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매만큼 무서운 것도 또 없는 것 같다. 다른 병들은 비록 육신이 고달퍼도 자신의 영혼만은 그대로다. 내가 누구인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과의 기억,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 등은 고스란히 남아 오히려 병으로 인한 통증과 절망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치매는 그 모든 것을 잃는다. 육신은 멀쩡해도 그 멀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영혼은 없는 것이다. 거울을 봐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날 아끼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도, 지금 나를 보는 그들의 아픔도 알 수 없다. 육신이 아픈 자들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면서 회자정리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치매는 삶을 정리하기는 커녕 죽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죽는다. 치매 걸린 이에게 허락된 것은 느닷없는 종결 뿐이다. 적어도 그의 입장에선 그렇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떻게 치매가 가장 무섭고 끔찍한 병이 아닐 수 있을까?



 당신에게 조금은 뜬금 없을 지도 모를 치매의 이야기를 한 것은 최근 이와 관련한 책을 하나 읽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다. 바로 '오베라는 남자'로 우리에게도 제법 유명해진 프레드릭 배크만이 지은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책이다. 노인 전문 작가답게(지금까지 그의 소설이 네 권 나왔는데 주인공이 모두 노인이다. 그러니 이렇게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도 할아버지인데, 이 할아버지가 그만 치매 환자인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니다. 차츰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소설 제목은 사실 주인공 할아버지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 전에 할아버지는 귀여운 손자에게 인생에 관한 소중한 교훈을 들려주려 한다. 그것을 할아버지가 된 자로서의 의무요, 손자를 향한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 여긴다. 자신의 삶과 손자를 기억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절박함까지 여기엔 가미되어 있기에 예쁜 삽화도 많고 문장은 담백하며 내용은 우리에게도 아주 이로운 교훈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대화들이 애처롭게 다가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삶은 유한하고 인간은 시간 앞에서 속절없이 노쇠해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겨우 160페이지의 적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읽는 시간은 한 3배 정도 더 걸리는 듯한 느낌인데, 그것은 이야기의 어떤 한 순간, 문득 느껴버린 삶의 둔중한 울림에 다소 마음이 먹먹하여 한동안 서성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엔 그런 말들이 있다. 일단 멈춤 표지판을 본 자동차처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말들이...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전보다 작아졌구나' (p. 43)

 '그렇지, 노아노아야, 그렇지. 위대한 사상은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없는 법이란다.' (p. 63)

 '네 발이 땅에 닿을 때쯤 이 할애비는 우주에 있을 게다, 사랑하는 노아노아야.'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p. 73 ~ 74)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p. 85)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p. 103 ~104) 등등...


 어조가 격렬하지 않아서, 그 담담한 어조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기에 더 슬프게 다가오는 말들. 그리고 슬픔의 끝에서 나의 삶은, 나와 사람들은 어떤가를 되새겨 보게 하는 말들. 그 말들로 인해 나는 목초지에 방목된 말처럼 고개를 늘어뜨리고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는 말들의 물결 속에서.


 나와 아주 가까운 분이 지금 치매에 걸려 있다. 벌써 한 4, 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그 분이 많이 생각났다. 치매는 당하는 사람보다 지켜보는 사람을 더 많이 힘들게 만드는 병이다. 그토록 눈부셨던 영혼이 하루가 다르게 그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격렬한 슬픔이, 때로는 한없는 무력감이, 때로는 가없는 자책이 또 때로는 그렇게 속절없이 빛을 잃어만 가는 것에 대한 원망이 동반되는 과정이다. 소설을 읽으며 많은 날들이 생각났다. 그 날 중에 밝게 채색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소설 속 할아버지가 부러웠다. 이 할아버지처럼 완전히 모든 것을 잃기 전에 당신의 영혼과 인생에 대해서 내게 보다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또 자책했다. 그렇게 되시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에게 말을 걸어 더 많이 알았어야 했는데 하고.


