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마재의 경우

 

   소 X 한 놈 - 서정주

왼 마을에서도 品行方正키로 으뜸가는 총각놈이었는데, 머리숱도 제일 짙고, 두 개 앞이빨도 사람 좋게 큼직하고, 씨름도 할라면이사 언제나 상씨름밖에는 못하던 아주 썩 좋은 놈이었는데, 거짓말도 에누리도 영 할 줄 모르는 숫하디 숫한 놈이었는데, <소 X 한 놈>이라는 소문이 나더니만 밤 사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저의 집 그 암소의 두 뿔 사이에 봄 진달래 꽃다발을 매어 달고 다니더니, 어느 밤 무슨 어둠발엔지 그 암소하고 둘이서 그만 영영 사라져 버렸다. “四更이면 우리 소 누깔엔 참 이뿐 눈물이 고인다.” 누구보고 언젠가 그러더라나. 아마 틀림없는 聖人 녀석이었을거야. 그 발자취에서도 소똥 향내쯤 살풋이 나는 틀림없는 틀림없는 聖人 녀석이었을거야.

 

위 시는 미당의 시집 <질마재 신화> 중 일편이다. 일찍이 곽재구가 극찬했듯이 질마재 신화에 등재된 시편들은 그야말로 편편이 절창이요 알알이 주옥같은 시편들이다. 일독을 강권하는 바입니다. <질마재 신화>는 아마 단행본 시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미당시전집1>에 그 전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 희랍의 경우, 하나.

 

유피테르(제우스)의 아내 유노(헤라)가 어느날 문득 올림포스 산상에서 아르고스 땅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날이 흐린 것도 아닌데 이상한 구름이 잔뜩 끼여있는 것이다. 헤라의 단련된 촉이 발동한다. 단숨에 지상으로 내려와 구름을 흩어버리고 확인해 보니 아니나다를까 제우스가 강가에 누워있고 그 옆에는 눈부시게 흰 암소가 한 마리 서있다. 아름다운 목가적인 풍경이지만 사실인즉슨 간통의 현장인 것이다. 구름으로 장막을 치고 강가에서 달콤한 연애에 빠져있던 제우스는 구름이 걷히자 급한 마음에 애인을 흰 암소로 변신시킨 것이다. 그 암소가 바로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다. 단수 높은 헤라는 모른 척하고 이 아름다운 암소가 누구의 것인지 물었다. 제우스는 엉겁결에 대지에서 태어난 소라고 거짓말을 하자 헤라는 암소를 자신에게 선물로 달라고 졸라서 암소를 손에 넣는다. 뒤가 구린 제우스로서는 거부할 명분이 없어 결국 애인을 본부인의 손에 넘기고 말았다.

 

헤라는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에게 암소를 맡겨 단단히 감시하게 했다. 소로 변한 이오의 시련은 참담했다. 목에 사슬을 차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쓴 맛이 나는 풀을 뜯어먹고 건초도 깔리지 않은 거친 땅바닥에서 잠을 자야했다. 제우스가 애인의 고초에 마음이 아프지 않을 리 없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 이오를 구해오게 한다. 헤르메스는 갈대피리로 아르고스의 혼을 빼고 최면장으로 결국 100개의 눈을 모두 감게 만든 후에 아르고스의 목을 베어버렸다. 후에 헤라는 아르고스의 백개의 눈을 수습하여 자신의 신조(神鳥)인 공작의 깃과 꼬리에 달아주었다. 지금도 공작이 날개를 펼치면 별처럼 반짝이는 아르고스의 보석같은 눈을 볼 수 있다. 100개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르고스에게서 벗어났지만 이오의 고난을 계속된다. 헤라가 보낸 등에 떼가 이오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그녀를 괴롭혔다. 덕분에 그녀는 미쳐 날뛰며 세상을 떠돌게 되는데, 그리스를 가로질려 내달렸고, 만의 연안을 따라서도 달렸다. 그 만은 이오니아 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는 유럽 연안과 아시아 연안을 분리시키는 해협을 건너갔다. 그 해협에는 <암소의 건널목>을 뜻하는 보스포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시아에 건너와서도 그녀는 오랫동안 방황을 계속 하다가 결국 이집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오의 발광과 방황이 끝난 것은 나일강에 이르러서였다. 이 강가에서 이오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제우스를 원망하면서 이 환난을 거두어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지성이었으니 감천했을 것이다. 천상에서 이 탄원을 받은 제우스는 헤라에게 이제는 그만 이오에게 내린 벌을 거두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다시는 이오와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스틱스강에 대고 맹세를 했다. 헤라의 분이 풀리자 이오는 암소에서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일 강변에서 이오는 제우스의 아들 에파포스를 낳았다. 임신한 몸으로 등에에 시달리며 혼 천지를 미쳐 돌아다녔으니 그 고난의 자심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파포스는 후일 장성하여 이집트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고 이오는 이집트에서 이시스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다. 끝이 좋아서 다행이다.

