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만에 조선 정치사를 마쳤습니다.

무엇보다 인명이 많이 나와서 힘들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인 것 같아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들춰보니,

한 시대를 휘둘렀던 인물들이라 몇 전년 전에 분명히 읽은 책인데도

이럴 수 있나 싶었습니다만, 나이탓이려니 합니다. ;;

오늘은 열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선조부터 시작된 붕당정치는 광·인· 효· 현을 거치며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공론을 중히 여기며 당파간 경쟁도 견제와 균형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됩니다.

하지만 숙종 시절부터 당파 투쟁의 성질이 급변합니다.

이른바 숙종식 탕평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조선후기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한번 권력을 놓치게 되면 재기하기 힘든 승자독식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탕평책은 조선후기 정치의 극심한 폐해가 되어버린 당파 투쟁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미봉책입니다.

미봉책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탕평책이 붕당을 혁파하고 정치 제도를 구조적으로 변혁한 것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왕권으로 붕당의 쟁투를 일시적으로 억눌렀던 것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숙종과 영조, 정조 시대에 탕평책은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정조 사후 허약한 왕권이 이어지면서 이전에 이룩했던 탕평책의 성과가 역효과를 발휘하여 민생이 더욱 피폐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6세기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신교의 거센 확산에 놀란 구교는 교리를 정비하고 교세 확장에 나섰습니다.

이때부터 중국을 비롯한 동양으로 가톨릭 선교사들이 포교에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종파가 예수회입니다.

명말-청초에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포교활동과 함께 서양 과학을 전파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7세기 초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도 크리스트교가 유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 서학이라 불린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교적 관심보다는 학문적 관심에 의해서 도입되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8세기 정조때부터 서학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조의 탕평 정치에 반대하던 노론의 벽파가 앞장서서 서학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문에 이들을 공서파라고도 불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정조는 정학이 바로서면 사학은 자연히 없어진다는 논리로 서학 탄압에 미온적이었지만 전라도 진산에서 어머니 신주를 불태운 사건이 발생하여 조선 최초의 천주교 박해가 있었습니다.

1791년 정조 15년의 신해박해는 윤지충과 권상연을 처형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순조가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왕후는 벽파 즉 공서파의 핵심인물입니다.

정학을 바로세워 사학을 다스린다는 서학에 대한 정조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선언하면서 대대적인 천주교박해를 실시하였습니다.

신해박해 10년 만에 일어난 신유박해입니다.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의 처가인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천주교 박해는 완화되었습니다.

헌종의 집권으로 풍양 조씨 가문이 득세하면서 다시 천주교 박해가 강화되었습니다.

헌종때는 기해박해와 병오박해가 있었습니다.

 

 

다음주는 조선 경제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67 ~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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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올해 겨울 최대의 폭설과 한파로 기록될 날이었겠죠?

여덟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감기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고 있어 참석률이 더 낮았습니다.

 

 

오늘도 조선 정치사를 공부하였습니다.

대외관계와 붕당정치를 살펴보았는데요.

최태성의 <고급한국사>를 공부할 때도 엄청 복잡했던 붕당정치였는데요.

역시나 한술 더 뜬 복잡함에 오늘도 머리가 멍멍했습니다.

 

 

조선의 대외관계는 '사대교린'으로 요약됩니다.

큰나라 명은 섬기고, 이웃인 여진과 일본 그리고 류큐 등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강경과 회유를 오갔지만, 결국 임진왜란이라는 재앙으로 파국을 맞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조선과 일본의 외교는 막부정권과 직접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대마도주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대마도는 조선에게 일종의 기미국 즉, 독립국이지만 실제적으로 조선의 지배적 영향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은 대마도주에게 관직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1차적으로 일본의 신하인 대마도주이지만 조선과의 교역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양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습니다.

조선과 막부정권에서 동시에 이해상충한 지시가 내려올 때 대마도주가 문서를 위조하여 절적히 무마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592년 4월 14일, 일본의 20만대군이 부산포에 침략한지 채 20일이 못되어 한양이 함락되었습니다.

선조가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피난을 가야했지만 남해에서 이순신 장군이 제해권을 장악하고 진주에서 관민이 결사 항전,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지켜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군량미를 확보하지 못한 일본군이 북진을 멈춘 사이 명나라의 원군이 도착하여 1593년 1월,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였습니다.

권율이 이끈 행주대첩에서 패배한 일본은 한양을 내놓고 남하하면서 명에게 휴전협상을 제안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조선이 아닌 명과 일본이 몇 년에 걸친 휴전협상을 했지만 결국 결렬되고 159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공격명령에 의해 정유재란이 발발했습니다.

무고로 옥사에 갇혔던 이순신 장군이 삼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어 명량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하였습니다.

이듬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사망하자 일본군이 철수를 시작하고, 전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조선 전역을 황폐화시키고 끝났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르던 세력이 패배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가 출범했고, 중국에서는 명이 쇠퇴하고 후금이 성장하기 시작했지만, 조선에서는 정권이 바뀌지도 않았고 책임을 지는 세력도 없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임란 중 도망간 선조를 대신하여 분조를 이끌었던 광해군이 보위에 오른후 국가 재건을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습니다.

