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쓰기 - 짧지만 강렬한 스토리 창작 기술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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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모든 것이 짧아지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의 상연 시간은 2시간 가까이 됐고 못해도 한 시간 반이었다. 요즘엔 1, 20분 하는 영화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MZ 세대의 특성을 반영을 했다나 뭐라나. 기성세대 특히 아날로그를 건너 온 세대는 결코 이해 못 할 것 같다. 기왕 돈 내고 보는 거 속된 말로 뽕을 빼고 봐야지 1, 20분이 뭐냐고 화를 버럭 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얼른 보고 다른 걸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TV 드라마도 그렇다. 예전엔 주말 드라마도 50회를 하거나 그 이상으로 한 적도 많고, 일일 드라마가 100회를 넘기는 건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일일 드라마로 최장을 기록한 건 80년대 초에 방영했던 나연숙 작가가 쓴 <보통 사람들>이란 작품이다. 이건 한국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다. 2백 회를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 중반 무렵엔 미니시리즈 붐이 생겼는데 미니시리즈라면서 2, 30회를 할 때도 많았다. 그게 점점 줄어 18회 하더니 지금은 16회를 하는데 최근 12회도 하더라. (여기서 단막극이나 짧게 하는 특집극은 예외다.) 이 추세라면 10회나 8회 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이렇게 사람들은 점점 짧은 것을 좋아한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짤로도 많이 본다지 않는가.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데 소설이라고 그 시류를 안 타겠는가. 예전 같으면 손에 잡힐 듯한 시집 판형에 지금은 단편 소설 몇 편 담겨 나온다. 두께도 시집과 비슷하다. 예전엔 감히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나는 3백 페이지 내외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런 책은 마음에 안 찬다. 그렇다고 내용이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읽어 보면 꽤 괜찮다.


그런데 더 짧게 쓰는 작가들이 있다. 나뭇잎 한 장에 쓴다 하여 엽편 소설, 손바닥 안에 쓸 만큼 짧은 소설이라 하여 장(掌) 편 소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김동식은 이 모두를 다 거부하고 '초단편'이라고 했다. 다 같은 건데 이게 더 와닿는다고 한다. 이렇게 짧은 걸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한다. 한 줄 시라고 하는 하이쿠 있는데. 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소설의 한 장르고 그 역사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기존의 보수적으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 특히 긴 장편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던 도스토옙스키가 알면 무덤에서 나오지 않을까? 둘 중 하나겠지. 자신도 써 보겠다고 하거나 경을 치거나.


하지만 좋든 싫든 앞으로는 이런 초단편, 장편, 엽편 소설이 각광을 받을 것 같긴 하다. 노파심인지 모르겠지만 (단편을 포함해) 초단편은 읽으면서 본격 소설을 읽을까 싶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소설이 징검다리가 돼서 본격 소설을 읽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소설이 성행하던 시절 영화가 나오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또한 TV가 나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관을 찾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할지언정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고 상보적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런 것처럼 초단편 소설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걸 읽다 보면 단편도 읽고 중장편도 읽게 되지 않을까. 모든 걸 단정 지어서 말하지 말자. 걱정하지도 말자. 장편이 맞는 작가는 장편을 쓰면 되고, 단편이나 초단편이 맞는 사람은 그렇게 쓰면 되는 거다.


이 책은 '요점만 간단히'라고 정말 초단편 쓰기의 핵심만 뽑아서 쓰긴 했다. 물론 초단편이니 기존 소설 쓰기의 개념과 방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소설 쓰기란 큰 맥락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 저자의 그 유명한 초단편 소설을 읽지 않아서일까? 개념이 와닿지는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오히려 저자의 작품을 읽고 읽었더라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하나 기억나는 건, 저자는 글을 5분 동안 읽는 것과 쓰는 것이 같은 게 초단편 소설의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리뷰만큼은 호기롭게 초단편으로 써 볼까 했는데 지금까지 쓴 글을 5분 내에 쓰지도 못했거니와 누가 이 글을 5분 내에 읽어 줄까 싶다. 그래도 저자는 초단편을 900편이나 썼고, 그것으로 유명해져 강사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모양인가 보다. 뭐가 됐든 자기 전문 분야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저자의 승승장구를 기원한다.


TMI; 이상하게도 제목이 초단편 소설 쓰긴데 자꾸 초간단이라고 쓰게 된다. 하긴 초단편 소설 읽기는 초간단 독서라고 해야겠지. 아무래도 이 장르에 대해 알기도 전에 편견이 생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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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05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렴풋이 제 기억에 가장 길다고 생각한 ‘보고또보고‘가 떠올라 찾아보니 273부작이네요. <보통사람들> 기록을 깨고싶었던 걸까요?ㅋㅋ당시에는 채널 돌리다가 주제가만 들어도 아주 징글징글했는데ㅋㅋㅋㅋ
짧은 카드뉴스도 인기라던데 저도 장편을 선호해요! 😆
말씀처럼 초단편 소설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인간이 되기를,그래서 더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사랑받기를 저도 바래봅니다~♡

stella.K 2021-12-05 15:03   좋아요 1 | URL
앗, 그랫군요. 당시 보통 사람들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뉴스에 나오고 난리였는데.ㅋ 보고 또 보고는 제가 안 봐서 그런 줄도 몰랐네요. 울나라가 장편이 약하다고 볼멘 소리 많이하는데 장편의 기준도 달라진 거 같습니다. 250페이지 정도만 해도 장편이라고 하니.ㅠ

희선 2021-12-07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단편이라 했지만 아주 짧지도 않아요 소설 읽어보니... 글은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덜 걸리기는 하죠 정말 쓰고 읽는 데 똑같이 5분 걸리기도 할지... 저는 손으로 쓰는 걸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컴퓨터 자판은 좀 더 빠를지도...


