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독해 두 번째 책으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기로 했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오뒷세이아』' 가 입에 붙었고, 사건의 흐름으로도 『일리아스』가 먼저 이지만, 고전 초보자들인 우리는 보다 읽기 쉬운 『오뒷세이아』를 선택했다. 『일리아스』는 너무 빈번하고 상세하게 묘사되는 전투 장면들 때문에 도전하지 못했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역사적으로는 미케네 문명 말기이고, 신화적으로는 영웅의 시대이다.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걸출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서사시의 주인공은 영웅이지만 영웅의 운명과 고난은 신에게서 기인하므로, 희랍의 신화를 알지 못하고 이 서사시들을 읽기는 어렵다.  신화를 따로 공부하기는 힘에 부칠 것 같아서 TV 강의로 대신하기로 했다. 좀 더 주의 깊게 듣기 위해서 강의 내용을 정리하는 과제를 수행하기로 했다. 강의는 고대 그리스 신화와 문학 그리고 철학을 연구하는 김헌이 <EBS특강 지식의 기쁨>에서 5회에 걸쳐 방송한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강의 '최초의 신들' 을 정리하였다.

 

 

 강의는 크게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째는 왜 그리스 · 로마 신화인가?  둘 째는 서사시가 무사 여신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 · 로마 신화는 다르지만 같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기원전 8세기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다.  서양의 고대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먼저 전성기를 구가한 것은 희랍이다. 희랍은 페르시아 제국과 대결하며 세력을 확장하였으나 기원전 4세기 경 두 세계 모두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당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짧은 통치가 끝나고 분열된 제국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쳐 대부분 (?) 로마의 영토로 병합된다.

 

희랍을 정복한 로마는 눈부신 희랍 문명에 압도당하여 헬레니즘화 한다. 이때 희랍의 신들도 이름만 로마식으로 바뀐 채 그대로 로마의 신들이 된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첫 번째 주제인  '왜 그리스 · 로마 신화인가?' 는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약 3천 년 전의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왜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근대화 이후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하나의 세계로 되었다는 의미는 global standardization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구가 만든 근대가 우리 시대의 표준이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고 있는 집부터 생각하는 방법까지 조선의 전통이 아니라 서양의 전통 위에 살고 있다.

 

서양의 전통을 만든 서양 문명의 뿌리는 그리스· 로마 문명이다. 이 문명의 핵심은  그리스 · 로마 신화이다. 신화의 상상력과 교훈이 서양 역사를 이끈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고대의 서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서양 그리고 미래의 서양도 이해할 수 없다. 현재의 서양과 가까운 미래의 서양은 우리의 현재와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 자신의 오늘을 잘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내일을 잘 모색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수 천년 전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다행히 이 신화는 무척 재미있다. 아무런 목적없이 읽어도 그 기발함과 분방함 그리고 심오함에 놀란다.

 

 

 

 

 

두 번째 주제는 무사 여신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무사 여신에 대한 명령으로 시작한다.  1권 1행에서 5행까지는 김헌의 번역이다. 

 

"진노를 노래하라,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진노를.

 이는 수만의 고통을 아카이아인들에게 주었고

 영웅들의 수많은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내던졌으며,

 그들 자신들은 먹이거리로 만들고 있었으니,

 개들과 온갖 새들에게,

 그리고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었나이다. "

 

 

호메로스뿐 아니라 『신들의 계보』를 쓴 헤시오도스도 무사 여신과의 만남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무사 여신은 누구인가?

 

 

 

 

 

9명의 무사 여신들은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의 딸들이다. 므네모시네는 기억의 여신이다.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 태어난 티탄 신족 가운데 하나이다. 제우스와는 고모 혹은 이모 관계이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와 전쟁을 하고 권력을 잡았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의미하므로 제우스는 시간을 극복한 신이다. 시간을 극복한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의 결합으로 태어난 무사 여신들은 '시간을 극복한 기억' 을 상징한다.

 

 

 

 

영원한 기억을 가진 무사 여신들이야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일 수밖에 없다. 유한한 수명의 시인들이 옛날 옛날의 신화를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무사 여신들이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무사 여신들은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매일 듣는 음악, Mousike는 Mous(무사여신) + ike(기술) 이다. '무사 여신들의 기술' 이 Music 이다.   

