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배우들 모두가 내가 애정하는 배우라 눈에 띄여 봤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주지훈 때문에 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 이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좋던지. 그런데 이 영화 2014년도 작품이다. 그때도 나름 지명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난 그냥 인기가 있나 보다 했고, 그 시기에 봤다면 주지훈 보단 지성 때문에 봤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배우니.

 

처음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 아무리 주지훈이 나온다지만 범죄나 스릴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영화의 시작도 도대체 이걸 가지고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거지 좀 의문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근데 이 영화 잘못된 욕망은 파멸을 낳는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푸는 방식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달라 오히려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이를테면 아무리 정없는 모자지간이라지만 엄마가 왜 죽었는지 끝까지 파헤치고, 아무리 친구들이라지만 확실히 응징하는 뭐 그런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건 그냥 암시만 줄 뿐이다. 대신 인철(주지훈 분)을 십분 활용한다. 정말 이 영화는 주지훈이 7할은 살린 영화다. 주지훈은 지신이 맡은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나 허세 쪄는 양아치 역할을 잘 하는지. 그러면서도 내면에 인간의 순수함 내지는 친구의 의리가 뭔지도 안다. 

 

친구 즉 현태(지성 분)의 엄마를 죽게 만들고도 마지막까지 그 친구에게 괜찮은 친구로 보이고 싶어했던 그 마음. 공항 화장실에서 칼을 맞고도 먼 발치의 친구에게 그것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다 의자에 앉아 죽어가는 장면은 정말 서늘하면서도 영화사에 남을만한 장면은 아닐까 싶다. 무슨 프랑스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도 같고. 짐승 같은 남자들의 찐한 우정이란 이런 건가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중에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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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1-01-04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_@;; 제목 보고 로버트 드니로 나오는 영화 생각했네요(옛날 사람-_-)

stella.K 2021-01-04 18: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는데 로버트 드니로가 나왔었죠.
본 것 같기도 하고.
이 영화 함 보세요. 좋아하실 거예요.^^

2021-01-0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4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6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1-06 1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0^

transient-guest 2021-01-09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Good Fellas 생각했네요.ㅎ 한국영화는 요즘 못 보고 지나가는 것이 많습니다. 예전처럼 DVD를 모으지도 않고 극장이 아니면 아무래도 집중이 어렵네요. 언제 다시 영화관에 앉아서 가끔은 본편보다도 더 기대되는 예고편들을 보면서 1-2시간 조용히 즐길 수 있을런지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21-01-09 11:26   좋아요 1 | URL
아, 고맙습니다. 새해 벽두에 저의 서재도 찾아주시고.
아무래도 바쁘시고 코로나도 있고 극장 가시기가 쉽지 않으시죠?
올해는 모쪼록 코로나가 줄어들어 한결 여유롭게 극장을 다니실 수 있는
날이 오게되길 바랍니다.
그래도 가끔 한국 영화 다운 받아보시구요.ㅎ
님도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바라시는 소망 다 이루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던 하루키의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지금까지 드문드문 읽어도 몇 권 읽었다. 하루키 빠도 아니면서 읽게 되는 걸 보면 정말 하루키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하긴 그의 책은 제법 많고 명성도 있으니 아무래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다. 


본격 에세이를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하루키가 인기를 끌면서 하루키 문체 또한 주목을 받았었다. 정말 누구라도 하루키를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 결국 이것 때문에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를 두고도 장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가 보다. 누구는 단편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장편이라고 하고, 누구는 에세이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을 두고 장르를 말한다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독자로서 즐기는 게 서로 다를 뿐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그의 독자들을 가리켜 하루키 안이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난 에세이가 좋고 단편이 좋은 것 같다. 장편은 분량이 만만치 않아 늘 읽기에 실패한다. 그놈의 <1Q84>도 1권만 두 번씩 읽고, 2권을 3분의 1쯤 읽었던 것 같고, 3권은 아예 손도 못되고 있다. 하루키가 다시 좋아지면 모를까 앞으로 계속 내 방 어딘가에 나만 째려볼 것 같다. 이럴 것 같으면 나를 왜 샀냐고 절규하는 것 같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을 몇 년 전에 사긴 했다. 그런데 몇 년이 흘러도 안 읽고 있기에 나완 인연이 없는가 보다고 중고샵에 미련 없이 팔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만에 이렇게 중고샵에서 다시 건져 와 읽은 걸 보면 언제고 <1Q84>도 완독 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은 갈대다. 책은 워낙에 많아서 어떤 책은 멀어지다가도 또 어느 순간 가까워진다. 


솔직히 같은 책을 다시 사니 좀 한심하긴 했다. 이렇게 다시 읽을 거면서 그땐 왜 팔았을까 싶다. 책 중독 테스트 중 같은 책을 두 번 산적이 있다는 항목이 있던데 나는 절대로 이 항목엔 해당 사항이 없을 줄 알았다. 뭐 그것도 독자의 권리라면 권리일 것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건 약간 김 빠진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는 하다. 그의 삶 자체가 딱히 극적이고 실험 정신으로 무장돼 있고, 모험 가득하고 뭐 그런 건 아니지 않나. 또한 그의 사진을 본 사람은 알 것이나 그 특유의 무표정. 기껏 표정을 짓는다면 떨떠름함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노년이 되니 조금은 멋있고 표정이 유해진 느낌도 든다. (나만 이러나?) 게다가 그의 일상은 어떠한가, 매일 조깅을 한다고 그러지. 잠은 밤 9 신지 10시쯤에 자고 새벽 5시면 일어난다고 하지. 글은 그 사람을 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의 에세이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이미 그의 명성이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실제로도 그 안에 유머와 위트가 있다. 무심한 듯 시크해도 예리한 관찰력이 있다. 그것 없이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의 에세이도 오리지널스럽긴 하다. 모든 에세이는 하루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산문은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거라고 하지만 단서가 있다. 정제되었다는 것. 하지만 이 둘은 엄밀한 의미에서 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화면 조화고, 자유면 자유다. 많은 작가들이 산문을 쓸 때 전자 보단 후자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을까. 그래야 공감을 얻고 뭔가 글의 품위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자유롭게 쓴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의 글을 선택한다. 기존에 점잖게 글을 썼던 작가는 좀 당황하지 않았을까?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이렇게 쓸 걸. 내가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흐흑. 그러면서 어쩌면 하루키는 작가들 내에서는 공공의 적이 돼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리지널리티를 이뤄낸 사람의 비애쯤이라고 해 두자. (내가 지금 뭐라는 거니?) 


