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주일 동안 에세이, 서평집 같은 책들을 몇 권 읽었다. 간단한 소회를 남겨본다.
1. 장애인 자식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해봤다. 미시마 유키오의 키 이야기는 소생에게 약간의 충격을 주었고, 오에가 새소리로 장애인 장남과 소통하는 이야기, 폭풍우 치는 날 산장에 간 이야기 등은 감동을 주었다. 자신과 아내가 죽은 뒤의 아들을 걱정하는 노작가의 마음이 짠하다. 무슨 이야긴지 궁금하쥬? 홍홍홍
2. 소생은 오에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만엔원년의 풋볼과 체인지링은 조금 읽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오에의 소설은 오랜 친구이자 처남인 이타미 주조의 자살과, 장애인인 장남에 관한 이야기 등 개인적인 내용이 너무많고 또 너무 심각한 느낌이다. 오에도 자신의 소설이 너무 개인적인 신비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3. 오에의 독서법은 정말 치열 그 자체다. 범인은 따라하기 어렵다. 흉내조차 버겁다. 오에는 소설가라기 보다 구도자 같은 느낌이다. 독서에도 삶에도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다. 소생같은 돼지에게는 경이원지(敬而遠之)다. 오에는 추리소설이나 판타지, 만화같은 나름 재미있는 책들은 전혀 보지 않는 모양이다. 사람은 제 각각이다. 인생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돼지처럼 물렁하게 사는 사람, 꿈 속에 사는 사람, 장난으로 사는 사람, 평범하게 사는 사람, 죽지못해 억지로 사는 사람 등등등 참으로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4. 팔레스타인 출신의 저명한 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친교와 우정, 그에 대한 존경과 헌사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30여년간 교유해온 정신적 동지이자 친구이며 오에는 그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전에 읽은 버나드 루이스의 〈100년의 기록〉에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유명한 저서 〈오리엔탈리즘〉은 역사와 언어학에 무지한 사람의 잘못된 논문이며 사이드학파가 학계와 출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젊은 학자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버나드 루이스는 유대인이다.
1. 영화〈밀양〉이 그런 내용인줄 처음 알았다. 원작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싶지만 만약 있다면 나 같아도 아마 죽어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상상력이랄까 고뇌력이랄까 이런 경우까지 생각해 내다니 대단하다.
2. 정희진은 남들이 자신에 대해 특이하다거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대해 투정섞인 불평을 하지만 소생이 보기엔 특이한 사람이 맞다. 휴대폰도 없고, sns도 하지않고, 면허증 없고, 장례식 동창회 결혼식 가지않는다고 한다.(면허증 없는 사람은 좀 있더라) 특이한 사람 맞다. 쿨하게 인정해야 한다. ㅎㅎ
3. 전에 어디선가 읽으니 정희진은 정찬을 극찬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정찬은 이름은 들어 알고 있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어쩌다가 정찬의〈빌라도의 예수〉를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이참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희진같은 사람이 상찬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4. 정희진의 글은 구질하지가 않다. 단호하게 끊고 자른다. 이건 뭐 적당한 비유가 아니겠지만, 유홍준이 언젠가 박정희의 글씨체를 가리켜 ‘사령관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날이 서있다는 말이다. 썩은 무라도 자르고 베려면 날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자룡 헌칼 쓰듯하다 보면 날이 상하고 날이 상하면 갈아야 한다. 너무 갈면 칼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뭐... 마부작침일 수도 있겠다.
1. 이건 뭐 책의 내용과는 상관도 없는 아조 개인적인 생각인데, 정여울은 여울이라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 알라딘 이웃님 중에도 여울님이라고 계신다. 눈이 번쩍뜨이는 미모는 아니지만 얼굴 생김새도 여울에 어울리는 듯한 느낌으로 호감이 간다. 소생이 생각하는 이상형은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소생 가슴에 품은 여인상은 낭랑한 18세의 나스타샤 킨스키다.
2. 작가의 전작 베스트셀러인 내가 사랑한 유럽 어쩌고 보다는 훨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조금 밋밋하다. 소생의 물렁한 뱃살을 쑤시는 찌리리한 느낌은 없다. 정희진을 읽은 직후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꿈꾸는 강인함이라는 부제가 마음을 끈다. 모름지기 선비라면 부러질지언정 굽지않는 강인함이 있어야겠지만 불초한 소생은 이미 오래전에 생존전략으로 물렁함을 택하고 말았다.
1. 월간지 '인물과 사상'의 명랑독서 코너에 연재한 서평을 모은 책이다. 마태우스님의 책은 처음 읽는다. 이 책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역설과 반전의 유머에 있다. ‘역설과 반전의 유머’라....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책 곳곳에서 마태우스님의 알라딘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읽을 수 있다.
2. 〈집 나간 책〉을 읽고 소생은 너무 부끄러워서 그만 집 나갈뻔 했다. 하지만 나갈려고 해도 어디 갈 곳이 없어 포기했지만 어쨌든 깊은 반성을 했다. 마테우스님이 소개하신 50여권의 책 중에 읽은 것이 단 한권뿐이다. 그것도 바로 얼마전에 읽은 〈정희진처럼 읽기〉. 아! 정녕 고개들 들 수가 없구나!! 삿갓이라도 덮어 써야겠다.
3. 며칠전에 2015년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기생충학 전문가인 3명의 노학자들이 선정되었다. 전언에 의하면(전언의 출처는 알 수 없다.) 금년도 생리의학상 수상자 선정을 놓고 노벨위원회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기생충학자인 마태우스 교수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나이가 배려되었고 아시아계가 2명이나 있어서 마교수는 안타깝게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마교수의 '기생충 열전'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A위원은 이 결정에 항의하여 괴성을 지르면서 회의장을 뛰쳐나갔으며, 회의 다음날 B위원은 온다간다는 말도 없이 집을 나가서 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한다.
추신 : 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도 읽었는데....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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