노래가 그렇게 인기를 끈 이유는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이다. 당시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가면 아주아주 큰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했다.

 

  아버지는 꽤나 가정적인 분이셨다. 우리 남매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한글을 익히게 해준다고 보물섬, 소년 중앙 같은 잡지를 1년간 구독해 주셨던 분이다. 당시 아버지의 생활 형편으로 보건대 이것은 어마어마한 지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줄여서라도 해주셨다. 우리 남매는 모두 2년 터울인지라 한해는 만화책을 보고, 한 해를 건너뛰고, 그 다음해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직까지도 어머니하면 무서운 존재로 기억이 남지만, 동생이나 나에게 아버지는 자상한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것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부엌을 맴돌면 외할머니께서 "저리가라. 꼬추 떨어진다."라는 말을 하셨다. 지금이야 신혼 부부들은 왠만하면 다 하는 일들도 당시에는 절대 금기시 되어 있던 일이다. 그것이 하도 마음에 맺히셨는지, 어머니는 나에게 남자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부엌일을 시키곤 하셨다. 대학을 다니다가 오랫만에 집에 오면 "냉장고에 닭 사놨다. 양념은 어디있는지 알지?"라면서 닭볽음을 만들게 하셨다.

 

  이런 시대에 접시를 깬다는 것은 대단한 금기를 범하는 아주 불량한 말이다. 당시 많은 어머니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실제로 그런 시대가 올것이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남자의 가사 분담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이 되고, 여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육아도 공동으로 해야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가? 부질없는 일이라, 접시 깯나고 세상이 달라지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접시를 깼던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미련해 보여도, 무모해 보여도 판을 깨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골리앗 앞의 다윗이 되라는 것, 인상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큰 물에서의 작은 고기보다 작은 못에서의 큰 고기가 되라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판을 깨버리고 세상을 뒤집어 엎자는 말이 아닌가? 쫄지말고 현재 질서에 순응하기 보다는 그 질서를 부정하고 뒤집어 엎어버리자는 말이 아닌가?

 

  사교육이 문제라는 말을 한다. 부모의 자산 정도에 따라서 신분질서가 고착되는 오늘의 현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것은 이미 캄브리아기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개천에서는 미꾸라지 한마리 나기 어렵다고 한다. 다들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를 깨기보다는 그 질서에 어떻게 해서든 편입해 보려고 용쓴다. SKY를 가면 세상이 온통 달라진다고 너희 때는 진정한 우정보다는 끊임없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우도 아니면서 아이들에게 등급을 매긴다. 아이들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서 자기 성적에 매겨진 등급이 곧 자신의 미래라 믿는다. 설령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그 중심에 서기 위해서 갖은 애를 쓴다. 청년들은 어떤가? 자신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말하면서도, 이대로 가면 삼포세대가 된다고 말하면서도, 나만은 대기업 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세상에 약자가 넘쳐나지만, 그리고 자신도 그 약자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자신만은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다윗이 아니라 골리앗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언더독이지만 자신은 탑독이라고 착각하면서, 아니 착각하는 척하면서 살아간다. 왜? 무모한 도전이 가져올 쓰라린 상처가, 무지막지한 고통이,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상실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만 기억하자. 어떻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는가? 그가 실력이 뛰어나서? 윌리엄 텔의 선조라서? 골리앗보다 무기가 좋아서? 골리앗이 생각보다 약해서? 아니다. 그가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쫄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앞에 서지 않았을 때 다윗만은 골리앗 앞에 서서 부딪혔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설령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지 못했다고 해도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다만 한 가지 변화는 있었을 것이다. 다윗처럼 골리앗 앞에 서는 또다른 누군가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사실말이다.

 

  다윗처럼 골리앗을 이기면 가장 좋고, 그게 불가능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와 연대를 해도 좋다. 다만 접시를 깨지 않으면 부엌은 여전히 나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고, 거실은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바뀌지 않는다. 다같이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지만, 변화의 조짐을 불러올 수는 있다.