어쨌든 글은 그 사람을 닮는 법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읽으면 김이 빠지기 시작한 맥주 같기도 하지만 또 좋게 말하면 그가 재즈를 좋아해선지 재즈의 자유분방함을 닮은 것도 같다. 사실 산문은 그 정제된 문장 때문에 뭔가 밑줄 그을 부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루키의 글도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아주 없는 것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도 크게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게 하루키 인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독자를 의식하고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독자를 의식했다면 이렇게 오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신문 연재를 그렇게 싫어했다면서 이 책은 무려 5년간 모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거라고 한다. 하루키는 거짓말쟁이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80년대 중반에 쓴 글들이다. 작가로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고 전업을 진지하게 생각했거나 막 했을 때였을 것이다. 기회가 왔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그의 일화 가운데 한때 재즈 바를 운영하면서 밤에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럼 가난하게 살진 않았겠지 싶지만 그도 가난한 때가 있었다. 그게 이 책 맨 마지막 장 '가난은 어디로 가버렸나?'에 나온다. 어찌나 그리도 시크하면서도 명랑하게 쓰고 있는지. 우린 가난을 경제적인 관점보다 문학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건 그의 유명한 단편소설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쓰게 만들었겠구나 생각했다. 거기선 가난을 얼마나 낭만적으로 그랬던지. 난 여기서부터 하루키가 좋아지기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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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5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표 에세이 장르를 탄생 시킨 장인! 이분에 에세이는 사물과 풍경이 살아 숨쉬고 꿈틀거리게 만드는 문장을 구사해요. 안자이 미즈마루랑 콜라보레이션한 에세이들이 최고에요.

stella.K 2020-12-16 18:23   좋아요 1 | URL
오, 생각 보다 깊게 보시는군요.
저 <치즈케이크...>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
알라딘에서 찾아 보니까 이미 절판되면서
헌책방에선 희귀본이 돼서 2만원에서 4만원 선까지 거래가 되고 있더군요.
작년까지 책 박스에 담겨 있었는데 가을에 통째로 들어냈는데
아까워 죽을 것 같습니다.ㅠ