명청교체기의 세력흐름을 나름대로 읽어낸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펼쳤지만 친명배금을 내세운 서인과 남인의 연합 세력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욍위에 오른 인조는 친명배금을 내세우다 두번의 호란을 당하여 국토와 백성을 오랑캐의 발굽 아래 짓밟히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주에는 오늘 조금 살펴본 붕당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 노트>

 

p 63 ~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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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오늘은 재미없다면 재미없다고 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공부하였습니다.

알아두면 사극을 볼 때 도움이 될 품계와 관직 등등을 조금 상세히 알게 되어 실용적인 면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

여하튼 자잘하게 외울 것이 많아서 오늘도 머리가 아픈 하루였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조선의 관직 체계입니다. 

보통 품계라고 한 단어로 쓰지만 정확히는 품과 계입니다.

품으로 나눌 때는 18등급, 계로 나눌 때는 30등급이 됩니다.

그냥 18품 30계라고 합니다.

18품은 숫자로는 1품~9품까지이고, 각 품은 다시 正과 從으로 나뉘어 전체 18품이 됩니다.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 정9품, 종9품까지 입니다.

30계로 세분하면 조금 더 복잡합니다.

정1품은 다시 상계와 하계로 나뉩니다.

종1품도 상계와 하계, 이런 식으로 종6품까지 각각이 모두 상계와 하계로 나뉩니다.

정1품에서 종6품까지 열 두개의 품은 계가 두 개씩 즉 쌍계입니다.

산수를 해보면 6(1품~6품)X2(정,종)X2(상,하)=24계입니다.

정7품부터 종9품까지 여섯 개의 품은 계가 하나씩 즉 단계입니다. 

즉 3(7품~9품)X2(정,종)X1(단계) = 6계 

더하면 24계 + 6계 = 30계가 됩니다.

 

관직은 관과 직을 합한 말입니다.

관은 발령받은 관청, 즉 소속 기관입니다.

직은 직위를 말합니다. 

요즘의 부장, 과장, 대리 등등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원칙적으로는 품계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관직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9급 공무원이 외교부 차관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행수行守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품계와 관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고직비階高職卑 즉 품계는 높은데 관직은 낮을 때, 관직명 앞에 행行을 붙여서 불렀습니다.

반대로 계비직고階卑職高, 품계는 낮은데 맡은 관직은 높을 때, 관직명 앞에 수守를 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정3품이 맡는 승정원 도승지를 종2품 가선대부가 맡게되면 품계는 높은데 관직은 낮은 즉 계고직비가 되어서 "종2품 가선대부 행行 승정원 도승지"라 불렀습니다.

 

 

敎旨
교지

崔湖爲折衝將軍
최호위절충장군(정3품상계)
守咸鏡南道兵馬節度使者
수함경남도병마절도사(종2품관직)
萬曆二十年九冃二十二曰
만력 20년 9월 22일(선조25년 1592년)

 

敎旨
교지
崔湖爲折衝將軍
최호위절충장군(정3품상계)
行龍驤衞副護軍者
행용양위부호군(종4품관직)자
萬曆二十四年三冃二十一曰
만력24년3월21일 (선조29년 1596년)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최호장군에게 내린 교지들입니다.

품계와 관직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행수법이 적용되어 있는 사례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품계의 높고낮음에 따라 당상관과 당하관이 나뉘고, 당하관은 다시 참상관과 참하관으로 나뉩니다.

당상관은 정3품 상계 즉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로 조선 새대 최고의

직위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조선 8도의 별칭입니다.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것 같은데 조선의 행정구역과 별칭은 위와 같이 연결됩니다.

명칭의 유래가 사전에 나와 있긴 하지만 이설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주는 양난과 붕당정치에 대해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59 ~ 62

 

 

단순 노동이지만 한눈에 찾아보기 위해 만든 전근대 왕조 연대표입니다.

전근대 정치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복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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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마지막 스타디를 가졌습니다.

열 두명이 참석했습니다.

열 일곱 명까지 되었던 회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공부가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요.

아직 열 세명이나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고 해야겠지요? ^^ㅎ

당장 목표가 없는 분들에게까지 권유 할만큼 좋은 공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각자에게 맞게 하시되 필요없다고 생각되시면 부담갖지 말고 하차하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시작한 공부 끝까지 함께가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조선사로 들어갑니다.

먼저 조선 전기 왕들의 업적을 공부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조선은 재상 중심의 왕도정치를 꿈꾼 정도전에 의해 기획된 국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을 완전히 펼치지 못하고 1차 왕자의 난으로 죽음을 당했고, 조선 왕조 내내 '만고의 역적'으로 불리다가 대원군 때 비로소 복권되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태조 이성계는 1394년에 한양으로 천도하고 1395년에 법궁인 경복궁을 건립하였습니다.

