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출 하나.
어린 시절, 아버님은 서너달에 한번씩 우리들 책상을 검사하셨다. 검사 때마다 아버님이 보시기에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 왕창왕창 버려젔다. 종이로 접은 개구리들, 좋아하는 여자에게서 받은 지 2년 쯤 지난 사탕, 구슬, 종이 비행기....
“이건 안돼요”란 내 외침은 아버님의 무서운 표정에 부딪혀 사그라들었다. 고등학교 때 어찌어찌 구한 안소영(영화배우, 애마부인이 히트작) 사진을 찢긴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아버님의 서랍검사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렀고, 아버님이 당시 버린 것들이 내게도 쓸모없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난 아버님이 서랍검사를 한 숭고한 뜻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고마워할까? 전혀 아니다.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의 내게도 어린 시절의 서랍검사는 아버님이 권위주의적이고 무서운 분이셨다는 걸 증명하는, 별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뿐이다.
엄마가 오늘 단단히 마음을 먹으셨다. 잡동사니들로 가득찬 할머니 방을 치우기로 한 것. 계기는 타이레놀이었다. 허리가 아프시다는 할머니한테 타이레놀 세갑을 사다드렸는데, 할머니가 방 안에서 잃어버리신 것. 미로 같은 그 방에서 뭔가를 찾는 건 사실 불가능했는데, 추석도 다가오고 하니 남들 보기에 너무하지 않을 정도는 치워야 한다는 어머님 말씀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 폭력적이었다는 거였다. 할버니가 “버리면 안된다”고 만류하는 것들을 엄마는 “이걸 어디다 쓰게요!”라며 내동댕이쳤다. 그 시절 분들이 다 그렇듯이 할머니 역시 버려야 할 것들을 잔뜩 갖고 있긴 했다. 택배로 온 책 박스를 비롯해서 박스만 보면 죄다 주워다가 방에 들여놓으셨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남은 막대기를 씻어서 보관하고, 양파 껍질을 비료로 준다고 모아놓는 건 치우는 사람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긴 해도 할머니를 윽박질러 가며 그것들을 버리는 건 지나쳤다. “쓸데없다”는 건 우리의 기준일 뿐, 그 물건들 하나하나는 할머니에게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지저분하다고 해도 그 방은 할머니의 세계였고, 그 세계만큼은 누구한테도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게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책상검사가 끝날 때마다 의기소침해져 쓰레기통을 뒤지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할머니는 엄마가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서 남은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할머니의 참담한 마음을 내가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위로한답시고 다가간 날 붙잡고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느그 엄마가 나가라니 어쩔 것이냐. 어서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도 안하고.”
할머니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박스에 차곡차곡 물건들을 담으셨다.
가출 둘.
할머니를 대충 달랜 후 엄마와 늦은 아침을 먹으며 말을 꺼냈다.
“사람은요 열 번 잘해줘도 한번 서운하게 한 걸 더 잘 기억해요. 어느 여자가 남편이 고시공부하는 거 뒷바라지를 해가며 판사를 만들어 줬는데요, 아내가 돈 벌랴 집안일 하랴 고생한 건 생각도 안하고 서운하게 몇마디 한 것만 기억하고 이를 가는 거예요. 결국 남자가 바람 피우다 이혼을 했다죠 아마. 엄마가 할머니 모시는 게 힘들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할머니는 엄마 때문에 서러운 것만 기억한답니다. 오늘도 ‘귀신이 되어도 이 집에 다신 안온다’고 하시잖아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엄마가 옳더라도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을 안한다고요. 왜 제 말을 안들으세요. 할머니를 댁에 계시게 하고, 밥 해줄 사람을 붙여주자고 제가 얼마나 여러번 말했어요. 한달에 60만원이면 되고, 제가 30씩 내면 되잖아요. 그럼 엄마도 할머니 끼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고, 할머니도 텅 빈 우리집에서 심심하게 있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안양 할머니라고, 할머니와 말이 잘 통하는 적합한 후보가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 60만원이 아까운 눈치였다.
“그게 60만원만 드냐. 생활비도 드려야지.”
“엄마, 엄마는 행복을 돈으로 사야 해요. 생활비 그게 얼마나 한다고 그러세요. 엄마가 할머니 때문에 마음 쓰는 거, 그거 한달에 100만원어치는 될걸요. 마음 놓고 여행도 못가잖아요 지금. 그리고 우리, 몇 년 전보단 사정이 훨씬 좋지 않나요? 99년, 2000을 생각해 보세요. 그땐 아버님 병원비가 한달에 천만원씩 들었고, 누나랑 여동생 파출부 값, 여동생 산후조리비, 삼촌에게 주는 생활비에다 할머니 용돈까지, 이런 거 돈 대느라 엄마 허리가 휘었잖아요. 그때 우리 네 형제는 돈 보탠 거 하나 없구, 엄마 혼자 빚 내가면서 그 돈 댔어요. 우린 그냥 가끔씩 문병 가서 한 십분 들여다보고, 비싼 밥만 얻어먹고 자리를 떴죠. 그런 망나니같은 자식들은 이제 그만 챙기고, 엄마와 할머니를 위해 60만원 쓰자구요, 네?”