scott 2020-12-16 20:23   좋아요 1 | URL
오! 혹시 ‘치즈케이크와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가난‘이라는 단편인가요?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 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삼각 지대‘라고 해도, 이른바 델타 모양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던 ‘삼각 지대‘ 는 훨씬 가늘고 길어 쐐기 같은 모양
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우선 완전한 사이즈의 둥근 치즈 케
이크를 머리에 떠올려 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칼로 12등분해 주
기 바란다. 즉 시계의 문자반 같은 모양으로 잘라 나가는 것이다. 그
러면 끝이 뾰족한 부분의 각도가 30도인 케이크 조각 열 두 개가 만
들어진다. 그 중의 하나를 접시에 담아, 홍차라도 마시면서 차분히 바
라봐 주기 바란다. 이것이 - 이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케이크 조각이
- 우리 의 ‘삼각 지대‘의 정확한 모양이다.
어째서 그처럼 부자연스런 모양의 땅이 만들어졌느냐고 당신은 물
을지도 모른다. 혹은 묻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좋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마을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잘 몰랐
다. 그것은 먼 옛날부터 삼각형이었고, 지금도 삼각형이며, 앞으로도
죽 삼각형일 거라는 정도의 사실밖에 몰랐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
‘삼각 지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고 싶지
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왜 ‘삼각 지대‘가 그런 식으로 - 귀 뒤에 있는 사마귀처럼 - 냉담
하게 다루어지는지,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상한 모양
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삼각 지대‘의 양옆에는 서로 다른 종류
의 두 개의 철로가 뻗어 있었다. 하나는 국철 선로이고, 또 하나는
민영 철도 선로다. 그 두 개의 철로는 상당한 거리를 평행하게 뻗어
오다가, 이 쐐기의 뾰족한 끝 부분을 분기점으로 삼아, 마치 갈라지
는 것처럼 부자연스런 각도로 꺾이며 북쪽과 남쪽으로 각기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꽤 볼 만한 광경이다.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서 열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파도를 가르고
해상을 돌진해 가는 구축함의 함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쾌적함이나 거주성(居住性)이라는 관
점에서 보면, ‘삼각 지대‘는 정말 지독한 곳이었다. 우선 소음이 심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철로 사이에 꽉 끼여 있는 셈이므로 시끄럽
지 않을 턱이 없다. 현관문을 열면 눈앞에 열차가 달리고 있고, 뒤
쪽 창문을 열면 거기도 다른 열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승객과 눈이 마주쳐 인사할 수 있을 정
도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독한 곳이 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막차가 지나가 버리면 그 다음은 조용하지 않냐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실제로 이사를 올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막차 따위는 존
재하지 않았다. 여객 열차가 새 벽 한시 전에 모든 운행을 끝내 버리
면, 다음에는 심야에 운행되는 화물 열차 들이 그 뒤를 이어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녘까지 화물 열차들이 모두 지나가 버린 뒤에는
이튿날의 여객 수송이 시작된다. 이러한 일들이 매일 되풀이되는 것
이다.
아이고 맙소사.
우리가 일부러 그러한 장소를 골라서 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집
세가 쌌기 때문이다. 단독 주택으로, 방이 셋이고 욕조가 딸려 있고
작은 마당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다다미 여섯 장 방 한 칸 짜리 아파트
의 집세와 비슷했다. 단독 주택이므로 고양이도 기를 수 있었다. 마
치 우리를 위해 마련된 집인 듯싶었다. 우리는 갓 결혼을 하고, 자랑
하는 건 아니지만, 기네스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난했다.
우리는 역 앞의 복덕방에 붙은 쪽지를 보고 그 셋집이 나와 있는 걸
알았다. 조건과 집세, 방의 배치 등을 감안할 때, 의외로 쌌다.
˝쌉니다, 싸요. 상당히 시끄럽지만 그것만 견딜 수 있으며, 의외로
싸고 진귀한 셋집이라고 할 수 있을 거요˝하고 대머리 복덕방 주인
이 말했다.
˝하여튼 보여 주시겠어요?˝하고 나는 물었다.
˝좋아요. 하지만 당신들만 갔다 오지 않겠어요? 나는 거기에 가면
머리가 아파요.˝
그는 열쇠를 빌려 주고, 집까지 가는 약도를 그려 주었다. 마음 편
하고 태평스런 복덕방 주인이었다.
역에서 바라보면 ‘삼각 지대‘ 는 바로 가까이에 보인다. 그래도 실
제로 걸어 가보면,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철로를 빙 돌아 우회하고, 육교를 건너고, 지저분한 고갯길을 오르내
리다가, 겨우 ‘삼각 지대‘의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주위에
는 가게도 하나 없었다. 정말 초라한 곳이었다.
나와 그녀는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 외따로 서있는 집 안
으로 들어가, 한 시간쯤 거기서 멍하니 있었다. 그 동안 꽤 많은 열
차들이 집의 양쪽을 지나갔다. 특급 열차가 통과하면 유리창이 덜거
덕거렸다.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은, 서로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무엇인
가를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열차가 지나가면, 우리는 입을 다물
고 열차가 완전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조용해져서 우리가 다시 이
야기를 시작하면, 금방 또 다음 열차가 달려왔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의 분단이라고 할까, 분열이라고 할까, 상당히 장 뤽 고다르풍이다.
그래도 소음을 제외하면, 집의 분위기 자체는 꽤 나쁘지 않았다. 구
조는 확실히 고풍스럽고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있었지만, 도코노마(역
주:일본식 방의 상좌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 벽에는 족자를 걸
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놓아 꾸민다. 보통 객실에 꾸밈)나 덧
문 밖의 툇마루 등이 있어 좋은 느낌 을 주었다. 창문으로 비쳐 드는
봄의 햇살이, 다다미 위에 작고 네모진 ‘양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유사했다.
˝이 셋집에 들기로 하지. 시끄럽긴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마치 내가 결혼하여 가정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
˝하지만 정말로 결혼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우리는 복덕방으로 되돌아가 그 셋집에 들겠다고 말했다.
˝시끄럽지 않았어요?˝하고 대머리 복덕방 주인이 물었다.
˝시끄럽긴 하지만, 그럭저럭 익숙해 질 거예요˝하고 나는 말했다.
복덕방 주인은 안경을 벗어 거즈로 렌즈를 닦고, 찻잔에 담겨진 차
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안경을 다시 끼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젊으니까˝하고 그는 말했다.
˝네˝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임대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이사를 하는 데는, 친구의 라이트밴 한대로 충분했다. 이부자리와
옷, 식기, 전기 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등이 우리
의 전 재산이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세탁기나 냉장
고, 식탁, 가스 스토브, 전화, 물을 끓이는 주전자, 진공 청소기, 토
스터 따위도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가난했다. 그래서 이사라고 해도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아주 간
단하다.
이사하는걸 거들어준 친구는, 두 선로 사이에 끼인 우리의 새 거주
지를 보고 꽤 놀란 듯했다. 그는 이사를 끝낸 다음에 나를 향해 뭔가
를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특급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말했어?˝
˝정말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는구나˝하고 감탄한 듯이 그는 말했다.
결국 우리는 그 집에서 2년 동안 살았다. 상당히 아구가 안맞는 집
이어서, 사방의 틈새에서 외풍이 들어왔다. 덕분에 여름철에는 쾌적
했지만, 그 대신 겨울철에는 지옥 같았다. 스토브를 살 돈이 없었기 때
문에, 해가 지면 나와 그녀 와 고양이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말
그대로 서로 껴안고 잠을 잤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면 부엌의 싱
크대가 얼어붙어 있곤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근사한 계절이었다. 봄이 오자, 나와
그녀와 고양이도 한숨 돌렸다. 4월에는 철도 직원들의 파업이 며칠 동
안 계속되었다. 파업을 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하루 종일 단 한
대의 열차도 선로 위를 달리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고양이를 껴안고
양지바른 선로로 내려가 햇볕을 쬐었다. 마치 호수 바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되었고, 햇볕은 공
짜였다.
나는 지금도 ‘가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삼각형의 기다란
땅을 연상한다. 지금 그 집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stella.K 2020-12-16 20:31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맞아요! 읽으셨군요!!
와, 근데 이거 내용 전부를 타이핑하신 건가요?
대단하십니다. 스콧님 쵝오!!!!
그렇지 않아도 하도 오래되서 가물가물했거든요
덕분에 다시 읽게되서 넘넘 기쁘옵니다.
고맙습니다. 잘 간직하겠습니다.^^


scott 2020-12-16 20:40   좋아요 1 | URL
헌책방으로 넘어간 책박스에서 꺼내 드림 (⁀ᗢ⁀)

