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하들은 이해 관계로 묶인 약한 연결 고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가 난세를 평정할 때 오슈의 다테 가문, 주고쿠의 모리 가문, 시코쿠의 조소카베 가문, 규슈의 시마즈 가문을 항복시킬 때 "반항해 봤자 손해다. 항복하면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겠다."라는 식으로 이해 관계로 회유했지, 주종 관계나 도덕적인 면모로 그들을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한 "설득을 하려면 이성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 호소하라"는 말을 이미 16세기에 히데요시는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해 관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이해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기에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바로 도요토미 가문의 권력은 무너졌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서 구로다 요시타카(구로다 간베에)라는 절음발이 인물이 와키자카 야스히루에게 칠본창 중의 한 명이라고, 치켜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와키자카는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군 6만명을 약 2천명의 왜군으로 무찌른 장수입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죠.
만약, 상주에서 패한 이일이 문경새제로 후퇴해서 고개를 지키고, 신립이 충청도, 전라도 지역 조선군을 모아서 고니시 유키나가 장수가 이끄는 왜군 제1군 후위를 공격하면서 시간을 끌었다면, 허무하게 한양성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가토 기요마사 장수가 이끄는 왜군 제2군이 고니시 군대를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대로 흘러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무장이라던 이일과 신립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조선 정규군을 소멸시켜 버렸습니다.
1583년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당한 후 시바타 가쓰이에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권력을 다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히데요시는 가쓰이에 군대를 무찌릅니다. 이 전투에서 공을 세운 7명을 칠본창이라고 불렀습니다. 히데요시 측근에서 함께 하는 장수들이 없어서 칠본창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만들어서 구색을 맞추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칠본창에 속하는 인물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후쿠시마 마사노리 : 임진왜란 당시 제5군 대장
가토 기요마사 : 혼슈 히고국 구마모토 25만 석 다이묘, 임진왜란 당시 왜군 제2군 사령관, 정유재란 당시 울산 왜성을 조명 연합군에게 지켜낸 장수
가토 요시아키 : 임진왜란 당시 수군 지휘관, 안골포 해전(이순신) 패배, 칠천량 해전(원균) 승리
히라노 나가야스 : 임진왜란 미참여
카타기리 카츠모토 : 제2차 진주성 전투 참여
와키자카 야스히루 : 용인 광교산 전투 승리, 한산도 대첩(이순신) 패배
카스야 타케노리 : 제2차 진주성 전투 참여
임진왜란 당시 참전한 왜군 장수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칠본창이 거의 참전한 것을 알 수 있죠.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제2군 가토 기요마사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 : 구로다 요시타카의 아들
제4군 모리 요시나리 또는 시마즈 요시히로
제5군 후쿠시마 마사노리
제6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제7군 모리 데루모토 : 히데요시의 5대부로
제8군 우키타 히데이에
제9군 도요토미 히데카츠
왜군 장수들이 조선에서 어떤 전투를 하면서 조선에게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모두 밝히고 싶지만, 주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합니다.
조선에서 왜란이 벌어졌을 때 히데요시 주변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먼저, 히데요시 다음의 서열을 가진 5명의 다이로를 알아보겠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마에다 도시이에를 제외하고, 다른 다이로는 모두 임진왜란에 참전했습니다.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이에야스에게 후시미성에서 정국을 안정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도시이에에게 오사카성에서 도요토미 가문의 후손인 히데요리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이로끼리 견제하도록 만든거죠.
도쿠가와 이에야스 : 간토 지방 8국, 256만 석, 나이다이진으로 불림
마에다 도시이에 : 주부 지방 가가국(현 이사카와현), 83만 석, 다이나곤으로 불림 → 마에다 도시나가(도시이에의 아들)
우키타 히데이에 : 주코쿠 지방 동쪽(현 오카야마현) 동쪽 지역, 57만 석
모리 데루모토 : 주코쿠 지방 서쪽(현 히로시마현, 야마구치현), 120만 석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 규슈 지방 지쿠젠국 (현 후쿠오카현), 33만 석 → 우에스기 가게카쓰 : 아이즈국, 120만 석
그러면, 실제 정치는 누가 했을까요? 히데요시 아래에서 집정관 역할을 한 5명을 부교라고 불렀습니다. 5명이지만, 히데요시가 가장 총애했던 인물은 이시다 미쓰나리였습니다.
