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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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츠바키 문구점으로 오가와 이토를 처음 만났다. 아메미야 하토코가 할머니의 서도를 배우고 가업을 물려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며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전해주는 뭉클한 기적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 달팽이 식당』이 힐링 소설의 원조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음식 소재의 이야기로 달라졌지만, 대필 의뢰자의 편에 서서 철저하게 맞춤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달팽이 식당이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도 정말 닮았다. 사전 면담이나 편지를 통해 좋아하는 음식이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는 음식을 준비한다. 손님은 하루에 딱 한 팀. 특별한 날은 두 팀이 되기도 하지만, 한 팀이라는 원칙을 지킨다. 요리를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이웃이나 지인의 소개로 최상품을 조달하고 여기에 드는 품이나 시간, 정성이 대단하다. 그렇게 해서 과연 타산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면 어떤 힘든 상황이라도 술술 풀릴 것 같다.

 



화자인 링고(린코)가 어느 날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이 텅 비어 있다. 3년을 함께 살았던 인도인 남자친구가 전 재산과 할머니가 남긴 가재도구는 물론 애지중지 사 모으던 요리기구를 몽땅 털어 도망을 친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연실색하고 찾으러 다니느라 야단법석을 쳤을 텐데 링고는 체념한다. 그 충격은 대단했는지 그때부터 목소리를 잃었다. 할 수 없이 중학교 때 가출하고 1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유일하게 남긴 할머니의 겨된장 항아리를 보물단지처럼 안고 말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풍족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링고가 너무나 사랑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고향을 떠났을까. 보통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었지만, 엄마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콘크리트 회사 사장이라는 네오콘이라는 남자가 엄마에게 집적거리는 것은 어렸을 때 이후 여전했으며 짙은 화장에 교태를 부리며 손님을 맞는 엄마의 가게 아무르에는 단골고객들로 항상 떠들썩했다.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당하고 모든 전 재산을 잃었으니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던 링고는 엄마의 창고를 빌려 식당을 열기로 한다. 몇 초 만에 식당 이름 달팽이를 떠올리면서.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安住)의 땅이다.(P75~76)

 



이렇게 요리에 진심이었던 링고는 달팽이 식당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우는 링고를 동면 쥐로 달래주었던 구마씨가 가게를 꾸미는 일부터 음식 재료를 구하는 일까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주었다. 링고는 개업준비를 위해 수고해준 구마씨를 위해 먹고 싶다는 카레를 만들어준다. 이어서 맞이한 손님은 몇십 년이나 상복 차림으로 살아왔던 할머니다. 링고는 이 할머니를 위해 메뉴를 생각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온 닫혀버린 마음의 눈을 떠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인다. 아직까지도 목소리를 되찾지 못해서 필담 카드로 의사소통을 한다. 준비한 식사를 드시도록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기다리는 링고의 마음은 어떨까. 식당을 열고 첫 손님, 그것도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상복차림으로 십년을 넘게 살아온 할머니다. 그 많은 양의 음식을 할머니 혼자서 드시는 것도 놀랍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주는 손님이 있다는 것, 오랜 세월 품어왔던 꿈이 이루어진 것에 스스로 감격스러워한다. 며칠 후 구마씨에 이어 할머니에게까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 몇십 년 동안 벗지 못한 상복을 벗어버리고 외출도 하고 지팡이도 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마씨는 링고의 음식을 먹고 할머니가 무척 행복해했다고 전해주었고 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이어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구하려는 소녀 고즈에, 비밀스러운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커플 등 다양한 손님들을 맞이한다. 모두 사람에게 필요한 요리를 만들건만 먹기를 거부하는 토끼를 위해 요리를 하는 부분은 정말 감동이었다. 학교에 가야 하는 고즈에를 위해 딱 하루만 맡아보기로 했는데 토끼는 전혀 음식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링고는 버려진 토끼의 입장을 헤아리며 마음을 읽으려고 애쓴다. 또한 자신을 믿은 고즈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심하더니 세상에, 먹기를 거부하던 토끼가 비스킷을 남김없이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위한 요리든 동물에게 줄 음식을 그들의 마음 구석까지 헤아리며 음식을 만드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든 요리사가 어디 있을까. 달팽이 식당에서 요리를 하면서 링고는 엄마에 대한 몰랐던 것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닫힌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냉정한 것 같았던 엄마가 누구보다도 링고를 사랑했었다는 것, 첫사랑 슈 선배와의 결혼 피로연에서, 애정을 다해 키웠던 돼지 엘메스는 많은 손님들의 맛있는 요리가 되어 행복감을 선사한다. 마치 눈앞에서 시연하는 셰프의 요리를 보는 듯했다.

