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 개콘 코너 중에 나에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서울 메이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경상도 출신의 세 친구들이 서울말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이다. 허경환은 완벽한 서울 말을 구사하는 캐릭터로, 류정남은 엄청난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로, 양상국은 능력은 안되면서 류정남의 사투리를 촌스럽다 비웃으면서 허경환의 서울말 구사 능력을 한없이 부러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다는 허경환의 어투도 그렇게 서울스럽지 않다는데 있다. 억지로 끝말을 올리면서 서울 말이라고 하지 않나, 사투리를 설명하거나 급하면 아주 찐~한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구사된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을 읽으면서 왜 갑자기 서울메이트가 떠올랐던 것일까? 기획자가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서울 메이트가 가지고 있는 절대 기준과 그것에 의한 편가르기, 그리고 길들이기라는 통제 시스템이 그 안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상도에서 성장한 세 남자가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을 억지로 제거하면서 서울말이라는 절대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어 간다. 완벽하게 적응해서 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고 말하는 허경환은 1등 국민, 사투리를 버릴 수 없어서 촌 사람 취급을 받고 놀림 받는 류정남은 3등 국민, 허경환(1등 국민)을 부러워 하지만 서울말 구사 능력은 류정남(3등 국민)보다 약간 나은 정도인 2등국민 양상국! 서울말은 세 사람을 편가르고 줄세우고, 몸값을 책정하는 절대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세 사람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매커니즘(길들이기)이 된다. 그렇지만 1등 국민인 허경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투리를 자제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통제 매커니즘에 충실해도 통치자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세 사람은 이 통제 매커니즘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인정받고, 철저하게 적응하려 한다. 그 모습이 지켜보는 이로하며금 파안대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생각해 볼 것은 서울말을 그 어느 것으로 바꾸어도 이 통제 매커니즘은 유효하다는 것이며, 우리 삶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말을 영어로 바꾸어보면 어떤가? 스능성적으로, 혹은 부모의 재산 규모로, 혹은 출신지역, 혹은 미국으로 바꾸어 생각해 보면 어떤가?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단어만 바꾸었을 뿐인데 웃기는 개그가 소름끼치는 현실로 둔갑해 버리지 않는가? 김형곤씨가 일찍 작고하지 않았다면 무릎을 칠만한 시사 개그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 1권과 2권을 통하여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 자체가 순혈 주의, 지역 주의, 학벌 주의와 같은 기준을 세워 놓고 나와 남을, 안과 밖을 가르고 있으며, 나와 같은 곳에 소속되지 않은 타인에 대한 공격심과 분노, 적대감을 심어 줌으로 인하여 내부를 결속하고 나아가 밖은 물론 안의 구성원들마저 착취하는 통제 매커니즘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몇 년후에 출간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서(박노자/푸른역사)"와 같이 읽어본다면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하여 까발리는 통제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대로 박노자는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피인지라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혹은 알아챘다고 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을 골라내어 그것들이 왜 문제이며, 우리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적절하고 날카롭게 설명한다. 박노자 스스로가 외국인의 인권과 그들의 귀화와 이주에 대하여 열려 있을 때 한국은 새로운 피를 수혈받아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대한 증거가 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이 아쉬움 때문에 서평의 제목 마지막에 ?를 붙인 것이다.) 그의 말이 이성적으로는 옳지만 감정적으로는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족벌의 문제, 군벌의 문제, 군대나 교육의 문제, 정치의 문제는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다만 너무나 논리적이고, 너무나 원칙적이어서 왠지 감정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기묘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가령 군대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말들은 과연 러시아에서도 군대에 대한 경험이 없는 박노자가 한국 군대에 대하여 그렇게 자신있게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그가 지적하는 것들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들은 것인지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관행들(공관병을 가정교사로 이용한다는지)을 가지고 혹은 부정적인 면들만 가지고 침소봉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반발감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경험이 없기에 논리적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몸을 담아 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감정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것(예를 들면 자녀의 병역 면제를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박노자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지 않은가? 가끔은 놀라울 정도로 반이성적이 되어 감정적으로 행동함을 기억한다면 그의 주장이 사람들의 감정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함이 왜 그렇게도 치명적인 단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글을 읽다가 문득 드는 의문 한가지는 군 개병제와 모병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먼저 124p의 글을 인용해 보면 이렇다. 

  그러나 유승준을 왕따시켜봐야 국민 개병제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 - 군 안에서의 인권 유린, 장기 복무로 인한 고학력자의 수학 능력 저하, 지배층의 고질적 병역 기피 문화 등 - 이 해결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유승중에게 분노를 퍼붓는 것보다는, 군축과 모병제로 점차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해결법일 것이다. 모병제로 가야 약자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회 전반의 군사 문화가 드디어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124p)

  박노자는 모병제만이 군대 문화의 폐해를 줄이고 더 나아가서는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239p의 글을 살펴 보면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은 않다. 

  국민 개병제의 쇠퇴와 모병제의 유행을 들고 국민/민주국가의 후퇴를 논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나는 그걸 오히려 핵심부 국가의 대외 군사 압력이 강화되는 조짐으로 생각한다. 영국 군대가 지금 미군과 함께 아프간, 이라크 침략의 주역을 담당한다는 상황은 영국 군대가 징병제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3세계에서의 더러운 전쟁들을 위해서 징병제 군대가 아닌 전문적 모병제 군대를 사용할 때, 본국의 여론이 보통 비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부 자본의 잉여 가치 수취의 규모와 방식이 각각 지구화, 국제화되는 만큼, 대내외적 착취의 강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부 민족국가의 물리력의 역할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징병제의 폐지는 남성에 대한 군사적인 훈육의 중지를 의미하는 차원에서 긍정적 의미도 내포한다. 그런데 이미 세계를 금융,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들의 손에서는 모병제 군대란 위험한 살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239p)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군대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모병제를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그 모병제라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자본의 손에, 통제자들의 손에 의해 위험한 살인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 아니다. 상시 존재하다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박노자가 모병제를 개병제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라면 이에 대한 대비책 또한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너무나 무책임하게 모병제로 가자는 발언으로 여겨져 조중동 찌라시에 의하여 적절하게 편집되어 빨갱이 박노자도 모병제를 지지한다, 혹은 박노자도 국익을 생각한다 정도로 사용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는 미국의 모병제를 책의 곳곳에서 심하게 비판한다. 사회의 최하층에게 중산층으로의 계급 상승을 약속하면서 그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정부를, 그리고 정부의 약속을 믿고 타자를 침략하여 공격하는 미군의 비인간적이고 무식함을 비판한다. 이것은 미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병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일 것인데 만약 모병제 실시를 찬성한다면 나의 깨끗함을 위하여 누군가가 더러운 일을 감당하도록 강요하는 자기 기만이 되지 않을까?  

  박노자의 주장에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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