아사노 나가마사 : 사법 담당, 22만 석, 오와리 출신, 아들인 아사노 요시나가는 임진왜란 참전
이시다 미쓰나리 : 행정 담당, 19만 석, 오미 출신
마시타 나가모리 : 토목 담당, 22만 석, 오미 출신
나쓰카 마사이에 : 재정 담당, 5만 석, 오미 출신
마에다 겐이 : 종교 담당, 5만 석, 오와리 출신
결과적으로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가를 유지하기 위한 이시다 미쓰나리 편과 새로운 권력자가 되고자 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의 싸움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고, 간토 지방 8국에서 힘을 모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를 따르는 다이묘들을 물리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죠.
좀 더 파악하기 위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부관계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히데요시의 정실인 기타노만도코로(애칭 오네네)는 히데요시와 같은 오와리국 출신이었습니다. 오네네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잡역부 생활을 하던 때부터 함께 있었습니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던 그녀는 먼 친척의 아들인 가토 기요마사와 나무통 집 아들인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을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오와리국 출신들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히데요시의 측실 필두인 요도도노가 있었는데, 그녀는 오미국 출신이었습니다. 요도도노는 명문가 아자이 출신으로 아버지는 나가마사, 어머니는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였습니다. 그녀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어머니입니다.
오네네는 히데요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거 같습니다. 그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친하게 지내면서 칠본창을 비롯한 장수들이 도요토미 가문을 배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네네는 오와리국 출신이었으므로, 오미국 출신인 이시다 미쓰나리를 안 좋아했습니다. 아마 측실인 요도도노의 영향도 있었겠죠.
그런데, 칠본창을 비롯한 임진왜란 참전 장수들도 미쓰나리를 안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히데요시와 함께 많은 전투를 치루었고,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 침략에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미쓰나리는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후 재능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조선 침공을 위한 운수 작전을 총 지휘한 것으로 보아 집정관으로서 행정 업무를 잘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히데요시가 미쓰나리에게 조선으로 넘어가서 전쟁 현황을 파악해 보라고 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쓰나리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전쟁을 수행하면서 잘못한 점을 모두 정리해서 히데요시에게 보고합니다. 미쓰나리가 가토 미요마사, 아사노 요시나가, 구로다 요시타카 등에게 군사 회의를 요청 하지만, 이를 무시한 것도 미쓰나리를 화나게 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가인 구로다 요시타카도 히데요시의 미움을 사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임진왜란 참전 장수들은 자신들은 죽을 고생을 다하는데, 히데요시 옆에서 편하게 행정 업무를 하면서 자기들의 잘못을 보고하는 미쓰나리에 대한 미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이었으므로 일본에 귀국할 수는 없었고, 증오만 키우고 있었던 것이죠.
조선에 온 모든 왜군을 살려서 보내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님의 뜻이 실패한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많은 왜군 장수들이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6살 히데요리가 도요토미 가를 이어가야 하는데, 히데요리의 지지 기반이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습니다. 게이초 3년 8월 18일 밤에 63세의 나이였습니다. 개이초는 일본의 연호로 음력 1596년 10월 27일부터 1615년 7월 12일까지 입니다. 즉, 1598년 8월 18일 입니다.
좀 더 일찍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이제 도요토미 가의 정권을 계속 유지할 거냐, 새로운 다이묘에 의해 새로운 막부가 생길 것이냐 하는 관심 속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움직입니다. 간토 지방 8국의 막강한 경제력,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아서 보존된 군사력, 뛰어난 처세술과 모략을 지닌 이에야스의 앞을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요?
2025.8.6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