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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개-"
1.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3.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개라는 접두사에 대한 설명이 이와 같다. 그렇다면 "개**"이 붙은 말은 대체로 부정적인 말이라는 의미인데, 요즘은 약간 다르게 사용한다. 아직 사전에 등재된 것은 아니지만 "아주"라는 의미로 개를 사용한다. "개이득" 이런 말이 그런 의미이다. 그런데 아직 나에겐 이러한 것들이 불편다. 그래서 아이들이 "개**"을 쓸 때마다 표준어를 사용하라는 말로 혼을 내곤 한다. 자기 친구들 다 사용한다는 말에,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괜찮지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항상 혼을 낸다. 그런데 어느날 중1인 딸이 텔레비전 앞에서 이 책을 보더니 매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왜 그러나 싶었더니 "아빠도 이런 책 보네."였다. 아무리 그것이 철학책이라고 말을 해도 그 녀석에게는 제목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나 보다.
책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는 개소리가 넘쳐난다. 어떤 사람들의 말이 개소리라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개소리다."라고 비판을 한다. 그런데 정작 왜 개소리인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이런 마음을 먹는 것이 우리만은 아닌 듯 싶다. 그렇게 배웠다는 저자도 "개소리"에 대해서 파고들다니 말이다. 물론 영어 "bullshit"의 번역을 개소리로 한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꽤 적절한 번역이다. 예전처럼 점잖지 못하다는 말로 빈 말이나 헛소리로 번역하는 것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번역하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개소리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한다. 최소한 거짓말은 자신이 남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은 자각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고려한다. 진정한 거짓말은 대부분의 진실에 약간의 거짓을 섞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거짓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또는 아무리 100% 거짓을 말한다고 해도, 진실은 알아야 그것을 피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으므로, 거짓말이란 역설적이게도 항상 진실을 의식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개소리는 다르다. 개소리에는 진실에 대한 고려나, 의식도 없다. 그래서 저자는 개소리가 더 위험하고 해롭다고 한다. 그냥 뱉어내면 되기 때문이다.
상당히 조심스러운데, 내가 개소리라고 생각했던 말이 있다. 의도가 명확하게 담겨 있고,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 담겨 있고, 그래서 편 가르기에 딱 좋은 말. 그것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상관이 없는 말. "시선강간"이라는 말이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에, 이 말을 개소리로 치부하거나 불편함을 내비치면, 분명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 지인들 중에도 있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개소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냥 내가 규정하면 그대로 따라라는 오만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 안에는 상대에 대한 어떤 타협이나 이해도 없다. 이 말을 거부하면 시선강간을 찬성하는 마초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싫으면 이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말에 동의하지 못하지만 마초가 아닌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설 수가 없다.
개소리가 대체로 그렇다. 대선을 앞두고 각 당마다 경선이 진행 중이다. 언론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권이라 온종일 비판을 해댄다. 진보 쪽에서는 타협하는 현정권의 모습에 실망해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마미손은 너는 부동산 정책에 실패해서 청년들에게 자기집 마련의 꿈을 빼앗아 갔으면서 왜 청와대라는 비싼 집에 살고 있냐고 한다. 방역과 국민의 기본권을 두고 토론을 한다. 곳곳에서 많은 소리들이 넘쳐나는데, 귀담고 들을 소식이 많지 않다. 한동안 뉴스를 꾾었던 이유가 이것인데, 요즘 다시 뉴스를 끊고 싶어진다. 내가 정의고, 내 생각의 틀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 곳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논리와 근거로 조금만 살펴보면 이해되지 않을 말인데도, 상관없다. 비판을 받아도, 허무맹랑해도 상관없다. 왜냐고? 개소리이기 때문이다. 토론이나, 타협의 목소리가 아닌 개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방 천지에 개소리가 넘쳐 난다.
그런데 괜히 개에게 미안해 진다. 그들이 실제로 뱉은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냥 "멍멍" 소리 밖에 못내는 개들인데, 수없이 많은 말은 사람들이 하고, 거기에 애꿎은 "개"를 붙여 버리니 말이다. 개 보기가 부끄러워지는 2021년의 9월을 시작한다.
PS. 이 책 또한 개소리가 아닐까? 물론 다른 의미의 개소리 말이다. 가끔 가볍게 농담처럼 던진 말을 진담으로 받아 끝없이 진지하게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분명히 무엇인가 대단한 지적인 토론과 근거가 뒷받침되는데, 결론은 "이걸 뭐 이렇게까지."이다. 이 책이 그런거 같다. 어느날 갑자기 저자가 개소리에 흥미를 느껴서 철학적으로 개소리를 연구한 끝에 내놓은 실없는 결과물! 이 책을 보고 "큭큭" 댄 이유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