 



결국, 작가는 이 얘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나아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딸 루리코(링고 엄마)에게 쏟지 못한 애정을 할머니는 링고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요리의 길로 인도했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고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P205)

 


내게 요리란 기도 그 자체다.

엄마와 슈이치 씨의 영원한 사랑을 비는 기도이고, 몸을 바친 엘메스에게 감사의 기도이고, 요리를 만드는 행복을 베풀어 준 요리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기도 했다.’(P246)

 



링고에게 요리는 기도였다.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목소리를 잃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해 주었지만 자신도 치유하지 않았을까. 특히 링고에게는 사람의 얼굴이나 몸짓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판단하는 재주가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절묘한 촉을 가지지 않았는가. 진실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 그만의 촉이 발달하는 걸까. 생각지 못한 반전을 적재적소에 삽입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무엇보다 링고가 잘못 알고 있던 엄마에 대해 알고 나서는 모녀의 관계도 좋아진다. 묵은 감정도 해소되고 다시 만난 모녀가 좀 더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앞에 놓인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아쉬운 마음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이 작품은 힐링소설이라고 하듯이 마음의 치유나 다양한 독자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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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의 7,8월, 뜨거운 에어컨, 무너지는 빙하・・・・・…. 무엇인가꼭 해야 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이 계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살길이다. 여름 세 끼, 하는 것도 먹는 것도 고역이다. 30도 날씨에 생계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잠드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개인의 기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것도 하지 말자. 레닌 동지도 동의할 것이다. - P212

<선악을 넘어서>(1886년)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으로 니체 사상 전반을 보여주는 주요 저작이다. 내가 읽은 판본은 영어권 최고의 니체 해석자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의편역본(1965년)을 청하출판사가 기획, 번역(1982년)한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의대상이 아니다."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글귀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다. - P214

역사적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진상‘과 ‘왜곡‘은 타자의 역사를 말살하는 행위다. 어떤 사람에겐 성폭력이 술김에 저지른 실수일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겐 성별화된 역사의 구조적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겐 고문과 도청이 업무상 착오지만, 국가의 본질로인식하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너의 경험은 사건, 나의 경험은 역사? 역사는 누군가의 에피소드일 뿐 보편적이지 않다. 사건과 역사의 구분은 폭력이다. ‘시맨틱‘한 용어로는 편집증(paranoid)이다. - P224

혼성성은 역사를 기원이 아니라 흔적으로 본다. 순수성이나 (순수성이 여러 개인) 다양성은 같은 차원의 관념일 뿐, 현실로서 존재할 수 없다. 바바는 지구화를 다문화주의나 이국성이 아니라 혼성성으로 개념화한다.
우리는 백제가 일본에준영향은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왜 우리는 무균 상태이길 바라는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사용하면서,
불가피한 한자 병기가 그렇게 문제인가. 한글전용을 존중한다. 다만, 생각하는 것이다. 삶의 잡종성을. - P227