 어쩌면 나는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오래 읽은 것은 말 때문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실은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던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계속 곱씹어져 읽는 걸음을 주저 앉게 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소설의 제목이 정녕 진실이라 여긴다. 우리네 삶은 정말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을 잊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지금 커다란 후회가 되는 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 그렇게 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랑에 걸맞는 관심을 표현하고 대화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너무 뒤늦은 후회는 그 시간만큼 깊고도 짙은 아픔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특히 스릴러 소설을 소개할  때, 흔히 '압도적인 서사'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도 이곳 저곳에서 많이 보여 이제는 홈쇼핑 방송의 '매진 임박'만큼이나 신뢰도가 바닥인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이 소설에 대해서만은 그 말을 쓸 수밖에 없다. 페데리코 아사트의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정말 '압도적인 서사'이다. 여기서 '압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압도인가? 그것은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힘이다. 그 힘이 너무나 강력하여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저 얼른 이야기의 마지막을 보고 싶을 뿐이다. 거침없이 넘어가는 페이지 때문에 572쪽에 이르는 분량조차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소설. 다른 거 하나도 필요 없이 그냥 이야기만으로 읽을 가치가 구현되는 소설. 그것이 바로 '다음 사람을 죽여라'다.



 한 남자가 자기 집 거실에서 머리에 브라우닝 권총을 겨누고 자살하려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은 지금 여행 중이다. 돌아와 거실 바닥에서 죽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는 사이 누군가 시끄럽게 현관 문을 두드린다. 타이밍 안 좋게 찾아온 외판원이겠거니 여기는데, 이런 '테드'라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꼭 만나야 한다는 게 아닌가? 순간, 기묘한 위화감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곧 죽을 거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문득 테이블 위에 쪽지가 보인다. 분명 자신의 글씨이지만, 쓴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쪽지의 글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

그게 네 유일한 탈출구야.(p. 12)


 마치 이 상황을 정확히 예언한 것처럼 말하는 쪽지 때문에 그는 낯선 방문객에게 문을 열어주고 집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의 이름은 저스틴 린치. 변호사다. 그는 테드가 자살할 작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 자살은 가족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니 이왕이면 남에게 살해당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자신의 조직에 들어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가족의 아픔을 헤아리고 있던 테드는 귀가 솔깃한다. 그래서 조직이 원하는 대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블레인이란 작자를 죽인 뒤, 자기처럼 자살하기 위해 조직에 먼저 들어 와 있던 웬델이란 남자도 죽이기로 한다. 필수 절차다. 그렇게 두 번의 살인을 해야 만 조직이 자신을 자기가 웬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죽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왜 소설의 제목이 '다음 사람을 죽여라'인지 우리는 납득한다. 결국 테드는 두 건의 살인을 무사히 저지른다. 그런데 린치는 웬델에게 아무 가족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래서 테드도 죽일 것을 수락한 것인데, 죽이고 나서야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사랑스런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이. 게다가 맙소사! 이름마저 똑같은 가족들이. 실제? 아니면 악몽?


 린치가 말한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그에게 뭔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고 느낀 테드는 자신의 유언장을 맡긴 로비차우드 변호사를 찾아간다. 신뢰에 금이 간 린치의 신상을 털기 위해서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았다. 집이 파티 중이었던 것이다. 누구는 자살을 시도하고 살인까지 하고 온 참인데 누구는 부부 동반으로 파티의 수다를 즐기고 있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자기도 잘 아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세상 일이 공평하지 않은 거야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니 무심히 넘긴 테드는 로비차우드에게 저스틴 린치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로비차우드의 답변을 기다리다 우연히 블레인 사건의 진실이 린치만 아는 비밀스러운 게 아니라 만인에게 공개된 것임을 알게 된다. 블레인 케이스 역시 린치에게 속았던 것이다. 바로 그  때, 그는 유리창으로 정원에 주머니쥐가 있는 것을 본다. 어제 꾼 꿈에서 잘려나간 아내의 다리를 뜯어먹고 있던 그 주머니쥐다. 바로 그 주머니쥐가 가까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 공황상태에 빠져버린 테드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 경고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정원으로 뛰쳐나가보니 쥐는 온 데 간 데 없다. 달아난 게 아니라 원래 없었던 것이다. 과연 그 쥐는 정말 환상이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린치를 찾아간 테드는 그에게서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가 죽였던 웬델이 실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을. 린치가 사진까지 보여주는 통에 믿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배신으로 더욱 둔중한 타격을 당해버린 테드는 린치의 사무실에서 나가다가 또 다시 주머니쥐를 보게 되는데...


