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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랜 기간 은희경은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는 작가 중 하나였다. 그녀의 최신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도 그래서 샀다. 책날개를 빼곡히 매운 그녀의 전작들 중 내가 읽지 않은 건 하나도 없다. 난 은희경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려나가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의 첫 단편인 ‘의심을 찬양함’을 비롯해서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런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비교적 재미있는 소설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동안 진도가 잘 안나갔고, 왠지 의무감에서 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좀 어렵다보니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허무하다는 거였다.
역시 많은 독자를 거느린 신경숙은 내게 “절대로 사지 말아야 할 작가”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신경숙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기차는 일곱시에 떠나네>에 대한 어느 초등학생의 리뷰, 그리고 <딸기밭>을 둘러싼 말들과 그에 대한 그녀의 대응이 내게 안좋은 인상을 준 탓이리라. 이유야 어찌되었건 신경숙은 오랫동안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작가였다. 새로 낸 책이 잘 팔리든 말든 간에. 그러던 어느 날 파란여우님의 글을 읽었다.
“나는 어느새 깊은 밤, 책을 덮고 공사관 뜰로 나와 벽오동 나무 아래 침묵속에 서 있는 리진에 몰입되어 있다.”
<리진>에 대한 리뷰가 의외였던 이유는, 파란여우님 역시 오랜 기간 신경숙을 멀리했었다고 글 서두에 써놨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이다. 외딴방』이후 나와 결별한 신경숙.”
그 후 <리진>에 대한 생각이 계속 머리에 남았었는데, 최근 은희경의 책을 완독하고 나니 특정 작가는 책나오면 무조건 사고, 어떤 작가는 무조건 외면하는 내 습성이 그리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명투수 선동렬도 선수시절 한게임 7실점을 했던 것처럼 기대하는 작가도 범작을 낼 수 있고, 좋게 안보던 작가도 아름다운 책을 쓸 수 있는 법이니까. 은희경의 책을 읽고 나서 신경숙에게 관심을 갖기로 했다는 이 글의 결론이 과연 ‘리뷰’로 적합한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리뷰로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아름다움이...>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을 하나 써본다. 어떤 여인이 기차를 탔는데 옆자리에 남자가 앉았다. “출장 가세요?”라고 남자가 묻자 여자는 얼굴도 안본 채 대꾸했는데, 남자가 가방에서 책을 꺼냈을 때 여자는 난감했다. ‘자신이 꺼내려던 것과 같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책을 ‘도로 가방에 집어넣’는다. 이건 남자와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의 의지일 게다. 여성들은 십중팔구 이 소설의 주인공같은 행동을 할텐데, 그와 반대로 남자들은 “어? 저랑 같은 책이네요!”라며 수작을 걸 것이다. 남자가 결혼을 했던 애인이 있던간에, 남자는 아주 사소한 단서로도 작업을 거는 존재니까. ‘아줌마’같은 성정을 지녀 가끔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나는 옆의 여자가 나와 같은 책을 읽는다면 어떤 행동을 할까? 가방에서 책을 꺼내긴 하겠지만, 그걸 빌미로 말을 붙이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지금껏 이러고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