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를 거예요. 아마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괴상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죽마 마을. 거기도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요. 누군가는 작고, 또 누군가는 크고, 저마다 일터에 나가고, 자식을 키우죠. 그리고 집안에는 벽걸이 시계가 하나씩. 시간을 놓치면 안 되요. 날마다 저녁 여섯시면 온 동네 사람들이 죽마를 타거든요.

  긴 작대기에 올라서서 으쓱으쓱 거리를 누비죠. 발밑에는 고만고만한 인간들, 시시하고 하찮은 부류, 자디잘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왜소한 족속, 근사하지도 않고 가진 것도 없는 이들. 물론 커지고 싶겠죠. 다만 그럴 수 없었을 따름이에요. 하나하나 죽마를 나눠주던 날, 명단에 이름이 없었거든요. 죽마의 주인으로 뽑히지 못한 거예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죽마를 타는 날이면 꼬박꼬박 광장에 나타납니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존재인지 봐달라고 기를 쓰고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멋진 양반들, 최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판결을 내립니다. 누가 툭별한 인간인지 판단해서 큰 소리로 선포합니다. “품격이 있군!” “예뻐!” “똑똑한 걸!” “재미있어!” 그리곤 내리는 상! 메달도, 상금도 아닙니다. 갓 구운 파이도, 누군가 지어놓은 집도 아닙니다. 더할 나위 없이 기묘한 상품! 바로 죽마 한 켤레입니다. 미션은 위로 올라가기. 목표는 더 높이 솟구치는 것. 이 게임의 이름은 “높아지고 또 높아져라”입니다. 죽마 마을의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간 이들은 꼭대기의 감미로운 공기를 맛보는 비할 데 없이 큰 특권을 누립니다. 높다란 작대기 한 쌍이 주는 기회를 한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죽마, 그 결정적인 지위에 기대어 마음껏 으스대며 활보합니다. 인생이란, 꼭대기에서 바라볼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한 순간의 실수로 갑자기 딛고 선 발판이 휘청거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삐끗하기 무섭게 중심을 잃습니다. “조심해~애!” 소리와 함께 곧장 추락합니다. 다시 왜소한 부족의 일원으로, 지상의 가장 평범한 부류로 자존심도 바닥에 떨어집니다. 맙소사, 얼마나 속이 아플까요? 고상한 경찰관 나리를 도와주기는커녕 퇴짜도 그렇게 차가운 퇴짜가 없습니다. “왜 저렇게 거만한 거야?” 불평이 튀어나오지만 시계를 쳐다보는 순간 할 말을 잊습니다. 벌서 여섯시가 다 됐습니다. 재잘거릴 틈이 없습니다.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려면 한시바삐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무의미 하고 무가치한 존재일까 전전긍긍합니다. 내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조직 내의 기여도를 평가하면 빵점을 맞지나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친구가 깜빡 잊고 전화를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의 공로를 가로챘을 때 괴로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혹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찮은 존재가 아닐까?” 이런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두렵게 하고 세상에 목을 메게 합니다. 그래서 수 십 만원짜리 청바지를 사 입습니다. 수백만원짜리 명품을 구입합니다. 명품께서 왜소함과 무가치한 나를 대속해 주셔서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 달 생활비를 모두 쏟아 부은 덕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재난이 닥칩니다. 스타일이 변하고 유행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다시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한 달 생활비를 쏟아 붓습니다. 얼마 못갈 것을 알지만 나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해답이 아닙니다. 마음이 더 공허해집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습니다. 멈추면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다는 하나님, 참새보다 그리고 들풀보다 더 귀하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나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천하보다 더 귀하다. 참새보다, 들풀보다 더 귀한 존재다. 하나님께서 너를 아주 특별하게 만드셨단다. 세상 어느 명품보다 더 귀하하고 소중하게 만드신 명품이 너란다.” 조용하게 속삭이십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시나요? 하나님께서 그윽한 사랑의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들리시나요? “네가 여기 있구나, 네가 여기 있어!” 주님 한분만으로 충분합니다. 툭하면 비틀거리고 거꾸러지기 일쑤인 죽마나 지위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은 남들이나 실컷 즐기게 내버려 두세요. 우리는 더 멋진 걸 찾았습니다. 죽마 마을 주민들이 들었던 이야기가 내 귀에도 들립니다.

  죽마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한데 모여 여전히 왁자지껄 떠들어대지만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옛날처럼 위로 올라가려 안달하지 않습니다. 목수가 마을에 나타나서 죽마에 올라타기를 단호하게 거절한 뒤부터였습니다. 그는 오직 위만 바라보는 흐름을 거스르고 높아지는 대신 낮아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목수는 동네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를 믿으세요. 두 발로 땅을 단단히 딛고 사세요.”

  맥스 루케이도의 죽마마을 사람들을 읽으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여전히 죽마에 올라가려고 노력하십니까? 그것이 당신을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당당하게 땅을 딛고 사세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반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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