psyche 2020-12-19 15:46   좋아요 2 | URL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기차길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어요. 기차가 지나갈때면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곳이었죠. 밤에는 낮만큼 자주는 아니만 화물 열차가 지나갔고요. 그 아파트에서 이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읽었어요. 읽고나면 까먹는 저인데 이 책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scott 2020-12-19 15:57   좋아요 2 | URL
프쉬케님 저는 처음 배정된 기숙사가 옛날 2차세계대전때 야전 병원으로 썼던 곳이였는데 방방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고 저는 괜찮았는데 다른 층(수술실이였던)에 살던 학생들은 밤마다 귀신을 목격했다고 난리를 쳐대서 가을학기때 다른기숙사로 옮겼는데 1층으로 바로 창을 열면 달리는 전차 바퀴가 보여서 전차가 달릴떄마다 창문 전체가 흔들리고 탁자 책상까지 요동을 쳤어요 ㅋㅋ
새벽 4시 30분 출발에 그다음날 새벽 12시 30분까지 달리는 전차여서 전차 달리는 시간에 깨서 서둘러서 학교 가서 도서관에서 12시까지 버티다가 막차 타고 기숙사로 돌아와서 자는 생활을 했는데 (방에 놀러온 친구들이 충격을 받을정도로 소음이 심했고 당연히 말소리도 안들림) 그곳에 산지 몇달후에 전차 노동자들이 두달 넘게 파업해서 전차 길에 소복히 눈이 쌓이는 걸 구경하며 고요하게 두달을 보냈었네요.
하루키에 ˝치즈 케이크~‘는 몇번을 읽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공감하면서 읽어서 인지 ^*^

stella.K 2020-12-19 19:06   좋아요 1 | URL
아웅~! 프시케님, 스콧님 그런 추억을 남겨 주시다니 감동입니다.
물론 옛날 얘기니까 이렇게 말씀하시지 당시엔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그게 하루키의 단편과 딱 맞물렸으니
정말 하루키는 대단한 사람 같습니!.
더구나 스콧님은 딱 치즈케이크네요. 미국은 파업을 하면 두 달씩하고
그러는가 봅니다. 근데 저는 그렇게 살라고 그러면 못 살 것 같아요.
전차길에 눈이 소복히 내려 쌓이다니. 정말 황금 같은 기간이었겠습니다.
이거 완전 단편 소설인데요? 소설로 완성해 보심이...!ㅎㅎ
저는 뭐 그런 추억은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치즈케이크...>는
그 은유가 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0-12-16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모르면서 하루키 소설 여러 권 보기는 했어요 무라카미 라디오 첫번째 책 볼 때는 재미없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재미있더군요 예전에는 무라카미 유머를 잘 몰랐나 봐요 시간이 흐르고 조금 알다니... 하루키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듯합니다 저는 소설 안 보다 《1Q84》 보고 재미있네 하기도 했어요 좀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상상 같은 건 괜찮기도 해요


희선

stella.K 2020-12-16 18:25   좋아요 2 | URL
하루키는 좀 묘한데가 있는 것 같긴해요.
처음엔 뭔가 기대를 갖고 읽다가
생각보다 별로네 하다가 또 어느 순간 야금야금 읽게되는 것 같습니다.ㅋ

페크pek0501 2020-12-16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고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 거예요.(목차에 읽은 제목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읽는 습관이 있고 여러 책을 돌려가며 읽어요.) 이 책은 그의 에세이 중 빼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오디오로 비밀의 숲 중 몇 개를 들었는데 이건 좋더라고요.

명성 있는 작가라고 해서 작품이 다 좋지는 않고, 몇 개의 수작 때문에 그들이 빛나는 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어떤 문장은 하루키가 아니라면 쓰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는 게 있긴 하더라고요.
최근에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구매했죠. 하루키의 문장을 분석, 소개하는 책이죠.
앞으로도 하루키에 속아 더 구매할 것 같은 예감을 느낍니다.

stella.K 2020-12-16 20:1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유명한 작가라고 모든 게 다 좋은 건 아니죠.
고 몇 편의 수작 땜에 명성을 얻고 나머지 작품도 덩달아
수작을 반열에,,,ㅋㅋ
말씀하신 책 막 발간됐을 때 모처에서 서평 이벤트 했는데
신청할까 하다 포기했어요. 시간에 쫓겨서 서평을 쓰는 게
점점 귀찮고 부담스럽더라구요.
언제고 중고샵에 나오면 사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ㅋ

근데 하루키에 속으시다뇨. 그냥 즐기십시오.
누가 뭐라고 안 그럽니다.ㅎㅎ

scott 2020-12-16 20:46   좋아요 2 | URL
맞아요 페크님 장편-단편-여행기- 에세이
*비밀의 숲-‘장수 고양이의 비밀(하루키가 30대때 쓴 에세이중 최고로 재미짐 ㅋㅋ)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이윽고 슬픈 외국어 스텔라 케이님께 추천~*
번역가들이 말하는 하루키(한국+미국) 이문장에 이단어를 딱 끼워 맞춰쓰는 기술, 정교하게 문장을 다듬는 장인 글쓰기 장인이래요 ㅋㅋ
사실 하루키는 자신에 창작 서랍장에 있는 여러개 테마중에 주인공이름 직업 배경 기타 등등만 조금씩 바꿔서 변형시키는 귾임없이 글쓰기 태엽을 감는 새 같은 작가에요 ㅎㅎ

