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말은 참 자주도 떠오른다. "너 자신(의 無知)을 알라."  知에 대한 갈망은 無知에 대한 知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無知는 점점 줄어 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늘어 난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모르는 책 두 권이 생기고, 강의 한 편을 들으면 몰랐던 이야기가 쏟아진다.  길은 길에 연(連)하여 끝이 없다더니, EBS의 <클래스e> 강의를 듣다 보면, 들어야 할 강의가 가지를 뻗어 나간다.  그래서 듣게 된 강의가 <고대 이집트> 이다.  자세하게 정리할 여력은 없어서 간단히 주요 내용들만 남겨두려 한다.  

 

 

 

 

 

 

 

 

 

 

 

 

1강. 우리 안의 이집트

 

 

 

 

고대 이집트라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멀고 낯선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집트, 대중 문화적인 이집트를 소개하는 강의다.

 

 

 

 

 

 

 

 

 

 

 

 

 

어디선가 보고 들은 모습들과 파라오들이지만 우리의 상식은 보통 거기까지다. 문제는 이집트 역사의 맥락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생선 뼈만 발라 놓은 듯한 중등 교육의 세계사가 필요한 이유는 이 뼈들이 없이는 낱낱의 사실들이 단순 흥미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내게 이 강의는 뼈들을 이어 맞추는 흔치 않은 이집트 공부였다.

 

 

 

 

 

 

 

 

 

 

 

 

노래방의 투탕카멘부터, 오션 월드의 신전, 롯데 월드의 파라오의 분노까지 우리 놀이 문화 곳곳에 배어 있는 고대 이집트를 발견할 수 있다.

 

 

 

 

 

 

 

 

 

 

 

 

 

고증이 잘 되어 있는 부분과 잘못 된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놀이에 더하여 상식을 조금 더 쌓는 기쁨도 얻을 수 있겠다. 한때 유행했던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저 만들어 낸 것은 아닌 듯하다.

 

 

 

 

 

 

 

 

 

2강 두 개의 나라

 

 

 

 

 

 

 

2강은 고대 이집트의 '공간'에 대한 강의다. 제 1급류가 조금 생소한데, 뱃길로 순탄히 흐르던 강물이 많은 바위 등의 장애물에 의해 흐름이 급변하는 지역이다.

 

 

 

 

 

 

지형적 단절로 인해 여기가 고대 이집트의 남쪽 경계가 된다.

 

 

 

 

 

 

 

이집트인들의 땅 개념은 이분법적이다. 검은 땅, 케메트와 붉은 땅, 데슈레트다. 검은 땅은 나일강변의 기름진 농경지이고, 그 바깥 붉은 땅은 모두 불모의 사막이다.

 

 

 

 

 

 

 

사막으로 둘러싸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나일강변이 고대 근동 지역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이유는 나일강의 범람에 있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백나일강과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시작된 청나일강이 합쳐져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청나일강 유역은 매년 같은 시기에 홍수가 발생하는데, 이때 엄청난 양의 강물과 함께 강바닥의 검은 영양토가 나일강 하류로 쓸려 내려온다. 나일강 하류의 삼각지, 델타 지역은 인공적인 퇴비나 땅갈이 없이도 매년 양질의 검은 흙이 보충되는 전혜의 농경지가 되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의 계절관도 이 나일강의 범람에 맞추어져 있다.  기름진 토양을 쓸고 온 홍수기, 아케트가 지나고 나면, 농사를 시작하는 파종기, 파레트기가 오고, 다음 홍수가 시작되기 전 수확을 하는 쉐무기가 있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이 리듬에 따라 세 가지의 계절로 나눈다.

 

 

 

 

 

 

 

 

긴 나일강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고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남북을 나누어 나일강 상류를 상이집트라 하고, 나일강 하류를 하이집트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감정이 있었다고 할 만큼 두 이집트는 자연적, 문화적 특성이 달랐다.

 

 

 

 

 

 

 

 

상하 이집트는 통일되어 강력한 왕국을 이루기도 했지만, 각각 독자적 왕조를 세우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통일 왕국 시기에도 두 개의 땅이라는 관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각 이집트를 상징하는 각종 문화적 장치도 완전히 달랐다.

 

 

 

 

 

 

.

 

 

파라오의 왕관에서 상 ·하 이집트의 구분이 뚜렷이 나타난다.  두 지역이 분열되어 있을 때는 각각 붉은 왕관과 흰 왕관을 썼고, 통일 왕국의 경우 두 왕관이 결합된 왕관을 썼으나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구분해 쓰기도 했다.

 

 

 

 

 

 

 

 

 

3강. 최초의 파라오

 

 

 

 

 

 

 

이집트는 흔히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주요한 청동기 문명들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35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한 청동기 문명이 약 500년의 간격으로 이집트 → 인더스 → 황허로 전파되었다고 대충 기억하면 손쉽다.

 

이 강의에서는 이집트 청동기 문명의 시작을 기원전 약 3100년으로 잡는다. 이전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왕조가 없었던 것으로 본다. 이집트의 왕조 시대는 청동기 문명과 함께 한다.

 

이 강의에서 다루는 고대 이집트는 3000여 년에 걸친 왕조 시대를 말한다.  초기 왕조부터 로마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왕조 시대의 핵심은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이다. 이집트가 가장 강성했던 때로 상하 이집트가 통일 왕국을 이루었던 시기다.  그 사이 사이의 분열기를 로마 숫자를 붙여 중간기라고 부른다.

 

 

 

 

이집트 학자들은 편의상 조금 더 세분하여 왕가의 혈통이 바뀔 때마다 왕조를 구분하여 숫자를 붙였다.

 

 

 

 

 

 

고대 이집트가 얼마나 긴 기간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시기에도 이미 기자의 피라미드는 2500년도 더 옛날의 일이다. 우리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놓인 2000년 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최초의 파라오는 두세 명 정도의 후보가 있다. 그중 한 명이 기원전 3100년 경의 나르메르다.  팔레트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상 이집트의 왕 나르메르가 하 이집트를 정복하여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문헌 기록에는 최초의 파라오가 메네스로 적혀진 것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당대의 기록이나 유물에는 메네스가 없다.  또 다른 후보도 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아직도 최초의 파라오는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4강. 피라미드의 시대 (상)

 

 

 

 

 

 

 

초기 왕조는 불안정 했다. 이 혼란을 종식한 파라오가 카세켐위로 추정된다. 이집트 문명의 본격적인 시작인, 고왕국은 카세켐위 다음 파라오에서 시작된다.

 

 

 

 

 

 

 

고왕국은 기원전 2686년부터 2181년까지 약 500여 년 지속 되었다. '피라미드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대다수의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피라미드의 이야기이다.