희선

stella.K 2021-12-07 10:3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작가가 좀 과장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길이가 있나봅니다. 좀 읽어 봐야할 것 같긴한데ᆢ

페크pek0501 2021-12-07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단편이라 해서 관심이 가서 일본 작가의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 소설인 것 같아요. 보르헤스도 그 시대에 이미 초단편을 썼다고 하죠.
미니 픽션이란 장르도 있는데 비슷하더라고요. 어디 연재하는 걸 읽은 적이 있어요. ^^

stella.K 2021-12-07 18:20   좋아요 2 | URL
의외로 많군요. 전 늘 소설하면 장편을 생각하는데.
단편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초단편이나 엽편은 전 못 쓸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1-07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단편 소설 앞으로도 많이 써주세요 ^^

stella.K 2022-01-07 18:0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 뭐 오랜만에 이달의 거시기가 돼서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만 이걸로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만요.
솔직히 공들여 쓴 건 <소설보다 가을>이였는데 말입죠.ㅋㅋ
새파랑님도 축하혀요~!^^

책읽는나무 2022-01-07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 드려요~ㅋㅋㅋ 왜 웃음이 나오죠??^^
<소설 보다 가을> 그 글도 참 괜찮았는데 말이죠!!
근데 이 글도 괜찮아요. 암튼 축하 드려요^^

stella.K 2022-01-07 20:14   좋아요 1 | URL
오늘은 넉넉한 저녁이잖아요.
적립금도 생겼겠다 무슨 책을 살까 행복한 고민에도 빠지고.ㅎㅎ
책나무님도 축하드립니다.
그 페이퍼 당선될 줄 알았구만요.^^

서니데이 2022-01-0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stella.K 2022-01-08 10:51   좋아요 1 | URL
앗, 고맙습니다. 잘 지내죠? 서니님도 즐거운 주말보내십시오.😊

thkang1001 2022-01-07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stella.K 2022-01-08 11:04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thkang1001도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초란공 2022-01-07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박경리 작가, 조정래 작가의 작품 같은 대하소설을 구경하기 힘들어질까요?
아니면 욕구와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stella.K 2022-01-08 11:00   좋아요 1 | URL
후자쪽이 맞을 거예요. 순수문학쪽에선 거의 힘들 수도 있을 것같아요. 한 시대 공동체를 흔들만한 큰 사건이 예전만큼 있어주지 않는 한. 그래도 판타지같은 장르문학은 있잖아요.
초란공님도 축하합니다. 초란공님의 당선작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되더군요. 👍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2-01-08 0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주말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2-01-08 11:0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축하해요. 좋은 주말되시길.🤗

thkang1001 2022-01-0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r.K님! 감사합니다!
 
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를 좋아하는가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다소 주춤하게 된다. 분명 관심있는 작가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난 분명 단편으로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지만 그의 장편을 보면 적나라한 섹스 묘사에 결국 질리고 만다. 적당히만 했었어도 그를 완벽히 좋아했을지 모를 일이다.


정말 오랫만에 그의 장편 소설을 완독했다. 완독을 해야한다면 <1Q84>여야한다. 오래 전, 세 권을 완비하고 2권 3분의 1까지 읽었던가 하곤 방치했다. 게다가 1권은 무려 두 번이나 읽었다. 다시 읽을 생각을 했다면 2권을 이어 읽으면 되는 것을 그래도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자 하곤 그렇게 되고만 것이다. 그리고는 '역시 하루키의 장편은 내겐 넘사벽이군.' 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완독하다니. 이유라면 글쎄, <1Q84>는 세권이고, 이건 두권이라는 정도? 아무래도 <1Q84> 보단 빨리 읽을 것 아닌가.


읽지 말까를 고민했던 때가 딱 한 번 있긴 했는데 그건 역시 섹스 묘사였다. <1Q84>을 읽다 포기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작품은 겨우 15살 밖에 안 된 다무라 카프카 군이 가출을 해서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또 누나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한다. 물론 이들의 존재는 끝내 밝혀지지는 않지만 하루키의 이런 설정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비틀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때 나는 언젠가 읽은 그의 인터뷰 내용을 생각했다. 자신은 성에 대해 보수적이지만 소통의 기재로 다루길 좋아한다고 했다. 나름 인정은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너무 다루니 흥미롭지는 않다. 차라리 그 부분을 빼거나 줄이고 다른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면 좋을 텐데 좀 질린다 싶다. 옆에 있으면 알려주고 싶다. "저기요, 그런 거 독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게다가 오해 받을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별 볼 일 없는 작가가 빨리 주목 받고 싶어 발광하는 걸로. 하지만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대가에게 이런 지적질이 가당치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읽는 것을 포기할까 했을 때 잠시 숨고르기를 할 겸 읽기를 중단하고 (끝까지 읽기의 동력을 삼으려고) 저 유명한 파리 리뷰지와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읽었다. (<작가란 무엇인가> 1권에 실렸다) 마침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그는 이제까지 쓴 작품중에 가장 어려운 작품이라고 했다. 역시 작품을 보는 눈이 작가와 독자가 다르구나 싶다. 독자인 내가 볼 때 하루키는 다소 지루할 수는 있어도 어려운 작품은 없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다. 물론 이 작품은 약간의 초현실을 다루고 있는데 그래서 어렵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그는 상당히 겸손한 작가다. 그의 글 쓰기 스타일과 코드를 안다면 어려운 건 없다.


