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훔치기 - 왜 예술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가 What's Up 7
다리안 리더 지음, 박소현 옮김 / 새물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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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는 사실 우리를 사로잡는 사악한 눈이다. 반지는 그것을 가진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사로잡아 사우론의 응시 아래 놓는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보여 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공포다. 슈퍼맨이 매번 어벙한 클라크 기자로 돌아왔던 이유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사회적 페르소나를 연기할 때, 즉 가면을 쓰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부지불식간에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면 별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수치심과 불안감을 느낀다.

   

고대의 이론들은 우리가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눈이 빛을 내뿜는다고 믿었다. 그러

나 시각의 기하학은 데카르트의 유명한 그림처럼, 눈이 빛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빛을 수용하는 기관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빛을 뿜는 사악한 눈은 사라진 것일까? 191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친 페루지아는 모나리자가 자기를 향해 미소를 짓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모나리자가 그를 응시했고, 그는 그것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파울 클레는 “숲을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고 말했다. 클레가 메뉴판에서 신문지의 여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이렇게 무언가에 응시당하고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것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그림은 사악한 눈을 자신으로부터 돌리게 만드는 일종의 덫이다. 화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미지나 물건을 떨어뜨린다. 도망자가 일부러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내서 추적자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라캉은 몇몇 시각 예술은 사악한 눈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스크린으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회화는 눈을 위해 덫을 놓는 필사적인 행위이다.

 

보통 라캉의 스크린은 이중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가리개인 동시에 지시자이다.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일화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핵심은 이것이다. 새들은 제욱시스의 포도에 속아 넘어갔지만,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의 베일에 속아 넘어 간다. 베일과 스크린은 그 뒤의 대상을 감추는 동시에, 그 뒤에 무엇인가가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이다. 제욱시스는 엄청난 그림이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에 속았다. 이미지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하는 것들을 반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술적 이미지의 속성은 현실에 대한 모방이 아니라 시선을 유혹하고 기만하려는 노력이다. 욕망의 궁극적 대상은 금지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파라시오스의 베일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모나리자>는 그것이 사라진 이후에야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남녀노소 수많은 프랑스인들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사라진 것을 보려고 루브르 미술관으로 몰려들었다. 이전에 한 번도 모나리자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군중들이 보려고 몰려든 것은 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공간이었다. 모나리자가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 없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다. 모나리자는 ‘잃어버린 숭고한 대상’ 이 되었다.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던 브레즈네프가 ‘못생겼지만 똑똑해 보이는 여자’ 라고 했던 그 그림이 말이다. 사람들은 이 텅 빈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의 한 신문이 보도한 대로 루브르가 재개관했을 때 “군중들은 다른 그림은 보지 않았다. 그들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성스러운 <모나리자>가 미소 짓고 있던 먼지투성이 공간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열광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조콘다>가 거기 있는 것보다 사라진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라캉의 주장에 따른다면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에 몰려든 군중들은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을 입증해 주었다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이란 물物 Das Ding 이라는 텅 빈 장소, 다시 말해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는 장소 사이의 틈새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텅 빈 공간을 보러 몰려든 군중들에 대해 한 신문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미술작품 자체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미술작품이 차지하고 있는 장소 때문에 미술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장소는, 적어도 『르 피가로』에 따르면, “무시무시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거대한 공백” 이었다. p133~5」

 

 

物 Das Ding 이란 일종의 ‘부재하는 원인’ 이다. 이글대는 우리의 욕망은 사악한 눈과 같다. 이 사악한 눈, 욕망을 사로잡은 물物 Das Ding 은 그러나 덫이다. 클레의 강박적인 그림이자 파라시오스의 베일이다. 이 대상은 결코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욕망은 원초적으로 충족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의 맛을 찾아다니는 그 어떤 미식가도 ‘절대 맛’을 찾을 수 없고, ‘절대 음’을 위해 피를 토하는 창극인도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어떤 영웅도 금지된 대상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은 신이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애초에 부재하기 때문에, 불가능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물物 Das Ding이 텅 빈 장소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실체적 대상도 텅 빈 장소 혹은 욕망의 베일을 대신할 수 없다. 최고의 덫은 텅 빈 물物 Das Ding이다. 한 번도 모나리자를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먼지투성이의 텅 빈 장소에 열광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의 욕망이 어떤 실체적 대상에 절망할 위험 없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사회가 보지 못하도록 금지한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찾는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야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특징이 아닌가? 그러므로 2여년 뒤 모나리자가 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기이한 반응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진짜 <모나리자>는 이미 수년 전에 도난당해서 없고, 이번에 도난당한 <모나리자>는 모조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모나리자>가 다시 루브르에 돌아 왔을 때 그것은 진짜 <모나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회자되었다. 이러한 추측들을 쓸데없는 어림짐작으로 간주하는 대신 장소와 그것을 채우고 있는 요소, 즉 욕망의 텅 빈 공간과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 주장하는 모든 대상들 사이의 필연적인 틈새가 초래한 구조적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무언가가 항상 우리에게 대상과 장소 사이의 그러한 틈새를 환기시켜 줄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그 장소가 결코 존재한 적 없는 대상의 장소라면 모든 경험적 대상은 그 장소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p171」

 

사람들이 진짜 모나리자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장소에 사람들이 열렬히 투여했던 그 욕망을 결코 진짜 모나리자가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진짜는 진짜 대상이 아니라 진짜에 대한 갈망 혹은 욕망 또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것은 실제로 결코 성취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완성된 것이라는 이상은 미완성 된 대상들을 통해서만 희구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결코 눈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미완성이다. 즉 어떤 예술도 눈이 추구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없다. p238」

 

사우론의 눈, 사악한 욕망의 눈은 결코 충족을 모른다. 그러므로 욕망은 끊임없이 완성을 미룬다. 히스테리증자와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어요.’ 라고 말한다. 베일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텅 빈 장소에서 욕망이 보는 것은 욕망 그 자체뿐이라는 것을, 욕망이 만든 환상이라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악한 눈은 역설적이게도 보지 않으려 한다. 욕망이 눈멀어 있기 때문이다. 베일 뒤의 無 그 자체를 똑 바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를 구성하던 환상의 전체 틀이 무너진다. 좌표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환상을 횡단하기’ 이다. 욕망은 환상의 횡단을 거부하지만, 근본적인 틀을 뒤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상을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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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0-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최고입니다. 그렇잖아요. 이 책 바구니에 담고 관심을 가지는 중인데 이렇게 만나네요.....요즘 반값 할인을 하거든요....

말리 2014-10-2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값하길래 얼른 샀습니다 ㅎ. 지젝보다 친절하고 훨씬 쉬워요. 이 책 내용과 어디선가 제가 읽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마구 섞어 써서 책읽으시면 다르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