 

 

 

 

 

 

 

고왕국 수립 직후에 최초의 피라미드가 만들어 진다. 우리나라의 장군총이나 석촌동 고분의 양식인 돌무지 무덤과 비슷하게도 보이는 계단식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 이전의 전통적 왕묘는 마스타바이다.  위 그림의 1.로 표기된 부분이 마스타바다. 조세르도 처음에는 마스타바로 무덤을 만들었다가 좌, 우로 증축을 하고 갑자기 마스타바 위에 마스타바를 쌓는 식으로 처음에는 4단의 피라미드를, 마지막에 한 번 더 증축하여 6단의 피라미드를 완성하였다. 

 

왜 갑자기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쌓으려 했을까? 별도의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추론이 가능할 뿐인데, 하늘로 향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정도로 추측한다.

 

 

 

 

 

 

 

그 다음 피라미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피라미드인데, 붕괴했다.

 

 

 

 

 

 

 

붕괴 피라미드 이후 나타난 이상한 모양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의 경사각이 한 번 꺾여 있다.

 

 

 

 

 

 

 

왜? 피라미드는 문헌 기록이 희소해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은 피라미드가 붕괴한 것을 보고 약 54도로 짓고 있던 피라미드의 경사각을 약 43도로 낮춘 것이다. 

 

 

 

 

 

 

이후에 경사각을 43도로 맞춘 피라미드가 완성되는데, 붉은 피라미드로 불린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자의 피라미드가 등장한다. 쿠푸, 카프라, 멘카우라의 피라미드다. 경사각을 50도 대로 맞춘 완벽한 형태의 피라미드다.

 

 

 

 

 

 

 

 

 

 

 

항공 사진으로 보면 이 세 피라미드가 보이고, 그 주변으로 귀족들의 마스타바도 즐비하다.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압도적이라 주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데, 피라미드는 단독으로 있지 않고 주변에 장례 신전 등의 부속 건물을 가지고 있다. 

 

 

 

 

 

 

 

 

 

 

5강. 피라미드의 시대 (하)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에 주로 세워 졌고, 특히 고왕국 초기에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 졌다.  

 

 

 

 

 

 

 

기자의 세 피라미드 직후 왕위에 오른 셉세스카프는 피라미드를 포기하고 이전의 왕묘인 마스타바를 선택한다.

 

 

 

 

 

 

 

 

이후에 피라미드가 다시 만들어 지지만 그 규모는 기자의 피라미드에 비해 매우 축소 되어 있다.

 

 

 

 

 

 

 

피라미드가 축소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고왕국의 쇠퇴, 신관과의 알력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피라미드의 규모는 작아진 반면 부속 건물이나 피라미드 내부의 장식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모습이 동시에 확인된다. 피라미드의 규모에 집중되었던 역량을 다양한 부분으로 분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에는 어떠한 문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 내부 현실에 아무 것도 없어서 <신의 지문> 같은 예전에 읽었던 책에는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 천문 관측소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피라미드의 규모와 완성도가 뒤떨어진 5왕조 시대의 피라미드에는 현실 벽면 가득히 문자가 새겨져 있다.

 

 

 

 

 

 

 

 

 

 

주로 파라오를 위한 기도문들이다.  예전에 파라오는 의심 없이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따로 기도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오면 파라오의 신적 권위에 조금씩 의문이 생기면서, 파라오에게도 죽음 이후에 대한 기원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피라미드 이외에 부속 건물들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피라미드의 변천사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은 고왕국의 초기이다. 이후에는 부속 건물과 내부 등으로 자원이 분산되면서 규모와 완성도는 현저히 감소하였다. 고왕국의 전성기가 초기 4왕조였으므로 국가적 역량도 점차 쇠퇴했다. 피라미드는 중왕국 시대에도 일부 건설되기는 했다.

 

 

 

 

 

 

 

 

 

 

피라미드의 시대였던 고왕국은 6왕조 시기에 결정적 쇠퇴를 겪고, 혼란기에 접어 들었다.  지방 호족들의 권력이 강화되기 시작 했고, 남쪽의 테베 지역을 중심으로 별도의 왕조가 수립되자, 내전기에 돌입했다.

 

 

 

 

 

 

 

 

북쪽의 10왕조와 남쪽의 11왕조의 내전은 11왕조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 혼란기를 제1 중간기라 부른다. 그리고 11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된 이집트는 중왕국 시대를 맞이한다.

 

여기까지가 기원전 3100년 경부터 기원전 2000년 정도까지, 약 천 년간의 이집트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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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 요나

 

 

 

'고래' 뱃속의 요나는 아니라고 한다. 히브리어 '닥 가돌' , 어떤 큰 물고기, a big fish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고래를 떠올리게 했을 뿐이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대적했던 왕 역시 '파라오'이었을 뿐인데, 람세스2세로 자동 변환되어 온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예언자의 소명, 혹은 종교인의 그리고 사람들의 소명에 관한 성찰이다.

 

 

 

 

 

요나는 하느님을 거슬러 도망을 갔다.

 

 

 

 

 

 

 

 

손오공의 부처님 손바닥처럼 요나도 하느님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소명을 받는다. 한번 죽었다 살아나서 참된 깨달음과 실천에 나선 것이다.

 

 

 

 

 

 

 

요나가 처음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에게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확신에 찬 사람이 아니다. 종교인은 "믿습니까?" 라고 하지 않는다. 요나는 과묵하고 머뭇거리고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 머뭇거림은 성찰이다.  신은 확신에 찬 사람이 아니라 요나같이 의심하는 사람에게 온다.  확신은 신의 것이고, 머뭇거림은 인간의 것이다.

 

 

 

 

 

 

 

소명 (召命)은 '보카치오' 라는 라틴어에 뿌리를 둔다. 영어로 vocation은 소명, 직업, 천직 등으로 쓰인다. 하느님이 불러 일을 맡기는 것, 혹은 그 일이다.

 

요나는 하느님의 소명의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신의 행위의 올바름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세상을 거슬러 힘들게 외쳐야 했다.

 

모든 직업에는 이런 차원이 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을 거슬러야 했던 것처럼 권력자에 맞서야 할 때가, 요나가 선원들에 들려 바다에 빠져야 했던 것처럼 평범한 이웃들과 대결해야 할 때가, 바다와 풍랑이 요나를 삼켰던 것처럼 자연적 재난에 휩쓸릴 때가, 큰 물고기 속에 요나가 갇혀야 했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어떤 운명이 덮쳐 올 때가 있다. 직업이 소명이라면 세상에 거슬러 그 천직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교회는 "믿습니까?"에 "믿쑵니다."로 합창하는 곳이 아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  막연히 한 줄기 빛 속에 무릎 꿇은 한 사람의 흔들리는 눈빛과 뜨거운 눈물이 떠오를 뿐이다.

 

 

 

 

 

 

 

 

13강 엘리야

 

 

 

엘리야는 유일신교의 토대를 닦은 예언가이다. 고대 근동 다신교의 시대에 엘리야는 오직 야훼 하느님에 대한 '유일 섬김'을 주창했다.