 

 

3. 희랍의 경우, 둘

 

질마재 신화에는 <소 X 한 놈>이 등장하지만 희랍신화에는 <소하고 한 X>이 나온다. 사연은 이렇다. 애인을 예쁜 암소로 둔갑시킨 전력이 있는 제우스가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멋진 황소로 둔갑하여 여자에게 접근했다. 제우스는 어느날 눈같이 새하얀 털의 늠름한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페를 유혹했다. 황소가 된 제우스는 처녀를 등에 업고 온 유럽 땅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크레타 섬에 상륙하여 본색을 드러내고 에우로페와 사랑을 나눈다. 이 때는 용케도 헤라의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다. 이 에우로페가 낳은 아들이 미노스다.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온의 양자로 자랐다. 아스테리온이 죽자 배다른 형제들과 왕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는데, 미노스는 신들이 왕국을 자신에게 맡겼다고 주장하면서 포세이돈에게 이렇게 빌었다. “이 크레타 섬이 신들이 저 미노스에게 내린 땅이라면, 포세이돈 신이여 그 징표를 내려주소서. 파도를 가르시고 황소 한 마리를 섬으로 오르게 하소서. 왕국이 서는 날 그 소를 잡아 포세이돈 신을 섬기는 제물로 바치겠나이다.” 탄원을 접수한 포세이돈이 미노스를 어여삐 여겨 바다로부터 황소 한 마리를 섬으로 보내주었고 미노스는 해신의 이 징표로 말미암아 별다른 저항없이 왕권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미노스는 왕위에 오른 뒤 이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지 않았다. 그 황소는 아주 훌륭한 황소여서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자신의 가축들 사이에 들여보낸 것이다. 신을 능멸한 죄는 엄중했다. 미노스는 황소를 자신의 가축들 사이로 들여보냈지만 포세이돈은 황소를 미노스의 가계로 들여보냈다.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로 하여금 황소에게 욕정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황소를 향한 욕정을 주체하지 못한 파시파에는 마침 크레타에 와 있던 당대 최고의 장인인 다이달로스에게 조언을 구했다. 다이달로스는 파시파에는 위해서 깜쪽같은 가짜 암소를 만들었다. 가짜 소는 두꺼운 나무로 만들었는데 안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비어있고 겉은 암소 가죽으로 덮었으며 발굽에는 발통이 달려있어 이동이 가능했다. 그리고 가짜소의 엉덩이에는 장정 주먹이 하나 드나들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파시파에는 발가벗고 가짜 소의 안으로 들어갔다. 소의 앞다리는 두팔을 끼우기 좋았고 뒷다리 부분에는 두 다리를 끼워넣기에 알맞았다. 파시파에가 가짜소 안에 들어가서 엎드리고 있자 이윽고 황소가 다가왔고 파시파에가 간절히 원했던 결합이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태어난 것이 사람 몸에 황소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다. 해괴하도다.