 

박물관, Museum은 무사 여신들의 신전이다. 뮤세이온은 공동체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도 시간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이야기를 간직하여 들려주는 박물관이 무사 여신의 집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무사 여신이 있다. 이야기가 인간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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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 - 국내 최초 수메르어·악카드어 원전 통합 번역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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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읽은 것은 책이 아니다. 점토판이다. 4,800년 전에 있었던 역사를 바탕으로 최소 4,600년 전부터 토판에 새겨 온 이야기다. 거듭 거듭 다듬고 다듬으며 전해지는 수 천년 동안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고, 그 중 가장 완성된 형태의 판본이 19세기 말, 영국인에 의해, 2,600년 전 서아시아를 통일했던 앗시리아 제국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된 12개의 토판 중 11개의 토판은  3,600년 전에 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카시트족의 대서기관 신-리키-운니니가 개작한 판본이다. 현대의 <길가메쉬 서사시>는 대개 이 운니니 판본을 토대로 하고 있다.

 

4,600년 → 3,600년 → 2,600년 전까지 끊이지 않고 전승되었던 인류 최초의 영웅, 길가메쉬가 홀연히 나타나 오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곰을 만나기도 훨씬 전의 그 이야기가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류가 남긴 혹은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문학 -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가 문학의 원형 (原型)인 동시에 완성태라고 한다면 과장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엉터리없는 감탄사에 불과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가 고전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EBS 특별기획 <통찰>에서 길가메쉬 서사시 강연을 한 배철현 교수는  영웅 이야기는 세 단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첫 째 단계가 집을 떠나는 것, 둘 째는 온갖 고생을 하며 고통을 겪는 단계, 세 번째 단계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구조는 단순하다. 떠났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빈손으로 돌아온다. 떠날 때 얻고자 했던 것, 그 욕망을 성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돌아온 그는 떠날 때의 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그를 영웅으로 부른다. 한낱 욕망으로 가득했던 철부지를 성숙한 영웅으로 만든 것은 passion, 희랍어로 pathos 즉 겪음, 고통, 고난 이다. 고통이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통한 인간의 깨달음이다.

 

 

 

 

 <문학 고전 강의>

 

 

'pathei mathos' 는 희랍에 널리 퍼진 격언으로 희랍 비극의 주제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길가메쉬 서사시』 의 序詞에 해당하는 1장도  'pathei mathos' 로 시작한다.

 

 

 

  <길가메쉬 서사시>

 

 

'모든 지혜의 정수'는 악카드어로 'nagbu/naqba' 이다. 심연 'the Deep' 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지혜'로 번역하기도 한다.  길가메쉬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nagbu를 본 자' 로,  '지혜기 망토처럼 그에게 붙어 다녔다.'  이 지혜는 '모든 것을 경험' 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 는 명성을 얻고자 철없이 날뛰던 길가메쉬가 지혜로운 영웅 길가메쉬가 되어 돌아오기까지의 고난, 겪음에 관한 이야기다.

 

 

 

 

길가메쉬가 얻은 깨달음, 최고의 지혜는 인간은 필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길가메쉬는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하던 엔키두의 죽음을 보고서야 아무리 뛰어난 인간일지라도 결국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인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길가메쉬는 영생을 찾아 떠난다. 손에 넣을 뻔했던 영생은 뱀에게 도둑맞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르크에 성벽을 쌓고, 자신이 겪은 고난을 돌기둥에 새긴다. 길가메쉬는 126년 동안 우르크를 다스렸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스스로를 특수자로 인식한다. 나는 다르다는 생각, 나는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반면 타인들,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 겪음을 통해, 인간 일반의 성질들 즉  보편성을 획득한다. 다양한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험은 말랑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인 동시에 열정이다. 지혜는 안락한 여행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밤잠을 잘 수 없는 고뇌 속에서 문득 깨달아지는 '가시박힌 식물' 같은 것이다. 이 가시에 찔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반성적 사유를 할 수 있다. 나는 특수자인 동시에 보편자로서 인간 존재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개별자의 겪음, passion이 compassion이 될 수 있어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compassion은 'com + passion' , 고난을 함께 겪는 것이다. 함께 겪으며 함께 고통을 나누다 보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compassion을 동양에서는 慈悲, 同情이라 한다. 