 

 

 

 

 

유일신교는 유대교가 처음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왕국 시기에 아텐(아톤?) 신을 숭배하는 유일신 개혁이 있었다.

 

 

같은 프로그램인 클래스e에 열 개의 강으로 구성된 <고대 이집트>라는 강의가 있다. 국내 유일의 '이집트 고고학자'라고 소개된 곽민수 소장의 강의이다.  주원준 강의에 잠깐씩 소개되는 이집트와 조금 다른 부분도 있는데, 아케나텐 개혁과 관련하여 인용하려 한다.

 

 

 

 

 

 

 

 

 

신왕국의 14세기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시대인데,  유일신 개혁이 일어난 것이 이 시기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 아멘호테프 4세가 본격화 하였다.

 

 

 

 

 

 

 

 

 

태양신의 상징이던 태양 원반을 따로 떼어 내어 '아텐' 신으로 모셨다. 원반 아래로 태양 빛살이 퍼져 나가고 그 끝에는 손들이 그려져 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스스로를 아케나텐이라고 불렀다.

 

 

 

 

 

 

 

 

아텐신 이외의 모든 신들을 없애고, 신전을 폐쇄하였다. 아텐신에 대한 제사도 신관이 아니라 파라오와 왕족이 직접 모셨다. 신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이집트 경제는 마비되었고, 신관들을 중심으로 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무덤의 주인, 소년왕 투탕카멘 시대에 이미 아케나텐의 유일신 개혁에 대한 흔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긴 이집트의 역사에서 유일신 사상은 오직 아케나텐의 통치 약 20년간의 아주 짧은 시간에만 존재했을 뿐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적의가 묻어나는 아케나텐 없애기 작업은 다양한 유물에서 발견된다. 심지어는 아케나텐의 미이라에서도 그 얼굴과 이름이 지워져 있다.

 

 

 

 

 

 

 

 

유일신 개혁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오랜 전통과 관습을 무시한 파라오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추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은 이집트 신왕국을 내분으로 몰고 갔고, 이후 막강했던 신왕국의 국력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집트보다 300~400년 이후에 발생한 이스라엘의 유일신 개혁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차이라면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에 대항하여 탄압을 받으면서 유일 섬김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아합은 야훼를 배척한 왕이 아니었다. 아합은 야훼도 믿고 바알도 믿은 것이다. 전쟁을 나갈 때는 야훼를, 풍요와 치유를 위해서는 바알을 섬겼다. 다신교는 고대 근동의 관습이었고, 이웃 국가들과의 교류를 위해서도 다양한 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아합은 폭군이 아니라 유연하고 합리적인 통치자에 가깝다.

 

 

 

 

 

 

 

엘리야는 이에 반대하여, 유일 섬김만을 강조했다.  수많은 야훼 사제들이 모두 바알을 받아들였을 때도 끝까지 야훼만의 사제로 혼자 남았다. 유일 섬김으로 번역하는 Monolatria의 latria는 예배하다, 섬기다란 뜻이다.  엘리야의 시대에는 다른 신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만을 섬기라고 했던 것이다. 유일 섬김은 후대에 유일신론으로 발전한다.

 

엘리야는 반만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님을 설파했다. 세상 물정에 맞추어, 편리한 대로, 이익을 쫓기 시작하면, 원칙은 무너지고 만다. 아합은 야훼 신앙을 탄압했기 때문에 악인이 아니다.  적당히 믿자는 달콤한 유혹을 퍼뜨렸기 때문에 악인인 것이다. 이 신, 저 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면 야훼는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14강 예레미야

 

 

 

구약 성경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예언자들이다.  고대 근동의 대다수 예언자들이 통치 도구로서의 기능을 했다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은 왕들에게 저항하고 백성들의 잘못을 질책하였다.

 

 

 

 

 

 

고대 유물과 기록에 나타난 예언들을 보면, 재미있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예언가들이나 통치자들은 예언을 믿었을까? 안 믿었을까?

 

이집트에는 '사후 예언'이라는 장르가 있다.  예언이 있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건에 맞추어 예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건을 합리화하거나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언을 믿었던 것일까?  예언을 선전의 도구로 이용했으니, 피통치자들은 믿었다는 뜻일 것 같고,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던 통치자는 믿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아시리아 제국에는 담키라는 관행이 있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점을 쳤는데, 점괘가 나쁠 때는 대리 왕인 담키를 내세웠다. 담키를 즉위시킨 후 죽여 버림으로써 흉한 점괘가 실현된 것으로 간주하고 좋은 점괘가 나올 때 진짜 왕을 즉위시키는 방법이다.  이들은 예언을 믿은 것일까?  믿기는 했지만, 인간의 힘으로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해가 바뀌면 토정비결부터 각종 동양 철학이 성행한다. 단순한 놀이라기에는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유명한 예언가들이 지옥의 깊은 고리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그렇게도 앞을 보고 싶어 했던 예언가들은 얼굴이 등쪽으로 돌아가 뒤만 보고 걷고 있다. 점집에 앉아 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사실 앞을 보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강의의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는 아니다. 강사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은 예언을 믿었을까? 안 믿었을까? 질문해 볼 수도 있다.

 

고대 근동의 다른 예언들과의 차이점이 결정적이다. 문서로 남은 예언서들은 모두 저항하는 예언자들의 것이다. 통치의 도구로 동원된 예언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지워지고, 왕과 백성을 질타하는 예언들만 기록되어 전해진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역설이다. 기록의 역전이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신아시리아에, 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망했다.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기원전 6세기 무렵에 구약 성경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역사>

 

 

유배된 백성들과 나라 잃은 백성들은 철저한 반성을 통해 기록을 남겼다. 왕권을 지지하던 예언자들이 틀렸고, 왕에 저항하던 예언자들이 맞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히브리인들은 나라가 망했지만, 그들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망국의 원인을 성찰한 후 지배자들을 역사의 비주류로, 저항하며 탄압받던 예언자들을 역사의 주류로 뒤바꿈으로써 믿음을 고수했다. 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통치자와 백성들이 틀렸음을 공인했다.

 

망국의 유배 생활에서 이렇게 부활한 예언가가 예레미야다. 예레미야는 친이집트 파와 친바빌로니아 파가 나뉘어 다투던 혼란기에 파벌 싸움에 휘말려 희생된 비운의 예언가이다. 그러나 유배 생활 중 제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이스라엘 조상의 대표가 되었다.

 

 

 

 

 

 

15강 욥

 

 

* 1월 26일에 올라 온 15강 '욥'을 덧붙입니다.

 

 

 

<욥기>는 유명하여서, 나도 몇 번이나 읽어 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알쏭달쏭했다.  첫째는 세 친구들과 욥의 말 중 누가 옳은지 판단이 힘들었다. 욥이 잘못 한 것은 없는데, 세 친구가 또 딱히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둘째, 야훼는 왜 욥을 옳다고 하는가 였다.