그는 소설을 쓸 때 큰 틀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그때 그때 생각나고 내키는대로 쓴다고도 했다. 어찌보면 그건 재즈를 닮았다. 하지만 우린 그가 재즈 스타일로 글을 쓴다고 하지 않고, 그 자신 즉 '하루키 스타일'로 쓴다고 한다. 그렇게 그에게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한때 국내외 적잖은 작가들이 그의 글 쓰기를 흉내 내기도 했고 지금도 있는 줄로 안다. 예전엔 누가 누구를 따라하면 독창적이지 못하고 하수로 보는 시각도 없지만, 지금은 글쎄 오리지널리티를 인정 받은 마당에 굳이 하루키 스타일이라고 헐뜯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건 솔직히 독자인 나도 따라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 무엇에도 구애 받지 않고,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지 않고 정말 그날 그날 마음내키는대로 글을 쓰고 싶다. 하다못해 하루키처럼 쓰겠다는 욕망도 내려놓고. 물론 그렇게 쓸 수 있는 게 하나가 있고, 우리는 이미 그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일기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일기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어느 정도 각을 잡고 써야한다. 게다가 누군가를 흉 보거나 헐뜯는 말도 할 수가 없다. 물론 딱히 누구라고 하지 않고 익명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이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일기는 그 모든 게 가능하다. 어차피 나밖엔 볼 사람이 없으니까 맞춤법이 틀리거나 말거나, 누구를 흉보거나 좋아하거나 아무렇게나 써도 자유롭다. 그만큼 글 쓰기에서 중요한 건 자유함 아닐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1Q84>에서 편집자 덴고가 어떤 소녀의 원고를 보는데 난독증에라도 걸렸을까 문법은 엉망인데 그 속에 뭔가 있다고 하면서 버리질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에 대해 글 참 쉽게 쓴다고 일갈할 수도 없다. 쉬운 게 사실은 더 어려운 법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작품도 쓰는데만도 6년인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그랬다지. 작가의 모든 작품의 초고는 다 걸레라고. 하루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독자도 만만하게 보고 따라하고 싶은 어느 글도 쉽게 써진 글을 없다는 얘기다. 솔직히 하루키의 문장은 깊이가 느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표현하자면 겉절이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던 건, 그는 자신이 읽은 책과 들어 온 음악만 가지고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이 작품도 보라. 카프카는 물론이고, <겐지 모노가타리>도 나오고, <아라비안 나이트>나오고, 소세키도 나온다. 그뿐인가 <대공 트리오>도 나오고, 그의 독서팁도 슬쩍 흘리기도 한다. 이왕 <대공 트리오>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문학수 음악 전문 기자겸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다. 혹시 어떤 글에 음악으로 아는 척 하고 싶으면 절대로 흔히 알고 있는 작품을 가지고 쓰지 말라고. 그의 <1Q84>를 보라.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야나체크가 누구지 하며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만일 거기에 우리가 잘 아는 베토벤의 <운명> 같은 걸 썼다고 하면 그건 정말 싸 보이는 거라고 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읽어 온 책이나 들어 온 음악은 그의 책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어 대담집이나 에세이 등으로 재생산 되고 있다. 그야말로 하루키 스타일을 넘어 월드,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자유롭게 쓴다는 점에서 빙산의 일각이란 법칙은 하루키에겐 예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즉 작가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들과 생각들을 수면 아래로 숨기고 아주 조금만 보여준다고 해서 붙여진 법칙. 하지만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그런 건 바보나 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빙산의 일각조차도 다 보여주는 최초의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처럼 화수분같이 왕성하게 써 대는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가 다섯 발자국쯤 앞서가서 독자들에게 "따라 올 테면 따라 와 봐."하며 뭔가 독자의 사고를 고양시키는 작가도 좋지만, 이렇게 뭔가 만만한 게 느껴져서 독자도 따라해 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면 그게 더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예 글 잘 쓰는 작가가 있다면 독자는 그냥 우러러만 보면 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 어떤 작가도 그의 처음은 독자였고, 글 쓰기를 가르치기 보다 독자로 하여금 글 쓰기의 욕망을 자극하는 게 더 우위고 상수다. 그래서 하루키는 제자를 두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진짜 하려고 하는 말은 따로 있다. 그건 '작가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다. 지금까지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일까. 난 거기에 의문을 재기한다. 어쩌면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작가가 죽었을 때나 가능하다. 작가가 죽어서도 그 작품이 회자되고, 독자가 기꺼이 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작가다. 그러나 작가는 살아 있을 때가 더 중요하다. 생각해 보라. 나는 하루키란 작가를 80년대 말, 90년 대 초에 듣기 시작했다. 그의 데뷔 년도가 1979년이니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일찍일 수도 있겠다. 비슷한 무렵에 우리나라에 하루키 못지 않게 이름을 알린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작가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 기껏해야 20년? 그 기간 동안 뭐가 됐든 열심히 쓴다. 그렇게 문단계에 이름을 알린 작가들은 지금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끔 떠올리면 뭐하고 사나 궁금해하다 만다. 그들은 어느 새 신진 작가들에게 문단계의 방석을 물려주고 어디가서 자신이 무슨 작품을 썼다며 추억팔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말 늙기도 전에 이미 노쇄해져 버린 것이다.


하루키는 마라톤으로 단련되어서일까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작가는 독자와 함께 나이들고 늙어갈 수 있어야 한다. 작가를 누가 기억해 주겠는가. 당대의 독자들이다. 그걸 작가들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과거의 자신 속에 안주해버리는 것 같다. 지금 작품을 쓰고 있지 않다면 그는 작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의 2, 30대 독자들이 앞으로 기억할 사람은 8, 90년대 작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의 작가들만 기억할 것이다. 그나마 그들도 언제부턴가 새로운 작품을 쓰지 않는다면 선배 작가처럼 될 것이고, 그 소수의 독자들만 멈쳐버린 시간까지만 기억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될 수는 있다. 그러나 증명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 존재감으로 증명되어져야 한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 있다고 독자들에게 잊을만하면 한번씩 새 작품을 투척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키에게 커다란 동굴같은 도서관도 지어주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나라에 사람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과연 있던가. 김대중 도서관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작가 이름을 딴 도서관이 있던가. 그러고 보니 이 책에 고무라 도서관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작품 년도가 2006년인데 그로부터 15년 뒤에 그의 이름을 딴 도서관이 지어질 거라고 하루키는 예감했을까. 그에 비해 우린 뭔가? 원로중 최근까지 작품활동을 한 조정래나 황석영 작가를 위해 도서관을 짓는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타계한 작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박물관이나 생가 보존 정도는 하는 것 같다만. 이건 또 작가만의 문제는 아닌듯 히다. 뭔가 국가적으로 예우할 것이 있으면 해야하는데 (늘 우리 소시민이 하는 소리를 되풀이 한다. 정치인들 서로 싸움박질만 할 줄 알지 그런 것도 신경없다고) 한숨만 나온다. 혹 그런 시도가 있다고 해도 사상 검증이 안 됐다고 퇴짜를 놨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과북이 갈렸다는 건 얼마나 많은 발전을 저해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재밌지? 그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19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두꺼운 장편을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놓고 그는 이렇게 두서너 권씩이나 되는 장편을 잇달아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팔에 힘이 떨어졌는지 요즘엔 제법 얇은 책도 내더라. 아무튼 독자와 함께하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루키를 완전히 좋아하진 않지만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데미안>은 몰라도 이 작품을 감히 청소년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차마 권하진 못할 것 같다. 읽을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은 20세기를 너머 21세기다. 그냥 15세 소년이 나오는 어른들을 위한 판다지 동화 같은 소설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난 그의 단편과 에세이는 좋아하는데 그것만이라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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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1-25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에 대한 stella.k님의 글 너무 공감됩니다.
저도 하루키를 좋아하기도 아니기도 해요. 얼마전에 읽은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에서 몸은 작가가 이름을 알리려면 끝까지 계속 써야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스텔라님 말씀처럼 제가 젊었을 때 많이 읽었던 작품을 쓴 한국의 작가는 지금 작품을 거의 내지 않고 있어 안타까워요~~
하루키작가에게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히 있다는 점이 저는 좋아요^^
‘빙산의 일각의 법칙‘, 오늘 새롭게 알았어요~~

stella.K 2021-11-26 12:36   좋아요 2 | URL
자랑은 아닙니다만, 제가 책 리뷰를 가장 많이한 작가가 하루키더라구요.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립금을 가장 많이 받았고. 정말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왤케 많이 썼나 싶어요. 나중에 책 한 권 낼까봐요.😄

