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수다 뒷담화
김용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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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꼼수의 인기에 힘입어서 나꼼수 4인방의 책들이 꽤 선전하고 있다. 닥정, 조말은 그야말로 대박이며, 달봉(달려라 정봉주, 닥정과 구분하기 위하여 이렇게 표기한다.)은 나오기도 전에 예약 주문이 쇄도한다. 저자의 신간 "보수를 팝니다"도 꽤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다 가카덕이다.(^^) 저자 개개인들의 내공이 물론 뒷받침되고 있지만 가카 헌정방송 "나는 꼼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끼친 영향이 지대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꼼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셜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고, 네트워크가 저떻고 하는 학적인 이야기들은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라디오의 재발견"이라고 평가한다. 어린 시절 라디오를 틀어 놓고 거기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 편집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일들을 한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라디오에 소개된 사연들을 읽으면서 안타까워 했고, 혹 내 사연이 소개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라디오 앞을 떠나지 않았던 설레임도 있을 것이다. 정성스럽게 엽서를 꾸며서 보내고, 그렇게 꾸며진 엽서가 책으로 묶여져 나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라디오 세대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라디오는 텔레비전으로, 비디오로, 그리고 DVD와 영화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한참을 벼르고 별러서 극장을 찾아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를 보던 시절이 지나가고, 지금은 멀티플렉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끌다 못해서 3D라는 신기한 기법까지 도입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성인물도 3D로 제작이 된다고 한다. 곳곳에 시각을 자극하는 것들이 넘쳐나고 있는 시각 과잉 시대에 기묘하게도 라디오가 재발견되고 있다. 시각을 자극하는 영화에서도 라디오가 주된 소재로 등장할 정도이다.(라디오 스타, 보트 댓 락키드)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보이는 라디오라고 해서 프로그램 진행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지만(가령 컬투쇼) 그것은 편법이다. 그리고 그 편법 자체도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컬투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보이는 라디오가 없어도 컬투쇼가 인기 절정으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각 자극 과잉의 시대에 라디오가 재발견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적인 부분들, 검열이라는 부분들은 논외로 하자. 순수하게 라디오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시각과 청각의 차이는 무엇일까? 태도의 차이이다. 시각은 원하지 않아도 보여질 수가 있다. 그렇지만 라디오는 기꺼이 들으려는 자세가 없다면 들을 수가 없다. 물론 라디오도 들려질 수도 있다. 듣기 싫은데 주변에서 들려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소음이 된다. 라디오가 다른 매체에 비하여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면 기꺼이 들으려는 태도이다. 시각적인 자극이 없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만약 관심있어 하는 부분들을 아주 재미있게 긁어 준다면 얼마나 집중하게 될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게다가 라디오는 제작 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에 누구나 참여할 수도 있다. 팟캐스트, 컴퓨터 인터넷 망을 통한 라디오라면 제작 비용은 훨씬 더 줄어든다. 이러한 이유로 시각 과잉의 시대에 라디오라는 매체는 멸종되지 않고 오히려 화려하게 비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꼼수다 뒷담화"는 이러한 사실을 말하면서 누구나 라디오에 뛰어들라고 말한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한다. 심지어는 나는 꼼수다 로고송 악보도 공개한다. 이미 "나는 꼼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껌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다.  

  저자가 이렇게 자신의 노하우를 제공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송되기 시작할 때 언론을 통제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때문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이 정부 들어 단 한번도 언론을 통제한 적이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참 많은 통제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면 진행자가 하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리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인기가 있는 진행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과거처럼 검열단을 두어서 검열하지는 않지만 더 교묘하게 자체검열을 하게 만든다.  