 

미노스왕은 이 부끄러운 소대가리 괴물을 가두어 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라비린토스(미궁)을 만들게 했다. 후일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궁속에서 소대가리를 때려죽이고 아리아드네와 함게 크레타를 탈출하지만 귀국 도중에 테세우스는 은인인 아리아드네를 내다버린다. 그 벌인가. 아티카의 연안에 도착했을 때 테세우스는 검은 돛을 내리고 흰 돛을 올리는 것을 잊어버려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은 줄 알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 즉 에게해라고 불린다. 후에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또 다른 딸 파이드라를 아내로 맞이하고, 파이드라는 테세우스 전처의 아들인 히폴리노스를 사모하여 구애하다가 거절당하자 자살해 죽으면서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고 거짓 유언을 하고, 이를 믿은 테세우스는 아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아들은 저주를 받아 죽는다. 이 이야기는 소생이 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한편 다이달로스는 파시파에의 해괴한 간음을 방조한 죄와 미로의 탈출 방법을 아리아드네에게 누설한 죄로 미노스에 의해 자신이 만든 미궁에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갇히게 된다. 하지만 다이달로스는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하늘로 날아 미궁을 탈출한다. 아들 이카로스는 태양에 가까이 가고싶은 욕심에 과욕을 부리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으면서 그만 추락하여 죽는다. 다이달로스는 무사히 시칠리아섬에 도착해서 카미코스의 왕 코칼로스의 궁전에 몸을 숨긴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를 쫓아 시칠리아까지 갔지만 결국 다이달로스의 구하기 위한 코칼로스의 계략으로 코칼로스의 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4. 추신, 제우스를 위한 변명

 

인간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하고 서로 배신하지 않고 사랑하며 살기로 굳은 서약을 하고 끝가지 의리를 지켜 살아본들 50년을 넘기 어렵다.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둘러보고 살펴보면 배우자와의 맹세를 지키면서 한 평생을 같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과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혼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소생은 이혼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은 털끝 만큼도 없다.) 결혼 생활 중에 배우자 몰래 각자의 불타는 욕망을 쫓아 내달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희랍의 신들은 흔히 인격신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나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유일신과는 완전 다르다. 희랍의 신들은 인간과 똑같이 희노애락의 출렁이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희랍의 신에게 삶은 끝없이 영원히 이어지고 몸은 결코 죽지않으면서 또 건강하다. 천년만년 어떻게 한 배우자만 바라보고 살 수 있겠는가. 소생이 올림포스의 관혼상제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이혼의 제도가 있었다면 제우스와 헤라는 벌써 이혼했을 것이다. 이혼은 신들에게는 금지 사항인지 신화를 아무리 뒤져봐도 신들이 이혼했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제우스를 바람둥이, 난봉꾼, 호색한이라 칭하는 것은 잘못이다. 제우스가 자신의 신전에 거대한 하렘을 만들었나? 삼천궁녀를 거느렸나? 신들 중의 신인 올림포스의 주신(主神)임에도 죽지육림에서 헐떡인 것은 아니라는 이이기다. 수백 년인지 수천 년인지도 모르는 세월동안 십수 건의 외도가 있었을 뿐이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제우스는 평균적인 인간 남성에 비하자면 훨씬 순수한 배우자인 것이다. 만약에 인간이 희랍의 신들처럼 불사의 몸으로 수천 년을 살 수 있고, 더불어 그들이 가진 권능의 만분지일만한 능력이라도 갖고 있다면, 제우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 실로 명약관화하고 명명백백하다. 남자든 여자든간에 말이다. 그런 인간들이 제우스를 가리켜 바람둥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실로 가소로운 일인 것이다.

 

희랍 신들의 한때는 장엄하고 아름다웠던 신상들과 신전들은 깨어지고 잘라져 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혹은 부서져서 이끼긴 돌덩이가 되어 폐허를 뒹굴거나 흙속에 묻혀 잊혀졌을 터인데, 소생이 이제와서 올림포스의 주신인 제우스에게 무슨 은혜를 입은 것이 있다고 그를 위해 구질한 변명을 구구절절하겠는가. 다만 늙고 눈먼 시인들이 전해 준 오래전 희랍 신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들의 애증과 애환에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문득 제우스가 호색한, 난봉꾼, 바람둥이라 불리워 지는 것이 조금 안타까워 몇 자 남기는 것이다. 누구나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보나 제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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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1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신화라고 하면 인간의 입장에서 신을 해석하려는 시도라고만 생각했는데, 님의 시선은 독특하지만 그래도 재밌네요~^^

붉은돼지 2015-07-12 18:13   좋아요 1 | URL
제우스에 대한 제 생각은 신화 속의 소와 관련한 대목들을 읽다가 그냥 문득 떠오른 것이어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2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소 제우스를 바람둥이, 난봉꾼, 호색한이라고 흉보고는 했는데..... 찔립니다..