미미 2021-11-25 2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겉절이ㅋㅋㅋㅋ👍1Q84 재밌게 읽었는데 늘 그렇듯 다 지워져서 스텔라님이 언급해주신 내용 기억하나도 안납니다ㅋ😳 게다가 야한 장면?!!
여성 캐릭터 혼자 살면서 아주 멋졌던 것만 기억나요~^^♡
그리고 저도 생가 홍보보단 작가도서관이 더 늘어났음 좋겠어요.

stella.K 2021-11-26 12:44   좋아요 1 | URL
생각해 보니 그렇겠더라구요. 동네 이름 딴 도서관은 있어도 작가 이름 내세운 도서관하나없으니 도서관 애용자들 아쉬울 것 같아요. 겉절이 괜찮았나요? 그거 말고 더 괜찮은 단어가 없더라구요. 겉절이 김치 맛있잖아요. 아마 하루키도 맛 보면 좋아할걸요?🤣

새파랑 2021-11-25 2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 단편도 좋은데 장편을 더 좋아해요.ㅋ 해변의 카프카는 특히 더 좋다는 ^^ 그래도 다른 책에 비해 해변의 카프카는 나름 요즘(?) 음악이랑 책이 언급되어서 더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청소년 권장도서는 절대 아닌것 같아요 😅

stella.K 2021-11-26 13:46   좋아요 2 | URL
아, 그러시구나. 해변의 카프카가 사실은 음악겸 그림이더라구요. 근데 하루키가 음악 인용하기 좋아한다고 유튭에서 그 음악 찾아보고 그러면 어떡하죠?🤣

기억의집 2021-11-26 01: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 너무 잘 쓰셨어요. 저는 하루키 좋아하고 섹스 묘사에 그렇게 반감을 갖고 있지 않아서 딱히 그게 걸림돌인 적은 없었어요. 젊었을 때 글은 관망적이고 초월적인 작가의 세계관, 환상과 잘 어울렸던 것 같고 나이가 들면서 묵직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미야베 미유키 혹은 많은 일본 작가들의 글을 초기부터 현재 출간된 것까지 많이 읽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좋은 작품은 하루키였어요. 이건 저만의 감상평이라… 아마 하루키는 더 이상 글을 쓰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야기는 잘 만들어내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음악이든 글에 대한 것이든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실한 작가임에는 분명해요. 맞아요. 야나체크 다 검색했을 걸요~

stella.K 2021-11-26 18:54   좋아요 2 | URL
알라딘엔 독서의 숨은 고수들이 많이 계시죠. 전 그중 한분이 기억니이라고 생각해요. 거봐요.미미 여사를 비롯해 일본 작가들 잘도 꿰고 계시잖아요. 하루키에 대해서도 저보다 잘 알고 계시고. 나중에 일본문학 리뷰집 한번 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 그책 꼭 살꼬예요.😉

희선 2021-11-26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소설을 써야 소설가다 말하기도 했어요 소설가가 되는 사람은 많아도 언제나 소설가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도 하더군요 한국도 그렇게 다르지 않겠습니다 지금 소설 쓰는 사람을 알고 읽기도 하지 예전 건 잘 찾아보지 않기도 하네요 고전은 보는 사람 있군요


희선

stella.K 2021-11-26 13:41   좋아요 3 | URL
하루키도 그런 말을 했군요. 역시 하루키...! 작가는 썼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1-11-27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섹스 장면을 많이 쓰는 작가라는 건 예전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라는 장편을 읽고서 알았어요. 의외였죠.누구에게 그 책을 선물하기가 곤란할 정도였어요. 전 이런 해석을 하게 되어요. 현실 속에서 섹스 하는 관계가 많은데 그걸 작가가 제외시키고 쓰면 안 되니까. 철저히 현실 반영을 해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말이에요. 또 하나는 자기의 보수적 성향을 그런 걸 씀으로써 상쇄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고요. 둘 다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stella.K 2021-11-28 17:1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언니 말씀대로라면 하루키는 후자쪽이 아닐까 싶기도해요.🤔

고양이라디오 2021-12-06 12:50   좋아요 0 | URL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맞을 꺼예요. 하루키 인터뷰에서 하루키가 섹스를 소설에 쓰는 것은 현실반영이라고 말했었어요. 현실 속에서 섹스를 하는데 소설 속에서 굳이 숨길 필요가 있느냐?

니르바나 2021-11-28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소설을 한권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읽어볼까 생각해서 몇권 주문해서 제 책장에 서 있긴하죠.
그러나 하루키 현상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선인세를 지급하고
하루키 소설을 계약하는 것을 보고
뭐 그렇게 까지 읽을 만한가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한국 여성 소설가의 소설도 좋아하는데
한국 작가 중에 공지영 소설도 한권도 안 읽었습니다.
백만부 팔리는 작가들은 영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루키의 수필은 몇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볍게 읽은 책이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는게 하루키 수필이 준 인상입니다.
저는 오에 겐자부로의 글이 마음에 듭니다.

추신)
스텔라님 리뷰을 보니 갑자기 하루키가 땡기네요.ㅎㅎ


stella.K 2021-11-29 06:28   좋아요 1 | URL
ㅎㅎ 공지영은 한 권 읽었는데 저도 별로여서 그후 안 읽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작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는 궁합. 제가 볼 때 니르바나님은 하루키완 맞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오에를 오래 전에 읽으려다 좌절했는데 저도 니르바나님께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12-0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ㅎ

전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하루키예요ㅎ 당연히? 섹스묘사에 대해 반감도 없고요.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인터뷰에서 하루키씨가 현실에서 섹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소설 속에서도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거 같아요.

stella.K 2021-12-06 18:01   좋아요 0 | URL
엇, 그랬나요? 성적으론 보수적이고 그냥 소통의 하나 뭐 그 정도로 얘기하던데. ㅋ 전 하루키가 삶은 보수적이잖아요. 단순하고 특별한 스캔들도 없고. 그래서 싫진 않더라구요. 사생활도 복잡하면 당연 거들떠도 않봤겠죠?ㅋㅋ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다르거나, 튀거나, 어쨌거나
김홍민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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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너무 모범적인 독서를 하는 당신에게


나는 장르소설을 (거의)읽지 않는다.

그래도 내 길지만 가는 독서 역사에서 아주 잠깐 장르소설 그것도 추리소설을 읽은 적이 있긴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 앞에 앉은 남자 아이를 조금 좋아했는데 그 아이 눈에 띌려고 읽었다. 그 때 루팡과 셜록이 나오는 얇은 어린이용 추리소설이 있었다. 두 인물 아니면 변변한 추리 소설도 없었던 때였다. 하지만 훗날 생각해 보면 보통 이 두 인물을 접하면서 추리소설에 입문하게 되지 않나.