 여기까지 소개하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제목인 '다음 사람을 죽여라'는 사실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이 전형적인 스릴러가 아니라 뭔가 좀 다른, 독특한 스릴러라는 것을. 그렇다. 사실 이 소설은 끊임없이 독자의 예측을 뒤집는다. 제목과 첫 부분을 읽고 얼른 '보물섬'으로 유명한 로버트 스티븐슨의 '자살클럽'과 유사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리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왜냐하면 파트 2가 시작되자마자 파트 1에 있었던 일들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블레인이 죽는 것은 똑같지만 웬델은 살기 때문이다. 거기다 테드와 대화까지 나누며 놀라운 사실까지 알려준다. 아내와 바람을 피운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린치였다고! 그것도 린치와 똑같이 사진까지 내보이면서. 그런데 그 사진엔 린치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다. 린치의 사진엔 상대 남자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었는데, 웬델의 사진엔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바로 린치의 얼굴이었다.


 과정의 반복. 하지만 완전히 다른 결말.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을테니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인가? 페데리코 아사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남미 작가. 남미하면 역시 가브리엘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 그렇다면 이 소설도? 아니, 그렇지는 않다. 이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다. 다음에 우리가 보는 것은 앞에서 우리가 본 모든 것이 실은 테드가 정신과 의사인 로라 앞에서 진술하는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는 벌써 몇 달째, 로라 앞에 계속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신이 자살하려고 하는데, 린치가 찾아와서 '다음 사람을 죽여라' 게임을 하고 그대로 블레인과 웬델을 죽이는 이야기를. 그런데 지금 와서 웬델의 결말이 달라진 것이다. 로라는 그것을 두고 테드가 이제 다른 주기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렇게 상담이 반복될수록, 주기가 달라지고 그만큼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그러자 테드의 상상 속에서 웬델이 경고한다. '로라는 네 머릿속에 꽁꽁 숨겨둔 뭔가를 알아내려는 거야. 결코 남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말이야.'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게임인가? 지금까지 테드가 말했던 것이 그저 테드의 공상이 아니라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얼른 테드가 어떤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고 로라는 상담을 교묘하게 이용해 테드가 숨겨둔 진실을 찾아내는 이야기로 파악한다. 그러나 그 파악 역시도 뒤에가서 또 배반 당한다. 간간히 반복되었던 체스와 얽힌 테드의 어린 시절 기억. 바로 그것이 실은 아주 무서운 진실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는 것이다. 그것은 테드가 계속 꾸는 빨간 차의 뒷 트렁크로 나타난다. 꿈 속에서 테드는 그 트렁크의 문을 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과연 트렁크 안에 무엇이 있기에, 그것이 그의 어린 시절 기억과 어떻게 연결되기에 그런 것일까? 마지막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초반에 우리가 생각했던 이야기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이 소설을 두고 '독자의 모든 예상을 가차없이 배신하는 소설'이라 말했다. 여기엔 조금의 거짓도 없다. 당신이 무엇을 예상했듯 늘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4'를 읽고 관심이 한껏 높아졌던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

 언제고 한 번은 꼭 읽고 싶었던 데뷔작, '루팡의 소식'이 표지 갈이를 하여 새로 나왔다. 예전 표지는 주요 용의자인 세 사람을 그린 일러스트였는데, 이번 표지는 자정이 얼마남지 않은 벽시계를 전면에 부각했다. 이야기가 사건의 공소 시효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지라 그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여하튼, 히데오의 데뷔작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이 뭐냐?' 라는 것이었다. 대관절 어떤 상이기에 이만한 소설이 고작 가작밖에 못 받는단 말인가 하고 내가 요코야마 히데오도 아닌데 괜스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작가에게 빙의라도 된 듯, 얼른 그 해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을 받은 작품까지 검색했다. 이만한 작품이 가작이니, 대상은 얼마나 대단할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 작가 돈나 레온의 데뷔작, '라 트라비아타 살인 사건'이 대상작이었다.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은 일본과 해외 작품을 가리지 않고 수상한다. 유감스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거기다 품절마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 해의 수상이 정녕 공정한 것이었나 하는 것은 후일을 기약해야겠다. 어쨌든 루팡의 소식이 가작을 받은 것은 좀 너무해 보인다.(그런데 책 날개에 보니, 지금 내가 읽은 것은 작가가 15년 만에 전면 개고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원래의 것은 이보다 완성도가 훨 떨어지는 것이었던 걸까? 으음, 진실은 저 너머로...)