 

 

 

 

 

 

 

함께 고통을 나누면  공통 감각 sensus communis 즉 공감 능력이 발달하고, 공동체의 공감 능력이 발달할수록 공동체는 공공의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얻는 지혜란 무엇인가? 무엇에 대한 지혜인가? the Deep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길가메쉬는 바닷속 심연으로 내려가서 nagbu/naqba를 보았으나 그것을 가지고 오지는 못했다. 길가메쉬가,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잃어버린 nagbu/naqba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진시황이 입증했듯 불로초는 없다.) '모든 지혜의 정수'는 손에 잡히는 실체적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을 인간의 지혜로, 우리 공동체의 지혜로 삼을 것인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합의하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희랍에서는 아레테라고 불렀다. 아레테는 덕 혹은 탁월함이라고 해석한다.  커피의 미덕은 맛이고, 바이올린의 탁월함은 소리에 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인간의 미덕은 지혜이다. 무엇에 대한 지혜인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지혜를 인간의 아레테라고 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

 

 

 

시대의 아레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겪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고전의 기능이 있다. passion을  compassion化 하는 것이 고전의 오래된 역할이었다.  수 천 년에 걸쳐 『길가메쉬 서사시』 가 다양한 판본으로 개작되어 전승되어 온 것은 길가메쉬를 통해 시대가 추구해야 할 美德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희랍 전역에서 음송되었던 것도 아킬레우스의 영웅적 희생이 폴리스 시대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폴리스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텍스트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는 축제나 각종 행사를 통해 폴리스가 직접 시민의 덕성을 담당하면서 민주정을 발달 시켰다. 그 절정이 바로 희랍 비극이다. 안티고네를 관람하면서 아테나이 시민들은 폴리스가 인간의 법 위에 서야 하는지 신의 법 위에 기초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논쟁했다.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 키토>

 

 

이것을 이데올로기 교육이라고 폄훼한다면 극단의 개인주의자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zoon politikon' 이다. 희랍의 맥락에서는 폴리스에 살지 않는 인간, 폴리스의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라는 뜻이다. 현대적으로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로 의역된다.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에게는 반드시 사회적 의식이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겪음과 공감에 의해 형성되는 시대 정신이 없는 세계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거나 인간의 '세계'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의 개인주의는 인간을 점점 그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각자의 경험은 많아도 공통의 경험은 부재하고, 개별 감성은 풍부해도 공통의 감각, 공감의 능력은 부족하다. 루카치의 유명한 개탄처럼 '별이 빛나는 하늘'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다.

 

 

고전은 우리에게 부재한 공통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제공하는 소중한 텍스트이다.  시대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이 고전의 미덕이다.  당대의 가치관을 제시하고 시대를 날카롭게 묘파할 뿐 아니라 시공간을 넘어 인간이란 존재 자체의 근원과 본질을 질문하며 탐색하고 있다.

 

고전의 질문을 이어받아 인간 일반의 보편성에 우리 시공간의 특수성을 결합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아레테, 미덕, '하늘의 별'을 합의해 낼 수 있다면, 영원한 진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고전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이 되어 줄 것이다.

 

 

  <문학 고전 강의>

 

 

길가메쉬는 우르크로 돌아와 성벽을 쌓았다.  필멸의 인간이란 한계 속에서 불멸의 인간성을 공공의 영역에 새긴 것이다. 죽지 않는 인간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인간의 이름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의 아킬레우스도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죽음이 예고된 운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길가메쉬 이후 인간의 '불멸'은 그 이름 앞에 새겨 졌으니, 우리에게도 '불멸의 이순신' 이 있다.  공동체가 불멸의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별이 빛나는 하늘' 이 있다는 것이다.  별빛을 따라 함께 걸을 수 있는 공동체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동네 이웃들과 4주간에 걸쳐  『길가메쉬 서사시』 를 읽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다음에 읽을 고전을 준비하는 마음은 설레인다.

 

 

 

 

추기 :

플라톤 아카데미 <지혜의 향연> 중

주원준의 길가메쉬 서사시 강의에서 캡춰.

 

https://youtu.be/JJxj0ziaFgk

 

 

1. 길가메쉬는 역사적 인물인가? : 기록들

 

 

 

2. 토판본들 

 

 

 

3. 점토문자 해독 

 

 

 

4. 최초의 '서사시' 인가?

토판본의 아카드어는 '작품' 으로 표현

 

 

 

5, 지혜는 '가시' 

 

 1) "네게 비밀을 말해주겠다. 길가메쉬, 음 ..... 무언가 하면 ..... 식물이 하나 있는데 ....... 가시덤불 같은 .......그 가시는 장미처럼 네 손을 찌를 것이다. 네 손이 그 식물에 닿으면 너는 다시 젊은이가 될 것이다!"

