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내면서 <천국>편을 읽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자료를 조금 찾아 보았다. 최소한 각 곡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이다. 『신곡』은 소설처럼 읽으면 순례자 단테가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놓칠 때가 많다. 내용이나 표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저승 세계의 구조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좋은 글 하나를 찾았다. <토요 클래식>이라는 사이트에 번역되어 있는 글이다.  참고로 여기는, 카페 회원제라 잘은 모르겠지만, 『신곡』을 토요일마다 한 곡씩 아주 상세하게 공부하면서 정리해 놓는 것 같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십 년 가까이 몇 차례에 걸쳐서 완독하는 것 같다. 『신곡』을 깊고 꼼꼼이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될 사이트다.  

 

https://cafe.daum.net/danteclub/JlGL/1?svc=cafeapi

 

 

피터 호킨스라는 분이 쓴 'Dante & the Bible' 이다.  이에 따르면 『신곡』에는 성서가 575회 인용되었다.

 

성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연옥>편이다. 연옥은 현실의 우리 세계와 가장 많이 닮아 있다.  한정된 시간이 있고, 죄를 씻어서 천국에도 갈 수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곳이다.  천국과 지옥은 영원한 축복이나 영원한 고통이 있을 뿐 인간의 의지가 어찌 할 수 없는 곳이다. 

 

연옥은 성서의 장면이 비유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옥의 해안가에 영혼들이 도착하는 것은 모세가 히브리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킨 장면과 같은데,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탈이집트'를 한 것이다. 연옥 11곡은 주기도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고, 연옥 27곡부터는 성서의 에덴 동산이 펼쳐진다.  

 

단테는 『신곡』을 마치 성서처럼 썼다.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영감으로 제3의 성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도 자신의 시를 읽으려면 성서를 읽듯 네 겹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신곡』은 성서를 은유적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단테가 저승을 여행하는 순례 자체가 성서적이라 할 수 있다. 

 

단테는 순례 중 곳곳에서, 본 모든 것을 잘 기억하여 세상으로 돌아가 전할 것을 다짐한다. 마치 예언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단테는 하느님의 빛을 응시하고 돌아와 『신곡』을 노래한다. 단테는 성서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재창조하여 문학으로 완성하였다. 

 

 

 

 

 

 

 

 

<천국> 편에는 여러 군데 시인 단테를 직접 드러내는 표현이 나온다.  하느님의 예언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만 같다.  5곡 16행에 "나의 베아트리체가 이 곡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었다." , 5곡 139행에 "노래를 부르듯 다음 곡에서 내게 대답했다.", 10곡 7행에 "그러니, 독자여!"라는  식이다.  2곡은 앞 부분 전체가 그렇다.

 

 

내 얘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여러분은 조각배를 타고

노래하며 항해하는 내 배를 뒤따라왔구려.

 

깊은 바다로 들어서지 말고

해안을 볼 수 있는 지금 돌아가시오.

나를 잃고 길도 잃을 수 있으니.

 

나는 아무도 지나친 적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려 하니,

미네르바가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아폴론이 이끌어 주며

아홉 뮤즈가 큰곰자리를 가르쳐 준다오.

                                                    (2곡 1~9)

 

 

 

 

하느님의 사도, 예언가로 제3의 성서를 들려주는 단테를 따라 가기는 정말 어렵다. 단테가 탄 조각배보다 백 배는 부실한 뗏목을 타고 저 깊은 바다로 들어서는 것은 차라리 무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마지막 하느님의 빛을 보아야 하지는 않겠는가, 비록 망막에 빛이 부서지는 잔상만 남긴다고 하더라도.

 

 

 

 

 

 <28곡 주9) >

 

 

 

 

단테에게는 세 명의 길잡이가 있다.  지옥과 연옥은 베르길리우스가, 연옥 꼭대기의 지상 낙원부터 천국의 원동천까지는 베아트리체가,  하느님이 계신 최고천(정화천/ 엠페리오)에서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빛을 응시할 때까지는 베르나르두스가 단테를 인도한다.  '훌륭한 말'로 단테를 이끈 베르길리우스와 '거룩한 말'로 단테를 고양시킨 베르나르두스도 베아트리체의 부탁을 받아서 단테의 인도자가 되었다.