 이야기가 시작되면 서장을 비롯하여 세쿠하라 서의 경찰들이 모여 망년회를 하고 있다. 때는 1990년, 12월 8일 밤.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느긋하게 송년회를 즐기고 있던 서장 고칸에게 갑자기 긴급한 연락이 떨어진다.


 십오 년 전 여교사 자살 사안 관련

 타살 의혹 농후 유력 정보

 신속 복귀 요망.(p. 11)


 '억' 하는 소리를 낼 사이도 없이 얼른 경찰서로 돌아와 부랴부랴 수사반을 꾸리면서 내막을 확인해 보니, 15년 전에 여교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당시 그 학교에 재학 중이던 세 명의 제자가 학교에 있던 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루팡 작전'이라는 것을 한다면서 심야에 학교에 숨어들어와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고칸이 더 놀라웠던 것은 첩보의 발원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루트로 들어온 첩보라면 경찰이 이토록 신속하게 수사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나 빨리 수사반이 꾸려진 것은 그 제보가 본청, 그것도 엄청 고위직에게서 직접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너무나 이례적인 것이라 고칸은 사건도 사건이지만 제보의 당사자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간 얼른 수사를 해야했다. 만일 그 여교사가 자살이 아니라 진짜 살인이라면 공소 시효가 겨우 하루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급히 '루팡 작전'을 했던 세 명 중의 한 명, 기타 요시오가 경찰서로 체포되어 오고 그의 자백을 통해 기타 요시오 자신도 15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기억 속에 단단히 봉인하고 있었던 사건이 일어난 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예전 '루팡의 소식' 표지.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이 '루팡 작전'을 펼친 기타 패거리로 보는 방향에서 맨 오른쪽이 바로 기타, 그리고 중간이 조지 마지막이 다치바나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썬글래스를 쓰고 있는 남자가 바로 '루팡 카페'의 사장 우쓰미다.


 '루팡 작전'. 그것은 학교에 대한 반항심에서 비롯된 장난이랄 수 있었다. 시험 치기 전 날 밤에 학교에 몰래 잠입해 교장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는 시험지를 몰래 빼내오는 것. 그것이 바로 '루팡 작전'이었다. 공부에 별로 뜻이 없는 것 뿐인데 학교로부터 '불량'이라는 낙인을 받은 것에 대한 분풀이였다. 그런데 왜 작전에 루팡이라는 이름을? 절도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들이 작전을 모의했던 장소가 그들의 아지트라고 해도 무방한 '루팡 카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장이라는 사람이 수상하다. 일단 칠 년 전 일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억 엔 강탈 사건의 범인의 몽타주와 너무나 흡사한 용모인데다 범행 수법과 사장의 취미가 비슷하고 범인이 습격할 때 '스가모'란 지명을 입에 올렸는데, 사장이 카페를 연 곳 또한 '스가모'인 것이다. 이런 면들 때문에 사장은 기타패거리에게 '대도 삼 억'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데 실제 이 사장을 삼억 엔 강탈 사건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하는 경찰이 있었다. 그가 바로 현재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강력범 조사 4계장 '미조로기 요시'다.


 공교롭게도 루팡 작전이 거행되고 여교사가 죽었던 날은 삼억 엔 강탈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미조로기 요시는 그 날,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경찰서로 체포까지 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해 그가 경찰서를 유유히 걸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그런 아픔까지 있어 새로운 증거의 발견으로 다시 그 옛날의 사건 수사에 임하는 미조로기 요시의 각오는 남다르다. 절도 모의 장소가 '카페 루팡'인 지라 미조로기 요시는 사장 우쓰미를 중요 참고인으로 소환한다. 이제는 스가모를 떠나 다른 먼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우쓰미가 소환에 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예상을 뒤엎고 선뜻 응한다. 경찰서까지 몸소 찾아온 우쓰미를 보고 미조로기 요시는 그 날처럼 다시 한 번 경찰의 무능을 비웃으려고 찾아온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게 '루팡의 소식'은 15년 전 루팡 작전을 감행했던 기타와 조지의 고백을 커다란 뼈대로 하여 세부를 붙여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한 마디로 꽤나 재미있다. 진행될 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과 뒤집어지는 진실들이 속출해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가서 진범이 밝혀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그것이 공소시효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긴박감까지 더해져 더욱 카타르시스를 높인다.(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환상의 여인'은 무죄라 주장하는 주인공이 사형당할 시간을 얼마 앞두지 않고 진행된다. 아예 챕터의 제목이 '사형 집행 몇 시간 전'으로 되어 있어 긴박감을 높인다.)