 2) "손은 찔렸지만 식물을 움켜잡았다."

 3) "그때 뱀 한마리가  식물의 향기를 맡고 몰래 올라와 그것을 갖고 달아났다."  (김산해 편역, p31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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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8-0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네요! 즐건 주말되십시요!

말리 2020-08-08 17:24   좋아요 1 | URL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개념들을 마구 흩뿌린 부끄러운 글입니다. 전문가 아니라는 것을 방패 삼아서 미숙하나마 이런 개념들을 한 번 다루고픈 욕심을 부려 보았습니다. ^^;; 전국이 비에 젖었지만 막시무스님도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그냥 2020-08-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정말 좋은글이네요. 길가메시 서사시 읽고 싶었지만 읽지 못한 사람으로 이렇게 꼼꼼하고 쉽게 내용을 설명해주는 글을 읽으니 참 고마운 생각이 드네요. 이글을 쓰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관계 되는 사진과 동영상을 찾았겠으며... 하여간 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말리 2020-08-09 12:54   좋아요 0 | URL
격려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길게 쓰는 편이지만 설익은 글들이라 읽어 주시는 분들께 조금 죄송하고 많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기 저기서 읽은 것들, 본 것들을 조금씩 모아 놓았다가 필요할 때 찾아서 맥락화하려 노력하는데 아직 매끄럽지 못합니다. ^^;;
 

세계사 공부는 흔히 4대 문명을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은 메소포타미아이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9785>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열어젖힌 것은 수메르이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615

 

 

 

수메르에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생겨났다. 기원전 3500년경에 본격 시작된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는 우르크였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수메르 문명은 인간이 이룩한 '최초의 성숙한 문명' 이다. 수메르가 발명한 것들의 목록에는 현재 인간이 누리고 있는 '인공물'의 원형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신화와 종교를 비롯해 군사적·행정적 제도, 관개시설과 도시, 무엇보다 문자와 학교와 서사시가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어는 쐐기문자 (설형문자)라고 불린다. 점토판에 갈대나 금속으로 새겨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뜻을 나타내는 그림문자였으나 점차 음절을 나타내는 표음문자로 바뀌어 갔다. 쐐기문자에는 수메르어 이후 서아시아의 공용어가 되었던 악카드문자 등이 있다.  수메르어는 악카드어의 위세에도 소멸되지 않고 신성한 문자로서 학교와 신관에 의해 전승되었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점토판에는 왕의 목록이나 관직, 토지 소유권, 재산 내역, 청구서, 영수증 따위의 간단한 기록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신화이자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가 있다.

 

 

 

 

 

 

 

 

 

 

 

 

 

 

 

 

 

 

 

길가메쉬는 기원전 2,800년 경 우르크 제1왕조의 5번째 왕으로 즉위하여 수메르 문명의 전성기를 이끈 역사적 인물이다.  길가메쉬에 대한 영웅담은 수메르 문명이 쇠퇴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전해지며 개작을 거듭했다.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문명의 초창기, 먹고 입고 싸우는 것만이 전부였을 것 같은 먼먼 옛날에 기껏해야 진흙 위에 갈대 끝으로 새긴 이야기가 읽을꺼리나 될까 보냐 싶다면 정말로 놀랄 것이다.  서양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원형이 여기 있으니 말이다.

 

이제 한 달에 걸쳐 천천히 지인들과 함께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을 예정이다.

 

 

 

 

  <아틀라스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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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 라틴어 원전 번역,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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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짝퉁이다. 기원전 27년 로마는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했다. 옥타비아누스 스스로는 프린캡스 즉 제1의 시민으로 만족한다고 공언했지만, 원로원은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바쳤고,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를 헌정하여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 했다.  이 시대에 로마에서 쓰여진 신화 모음집이  『변신 이야기』다.  신화 중에서도 metamorphosis- 變身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골라 모은 것이다. 로마 신화라는 것의 대다수가 희랍 신화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명칭이 라틴어로 바뀌어 있어 오히려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변신 이야기』는 놀라우리만큼 재미있다.

 

 

신화에 관해 읽거나 들어본 갖가지 이야기들이 모두 모인 것도 같고, 셰익스피어나 카프카도 이미 여기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당연히 호메로스의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도 짝퉁스러운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도 다시 나타나 위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출현을 예언한다. 이 모든 짜집기와 짝퉁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변신 이야기』는 고전일 수밖에 없다.  문장은 유려하고, 비유는 탁월하고, 교훈은 가슴을 때린다.