 

베아트리체가 임무를 마치고 정화천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후 단테는 그녀를 이렇게 찬미한다. 

 

 

 

언제나 나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나의 구원을 위해 지옥의 문턱에

발자국을 남기는 수고를 한 나의 여인이여!

 

당신의 힘을 통해, 당신의 미덕을 통해,

그동안 내 눈으로 본, 그 많고도 많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입니다.

 

가능한 모든 길들로, 모든 수단들을 사용하여

당신은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을 지녔습니다.

 

당신의 큰 사랑을 내 안에 간직하여

당신이  치료해 준 나의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날 때

당신에게 기쁨이 되게 하소서.

                                              (31곡 79~90)

 

 

 

이렇게 베아트리체는 '구원의 여성상'이 되었는가 보다.  여성을 생물학적 성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의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구원의 여성'이 있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많은 여자들이 '구원의 여성'이 되기 위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만하면서,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로, 얼마나 많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는가. 여성 페미니스트가 데이트 폭력에 시달렸다는 기사가 사실 놀랍지는 않다. 데이트 폭력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데이트 폭력에도 불구하고 베아트리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두운 숲에서 이 위험한 남자를 구해낼 구원의 여인으로서 말이다.

 

 

 

 

<귀스타브 도레>

 

 

 

 

단테는 베르나르두스의 기도와 성모 마리아의 은총으로 마침내 하느님, 그 영원한 빛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영원한 빛을 응시하도록 허락하신

풍요의 은총이시여! 저의 눈은 그 빛 속에서

저 가능성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33곡 82~84)

 

 

 

 

 

 

 

 

내 소망과 의지는 이미, 일정하게

돌아가는 바퀴처럼,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시는 사랑이 이끌고 있었다.

                                                  (33곡 143~145)

 

 

 

단테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다. 神化, Deificaton 되었다. 불멸을 열망하는 인간은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인문 고전 강의>

 

 

 

 

필멸의 인간이 불멸에 이르는 세 가지 방법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식을 낳는다?  유전자는 영원히 이어지니 불멸하는 것일까? 우리가 모두 아담의 자손이고, 아담이라는 큰 나무의 하나의 잎이라면 그럴 것 같다. 잎이 지고 다시 피는 한 나무는 죽지 않는다. 

 

명예.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영원한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처럼. 나는 이 방법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관조.  진리를 관조하는 것이다.  우주가 무엇이고, 삶이 무엇이고, 존재들은 왜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일까? 나는 무엇일까?  朝聞道夕死可矣.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반복하면서 늙어 가다 보니, 내 존재의 목적이 궁금하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物化이고, 신적 진리를 일별이라도 한다면 그것이 神化일 것 같다.  

 

단테는 지혜와 함께 은총으로, 훌륭한 말과 함께 거룩한 말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신적 진리를 보았다.  사랑은 무엇인가?

 

 

 

무수한 물음들에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지며 100곡의 『신곡』 읽기를 마친다.  공자는 未知生. 焉知死. 삶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했다. 사람의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신의 진리를 알리오, 라고 말장난이라도 치고 싶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모든 글은 결국 사람이 한 것이다. 천국을 말하든 지옥을 말하든 사람이 한 말이니, 그 신적 진리 역시 사람의 길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다만 아둔한 머리와 침침한 눈으로 이성을 부여잡고, 우리 사는 세상이 사람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며, 그 길을 함께 걷고 싶다. 그 하늘에 별 하나가 빛난다면 참으로 좋겠다.

 

 

 

쉽게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지한지요!

증거도 증명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어떤 약속이든 쉽게 하고 쉽게 매진하지요.

 

 

                                            (29곡 121~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