창덕궁은 태종 때, 창경궁은 성종 때, 경운궁(덕수궁)과 경희궁은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집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차 왕자의 난 이후 정권을 잡은 이방원은 형 방과를 왕위에 옹립하고 체제를 정비합니다.

고려에서 이어받은 정부 기구들을 정비 혹은 폐지하여 조선의 행정 조직으로 다듬어 나갑니다.

정종 때 시작하여 태종 때에 와서 확립된 주요 기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워낙 복잡하여 그냥 외우기는 힘들 것 같아 정리하였습니다.

맥락을 이해하면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고려와 조선의 차이점 중 하나가 서얼에 대한 조선의 차별입니다.

태종 때 서얼금고, 한품서용 등이 실시되었습니다.

성종 때에는 이 제도들이 법제화 되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6세기 전반기의 조선 정치는 '사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중종 때 기묘사화, 명종 때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림은 성종 때  주로 삼사와 이조 전랑에 진출하여 훈구를 견제하는 비판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연산군 때 첫 사화를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훈구와 사림은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이어갔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두 번의 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신언패를 목에 건 신하들을 상상해보면 가히 충격적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사림은 사화를 겪으며 수없이 죽어나갔지만 마침내 승리합니다.

향약과 서원, 유향소를 통해 향촌을 장악하고 끝없이 인재를 길러낸 결과입니다.  

 

 

다음주에는 조선의 통치 제도에 대해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노트>

p 54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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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단체 행사로 인해 예정된 결석에 갑작스런 결석까지 더해 딱 1/2이 참석하였습니다.

7명이 오붓이 모여 앉아 고려시대를 차분히 끝냈습니다.

 

고려의 문화도 불교와 사찰, 탑, 불상 등 불교 문화재가 중심이었습니다.

여기에 고려 후기의 다양한 문학 양식과 작품이 등장하여 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는데요.

나름 작품들을 외워보려고 노력했지만, 그저 웃고 말았다고 해야겠죠? ^^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고려 문화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오래되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들입니다.

고려 후기에 세워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주심포 양식에 배흘림 기둥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셋 중 어느 것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가는 조금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건축물의 연대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나름의 측면에서 다들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이라는 직함을 가졌거나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지붕양식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과 수덕사 대웅전은 모두 맞배지붕입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훨씬 화려한 팔작지붕이고요.

 

 

고려시대 불교는 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국시대 중국에서 불교가 들어왔을 때부터 중앙집권화의 도구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불교는 태생부터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고려 전기 문벌귀족 시대에는 교종이 유행했는데, 왕실은 화엄종을 지지한 반면 문벌귀족은 법상종을 지원하였습니다.

광종과 대각국사 의천이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 노력한 것은 귀족세력을 억누르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고려 초기의 광종도 문벌귀족 시대의 대각국사 의천처럼 교종 통합 이후에는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려했는데, 이를 위해 천태학을 융성시켰습니다.

광종이 불교를 통합하려 했던 노력은 그대로 대각국사 의천에 계승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무신집권기에는 선종이 무신들의 지원을 받아 번창하였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은 불교가 지나치게 정치화하는 것을 비판하며 불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고려시대 불교 문화재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장경입니다.

현종때 시작하여 선종때 완성한 초조대장경, 그리고 초조대장경에 이어 선종부터 숙종에 걸쳐 완성한 교장, 고종때 조판한 재조대장경이 있습니다. 대장경은 경, 율, 논의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이고, 교장은 대장경의 주석서인 장과 소를 모아 편찬하였습니다. 초조대장경에 이어서 만들었다고 해서 교장을 속장경이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교장은 경,율,논이 아니라 장,소를 모은 것이므로 대장경이 아닙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고려의 문학 특히 후기 문학은 다양합니다.

무신집권기에 좌절감에 빠진 문인들 사이에서 현실 도피적 성향의 수필이 유행하였습니다.

한편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사대부들과 민중이 주축이 된 문학 양식들도 등장하였습니다.

경기체가와 고려가요, 패관문학, 가전체문학 등이 그것입니다.

 

경기체가는 후렴구로 "위 ~ 경긔엇더하니잇고"가 반복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기체가를 별곡체라고도 하는데, 작품명이 대부분 '~별곡'이기 때문입니다.

후렴구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스타디를하면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좀 더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패관문학은 수필문학입니다.

어원은 한나라의 '패관'이라는 임시관직에서 왔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가전체假傳體 문학은 사물을 의인화하여 현실을 풍자하거나 비판한 문학 양식입니다.

사전적 정의는 "동식물, 사물 따위를 의인화하여 그 일대기를 전기 형식으로 서술한 문학 양식" 입니다.

전기는 전기인데 가짜 전기라는 뜻으로 쓴 것 같습니다.

설화문학에서 소설문학으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다음주는 조선을 시작합니다.

먼저 조선 전기의 왕업적을 중심으로 정치사를 공부하겠습니다.

 

<전한길의 한국사 합격생 필기 노트>

p 51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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