붉은돼지 2015-07-12 18:10   좋아요 1 | URL
저도 뭐 손가락질하며 흉을 보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조금 부러워하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음.....

cyrus 2015-07-1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우스 입장에서는 난봉꾼의 대명사로만 알려진 게 상당히 억울할거예요. 그리스 신화를 끝까지 읽어보면 제우스만 바람을 피운 게 아니니까요. 아프로디테가 오늘날에는 사랑의 여신으로 알려졌지만, 신화 속에서는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몰래 군신 아레스와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올림포스이 신들이 보는 앞에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하잖아요.

붉은돼지 2015-07-13 10:32   좋아요 0 | URL
올림포스의 그 분들은 요즘은 뭐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군요...로마를 세우고 지탱해온 한 축 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퇴출당한 이후로 소식이 없군요..ㅎㅎㅎ
 

요즈음 읽고 있는 잠자리용 도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밀의 숲>이다. 물론 없겠지만 혹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 말씀드린다. 소생이 하루키 책만 읽는 것도 아니고 또 잠자리에서만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나름 이런저런 책들을 보고 있다. 그럼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어떤 책을 보는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이슬람 제국의 탄생>과 <로마제국쇠망사 5>와 같은 묵직한, 중량감 넘치는 - 책이 정말 무겁다. - 역사서들을 보고 있다. 아!! 쇠망사는 참으로 오래도 본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읽고 있다. 우공이산이라고 하니 문득 생각나는데 소생은 이 사자성어를 볼 때마다 짱꼴라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삽 두삽 삽질해서 한삼태기 두삼태기 삼태기로 퍼날라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산을 옮긴다는 생각은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에도 저 비슷한 속담이나 성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엄청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짱꼴라 짱!!! 이 말은 조금 이상하네..... <비밀의 숲>을 읽다보니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몇 자 적어본다.

 

 

 

 

 

 

 

 

 

 

 

 

 

 

 

 

 

‘여행의 동반자, 인생의 길동무’(p254-255)에서 하루키는 여행길에 어떤 책을 가지고 가느냐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아마 누구나 고민하는 고전적인 딜레마라고 하면서 ‘언제 어떤 여행길에도 오케이’인 만능적인 책을 한 권 추천한다. 일본의 중앙공론사에서 출간된 <체홉전집>이다. 이유는 대충 이렇다. ①단편이어서 단락 짓기 쉽다. ②어느 작품이나 질이 높다. ③문장이 읽기 쉽고 소탈하다. ④내용이 풍부하고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다. ⑤사이즈도 알맞고 무겁지 않다. ⑥만약 누군가 보더라도 ‘체홉을 읽는 걸 보니 별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군’ 하고 여겨질 확률이 높다. ⑦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어도 싫증나지 않고 오히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하루키의 말마따나 정말 여행길에 가져갈 책을 선정하느라 비행기 시간을 놓칠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는 물론 아니고, 어쨋든 여행이나 출장 갈 때 가져갈 책을 고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소생의 서가에도 체홉이 몇 권 있는데 아직 하나도 읽어보지 못한 것 같다. 요번 여름휴가 때는 하루키상의 추천을 적극 수용해볼 요량이다.

 

 

 

 

 

 

 

 

 

 

 

 

 

 

 

 

 

‘소도 알고 있는...’(p270-271)에는 대충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유타주의 게리 길모어라는 강도 살인범이 총살형을 자청해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뉴스위크>의 표지인물이 되기도 했고 노먼 메일러는 길모어를 취재하여 <사형집행인의 노래>라는 논픽션 소설을 써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형집행 후 20년이 지난 뒤 게리 길모어의 동생인 마이클 길모어가 이제까지 가슴에 꾹 담아놓았던 사실을 책으로 써서 밝혔다. 게리 길모어가 두 명의 죄없는 사람을 살해한 이면에는 실로 가슴이 메이는 끔찍한 가족사가 있었다. 그 책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책이라는 것이다. 소생 분명히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언젠가 구입했었는데 위 글을 읽고 생각나서 찾아보니 책에 갑자기 발이 생겨 어디로 달아났는지 온데간데 없다.