장편 ‘태엽감는 새‘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장편들이 파생되었고 몇몇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 시켜도 하루키표 소설에 가장 큰 테마는 ‘태엽감는 새‘안에 전부 담겨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하루키가 새책을 출간하면 구매하게 되는 이유가 읽혀지는 글,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영리한 작가에요 ㅋㅋ



scott 2020-12-23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
내일은 미세먹지 최악
그럼에도 불구 하고 크리스마스 이브~*
트리 한그루 심어드릴께요.
┼..:..:..:..:..:..:..:..:..:..:..:..:..:..:..:..:..:..┼
│*** Merry ☆ Christmas! ** ★
│Merry..........:+☆+:............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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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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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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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stella.K 2020-12-24 15:56   좋아요 1 | URL
아웅~ 저에게도 이런 크리스마스 이모티콘을
만들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올해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제가 스캇님을 알게 되었다는 일일겁니다.
근데 스캇님 활동하신지는 꽤 되셨더군요.
왜 몰랐을까요?
어쨌든 별 볼 일없는 서재에 관심 가져주시고
말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보아요.ㅋ
스캇님도 행복하고 뜻깊은 성탄절 되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페크pek0501 2020-12-23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20-12-24 15:57   좋아요 1 | URL
와~ 느낌표 장난 아닌데요?
그만큼 언니가 저를 많이 애정하신다는 게
뚝뚝 느껴지네요.ㅎㅎ
언니도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십시오!^^

후애(厚愛) 2020-12-24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20-12-24 15:58   좋아요 1 | URL
네. 후애님도 기쁜 크리스마스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개를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영화 

 

 

아주 가끔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울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땐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카타르시스라는 감정의 여과를 거치고 싶을 뿐이다. 그러려면 슬픈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다. 그것도 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는 것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하다 보니 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두 편 연속으로 보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좀 오래된 일본 영화다.

 

<우리 개 이야기>는 알고 봤더니 몇 년 전에 본 영화다. 다시 보니 여전히 재미있긴 하다. 몇 개의 에피소드를 연작으로 엮었는데 웃기기도 하고, 잔잔한 감동도 있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래도 볼만하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는 보지 않았다. 어느 집 반려견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끝까지 다 봤다. 하지만 이번에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 땐 우리 집 다롱이(요크셔 테리어종 수컷)가 건강하고 아직 젊었을 때다. 하지만 지금 다롱이는 많이 늙어서 어느 때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괜히 다롱이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다롱이는 아직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게다가 저 <퀼>을 먼저 본 지라 견생의 마지막을 두 번씩 연이어 보고 싶지 않았다. 

 

<퀼>은 어떻게 찍었을까 싶게 정말 잘 찍은 영화다. 감독이 재일교포다. 이 영화는 흔히 맹인 안내견으로 키워지는 골든 레트리버 종의 일대기를 다뤘다. 알다시피 골든 레트리버 종이라고 다 안내견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느 개와 다른 양상을 보여야 안내견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이를테면 주인이 불렀다고 해서 우르르 쫓아가면 오히려 탈락이다. 멀뚱멀뚱 뭐야, 왜 그러는데? 해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퀼은 일생동안 세 가정을 거친다. 태어난 집에선 5마리 중 하나로 태어났는데 특이하게도 옆구리 쪽에 새의 날개 모양을 한 얼룩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주인이 퀼의 이 멀뚱 거리는 특성 때문에 맹인 인내견으로 키워야겠다고 해서 훈련소로 보낸다. 그곳 규정에 따라 퀼은 파피 워커 즉 대리 가정에서 남은 1년을 보내고 첫 생일 날 다시 훈련소로 보내져 훈련을 받는다. 그 후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어느 시각장애자의 가정으로 보내진다. 바로 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슬프다. 그건 퀼뿐만 아니라 모든 개에겐 안 좋은 것 같다.


퀼은 임무수행을 위한 이 세 번째 가정에서 생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퀼이 주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이쯤 되면 서서히 눈물이 비어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퀼이 착하게 살아온 보상인지 퇴역 후 다시 떠나 온 두 번째 가정으로 보내져 거기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보기에 따라선 눈물샘이 제대로 폭발해 주최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언제 어느 때 볼 것인지 선택을 잘해야 한다. 울고 싶지 않다면 보지 않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어찌나 슬프던지 본지 며칠 지났는데도 그 잔상이 남아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한다.  


그걸 보면서 오래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차마 데리고 오지 못한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생각이 났다. 그 개는 정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종견이었다. 딱히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도 이미 한 번의 파양을 겪고 온 터라 여간해서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사람과는 눈도 안 마주치고 어디든 구석으로만 숨고 싶어 했다. 그래도 마음을 열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잡종견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못해도 한 달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일단 주인이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완전히 마음의 문을 열 고부턴 주인의 기척만 났다 싶으면 방방 뛰고 한바탕 난리를 피웄다. 딱히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어서 정을 많이 주지도 않았다. 그런 걸 6, 7년쯤 키웠던 것 같다. 


그 사이 IMF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 집을 팔아야 했다. 이사를 가면 이 녀석을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단독주택을 구해야 하는데 시골로 가면 모를까 수중에 쥔 돈 가지곤 서울에서 그런 집을 구한다는 건 꿈같은 일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을 산 사람이 집을 새로 지을 목적으로 사긴 했지만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으니 전세 기간 2년을 더 살아도 좋다고 해서 더 살았다. 녀석에겐 천운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2년 동안은 녀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우리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참 무책임한 동물이다.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고맙게도 인천에 사는 막내 이모네가 마당이 있으니 데려가 키우기로 했다. 개를 보내기로 한 날 이모와 이모부가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왔다. 끌려가는 녀석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나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좋은 주인 만나 가는 것에 위안을 삼으려 했지만 그거야 내 생각일 뿐 녀석은 또 파양 당하는 것으로 알 테니 그 배신감이 어땠을지 인간이 참 죄가 많다 싶었다.