 

신화들이 으레 그렇듯 인간의 휘브리스는 신의 네메시스를 부른다. 신을 넘보지 않는 인간은 무시무시한 신의 복수로부터 안전하겠지만 어쩌면 짐승과 같을지도 모른다. 신화(神化, deification)를 향한 욕망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신화를 포기한 인간은 물화(物化, reification)하여 한갓 동물이 될 뿐이다.

 

신과 인간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변신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때로는 신의 응징에 의해, 때로는 신의 연민에 의해 인간은 바위로도 새로도 하늘의 별로도 변신된다. 무엇으로 변신되건 변신을 유발한 인간의 욕망은 애처롭고도 위대하다. 비록 오만의 극치에서 파멸한다 해도 신과 나란히 실력을 겨루려는 자부심, 신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 금지된 곳으로 오르려는 불타는 갈망을 우리는 '인간다운' 이라 부를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맺는말을 통해  '인간다운' 욕망을, 신화(神化, deification)에의 갈망을 예언으로 노래한다.

 

 "이제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윱피테르의 노여움도,

 불도, 칼도, 게걸스러운 노년의 이빨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오직 내 이 육신에 대해서만 힘을 갖는

 그날이 와서 내 덧없는 한평생에 종지부를 찍게 하라. 

 하지만 나는, 나의 더 나은 부분은 영속하는 존재로서

 저 높은 별들 위로 실려 갈 것이고,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힘에 정복된 나라가 펼쳐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는 백성들의 입으로 읽힐 것이며, 시인의 예언에

 진실 같은 것이 있다면, 내 명성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이천 년을 넘어 우리와 함께 있는 오비디우스의 예언은 진실이 되었으니, 불멸의 이름을 획득한 시인은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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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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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12~13세기 경에 실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서사시이다.  서사시의 배경은 영웅들이 활약하는 청동기 미케네 문명의 마지막 시기로, 이 전쟁 직후 미케네 문명은 남하한 도리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철기 시대를 맞은 희랍 세계는 이른바 암흑기를 거쳐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고전기 희랍문명을 꽃피우는 폴리스 시대로 접어들었다.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와 실존 시기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기원전 8세기 무렵 호메로스가  400년 전에 있었던 트로이아 전쟁에 관해 구전되던 전설을 서사시의 형태로 완성한 것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고 알려져 있다. 

 

트로이아 전쟁 10년을 다룬 , 물론 실제로는 10년 중 단 몇일에 관한 노래이지만, 『일리아스』가 영웅들의 대서사시인 반면 전쟁을 끝낸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기까지 겪어야 하는 10년 동안의 고난을 노래한 『오뒷세이아』가 영웅성을 상실한 현실적 인간들의 이야기에 가까운 것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행하는 시대적 배경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는 값비싼 전차를 타고 번쩍이는 무구들을 자랑하며 신들의 도움으로 전쟁을 하는 귀족 영웅들의 시대이지만 철기 시대는 평민들이 전쟁에 참가하여 밀집군단을 이루어 적을 밀어내는 인간들의 단결과 인내와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해설 (p773) 에는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 때문에 수많은 영웅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데 반해,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뒷세우스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와 끈기로 운명을 개척해나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그러므로 『일리아스』가 오직 용기와 명성만을 추구하던 옛 가치관을 이상화했다면 『오뒷세이아』는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해나가는 새 시대의 가치관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 두 작품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일리아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1권 1행부터 7행까지가 서사시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

 

 

아킬레우스가 그들의 지도자인 아가멤논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다투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게 아카이오이족을(자기편) 패배하게 해달라고 조른 이유는 '명예' 때문이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명예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일리아스』 에서 명예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전쟁에서 약탈한 여자, 청동 무구, 전차, 세발 솥 등의 물질로 형상화 된다. 아가멤논이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데려간 것은 여자를 뺏어간 것이 아니라 아킬레우스를 모욕하고 그의 명예를 짓밟은 것이다.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는 인근의 도시를 파괴하고 데려온 노예로, 전쟁에서 약탈한 사람과 재물은 공로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명예의 선물' 이다.