내가 아는 한 우울증에 관해 정치적, 학문적, 미학적, 윤리적으로 《한낮의 우울》보다 잘 쓴 책은 없다.(다만, 성별과 우울증 부분은다소 빈약하다.) 하나의 문장을 고를 수 없는 책이다. 우울증의 직간접 체험자나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문장만으로도 독후감이 흘러넘칠 것이다. - P259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처럼 근거 없는 말도 없다. 우울도 감기도 가벼운 병이 아니며, 질병으로서 우울증과 감기의 작동방식은 매우 다르다. 굳이 비유한다면 에이즈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완치 개념을 적용하기 힘든 질병이다. 잠복성, 만성 질환,
치명성, 외로움, 사회적 낙인………….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심각한면역력 저하다. 신체가 외부 자극에 대처할 수 없는 상태. 면역성이사라지면서 부드러운 미풍조차 사포로 미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우울증 환자의 증상은 인생의 본질이 순간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 P259

둘째, 공부를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노동은 다 힘들다. 쉬운 일은 없다. 어떤 노동이든 지루하고 고된 과정이다. 쉽게 돈 버는 일은 딸바보 부자 아빠가 주는 용돈? 아니면, 합법적 횡령이나 투기?
대형 마트에서 피자 팔기?
문제는 세상 모든 일이 힘든데, 입시 공부류가 유독 사회적 보상이 크다는 것이다.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성별 분업, 이주노동자가 주로 하는 일.....… 다양한 노동 분업 체계는 착취와 위계, 특정분야에 과도한 부와 명예가 편중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공부가 가장 쉽다. 사회주의 사회는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 P277

몇 해 전에 성별을 기준으로 하여 10대에서 70대까지 열네 개 그룹으로 나누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설문결과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 대답 역시 그렇다. 여기서 ‘공부‘는 10대를 억압하는 입시 공부가 아닌 뭔가 ‘의미 있는 인생‘을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것,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60대 친구가 몇 있다. 돈과 학벌을 따지는 ‘속물‘이 득실거리는 우리 사회에서 남들 보기에도 비교적 ‘성공한‘ 인생들이다. 그들 역시공부 이야기를 제일많이한다. 자신은 이룬 것이 없다며 가진 것이없는 내게 말한다. "그래도 너는 책을 썼잖니. 나는 한 것이 없다."
- P289

다른 측면에서 글쓰기는 조금 더 ‘평등‘하다. 운동, 음악, 미술분야에 비해 장비가 간단하고 독학 가능성이 있다. 거칠게 말해, - P291

연필 한 자루면 된다. 나는 글이 ‘투자 대비 생산성‘이 가장 큰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경기든 연주는 모든 몸의 플레이어들은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부상과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연습은 정신력으로 몸을 통제하는것이 아니라 연습된 몸으로 정신적 실수)을 없애는 방식이다. 언습, 연습, 연습, 그런 경지의 노력은 명예와 금전적 보상만으로 불가능하다.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작가는 엄청난 양의 독서, 습작, 조사를 해야 하는 데다 삶의 매순간이 연습이다. 좋은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있다. 비결은 연습치열한 삶)이다. 글 쓰는 시간은 연습을 타자로 옮기는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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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아직 -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재탄생’ 프로젝트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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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원서 30권 읽기를 계획하고 처음으로 읽은 단행본이 세오 마이코의 도서관의 카미사마. 대략의 내용은 문예반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거의 폐쇄된 학교도서관을 누구나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든 키요와 가키우치 군이 엮어가는 따뜻한 이야기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세오 마이코의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표지에 처음 만나는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재탄생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보고 과연 일본스러운 소재와 캐릭터 설정에 재미는 보장하겠구나, 호기심을 안고 읽어나갔다. 도입부부터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 어느 날, 히키코모리 작가 가가노에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스물다섯 살 아들 도모가 불쑥 찾아온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다달이 양육비로 보낸 10만 엔과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친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려니 이상하네. 그래도 처음 만났으니까 괜찮겠지. , 내 이름은 알고 있을 테지만 나가하라 도모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P7)

 



첫 만남에서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에게 도모는 이런 말을 건넨다. 예닐곱 살 어린 아이도 아니고 스물다섯 살 청년의 넉살이 보통이 아니다. 시원하고 거침없이 늘어놓는 반말에 아무런 쑥스러움도 없고 원래 알던 사이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놀라고 당황스러운 것은 가가노다. 원래 천성이 밝게 태어난 건지 너무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깔깔 웃게 된다. 호칭은 끝까지 아저씨. 사 가지고 온 간식을 내놓으며 함께 먹자, 실제로 아들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드셔? 하고 물어보자, 가가노는 어쩔 줄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구김살이 없을까.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당분간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얼마 뒤에는 새로 생긴 점포로 가게 될 테니 그때까지만 있게 해달란다.