 

욥과 친구들의 격론이 끝난 다음에 나타난 야훼는 떠들석하게 욥을 꾸짖는다. 한마디로 한갖 미물이 뭘 안다고 신의 일에 따따부따 말이 많냐는 것이다. 이때 야훼의 말은 조금 아이 같다. 나는 이런 이런 존재다라며 과시하는데, 땅과 바다와 어둠과 빛과 하늘과 동물, 이런 것 모두 내가 만들었고 내가 먹여 살린다. 무시무시한 브헤못, 레비아탄도 내가 만들었다. 그때 너는 뭐했느냐? 는 식이다. 일종의 동문서답이다.  올바르게 산 사람에게 신은 왜 고통을 주는가? 라는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렇게 욥을 야단친 다음에, 오히려 욥이 옳고 친구들이 틀렸다고 판결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욥기>는 발상 자체가 기이하다.  욥의 모든 고통은 하느님과 사탄의 내기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욥을 시험하기 위해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을 넘긴다. 처음 읽는 순간, 하느님이 이래도 되는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것보다는 히브리인들이 감히 이런 불경한 생각을?,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욥기>는 기묘했다. 

 

 

 

 

 

<구약의 사람들>의 마지막 강의를 오래 (?) 기다렸다.  1월 23일에 업로드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1월 26일에야 되었다. <욥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마음을 급하게 했다.

 

 

 

 

 

<욥기>는 말하자면 원본이 있는 이야기다. <바빌론 신정기> 혹은 <바빌론 욥기>라고 불리는 텍스트가 바빌로니아에 있었다. 이야기 구조도 거의 유사하다. 내용도 심지어는 세부적 표현도 그렇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아마 바빌론 유수 때 읽고 들은 이야기를 야훼 신앙에 맞춰어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욥이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식이 아니다.

 

 

 

 

 

<욥기>는 세상의 부조리, 이유 없는 고통, 의인의 고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욥과 세 명의 친구들은 논쟁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제시한다.  욥은 억울함을 토로하고, 친구들은 위로하는 듯하지만 욥에게 신의 노여움을 살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 전제한다. 논쟁은 격화되어 서로 막말을 주고 받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위로를 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은 악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의 논리에는 정의로운 신이 주관하는 세계에서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할 리가 없다는 인과응보의 관념이 내재되어 있다. 피해자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욥은 아니라고 하지만, 네가 모르는 잘못이 분명히 있으니 찾아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죄를 찾게 만드는 무서운 논리가 친구의, 조언자의, 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경계의 말씀을 하셨다. "은총의 톨게이트처럼 행동하지 마세요." 신의 말을, 신의 뜻을 안다고 행세해서는 안된다.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까지 하면 된다. 나머지는 신이 직접 하신다.

 

세상은 권선징악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하느님은 까닭없이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욥은 사탄의 계략에 걸려든 것뿐이다.  이 부조리를 받아들일 때에만 일어설 힘이 생길 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카인은 말없이 아벨을 죽였다. 끝까지 죄 없음을 강변한 욥은 어쩌면 이런 세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든 하느님을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할 말을 했을 뿐이다.

 

 

 

 

 

 

<바빌론 욥기>와 구약의 <욥기>는 흡사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바빌론 욥기>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로 끝이 난다. 이 대화에는 부조리한 세상과 이런 세상을 만든 신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있다. 바빌로니아는 이런 비판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명이었다.  <바빌론 욥기>는 인간들의 담론, 철저히 인간들의 철학이다.

 

구약의 <욥기>에는 야훼가 직접 등장한다. 구약 성경에서 야훼가 가장 길게 말하는 것도 <욥기>이다. 신은 성가신 인간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운 듯하다. 그런데 말씀하신다.

 

 

 

 

네가 받고 있는 고통이 이유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세상이 모두, 친구조차 인정하지 않더라도, 너의 의로움을 나는 알고 있다고, 신이 말씀 하신다.

 

<욥기>의 반전은 여기에 있다. <바빌론 욥기>와의 결정적 차이가 이것이다. 세상이 알아 주지도 않고, 오히려 고통만 당한다고 하더라도, 너의 올바름을 알아 주는 신은 있다. 그러니 불합리한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도 말고, 너의 잘못을 찾아 자책하지도 말고, 그냥 올바르게 살아가면 된다는 위로가 있다. 올바름을 잃지 않을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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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곡

 

 

18곡은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 '말레볼제'로 시작한다. 말레볼제는 단테가 만들어 낸 이름으로, '사악한 구렁' 이라는 뜻이다.

 

게리온의 등을 타고 내려온 높고 험한 절벽과 웅덩이(아마도 아홉 번째 고리인 코기토스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이에 놓인 열 개의 깊은 구렁들이 말레볼제.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다.

 

 

 

 

 

 

 

앞서 11곡에 설명된 바에 따르면, 지옥의 맨 아래쪽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고리에는 배반자들이 있다.

 

우리는 양심을 찢어지게 하는 배반의 죄를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에게나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저지를 수 있지

                                               (11곡 53~54)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저지른 배반의 죄가 여덟 번째, 말레볼제에 떨어지는 죄이다.

 

 

 

 

 

 

이 배반의 죄는 정도에 따라 열 개의 구렁으로 나뉘어 진다. 그 첫 번째 구렁(24)에는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있다. 뿔난 마귀들의 채찍질을 받으며 벌거 벗은 채 두 줄을 지어 마주 보며 걷고 있다.

 

두 번째 구렁(103)에는 아첨꾼들이 똥물 속에 잠겨 있다. "혓 바닥이 지칠 줄 모르고 알랑거린 탓"이다.

 

 

 

 

 

19곡

 

 

 

 

 

 

그런데 구렁과 구렁 사이는 어떻게 지나갈 수 있을까?  구렁의 양쪽에는 둔덕이 있고, 둔덕과 둔덕 사이에는 활꼴형 다리가 놓여 있다. 순례자는 둔덕을 따라 걷거나 다리 위에서 구렁 속의 죄인들을 살피고, 대화도 나눈다.  첫 번째 둔덕과 두 번째 둔덕 사이에 첫 번째 다리가 놓이고, 첫 번째 다리 아래로 첫 번째 구렁이 있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에 그리기가 쉽다.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유수 (1309~1377)>

 

 

세 번째 구렁(5)에는 충격적인 죄인들이 있다. 추기경과 교황들이다. 중세의 지옥에 성직자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불경할 듯한데, 이 지옥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14세기 초반에 사람들은 부패한 교회의 실상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성물이나 성직을 매매한 자들이 바위 구멍마다 처박혀 발바닥이 불타오르는 고통을 겪고 있다.

 

단테와 대화를 나누는 죄인은 교황 니콜라우스 3세이다. 1280년에 죽어서 20년 째 단죄를 받고 있는 그가 곧 자기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교황들에 대해 예언한다. 3년 뒤에는 보나파키우스 8세가, 뒤이어 클레멘스 5세가 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말이다.