 

'명예의 선물'을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함선에 드러누워 트로이아인들과의 전투에서 아카이오이족의 영웅들이 죽어가고 그들이 타고 온 함선들이 불타는 데에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동료 영웅들이 찾아와 간절히 부탁을 해도 분노를 거두지 않는다. 아카이오이족이 모두 전멸하여 자신이 아니고는 아카이오이족을 구원할 영웅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전투에 참가할 마음이 없다. 명예는 이 세상 전체와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킬레우스가 마음을 돌린 것은 자신의 머리만큼이나 소중한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난 이후이다. 브리세이스를 빼앗겼을 때의 분노에 비할 수 없는 펄펄 끓는 분노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모욕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 아킬레우스에게 진정한 명예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신들은 아킬레우스가 태어났을 때 이미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하게 예정해 놓았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내게 죽음의 종말이 서둘러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9권 410~416행)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명예 때문이지만 어쩌면 주어진 운명에서 수명을 선택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약탈에 대한 댓가로 주어진 명예는 사적인 명예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지 않을까.

 

진정한 명예는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구하는 것'에 있다.  철없는 분노로 머리만큼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나서야 아킬레우스는 공동체를 구하는 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명예를 얻는 길임을 깨닫는다. 깨달음은 그저 오지 않는다. 자신의 반을 잃고 나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 깨달음, 지혜이다. 그 겪음을 회피하고는 결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파테이 마토스'에 대한 기나긴 가르침이다.  

 

 

 

 

 

자기 희생으로 얻어진 아킬레우스의 명예는 적에 대한 관용이 보태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머리만큼 소중한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에 불타 올랐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마지막 애원도 싸늘하게 거절하고 그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다 개의 먹이로 던져주려고 한다.

 

"이 개자식아! 무릎이나 어버이를 들먹이며 내게 애원하지 마라.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내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 그대의 머리에서 개를 쫓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열 곱절 또는 스무 곱절이나 되는 몸값을 가져와

 여기서 달아주고 거기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한다 해도

 아니, 설령 다르다노스의 후예인 프리아모스가 그대의 몸무게만 한

 황금을 달아주라고 명령한다 해도 그대의 존경스러운 어머니는

 결코 몸소 낳은 자식인 그대를 침상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며

 개 떼와 새 떼가 남김없이 그대를 뜯어먹게 하리라!"

 

그러나 트로이아의 왕인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단신으로 찾아와 아들의 몸값을 받고 시신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자, 아킬레우스는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예정된 운명에 따라 다시는 사랑하는 자식인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며, 여기 무릎 꿇고 애원하는 프리아모스처럼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아버지를 통해 적개심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인간애를 느끼며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인식에 이른다. 아킬레우스의 명예는 사적인 명예에서 시작해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공적인 명예,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명예로 완성된다.  영웅들을 그리는데 한없이 편파적인 『일리아스』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이 마지막 공감과 화해에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나온다.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헤아려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 영웅들은 대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의 아들' 로 불린다. 아킬레우스도 '펠레우스의 아들'로 더 자주 불린다. 아가멤논은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는 텔라몬의 아들, 디오메데스는 튀데우스의 아들, 오뒷세우스는 라에르테스의 아들이다. 심지어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도 '크로노스의 아들'로 즐겨 불린다.  

 

 

 

희랍인에게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평가받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아버지를 둔 아들은 명예롭게, 비굴한 아버지를 둔 아들은 비굴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름에 의해 인간은 불멸을 획득한다.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아들은 그의 아들에 의해 그 이름을 불리며 죽음 이후에도 살아간다. 해마다 나뭇잎은 돋아나서 떨어지고 새 잎으로 갈리지만 나무는 그 세월 속에 둥치를 늘려 가듯이 육신은 죽어도 이름은 영원토록 이어지며 명예에 명예를 더하는 것이다. DNA가 육신을 바꿔가며 영원히 유전되는 것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이지만 이름으로 불멸을 획득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아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그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것, 명예일 수밖에 없다. 희랍인은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는 것'에 최고의 명예를 주었다.

 

폴리스의 시민들은 『일리아스』의 영웅들을 노래하며, 끊임없이 시민들의 덕성을 길렀을 것이다. 기원전 5~6세기에 만든 도기들에는 서사시의 장면들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 포도주를 희석하는 희석용 동이에도, 술잔에도, 항아리에도, 접시에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하지 않는 당당하고 늠름한 영웅들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있다. 그들의 식탁과 잔치에 올랐을 도기들이 보여주는 영웅들이 그들이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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