  주지하다 시피 언로가 막히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지 않는 사회는 경직된 사회로, 전체주의 사회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다양한 의견이 교환될 수 있는 언로가 열려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소통될 수 있는 다양한 언로, 저자는 라디오에서 그 희망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꼼수다 뒷담화"에 대한 뒷담화! 11500원이라는 책값은 솔직히 비싸다. 나꼼수 운영 비용에 사용하겠다는 저자의 말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읽기에도 쉽고, 내용도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팟캐스트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심심풀이로 시작을 해봐도 좋지 않을까? 라디오스타, 보트 댓 락키드라는 영화를 함께 보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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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새로운 창 W
MBC W 제작진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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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효과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이지만 나중에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이론은 로렌츠가 〈결정론적인 비주기적 유동 Deterministic Nonperiodic Flow〉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결정론적 카오스(Deterministic Chaos)의 개념을 일깨운 새로운 유형의 과학 이론이었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나비효과는 이렇듯 처음에는 과학이론에서 발전했으나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가령 1930년대의 대공황이 미국의 어느 시골 은행의 부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나비효과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또한 1달 후나 1년 후의 정확한 기상예보가 불가능하듯이 주식이나 경기의 장기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것도 이러한 나비효과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브리태니커 사전 중에서> 

  과학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이라고 해도 한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이론이다. 처음에 시작한 아주 작은 운동이 몇 차례의 단계를 밟으면서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이론의 핵심은 "관계, 네트워킹"이다. 이 지구상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혀 별개의 사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어다보면 그것들은 아주 중요한 인과관계의 고리 속에 묶여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모기지론 붕괴와 세계 경제 붕괴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도 그 둘을 별개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모기지론의 붕괴는 미국 경제의 위기를 유발했고, 미국 경제의 위기는 세계 경제의 위기를, 그리고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위기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또 한 예를 들어보자.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과 한국의 무주택 인구의 생활고 사이의 상관관계가 무엇인가?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건축 자재가 중국으로빨려 들어가고 이것은 건축 자재의 상승을 불러 일으키고, 이는 한국 주택 건설 단가를 높인다. 그렇게 높아진 주택 건설 단가는 결국 한국 무주택 인구가 지불하는 주거 비용을 올려 생활고를 유발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마 W가 몇년만 늦게 나왔다면 분명히 일본의 대지진에 대해서도 다뤘을 것이다. 일본의 대지진의 여파와 한국내 오징어 판매 급증의 상관관계는? 일본의 지진은 방사능 유출을 유발했고, 이는 향후 동해에서의 포획될 오징어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했으며, 그 결과 현재 확보되어 있는 물량을 사재기하는 결과를 유발한다. 몇 단계를 더 건너가면 일본의 대지진은 한국내 홈쇼핑의 매출과 사업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아주 황당한 부분까지 나아가게 된다. 

  무슨 말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독야청청이라는 말은 현재 세계에서는 거의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일들이 무수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에도, 미국의 광우병에도, 동남아시아의 쓰나미와 지진에도 온통 관심을 쏟는 것이 아닌가? 

  W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지식e가 인문학적인 지식들을 다루고 있다면 W는 제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해현장과 반인권적인 상황들에 대해서 취재하고 그것을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것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 냈다는 점에서는 지식e와 W가 다를 것이 없지만, 그 둘이 추구하는 것과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지식e는 인문학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네트워크에 효과에 대해서만큼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 그 자체에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다면 지식e는 밥값은 했다고 볼 수 있다. 지식e를 통하여 어떠한 사회적인 행위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W는 철저하게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상황들을 고발하면서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프로그램의 속성상 W는 철저하게 행동하게 만든다. "우리의 음악이 단지 즐거움을 주고 행동을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다."라는 첨바웜바의 말처럼 W가 어떤 행동도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프로그램은 실패한 것이다. W가 갖는 한계이자 W가 갖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시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행동을 촉구한다.  

  예전에 아프간에 선교를 갔던 선교팀이 인질로 잡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면서 했던 말이 무엇이냐면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왜 외국에 나가서 그러느냐?"이다. 내가 그들을 편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 잘못했다. 그렇지만 봉사활동하러 갔다는 말에 우리나라에도 많은데 외국에 나가서 왜 그러느냐는 식의 비난은 상당히 유치한 비난이었다.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다. 그 비난이 맞다면 W도 같은 이유로 비난을 당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는 지구촌이다. 홀로 독야청청한다는 말은 대원군의 쇄국정책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좋든싫든 말이다. W는 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책을 덮고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해야할 숙제이다.   