 

교황들을 줄줄이 지옥에 처박을 만큼 14세기는 교황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이다. 세계사에 간략히 요약되는 내용만으로도 이 혼란상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은 두 개의 권력이 다투는 시기다.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 혹은 교황권과 황제권이, 두 개의 칼로 비유되며 맞섰다. 하지만 중세를 '기독교 공화국'이라고 할만큼 전성기의 중세는 교권이 강했다. 봉건제도 아래서 세속의 정치 권력은 분산되어 있었지만, 로마 교회라는 보편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권은 강력한 위계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역사 고전 강의>

 

 

교황권의 성쇠는 1077년 카노사의 굴욕과 1309년~1377년의 아비뇽 유수가 집약하고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무릎 꿇린 카노사의 굴욕 이후 교황권은 날로 성장하여, 십자군 전쟁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패배하며 쇠퇴하기 시작한 교황권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주도한 아비뇽 유수로 땅에 처박혔다.

 

 

 

 <필리프 4세>

 

 

 

단테가 엄청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나파키우스 8세는 교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들에게 교회에 과세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최초로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이에 대항하였고, 교황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우고 보나파키우스 8세를 체포하였다. 여론에 의해 석방은 되었으나, 심한 모욕을 당하였던 보나파키우스 8세는 한 달만에 분사하였다.  이때가 1303년이다.

 

1305년에 즉위한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필리프 4세와 손잡았다. 1309년에 필리프 4세는 아비뇽에 교황청을 지었고, 이후 일곱 명의 교황이 1377년까지 아비뇽에 머물렀다.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아비뇽 유수라고 불렸다. 이 시기 교황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이었다.

 

이 보나파키우스 8세와 클레멘스 5세를 단테는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 세 번째 구렁에 처박으려고 하는 것이다.

 

 

 

 

 

 

 

 

 

137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가 로마로 복귀했지만, 다음해 이탈리아인 우르바누스 6세가 교황에 선출되자 프랑스 추기경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클레멘스 7세를 교황으로 새로 선출하면서 교회 대분열이 시작된다. 이후 40년간 교황이 두 명 혹은 세 명 존재하는 혼란이 연출된다.

 

 

 

 

 

 

 

 

교회 대분열의 시기에 후스, 위클리프 같은 개혁가들이 등장하여 성서 중심의 교회 개혁을 주장하지만 오히려 화형을 선고 받는다. 교회는 1414년~ 1418년에 콘스탄츠 공의회를 개최하여 혼란을 수습하지만, 근본적 개혁에 눈을 감으면서 16세기의 '종교 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20곡

 

 

 

 

<요한 울리히 크라우스, 제우스와 헤라와 함께 있는 테이레시아스>

 

 

 

 

네 번째 구렁(19곡133)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다. 암피아라오스, 아론타, 만토, 그리고 누구보다 테이레시아스가 있다. 이들은 고대 희랍-로마 신화의 예언가들이다.  20곡에서는 이들을 점쟁이(122)나 마술사(123)로 부른다.

 

등을 가슴으로 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봐라!

너무나 앞을 보고 싶었기에

뒤를 바라보며 거꾸로 가고 있구나. (37~9)

 

 

 

<테이레시아스를 만나러 저승에 간 오뒷세우스>

 

 

성경에도 예언자들이 나오는데, 이들 신화 속의 예언가들은 왜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걸까? 테이레시아스는 희랍 신화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도 꼽힌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에도,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도 눈 먼 예언자로 나온다.

 

 

 

 

 

 

20곡의 백미는 콘트라파소다.  앞을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는 예언가들에 상응하는 벌은 뒤만 보도록 하는 것이다.  얼굴과 몸통이 반대로 붙어서 뒤를 보며 거꾸로 걸어야 한다.

 

 

 

 

 

21곡

 

 

 

 

 

 

다섯 번째 구렁(4)은 탐관오리들(38/42)이 끓는 역청(10)과 말레브란케의 갈고랑쇠(38/57)에 살이 찍히는 벌을 받는 지옥이다.

 

말레브란케는 단테의 조어로 '사악한 앞발'이란 의미이며, 다섯 번째 구렁을 지키는 마귀들을 가리킨다.

 

말레브란케는 여섯 번째 구렁으로 연결된 여섯 번째 다리의 바닥이 무너졌다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말하고, 길 안내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23곡에서 밝혀지는 바, 거짓말이었다.

 

 

 

 

22곡

 

 

말레브란케들의 안내를 받아 둔덕을 걸어가다가 역청 속에서 고개를 내민 치암폴로라는 죄인을 만난다.  꾀가 많은 치암폴로는 말레브란케들에게 내기를 걸어 도망쳐 버린다. 말레브란케 둘이 그 바람에 역청에 빠져 죽는데, 이 혼란을 틈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다섯 번째 구렁을 빠져 나온다.

 

 

 

 

 

23곡

 

 

 

 

 

화가 난 말레브란케들에게 쫓겨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어린애처럼 안고 둔덕을 뛰어 넘어 여섯 번째 구렁의 한쪽 벽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섯 번째 구렁을 벗어나면 힘을 쓸 수 없는 말레브란케들에게서 벗어나 여섯 번째 구렁(53)에 가까스로 도착한다.

 

여섯 번째 구렁의 슬픈 위선자들(91)은 화려한 금빛의 망토를 입고 느린 걸음으로 맴돌고 있다. 겉은 금빛이지만 무거운 납으로 된 망토(65)이다. 바닥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111)들도 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일곱 번째 구렁으로 넘어갈 돌다리가 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닥과 기슭에 쌓인 바위 조각들을 밟고 건너가야 한다. 말레브란케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베르길리우스는 노기를 띠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말레볼제의 일곱 번째 다리가 끊어진 지옥 구조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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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2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다가 도표까지! 거기에 공부하신 강유원박사님의 역사고전강의까지! 정말 대단하네요! 오늘도 신곡 공부 잘 했습니다!ㅎ 잘 엮어서 라벤나에 있는 단테 무덤에 헌정했으면 좋겠네요!ㅎ 즐건 주말되십시요!

말리 2021-01-24 17:18   좋아요 0 | URL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은 직접 그려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재미삼아 그려봅니다. 그래서 정확하지가 않을 거예요. 천 년이 넘게 연구된 작품이고, 이 한 작품만 강의하는 교수들도 있다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는 정밀하고 정확하게 해석된 글들이 많이 있겠지만, 저같은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서, 조악하나마 그려봅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요. 감사합니다. ^^
 

12강은 구약 성경에 없는 우가릿의 일리말쿠 이야기다. 이를테면 번외 편인데, 우가릿은 이스라엘이 건국 되기 전에 번성했던 작은 도시국가이다. 길지 않은 강의에 3000여 년 전에 사라진 우가릿을 다루는 것은 이스라엘과 야훼 신앙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이자 역사이기도 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겪으며 나라를 일으키는 과정은 고대 근동의 역사와 맞물려 전개 될수 밖에 없었다.