녀석이 없는 마당을 보며 잘 있겠거니, 잘 살겠거니 했다. 그런데 녀석의 운이 그것 밖엔 안 되었던 걸까, 그렇게 이모네로 간지 하룬가 이틀 만에 이모가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개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즉시로 이모네를 갔고 녀석이 옛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혹시 어디 숨어 있다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하루 종일 머플러를 흔들어 가면서 찾았다고 한다. 옛 주인의 냄새를 좀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찾았지만 그땐 개장수가 아직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던 때라 모르긴 해도 그들에 의해 붙잡혔을 거란 추측만 했다. 이모는 준비도 없이 개부터 데려 오는 게 아니었다고 자책했다. 뒤늦게 이제 목줄을 사다가 해 줘야지 했단다. 그런데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음식 배달을 시키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대문이 살짝 열린 틈을 타고 탈출했다는 것이다. 녀석은 어떻게든 이 집만 탈출하면 우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신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건 인간을 위해 개를 만드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쪽에선 개의 조상은 늑대고 오랜 세월 녹대를 길들여 온 사람이 개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게 맞든 그 모두는 어쨌든 개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개를 어떻게 대해 왔을까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본의 아니게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하니 말이다. 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키우지 않는 것이 맞다. 인간이 쳐해진 운명에 따라 개의 운명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마땅한 주인을 만나지 못해 버려지고 안락사당하는 개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개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우리나라가 어느샌가 모르게 반려견을 키운다는 명목하게 외래종에 점령당했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우리 잡종견은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개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시골은 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던 잡종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무래도 서울은 점점 마당이 사라지고 있으니 그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혹시 본 사람이 있다면 제보 바란다.      


두 영화 모두 개가 정말 애잔하고 사무칠 정도로 사랑스럽다. 울고 싶은 날 있으면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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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드라마 소설로 눈물을 흘리지 않은데 강쥐나 멍멍이가 주인공이면 심장이 뒤흔들려요. 키웠던 개를 두번 하늘나라로 보낸이후 두번다시 품속에 강쥐를 안아주질 못합니다. 잡종견 지능 엄청 높은데 ㅋㅋ 외래견이 늘어난건 펫샵 오너들이 프리미엄을 더 받을수 있어서라고 ,,토종이 좋은데 ^ㅎ^

stella.K 2020-12-11 20:56   좋아요 0 | URL
아, 그 이유도 있겠네요. 프리미엄. 거기다 서울은 마당이 점점
없어진 이유도 있다고 끝까지 우기고 싶은.ㅋㅋ

많은 사람이 스콧님과 같은 이유에서 다시 안 키운다고 하죠.
하지만 이제 개의 수명도 많이 늘었고,
쓰진 않았지만 저도 다롱이 이전에 말티즈를 15년 가까이 키우고
천국 보내줬는데 키우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좀 심하신가 봐요. 아웅~
개는 키워 본 사람만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반려 가정을 찾지 못해 버려지는 개를 생각하면 말이죠.
저는 능력만 되면 다롱이 이후에 더 키워보고 싶긴한데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가 없네요.

아, 정말 토종 잡종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ㅠㅠ


hnine 2020-12-11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는 정말, 사람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는 생명체 같아요.
어릴 때 위에 말씀하신 잡종견과 십년 이상 한집에 살다보니 그야말로 한 식구였어요. 그 개가 명을 다하고 죽자 아버지께서 산에다 갖다묻어주시고 가끔 묻은 곳에 가보기도 하셨지요.
주인 없는 개 안락사 시키는 문제는 정말 아니라고 봐요. 인간이 무슨 권리로 살아있는 동물을 맘대로 죽일수 있는걸까요.

stella.K 2020-12-12 19:49   좋아요 1 | URL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저의 아버지도 살아생전에 개를 참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그때는 반려견이란 인식이 없던 시절이라
h님 아버님처럼은 못하셨습니다.

진짜 안락사 문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안락사를 안 시키면 폭증하는 개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도 하니.
끝까지 책임지는 의식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cyrus 2020-12-12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보다 시골에 잡종견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시골 개들은 보신탕 재료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stella.K 2020-12-12 20:50   좋아요 0 | URL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근데 어느 때가 되면 씨가 말라서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할 날이 올 것 같아. 참 우리나라는...ㅠ

페크pek0501 2020-12-12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슬픈 글을 쓰시다니...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연말로 마음이 편치 않은 때인데요...

그리고 스텔라 님이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지 않은 게 이상하네요. 이번 해에 글을 적게 올리셨나요?

stella.K 2020-12-12 19:57   좋아요 2 | URL
ㅎㅎ 미안해요. 저 영화 정말 보지 마세요.ㅠ

전 안 될 줄 알았어요. 갈수록 게을러져서 쓴 게 몇편 되지도 않아요.
선물이 좋으면 열심히 썼을 것 같은데 딱히 꼭 받아야겠다는 의지도 없고.ㅋ

희선 2020-12-13 0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은 사람을 기다리는 개 《하치 이야기》도 무척 슬퍼요 그런 개가 많은가 봐요 어쩌다 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먼 곳에서 살던 집을 찾아간 개도 있다고 하지요 개는 사람한테 마음을 다 주는데 사람은 그러지 못하죠

이 글 보는 것만으로도 슬프네요 함께 살던 개를 떠나 보내는 사람 마음도 무척 아프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20-12-13 11:49   좋아요 2 | URL
맞아요. <히치 이야기>도 있었죠.
저도 본 것 같긴한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나네요.
보면 기억이 날 것 같은데...ㅠ

정말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계속 돌봐주고 싶은데
저희는 다롱이가 우리가 돌봐줄 수 있는 마지막으로 반려견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의 어머니도 이미 노령이시고, 저도 개를 전적으로 돌볼만큼
아주 건강한 편은 아니라 앞으로 다른 개를 맡아 키울거란
장담을 못하겠어요. 개는 정말 돌봄이 필요한데...ㅠ
 
이토록 고고한 연예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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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이토록 고고한 연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 고고한 연예'다.
연예하면 요즘 연예인들의 예능 프로에서의 활약상이나 아니면 그들의 험담을 연상시키지 않나. 그런데 연예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대중 앞에서 음악, 무용, 만담, 마술, 쇼 따위를 공연함. 또는 그런 재주.'라고 나와있다. 그런 연예가 조선 시대에도 있어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선 시대 광대들의 삶을 이름이다.