 

 

 

 

 

 

 

 

 

 

 

 

 

 

 

길모어 이야기를 읽으니 또 문득 생각난다. 얼마전에 본 알라딘 16주년 사은품 <끝내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더라. 제임스 엘로이는 어릴 때(아마도 10살 쯤) 엄마인 진 엘로이가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는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제임스는 한참을 방황했다. 알코올 중독과 좀도둑질 같은 범죄로 망가져 가던 젊은이는 또 다른 미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 달리아>라는 소설을 쓰고 그 첫장에 이런 헌사를 남긴다. “어머니, 스물아홉 해가 지난 지금에야 이 피 묻은 고별사를 바칩니다.”

 

 

 

 

 

 

 

 

 

 

 

 

 

 

 

 

 

<블랙 달리아>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꽝이라고 한다. 반면 엘로이의 또 다른 소설 <LA 컨피덴셜>은 동명 영화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오히려 대중에게 알려진 경우다. 소설 <블랙 달리아>의 출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엘로이는 어머니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하는 한편 자신의 암울했던 시절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자전 에세이 <내 어둠의 근원>에서 엘로이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성적으로 이끌렸으며 어머니가 바람을 피울 때 뒤를 밟은 적도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길모어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엘로이의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엘로이 소설들도 이하동문이다. 영화도 못봤다. 이제 알았으니 언제 시간나면 영화나 소설이나 뭐 하나라도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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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08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글이 너무 재밌어서, 따라 소리내어 읽고 또 읽고 그랬어요. 왠만한 장르소설이나 수필집보다 더 재밌는걸요~^^

붉은돼지 2015-07-09 10:16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이렇게 말하니 제가 뭔가 된 것도 같아요 ㅎㅎㅎ 뭔가 된 것도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군요 ㅋㅋㅋㅋㅋ
그건 그렇고,,, 제가 쓴 대부분이 <비밀의 숲>과 <끝내주는 책>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ㅎㅎㅎㅎ,,,

서니데이 2015-07-0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엘로이의 책 소개에서 사연을 읽은 것 같은데요, 소설속 이야기보다도 현실이 더 믿기 힘든 사연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어요,.
붉은 돼지님, 좋은하루되세요

붉은돼지 2015-07-09 10:18   좋아요 0 | URL
맞아요....어떨 때는 정말 현실이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소설적이고, 더 믿기 힘든 그런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15-07-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짱꼴라 짱!ㅋㅋㅋㅋ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다운 우리말이로군요.ㅋㅋ
우공이산! 정말 대단하죠.
제가 유일하게 우공이산으로 읽는 책이 있다면 성경 정도!
뭐 좋아서 읽는다기 보다 그냥 신앙인의 양심으로다가...ㅎㅎ
그나저나 <끝내 주는 책> 괜찮던가요?
그런데 저는 그 책을 못 읽지 싶습니다.
한꺼번에 5만원을 지른 적이 저는 아마도 영원히 없을 것 같아서...ㅠㅋ

붉은돼지 2015-07-10 09:32   좋아요 0 | URL
혹시 <끝내주는 책>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보내 드릴께요~~ 뭐 중고도 괜찮으시다면요 ^^
내용은 저는 뭐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stella.K 2015-07-10 13:36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어요. 제가 읽을 책이 하도 많아
쌓아 놓은 책이나 읽으려고요.
대신 붉은돼지님 마음만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amoo 2015-07-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읽고 있는 건 몇 권의 책이 있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정말 우공이산의 정신으로도 안되더군요..ㅎ

재밌는 책들이 간간히 보입니다. 제가 읽었던 책도 있어 반갑네요! 여름날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ㅎㅎ

붉은돼지 2015-07-12 13:20   좋아요 0 | URL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라니 정말 제목만 들어도 정신이 혼미하네요ㅋㅋㅋ
저는 철학책은 정말 못 읽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책 보시는 분들 보면 존경스러위요 ^^
 

 

 

 

 

 

 

 

 

 

 

 

 

 