 

 

 

 

 

  

강사 주원준은 고대 근동학 전공자로서 EBS <명강>에서 "고대 근동 3천 년과 이스라엘"이라는 제목으로 여덟 강에 걸친 흥미로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구약의 사람들> 11강은 이 강의를 참고하여 정리하려 한다.

 

 

 

 

 

 

1. 고대 근동

 

 

 

 

 

 

 

 

 

지도에 나타난 지역이 고대 근동의 공간적 배경이다. 근동이라는 명칭은 서구 중심적이라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고대 근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연구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이 분야의 학술 용어로서는 사용되고 있다. 중등 세계사에서는 서아시아 역사로 다루는 지역이다.  

 

 

 

 

 

 

  

 

시간적으로는 청동기 문명이 발생한 기원전 3,500년 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한 기원전 300년 무렵까지이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삼천여 년 동안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주로 강대국들이, 그 사이의 시리아-필리스티아는 약소 국가들이 명멸했다.

 

 

 

 

 

 

 

 

 

대략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북부에는 아시리아, 남부에는 바빌로니아, 그리고 나일강 유역에는 이집트가 강대국으로 자리잡았다.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과 발칸 반도, 페르시아만 유역은 문명의 변방 지대로 강대국들의 영향권 아래 여러 민족들과 작은 나라들이 다투었다.

 

 

 

 

  <세계의 역사>

 

 

 

 

윌리엄 맥닐의 <세계의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1700년 직후와 기원전 1200년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유라시아 문명의 전역에 유목민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었다. 이 침략은 유럽에서 중국까지 대규모의 세력 교체와 문명의 교체를 가져왔다.  

 

 

 

 

 

 

 

 

 

첫 번째 침략으로 이집트는 힉소인의 지배를, 바빌로니아는 카슈트인의 지배를 받았다. 문명의 뿌리가 깊었던 이 지역들은 얼마 후 이민족의 지배를 물리쳤고, 이민족의 통치기에도 고유의 문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 침략자들이 오히려 발전된 이집트 문명과 바빌로니아 문명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간 것도 이 무렵으로 추정된다. 힉소스인을 특정 민족이 아니고 시리아-필리스티아 혼종 민족으로 본다면 이 시기 많은 유랑민들이 이집트에 들어가 정착했을 것이다. 이집트 문화에 완전히 동화된 요셉에 대한 묘사도 힉소스인의 이집트화라는 역사적 사실과 잘 들어맞는다.

 

기원전 1500년 이후 고대 근동은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이집트의 신왕국,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미타니)가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힉소스인을 몰아낸 이집트는 적극적으로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에 진출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이민족의 침략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  이집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히타이트 역시 시리아-필리스티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원전 1274년, 이집트 신왕국과 히타이트는 카데쉬를 두고 최초의 세계 대전을 벌인다. 강대국들은 주로 작은 국가를 통해서 싸우거나, 소규모의 국지전 형태로 다투어 왔는데, 처음으로 두 강대국이 직접 총력전을 벌였기 때문에 세계 대전이라 부른다.  

 

카데쉬 전투는 공식적으로는 승패없이 평화 조약으로 끝났지만, 이후 히타이트는 급속히 쇠퇴하여 멸망했고, 이집트 신왕국도 점차 쇠퇴하면서 고대 근동의 세력 균형이 무너졌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도 이런 근동의 세력 변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원전 1200년 직후 농경사회는 또 한번 대대적인 유목민의 침략을 받았다. 새

로운 무기인 철기가 등장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Sea People'이 바다에서 몰려 왔다.  암흑기라 부를 만큼 철저한 파괴와 단절이 있은 후  새로운 국가들과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였다.

 

 

 

 

 

 

 

 

 

시리아-필리스티아 지역에 페니키아인, 아람인, 이스라엘인, 필리스티아인들이 새롭게 정착하였다.

 

 

 

 

 

 

 

 

역사 기록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표기가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르넵타의 비문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다. 국가가 아니고 민족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광야에서 막 들어왔거나, 판관 시대 정도로 추정된다. 

 

히브리인들은 기원전 11세기 무렵 처음으로 국가를 건설했다. 기원전 1000년 이후 고대 근동은 새로운 안정을 찾으며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패권은 신아시리아 제국  → 신바빌로니아 제국 →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어졌다.  건국 직후 짧은 풍요를 누렸던 이스라엘은 새로운 시련을 맞았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 되었다가, 신아시리아 제국과 신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각각 멸망하였다.

 

 

 

 

 

 

 

2. 우가릿과 바알 신앙

 

 

우가릿은 기원전 12세기 이전에 시리아-필리스티아 지방에 번성했던 도시 국가이다.  풍요로운 항구 도시로 군사력은 약했으나, 발달된 문화를 꽃피웠다. 기원전 1200년 직후의 '파괴와 단절' 로 이 지역의 다른 많은 도시국가들과 함께 소멸했다.

 

 

 

 

 

 

 

1928년 시리아에서 삼천 년간 땅 속에 묻혀 있던 우가릿의 지하 무덤이 발굴되었다. 쏟아져 나온 토판에서 우가릿의 독자적 문자와 풍부한 전승이 발견되었다. 우가릿어는 살짝 변형된 아카드어인데, 문법이 히브리어와 매우 유사해서 요즘 구약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우가릿어를 배워야 할 정도라고 한다.  문학적 완성도가 놀라운 신화들이 여럿 발견 되었는데, 구약 성경에는 죄악시 되고 있는 바알 신의 이야기가 풍부하고, 구약과 표현법이 비슷한 내용들이 매우 많다.

 

흡사한 문법과 비슷한 이야기 등 구약에 스며든 우가릿 문화의 흔적을 연구해 보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군사력은 약하나 경제와 문화가 발전했던 우가릿 같은 국가를 이스라엘이 국가 건설의 모델로 삼지 않았나 추정할 수 있다.

 

 

 

 

 

 

 

우가릿 토판들 중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바알 신화>, <아크하루 서사시>, <키르타 이야기>는 모두 일리말쿠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그의 긴 직함을 보면, 왕의 고위 관리이자, 대사제이며, 서기관이다.

 

 

 

 

 

 

 

 

<바알 신화>를 보면 우가릿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종합적임을 알 수 있다. 인간과 종교, 정치와 외교를 통합하여 보려했던 태도가 이스라엘의 신화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구약 성경도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뚜렷이 드러난다.

 

 

 

 

 

 

 

바알은 풍우신이다.  고대 근동의 건조 지대에서 비와 바람은 풍요의 상징이다. 하다두, 테슈브, 타르훈자, 토르 등 민족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히브리인들도 시리아-필리스티아 지방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게 되자 바알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야훼만을 섬겨야 하는 히브리인의 신앙과 바알신 숭배는 공존하기 힘들다.

