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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ㅣ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이 책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문제는 빠다."
상당히 불편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내 생각이 솔직하게 담기도록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봤다. 아마 이 제목 때문에 불편한 댓글들이 몇개 달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펼치기 전에 책 표지를 한번 훑어보라. 오세훈,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 유시민, 노무현, 조국 이렇게 7명의 사진이 책 전면에 포진해 있다. 오세훈과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스타 플레이어요, 손학규는 민주당의, 문재인과 유시민은 친노 세력의, 조국은 진보진영의 떠오르는 스타 플레이어다. 물론 이 사람들보다 단연 돋보이는 군계일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아직까지도 5공 청문회 시 명패를 투척한 그의 서슬퍼럼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무현을 뺀 나머지 6명은 다음 대선 후보로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노무현을 더하여 7명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는가? "엘리트"이다. 괜히 엘리트 그러니까 모호한 느낌이 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팬층을 거느린 정치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라는 말이다.
오세훈은 그의 무책임한 도박에도 불구하고 믿고 찍어주는 25%의 절대 지지층이 있다. 박근혜에겐 박사모가 있으며 정체도 모호한 친박연대가 있다. 손학규 욕도 많이 먹지만 요즘 그의 주가는 상승세이다. 조만간 손사모가 결성될지 누가 아는가? 문재인, 유시민은 독자적인 팬층은 없지만 노무현의 유산 노사모가 여전히 건재하다.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약한 것이 조국인데 강준만의 말대로 오연호가 나서서 조국 띄우기에 열심이다.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오마이뉴스와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요, 많은 팬층을 양산해 내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마치 빌 클린턴이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그의 출중한 외모와 색소폰 연주로 얻은 것과 같이 말이다.
왜 책의 내용은 말하지 않고 책 표지만 가지고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느냐? 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전부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좌파라는 책의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은 강남 좌파냐 강남 우파냐, 강북 좌파냐 강북 우파냐, 분당 좌파냐 분당 우파냐의 좌우 이념 대결을 다룬 책이라 오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가 아니다. 강준만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강북이냐 강남이냐 좌냐 우냐로 구분하고 있는 "파"이다. 나는 이 것을 "파"라고 쓰고 "빠"라고 읽기 때문에 앞으로 리뷰를 작성하면서 "빠"라 쓰려고 한다. 그것이 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노사모들의 활약이었다. 당시 돼지 저금통을 보냈던 사람들도 내 주위엔 많았었고, 정몽준의 반칙 기사가 알려지지 못하도록 자발적으로 신문을 치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노사모라는 단단한 조직은 그 이전에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정치 조직이었다. 전두환에게 사람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정치조직이라기 보다는 군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관계일 뿐이다. 정치판에 새로 나타난 노사모와 비슷한 조직을 찾자면 당시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던 팬클럽 정도일 것이다. 노사모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생소한 조직이었지만 그 생소한 조직이 가지는 힘은 막강했던 것이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심지어는 비판까지도 나서서 막아냈던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요, 마지막까지도 노무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리고 서거 2주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이들도 모두 노사모들이다.(오해하지 마시라.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전부 노사모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렇게 노무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노무현을 대통령의 자리로 올리고 방패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을 반대편 진영에서는 비웃음을 잔뜩 담아서 노빠라고 불렀다. 이후 빠순이 빠돌이라는 말은 정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박근혜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박사모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나라당에서 털려나갔던 영남 출신의 정치인들끼리 모여서 친박연대라는 괴상한 정당을 만들었다. 그들이 외쳤던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정책도, 공략도 없다. 그냥 "난 박근혜를 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 우리는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가슴에 금뱃지를 달았다. 지금은 미래 희망 연대라는 이름으로 당명을 바꾸었으나 내겐 여전히 친박연대일 뿐이다.
대통령이 되면 으레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급조된 정당들이 꽤 여럿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분야에서는 정말 탁월한 사람이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깨고 노무현을 위한, 노무현에 의한 정당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열린우리당도 오래가지 못했다. 새천년민주당도 그렇고민정당, 민자당, 신학국당도 이런 맥락에서 창당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우듯이 정당은 같은 정치적인 건해를 가지고 뭉치는 당이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뭉치는 퍈클럽과도 같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화되지 약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런 팬들을 중심으로 논공행상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대인관계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금기다"라는 말을 했는데 맞는 말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아니 친하면 더욱 더 정치 이야기는 하면 안된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인물을 지지하면 곧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진보와 보수가 있다. 물론 수구 꼴통과 무개념 진보도 있다. 그렇지만 정당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는 정당이 비교적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감당하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정당이란 최장집 교수가 말한 "머신Maschine" 정도의 위상일 뿐이다.(이것을 지적한 최장집 교수가 손학규를 지지하면서 스스로 머신이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명사의, 명사에 의한, 명사를 위한 정당이 한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자기가 따르는 스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분명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다.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 한다.(분명 비난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의 리뷰를 읽다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분은 이 책이 쓰레기라고 한다. 그 이유는 노무현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노무현보다 더 잘못한 다른 이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노무현만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판은 애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는 강준만이 노무현에 대해, 진보 진영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비판한 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애정의 강준만식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애정표현조차 인정하지 않는 독선이 과연 민주주의이기는 한가? 이것은 좌나 우나 마찬가지다. 빠가 넘쳐나는 한국 정치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점점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그리고 갈등과 분열이, 골이 깊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유이다.
둘째, 정치적인 감각을 무너뜨린다. 정치는 현실 감각이고, 삶의 방식이다. 서로 다른 점들을 인정하고, 토론하고, 이 과정에서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어디 그런가? 일단 단상을 점거하고 본다. 강달프의 공중 부양 신공, 도끼로 문 부수기, 소화기 무단 살포. 국회가 국회가 아니요,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K-1이다.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정치라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또한 모든 부분에서 마음이 일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찬성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반대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가령 무상 급식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식으로 말이다. 난 홍준표를 싫어하지만 가끔 그가 던지는 말에서 소위 은혜를 받을 때가 있다. 빠들이 넘치는 대한 민국에서 정책별로, 사안별로 토론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세련된 정치작업이 가능하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한다. 감히 주군에게 어떻게 불경하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사고가 팽배한 곳이 대한민국 정치판이 아니던가?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를 구분해 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념의 전장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에 조금은 더 유연한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강준만이 하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이것이다.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빠"가 문제다. 빠가 넘쳐나는 현실은 학연과 지연과 혈연 중심의 패거리 문화를 더 강화할 뿐이다. 이젠 정치를 조금은 "쿨"하게 냉정하게 보자.
ps. 문득 예전에 친구와 함께 주고 받았던 농담이 떠올랐다. "그런즉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는 세상 끝까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학연이라." 성경의 한 부분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너무 정확한 말에 그저 씁쓸할 뿐이다. 또한 마태우스님 말대로 역시 강준만은 밥값은 하는 양반이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