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말은 참 자주도 떠오른다. "너 자신(의 無知)을 알라."  知에 대한 갈망은 無知에 대한 知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無知는 점점 줄어 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늘어 난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모르는 책 두 권이 생기고, 강의 한 편을 들으면 몰랐던 이야기가 쏟아진다.  길은 길에 연(連)하여 끝이 없다더니, EBS의 <클래스e> 강의를 듣다 보면, 들어야 할 강의가 가지를 뻗어 나간다.  그래서 듣게 된 강의가 <고대 이집트> 이다.  자세하게 정리할 여력은 없어서 간단히 주요 내용들만 남겨두려 한다.  

 

 

 

 

 

 

 

 

 

 

 

 

1강. 우리 안의 이집트

 

 

 

 

고대 이집트라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멀고 낯선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집트, 대중 문화적인 이집트를 소개하는 강의다.

 

 

 

 

 

 

 

 

 

 

 

 

 

어디선가 보고 들은 모습들과 파라오들이지만 우리의 상식은 보통 거기까지다. 문제는 이집트 역사의 맥락에서 어디쯤 위치하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생선 뼈만 발라 놓은 듯한 중등 교육의 세계사가 필요한 이유는 이 뼈들이 없이는 낱낱의 사실들이 단순 흥미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내게 이 강의는 뼈들을 이어 맞추는 흔치 않은 이집트 공부였다.

 

 

 

 

 

 

 

 

 

 

 

 

노래방의 투탕카멘부터, 오션 월드의 신전, 롯데 월드의 파라오의 분노까지 우리 놀이 문화 곳곳에 배어 있는 고대 이집트를 발견할 수 있다.

 

 

 

 

 

 

 

 

 

 

 

 

 

고증이 잘 되어 있는 부분과 잘못 된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놀이에 더하여 상식을 조금 더 쌓는 기쁨도 얻을 수 있겠다. 한때 유행했던 '알쓸신잡'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저 만들어 낸 것은 아닌 듯하다.

 

 

 

 

 

 

 

 

 

2강 두 개의 나라

 

 

 

 

 

 

 

2강은 고대 이집트의 '공간'에 대한 강의다. 제 1급류가 조금 생소한데, 뱃길로 순탄히 흐르던 강물이 많은 바위 등의 장애물에 의해 흐름이 급변하는 지역이다.

 

 

 

 

 

 

지형적 단절로 인해 여기가 고대 이집트의 남쪽 경계가 된다.

 

 

 

 

 

 

 

이집트인들의 땅 개념은 이분법적이다. 검은 땅, 케메트와 붉은 땅, 데슈레트다. 검은 땅은 나일강변의 기름진 농경지이고, 그 바깥 붉은 땅은 모두 불모의 사막이다.

 

 

 

 

 

 

 

사막으로 둘러싸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나일강변이 고대 근동 지역에서 가장 풍요로웠던 이유는 나일강의 범람에 있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한 백나일강과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시작된 청나일강이 합쳐져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청나일강 유역은 매년 같은 시기에 홍수가 발생하는데, 이때 엄청난 양의 강물과 함께 강바닥의 검은 영양토가 나일강 하류로 쓸려 내려온다. 나일강 하류의 삼각지, 델타 지역은 인공적인 퇴비나 땅갈이 없이도 매년 양질의 검은 흙이 보충되는 전혜의 농경지가 되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의 계절관도 이 나일강의 범람에 맞추어져 있다.  기름진 토양을 쓸고 온 홍수기, 아케트가 지나고 나면, 농사를 시작하는 파종기, 파레트기가 오고, 다음 홍수가 시작되기 전 수확을 하는 쉐무기가 있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이 리듬에 따라 세 가지의 계절로 나눈다.

 

 

 

 

 

 

 

 

긴 나일강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고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남북을 나누어 나일강 상류를 상이집트라 하고, 나일강 하류를 하이집트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감정이 있었다고 할 만큼 두 이집트는 자연적, 문화적 특성이 달랐다.

 

 

 

 

 

 

 

 

상하 이집트는 통일되어 강력한 왕국을 이루기도 했지만, 각각 독자적 왕조를 세우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통일 왕국 시기에도 두 개의 땅이라는 관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각 이집트를 상징하는 각종 문화적 장치도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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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왕관에서 상 ·하 이집트의 구분이 뚜렷이 나타난다.  두 지역이 분열되어 있을 때는 각각 붉은 왕관과 흰 왕관을 썼고, 통일 왕국의 경우 두 왕관이 결합된 왕관을 썼으나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구분해 쓰기도 했다.

 

 

 

 

 

 

 

 

 

3강. 최초의 파라오

 

 

 

 

 

 

 

이집트는 흔히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주요한 청동기 문명들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35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한 청동기 문명이 약 500년의 간격으로 이집트 → 인더스 → 황허로 전파되었다고 대충 기억하면 손쉽다.

 

이 강의에서는 이집트 청동기 문명의 시작을 기원전 약 3100년으로 잡는다. 이전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왕조가 없었던 것으로 본다. 이집트의 왕조 시대는 청동기 문명과 함께 한다.

 

이 강의에서 다루는 고대 이집트는 3000여 년에 걸친 왕조 시대를 말한다.  초기 왕조부터 로마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왕조 시대의 핵심은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이다. 이집트가 가장 강성했던 때로 상하 이집트가 통일 왕국을 이루었던 시기다.  그 사이 사이의 분열기를 로마 숫자를 붙여 중간기라고 부른다.

 

 

 

 

이집트 학자들은 편의상 조금 더 세분하여 왕가의 혈통이 바뀔 때마다 왕조를 구분하여 숫자를 붙였다.