 

 

 

 

 

 

 

 

야훼 신앙을 보통 유일신교라고 하는데, 강사 주원준은 'monotheism' 즉 '다른 신은 없다'라기 보다는 'monolatry', 한 분만 섬기라는 '유일 섬김'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유랑하는 민족이 아니라 정착하여 국가를 건설한 이스라엘의 왕들은 다른 신을 받아들이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가 종종 신들의 교류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농경과 외교 등에 있어서 유일 섬김 보다는 다신 숭배가 유리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갈등이 구약 성경 곧곧에 드러난다.

 

므나쎄, 아합과 이제벨, 엘리야의 카르멜산 전투는 이 갈등을 잘 보여준다. <모비딕>의 주인공 에이허브 선장의 모델인 아합은 바알 숭배로 엄청난 비난을 받아 왔지만, 아합의 주장은 야훼 대신 바알을 믿자는 것이 아니라 야훼도 믿고 바알도 믿자는 것이다.

 

 

 

 

 

 

 

이슬라엘이 우가릿을 본보기로 삼았고 구약 성경도 우가릿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우가릿이 많은 신들을 숭배했던 반면 이스라엘은 끝까지 야훼 유일섬김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유일 섬김 사상은 이후 하느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신에서 세계의 유일신으로 확장하는 밑바탕이 된다. 

 

이스라엘과 우가릿의 또 하나 큰 차이점은 바알 신화에는 역사적 배경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야훼는 역사에 임하여 직접 개입하는 신이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면밀히 읽으면 역사적 사실과 일치시킬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우가릿의 신화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양한 신을 통해 다양한 소망을 기원했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오직 야훼만을 섬겼던 독특한 히브리인의 역사와 그런 자기 백성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는 독특한 야훼신의 이야기는 남은 네 개의 강의에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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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곡

 

 

 

 

 

 

11곡은 단테가 지옥의 전체 구조를 직접 설명해 주고 있다. 지난번 스타디 과제 때에 대부분이 '디스'를 조금 혼동하는 것 같아서, 이번 스타디 때는 마침 11곡의 내용도 그렇고 해서, 직접 지옥의 구조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나는 마거릿 버트하임의 구조도를 조금 변경해 그렸다.

 

지옥은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9가지 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고리의 입구마다 지키는 괴물(괴수)들이 있긴 하지만, 죄의 종류가 질적으로 변할 때는 그보다 커다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은 지옥문이다. 단테의 순례 길에는 이미 지옥문이 열려 있었는데, 이 문은 예수님이 림보의 맑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와 저항하는 악마들을 물리칠 때 쳐부순 이후 열려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아케론강이다. 죄 많은 영혼들은 사공 카론의 배로 이 강을 건너 지옥 안으로 들어간다.

 

아홉 개의 지옥 고리는 죄의 질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욕망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지은 부절제의 죄는 위쪽 고리들 즉 상옥에, 사악한 의도에 따라 저지른 이성적 죄는 아래쪽 고리들 즉 하옥에 갇힌다. 상옥과 하옥 사이에는 디스라는 도시의 성벽이 있다. 

 

성벽을 기준으로 보면 상옥은 성 밖이고, 하옥은 성 안이다. 디스는 1곡부터 16곡까지 몇 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달라서 혼동을 주기 쉽다. 디스는 무엇일까?

 

 

 

 

 

 

 

디스는 8곡 67행에서 69행 사이에 처음 나온다.

 

선한 선생님이 말했다. "아들아!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들과 악마들이 사는

디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옮긴이 주를 보면 디스는 루키페르 그 자체나 그가 자리 잡고 있는  지옥의 맨 밑바닥이다. 69행에 보면 디스는 도시이니, 이 도시는 지옥의 맨 밑바닥에 있어야 한다.

 

8곡 76행에서 81행까지는 디스 도시에 대한 묘사다.

 

우리는 마침내 이 불행한 도시를 둘러싼

깊은 해자에 도착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쇠로 만들어진 듯 보였다.

우리가 탄배는 한동안 주위를 돌았다. 그러다

한곳에 이르자 뱃사공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내리시오! 여기가 디스의 입구요!"

 

여기가 디스의 맨 바깥 성벽이다. 추방된 수천의 천사들이 성문을 막아섰고,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 추방된 천사들을 물리친 다음에야 순례자는 성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11곡 64행에서 66행까지를 보면 디스는 '지구의 중심부' 이다.

 

그래서 지옥 맨 밑바닥의 가장 좁은 고리,

즉 지구의 중심부 디스 주변에 모든 배신자들이

몰려 있고, 그들의 고통은 잠들지 않는 거야.

 

가장 좁은 '고리'라면 아홉 번째 고리다. 그런데 아홉 번째 고리는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맨 밑바닥은 루키페르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디스는 아홉 번째 고리 전체를 말하는 것일까? 루키페르가 있는 네 번째 구역 주데카만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런데 아홉 번째 고리는,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11곡의 전체 구조 설명에 의하면 코기토스라고 불린다.

 

11곡 74행에는 "불로 활활 타는 이 도시"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단서는 지옥편 마지막인 34곡의 20행과 21행에 있다. 궁금해서 살짝 넘겨보다가 찾았다.

 

여기에 디스가 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거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루키페르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여기서 디스는 루키페르이다.

 

디스(Dis Pater)에 대한 묘사를 종합해 보면, 디스는 성벽을 지나서도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서 맨 밑바닥 지구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쉽게 생각해보면 성읍 안으로 들어와서 논밭도 지나고 농가도 지나고 중심부에 이르러서야 관아가 나오듯이, 디스라는 도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성벽 안은 넓은 의미의 디스라는 도시이지만, 디스라는 성은 맨 밑바닥의 중심부 루키페르가 있는 곳이라고 하면 얼추 맞지 않을까?

 

성안에서도 일곱 번째 고리에서 여덟 번째 고리로, 여덟 번째 고리에서 아홉 번째 고리로 내려갈 때 큰 장벽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거기까지는 읽지 않았으므로 대략 전체 지옥의 구조는 위와 같이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12곡부터 16곡까지는 일곱 번째 고리인 폭력의 고리를 순례한다. 폭력은 그 대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되어, 일곱 번째 고리는 세 개의 구렁으로 나뉜다. 타인에 대한 폭력,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폭력이다.

 

 

 

 

 

 

 

 

 

 

 

12곡

 

 

 

 

 

일곱 번째 고리의 첫 구렁(1~2)은 끓는 피의 강물(47), 플레게톤이다. 입구에는 '크레타의 치욕' 미노타우로스가 가로막고 있다. 폭력으로 남을 해친 자들(48) 피의 강물에서 삶기는 고통을 당한다. 이 강물을 벗어나려 하는 영혼은 절벽 발치에서 맴돌고 있는 켄타우로스의 화살을 맞는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 아래 미로에 갇혀 있던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이고, 켄타우로스는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말인 반인반수이다. 두 반인반수의 괴물은 폭력이 인간의 야수성에서 비롯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준다.