  마지막으로 시사프로그램을 정리해서 책으로 냈기 때문일까? 지식e에 비하여 상당한 손색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ps. "지식채널e"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최세진/메이데이)"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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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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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과 문재인(스포츠서울 인터넷 기사에서 인용)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구매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문재인이라는 노무현의 측근이 노무현을 변호하기 위하여 쓴 글이겠다 싶어서이다. 그런데 곳곳에서 문재인의 이름이 계속 언급이 된다. 노빠임과 동시에 공인된 문빠가 되기로 작정한 김총수는 나꼼수를 진행하면서 시시때때로 문재인 띄우기에 열중한다. 서울시장 후보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이 보인다. 며칠 전에는 박원순 후보 유세장에 나타나 지지를 호소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특전사 시절의 사진이 돌아다닌다. 문재인이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3일만에 다 읽었다. 3일만에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뭐 대수겠냐 싶겠지만 지난 금요일부터 원인을 모르겠지만 손가락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쉬는 날에는 통증을 잊기 위해서 하루 종일 잠을 잘 정도였는데 화요일 저녁에 이 책을 잡고부터 밤을 새며 읽었다. 화요일 밤에 책을 읽다가 2시에 잠이 들었는데 도무지 잠이 안 온다. 문재인, 노무현, 안희정, 김두관 등등 참여 정부 시절의 굵직했던 사건들이 꿈에 나타나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결국 수요일에는 밤을 꼬박 샐 수밖에 없었다. 이틀을 뜬 눈으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하지 않았으며,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면 흔히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남녀간의 만남을 떠올리기 싶지만 문재인은 자기에게 노무현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한다. 노무현이 이 시대의 진보와 개혁을 자기 운명으로 받아 들였듯이 문재인은 노무현을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작된 노무현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 대개 그러하듯이 부엉이 바위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현임 대통령의 탄핵, 전임 대통령의 검찰 소환과 투신이라는 비극적인 두 가지 사건이 모두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그것은 그 한 사람과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던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상처요 아픔이 되었다. 그 상처와 아픔을 삭히던 그가 2년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운명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 책, 참 마음이 아프다. 그 아픔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더 열중했는지도 모른다. 책의 하단 페이지 숫자 옆에 있는 작은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면, 좌편에는 노무현이, 우편에는 문재인이 인쇄되어 있다. 마치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따 온 것 같은 “운명”이라는 제목 또한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서로에게 운명같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운명이었다.  

  Fate와 Destiny! 모두 운명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Fate는 자기가 컨트롤할 수 없는 숙명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Destiny는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운명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Fate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신이 정해준 불가피한 것이라면, Destiny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삶의 결과물로 맞게 되는 것이다. 문재인이 이 책을 통하여 말하는 운명은 Fate인가 아니면 Destiny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던졌던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이 책까지의 그의 행보가 Fate라면 이 책 이후의 그의 행보는 Destiny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만났고, 노무현을 통하여 세상을 보았으며, 노무현을 돕는 역할을 했다. 물론 노무현을 회고하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이 책도 그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p.441)

  노무현을 만나 본인이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정치의 한 복판에 이끌려 왔고 많은 기쁨과 슬픔을 경험했지만 자기 인생에서 노무현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 없다. 그저 노무현이라는 운명에 이끌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이별을 경험했고, 자기 앞에 새로운 숙제가 남겨져 있을 따름이다. 여전히 꿈일지라도 한번씩 만나기를 소망하며 그를 그리고 살아간다. 이것이 문재인의 운명(Fate)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재인의 운명(Destiny)은 아니다. 문재인은 위의 글에 이어 바로 이렇게 적고 있다. 

  하물며 나는 더욱 그렇다. 기꺼이 끌어안고 남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P.441)  

  지금까지는 피할 수 없는 Fate였다면 이제는 숙제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Destiny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노무현을 위한 회고록이라기보다는 노무현이라는 운명에 이끌려 새로운 숙제 앞에 선 문재인의 출사표이다.  