 



대학 4학년 때 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덜컥 대상을 받게 되고 출판사에서 계속 새 작품을 요청해서 받아주다 보니 어느새 작가가 되었다. 소설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다가 유일한 취미가 글쓰기였는데 직업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학창시절 친구가 술자리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고 나갔다가 미쓰키를 만나게 되고... 석달 후 미쓰키가 찾아와서 임신을 했고 아이는 낳을 거라고 한다.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전혀 마음이 없는데 결혼을 해야 하나, 뒤숭숭한 마음을 읽었는지 미쓰키도 매달리지도 않고 쿨하다. 둘이 합의하에 아기를 낳아 미쓰키가 기르고 나는 양육비를 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 있는 친구한테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양육비를 대고 자라나는 도모의 얼굴을 사진으로 건네받으며 20년을 계속하다가 5년이 더 지나고 도모가 난데없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25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아무도 안 만나고 소설 쓰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히키코모리가 되어있었다. 완벽하게 혼자 살다가 누군가가 있다는 건 분명 신경이 쓰일 것이다. 도모는 원래 천성적으로 서글서글한 성격인 것 같다. 말도 잘한다. 아무래도 아비인 나를 닮은 것 같지는 않다. 내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어떤 의미냐고 물으며 말을 건다. 어렸을 때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았고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안아 본적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내 아들이다. 아기 때 사진의 자신을 쏙 빼닮았다.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다 큰 어른이 되어 나타난 아들이라는 존재가 애틋한 정이 솟을 리 없다. 그런데도 둘은 마주하며 대화를 하고 먹는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익숙해진다. 물론 가가노는 아직도 당황할 때가 많다. 자기보다 어린데도 세상 물정을 더 잘 알고 청산유수인 도모가 신기하기만 하다. 더구나 독심술을 배웠는지 도모는 아저씨의 마음속에 맴도는 말까지 간파하여 말해주곤 해서 가가노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건가. 얘기 도중 미쓰키 얘기가 나와서 기가 센여자라고 하자, 도모는 결코 기가 센 부류는 아니라고, 몇 번 안 만났으면서 기가 센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자 당황한다.

 