 

 

 

 

 

 

고대 이집트가 얼마나 긴 기간인지를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시기에도 이미 기자의 피라미드는 2500년도 더 옛날의 일이다. 우리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놓인 2000년 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최초의 파라오는 두세 명 정도의 후보가 있다. 그중 한 명이 기원전 3100년 경의 나르메르다.  팔레트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상 이집트의 왕 나르메르가 하 이집트를 정복하여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문헌 기록에는 최초의 파라오가 메네스로 적혀진 것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당대의 기록이나 유물에는 메네스가 없다.  또 다른 후보도 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아직도 최초의 파라오는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4강. 피라미드의 시대 (상)

 

 

 

 

 

 

 

초기 왕조는 불안정 했다. 이 혼란을 종식한 파라오가 카세켐위로 추정된다. 이집트 문명의 본격적인 시작인, 고왕국은 카세켐위 다음 파라오에서 시작된다.

 

 

 

 

 

 

 

고왕국은 기원전 2686년부터 2181년까지 약 500여 년 지속 되었다. '피라미드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대다수의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고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피라미드의 이야기이다.

 

 

 

 

 

 

 

고왕국 수립 직후에 최초의 피라미드가 만들어 진다. 우리나라의 장군총이나 석촌동 고분의 양식인 돌무지 무덤과 비슷하게도 보이는 계단식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 이전의 전통적 왕묘는 마스타바이다.  위 그림의 1.로 표기된 부분이 마스타바다. 조세르도 처음에는 마스타바로 무덤을 만들었다가 좌, 우로 증축을 하고 갑자기 마스타바 위에 마스타바를 쌓는 식으로 처음에는 4단의 피라미드를, 마지막에 한 번 더 증축하여 6단의 피라미드를 완성하였다. 

 

왜 갑자기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쌓으려 했을까? 별도의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추론이 가능할 뿐인데, 하늘로 향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정도로 추측한다.

 

 

 

 

 

 

 

그 다음 피라미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피라미드인데, 붕괴했다.

 

 

 

 

 

 

 

붕괴 피라미드 이후 나타난 이상한 모양의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의 경사각이 한 번 꺾여 있다.

 

 

 

 

 

 

 

왜? 피라미드는 문헌 기록이 희소해서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은 피라미드가 붕괴한 것을 보고 약 54도로 짓고 있던 피라미드의 경사각을 약 43도로 낮춘 것이다. 

 

 

 

 

 

 

이후에 경사각을 43도로 맞춘 피라미드가 완성되는데, 붉은 피라미드로 불린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자의 피라미드가 등장한다. 쿠푸, 카프라, 멘카우라의 피라미드다. 경사각을 50도 대로 맞춘 완벽한 형태의 피라미드다.

 

 

 

 

 

 

 

 

 

 

 

항공 사진으로 보면 이 세 피라미드가 보이고, 그 주변으로 귀족들의 마스타바도 즐비하다.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압도적이라 주변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데, 피라미드는 단독으로 있지 않고 주변에 장례 신전 등의 부속 건물을 가지고 있다. 

 

 

 

 

 

 

 

 

 

 

5강. 피라미드의 시대 (하)

 

 

 

 

 

피라미드는 고왕국 시대에 주로 세워 졌고, 특히 고왕국 초기에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 졌다.  

 

 

 

 

 

 

 

기자의 세 피라미드 직후 왕위에 오른 셉세스카프는 피라미드를 포기하고 이전의 왕묘인 마스타바를 선택한다.

 

 

 

 

 

 

 

 

이후에 피라미드가 다시 만들어 지지만 그 규모는 기자의 피라미드에 비해 매우 축소 되어 있다.

 

 

 

 

 

 

 

피라미드가 축소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고왕국의 쇠퇴, 신관과의 알력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피라미드의 규모는 작아진 반면 부속 건물이나 피라미드 내부의 장식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모습이 동시에 확인된다. 피라미드의 규모에 집중되었던 역량을 다양한 부분으로 분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기자의 피라미드에는 어떠한 문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 내부 현실에 아무 것도 없어서 <신의 지문> 같은 예전에 읽었던 책에는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 천문 관측소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피라미드의 규모와 완성도가 뒤떨어진 5왕조 시대의 피라미드에는 현실 벽면 가득히 문자가 새겨져 있다.

 

 

 

 

 

 

 

 

 

 

주로 파라오를 위한 기도문들이다.  예전에 파라오는 의심 없이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따로 기도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오면 파라오의 신적 권위에 조금씩 의문이 생기면서, 파라오에게도 죽음 이후에 대한 기원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피라미드 이외에 부속 건물들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피라미드의 변천사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은 고왕국의 초기이다. 이후에는 부속 건물과 내부 등으로 자원이 분산되면서 규모와 완성도는 현저히 감소하였다. 고왕국의 전성기가 초기 4왕조였으므로 국가적 역량도 점차 쇠퇴했다. 피라미드는 중왕국 시대에도 일부 건설되기는 했다.

 

 

 

 

 

 

 

 

 

 

피라미드의 시대였던 고왕국은 6왕조 시기에 결정적 쇠퇴를 겪고, 혼란기에 접어 들었다.  지방 호족들의 권력이 강화되기 시작 했고, 남쪽의 테베 지역을 중심으로 별도의 왕조가 수립되자, 내전기에 돌입했다.

 

 

 

 

 

 

 

 

북쪽의 10왕조와 남쪽의 11왕조의 내전은 11왕조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 혼란기를 제1 중간기라 부른다. 그리고 11왕조에 의해 다시 통일된 이집트는 중왕국 시대를 맞이한다.

 

여기까지가 기원전 3100년 경부터 기원전 2000년 정도까지, 약 천 년간의 이집트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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