  묘하게도 이 책의 출간 이후에 권력층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던, 그렇지만 한결같이 고사했던 두 사람이 권력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사시 합격 동기이자 모두 권력에 대해서 담백한, 그리고 지독한 원칙주의자 박원순과 문재인이 한 장의 사진 안에 나란히 선 것 또한 운명일 것이다. 조영래와 박원순의 운명적인 만남, 노무현과 문재인의 운명적인 만남, 노무현과 조영래의 운명적인 만남은 얼키고 설켜서 문재인과 박원순이라는 새로운 운명으로 귀결되었다. 이 운명이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남겨진 운명은 불가피하게 강요된 운명(Fate)가 아니라 역사의 숙제 앞에서 많은 고민과 결단, 그리고 책임있는 응답을 쌓아 도달하게 될, 아니 도달해야 하는 운명(Destiny)이다. 물론 그 운명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ps. 프레시안에 실린 박원순과 문재인의 운명적인 만난에 대한 한 시민의 기고문 링크를 걸어둔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092617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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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1-10-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깊이 읽으시고 정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님께 배워야 겠습니다. 댓글을 남겨주신 덕에 올 수 있었네요.

saint236 2011-10-26 17:23   좋아요 0 | URL
이런. 황송한 이야기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이묘 2015-07-1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fate와 destiny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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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카 초임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 돌풍을 일으키던 닌텐도 위를 보신 가카께서 한 마디 하셨다. "우린 왜 이런거 안 만드나?" 이 한 마디 말에 인터넷은 시끌거렸다. 닌텐도의 위대함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를 통하여 구현되는 소프트웨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잘 모르셨던 가카께서는 왜 이렇게 대단한 경제적인 효과를 불러오는 닌텐도 위를 만들지 않는냐는 질책을 하셨다. 물론 가카께서는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시다. 아마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잘 몰랐거나 가카의 말을 오해했던 기자들이 잘못 쓴 기사였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킬 때에도 마찬가지의 말을 하셨을 것이나 본인은 졸라 추정해 본다.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우리 가카께서는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나꼼수 23회에 홍반장이 출현했다. 적진에 뛰어든 그의 배짱이나, 김총수와 봉도사 그리고 누나 전문 주기자의 날선 공방에 적절하게 물을 타 주시는 그의 언어 구사 능력이 작렬했던 장장 3시간짜리 관훈토론회였다. 팟캐스트를 잘 몰랐던 홍반장께서는 황금 시간대 1시간을 요구했고, 이에 김총수는 디테일한 진행 능력으로 3시간이 약간 넘는 그 긴 시간 동안 홍반장의 뒤통수를 꼼꼼하게 때리곤 했다. 홍반장은 광고 없이 무얼 먹고 사냐 광고라도 받아라는 진심어린(?) 그의 충고는 그 토론회의 백미였다. 팟캐스트가 무엇인지, 아이폰을 왜 아이폰으로 부르고, 갤럭시를 포함한 나머지 스마트 폰들을 왜 그냥 스마트 폰으로 부르는지 모르시는 홍반장만이 가능한 유머였다. 나는 절대로 홍반장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코털 킴 형님과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홍반장 특유의 고난이도의 유머였을 것으로 졸라 추정된다. 우리 홍반장께서는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혹 김총수의 절친 백수 오세훈이라면 몰라도.

  위의 두 이야기는 우리나라 집권층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커다란 방을 가득 채웠던 애니악에서 출발하여, 책상 위의 데스크 탑의 단계를 넘어 이동성이 현저히 보강된 랩탑으로, 그리고 손 위의 컴퓨터인 팜 탑의 스마트 폰 시대에 돌입했지만 집권층들은 여전히 하드웨어적인 사고 방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의 절대 강점인 소프트 워어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왜 이딴 기계 하나 못만드냐고 호통을 치시는 분들을 보면서 4대강 사업과 재건축, 뉴타운, 물고기 로봇이라는 판타스틱한 상상력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그분들의 사고는 여전히 현대 건설 사장 시절에 멈추어서 있는 것이 그냥 이해가 안 될 뿐이다. 뭐 그것도 자신들이 가진 강점으로 일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리 나쁜 선택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본인들 몫이다. 다만 그 선택의 여파가 본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강요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노빠를 자처하는 김총수의 발칙한 반항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고 난 다음 봉하마을을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검은 넥타이를 고수하고 있는 그만의 추모 방식에서 김총수의 발칙함이 단순한 발칙함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이 책의 표지 사진에서도 역시나 김총수는 검정 넥타이를 메고 있다.) 김총수의 나꼼수 방송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강점이요, 그렇기 때문에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현실 속에서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단단한 짱돌이 된다. 그 짱돌이 어떤 역할을 감당할 지는 10월 26일 서울 시장 재보선을 통해서 검증될 것이다. 