일전에 이미 고백한 바와 같이 소생은 가무(歌舞)가 형편없고 잡기(雜技)에 무능하며 당연한 결과로 노래방은 거의 가지 않는다. 어디선가 하루키도 가요방은 질색이라는 구절을 읽고 적지않은 위안을 받았다고 지난번 페이퍼에서 약간의 한숨을 실은 토로를 했었다. 문득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은 아니고,,, 소생은 뭐 젊지도 않고 사실 별로 부끄럽지도 않다. 그건 그렇고,

 

요즘에 읽는 침대용 도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크랩-1980년대를 추억하며>이다.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스크랩을 읽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하여간 가라오케만큼 싫은 게 없다.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는 것도 싫고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는 것을 보는 것도 싫다. ‘가라오케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원래 남들 앞에서 얘기하고, 개인기를 보이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 것은 팔 년 전인데 그때 부른 노래는 이누노오마와리상(개 순경 아저씨)이라는 동요였다. 다시 떠올려 봐도 불쾌하지만...”(p274-275)

 

이 구절을 읽고 다시 한번 위안을 얻었다. '하루키상~ 저도 정말 그래요. 그리고 고마워요.' 소생도 가만 생각해봤는데, 마지막으로 가요방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4~5년 전인지 7~8년 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 좋은 일이라고 살뜰히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소생이 부른 노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었다. 참내... 그런데 '개 순경 아저씨'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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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6-2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도동 일번지 동경132 북위37 평균기온 12도 강수량은 1300 독도는 우리땅~ 오랜만에 불러보네요.ㅎㅎ

붉은돼지 2015-06-24 12:52   좋아요 0 | URL
이건 <독도는 우리땅> 이군요 ㅎㅎㅎ 대마도는 일본땅! 하와이는 미국땅! 독도는 우리땅 ㅋㅋㅋㅋㅋㅋ

에이바 2015-06-24 14:11   좋아요 0 | URL
아니?? 100명의 위인들이라 생각하고 불렀더니 독도는 우리땅이었군요ㅋㅋㅋㅋ

붉은돼지 2015-06-24 15: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15-06-2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저도요. ㅠㅠ 저도 가요방이 정말정말 싫어요.ㅠㅠ 붉은돼지님 하루키님 고마워요ㅠㅠ 가끔 직장회식 때 거절을 묵살당하고 떠밀려서 마이크를 잡아야하는 때가 있는데 정말..ㅜㅜ 음치박치로 살기힘든 세상-_-;
그나저나 개순경아저씨라니 ;; 하루키가 더 좋아지는 아침이네요.^^

붉은돼지 2015-06-24 12:56   좋아요 0 | URL
직장 회식때는 안갈수도 없고 좀 난감하죠....그래도 보통 2차, 3차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들이 대충 꽐라되어 있고, 또 마이크 안 놓으려는 분들도 계셔서 대충 술이나 한잔 하면서 버티다 보면 한곡도 안부르고 그냥 넘어가죠--;; 어쨋든 가요방 가는 것은 정말 싫어요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을 빛낸.. 은 노래방 가서 마지막 1분 놓고 항상 마지막 곡으로 준비하고는 했습니다. 이게 노래가 길거든요...ㅎㅎㅎㅎㅎㅎ

붉은돼지 2015-06-24 12:58   좋아요 0 | URL
맞아요....대충 부르기 쉬운 것 같아 골랐는데 엄청 길어서 중간에서 끊었던 기억이 납니다.ㅋㅋㅋㅋ

느린산책 2015-06-2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나요?

붉은돼지 2015-06-24 15:09   좋아요 0 | URL
80년대 발간된 <에스콰이어>,<뉴요커>,<피플> 등 미국잡지 내용 중에 흥미로운 것들을 하루키 자신의 개인 의견이나 경험 첨부하여 정리한 짧은 글 모음인데요....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5-06-25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래방 안 좋아시군요.ㅎㅎ
나름 재능기부+ 궁금증을 가지고 야후재팬에 `개 순경 아저씨`를 검색해보니, 가사가 아주 귀엽네요.