어느 날은 편의점 점장이 찾아오더니 도모에게 전해주라고 약을 가져온다. 감기에 걸려서 3일째 못 나오고 있다고. 그런데 가가노는 그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집이 넓기도 하지만 2층의 방 하나를 쓰고 있으려니 하고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일에 파묻히기도 했지만, 누구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고 사회성 제로인 가가노는 아들이 왔다고 해서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렇게 둔감한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니 우습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도모에게 올라간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 도모는 자치회비 1년치를 내고 가입했으니 주민축제가 있으면 참여하자고 한다. 보통 70이 넘는 노인분들이 활동하는 걸 보고 가가노는 놀란다. 젊은 사람이 나와주어서 고맙다고 하자, 젊지 않습니다. 하다가 멀쓱해진다. 도모 덕분에 조금씩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그리고 이제와서 도모가 왜 나를 찾아왔을까?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역시 소설가의 촉수가 있었나 보다. 도모는 이런 상황이 소설이라면 어떨 것 같느냐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죽음으로 귀결되는 캐릭터가 패턴화된 최근의 몇 작품을 보고 위태로움을 느껴서, 혹시 아저씨가 죽으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미쓰키가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번도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아들이 그런 사소한 일로 만나러 찾아오다니 나는 도모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도모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자문하며 자신의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부모님을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님을 못 본 지 28년이 지났다. 내 얼굴을 알아보시기나 할까, 역정을 내시지 않을까. 초인종을 누르고 문앞에 선 가가노는 불안했지만, 부모님은 금세 알아보신다. 그런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부모님을 뵙고 어떻게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는 걸까 당황스럽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듣게 된다. 여러 개의 반전으로 독자를 놀랍게 한다. 재미있게 읽을 독자를 위해 숨기고 싶지만 딱 한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예쁘기만 하고 머리가 텅빈 여자로 생각했던 미쓰키는 가가노의 열혈 팬이었다. 가가노가 데뷔할 때부터 팬이라서, 너의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더라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듣는다. 어머니가 쏟아내는 얘기 하나하나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이 끔찍하다. “네 최고 걸작은 네 자식이야.”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급반전을 이루며 행복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25년 동안 쌓인 이야기가 하루 이틀 밤에 끝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코믹하고 쿨한 소설이다. 결국 히키코모리였던 가가노를 다시 가족과 연결시켜 준 것은 미쓰키와 도모였다. 아이를 떠맡았다고 해서 원망을 품거나 신파조로 흐르지 않았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해주려는 미쓰키의 슬기로운 지혜와 넉넉한 마음 덕분이 아니었을까. 역자의 말에서 결손 가정이라는 폭력적 용어가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인상 깊었다. 겉으로 보이는 구조적인 결손만이 아니라 심리적 결손까지 포함한다면 이 세상에 결손 상태가 아닌 가족은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이제 세오 마이코의 작품을 두 권 읽었지만, 따뜻하고 희망적인 그리고 재미와 감동까지 보장하는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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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8-07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원서 30권 읽기 대단한거 같아요. 모나리자님 벌써 25권은 읽으셨을거 같아요~!! 따뜻한 책이군요 ^^ 최고의 걸작은 역시 자식 이군요~!!

모나리자 2022-08-08 11:30   좋아요 3 | URL
어머나! 쪽집게시네요~!
세어보니 딱 25권! 아직도 어렵네요.ㅋㅋ
감사합니다~오늘도 화이팅 하세요~새파랑님.^^

scott 2022-08-09 0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원서 30권!
응원 합니다

전 게이고 옹 전작 독파 하다가

이제는 신간이 나오는 것도 무관심 ㅎㅎ


모나리자 2022-08-10 14: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스콧님~

저도 게이고 원서 몇 권 가지고 있는데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안남.ㅎㅎ
그걸 붙잡으면 다른 책 못 읽어요.

그레이스 2022-08-09 0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응원합니다.
어떤 외국어로도 30권 독파 작심은 해본적이 없어서...!
그저 응원만!

모나리자 2022-08-10 14: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30권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어렵다는 것!
그래도 꾸준히 하렵니다.^^

mini74 2022-09-08 09: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축하드려오 ~ 추석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오 ~

모나리자 2022-09-08 13: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미니님~!!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9-08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축하드려요~~

모나리자 2022-09-08 13: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그레이스님~^^
풍성한 추석 명절 보내세요.^^

scott 2022-09-08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의 기적은
오늘?어제?
이달상 선정
축하 합니다
해피 추석 ^^

모나리자 2022-09-08 13:13   좋아요 2 | URL
맨날 기적같은 삶이죠~ㅎ
감사합니다~스콧님~
해피 추석 되세요.^^

이하라 2022-09-08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모나리자 2022-09-08 13:4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풍성하고 행복한 명절 되세요.^^

새파랑 2022-09-08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의 걸작은 아직인거 같습니다 ^^ 당선 축하합니다~!!

모나리자 2022-09-12 19:07   좋아요 1 | URL
어머나~제가 정신 없어서 답글을 이제 달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어느새 명절 연휴가 다 지나갔네요. 잘 쉬셨지요~
이제 일 모드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요.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러블리땡 2022-09-14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25년만에 만난 부자이야기 재밌을것 같네요 ㅎㅎ 일본어 원서책 읽기 완전 멋지십니다 우왕

