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계획이 쓸모없어 지는 경우가 잦다. 서양 고전을 시대순으로 읽으려 했는데, 희랍 철학을 시작하자마자 중단하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는 문학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아서, 평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단테의 『신곡』을 읽기로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겨울의 재앙을 견디기에도 'Comedia' 같은 기쁜 소식이 낫지 싶다.

 

단테의 『신곡』을 읽은 적이 있다. 어렵고 재미도 없었다. 너무 많은 인물들로 정신도 없었다. 올해 호메로스 강의를 들었는데, 거기서 강대진 선생이 『신곡』이 재미 없는 이유는 희랍 신화와 서사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누구는 『성경』을 모르고는 읽기 어렵다고도 했다. 고전은 당대를 날카롭게 묘파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내포한다는데, 거기에 또 하나가 더 있는 것 같다. 고전은 이전의 고전 텍스트를 계승하고 있다. 지식 위에 새로운 지식이 쌓이듯, 고전의 형식은 반복되거나 변주되고, 고전의 내용은 되풀이하여 소재로, 주제로, 일화로 새로운 고전 속에 얼굴을 드러낸다. 그동안 읽은 책들이 두 번째 『신곡』 읽기에 보탬이 될런지 기대를 해본다.

 

 

 

인문학자라면 누구나 사랑한다고 해도 될만큼 자주 언급되는 『신곡』이라 본문 읽기에 들어가기 전에 좋은 강의를 듣고 정리하는 과제를 하기로 했다. '좋은' 강의는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도 또 하나의 과제다. 동영상 과잉의 시대라 전문가부터 동네 아저씨까지 영상이 참 다양하기도 하고, 교수라든가 학자라든가 하는 명칭을 달고 있어도 그 수준과 열성은 또 각양각색이라 소위 말빨에 넘어가지 않고 그 깊이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신곡』의 대표 번역으로는 민음사 판과 열린책들 판이 있다.  두 역자의 강의가 모두 인터넷에 올라 있어 이 강의들을 먼저 선택했다. 두 분 모두 이탈리아 문학이나 어학 전공이고, 원전 번역자이니 믿을 만했다. 이 정리글은 박상진 교수의 강의를 기본으로 김운찬 교수의 강의를 참고하여 쓴다.

 

 

 

 https://www.ebs.co.kr/tv/show?prodId=101358&lectId=10406419

 

 

박상진 교수의 강의는 2015년 EBS 인문학 특강에서 <단테, 구원의 시인> 이란 제목으로 두 개의 강의로 진행되었다. 1강은 '단테는 누구인가?', 2강은 '『신곡』, 우리 시대의 구원'이다.  그외에도 플라톤 아카데미, 클래식 클라우드 등에서의 강의가 있다.

 

 

 

 

 https://youtu.be/OzlgrbwEa2U

 

 

 

김운찬 교수는 플라톤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지혜의 향연에서 2019년에 <이승의 삶을 위한 저승 여행> 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 (1265~1321)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다.  피렌체를 빼놓고 르네상스를 말할 수 없듯, 단테를 빼놓고 르네상스를 말할 수 없으며, 피렌체도 말할 수 없다.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며, 서구의 14세기에서 16세기에 해당한다.  호이징아는 1919년 에 출간한 『중세의 가을』에서 " 단테의 시대에서, 중세는 잊혀지기에는 너무 가까운 과거였고, 근대는 외면하기에는 이미 너무 가까이 와버린 미래였다."고 썼다.

 

 

 

 

 

단테를 르네상스의 대표자로 꼽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정착시킨 이탈리아어에 있다. 중세의 공용어는 라틴어였고, 모두 라틴어로 글을 썼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야 유럽에는 각 지역의 (토)속어가 문자로 정착되었다.  영어는 셰익스피어에 의해, 에스파냐어는 세르반테스에 의해, 독일어는 루터에 의해 완벽한 형태의 문자로, 동시에 불후의 문학 작품으로 탄생했다. 쉬운 글자로 쓰인 책들이 널리 출판됨에 따라 대중에게도 지식의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지식의 대중화는 세계의 변방에 있던 유럽을 세계의 중심국으로 부상하게 만든 토대가 되었다.

 

 

 

 

 

 

단테에 대한 평가는 르네상스인인 보티첼리, 미켈란젤로부터 현대의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찬탄으로 가득하다.  미켈란젤로는 "지구 위를 걸었던 사람 중, 단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단테의 영향은 문학, 회화, 음악, 언어학, 정치학, 대중문화까지 여전히 지대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단테와 신곡.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 1465. 피렌체>

 

 

 

단테의 『신곡』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왼쪽 하단으로 지옥문을 지나 땅 속으로 내려가는 지옥이 보이고, 단테의 뒤쪽으로는 산처럼 보이는 연옥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으며, 이 모두를 감싸고 있는 원형의 하늘이 천국이다.  오른쪽의 도시는 단테가 태어나 사랑하고 정치적 활동을 하다가 추방당한 현실의 피렌체이다.  『신곡』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갈 수 없는 지옥-연옥-천국으로의 순례라는 허구적 창작물임과 동시에 이 세상의 삶이 원인이 되어 인간이 가게될 미래의 현실로서의 저 세상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단테는 스스로 이 책을 "하늘과 땅이 서로 손을 잡는 내용을 담은 이 거룩한 책" 이라고 썼다.