  김총수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빈수레는 아니다. 무학의 통찰이라는 말을 끌어다 쓰지만 그의 통찰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절대적으로 유의미하다. 다만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게으르다. 특히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쓰는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게으르다. 거의 지존급이다. 아마 그가 "건투를 빈다"는 책을 쓰는 황당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게으름은 거의 신급으로 지칭되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그냥 무학의 통찰로 절대적으로 유의미한 말들을 쏟아낼 뿐이다. 다른 진보 지식인들에게, 특히 진중권에게 이러한 김총수는 이해불가의 생물일지도 모른다. 알라딘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엘신님처럼 우주에서 갑자기 침입해 온 생물인지도 모른다. 그런 김총수에게 지승호는 그야말로, 관우의 적토마요, 장비의 장팔사모요, 유비의 제갈량이다. 만약 지승호가 탁월한 인터뷰어 지승호가 없었다면 닥정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책이라는데 500원을 건다.  

  닥정은 나꼼수의 정리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꼼수 전회를 다 청취하고 이 책을 읽은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책을 절대로 나꼼수와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꼼수에서 이미 한번씩 했던 말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하며 시작한 나꼼수는 podcast 정치부문 세계 1위를 달성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카의, 가카에 의한, 가카를 위한 대한민국에서 놀랍게도 김총수는 가카께 벌써 24번의 짱돌(ipod)을 던진 것이다(cast). 물론 그것도 상당히 디테일하게 말이다. 이 짱돌에 대해서 꼼꼼하신 가카께서 어떤 디테일로 대응하실지 관심이 쏠린다. 적어도 가카의 디테일이 절대로 방통위 규제라는 눈에 보이는 정수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혹 그런 정수를 쓰신다고 해도 그것은 가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랫 사람들의 실수일 것이다. 가카는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가카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김총수는 짱돌을 던지면서 딱 한마디 한다. 

  "닥치고 정치나 하셔" 

  나는 그의 한 마디 말에 "닥치고 투표나 하는" 행동으로 대답하련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닥치고 정치나 하는 그 날이 다가올테니 말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소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운받은 나꼼수 24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ps. 닥정 띠지의 용도는 김총수도 인정했듯이 본인은 참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상렬과 싱크로율 99%인 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라고 졸라 추정된다. 골리앗 가카께 짱돌을 던지는 시대의 다윗 김총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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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0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10-20 13:49   좋아요 0 | URL
ㅎㅎ 낙선 기념이라. 그렇지 않아도 눈에 밟히던 책이었습니다. 지난 1주일간 폭풍 독서하고 있습니다. 닥정, 유령 세상에 주먹을 내밀다 운명까지^^

전호인 2011-10-2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전회를 다 듣진 못했지만 어제 23회 홍반장 편을 들었습니다. 역시 홍반장의 꼼수 또한 만만찮더라구요. 불리할 때 물타기하는 수법이라던지 정점을 살짝살짝 비켜가는 것을 보면서 천상 대한민국형(?) 정치인이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24회는 곧 청취하게 되겠지만 나꼼수의 정확하고 꼼꼼한 분석에 다시한번 감탄을 하게 됩니다. 꼼수라곤 하지만 정수의 거대한 짱돌인거죠.ㅋㅋ

saint236 2011-10-20 13:50   좋아요 0 | URL
지금 24회 듣고 있는데 역시 재미있습니다. 내곡동 짱돌이 MB 사저라는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말았네요. 봉도사 사학 짱돌이 나후보를 무너뜨릴지 초미의 관심입니다.

yamoo 2011-10-2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꼼수다..들어보니, 이 책을 반드시 사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인트님 리뷰도 구매질을 부채질하고...아흐~ 낼 서점 가서 동생보고 사라고 꼬셔야 겠어요..ㅎㅎ

saint236 2011-10-22 02:00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야권 얼굴마담 토론회가 계획되어 있답니다. 박지원, 이정희 문재인 초청이라는데 정말 블럭버스터입니다.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 천만 비정규직 시대의 희망선언
홍명교 지음 / 아고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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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에 씌인 "Lost My Job, Found an Occupation"이라는 문구가 너무 아프다!