모나리자 2022-09-19 14: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댓글이 너무 늦었네요.^^:;
주말 잘 지내셨지요~
네,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감사합니다~러블리땡님!
새 한주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15가지 포인트를 활용해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표현한 대로 "사실 수집(Scuttlebutt)"과 관련된 실제 세계의 경험을 반복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 주식은 여기서 탐색해보고, 저주식은 저기서 알아보는 식이다. 이 방식은 정말 잘 들어맞는다. 내가 투자 업계에서 경험을 쌓아나가던 젊은 시절 15가지 포인트 덕분에 거둘 수 있었던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던 몇 개의 위대한 기업을 찾아내 이 분야에서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 P10

사실 수집이란 온갖 허황된 루머는 무시한 채 우리가 분석하고자하는 기업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경쟁업체 및 고객, 원재료 납품업체, 심지어 색다른 시각으로 그 기업을 바라보는 외부 전문가를 상대로 정보를 구하는 것이다. 분석 대상 기업의 경쟁업체에서 판매담당간부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보면 당연히 그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이야기하겠지만 만약 자신의 경쟁 상대가 정말 위대한 기업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 P11

사실 수집 그 자체는 15가지 포인트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예술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기술)과 작곡하는 것(예술), 이 두 가지에는 차이가 있다. 피아노를 훌륭하게 연주하지 못한다면 아마 작곡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느 분야든기술은 반복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런데 예술은 그것을 창조할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연주하는 기술을 충분히 익히면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더구나 그것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상당수가 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P12

아버지가 정리한 15가지 포인트는 어떤 기업의 주식을 살 것인지에대한 원칙이다. 15가지 포인트에서 이야기하는 기업은 넓은 시장과강력한 제품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재의 제품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잠재력을 끊임없이 개발하고자 하는 결단력 있는 경영진이 이끌어가는 회사다. 이런 기업은 미래의 신제품을 창출해낼 수 있는 생산 - P12

적인 연구개발 부서를 갖고 있다. 또 효율적이며 규모를 갖춘 강력한판매 조직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제품이 시장에서 부딪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원칙은 매우 미래 지향적이다. 이런 기업은 제품의 판매단가에서 제조원가를 뺀 판매 마진율이 상당히 높다. 판매관리비를 비롯한 회사의 온갖 비용을 다 합쳐봐야 매출총이익에 훨씬 못 미치므로 충분한 순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원칙은 또한 제품의 수익성을 유지하고 더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빈틈없는 계획을 의미한다. 모든 계층의 임직원들이 행복을느낄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들이 회사에 보다 충성하고 생산적이 되도록 한다. 이 역시 미래 지향적이고, 개방적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이런 기업은 엄격하면서도 과학적인 원가 관리를 수행하며, 해당업종의 다른 경쟁 업체들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실성과 개방성을 가진 차별화된 경영진이이 같은 모든 특징들을 하나로 결합하고, 회사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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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자는 변동성의 좋은 부분, 즉 수익률의 상승하는 변동성만을 취하도록 도와준다. 이는 주식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다른 투자자산 역시 장기투자했을경우 위험이 낮아진다. 이것이투자를 장기로 해야 하며, 단기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하는가장 큰 이유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연금저축, IRP, ISA 모두 장기투자가 의무적이다. 장기투자의 장점을 잘 반영한 투자 상품으로 개인투자자에게 더없이 좋은 행동장치가 되어 줄 것이다. - P141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낙관주의라고 한다.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에서 긍정적 성과가 생길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 독일 하노버 대학에서 기관투자가와 개인자산관리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독일의 투자자 역시국내주식을 선호하며, 낙관주의와 관련 있음을 제시했다. 또한 로버트 쉴러 등은 낙관주의 편향으로 투자자는 자국의 경제 전망을외국인의 관점보다 더 낙관적으로 바라본다고 주장했다. - P150

헤지란 울타리다. 늑대로부터 양을 지켜주는 그런 울타리, 투자시장에서의 헤지란 위험에서 돈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환헤지란환율의 변동성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환헤지는 비용이 든다. 나대신 환율의 변동성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는 값이라고 보면 된다. 환헤지 비용은 이론적으로 양국 간의 금리 차이를 반영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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