길 잃은 아기 고양이야, 집이 어디니? 집을 물어봐도 몰라. 이름을 물어봐도 몰라. 냐옹 냐옹 냐옹. 울기만 하는 새끼 고양이.
울기만 하는 아기 고양이. 개 순경 아찌는 당황해서 왕왕왕.
(또 집을 물어본다.) 까마귀한테 물어도 몰라. 참새한테 물어도 몰라. 냥냥냥. 울기만 하는 새끼 고양이.
개 순경 아찌는 당황해서 왕왕왕.

부족한 실력이지만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아웅 퇴근하고 싶어라~

붉은돼지 2015-06-25 20:35   좋아요 0 | URL
와우 이렇게 가사까지 다 찾아주시니 너무 고마워요~ 친절하신 뽈쥐님^^
동요라서 그런지 가사가 귀엽고 재미있네요. 하루끼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니 좀 웃기기도 하지만 나름 잘 어울리는 선곡인 것도 같아요 ㅋㅋㅋ

icaru 2015-06-2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좋은 일이라고 살뜰히 기억하겠는가... 으하하하하...
마무리 책 선정 센스가 빛납니다... 하하하..

붉은돼지 2015-06-26 13:12   좋아요 0 | URL
전 그냥 박수나 치며 - 음...율동은 아니고 - 아니면 술이나 홀짝이며 다른 분들 노래나 감상하겠다는데, 됐다는데, 싫다는데, 꼭 끝까지 따라댕기며 노래를 시키는 사람이 있어요....아 정말....패주고 싶어요 ㅠㅠ
 

얼마전 아갈마님의 페이퍼(고창 미당 시문학관 그리고 시를 찾아서  http://blog.aladin.co.kr/durepos/7550304 )를 보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숙제가 다시 생각났다. 이 숙제는 하도 오래 묵은 숙제여서, 마치 어둡고 침침한 깊은 못 속에서 1000년을 버틴 이무기가 어느 비바람 몰아치던 날 문득 여의주 토해내고 용이 되어 승천하듯이, 이 숙제를 지금 해내지 못하고 조금만 더 버틴다면 아마 소생 필생의 과업이 될 뻔 하였다. 좀 멋진 비유를 해보려고 했는데 비유가 적절치도 못하고 말도 안되는 거 같다. 죄송합니다.

 

소생의 숙제는 다름이 아니옵고 민음사에서 나온 <미당시전집>을 완비하는 것이다. 시전집 1,2권은 아마 2005년도 이전에 구입한 것 같다. 그로부터 무심히 흐른 세월이 어느덧 10년, 드디어 얼마전에 시전집 3권을 구입해서 미당시전집 시리즈를 완비했다. 모두 아갈마님 덕분이어요. 감사해요. 호호호. 어쨋든 파란만장한 질곡의 세월을 견뎌내고 우여곡절 끝에 10년만에 이루어낸 성과다. 너무 나갔나? 너무 나갔지? 다시 한번 죄송합니당. 호호호

 

미당의 시편 중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 어디 하나 둘이리요 만은 소생은 그 중 <질마재 신화>의 시편들을 가장 좋아한다. 산골 한 마을의 소소한 역사가 우리 민족의 신화로 탈바꿈 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다. 알알이 주옥같은 명편이요 편편이 빛나는 절창이다. <질마재 신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곽재구의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을 통해서 였다. 곽재구는 질마재 신화의 시편 중 <신부>, <해일>을 극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옛 기록을 뒤적여 보니 미당시전집 관련하여 2005년도에 리뷰 1건, 2006년도에 페이퍼 1건 올린 게 있어 첨부한다. 소생의 알라딘 경력도 10년이 넘은 모양이다. 물론 중간 중간 끊긴 부분도 있지만, 유구하다면 유구하다. 10년을 유구라고 쓰고 보니 참 유구가 다 웃을 일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동안 과연 얼마만큼의 성취가 있었는지 부끄럽지만, 앞으로도 쭉쭉빵빵 계속해서 소생이 좋아하는 알라딘과 또 내가 사랑하는 책과 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http://blog.aladin.co.kr/733305113/769758

http://blog.aladin.co.kr/733305113/8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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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5-05-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구할수가 없어서 제본했더랬어요. ^ㅎ