녀석의 눈에 띌려고 책을 가슴 높이도 아닌 거의 코높이까지 들고 읽었다. 그러자 역시 걸려 들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나의 이마 정중앙을 살짝 밀더니 "이 책 나 빌려 줄 수 있어?" 한다. 나는 웃으며, "그럼.빌려 줄게."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싸 보이겠는가. 나는 최대한 시크하게, "그래? 알았어. 다 읽고." 이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그 아이는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나중에 좋아하는 아이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가질 수 없다면 버리랬다고 난 당연히 녀석을 버렸다. 하지만 너무 많이 버렸다. 추리소설은 버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그것까지 버리고 만 것이다. 그게 무슨 죄라고.


그래도 살아오는 동안 추리를 읽어 보려고 한 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래도 마음 같지가 않아 알만한 유명한 작품들을 안 읽고 방치하다 결국 중고샵에 팔아버린 적도 있다. 추리 소설도 안 읽는데 판타지나 SF를 읽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난 장르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장르물을 척척 잘 읽을 수 있을까. 철학책 좋아하는 사람에겐 열등감이 없는데 말이다.


이 책에 <터무니없는 책들을 좀 더 부지런히 읽어왔더라면>(196p~)이란 글이 나온다. 이 '터무없는 책'의 범위는 고전과 순수 문학을 제외한 SF나 판타지, 특히 만화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또 이것을 저자는 '사회적으로 핍박 받아온 책'이라고 까지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그런 책은 이른바 80년대 빨간 책들 즉 사회과학 도서들인줄 알고 있는데, 또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이 맞기도 하다.) 저자는 간혹 듣기 힘든 독창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곤 하는데 그럼 감탄하게 되곤 한다. 물어보면 그들은 바로 그런 '터무니 없는 책'을 어려서부터 탐독해 왔다는 대답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책은 뼈대없는 책, 킬링타임용으로 폄훼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만화나 하이틴 로맨스는 더더욱. 이런 책을 학교에 가져가 담임 선생님 눈에 띄면 압수를 당하거나 그 자리에서 사지가 찢겨졌다. 것도 나름 트라우마다. 책 읽으라고 하곤 책을 찢는 건 어느 나라 법이란 말인가. 사회적으로 핍박 받아 온 거 맞다. 하지만 지나놓고 보면 그런 추억 하나쯤 있어야 어디 가서 왕년 소리 하면서 가오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가 이렇게 말하니 이 부분에서 어지간히 힘든 시절을 견뎌 왔나 보다. 왜 장르물의 훌륭함을 몰라주냐고 툴툴거리는 것을 넘어, "우리 이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도 같다. 가히 장르물 전문 출판사 사장님답다.(저자는 출판사 북스피어의 사장님이시다.) 그러면서 저자는 '라이트 노벨'에 주목해 달라고 한다. 라이트 노벨이란 무엇인가. 몇마디로 설명할 수 있나? 뭔가 알 것 같긴한데 설명하기는 애매하다. 그것은 문고본 판형으로 표지가 만화적 일러스트가 더해진, 중고생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미스테리, 판타지, 로맨스, SF가 혼재되어 있지만 '장르소설'로 분류할 수 없다. 더 나아가, 라이트 노벨의 범위는 매우 넓어서 때로는 장르나 순수문학까지 커버한다(202p~).


그러니까 어른들이 사춘기 아이들에게 죽어라 고전을 읽으라고 할 때, 죽어라고 안 읽고 다른 책을 읽고 있다면 그게 라이트노벨일 가능성은 거의 백퍼다. 예전에 이런 건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걸 저자는 무려 7페이지 반에 걸쳐서 설명해 놨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문학사대주의가 엄청났겠구나 싶기도 하다. 저자의 '터무니없는, 사회적으로 핍박 받은 책'이 그냥 볼멘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그 글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문학 베스트 10위 안에 절반 이상이 라이트노벨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라이트노벨이 한국의 독자(아마도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장차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조금은 필요한 것이 아닐지.(그래서 그동안 한 번이라도 했나?) 지금부터 꼭 10년 전(이 책은 2015년 생이다) 장르소설도 라이트노벨 같은 흐름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논의도 없다가 뒤늦게 '한국의 스티븐 킹을 키워야 한다느니', '한국의 서점 매대가 외국 추리소설로 뒤발해 있다느니' 하는 호들갑과 개탄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던 기억이 난다. 언제까지 '한국 소설의 경쟁력' 타령만 할 것인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206p)

좀 뼈때리는 얘기 아닌가. 사람에게 족보와 민증이 중요하듯, 책도 계통과 체계를 만들면 누구도 감히 뭐라고 하지 못한다. 라이트노벨의 역사가 얼만데 언제까지 족보없고, 체계없다는 소릴 들어야 하는가. 마치 문학의 서자 혹은 이유없이 미움 받는 며느리 같다. 책 가지고 자기검열이 심하면 한국의 스티븐 킹, 한국 소설의 경쟁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제 스티븐 킹이 프로젝트가 낳은 적자라고 하던가. 좋은 책, 나쁜 책 구분하지 말고 무슨 책이든 맘껏 읽을 수 환경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근데,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들은 철학책만 읽을 것 같지? 천만에.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잘 생긴 평전에서, 제자 맬컴이 보내주는 미국의 대중 잡지에 실린 추리소설을 읽었다 한다. 그러면서 그는 수 백권의 소설 중 좋은 책이라 부를 만한 책이 두 권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버트 데이비스의 추리소설 ('두려운 접촉')이라고 했단다. (이 책은 현재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란 이름으로 나와있다.)


어디 그뿐인가, 헤밍웨이나 카뮈도 추리소설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모든 사람이 추리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추리소설이 무익하거나 해악이라고 여기진 말라고 호소한다. 그러고 보면 저자가 맺힌 게 정말 많구나 싶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하면 음지에서 읽을 걸 양지에서 읽자는 말인 것 같다.


이 책은 라이트노벨뿐만 아니라 장르물에 대해 정말 맛깔스럽게 잘 써 놨다. 읽고 있으면 나 같은 문외한도 한번쯤 읽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저자가 '터무니 없는 책(장르물) 어딨까지 읽어 봤니?' 하며 잘난 척하는 것도 같은데 그게 밉지가 않다.