 

*그저 흔한 자계서라 부르기엔 매우 아깝다. 글래드 웰의 책 가운데에서 꽤나 접수를 줄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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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4-10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한 다윗은 자신이 다윗임을,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겠죠. 말씀처럼 우리 세상에는 골리앗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실 다윗들이 착각하고 있는거겠죠. 저도 이거 참 재밌게 읽었는데 번역은 좀 늦게 되었더라구요..

saint236 2014-04-10 19:20   좋아요 0 | URL
자계서가 이렇게 정치적일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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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상한가?

 

  자꾸 삐딱선을 타게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나서 "아파야만 청춘인가?"라는 반문을 던지며 불편해 했는데, 이번에는 "천번을 흔들려야만 어른이 되는가?"라면서 딴지를 걸고 싶다. 문학동네에 이벤트에 지원해서 이 책을 받았고, 이사한 주소를 남겨두지 않아서 15000원이나 되는 비산 퀵비를 물고 책을 받았으며, 열일 제쳐두고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독자 리뷰를 썼다. 뭘 이런 책을 밤을 새면서까지 읽는가 하지 마라. 혹은 밤을 새면서 읽을 정도로 대단한 책인가 기대하지 마라. 순전히 시간에 쫓겨서 그랬다. 월요일 새벽 비행기로 필리핀을 가야하는데 책을 토요일에 받았으니 어쩌랴 밤을 새서라도 해야지. 공짜로 받은 책이니 이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개인적인 책임감과 동시에 성실하게 피드백을 하면 문학동네에서 나온 세계 문학 전집중 3권을 준다는 말에 혹한 욕심 때문에 무슨 수를 쓰든 피드백을 보내야 했다.(후자의 욕심이 3배 정도 크긴했다.)

 

  피드백을 하고 난 후 몇번식 곱씹어 보면서 왜 이리 불편할까 싶었다. 난도쌤이라 불릴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친근한 사람이요, 청춘들의 멘토라고 불릴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도, 구절구절 옳은 이야기들이 써 있어서, 작가가 내 일기장을 훔쳐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껄적지근하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의 찜찜함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서평을 쓰지 못했다. 껄쩍지근한데, 이런 찜찜함을 안고서 리뷰를 작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여기에다 끄적거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달을 씨름한 끝에 그 껄쩍지근함의 원인을 알았다. 청춘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아네 청춘이 없기 때문이었다.

 

  꼰대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누가 김난도의 책을 꼰대정신의 발현이라 평했던 적이 있었는데(정확하게 누가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평이 딱 들어 맞는다. 꼰대라는 말은 과거에 입이 거칠었던 녀석들이 자기 담임선생님이나 아버지를 비하하여 부르던 말이다. 자기들과 소통하지 않고 앞뒤 꽉막혀서 자기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꼰대 정신이란 이렇게 소통을 하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자기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에게 가르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꼰대 정신과 멘토 김난도!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 나 잘되라는 것이냐 네가 잘되라는 것이지"라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어른들 속에서 "괜찮아 아파도 돼, 힘들어도 돼"라는 따뜻한 한마디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자기 마음을 알아 주는 것 같아서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그렇지만 말이다. 그게 정말 공감일까? 이것 또한 꼰대 정신이 아닐까?

 

  "내가 살아보니까 말이야 지금 힘든 것들 다 괜찮아. 힘들지만 성숙해지는 과정이야. 아픈만큼 성장한다잖아."

 

  왜 이 말이 껄쩍지근했는지 이해가 되는가? 왜 김난도의 저서도 꼰대 정신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가? 나보다 아이 어린 사람을 질책하지는 않지만 가르치려 드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내가 살아보니 말이야 아무 것도 아니더라. 아프니? 아픈만큼 성장하는거야. 난 이 말이 정말 싫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힘든 건 당연한 거야라는 말이 공감이 될 리가 없다.

