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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커피점 탈레망의 사건 수첩'의 작가 오카가지 다쿠마의 새로운 작품, '도연사 쌍둥이 탐정일지'.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커피점 탈레망의 사건 수첩'을 읽었기 때문도, 작가 때문도, 미스터리 소설이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도연사'라는 절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죠. 예전부터 일본 절의 생활이 궁금했습니다. 일본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만화도 그렇습니다. 보다 보면 꼭 한 번은 절이 나옵니다.
선남선녀가 밀회를 나누거나 아니면 그와 정반대인 공포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이능력을 가진 이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가 되기도 하지요. 일본에서 나오는 미디어를 접하면 접할수록 절만큼 익숙해지는 장소도 또 없습니다. 분명 밤마다 도시를 묘지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교회만큼, 사람들의 생활 공간 깊숙이 들어와 있기에 그럴 겁니다. 자주 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일본 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말이죠. 일본 절은 우리나라 절과는 또 다르죠. 일단 일본에서 만들어진 대처승 전통이 강하게 자리잡아, 대대로 절은 종단이 아니라 가문이 소유합니다. 거기다 자식에게 세습도 가능하죠.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의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의 예전 영화 중에 '팬시댄스'라는 게 있는데, 거기 주인공이 주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친구들이 여간 그를 부러워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은 힘든 취업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는 아버지의 절만 물려받으면 되기 때문이죠. 실제 일본에서 절을 물려받게 되는 남자는 혼인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평생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으니까요. 뭐, 그런 차이들이 있어서 실제 절에서 사는 삶이 나오는 이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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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도 그런 남자가 나오더군요. 구보야마 잇카이라고. 이제 막 서른이 된 남자로 아직 미혼입니다. 현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절을 잘 맡을 수 있도록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한창 스님의 일을 수행 중입니다. 그에겐 란과 렌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진짜 피붙이는 아닙니다. 란과 렌이 갓난 아기 때 절 앞에 버려져 있는 것을 거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바로 잇카이였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 보다 란과 렌에게 더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셋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역들입니다.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다들 잇카이가 장례식이나 13주기 혹은 '미즈코 공양' 같은 스님의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는 사건들이 미스터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게 바로 렌과 란이죠. 이제 중학생인 남녀 쌍둥이입니다. 이 소설의 탐정들인 것이죠. 네, 여기엔 두 명의 탐정이 등장합니다. 쌍둥이이지만,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죠. 남자인 렌은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는 생각으로 사람에겐 악의가 가득하다고 여기는 반면, 란은 세상에 있는 모두는 선하다는 '불천인신천인'이란 말을 신조로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이처럼 사람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그들은 미스터리도 다르게 풀어 갑니다. 렌은 악의에 출발점을 두고, 란은 선의에 시작점을 두죠. 재밌는 것은 둘 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렌이 왓슨의 역할을 하게 되고, 또 어떤 때는 란이 그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악의로 봤던 사건인데 실은 선의로 봐야 할 사건이었고 또 선의로 해석했던 사건인데 실은 악의로 봤어야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죠. 덕분에 잇카이의 걸음만 분주해졌습니다. 렌과 란의 추리를 믿고 그대로 가족들에게 전했다가(렌과 란은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추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늘 잇카이의 몫입니다.) 나중에 또 렌과 란이 그것을 뒤집는 추리를 내놓으면 잘못된 추리를 알려준 책임이 있으니 얼른 달려가서 제대로 된 것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이 소설의 주된 얼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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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입니다. '도연사' 툇마루에 앉은 란과 렌의 모습을 담고 있네요. 그림에서 란은 앙꼬가 가득 든 과자를 들고 있는데, 사실 란은 도라에몽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란은 오직 하나 말고는 세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도라에몽처럼 앙꼬가 가득 든 과자거든요. 낯선 사람들이 오면 방에 콕 박혀 나오지도 않을만큼 사람들을 피하는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그리고 가녀린 몸으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 먹어대지요. 어쩌다 그렇게 단맛에 푹 빠져 버리게 되었는 지는 나오지 않는데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나중에 밝혀지겠죠. 한편, 렌은 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데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방과 후 시간 대부분을 그는 게임으로 보내니까요. 그렇게 그들은 자신만의 뭔가에 하나씩 빠져 있습니다. 군식구로써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면서도 보통 아이들처럼 주지 할아버지나 잇카이에게 응석을 부릴 수 없는 탓에 혼자 견뎌오느라 그렇게 된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의탁할 수 있는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요. 사람에 대한 시각 역시 그렇게 형성된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저는 아직 이 작가의 대표작인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스타일이 작가의 주류적 스타일인지는 모릅니다. 이 소설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작가는 '란'에 가까울 듯 합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되거든요. 첫 에피소드엔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낸 조의금 봉투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아버지를 여윈 딸이 아침마다 가게 앞의 쓰레기를 줍는 게 미스터리가 되며 세 번째 에피소드엔 일본에는 '미즈코 공양'이라고 해서 유산이나 낙태 등의 사정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린 태아를 기리며 공양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 미즈코 공양을 의뢰해 온 여인이 실은 유산이 아니라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하루는 잇카이와 란과 렌 모두 긴 머리에 낭창낭창한 몸매를 가진 여인의 꿈을 꾸는데 혹시 란과 렌의 친모가 아닐까 다들 생각하는 참에 마침 그와 비슷한 여인이 사고로 죽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 묘사의 속도는 느릿하고 또 차분합니다. 그리고 어느 사건에 있어서도 타인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누군가의 독니 보다는 지키고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하여 읽다보면 저 표지처럼 문득 마음 속에 따스한 봄 햇살이 비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니, 아무래도 사람을 근본적으로 선하게 보는 이가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 일지'는 그런 소설입니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이 그립다면 그것을 이 소설에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