  Wallstreet! 

  자본주의의 중심, 자본주의의 대명사,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월가가 점령당했다. 그것도 루저, 찌질이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백수들에 의해서 말이다. 세계 각 국에서 반 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연대 시위가 발생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당연하게 한국 보수 언론들의 물타기가 뒤따랐다. 월가의 시위는 인정하지만 한국의 시위는 인정할 수 없다. 월가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란다. 꼭 이럴 때만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면서 차이점을 강조한다. 어찌되었던 자본주의의 상징 월가가 월가가 루저로 규정한 이들에게 점령 당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의해 무시되었던 이들, 그저 수치상으로만 존재했던 이들이 세상 속에 그 존재감을 알린 것이다. 이 책의 제목대로 말하면 유령이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 것이다. 그 의미를 우리는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고려대 입학, 중퇴, 한예종 입학, 영화 공부! 

  김예슬과 더불어 홍명교는 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28의 나이에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렇고, 가카가 나오신 고대를 때려치우고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하여 한예종에 입학한 것도 그렇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으면서도 노동 운동판을 여전히 기웃거리는 것고 그렇다. 또한 그 나이에 책을, 그것도 사회과학 분야의 책,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룬 책을 내는 것도 그렇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올인해도 부족할 판에 남들의 삶의 현장에 기웃 거리는 것도 이상하다. 그 이상한 행동들을 통하여 홍명교는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도 평범하게 수치상으로만 존재할 20대 대학생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통하여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 온다. 홍명교 또한 한 명의 유령이었지만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은 것이다.

  유령! 

  홍명교는 청소 노동자에 관한 글을 유령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부정당한 존재!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이길 부정당한 청소 노동자를 포함하여 비정규직을 홍명교는 유령이라고 표현하다. 그리고 그들이 유령이 아니라 한 명의 당당한 노동자로, 그리고 나아가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머지않아 우리가 직면하게 될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매 분기마다 정부에서는 여러가지 수치들을 제공한다. 올해 실업율은 얼마이다, 경제 성장은 몇 %이며, 각 업의 고용 창출 능력은 얼마이다 등등. 우리는 정부에서 발표하는 온갖 수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수치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우리의 피부로 확 와닿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넘어가는 그 수치 속에 내가 있고, 내 아내가 있고, 내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발표하는 그 수치 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름도 없고, 성격도 없고, 꿈도 희망도 없다. 그저 아라비아 숫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숫자는 종종 그냥 넘어간다. 무시된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실업율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올해 대학 졸업자 중에 몇 몇의 고단한 삶을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의 숫자, 평균 임금, 불합리한 관행 등을 자세하게 발표하고, 이런 사람이 몇 명 중에 몇 명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노동 유연성이라는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라 재고용 탈락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어떨까? 아마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는 이 책은 그렇게 수치와 관념 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을 느끼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런 현실에 순응하면서 넘어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유령이 될 것인가, 인간이 될 것인가를 묻는다. 비겁하게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투쟁에 연대할 것인가 묻는다. 이 정도까지 보여주면서 진지하게 던지는 물음에 눈을 돌릴 만한 비정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유령이 내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면 더 그렇지 않겠는가?  

ps. 그를 통하여 희망을 본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계를 보기도 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들만의 리그로 흐를 수도 있겠다 싶다. 그의 논조가 전형적인 비운동권들에게는 잘못하면 방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조금만 더 자신의 생각을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면 유령에게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월 스트리트 영화를 같이 보면 또 다른 재미와 고민이 더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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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이 권하는 책] 천만 비정규직 시대의 희망선언 -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from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블로그 2012-10-10 15:35 
    장마철, 물에 잠긴 은마아파트 지하에서 일하던 청소 아주머니가 감전을 당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후 나는 감전사를 당한 청소 아주머니와 유가족을 위해 법률자문을 하였다. 유가족으로부터 아주머니가 쓴 근로계약서와 각서, 급여 내역이 찍힌 통장 사본 등을 받아 보았다. 매일 아침 일곱 시부터 네 시까지 일하면서 아주머니가 받은 월급은 85만 원이 채 안 되었다. 근무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사망해도 본인의 귀책사유를 불문하고 이의를 제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