 

  청년의 멘토라고 한다. 젊은이들의 격려하기 위해서 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하여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에겐 그저 곤대 정신으로만 보인다. 내가 아파보니 그게 청춘의 특권이더라, 내가 흔들려 보니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더라 등등 지극히 교과서적인 가르침을 공감과 위로라는 포장을 두르고 젊은이에게 강요한다. 젊은이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고민하려는 마음도, 그들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없다. 그냥 힘내 한마디 한다. 곳곳에 인용된 원가 있을 법한 말들로, 일기장에 오늘의 격언이라고 써놓을 법한 말들로 아픔을, 흔들림을 강요한다. 그 어디에도 위로의 대상인 젊은이들은 없다. 그 어디에도 그들과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공감은 없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게 울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이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이런 아픔을 강요하는 사회를 물려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ps. 곳곳에 기억해두면 써먹을 수 있는 좋은 구절들이 많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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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0-0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두 개 맘에 듭니다.
쓴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왠만하면 전 제 맘을 속이고 무조건 별 다섯 개 쏘는데,
똑바로(!) 별 쏠 줄 알아야 독자들이 헛갈리지 않지요.

꼰대들의 모든 가르치려는 소리는 헛소리도다 -세인트님 이런 말씀 맞지요?

saint236 2012-10-05 08:00   좋아요 0 | URL
대충 그런거지요. 좋든 싫든 가르치려는 것은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고 나보다 못한 존재로 설정한다는 것인데 그게 꼰대 정신이지요..

북극곰 2012-10-05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별 5개입니다.
제목만으로도 불편했던 사람, 여기도 있어요~

saint236 2012-10-05 10:2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만 불편했던 것이 아니군요. 김난도의 책은 정말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것 같네요. 아프니가 청춘이다까지는 그래도 괜찮지만 두번은 아니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transient-guest 2012-10-11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감합니다. 아픈 사람의 이야기는 그냥 들어주는게 제일 좋지요. 이래라 저래라,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하지 말고. 그런 진국같은 이야기는 책으로 쓰기가 어렵죠. 결국 이 책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책들과 같은 결론이 나는군요.

saint236 2012-10-11 09:27   좋아요 0 | URL
다른 책들과 차별성은 있어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겠지요. 그렇지만 훈계하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런 책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가 아닐까 싶네요.

순오기 2012-10-1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리뷰에 저도 공감할 거 같은 느낌.^^
올해 우리구청 선정도서인데 대충 휘리릭 넘겨보고 아직 제대로 읽진 않았네요.
다음달 고등학교 독서회 토론도서라 곧 보게 될 거지만...

saint236 2012-10-14 19:52   좋아요 0 | URL
휘리릭 넘겨 보셔도 내용의 80~90%는 파악이 가능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신 분들은 더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이죠.

oren 2012-10-15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int236님의 이 서평글에 저 또한 꽤 공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저는 김난도 교수님의 책을 아예 훑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뭐라 그 분의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비평할 처지조차 되지 못합니다만, 그 분의 책을 혹시라도 사서 읽게되면 왠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릴 것만 같은 '불편함' 같은 게 미리 짐작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런 부분을 saint236님께서 예리하게 꼬집은 것 같아서 '공감성 추천' 한방 누르고 갑니다.

saint236 2012-10-16 14: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김난도 교수님의 책을 가만히 보면 공감이 가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처럼 불편한 부분이 자꾸 걸리더라구요.

희망찬샘 2012-10-28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고 평을 보고 책을 평가할 때보다는 읽고 나서 책을 보고 그래도 좋은 부분을 건져내는 것이 훨씬 유익할 때가 있더라구요. 언제 이 책을 읽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기억해 두면 좋을 이야기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은 될 것 같은 책이군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는데... 나쁘지 않았지만, 광고의 힘을 많이 받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저 또한 좋은 책은 좋다하고 넘어가고 안 좋은 책은 아무 말 안 하고 넘어가고... 그러는데, 이런 쓴소리가 어쩜 저자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saint236 2012-10-28 17:30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아프니가 청춘이다 정도로 생각하시면 거의 맞을 겁니다. 처음에는 저자에 대한 예의,혹은 주변의 평가, 서평단으로 받은 책.. 이런 이유들로 좋은 평만 했는데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