말해 봤자 소용이 없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늘 내 앞에선 알았다고 했지만, 그뿐이었다.
“엄마, 삶은 재미있게 살아도 짧다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엄마 여행도 가고 친구도 만나셔야죠. 엄마가 다음달에 미자(가명. 여동생) 터키 간다고 일주일 동안 애 봐주기로 하셨잖아요. 엄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신다고 그러세요. 엄마에게 일주일은 20대, 30대의 일주일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거라고요. 한비야 씨가 암인 줄 알고 그간 못했던 걸 하려고 리스트를 만들었데요. 다행히 암이 아닌 걸로 나왔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데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지금은 왜 못하냐고. 그래서 그 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엄마도 제발 좀 그렇게 사세요. 결혼하고 나서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우리 엄마는 역시 우리 엄마였다. 난데없이 누나 이야기를 꺼낸다.
“어제 미숙이(가명.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병원비가 8만얼마가 나왔데. 그래서 아줌마 시켜서 내가 10만원 보냈어.”
난 거기서 머리가 돌아 버렸다(누나가 왜 병원에 갔는지, 엄마가 왜 병원비를 주면 안되는지는 제가 쓴 다른 글을 참조하세요). 내가 그렇게 알아듣게 말씀드리고 화도 내고 그랬는데, 엄마는 결국 저렇게 밖에 못하는구나. 엄마는 평생 이따위로밖에 못 살 운명이구나.
“엄마, 엄마는 그 망나니같은 자식새끼들한테 쓰는 돈은 안아깝고, 할머니랑 엄마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까워 죽겠나요? 할머니가 우리한테 퍼준 돈이 얼만데 그러세요?”
엄마는 실수했다면서 둘러댄다.
“돈을 보낸 게 아니라 주려고 마음만 먹었다는 거야.”
“엄마, 나 엄마랑 같이 있기가 싫어요. 나 지금 집 나갈래요. 이제 나 없으니까 엄마가 살고 싶은대로 사세요. 누나랑 여동생 집 가서 애도 봐주고 파출부 노릇도 하면서 즐겁게 사시라고요.”
난 2박3일치 짐을 쌌고, 여전히 짐을 싸고 있는 할머니한테 가서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가 미리 작별인사를 한다.
“나 오늘부터 우리집 가서 있을 테니, 잘 있거라. 가끔 놀러와.”
할머니는 여전히 울고 계셨다. 할머니 집엔 먹을 것도 하나 없는데, 당장 저녁은 어쩐담?
“할머니, 왜 나가시려고 하세요. 아줌마 구할 때까지 며칠만 여기 계세요.”
“느그 엄마가 나 데리고 있지 니가 모시냐. 엄마가 나가라는데 난들 어쩌겠냐.”
난 울면서 손을 흔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여기는 천안으로 가는 기차 안이고, 기차는 지금 막 평택을 지났다.
엄마
내일 아침 엄마는 갑상선 때문에 S병원 예약을 해놓으셨다. 난 원래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간 뒤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자식을 데리고 가기가 황송한 엄마는 “혼자 가련다”고 고집을 부리셨지만, 난 모교에 일이 있다며 겨우 허락을 받았다(그러기 위해 오늘 강의준비를 다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천안에 와버린 지금, 엄마는 여느 때처럼 혼자 병원에 가야 한다. 어쩌면 엄마는 자식이 모시고 병원에 가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없는 분인지 모른다. 그건 자식을 괴물로 키웠고, 그것도 부족해 티라노사우르스를 만들려고 온갖 애를 다 쓰신 대가일 것이다. 말리는 엄마를 뿌리치고 집을 나온 내 마음이 편한 건 아니고, 이런다고 해서 엄마가 바뀌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출이라도 안한다면 내 안을 온통 차지한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술을 먹는다면 내일, 모레 강의는 어쩌고?). 엄마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당신의 삶 전부를 희생하신 할머니를 비판하며 “난 저렇게는 안 살 거야”고 하셨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엄마는 할머니의 판박이다. 자식에게 너무 잘해주기만 한다고 해서 그 자식이 효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엄마도 잘 알고 있을텐데, 왜 엄마는 그렇게밖에 못사는 걸까.
내가 옷가지를 가지러 집에 갈 화요일 밤, 엄마는 날 어떻게 맞아줄까. 가족이란 존재에 대한 회의가 내 머릿속을 맴돈다. 아으동동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