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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박노자!!!
나에게 참 힘겹게 다가온 이름이다.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통하여 만난 그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박노자에 대한 배경 지식도 없이 이름만 알고 있던 시절 박노자가 러시아 출신의 귀화인이라는 것 때문에 한번 더 놀랬고, 그의 솔직 담백하지만 깊은 글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마지막으로 그가 지금은 한국에 없고 노르웨이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전히 그는 노르웨이에서 체류하고 있다. 그가 노르웨이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박노자라는 모순적인 이름 앞에서 많은 갈등을 한다. 그의 책을 읽고 싶다. 왜냐고? 그의 글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으면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다. 그런 또 무슨 이유냐고? 그의 글이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덮고 넘어가는 문제들까지 모두 까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솔직함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 책을 사 놓고 펴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이 한권을 읽기 위해서 9일(6월 4일~6월 12일)이나 걸렸다. 보통 이 정도 두께의 책을 보는데 3~4일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지 않고 며칠을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더 이상 리뷰 작성을 미루지 말자는 것이다. 이대로 며칠이 지나고 나면 언제 리뷰를 쓸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리뷰를 작성할 목록에 들어간지 1년이 넘는 책들도 있는데 빨리 작성하지 않으면 이 책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할 것 같아서 부담스럽지만 리뷰를 작성한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는 1부에서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2부에서 4부까지 이르는 동안 한국의 대학문화와 국가주의, 인종주의에 대하여 진단하고 나라로운 논리로 그것들을 비판한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어지는 한국에서 대학의 서열화와 그 안에서의 서열화, 단일민족 국가를 외치지만 재외동포법에 가려진 그 허구성과 불합리함을, 마지막으로는 신노예로 전락해버린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와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박노자는 한마디로 한국은 박정희식의 사이비 근대주의가 판을 치는 20세기의 중세국가로 결론을 내린다.
20세기의 중세국가! 3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이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30년이 넘게 살아온 내가 모르는 것을 그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방해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굳은 결의가 필요하다. 간신히 각오를 다지고 책을 다시 넘기기 시작한다.
문득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는 그가 건드리는 문제들이 그동안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2~3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1부에서 지적하는 것들은 나도 모르게 당연시하고 있었다. 특히 군대의 문제와 상하급자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체질화 되어 있어서 문제인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박노자의 눈으로 바라보니 만만치않은 문제인 것이다. 아마도 그가 러시아에서 자라 한국에 귀화한 외부출신의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이 책을 내면서 그 문제를 건드린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그 문제들이 해결되거나 나아지지도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론, 맹종에 길들여진 사회, 종교적 패거리 주의, 대학의 서열화 등등 그가 지적한 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내리 누른다. 한국을 사랑하여 귀화한 박노자가 여전히 노르웨이에 있는 것도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당신들의 대한민국! 책의 제목을 통하여 나와 남을 나누고,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나와는 적이라는 공식으로 사회를 다스리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지배층에게 맹종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박노자는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선언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주어진 서열대로 권리를 누리고 상부자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중세의 논리가 20세기 한국에 그대로 펼쳐 지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이런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그의 안목과 까발릴 수 있는 용기와 말빨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