인터넷 서점에 하루면 몇 편씩 올라오는 리뷰(또는 페이퍼)를 보면 고전 아니면 신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뭔가의 스토리가 읽혀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춘기 때 읽지 않은 고전을 성인이 되어 속죄하는 마음으로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게 아니더라도 책이 좀 예쁜가. 그런데 오늘 지구에서 고전을 읽었다면 또 다른 행성을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장르물도 읽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책 중엔 희대의 걸작도 있는 것으로 안다. (알고 있으면 공유해 주시라.)


이제 서평집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이 책은 그런 책 가운데 단연 블루오션이다. 나 같이 장르소설 안 읽는 사람이 읽기 딱 좋다. 그리고 어디가서 꿀리지 않고 아는 체하기 딱 좋다. 장르물에 대해 아는 체 하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라. 이 책에 소개된 책을 읽으면 더 좋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표지가 좀 구리다. 신경 좀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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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0-31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추리 소설은 유익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며 추리한다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되지요.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지루하게 읽힐 고전을 필독서로 선정하여 읽게 하는 교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책은 무조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읽히는 게 옳은 순서라고 생각해요.
통통 튀는 아이디어는 만화에서 많이 얻을 수 있는데 학부모들은 만화를 보면 질색하는 경향이 있죠.

stella.K 2021-11-01 10:3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런 부모가 아직도 있다는 게 놀라워요.
그들도 어렸을 땐 다 만화 보고 자랐을텐데 말이어요.
사실 추리가 생각의 확장이란 측면에선 좋긴한데
밝은 느낌은 아니잖아요. 살인에서 시작하는 것도 많고.
아마 그래서 부모들은 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건 좀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ㅋ
학습 만화는 권장할 거예요.

새파랑 2021-10-31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고전은 장르소설에 안들어가는 군요 ㅎㅎ 전 예전에는 추리소설을 가끔 읽었는데 어느 순간 잘 안읽게 되더라구요 ㅜㅜ 혹시 좋은 장르소설 있으면 알려주세요 ^^

stella.K 2021-11-01 10:38   좋아요 1 | URL
근데 셜록이나 루팡은 벌써 나온지 200년쯤 되지 않았나요?
그럼 뭐 고전이라고 해야겠죠.
새파랑님도 저랑 비슷하시네요.ㅎ

잠시만 기다리소서. 내 언제고 이 책에서 실한 것으로 사시미를 떠서
진상해 올리리다.ㅋㅋ

책읽는나무 2021-11-01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 6학년 짝꿍이 잘못했네...ㅜㅜ
서로 오작교 연결만 되었어도 추리소설로 시작해 장르의 깊은 세계로 빠졌을텐데 말이죠ㅋㅋㅋ
저도 어릴 때 셜록 홈즈 그 시리즈 읽어 대느라 정신 없었었네요.옆집 친구랑 같이 읽으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경쟁하 듯 읽었고,맨날 둘이서 저 사람 어쩌고 저쩌고 추리 흉내내고..갑자기 그랬었던 추억이 돋네요^^
그랬었는데도 생각해 보니까 성인이 되면서 갑자기 장르쪽은 그리 많이 안읽어졌던 것 같아요.왜 그랬을까??
몇 년 전부터 스티븐 킹 책을 찾아 읽으면서 어머나~~숨어 있었던 추리극이 좀 살아나는 느낌이 들긴 하더라구요.
저자의 말처럼 폄하시 된 사회 분위기 탓도 작용해온 듯 합니다.잘 만들어 내는 북스피어 같은 출판사가 많아지고...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장르쪽 작가들이 더 많아진다면 기꺼이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는 찾아서 읽어볼 노력을 해야겠네요^^

stella.K 2021-11-01 18:01   좋아요 1 | URL
ㅎㅎ 옛날 초딩하고 지금 초딩하고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땐 대놓고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알아서 하는 거죠 뭐.
저는 추리는 영화나 드라마로 본지라 책으로는 별로 읽은 게 없더라구요.
이 책 기회되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저자가 정말 재밌게 글을 잘 써요. 저는 기회가 좋아서 중고샵에서
천원에 샀는데 그런 기회 다시 있을까 싶어요.^^

희선 2021-11-02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리소설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루팡이나 홈즈 알았지만 그런 게 책인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책이 있다는 거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보고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추리소설이라는 게 있다는 거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본 거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일본 소설이 많네요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그런 건 몰라도 읽다보면 범인은 알기도 했어요 그런 것도 읽다보니 사람이 죽는 거 별로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사회파 소설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도 하니...


희선

stella.K 2021-11-02 16:0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ㅎㅎ 부모가 추리소설을 자녀에게 권하지 않는 게
그런 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 죽이는 거 아무렇지도 않은 뭐 그런 이유.
그건 포르노 잡지나 폭력물을 염려하는 수준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은 진짜 흥미진진하잖아요.^^

 

17살 소녀가 어느 날 납치되어 무려 7년 동안 방에 감금된다. 제목이 그래서 그렇지 사실은 가로 X 세로 3.5미터 남짓의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공간이다. 거기에 없는 것이 없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샤워 시설도 있고, 간이 싱크대와 침대, 벽장도 있다. 그뿐인가, TV도 있고, 천정엔 조그만 창문도 뚫려있다. 더구나 그녀를 납치한 남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생필품을 가지고 온다. (가지고 오면 한나절을 지내다 간다.)


처음에 소녀는 반항도 하고, 탈출도 감행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서서히 납치범에게 길들여져 갔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가스라이팅. 그러나 영화는 그 모든 있을 법한 상황들을 배제하고 그녀의 아들 닉의 5살 생일이 되는 날부터 시작을 한다. 사실 성별을 말하지 않으면 여자 아인 줄 착각하겠다. (이 아들 역은 '굿 보이즈'에 나왔던 제이콥 트렘블레이다.) 곱상한 외모에 머리를 태어나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이것은 또 이들 모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이 될 수밖에 없는 건 납치범 닉의 완력도 있겠지만 좀 허접해서 그렇지 방에 있을 건 다 있다. TV가 있어 세상 소식을 들어 볼 수 있고, 작지만 하늘도 바라볼 수 있다. 더구나 생필품을 공수해 주지 않는가.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다.