이 책은 마치 저자의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의 외전 같기도 하고 연작 같기도 도하다.  <서러워라,......>에서는 모독과 김만중과 그의 유명한 작품 <구운몽>와 <사씨남정기>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림자로만 나오고 전작이 모독과 김만중의 서사라면 이 작품은 모독과 달문의 서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서러워라...>를 통해 소설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면, 이 작품은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캐릭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예를 다뤘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작가는 두 소설을 통해 소설 쓰기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달문이다. 그는 처음 연암 박지원의 소설에 나온다. 18세기 광대였고 그 모습이 괴이하여 우는 아이 눈물을 뚝 그치게 만드는데 이만한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즉 울음을 안 그치면 달문이 와서 잡아가라고 할 거라고 겁을 주면 뚝 그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대마다 그런 인물이 하나씩은 전해 내려오는가 보다. 나 어렸을 땐 그 대상이 망태 할아버지였는데 말이다. 아무튼 김탁환 작가는 바로 이 달문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작가는 오히려 달문의 외모에 대한 괴이함 보다는 그의 인물됨에 초점을 맞춘다. 생김에 대한 묘사를 보면 얼핏 조커가 연상된다. 하지만 그의 인물됨을 보면 한마디로 대인배를 넘어 금상이 가질 법한 자질을 가졌다. 그런데 그가 광대이기 전에 거지라는 것이다. 거지라면 뼛속까지 거지일 텐데 과연 이런 고귀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가능할까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 그렇게 말하면 듣는 거지 기분 나쁘다고 할지 모르겠다. 우리 거지들 중엔 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안 되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금수저라고 그 인간성까지 금수저란 법 없지 않은가. 내내 읽으면서 달문의 그런 사고방식과 인간됨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가 없고 인간 된 도리에 대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고 고민이 없다.  


그는 거지지만 산대놀이의 리더이기도 하다. 산대놀이는 탈을 쓰고 하는 일종의 가면극이다. 이것을 언제 누구에게서 배웠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사람이 자기 밥그릇은 타고난다지 않는가. 어쨌든 그런 재주가 있으니 잘 갈고닦아서 거지 팔자를 면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그것을 불가피할 때나 사용할 뿐 광대 보다 거지이기를 더 좋아한다. 이쯤 되면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다른 거지들은 달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을 듯싶다.  그 정도라면 저 노트르담의 꼽추인 콰지모도나 희랍인이라던 조르바를 넘어 조선 시대 예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독이 누군가의 모함에 빠져있을 때 달문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사지로 뛰어든다. 그런데 그곳이 하필 금상을 만나는 자리다. 


그뿐인가, 달문이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그의 구체적인 행적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 그렇게 기괴한 모습을 하고 워낙에 거지로 산지라 몸에 밴 거지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데도 그를 아는 기생들은 하나 같이 그를 연모한다. 이쯤 되면 작가가 구라를 쳐도 너무 친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역시 인간의 뇌는 팩트를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는 하다. 작가가 그렇게 묘사를 하니까 긴 기민가 하면서도 믿게 되는 것이다. 안 믿으면 어쩔 것인가. 어차피 소설 아닌가. 문제는 소설이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거짓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믿을만한가 하는 것이다. 즉 소설의 관건은 얼마나 독자를 그럴듯하게 속일 수 있느냐인 것이다. 잘 속이고, 깊이 속이고, 많이 속이면 속일수록 독자는 기꺼이 그것에 환호한다. 대신 어설프게 속이면 화를 내고 분노한다. 


캐릭터는 일상에선 있을 법하지 않지만 어딘가 있으면 하고 바라는 존재가 캐릭터가 된다. 독자는 바로 인물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래서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나타나는 인물에  빠져드는 것이다. 달문과 모독의 관계도 보라. 달문과 모독이 내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 하지만 그 과정이 모독이 꼭 무슨 일이 생기면 달문이 나타나 문제 해결을 해 주고 떠난다. 또 그러기를 세 번쯤 반복하는 것 같다. 그건 이야기의 법칙 중 하나다. 그것 이상을 넘어가면 떠날 거란 달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가끔 작가들 중에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순간 내가 만들어 논 등장인물들이 살아서 자기네들끼리 말을 하고 무엇인가를 하는데 그럼 난 그것을 받아 적을 뿐이라고. 그게 실제로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려면 캐릭터를 깊이 파야한다. 작가 스스로가 인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코 독자를 매료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릭터에 대해선 빙산의 일각의 법칙을 말하기도 한다. 즉 말 그대로 우리가 작품에서 보는 인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수면 밑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달문이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6백 페이지를 별 무리 없이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건 작가가 달문에 대해 여러모로 연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달문을 위한, 달문에 의한, 달문의 소설 즉 인물 중심의 소설이다. 뭐 인물 중심의 소설이든 아니든 캐릭터는 너무나 중요하다. 사실 매설가인 모독이 처음부터 달문이 하도 특이한 인물이라 소설로 쓰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그를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하고 또한 쥐 영감과 그의 아들의 응원으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모독이 초기엔 별 볼 일없는 작가 지망생에서 확실한 작가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난 이 부분에서 왠지 김탁환 작가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도 지금까지 조선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모르긴 해도 누군가의 성원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역사 소설의 묘미는 당시 사회 문화상을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책방은 오늘 날로 치면 서점에 해당하겠지만 출판 인쇄가 발달하기 전이었으니 판매 보단 대여의 의미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소설은 어떻게 유통되었을까. 거기에 쥐 영감이 있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쥐 영감의 임무는 아무 소설이나 가게에 내놓을 수 없고 읽힐만한 소설을 가려내는 소위 감별사의 역할이었다. 얼핏 오늘 날로 치면 평론가일까 했는데 그 보단 기획이나 편집, 마케팅 등의 일을 하는 인물은 아닐까 한다. 그런 일은 오늘날엔 서점이 아니라 출판사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비해 달문이 했다던 산대놀이나 운심의 칼춤에 관한 묘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듯하여 그 점은 좀 아쉽다.