 

 

 

 

 

 

 

 

 

 

『신곡』의 원 제목은 위 사진의 표지에 적힌 그대로이다.  La Comedia Di Dante Alighieri. 

 

 

 

 

 

보카치오가 'Divina' 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이후에 출판본부터는 대개 La Divina Comedia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번역하면서 한자권에서는 神曲이 되었다. 박상진 교수는 이 번역어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데, 신곡을 '귀신의 노래'라고 풀이할 것 까지는 없지만, 원제의 Comedia라는 뜻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점에서 좋은 번역은 아닌 것 같다.

 

 

 

 

 

 

 

 

 

 

Comedia는 무슨 뜻일까?  박상진 교수는 단테의 입을 빌려 『신곡』의 천국편을 인용하여 다만 "하늘과 땅이 서로 손을 잡는 내용을 담은 이 거룩한 책" 이라고만 설명한다. 김운찬 교수는 고상한 비극과 대비되는 의미의 대중적 희극이란 뜻이거나 혹은 행복한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풀이한다.  단테가 천국에 들어가 신을 대면하는 결말이니 기쁜 소식임은 분명하다.

 

 

 

 

 

 

 

『신곡』 은 현재까지 발견된 필사본만 800여 종이고, 연구서나 논문은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평생을 대학에서 『신곡』 만 가르치는 교수도 많다고 하니, 여기서 이 책이 어떤 책이라고 요약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장 검색만 해봐도 읽을 만한 글들을 여럿 찾을 수 있다. 

 

 

[박상진의 문학으로 쓰는 이야기]단테처럼...어느 깊은 밤, 잠에서 깨어 당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sedaily.com)

 

 

중요한 것은 직접 읽는 것이다.  그 전에 책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저승의 구조를 눈으로 익히는 것은 필요할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그려놓은 몇 가지 저승의 도해다.

 

 

 

 

 

 

지옥과 연옥만 그려져 있지만 가장 깔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이다.  북반구는 땅이고 남반구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지옥은 땅 아래로 내려가고, 연옥은 땅 위에서 시작하여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그런데 지옥은 북반구, 연옥은 남반구에 있으므로, 연옥은 사실 땅 위의 산이라기 보다는 물 위의 섬처럼 떠 있다.  지옥에서 연옥으로 가는 길은 지구 중심을 관통하여 나 있는 좁다란 통로이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뒤집어 보면 이렇게 그릴 수 있다. 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9개의 하늘이 천국이다. 

 

 

 

 

 

 

천국의 모습이 조금 더 잘 보이는 그림이다.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우리는 맨 아래에 보이는 지옥으로 들어가 지구의 중심으로 고통스레 내려간 후에 좁은 길을 따라 위쪽으로 나있는 연옥의 산(섬?)에 도달하여 천국을 향해 죄를 씻으며 올라야 한다. 그리고 천국으로 날아 오르게 되는 걸까?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여인이 있다. 베아트리체이다. 단테를 천국으로 이끄는 길잡이는 3명이다. 공교롭게도 B로 시작하는 인물들로,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이다.

 

 

 

연인의 대명사, 베아트리체는 실존 인물이다. 단테가 9살과 18살 때, 딱 두 번 그것도 우연히 마주친 여인임에도 단테는 평생을 베아트리체를 사랑하며 살았다. 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일찍 죽었고,  단테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고 살았지만, 단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베아트리체뿐이다. 하지만 둘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것 같다.

 

 

 

 

 

 

베아트리체는 실존했지만, 어쩌면 단테에게조차 환상의 여인이었을 것 같다.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준 환상은 구원이다. 구원의 여인으로서의 베아트리체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성스러움과 환상을 준다. 기쁜 소식인 'La Comedia' 에서는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구원으로 이끌며 happy ending이 된다.

 

베아트리체를 생물학적인 여성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땅과 하늘을 손잡게 해주는 구원의 매개체이다. 땅으로부터 날아 올라 영원한 태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그 무엇이 있다면 구원을 꿈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플라톤이 지상의 폴리스를 위해 이데아를 꿈꾸었듯이.

 

 

 

 

리스트 <단테 교향곡>

https://youtu.be/A7x-la2Ab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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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2-20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곡 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 포스팅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ㅎ 즐건 한주되십시요!

말리 2020-12-20 23:35   좋아요 1 | URL
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함께 읽기 위해서는 다른 자료들을 조금 더 찾아보고 관심을 조금 더 높여서 본문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다음주는 크리스마스네요. 조용한 성탄절이 되겠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