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기독교 방송의 PD가 전화를 했다. 일주에 한번씩, 게스트로 출연해 달라고.
“전 방송 체질이 아닌데요.”
PD는 일단 한번 만나서 술한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래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자신있게 얘기했지만, 막상 PD를 본 난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미모가 너무 눈이 부셔서. 피부는 까맸지만 그녀의 온몸에선 광채가 나고 있었다. 방송체질이 아닌 게 드러나 자연스럽게 잘렸지만, 그 시절을 힘들지 않게 보낸 건 순전 PD님의 미모 덕분이었다.
지난 주말, 한겨레에서 정혜윤 PD가 <침대와 책>을 냈다는 기사를 읽자마자 냉큼 달려가서 사버린 건 “책에 대한 로맨틱한 고백”이라는 서평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는 미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의 발로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녀를 부러워한 건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내 옆의 남자들이 한심해 보일 때’ ‘사랑이 끝나버린 걸 아는 순간’ 등등 상황에 맞는 적절한 책읽기 지침을 내려주는 이 책은 웬만한 독서량이 아니라면, 그리고 읽은 책들을 아름답게 꿸 능력이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테니까. 안그래도 장정일의 독서일기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안 읽은 책을 소개해 새로운 지식을 주고, 이미 읽은 책은 그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이 책을 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C컵임을 밝히는 대목이나 “금요일부터 1박2일 동안 퍼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는 대목, 그리고 ‘조삼모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새로운 깨달음을 찬양하는 말’이라고 쓴 걸 보면 저자는 3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통통 튀는, 매력만점 PD로 살고 있는 듯하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책 많이 읽는 걸 빌미로 남을 무시하고, 논리의 칼을 갈아 여기저기 휘두르는 사람이 천지인 세상에서 나한테 책 읽은 티 한번 낸 적 없고,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참 보기 좋았다. 내가 별 다섯짜리 리뷰를 쓰는 건 아는 저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 아니라 좋은 책을 나누고픈 독자의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