 그러면서도 휴머니즘까지 놓치지 않고 가미하고 있어 재미도 재미지만 가슴에 뭔가 촉촉한 여운까지 남긴다. 기타와 다치바나가 누구의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마냥 방치되어 있는 소마의 어린 여동생을 위해 놀아주고 같이 라면도 먹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기타는 원래 부모의 이혼으로 만나지 못하는 여동생에 대해 언제나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렇게 소마의 여동생을 위해 뭔가를 해 줌으로써 소마의 여동생 뿐만 아니라 자신도 치유 받는다. 구원은 결국 타인을 향한 이타적인 사랑을 통해 찾아온다는 것일텐데 이것은 죽은 여교사가 갖고 있었던 진실과 당시 어른들의 부정과 범죄의 동기와 대비되어 선명하게 부각된다.


 원래 모리스 르블랑의 '루팡'은 비록 범죄를 저지르긴 하나 동기엔 타인을 위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루팡이 독자들에게 정말 전하고 싶었던 '소식'인 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커피점 탈레망의 사건 수첩'의 작가 오카가지 다쿠마의 새로운 작품, '도연사 쌍둥이 탐정일지'.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커피점 탈레망의 사건 수첩'을 읽었기 때문도, 작가 때문도, 미스터리 소설이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도연사'라는 절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죠. 예전부터 일본 절의 생활이 궁금했습니다. 일본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만화도 그렇습니다. 보다 보면 꼭 한 번은 절이 나옵니다.

 선남선녀가 밀회를 나누거나 아니면 그와 정반대인 공포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능력을 가진 이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가 되기도 하지요. 일본에서 나오는 미디어를 접하면 접할수록 절만큼 익숙해지는 장소도 또 없습니다. 분명 밤마다 도시를 묘지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회만큼, 사람들의 생활 공간 깊숙이 들어와 있기에 그럴 겁니다. 자주 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일본 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말이죠. 일본 절은 우리나라 절과는 또 다르죠. 일단 일본에서 만들어진 대처승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아, 대대로 절은 종단이 아니라 가문이 소유합니다. 거기다 자식에게 세습도 가능하죠.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의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의 예전 영화 중에 '팬시댄스'라는 게 있는데, 거기 주인공이 주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친구들이 여간 그를 부러워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은 힘든 취업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는 아버지의 절만 물려받으면 되기 때문이죠. 실제 일본에서 절을 물려받게 되는 남자는 혼인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으니까요. 뭐, 그런 차이들이 있어서 실제 절에서 사는 삶이 나오는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에도 그런 남자가 나오더군요. 구보야마 잇카이라고. 이제 막 서른이 된 남자로 아직 미혼입니다. 현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절을 잘 맡을 수 있도록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한창 스님의 일을 수행 중입니다. 그에겐 란과 렌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진짜 피붙이는 아닙니다. 란과 렌이 갓난 아기 때 절 앞에 버려져 있는 것을 거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바로 잇카이였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 란과 렌에게 더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셋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역들입니다.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다들 잇카이가 장례식이나 13주기 혹은 '미즈코 공양' 같은 스님의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사건들이 미스터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게 바로 렌과 란이죠. 이제 중학생인 남녀 쌍둥이입니다. 이 소설의 탐정들인 것이죠. 네, 여기엔 두 명의 탐정이 등장합니다. 쌍둥이이지만,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죠. 남자인 렌은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는 생각으로 사람에겐 악의가 가득하다고 여기는 반면, 란은 세상에 있는 모두는 선하다는 '불천인신천인'이란 말을 신조로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이처럼 사람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그들은 미스터리도 다르게 풀어 갑니다. 렌은 악의에 출발점을 두고, 란은 선의에 시작점을 두죠. 재밌는 것은 둘 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렌이 왓슨의 역할을 하게 되고, 또 어떤 때는 란이 그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악의로 봤던 사건인데 실은 선의로 봐야 할 사건이었고 또 선의로 해석했던 사건인데 실은 악의로 봤어야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죠. 덕분에 잇카이의 걸음만 분주해졌습니다. 렌과 란의 추리를 믿고 그대로 가족들에게 전했다가(렌과 란은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추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늘 잇카이의 몫입니다.) 나중에 또 렌과 란이 그것을 뒤집는 추리를 내놓으면 잘못된 추리를 알려준 책임이 있으니 얼른 달려가서 제대로 된 것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이 소설의 주된 얼개입니다.