붉은돼지 2015-05-24 15:06   좋아요 0 | URL
우와~ 제본까지 하시다니 대단하셔요. 중고가 잘 안나오는 모양이군요 ^^

cyrus 2015-05-24 15:33   좋아요 0 | URL
중고로 나오면 가격이 비싸요... ^^;;

stella.K 2015-05-24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복간을 해야하는데 말입니다.
하긴 미당이 친일행적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복간을 못하고 있는 걸까요? 흠~

붉은돼지 2015-05-26 09:15   좋아요 0 | URL
미당의 친일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구요..
제 생각에 아마도 시집은 아무래도 잘 안팔리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흠....^^

transient-guest 2015-05-29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당은 시인으로는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친일행적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죠? 이런 경우에는 참 어렵습니다.ㅎ 너무 천재이기도 하고, 마치 애증이 얽히는 듯하네요..ㅎ

붉은돼지 2015-05-29 10:56   좋아요 0 | URL
미당이 항일을 하거나 민주화 투쟁을 했다면 저런 시들은 쓰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미당이 저런 시들을 쓰도고 항일도 하고 민주화 투쟁도 했다면 우리 민족의 큰 어른, 구심점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다보니 피츠제럴드의 묘지 이야기가 나온다. 소콧 피츠제럴드의 묘는 미국 메릴랜드 주의 작은 마을에 있다. 국도변의 조그마한 천주교 성당 뒤편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묘지. 묘비에는 <위대한 게츠비>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의 역자는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인 권남희다. 소생 생각에, 이 책은 무라카미가 썻으니 당연히 일본어로 썻을 것이고, 아마 <위대한 개츠비>의 저 구절도 일본어로 된 것을 권남희씨가 번역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역말이다. 그런데 별 할 일 없는 소생이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 <위대한 게츠비> (김욱동 역)를 꺼내 마지막 장을 펼쳐보니 <셀러드...>에 나오는 구절과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다. 권남희씨는 아마도 개츠비의 저 구절만은 민음사판을 참조한 모양이다. 한 텍스트가 옮겨지고 또 옮겨지면 어떻게 되는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지 오렌지가 되는지 한번 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참고로 소설가 김영하가 옮긴 문학동네판 게츠비에는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있다. 이 구절만으로 볼 때는 민음사판과 문학동네판 어느 것이 더 좋은 지 더 마음에 드는 지 모르겠다. 그게 그거 같고 저게 저거 같다.

 

이야기가 약간 옆 길로 빠졌는데 소생이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번역이 아니라 묘비명이다. <샐러드...>에서 하루키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소생 생각에도 저 묘비병은 인생을 흥청망청 살아버린 피츠제럴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한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는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마지막 한 줄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또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 작가(그리고 러너) / 1949~20**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소생은 아직 한번도 묘비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하루키는 가끔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소생 생각에는 하루키상의 묘비명으로는 후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소생도 묘비명을 잠깐 생각해 봤다. 인생을 흥청망청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신통방통한 게 나올리도 만무하다. 그저 생각나는 것은 “ 붉은돼지. 왔다 가다.” 혹은 "꿀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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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자리 2015-05-23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유는 몰라도 게츠비 번역은 전자가, 하루키 묘비명은 후자가 마음에 드네요 ㅎ

붉은돼지 2015-05-23 18:20   좋아요 1 | URL
김영하의 번역은 한문보다 한글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굳이 따지자면 사실 저도 김욱동의 번역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appletreeje 2015-05-23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쌍칼이라 불러다오> 윤성학의 어느 싯귀가 떠오릅니다.
`묘비명은 몸안에/ 돌을 세우고 손가락으로 쓰는 문장`.

붉은돼지 포르코가 ˝좋은 놈은 다들 죽는군...˝도 생각나구요.

붉은돼지님!
편안하고 좋은 연휴 되세요.*^^*

붉은돼지 2015-05-23 21:02   좋아요 1 | URL
윤성학 시인은 초문입니다만 왠지 제목에서 풍기는 포스가 바로 제 취향인 듯합니다. 문지에서 새로나온 유하의 <무림일기>를 얼마전에 구입했었는데 <쌍칼...>도 주문해야 할 모양입니다.~~

제 닉네임이 붉은돼지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대사가 나오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appletreeje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