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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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츠바키 문구점으로 오가와 이토를 처음 만났다. 아메미야 하토코가 할머니의 서도를 배우고 가업을 물려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며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전해주는 뭉클한 기적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 달팽이 식당』이 힐링 소설의 원조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음식 소재의 이야기로 달라졌지만, 대필 의뢰자의 편에 서서 철저하게 맞춤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달팽이 식당이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도 정말 닮았다. 사전 면담이나 편지를 통해 좋아하는 음식이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는 음식을 준비한다. 손님은 하루에 딱 한 팀. 특별한 날은 두 팀이 되기도 하지만, 한 팀이라는 원칙을 지킨다. 요리를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이웃이나 지인의 소개로 최상품을 조달하고 여기에 드는 품이나 시간, 정성이 대단하다. 그렇게 해서 과연 타산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는다면 어떤 힘든 상황이라도 술술 풀릴 것 같다.

 



화자인 링고(린코)가 어느 날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와 보니 집안이 텅 비어 있다. 3년을 함께 살았던 인도인 남자친구가 전 재산과 할머니가 남긴 가재도구는 물론 애지중지 사 모으던 요리기구를 몽땅 털어 도망을 친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연실색하고 찾으러 다니느라 야단법석을 쳤을 텐데 링고는 체념한다. 그 충격은 대단했는지 그때부터 목소리를 잃었다. 할 수 없이 중학교 때 가출하고 1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유일하게 남긴 할머니의 겨된장 항아리를 보물단지처럼 안고 말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풍족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링고가 너무나 사랑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고향을 떠났을까. 보통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었지만, 엄마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콘크리트 회사 사장이라는 네오콘이라는 남자가 엄마에게 집적거리는 것은 어렸을 때 이후 여전했으며 짙은 화장에 교태를 부리며 손님을 맞는 엄마의 가게 아무르에는 단골고객들로 항상 떠들썩했다.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당하고 모든 전 재산을 잃었으니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던 링고는 엄마의 창고를 빌려 식당을 열기로 한다. 몇 초 만에 식당 이름 달팽이를 떠올리면서.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安住)의 땅이다.(P75~76)

 



이렇게 요리에 진심이었던 링고는 달팽이 식당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우는 링고를 동면 쥐로 달래주었던 구마씨가 가게를 꾸미는 일부터 음식 재료를 구하는 일까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주었다. 링고는 개업준비를 위해 수고해준 구마씨를 위해 먹고 싶다는 카레를 만들어준다. 이어서 맞이한 손님은 몇십 년이나 상복 차림으로 살아왔던 할머니다. 링고는 이 할머니를 위해 메뉴를 생각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온 닫혀버린 마음의 눈을 떠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인다. 아직까지도 목소리를 되찾지 못해서 필담 카드로 의사소통을 한다. 준비한 식사를 드시도록 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기다리는 링고의 마음은 어떨까. 식당을 열고 첫 손님, 그것도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상복차림으로 십년을 넘게 살아온 할머니다. 그 많은 양의 음식을 할머니 혼자서 드시는 것도 놀랍고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어주는 손님이 있다는 것, 오랜 세월 품어왔던 꿈이 이루어진 것에 스스로 감격스러워한다. 며칠 후 구마씨에 이어 할머니에게까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 몇십 년 동안 벗지 못한 상복을 벗어버리고 외출도 하고 지팡이도 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마씨는 링고의 음식을 먹고 할머니가 무척 행복해했다고 전해주었고 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이어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구하려는 소녀 고즈에, 비밀스러운 사랑의 도피처를 찾아온 커플 등 다양한 손님들을 맞이한다. 모두 사람에게 필요한 요리를 만들건만 먹기를 거부하는 토끼를 위해 요리를 하는 부분은 정말 감동이었다. 학교에 가야 하는 고즈에를 위해 딱 하루만 맡아보기로 했는데 토끼는 전혀 음식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링고는 버려진 토끼의 입장을 헤아리며 마음을 읽으려고 애쓴다. 또한 자신을 믿은 고즈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고심하더니 세상에, 먹기를 거부하던 토끼가 비스킷을 남김없이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위한 요리든 동물에게 줄 음식을 그들의 마음 구석까지 헤아리며 음식을 만드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든 요리사가 어디 있을까. 달팽이 식당에서 요리를 하면서 링고는 엄마에 대한 몰랐던 것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가까이 갈 수 없었던 닫힌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냉정한 것 같았던 엄마가 누구보다도 링고를 사랑했었다는 것, 첫사랑 슈 선배와의 결혼 피로연에서, 애정을 다해 키웠던 돼지 엘메스는 많은 손님들의 맛있는 요리가 되어 행복감을 선사한다. 마치 눈앞에서 시연하는 셰프의 요리를 보는 듯했다.

 



결국, 작가는 이 얘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나아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딸 루리코(링고 엄마)에게 쏟지 못한 애정을 할머니는 링고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요리의 길로 인도했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고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P205)

 


내게 요리란 기도 그 자체다.

엄마와 슈이치 씨의 영원한 사랑을 비는 기도이고, 몸을 바친 엘메스에게 감사의 기도이고, 요리를 만드는 행복을 베풀어 준 요리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기도 했다.’(P246)

 



링고에게 요리는 기도였다.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목소리를 잃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해 주었지만 자신도 치유하지 않았을까. 특히 링고에게는 사람의 얼굴이나 몸짓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판단하는 재주가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절묘한 촉을 가지지 않았는가. 진실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 그만의 촉이 발달하는 걸까. 생각지 못한 반전을 적재적소에 삽입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무엇보다 링고가 잘못 알고 있던 엄마에 대해 알고 나서는 모녀의 관계도 좋아진다. 묵은 감정도 해소되고 다시 만난 모녀가 좀 더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앞에 놓인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아쉬운 마음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이 작품은 힐링소설이라고 하듯이 마음의 치유나 다양한 독자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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