 책의 표지입니다. '도연사' 툇마루에 앉은 란과 렌의 모습을 담고 있네요. 그림에서 란은 앙꼬가 가득 든 과자를 들고 있는데, 사실 란은 도라에몽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란은 오직 하나 말고는 세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도라에몽처럼 앙꼬가 가득 든 과자거든요. 낯선 사람들이 오면 방에 콕 박혀 나오지도 않을만큼 사람들을 피하는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그리고 가녀린 몸으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 먹어대지요. 어쩌다 그렇게 단맛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는 지는 나오지 않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나중에 밝혀지겠죠. 한편, 렌은 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데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방과 후 시간 대부분을 그는 게임으로 보내니까요. 그렇게 그들은 자신만의 뭔가에 하나씩 빠져 있습니다. 군식구로써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면서도 보통 아이들처럼 주지 할아버지나 잇카이에게 응석을 부릴 수 없는 탓에 혼자 견뎌오느라 그렇게 된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의탁할 수 있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요. 사람에 대한 시각 역시 그렇게 형성된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저는 아직 이 작가의 대표작인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스타일이 작가의 주류적 스타일인지는 모릅니다. 이 소설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작가는 '란'에 가까울 듯 합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되거든요. 첫 에피소드엔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낸 조의금 봉투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아버지를 여윈 딸이 아침마다 가게 앞의 쓰레기를 줍는 게 미스터리가 되며 세 번째 에피소드엔 일본에는 '미즈코 공양'이라고 해서 유산이나 낙태 등의 사정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린 태아를 기리며 공양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 미즈코 공양을 의뢰해 온 여인이 실은 유산이 아니라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하루는 잇카이와 란과 렌 모두 긴 머리에 낭창낭창한 몸매를 가진 여인의 꿈을 꾸는데 혹시 란과 렌의 친모가 아닐까 다들 생각하는 참에 마침 그와 비슷한 여인이 사고로 죽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묘사의 속도는 느릿하고 또 차분합니다. 그리고 어느 사건에 있어서도 타인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누군가의 독니 보다는 지키고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하여 읽다보면 저 표지처럼 문득 마음 속에 따스한 봄 햇살이 비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니, 아무래도 사람을 근본적으로 선하게 보는 이가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 일지'는 그런 소설입니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 그립다면 그것을 이 소설에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가운 비가 온다. 그것도 간만의 폭우다. 

그 소리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새벽에 이런 시간을 갖게 되면 애수에 젖어들기 쉽다. 기억은 과거로 흐르고 안타깝게 헤어진 이들 혹은 놓치거나 잃어버린 것들이 슬쩍 기억의 툇마루에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도진기의 '모래바람'을 읽었다. 도진기 작가에겐 두 개의 대표 시리즈가 있는데 하나는 표면상 백수지만 실은 남의 뒤를 캐는 게 전문인 '진구'고 다른 하나는 법정 보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 합의로 마무리 짓는 것을 좋아하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다.


  '모래바람'은 진구의 이야기다.

 그것도 네 번째의 책. 그런데 이런 날이라면 진구도 나처럼 문득 과거의 시간 속을 거니게 될 것이란 걸 알았다. 늘 인간의 감정이라곤 보이지 않았던 진구였기에, 과거라는 거 역시 그에게 별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에게도 보통 사람들처럼 첫 사랑이란 게 있었던 것이다. 아니, 진구는 그런 단어 쓰는 것을 싫어할테니 그냥 첫 여자라고 해야할까? 어찌되었든 그녀의 이름은 유연부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싹싹한 미소녀. 중학생 남자라면 누구나 사귀어봤으면 할 만한 존재.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그 영혼은 실은 진구만큼이나 삭막하다. 둘은 아버지들 때문에 알게 되었다. 진구의 아버지와 연부의 아버지가 역사학 교수로 연구 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들의 사이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연부의 아버지가 진구의 아버지를 라이벌로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부의 아버지는 진구의 아버지를 한 번 이겨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은 그것을 이뤄주지 못했다. 하여 연부의 아버지는 연부를 통해 그 소망을 대리 충족하려 한다. 연부에게 무조건 진구를 이기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진구의 아버지가 연부의 아버지를 라이벌로 인식하지 않았듯, 진구 역시 그런 경쟁에서 초연했다. 연부는 괜한 희생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연부는 진구를 싫어하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진구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연부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연부와 진구는 좋은 관계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곧 깨져버리는 순간이 닥쳐온다.