하지만 '고고한 연예'는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당대의 연예인들 즉 기생을 포함한 광대들을 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친다. 그들은 자신의 웃음을 팔았지 자존심을 판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삶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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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9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이리뷰도 읽었고 댓글도 달았는데 오늘 와서 보니 내댓글 사라져버린 ㅜ.ㅜ
역시 북플에서 뭔가 쓰면 날아가버리나봐요.

스텔라 케이이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추카~

stella.K 2021-01-09 21:06   좋아요 0 | URL
엇, 정말요?
지금이라도 무플을 방지해 주시니 감읍할따름입니다.ㅠ

저도 스콧님의 이달의 2 관왕을 감축드립니다.^^
 

오랜만에 사브리나를 봤다. 사춘기 때 처음보고 그간 본 기억이 없으니 거의 백만 년만에 봤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1954년작이니 거의 로코의 원조는 아닐까. 

솔직히 보면서 욕 좀하려고 했다. 아무리 완벽한 작품이라도 흠은 있게 마련이니. 흠이라면 백인만 나오는 영화라는 정도랄까. 오늘 날로 보면 큰 흠이긴 하다. 안 그래도 트럼프 땜에 백인우월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알기론 감독이 백인우월주의자로인 걸로 알고 있다. 어찌나 부를 자랑하던지. 자가용만 7대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근데 영화 자체로 보면 매력적이긴 하다. 프랑스 샹송 <장미빛 인생>을 변주하면서 적절히 잘 사용했다. 또한 그 노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뜻의 노래가 아니었다. 유리잔이 장미빛이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본 거라나 뭐라나. 그래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장미빛 인생이다. 사랑하는 나날처럼 장미빛 인생이 어디있겠는가. 게다가 오드리 헵번의 머리는 한때 유행을 했다. 또한 그녀가 입고나온 옷은 지금 봐도 굉장히 세련됐다. 벌써 70년 가까운 영환데도 말이다. 이 영화를 흑백으로 봤다는 게 좀 아쉽다. 나중에 컬러로 복원됐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영화가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사브리나는 부잣집 운전 기사의 딸이다. 어쩌자고 주인집 바람둥이인 둘째 아들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순진한 처녀라니. 자기는 가난한 운전 기사의 딸일뿐이라고 자학하기 일보직전이다. 게다가 첫째 아들을 연기했던 험프리 보카트는 사브리나를 사랑하면서 자신이 정말로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멍청이다. 나중에 동생이 파리로 다시 떠나는 사브리나를 잡으라고 말하자 그제야 그럼 그래볼까 하며 꽁지가 빠지게 쫓아가는 모양새라니.

 

영화에선 바람둥이 보다 절도있고 진중한 험프리 보가트가 더 진실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것 같은데 이런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를 외롭게 할 가능성이 많은 타입이다. 아니 사랑해서 결혼해 주고 옷 사 주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해 주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여자를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가끔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말에 나만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고 다소 철없이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말이 정답이긴 하지 않는가. 결혼하고도 끝까지 사랑해 줄 남자는 멍청한 첫째 아들 보다 바람둥이 둘째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사랑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그건 그렇다.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삶이다. 사랑과 안락한 삶이 최고의 결혼이겠지만, 차선으로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것과 사랑은 없지만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그나마 낫고, 사랑도 안락한 삶도 보장 받을 수 없는 결혼이 가장 최악일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상대의 눈에 띄려면 멋을 부리라고 부추기도 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람은 예쁘고 잘 생긴 것만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예쁘고 잘 생긴 것만큼 옷도 잘 입고 지성도 뛰어나야 한다. 주인집 두 아들을 보라. 그나마 사브리나가 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금의환양 하니까 그때야 발정난 개처럼 주위를 어슬렁 거리지 않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 같긴하다. 그래도 좀 아쉽긴 하다. 그런 것 없이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것을 보면 사람 좋아하는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냥은 좋아할 수 없는가 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지켜보길 바란다. 그녀가 걸을 때 얼마나 안정되면서도 우아한 보폭으로 걷는지. 거의 체조선수급이다. 배우는 만들어지는 거라고 분명 그 걸음걸이는 그냥 걷는 것이 아닐 거라고 본다. 오드리 헵번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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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01 0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드리 헵번은 발레리나가 되려고 했는데, 키가 커서 발레를 못하게 됐다고 합니다 발레를 해서 걸음걸이가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선

stella.K 2020-12-01 15:43   좋아요 2 | URL
아, 그랬군요. 저도 그 생각은 했어요.
하긴 1950년대니 체조 보단 발레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긴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체조 선수를 연상했던 건
나중에 오드리 헵번이 큰 아들의 집무실을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엉덩이가 생각 보다 크고 걸음걸이가
힘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발레는 아니겠구나 싶었죠.ㅋ

레삭매냐 2020-12-02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드리 헵번의 <사브리나> !

오드리 헵번 나오는 영화는
오로지 <로마의 휴일> 밖에는
모르는 닝겡이네요.
그나마도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걸음걸이 주목하겠습니다.

stella.K 2020-12-02 19:17   좋아요 0 | URL
ㅎㅎ 어렸을 때 봤을 땐 그냥 오드리 헵번이
좋아서 자세히 안 본 것 같습니다.
첫번째 볼 땐 그저 스토리에만 치중해서 보는
경향이 있어놔서.
<로마의 휴일>도 다시 봐야하는데...

scott 2020-12-02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드리 첫번째 남편과 연애할때여서인지 사브리나에서 미모가 절정!이였던것 같아요 ㅎㅎ

stella.K 2020-12-02 20:47   좋아요 0 | URL
헉, 그런가요? 모르시는 게 없군요.^^
근데 첫째 남편이 누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