 

이 구렁의 대표라면 알렉산드로스다. 단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폭군 중의 폭군으로 꼽았다. 대제국의 영광 뒤에서 사라진 엄청난 생명에 주목한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여기에 있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13곡

 

 

 

 

 

일곱 번째 고리의 두 번째 구렁(19)은 거칠고 칙칙한 숲(2)이다. 지하의 판관 미노스는 육신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온 영혼을 이 구렁으로 보낸다. 자살한 영혼들이다. 육신을 잃은 이 영혼들(94~6)은 숲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된다. 숲에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괴상한 새, 하르피아(100~2)가 이 나무들의 잎을 뜯어 먹으면서 고통을 준다.

 

피 흘리는 나무의 이미지가 여기에 있다. 가지 꺾인 나무가 진액을 흘리듯 피를 흘린다.

 

다른 고리의 영혼들은 모두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자살한 영혼들만 나무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가 보다.

 

 

 

 

 

 

14곡

 

 

 

 

 

일곱 번째 고리 세 번째 구렁(4)은 불타는 모래밭(73)이다. 하늘에서는 불비가 내린다. 하느님을 경멸하고 무시한(70) 영혼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구렁에서 고통 받는 영혼은 14곡에서 17곡에 걸쳐 묘사된다. 14곡에는 올림푸스의 최고 신, 제우스에 불경을 저질러 번개에 맞아 죽은 희랍 신화 속의 영웅이 나온다. 오이디푸스왕의 아들들이 벌이는 테바이 전쟁에 참여한 카파에우스다.

 

 

 

 

 

14곡에서 단테는 인간의 역사를 크레타의 이다산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노인에 비유한다. 옮긴이 주에 의하면 이다산은 옛날에는 샘과 푸른 숲이 울창했던 에덴과 같은 곳이었지만, 원죄 이후의 인간처럼 더렵혀져 지금은 버려진 곳이 되었다. 이다산에 같힌 노인은 에덴 동산의 원죄 이래로 파멸해 가는 인간을 상징한다.

 

이 노인의 모습은 구약성경의 〈다니엘기(2:32~35)에서 빌렸지만, 단테는 성경과 달리 이 노인을 구성하는 황금-은-청동-무쇠를 인간의 타락 과정으로 설명한다.

 

 

 

 

 

희랍 신화에도 황금의 종족 이후 은의 종족, 청동의 종족 그리고 영웅 시대를 거쳐 철의 종족으로 타락하는 인간의 역사가 있다. 단테가 서양 문명의 발상지를 크레타로 본 것이나 이 노인의 모습이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결합된  서양 정신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천국으로의 순례에 비록 연옥까지만이라고 해도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로 내세운 것부터가 그런 것 아닐까. 지옥을 흐르는 강들도 모두 희랍 신화의 다섯 개의 저승의 강을 그대로 사용했다.

 

 

 

 

 

15곡

 

 

 

 

단테는 불타는 모래밭을 둘러싼 강둑을 걸으며 존경했던 스승 브루네토를 만난다. 여기에 있는 무리들은 모두 '똑 같은 죄(108)'를 지었는데, 성직자와 위대한 문인들이 있다. 죄명은 명확히 언급되지 않지만 '죄 많은 육신(114)'이라 말하는데, 동성애자들을 의미한다.

 

 

 

 

 

 

 

16곡

 

 

 

 

 

일곱 번째 고리를 빠져 나가기 위해 강둑을 계속 걷던 단테는 피렌체의 유명 인물 세 명을 만난다. 단테가 속해 있던 궬피당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죄도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15곡의 브루네토의 말을 미루어 볼 때 동성애인 것 같다.

 

그런데 단테는 이 구렁에서 만난 모든 인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중세의 관점에서 보는 동성애와 현대의 관점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을 일곱 번째 고리의 세 번째 구렁에 배치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존경어린 태도는 매우 특이해 보인다. 고대 희랍에서는 남성 동성애가 유행했을 뿐아니라 권장되기까지 했다. 희랍 전통에 정통했던 단테이기 때문일까?

 

 

 

 

 

이제 일곱 번째 고리의 순례는 끝나고 여덟 번째 고리로 내려가려 한다. 그런데 '말레볼제'라 불리는 여덟 번째 고리로 가는 길이 매우 험난한 것 같다. 베르길리우스는 시뻘건 물이 폭포수로 떨어져 내리는 절벽의 끝에서 단테의 허리 끈을 아래로 던져 무엇인가를 불러낸다.

 

 

 

 

 『신곡』의 첫 출판 당시 제목은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 이다. 줄여서 Comedia라고 하는데, 이 제목이 처음으로 16곡에 등장한다.

 

 

 

 

 

 

17곡

 

 

 

여덟 번째 고리로 내려가기 직전 불타는 모래밭의 불비 속에서 단테가 본 죄인들은 목에 주머니를 걸고(55) 있다. 고리대금업자들이다.  왜 이들이 하느님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죄인들의 구렁에 있는 걸까?

 

 

 

 

 

고리대금업은 고대와 중세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돈이 돈을 낳는 것, 즉 돈이 자식을 낳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위반하는 것이다. 중세에 자연의 질서는 신의 섭리이므로 고리대금은 신성에 대한 폭력이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 너무도 당연시 된다. 금융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돈은 새끼에 새끼를 치며 사람을 휘두른다. 주식을 사며, 채권을 사며, 불비 내리는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현대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돈을 낳는 것이 그리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단테는 고리 대금업자들에 대해 특별히 그 죄악을 강조하는 듯하다. 앞서 지옥의 전체 구조를 설명한 11곡에서 이미 베르길리우스의 입을 빌려 고리대금업자의 죄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성덕에 반하는 범죄(11곡 95)"인데 그 이유는 인간의 기술이 자연 즉 하느님의 자손을 따라야 함에도 고리 대금업자는 다른 길을 걷기 때문이다. "자연 자체와 그 부속물을 멸시하고 다른 것에 희망을 걸지 않더냐(11곡 109~111)"라고 일갈한다. 돈이 자식을 낳는 것은 하느님의 자손 즉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범죄임을 단테도 역설하고 있다.

 

 

 

 

 

 

<귀스타브 도레>

 

 

 

피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험준한 절벽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게리온을 불러 올린다. 단테의 허리끈에 유인된 무시무시한 괴물은 게리온(97)이다.

 

게리온은 희랍 신화의 三頭三身 괴물이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중 '게리온의 황소떼'가 있는데, 게리온은 황소떼를 뺏으러 온 헤라클레스에 의해 독화살에 맞아 죽는다.

 

단테는 게리온을 사기의 상징으로 바꾸었다. 얼굴은 틀림없이 사람이고, 겉은 말짱하게 사람의 살가죽을 뒤집어 썼는데, 몸통은 뱀이다. 사기 지옥의 수문장 게리온은 베르길리우스의 속임수에 걸려 역설적이게도 순례자를 위한 길잡이가 된다.  속이는 자가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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