그러나 소녀 조이는 어느새 여인이 되었고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언제까지나 무력하게만 있을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동시에 완전범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납치범 닉은 어설픈 납치범이라는 말이다. 그는 조이를 납치하는 데 성공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납치가 성공하려면 그녀에게 임신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룸에 자신만 있는 것 같으면 탈출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자신은 룸에 갇힐지라도 아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해 줘야 한다. 하지만 잭은 이제 막 5살이 되었다. 탈출을 감행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엄마와 TV가 전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아이가 이 방을 나가야 한다는 걸 무엇으로 납득할 수 있겠는가. TV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과 세상에 나가서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건 확실히 다른 것이다. 바로 그것을 조이는 엄마로서 아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이들에게 필요한 건 용기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다 죽은 것으로 가장하고 카펫에 돌돌 말아 닉에게 맡긴다. 그러면 닉은 그런 줄만 알고 장례든 매장이든 한다며 잭을 바깥으로 반출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룸을 빠져나간 잭의 시선이 참 인상적이다. 닉이 운전하는 차에 짐짝처럼 실려서 처음으로 본 세상과 하늘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고 동시에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잭의 탈출극은 처음 시도한 것치고는 아슬아슬했지만 성공적이었다. 그 덕분에 조이도 구출이 되고 납치범의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거기서부터다. 조이는 방을 나가면 그리운 부모도 만나고 모든 것이 다 좋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더구나 그녀의 아버지가 무조건 자신을 받아주고 좋아해 줄 줄 알았는데 뭔가 모를 벽이 느껴진다. 거기서 오는 괴리감. 자신이 그럴진대 아들은 과연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결국 그것을 폭발시킨다. 그런 불안한 엄마와 딸의 중첩된 감정을 조이 역을 맡은 브리 라슨은 실감 나게 연기한다.


어쩌면 아이는 어른 보다 현실 적응이 빠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주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인지도 모르고. 영화는 어린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사회성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아이들은 종종 사물을 의인화한다. 잭도 갇혀있는 동안 그 안에 있는 사물을 모두 의인화한다. 그게 참 특별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 친구가 그리웠으면 사물을 의인화할까 싶기도 하고,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쥐에게조차 친절을 베풀지 않는가.


여담이지만, 사물을 의인화하는 꼭 어린아이의 특징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어른도 가끔은 의인화한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아이들은 눈에 띄는 모든 걸 의인화하지만 어른은 선택적으로만 한다는 정도? 가령 나 같은 경우엔 버려지는 음식을 보면 이상하게도 안쓰러움이 있다. 이것들도 누군가의 위로 들어가 영양을 공급하는 에너지로 바뀌길 소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건 무사히 사람의 위에 도착이 되고 어떤 건 사람의 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버려져야 한다니 그것들의 입장에선 좀 억울하고 원통할 것도 같다. ㅋ 그뿐인가? 책의 원성은 어떻고.


별것 아닌 장면 일 수도 있는데,(사실 영화에서 별것 아닌 장면은 없다. 모든 건 철저하게 짜인 각본대로다. 별것 아닌데 지나칠 수 없다면 그걸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잭이 엄마의 집에서 계단을 오르지 못해 비틀거리는 장면이 있다. 순간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며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은 마당이 좁은 대신 옥상이 있었다. 거기에 오르는 계단이 제법 길었는데 난 너무 어려서 한동안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조금 더 자라서 오르기 시작한 옥상은 아래에서 보던 세상과 너무 달랐다. 그렇게 세상을 깨우쳐 가기에도 아이는 너무 바쁘다.


조이가 그렇게 부모에게 화를 내고, 나는 좋은 엄마가 못 되는 것 같다고 자책한다. 그때 잭이 딱 한마디 한다. 그래도 엄마잖아. 그게 또 마음을 울린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자신이 좋은 엄마가 못 된다는 걸 너무 잘 아는지도 모른다. 그걸 아이도 알고. 그래도 엄마란다. 엄마는 역시 스스로 되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한 김춘수의 시처럼 누군가 엄마가 되도록 해야 엄마가 되는가 보다.


영화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요즘 들어 자발적 은둔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요즘의 세상이 굳이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이 없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인터넷과 sns가 있는데 뭐 굳이 귀찮게 사람을 만나고 사귄단 말인가. 게다가 인간이 좀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는 생물체인가. 오해도 잘하고, 삐지기도 잘 하고. 그걸 일일이 맞추기도 피곤하다.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것도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방에 갇히고 싶을 지경이다. 더구나 지금의 팬데믹은 자발적 은둔자를 만들기에 최적 아닌가. 자꾸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하니.


하지만 지금의 팬데믹이 어디 그렇기만 하겠는가. 그것의 전제는 은둔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바탕으로 한 거리 두기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서 살 수 없다. 다소 힘들고 어렵더라도 함께 있는 이득이 혼자 있는 것보다 크다.


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방은 혼자 있기 좋은 공간임에 틀림없다. 방은 깃들이고 쉬기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에겐 탈출을 위한 공간이고, 누구에겐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출격을 다짐하는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건, 어떤 의미가 됐든 거기에 언제나 머물 수 없다는 거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소설이 먼저 나왔고 소설을 쓴 작가 엠마 도노휴가 시나리오를 써서 여러 유수한 영화제 각본상 후보에 올랐지만 실제로 수상으로 가지는 이어지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후보가 어딘가.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오긴 했지만 절판됐고 그나마 중고샵에선 일부 돌고 있는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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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0-29 0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로는 더 오래 갇혀 살았나 봐요 뭐든 다 있다고 해도 한곳에만 갇혀 살면 답답할 듯합니다 사람 만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은 밖에 나가기도 하잖아요 아이한테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겠습니다 아이가 있어서 용기를 냈겠네요 밖으로 나왔을 때 다 좋기만 하지 않았군요 그것도 잘 넘겼겠지요 갇힌 것보다는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게 좋지요


희선

stella.K 2021-10-29 10:03   좋아요 1 | URL
솔직히 모든 것엔 양면성이 존재하잖아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죠.
알을 깨고 나왔을 때 얻는 이익이 그전보다 더 크다면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어도 나와야 하는 거죠.
직장생활이 그런 것 같아요. 분명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이
많지만 그 자체는 꼭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운 거죠.
영화 괜찮습니다. 전 범죄 스릴런줄 알았는데
휴먼 드라마 같아요. 감독이 연출을 잘 했더만요.^^

페크pek0501 2021-10-30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건 아쉽네요. 먼저 책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면 좋을 듯합니다.
가스라이팅. 이런 얘기 접할 때마다 인간의 비밀스런 실체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인간은 완전히 아는 게 불가능한 존재 같아요. 또 뭐가 있을지...

stella.K 2021-10-30 16:44   좋아요 1 | URL
그래도 중고로는 살 수 있어요.
그렇죠? 인간은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여요. 언니도 저 너무 많이 좋아 하지마세요. 그러다 언니 뒤에서 어흥~할 수도 있어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전기 영화다.

