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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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12~13세기 경에 실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서사시이다.  서사시의 배경은 영웅들이 활약하는 청동기 미케네 문명의 마지막 시기로, 이 전쟁 직후 미케네 문명은 남하한 도리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철기 시대를 맞은 희랍 세계는 이른바 암흑기를 거쳐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고전기 희랍문명을 꽃피우는 폴리스 시대로 접어들었다. 

 

호메로스의 실존 여부와 실존 시기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기원전 8세기 무렵 호메로스가  400년 전에 있었던 트로이아 전쟁에 관해 구전되던 전설을 서사시의 형태로 완성한 것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고 알려져 있다. 

 

트로이아 전쟁 10년을 다룬 , 물론 실제로는 10년 중 단 몇일에 관한 노래이지만, 『일리아스』가 영웅들의 대서사시인 반면 전쟁을 끝낸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기까지 겪어야 하는 10년 동안의 고난을 노래한 『오뒷세이아』가 영웅성을 상실한 현실적 인간들의 이야기에 가까운 것은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행하는 시대적 배경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는 값비싼 전차를 타고 번쩍이는 무구들을 자랑하며 신들의 도움으로 전쟁을 하는 귀족 영웅들의 시대이지만 철기 시대는 평민들이 전쟁에 참가하여 밀집군단을 이루어 적을 밀어내는 인간들의 단결과 인내와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해설 (p773) 에는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 때문에 수많은 영웅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데 반해,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뒷세우스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와 끈기로 운명을 개척해나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그러므로 『일리아스』가 오직 용기와 명성만을 추구하던 옛 가치관을 이상화했다면 『오뒷세이아』는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해나가는 새 시대의 가치관을 이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 두 작품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일리아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1권 1행부터 7행까지가 서사시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인간들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날부터

 이렇듯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도다. "

 

 

아킬레우스가 그들의 지도자인 아가멤논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다투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게 아카이오이족을(자기편) 패배하게 해달라고 조른 이유는 '명예' 때문이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명예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일리아스』 에서 명예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전쟁에서 약탈한 여자, 청동 무구, 전차, 세발 솥 등의 물질로 형상화 된다. 아가멤논이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데려간 것은 여자를 뺏어간 것이 아니라 아킬레우스를 모욕하고 그의 명예를 짓밟은 것이다.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는 인근의 도시를 파괴하고 데려온 노예로, 전쟁에서 약탈한 사람과 재물은 공로에 따라 배분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명예의 선물' 이다.

 

'명예의 선물'을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함선에 드러누워 트로이아인들과의 전투에서 아카이오이족의 영웅들이 죽어가고 그들이 타고 온 함선들이 불타는 데에도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동료 영웅들이 찾아와 간절히 부탁을 해도 분노를 거두지 않는다. 아카이오이족이 모두 전멸하여 자신이 아니고는 아카이오이족을 구원할 영웅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전투에 참가할 마음이 없다. 명예는 이 세상 전체와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킬레우스가 마음을 돌린 것은 자신의 머리만큼이나 소중한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난 이후이다. 브리세이스를 빼앗겼을 때의 분노에 비할 수 없는 펄펄 끓는 분노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모욕한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이 아킬레우스에게 진정한 명예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신들은 아킬레우스가 태어났을 때 이미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하게 예정해 놓았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내게 죽음의 종말이 서둘러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9권 410~416행)

 

볼이 예쁜 브리세이스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명예 때문이지만 어쩌면 주어진 운명에서 수명을 선택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약탈에 대한 댓가로 주어진 명예는 사적인 명예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지 않을까.

 

진정한 명예는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구하는 것'에 있다.  철없는 분노로 머리만큼 사랑하는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나서야 아킬레우스는 공동체를 구하는 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명예를 얻는 길임을 깨닫는다. 깨달음은 그저 오지 않는다. 자신의 반을 잃고 나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 깨달음, 지혜이다. 그 겪음을 회피하고는 결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파테이 마토스'에 대한 기나긴 가르침이다.  

 

 

 

 

 

자기 희생으로 얻어진 아킬레우스의 명예는 적에 대한 관용이 보태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머리만큼 소중한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에 불타 올랐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마지막 애원도 싸늘하게 거절하고 그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다 개의 먹이로 던져주려고 한다.

 

"이 개자식아! 무릎이나 어버이를 들먹이며 내게 애원하지 마라.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내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 그대의 머리에서 개를 쫓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열 곱절 또는 스무 곱절이나 되는 몸값을 가져와

 여기서 달아주고 거기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한다 해도

 아니, 설령 다르다노스의 후예인 프리아모스가 그대의 몸무게만 한

 황금을 달아주라고 명령한다 해도 그대의 존경스러운 어머니는

 결코 몸소 낳은 자식인 그대를 침상에 뉘고 슬퍼하지 못할 것이며

 개 떼와 새 떼가 남김없이 그대를 뜯어먹게 하리라!"

 

그러나 트로이아의 왕인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단신으로 찾아와 아들의 몸값을 받고 시신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자, 아킬레우스는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의 아버지 역시 예정된 운명에 따라 다시는 사랑하는 자식인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며, 여기 무릎 꿇고 애원하는 프리아모스처럼 슬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아버지를 통해 적개심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인간애를 느끼며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인식에 이른다. 아킬레우스의 명예는 사적인 명예에서 시작해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공적인 명예,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명예로 완성된다.  영웅들을 그리는데 한없이 편파적인 『일리아스』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이 마지막 공감과 화해에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나온다.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헤아려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 영웅들은 대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의 아들' 로 불린다. 아킬레우스도 '펠레우스의 아들'로 더 자주 불린다. 아가멤논은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는 텔라몬의 아들, 디오메데스는 튀데우스의 아들, 오뒷세우스는 라에르테스의 아들이다. 심지어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도 '크로노스의 아들'로 즐겨 불린다.  

 

 

 

희랍인에게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평가받기 때문이다. 명예로운 아버지를 둔 아들은 명예롭게, 비굴한 아버지를 둔 아들은 비굴하게 여겨질 것이다.

 

이름에 의해 인간은 불멸을 획득한다.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아들은 그의 아들에 의해 그 이름을 불리며 죽음 이후에도 살아간다. 해마다 나뭇잎은 돋아나서 떨어지고 새 잎으로 갈리지만 나무는 그 세월 속에 둥치를 늘려 가듯이 육신은 죽어도 이름은 영원토록 이어지며 명예에 명예를 더하는 것이다. DNA가 육신을 바꿔가며 영원히 유전되는 것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이지만 이름으로 불멸을 획득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아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그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것, 명예일 수밖에 없다. 희랍인은 '자신을 희생하여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는 것'에 최고의 명예를 주었다.

 

폴리스의 시민들은 『일리아스』의 영웅들을 노래하며, 끊임없이 시민들의 덕성을 길렀을 것이다. 기원전 5~6세기에 만든 도기들에는 서사시의 장면들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 포도주를 희석하는 희석용 동이에도, 술잔에도, 항아리에도, 접시에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하지 않는 당당하고 늠름한 영웅들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있다. 그들의 식탁과 잔치에 올랐을 도기들이 보여주는 영웅들이 그들이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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