 바로 진구와 연부가 아버지들과 함께 동행한 '누란'을 찾아나선 여행에서였다. 그 여정에서 뜻하지 않은 변고가 일어나 그만 진구의 아버지가 죽고 연부의 아버지는 실종되어 버렸다. 진구와 연부는 나란히 커다란 비극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파국은 아니었다. 진짜 붕괴는 같이 여행을 떠났던 한 교수가 쓴 탐사 일지가 책으로 발간 되었을 때 일어났다. 그 책 때문에 연부와 진구는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나게 된 것이다. 진구가 의뢰인을 찾아간 그 곳에서 사장인 의뢰인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연부를 말이다.


진구 일행이 찾아갔던 실크로드 상의 누란의 폐허. 이런 곳에서 소설처럼 거센 모래바람을 만나게 되면 정말 위기에 처할 듯 하다.

그런데 '누란' 하니, 문득 윤후명 소설, '누란의 사랑'이 떠오른다. '돈황의 사랑'에 뒤이어 나왔던...


 '모래바람'은 이처럼 전작에서 한 번도 밝혀지지 않았던 진구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밝힌다.

 그가 어떻게 자라왔고 지금의 성격이 된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 지 하는 것을. 진구란 캐릭터에 흥미를 느꼈다면 한 번은 궁금했을 것들을 바로 이 작품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인물이 중심이 된 시리즈에서 그의 과거가 밝혀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또 없다. 과거란 오늘의 자신을 형성한 정체성의 역사. 그것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인물을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니까 말이다. 뼈대로만 남아있던 존재에 살과 피를 주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입체적인 이해는 캐릭터의 생명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면 필수적 절차이기도 하다. 독자의 뇌리 속에서 캐릭터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연료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진구 시리즈를 접하는 데  있어 '모래바람'은 꼭 거쳐야 할 관문 같은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사실 인간 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

 미스터리 부분은 주로 후반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 때까지 소설이 주로 표현하는 것은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기기 위하여, 다른 하나는 지키기 위하여 모두들 그러한 자신의 욕망에 순수하게 충실한다. 이것이 전작들과 차이가 나는 점이다. 바로 전작 '가족의 탄생'만 해도 상속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작품 전체를 관통했지만, 여기의 미스터리는 욕망의 결과로만 나타나니까 말이다. 욕망, 그것이 소설이 좀 더 비중을 두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며 제목의 '모래바람' 역시 자기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휘말리게 되며, 알면서도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 욕망을 가리킨다. 아마도 진구의 과거, 그렇게 인간적인 면을 보다 많이 드러내려 했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로 보인다.


 여하튼, 이 소설의 미스터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사막에서의 아버지들의 사망과 실종에 관련된 미스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에 벌어진 유연부가 모시는 사장의 피살 사건이다. 전자의 미스터리는 진구의 여친 해나가 입수한, 그리고 진구와 연부에게 결정적인 결별을 안겨 준 탐사기 '누란 왕국을 찾아서'의 내용이 책중의 책 형식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전개되고 후자의 미스터리는 연부와 결혼하려는 사장 아들과 그것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사장의 갈등을 기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데 여기에 유연부가 수상한 분위기를 드리운다.


 비중이 다소 작아지긴 했어도 미스터리가 그냥 소비되기 위하여 들어간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놀랄만한 반전과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의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그랬던 것처럼 미스터리에 중점을 두고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이번 작품으로 앞으로 도진기 작가의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악마의 증명'에서 이미 나온 바 있듯이, 사람에 중심을 둘 것이라는 게 보다 확실해졌다.


 다음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