19세기를 살았던, 에디슨의 뤼미에르 형제의 보다 앞서 활동사진이라 불렸던 영사기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 활동사진을 꿈꿨던 사람의 전기 영화를 본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근데 이 영화 오프닝 시퀀스가 좀 파격적이다 싶다. 하얀 백발의 노인이 딸 같은 여자와 베드신을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딸 같은 여자와..? 했는데 그의 나이는 50이 됐거나 임박했을 무렵이다. 그가 그렇게 백발노인이 되었던 건 젊은 시절 어떤 사건으로 인한 사고로 역변을 겪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다니. 근데 그는 그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하긴 19세기 때 50이면 할아버지다. 무엇보다 그는 활동사진에 미쳐 있었다.


그는 스튜디오를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까만 배경에 여러 개의 카메라를 일렬로 늘어놓고 사람의 움직임을 동시에 찍는다. 당시 사진기란 오늘날의 그것을 상상하면 안 된다. 19세기 미국이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잠깐 나오기도 하는 나무로 된 사각 휴지통 같은 통에 가운데 렌즈가 들어가 있는 그런 형태다.


에드워드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표정과 생생한 움직임을 실험하던 중(그것은 당시 모델을 지원받아 한다) 그는 옷이 그것을 가린다며 사람의 나체를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나도 좀 놀랐다. 뭐 좀 벗는 척하다가 다른 장면으로 전환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관람 등급이 15니까. 그런데 웬걸, 진짜 벗는다. 순간 손으로 눈을 가려야 하나? 하긴 뭐 그래봐야 나 외에 누가 보며 손으로 가린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다 볼 거 아닌가.

         

         

      

        


무엇보다 당시의 모델들이 카메라 앞에서 벗는 것에 전혀 스스럼없는데 200년 후의 이름 없는 관객이 뭐라고 이리도 호들갑인가 싶다. 그런데 당시는 역시 보수적인 시대다. 결국 소문이 높으신 나라 일을 하시는 분 귀에 들어가 진정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에드워드 진정 좀 받았다고 뒤로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했을까? 맞다. 옷을 벗는다. 그렇게 벗는 것으로 벗는 것 자체는 외설이 아님을 몸소 증명한다. 그건 영화의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실제로 15세 관람가를 받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긴 이 영화 등급이란 게 좀 웃기긴 하다. 어떤 영화는 야한데 청소년 관람가고, 어떤 영화는 뭐 이 정도 가지고 하는데 불가를 받기도 한다. 이 영화도 그렇다. 야하다면 앞서 말한 오프닝 시퀀스 때 베드신이 문제지 이 장면은 문젯거리도 못 된다.) 그 정면을 보면서 인간의 벌거벗은 몸이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순간 나체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그는 확실히 외골수다. 그는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미세하고도 생생한 움직임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너무 강한 나머지 살아있는 거북이의 배를 갈라 아직도 팔딱거리는 심장을 손바닥 위에 얹는다. 그런 것을 보면 요즘엔 영상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연구를 한다고도 하던데 다소 엉뚱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엉뚱한 상상은 무려 200년 전에도 있어 왔다.


게다가 그의 이 집착은 아내를 의심하는 촉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하긴 남편이 연구에만 몰두하고 아내는 뒷전이니 20대 초반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더구나 결혼 전 아내는 모델이었다. 게다가 아내가 유산 끝에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촉은 귀신같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 주위를 뱅뱅거리는 신문 기자 내내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결국 에드워드는 그 신문 기자를 권총으로 쏘고 자수를 한다.


어찌 보면 에드워드는 당시의 발명가의 전형인지도 모르겠다. 외골수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 하지만 이 남자, 여러모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살인은 미국에서 정당 살인의 마지막 케이스가 되어 무죄로 풀려났다. 그리고 아내는 그 충격으로 병을 얻어 24살 젊은 나이에 죽었고, 당시론은 친자 확인을 할 수 없으니 그의 아들은 외모가 닮았다는 말만 할 뿐 아버지가 확실히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한참 세월이 흘러 1893(?) 년 만국박람회에 활동사진 주프락시스코프를 내놓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영사기에 선수를 빼앗기도 한다. (이건 영화의 내용이고 그에 대한 네*버의 설명은 좀 다르다. 감독의 해석으로 봐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의 수만 장의 사진은 동물연구에 기여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정말 여러모로 의미 있는 영화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보는 영상 기법들을 의미 깊게 살려냈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자신이 상상하는 것들을 슬로모션이나 분할 기법 등으로 표현했는데 정말 인상 깊다. 영화는 주로 녹색과 초록색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무겁지 않고 오히려 밝은 느낌이다. 정말 강추다.


 혹시 그의 전기가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번역된 건 없고 그나마 이 책은 품절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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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16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처음 들어보는 인물인데 완전 호기심 가네요. 전기영화 좋아하는데 찾아봐야겠어요. 리뷰 고맙습니다 ^^

stella.K 2021-10-17 20:24   좋아요 1 | URL
전기영화 좋아하시는구나.ㅎ
혹자는 전기영화는 잘 해야 본전치기란 말을 하기도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정말 꼭 봐야하는 영화 같습니다.
이런 영화를 이제야 뱔견하다니 저도 저 자신한테 놀랐습니다.ㅠ

mini74 2021-10-17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분 말 달리는 사진 연속으로 찍으신 분 아닌가요 예전 알라딘에서 달리는 말 그림 그려진 책받침 비슷한 걸 사은품으로 받았던 ㅎㅎ 이 분 사고 당하기 전엔 천재성은 없지만 성격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오. ~ 영화가 있군요. 스텔라님덕에 흥미가 막 생깁니다*^^*

stella.K 2021-10-17 20:27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영화에선 좀 독특하게 나오던데.
근데 분위기는 괜찮아요. 꼭 보십시오!^^

페크pek0501 2021-10-25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품절된 건 아쉽네요.
대중 목욕탕에선 다 벗잖아요. 벗은 내 몸을 누가 보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쓰잖아요. 누드 모델도 그런 생각을 하면 벗는 게 어렵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의미 있는 영화의 추천, 기억해 놓겠습니다. ^^

stella.K 2021-10-25 13:19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처음에만 어색하지 누가 신경 쓰나요?
근데 전 어렸을 때 외엔 공중 목욕탕은 가지 않았어요.

전 외국어와 친하지 않으니 아쉬울 건 없는데
번역된 평전이 있으면 좀 기웃거려 볼까 했는데 없더군요.
하지만 영화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활동사진이었던만큼 영상 기법을
잘 활용했다고 봐 집니다. 꼭 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